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先覺宗乘】 五卷 明代僧語風圓信(1571-1647)校訂 郭凝之彙編 收於卍續藏第一四八冊 本書收錄師承明確之居士一一一人 及無名之居士七十三人 共計一八四人之機緣語要 本書與明代朱時恩所撰之居士分燈錄 淸代彭際淸所撰之居士傳 民國劉大心所撰之居士參禪蘭錄等 皆爲參究居士道業之重要資料 先覺宗乘 係由明代陶明潛所撰之先覺集二卷改編而成
선각종승(先覺宗乘) 5권. 명대승 어풍원신(語風圓信; 1571-1647)이 교정했고 곽응지가 휘편(彙編)했음. 만속장 제148책에 수록되었음. 본서는 사승(師承)이 명확한 거사 111인 및 무명의 거사 73인 공계(共計) 184인의 기연의 어요(語要)를 수록했음. 본서와 명대 주시은(朱時恩)이 지은 바의 거사분등록(居士分燈錄)ㆍ청대 팽제청(彭際淸)이 지은 바의 거사전(居士傳)ㆍ민국(民國) 유대심(劉大心)이 지은 바의 거사참선난록(居士參禪蘭錄) 등은 모두 거사의 도업을 참구하기에 중요한 자료임. 선각종승은 이 명대 도명잠(陶明潛)이 지은 바의 선각집(先覺集) 2권을 개편함으로 말미암아 이루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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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覺迥微】 新羅國僧迥微諡號先覺 詳見迥微
선각형미(先覺迥微) 신라국승 형미의 시호가 선각이니 상세한 것은 형미(迥微)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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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宣鑑】 (782-865) 唐代僧 劍南(四川)人 俗姓周 法名宣鑑 年少出家 二十歲受具足戒 於大小乘諸經貫通旨趣 因常講金剛般若經 時稱周金剛 後至澧陽參龍潭崇信 夜深龍潭吹滅紙燭之間 豁然頓悟 常以棒打爲敎 而有德山棒之稱 師住澧陽三十年 遭唐武宗(在位841-846)廢敎 避難於獨浮山之石室 大中(847-859)初 應武陵(湖南)太守薛廷望堅請 始居德山 大振宗風 咸通六年十二月三日 忽告諸門徒曰 捫空追響 勞汝心神 夢覺覺非 竟有何事 言訖安坐而化 壽八十四 僧臘六十五 敕諡見性大師 法嗣有巖頭全豁雪峰義存等 [宋高僧傳十二 傳燈錄十五 祖堂集五 五燈會元七]
선감(宣鑑) (782-865) 당대승. 검남(劍南; 사천) 사람이며 속성은 주(周)며 법명은 선감임. 어린 나이에 출가했고 20세에 구족계를 받았음. 대소승(大小乘)의 여러 경에 지취(旨趣)를 관통(貫通)했는데 늘 금강반야경을 강설했으므로 인해 당시에 주금강(周金剛)이라 일컬었음. 후에 예양(澧陽)에 이르러 용담숭신(龍潭崇信)을 참알(參謁)했는데 야심(夜深)에 용담이 지촉(紙燭)을 불어 끄는 사이에 휑하게(豁然) 돈오(頓悟)했음. 늘 방타(棒打; 주장자로 때림)로써 가르침을 삼은지라 덕산방(德山棒)의 칭호가 있음. 스님이 예양(澧陽)에 머문 30년에 당무종(唐武宗; 재위 841-846)의 폐교(廢敎)를 만나 독부산(獨浮山)의 석실(石室)로 피난하였다가 대중(大中; 847-859) 초에 무릉(武陵; 湖南) 태수(太守) 설정망(薛廷望)의 견고한 청에 응해 비로소 덕산에 거주하며 종풍을 크게 떨쳤음. 함통 6년 12월 3일 홀연히 여러 문도(門徒)에게 고해 가로되 허공을 어루만지고 곡향(谷響)을 쫓음은 너희의 심신(心神)을 노고롭게 하나니 꿈과 깸이 그른 줄 깨친다면 필경에 무슨 일이 있겠는가. 말을 마치자 편안히 앉아 화거(化去)했으니 나이는 84며 승랍(僧臘)은 65임. 칙시(敕諡)가 견성대사(見性大師)며 법사(法嗣)로는 암두전활(巖頭全豁)ㆍ설봉의존(雪峰義存) 등이 있음 [송고승전12. 전등록15. 조당집5. 오등회원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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