국역태화선학대사전 5책(ㅅ)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5책(ㅅ) 460쪽

태화당 2019. 11. 8. 11:05

相如過橋從容錄第五十六則 司馬相如字犬子 少喪父母 九歲與人牧猪 聞藺相如爲卿相 改名相如 棄猪就學 猪主杖之 先生問知賢 留門外草庵 十年無書與讀 遣去 過昇仙橋 題柱曰 若不乘駟馬車 不過此橋 後造得子虛賦 將軍楊得意 夜宿殿中 誦此賦 帝曰 朕恨不與此人同時 將軍奏曰 見在蜀地 帝命往召 同乘駟馬車過橋 封侍中 宏智廣錄二 下惠黜國 相如過橋

상여과교(相如過橋) 종용록 제56. 사마상여(司馬相如)는 자가 견자(犬子). 어릴 적에 부모를 잃었고 9세에 타인을 위해() 돼지를 쳤다. 인상여(藺相如)가 경상(卿相)이 되었다 함을 듣고 상여로 개명했다. 돼지를 버리고 취학(就學)하자 저주(猪主)가 그를 매질했다. 선생이 묻고 현인임을 알고서 문밖의 초암에 머물게 했는데 10년 동안 주어서 읽게 하는 책이 없었다. 버리고 떠나다가 승선교(昇仙橋)에 이르자 기둥에 제()하여 가로되 만약 사마거(駟馬車)를 타지 않는다면 이 다리를 지나지 않으리라. 후에 자허부(子虛賦)를 지었는데 장군 양득의가 밤에 전중(殿中)에서 자다가 이 부()를 외웠다. ()가 가로되 짐이 이 사람과 동시(同時)가 아님이 한스럽다. 장군이 아뢰어 가로되 현재 촉지(蜀地)에 있습니다. 제가 명해 가서 부르게 했다. 사마거에 동승하고 다리를 지났으며 시중에 봉했다. 굉지광록2. 하혜(下惠; 柳下惠)는 나라에서 쫓겨나고 상여는 다리를 지났다(相如過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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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淵(1627-1679) 明末淸初僧 又稱海淵 冀州新河人 俗姓曹 號波停 年十六至海虞(江蘇常熟東)之三峰 入嵩隱門下 苦參十九年而得悟 未幾 往靈峰弘法 並大力整飭叢林規矩 康熙十八年冬示寂 享年五十三 [靈峰志四]

상연(上淵) (1627-1679) 명말청초승. 또 명칭이 해연이니 기주 신하 사람이며 속성은 조며 호는 파정임. 나이 16에 해우(강소 상숙 동)의 삼봉에 이르러 숭은문하(嵩隱門下)에 들어가 고참(苦參)하기 19년에 깨침을 얻었음. 얼마 안되어 영봉으로 가서 홍법했고 아울러 대력으로 총림규구(叢林規矩)를 정칙(整飭; 정비해 갖춤)했음. 강희 18년 겨울 시적했으며 향년은 53 [영봉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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常永淸代臨濟宗僧 字一覺 宛平(今屬北京)潘氏 出家北京聖安寺 從玉林國師圓具 得領參禪指要 一日 取紙燃燈 忽見火光有省 後蒙平陽本晝記莂 回住聖安寺 [五燈全書九十四補遺]

상영(常永) 청대 임제종승. 자는 일각이며 완평(지금 북경에 속함) 반씨. 북경 성안사로 출가했고 옥림국사를 좇아 원구(圓具)했고 참선의 지요(指要)를 득령(得領)했음. 어느 날 종이를 취해 등을 켜다가 홀연히 화광을 보고 성찰이 있었음. 후에 평양본주(平陽本晝)의 기별(記莂)을 입었으며 돌아와 성안사에 주()했음 [오등전서94 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