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10책(ㅎ)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10책(ㅎ) 450쪽

태화당 2019. 12. 29. 10:03

糊口四方禪林疏語考證二 糊口四方 左隱十一年(712)鄭伯曰 寡人有弟名叔段 不能和恊 而使糊其口於四方 註 使叔段寄食於四方之國 謂段元年奔共 禪林疏語考證二 糊口四方置身千里

호구사방(糊口四方) 선림소어고증2. 호구사방(糊口四方) 좌전 은공(隱公) 11년 정백(鄭伯)이 가로되 과인에게 동생이 있는데 이름이 숙단(叔段)이다. 능히 화협(和恊)하지 못해 사방에 그 입을 풀칠()하게 했다. () 숙단으로 하여금 사방의 나라에 숙식을 기탁함이니 이르자면 숙단이 원년(元年)에 공()으로 달아났음. 선림소어고증2. 사방에 호구하면서(糊口四方) 천 리에 몸을 안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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虎丘山位於江蘇吳縣閶門外 又稱武丘山 虎邱山 海湧峰 春秋晩期吳王夫差葬父闔閭於此 相傳葬後三日 有白虎踞於墓上 故稱虎丘 一說是丘形如蹲虎 遂以外形而得名 至宋代 禪風大盛 遂成爲禪僧之修行道場 及至紹隆(1077-1136)來住 僧衆雲集 道聲顯揚 遂形成虎丘派

호구산(虎丘山) 강소 오현 창문(閶門) 밖에 위치함. 또 명칭이 무구산(武丘山)ㆍ호구산(虎邱山)ㆍ해용봉(海湧峰). 춘추 만기(晩期) 오왕 부차가 부친 합려를 여기에 안장했는데 상전(相傳)하기를 안장한 후 3일 만에 백호가 묘 위에 웅크리고 있었다 하여 고로 명칭이 호구며 일설엔 이는 구형(丘形)이 웅크린 범과 같아서 드디어 외형으로써 득명(得名)했다 함. 송대에 이르러 선풍이 대성(大盛)했고 드디어 선승의 수행 도량이 되었고 소륭(1077-1136)이 내주(來住)함에 이르러 승중이 운집하고 도성(道聲)이 현양(顯揚)하여 드디어 호구파를 형성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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虎丘紹隆禪師語錄一卷 又作虎丘隆和尙語錄 宋代臨濟宗僧虎丘紹隆撰 嗣端等編 明神宗萬曆二十年(1592)刊行 收於卍續藏第一二冊 輯錄和州開聖禪院語 宣州彰敎禪院語 平江府虎丘雲巖禪寺語 初祖贊 宋臨濟正傳虎丘隆和尙塔銘等

호구소륭선사어록(虎丘紹隆禪師語錄) 1. 또 호구륭화상어록으로 지으며 송대 임제종승 호구소륭이 찬()했고 사단 등이 편()했음. 명 신종 만력 20(1592) 간행했고 만속장 제120책에 수록되었음. 화주 개성선원어ㆍ선주 창교선원어ㆍ평강부 호구운암선사어ㆍ초조찬ㆍ송임제정전호구륭화상탑명 등을 집록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