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5책(ㅅ)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5책(ㅅ) 485쪽

태화당 2019. 11. 8. 11:27

上梢同末梢末上義 卽最初之義 圜悟心要上始 如斯只贏得一場骨董 推源窮本 蓋上梢不遇作家

상초(上梢) 말초ㆍ말상의 뜻과 같음. 곧 최초의 뜻. 원오심요상시. 이와 같이 다만 나머지로 한바탕의 골동을 얻는다. 근원을 추리하고 근본을 궁구하면 대개 상초(上梢)에 작가를 만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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湘楚湖南和湖北 湖南簡稱湘 湖北簡稱楚 續燈錄十二四祖山法演 湘楚叢林 江淮禪席 所至知識 無不異待

상초(湘楚) 호남과 호북이니 호남의 간칭이 상()이며 호북의 간칭이 초(). 속등록12 사조산법연. 상초(湘楚)의 총림과 강회(江淮)의 선석(禪席), 이르는 곳마다 지식이 특이하게 접대하지 않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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傷觸冒犯 人天眼目三 妙明體盡知傷觸 力在逢緣不借中

상촉(傷觸) 모범(冒犯; 일부러 不法한 말이나 행동을 하다. 비위를 거스르다). 인천안목3. 묘명(妙明)의 체가 다해야 상촉(傷觸)을 아나니 역량이 인연을 만나매 가차하지 않는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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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觸東司 觸 汚 不淨 請益錄第八十則 州一日上觸喚侍者 者應諾 州云 東司頭不可與汝說佛法也

상촉(上觸) 동사(東司)에 오름. ()은 오()며 부정임. 청익록 제80. (; 조주)가 어느 날 상촉(上觸)하여 시자를 불렀다. 시자가 응낙하자 조주가 이르되 동사두(東司頭)에선 가히 너와 불법을 설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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常總(1025-1091) 宋代黃龍派僧 劍州尤谿(四川劍閣)人 俗姓施 字照覺 又稱常聰 十一歲依寶雲寺文兆出家 從契思受具足戒 後隨黃龍慧南 參究二十年 竝嗣其法 慧南歿 住泐潭寶峰寺 後移江州(江西九江)東林寺 元豐三年(1080) 敕改廬山東林律寺爲禪林 師奉命駐錫說法 其徒以爲應慧遠之讖 吾滅七百年後 有肉身大士革吾道場 遂大揚法化 曾與蘇軾交遊 五年 神宗敕主相國寺智海禪院 固辭不受 乃賜紫衣及廣惠禪師之號 元祐三年(1088) 賜號照覺禪師 六年示寂 壽六十七 [禪林僧寶傳二十四 釋氏稽古略四 續傳燈錄十六]

상총(常總) (1025-1091) 송대 황룡파승. 검주 우계(사천 검각) 사람이며 속성은 시()며 자는 조각(照覺)이니 또 명칭이 상총(常聰). 11세에 보운사 문조에게 의지해 출가했고 계사를 좇아 구족계를 받았음. 후에 황룡혜남(黃龍慧南)을 따르며 참구하기 20년이었고 아울러 그의 법을 이었음. 혜남이 죽자 늑담 보봉사에 주()했고 후에 강주(강서 구강) 동림사(東林寺)로 옮겼음. 원풍 3(1080) 칙명으로 여산 동림율사(東林律寺)를 고쳐 선림으로 삼았는데 스님이 명을 받들어 주석하며 설법했음. 그 도중이 혜원(慧遠)의 참()에 응함으로 삼았으니 내가 멸한 후 7백 년 후 육신대사(肉身大士)가 있어 나의 도량을 혁신하리라 했다 함. 드디어 법화를 크게 날렸음. 일찍이 소식(蘇軾)과 교유했음. 5년 신종이 칙령해 상국사 지해선원을 주지하라 했으나 고사하고 받지 않았음. 이에 자의(紫衣) 및 광혜선사(廣惠禪師)의 호를 주었음. 원우 3(1088) 조각선사(照覺禪師)란 호를 주었고 6년에 시적했음. 나이 67 [선림승보전24. 석씨계고략4. 속전등록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