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陶彭澤】 指陶潛 彭澤 今江西省九江彭澤 禪林寶訓音義 折腰 晉時陶潛 字淵明 號元亮 門栽五柳 自號五柳先生 爲彭澤令 性簡貴 不私事上官 一日遣督郵至縣 吏謂應束帶見之 淵明歎曰 吾豈能爲五斗米 折腰向鄕里小兒 卽日解綬去職 ▲無異元來語錄六 堪笑陶彭澤 無錢對菊花
도팽택(陶彭澤) 도잠을 가리킴. 팽택은 지금의 강서성 구강 팽택. 선림보훈음의 절요(折腰) 진시(晉時) 도잠은 자가 연명이며 호가 원량이다. 문 앞에 5류(柳)를 심고 스스로 호하기를 오류선생이라 했다. 팽택령이 되었는데 성품이 간귀(簡貴)하여 상관을 사사로이 모시지 않았다. 어느 날 독우(督郵)를 파견하여 현(縣)에 이르렀다. 관리가 이르기를 응당 속대(束帶)하고 그를 상견하라 했다. 연명이 탄식하며 가로되 내가 어찌 능히 다섯 말의 쌀 때문에 허리를 꺾어 향리의 소아를 향하겠는가. 즉일에 인수(印綬)를 풀고 관직을 떠났다. ▲무이원래어록6. 가히 우습구나 도팽택(陶彭澤)이, 돈이 없어 국화를 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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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平】 (?-1127) 宋代臨濟宗僧 仙都(廣東)人 俗姓許 號普融 參大潙慕喆(臨濟下八世) 徹悟得旨 後住東京智海等六座道場 四度受詔 靖康元年(112 6) 歸隱黃州(湖北)柏子山 建炎元年示寂 [普燈錄八 五燈會元十二]
도평(道平) (?-1127) 송대 임제종승. 선도(광동) 사람. 속성은 허며 호는 보융(普融). 대위모철(大潙慕喆; 임제하 8세)을 참하여 철저히 깨치고 지취를 얻었음. 후에 동경의 지해 등 6좌(座; 量詞)의 도량에 거주했고 네 차례 조칙을 받았음. 정강 원년(1126) 황주(호북) 백자산에 귀은(歸隱)했고 건염 원년 시적했음 [보등록8. 오등회원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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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品】 道法的品格品位 ▲傳燈錄三十荷澤大師顯宗記 是知卽定無定 卽慧無慧 卽行無行 性等虛空 體同法界 六度自茲圓滿 道品於是無虧
도품(道品) 도법의 품격과 품위. ▲전등록30 하택대사현종기. 이로 알지니 곧 정(定)이 정이 없고 곧 혜가 혜가 없고 곧 행이 행이 없어 자성이 허공과 제등하고 체가 법계와 동등하나니 6도(度)가 이로부터 원만하고 도품(道品)이 이에 이지러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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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風】 道之化人如風之靡草者 稱爲道風 △釋氏要覽中 寶林傳云 祖師難提至摩提國 一日 有風西來 占曰 此道風也 必有道人至 果得伽耶舍多至 ▲五燈會元三南泉普願 宣城廉使陸公亘 嚮師道風 遂與監軍同請下山 伸弟子之禮 大振玄綱
도풍(道風) 도가 사람을 교화함이 마치 바람이 풀을 쓰러지게 함과 같음을 일컬어 도풍이라 함. △석씨요람중. 보림전에 이르되 조사 난제가 마제국에 이르렀다. 어느 날 바람이 서쪽에서 불어옴이 있었다. 점치고 가로되 이것은 도풍(道風)이다. 반드시 도인의 이름(至)이 있으리라. 과연 가야사다의 이름을 얻었다. ▲오등회원3 남천보원. 선성의 염사 육공긍(陸公亘)이 스님의 도풍(道風)을 향(嚮)하였고 드디어 감군과 함께 하산을 청했고 제자의 예를 폈으며 현강(玄綱)을 크게 떨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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