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10책(ㅎ)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10책(ㅎ) 723쪽

태화당 2020. 1. 1. 09:12

灰身滅智 又作無餘灰斷 焚身灰智 略稱灰滅 灰斷 卽將肉身焚燒成灰 將心智滅除之意 亦卽將身心悉歸於空寂無爲之涅槃界 此乃小乘佛敎最終目的之無餘涅槃 [金光明經玄義上 維摩經玄疏五 天台四敎儀] 祖庭事苑六 涅槃 此云大圓寂 刊定準識論說 有四種涅槃 一自性淸淨涅槃 凡聖同有 二有餘依 卽出煩惱障 有苦依身故 三無餘依 身出生死 苦無依故 然小乘以灰身滅智爲無餘 無餘有三 一煩惱餘 二業餘 三果報餘 大乘則以究竟寶所爲無餘 故智論說 四住地煩惱盡 名有餘依 四無住處 悲智相兼 不住生死涅槃故 卽大乘之無餘 四種之中 無住處涅槃也 謂不住菩薩變易生死 不住二乘灰斷涅槃 卽眞無住 名爲無餘

회신멸지(灰身滅智) 또 무여회단(無餘灰斷)ㆍ분신회지(焚身灰智)로 지으며 약칭이 회멸(灰滅)ㆍ회단(灰斷)이니 곧 육신을 가지고 분소(焚燒)하여 재로 만들고 심지(心智)를 가지고 멸제(滅除)함의 뜻. 또한 곧 신심(身心)을 가지고 공적무위(空寂無爲)의 열반계로 모두 회귀함이니 이것은 곧 소승불교의 최종 목적의 무여열반(無餘涅槃)[금광명경현의상. 유마경현소5. 천태사교의]. 조정사원6. 열반 여기에선 이르되 대원적(大圓寂). 간정기(刊定記; 金剛經纂要刊定記)에서 유식론(唯識論)에 준거(準據)하여 설하기를 4종 열반이 있다. 1은 자성청정열반(自性淸淨涅槃)이니 범부와 성인이 동일하게 있다. 2는 유여의(有餘依)니 곧 번뇌장(煩惱障)을 벗어났으나 고()가 몸에 의지함이 있는 연고다. 3은 무여의(無餘依)니 몸이 생사를 벗어나 고()가 의지함이 없는 연고다. 그러나 소승(小乘)은 회신멸지(灰身滅智(몸을 재로 만들고 지혜를 없앰)로써 무여(無餘)를 삼으며 무여에 셋이 있다. 1은 번뇌여(煩惱餘)2는 업여(業餘)3은 과보여(果報餘). 대승(大乘)은 곧 구경(究竟)의 보소(寶所)로써 무여를 삼는다. 고로 지론(智論)에 설하되 사주지(四住地; 見一切住地欲愛住地色愛住地有愛住地)의 번뇌가 다함을 이름이 유여의(有餘依)(이 아래 刊定記五住地煩惱가 다함을 이름이 無餘依다 란 이 있음). 4는 무주처(無住處)니 비지(悲智)를 상겸(相兼)하여 생사와 열반에 머물지 않는 연고다. 곧 대승의 무여는 4종 가운데 무주처열반(無住處涅槃)이니 이르자면 보살의 변역생사(變易生死)에 머물지 않고 2()의 회단열반(灰斷涅槃)에 머물지 않으므로 곧 진실한 무주(無住)며 이름하여 무여(無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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懷深(1077-1132) 宋代雲門宗僧 壽春府(安徽)六安人 俗姓夏 字慈受 世稱慈受禪師 十四歲剃髮 崇寧(110 2-1106)初 謁長蘆崇信(雲門文偃下六世)於嘉禾(浙江嘉興)資聖寺 竝嗣其法 後崇信移住江蘇長蘆寺 命師爲首座 政和三年(1113) 應儀眞郡守之請 住資福寺 後朝廷改資福寺爲神霄宮 遂往蔣山 住於西庵 其後奉敕住於江蘇焦山 洛陽慧林寺 高宗紹興二年示寂 壽五十六 臘三十六 有慈受深和尙廣錄四卷行世 [嘉泰普燈錄九 五燈會元十六 續傳燈錄十八]

회심(懷深) (1077-1132) 송대 운문종승. 수춘부(안휘) 육안 사람이며 속성은 하며 자는 자수니 세칭이 자수선사(慈受禪師). 14세에 머리를 깎았고 숭녕(1102-1106) 초 장로숭신(長蘆崇信; 운문문언하 6)을 가화(절강 가흥) 자성사에서 참알하고 아울러 그의 법을 이었음. 후에 숭신이 강소 장로사(長蘆寺)로 이주하여 스님에게 명해 수좌가 되었음. 정화 3(1113) 의진군수(儀眞郡守)의 요청에 응해 자복사에 주()했고 후에 조정에서 자복사를 고쳐 신소궁(神霄宮)으로 만들자 드디어 장산(蔣山)으로 가서 서암에 거주했음. 그 후 봉칙(奉敕)하여 강소 초산ㆍ낙양 혜림사(慧林寺)에 주()했고 고종 소흥 2년 시적했음. 나이는 56, 납은 36. 자수심화상광록 4권이 있어 행세함 [가태보등록9. 오등회원16. 속전등록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