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喜雨亭記】 是北宋文學家蘇軾創作的一篇散文 文章從該亭命名的緣由寫起 記述建亭經過 表達人們久旱逢雨時的喜悅心情 [百度百科] ▲禪林疏語考證二 憂者樂病者愈 見子瞻喜雨亭記
희우정기(喜雨亭記) 이것은 북송 문학가 소식(蘇軾)이 창작한 1편의 산문이니 문장이 그 정자를 명명한 연유로부터 사기(寫起)하여 정자를 건립한 경과(經過)를 기술하면서 사람들이 오랜 가뭄에 비를 만났을 때의 희열(喜悅)의 심정을 표달(表達)했음 [백도백과]. ▲선림소어고증2. 우자(憂者)가 즐겁고 병자가 병이 낫는다. 자첨(子瞻)의 희우정기(喜雨亭記)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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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運】 (?-850) 唐代僧 福州閩縣人 姓氏不詳 幼出家於洪州黃檗山 聰慧利達 學通內外 人稱黃檗希運 相貌殊異 額肉隆起如珠 號爲肉珠 後遊京師 遇一姥指示 遂還洪州謁百丈懷海 得百丈所傳心印 後於黃檗山鼓吹直指單傳之心要 四方學子雲集而來 時河東節度使裴休鎭宛陵 建寺 迎請說法 以師酷愛舊山 故凡所住山 皆以黃檗稱之 大中四年示寂(入寂年度諸書不同 宗統編年十三作大中二年 佛祖統紀四十二作大中九年 佛祖歷代通載十六作大中三年等) 年壽不詳 諡號斷際禪師 門下有臨濟義玄 睦州道縱等十數人 裴休輯師之語錄二卷 黃檗斷際禪師宛陵錄 與黃檗山斷際禪師傳心法要 廣行於世 [傳燈錄九 傳法正宗記七 佛祖歷代通載二十三 釋氏稽古略三十]
희운(希運) (?-850) 당대승. 복주(福州) 민현(閩縣) 사람이며 성씨는 불상. 어릴 적에 홍주(洪州)의 황벽산(黃檗山)에서 출가했음. 총명한 지혜가 날카롭고 통달해 학문이 내외(內外. 內典과 外典)를 통했음. 사람들이 황벽희운(黃檗希運)이라 일컬음. 상모(相貌)가 특수히 다르고 이마의 근육이 융기(隆起)하여 구슬과 같았으며 호(號)하여 육주(肉珠)라 했음. 후에 경사(京師)에 노닐다가 한 할미의 지시를 만나 드디어 홍주(洪州)로 돌아가 백장회해(百丈懷海)를 알현(謁見)했고 백장이 전한 바의 심인(心印)을 얻었음. 뒤에 황벽산(黃檗山)에서 직지단전(直指單傳)의 심요(心要)를 고취(鼓吹)하자 사방의 학자가 운집하여 왔음. 때에 하동(河東)의 절도사(節度使) 배휴(裴休)가 완릉(宛陵)을 진수(鎭守)하면서 사원을 세워 영접해 설법을 청했음. 스님이 옛 산을 혹애(酷愛)한지라 고로 무릇 머무는 바의 산을 모두 황벽(黃檗)으로 일컬었으며 대중(大中) 4년에 시적했음(入寂年度가 여러 서책에 같지 못함. 종통편년13엔 대중 2년으로 지어졌고 불조통기42엔 대중 9년으로 지어졌고 불조역대통재16엔 대중 3년으로 지어지는 등). 나이는 상세치 못하고 시호는 단제선사(斷際禪師). 문하(門下)에 임제의현(臨濟義玄)ㆍ목주도종(睦州道縱) 등 열 몇 사람이 있음. 배휴가 스님의 어록 2권을 모았으니 황벽단제선사완릉록(黃檗斷際禪師宛陵錄)과 황벽산단제선사전심법요(黃檗山斷際禪師傳心法要)며 널리 세상에 행해짐 [전등록9. 전법정종기7. 불조역대통재23. 석씨계고략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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