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10책(ㅎ)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10책(ㅎ) 449쪽

태화당 2019. 12. 29. 10:02

虎丘隆宋代楊岐派僧紹隆 居平江虎丘山雲巖禪寺 詳見紹隆

호구륭(虎丘隆) 송대 양기파승 소륭이 평강 호구산 운암선사에 거주했으니 상세한 것은 소륭(紹隆)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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虎口裏下子與虎口裏橫身同義 形容極險 請益錄第七十二則 正當恁麽時 還有識病底眼麽(虎口裏下子)

호구리하자(虎口裏下子) 호구리횡신과 같은 뜻. 극히 위험함을 형용. 청익록 제72. 바로 이러한 때를 당해서 도리어 병을 식별하는 눈이 있느냐 (虎口裏下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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虎口裏橫身比喩機鋒險惡 形容極險 碧巖錄第十五則 古人到這境界 全機大用 遇生與爾同生 遇死與爾同死 向虎口裏橫身 放得手脚 千里萬里 隨爾銜去 松源語錄上 第一句下薦得 佛祖乞命 第二句下薦得 天魔膽裂 第三句下薦得 虎口裏橫身

호구리횡신(虎口裏橫身) 기봉이 험악함에 비유. 극히 위험함을 형용. 벽암록 제15. 고인이 이 경계에 이르러 전기(全機)의 대용(大用)으로 생()을 만나면 그와 동생(同生)하고 사()를 만나면 그와 동사(同死)했다. 호구 속을 향해 몸을 가로놓고(向虎口裏橫身) 수각(手脚)을 놓아버리고(放得) 천 리 만 리에 그가 물고 가는 대로 따랐다. 송원어록상. 1구 아래 천득(薦得)하면 불조가 걸명(乞命)하고 제2구 아래 천득하면 천마(天魔)가 담렬(膽裂)하고 제3구 아래 천득하면 호구 속에 횡신한다(虎口裏橫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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虎丘寺位于江蘇省蘇州市虎丘山東 晉咸和二年(327) 司徒王珣 司空王珉舍宅爲寺 稱虎丘寺 分東西兩刹 唐代因避諱而改名武丘報恩寺 會昌法難時寺毁 後又移至山頂 合二寺爲一寺 宋至道(995-997)年間重建 改稱雲巖禪寺 從此禪風大盛 成爲禪僧的修行道場 楊岐派僧紹隆住此寺時 僧衆雲集 道聲顯揚 形成虎丘派 南宋紹興(113 1-1162)年間 雲巖寺規模宏偉 淸康熙(1662-1722)年間 賜額虎阜禪寺 虎丘寺從隋至淸末 曾七次遭毁劫

호구사(虎丘寺) 강소성 소주시 호구산 동쪽에 위치하며 진() 함화 2(327) 사도(司徒) 왕순과 사공(司空) 왕민이 집을 희사해 사원으로 만들고 호구사라 일컬었으며 동서 양찰(兩刹)로 나누었음. 당대(唐代) 피휘(避諱)함으로 인해 무구보은사(武丘報恩寺)로 개명했음. 회창 법난 시 사원이 훼멸되었고 후에 또 산정(山頂)으로 이지(移至)했고 2()를 합쳐 1()로 만들었음. 송 지도(995-997)년 간 중건하고 운암선사로 개칭했으며 이로 좇아 선풍(禪風)이 대성(大盛)했고 선승의 수행 도량을 이루었음. 양기파승 소륭(紹隆)이 사원에 주()했을 때 승중이 운집하고 도성(道聲)을 현양(顯揚)하여 호구파(虎丘派)를 형성했음. 남송 소흥(1131-1162)년 간 운암사의 규모가 굉위(宏偉)했음. 청 강희(1662-172 2)년 간 사액(賜額)하여 호부선사(虎阜禪寺)라 했음. 호구사는 수()로부터 청말에 이르기까지 일찍이 7차 훼겁(毁劫)을 만났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