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六日升座 世尊昔在摩竭陀國阿蘭若法菩提場中初成正覺 智入三世悉皆平等 其身充滿一切世間 其音普順十方國土 譬如虛空具含衆像 於諸境界無所分別 此是大開一口呑盡十方世界了也 又復歎曰 奇哉 我今普見一切衆生 具有如來智慧德相 但以妄想執著而不證得 此又將菩提場中所證所得底 盡情分付諸人了也 汝諸人現在菩提場中 人人頭戴虛空 箇箇脚踏實地 而不成正覺者何耶 妄想執著未除也 菩提大心未發也 迷則菩提爲妄想 悟則妄想爲菩提 梵語菩提 此翻曰覺 欲成正覺者須發菩提心 故經云 菩提心者猶如種子 能生一切諸佛法故 菩提心者猶如大地 能持一切諸世間故 菩提心者猶如淨水 能洗一切煩惱垢故 菩提心者猶如大風 普於世間無所礙故 菩提心者猶如大車 普能運載諸菩薩故 菩提心者猶如大道 普令得入大智城故 菩提心者猶如舍宅 安隱一切諸衆生故 菩提心者猶如園林 於中游戲受法樂故 菩提心者猶如慈父 訓導一切諸菩薩故 菩提心者猶如慈母 生長一切諸菩薩故 菩提心者猶如蓮華 不染一切世間法故 菩提心者猶如良藥 能治一切煩惱病故 菩提心者如如意珠 周給一切諸貧乏故 菩提心者如如意樹 能雨一切莊嚴具故 菩提心者如大施會 能滿一切衆生心故 菩提心者如佛支提 一切世間應供養故 善哉菩提心乃有如是之功德也 旣發菩提心 當脩菩薩行 行若不脩 心成虛發 豈不見善財童子每參知識 必曰我已先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而我未知云何學菩薩行脩菩薩道 我聞聖者善能誘誨 願爲我說 此乃善財發心脩行之樣子也 由是而知 雖有多聞若不脩行與不聞等 如人說食終不能飽 故經云 如人說美饍 自餓而不食 於法不脩行 多聞亦如是 如人善方藥 自疾不能救 於法不脩行 多聞亦如是 如人數他寶 自無半錢分 於法不脩行 多聞亦如是 如聾奏音樂 悅彼不自聞 於法不脩行 多聞亦如是 如盲繪衆像 示彼不自見 於法不脩行 多聞亦如是 譬如海船師 而於海中死 於法不脩行 多聞亦如是 惟我某人則不然 一生所發都是菩提心 一生所脩都是菩薩行 妄想執著念念遠離 智慧德相時時體究 其於當來世中 蒙佛授記 坐道場成正覺 決定少他一分不得 且道有何憑據 擲主丈下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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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일 승좌. 세존이 옛적에 마갈타국(摩竭陀國) 아란야법(阿蘭若法) 보리장(菩提場) 가운데서 처음으로 정각을 이루고 지혜가 3세(世)에 들어가 모두 다 평등했다. 그 몸이 일체 세간에 충만하고 그 음이 시방국토에 보순(普順)했다. 비유컨대 허공이 중상(衆像)을 모두 머금되 모든 경계에 분별하는 바가 없음과 같았다. 이것은 이, 한 입을 크게 벌려 시방세계를 탄진(呑盡)한 것이다. 또 다시 감탄하며 가로되 기재(奇哉)로다, 내가 이제 일체중생을 널리 보매 여래의 지혜덕상(智慧德相)을 갖추어 있으되 단지 망상집착 때문에(以) 증득하지 못하는구나. 이것은 또 보리장 가운데서 소증소득(所證所得)한 것을 가지고 진정(盡情)으로 제인에게 분부(分付)하였음이다. 너희 제인이 보리장 가운데 현재(現在)하면서 사람마다 머리는 허공을 이었고(戴) 개개(箇箇)가 실지(實地)를 각답(脚踏)했으되 정각을 이루지 못함은 왜인가 하면 망상집착을 제거하지 못했으며 보리대심(菩提大心)을 내지(發) 못해서이다. 미혹하면 곧 보리가 망상이 되고 깨달으면 곧 망상이 보리가 된다. 범어 보리(菩提)는 여기에선 번역해 가로되 각(覺)이다. 정각을 이루고자 하는 자는 모름지기 보리심을 발해야 한다. 고로 경에 이르되 보리심이란 것은 마치(猶) 종자(種子)와 같나니 능히 일체 모든 불법을 내는 연고며 보리심이란 것은 마치 대지와 같나니 능히 일체 모든 세간을 가지는(持) 연고며 보리심이란 것은 마치 정수(淨水)와 같나니 능히 일체 번뇌의 때(垢)를 씻는 연고며 보리심이란 마치 대풍과 같나니 널리 세간에서 거리끼는 바가 없는 연고며 보리심이란 것은 마치 대거(大車)와 같나니 널리 능히 모든 보살을 운재(運載)하는 연고며 보리심이란 것은 마치 대도(大道)와 같나니 널리 대지성(大智城)에 득입(得入)하게 하는 연고며 보리심이란 것은 마치 사택(舍宅)과 같나니 일체 모든 중생을 안은(安隱; 安穩. 隱은 穩과 용이 같음)하게 하는 연고며 보리심이란 것은 마치 원림(園林)과 같나니 이 가운데서 유희(游戲)하며 법락을 받는 연고며 보리심이란 것은 마치 자부(慈父)와 같나니 일체 모든 보살을 훈도(訓導)하는 연고며 보리심이란 것은 마치 자모(慈母)와 같나니 일체 모든 보살을 생장(生長)하는 연고며 보리심이란 것은 마치 연화와 같나니 일체 세간법에 물들지 않는 연고며 보리심이란 것은 마치 양약(良藥)과 같나니 능히 일체 번뇌병을 치료하는 연고며 보리심이란 것은 여의주와 같나니 일체 모든 빈핍(貧乏)을 주급(周給)하는 연고며 보리심이란 것은 여의수(如意樹)와 같나니 능히 일체 장엄구(莊嚴具)를 비 내리는 연고며 보리심이란 것은 대시회(大施會)와 같나니 능히 일체중생의 마음을 채우는 연고며 보리심이란 것은 불1지제(佛支提)와 같나니 일체 세간이 응당 공양하는 연고다. 선재로다 보리심이 곧 이와 같은 공덕을 가졌다. 이미 보리심을 발했으니 마땅히 보살행을 닦아야 하리라. 행(行)을 만약 닦지 않으며 마음이 허발(虛發)을 이룬다. 어찌 보지 못하는가, 선재동자가 매번 지식을 참알(參謁)하면서 반드시 가로되 내가 이미 먼저 2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을 발했거니와 내가 알지 못하나니, 어떻게(云何) 보살행을 배우며 보살도를 닦아야 하는가. 내가 듣기로 성자(聖者)가 잘 능히 유회(誘誨)하신다 하니 원컨대 나를 위해 설하십시오. 이것이 곧 선재가 발심하고 수행하는 양자(樣子)이다. 이로 말미암아 아나니 비록 다문(多聞)이 있더라도 만약 수행하지 않으면 불문(不聞)과 제등(齊等)하다. 마치 사람이 설식(說食)하여도 마침내 능히 배부르지 않음과 같다. 고로 경에 이르되 마치 사람이 미선(美饍)을 설하고/ 스스로 주리면서 먹지 않음과 같이/ 법을 수행하지 않으면/ 다문도 또한 이와 같다. 마치 사람이 방약(方藥)을 잘하지만/ 자기의 질병은 능히 구호하지 못함과 같이/ 법을 수행하지 않으면/ 다문도 또한 이와 같다. 마치 사람이 남의 보배를 세매/ 자기는 반전(半錢)의 몫(分)도 없음과 같이/ 법을 수행하지 않으면/ 다문도 또한 이와 같다. 마치 귀머거리가 음악을 연주하면/ 남을 기쁘게 하되 스스로는 듣지 못함과 같이/ 법을 수행하지 않으면/ 다문도 또한 이와 같다. 마치 소경이 중상(衆像)을 그리면(繪)/ 그에게 보이지만 스스로는 보지 못함과 같이/ 법을 수행하지 않으면/ 다문도 또한 이와 같다. 비유컨대 바다의 선사(船師)가/ 해중(海中)에서 죽음과 같이/ 법을 수행하지 않으면/ 다문도 또한 이와 같다. 오직 우리의 모인(某人)은 곧 그렇지 않아서 일생에 발한 바가 모두 이 보리심이며 일생에 닦은 바가 모두 이 보살행이라, 망상집착을 염념(念念)이 멀리 여의고 지혜덕상(智慧德相)을 시시(時時)로 체구(體究)했다. 그가 당래세 가운데에 불타의 수기(授記)를 입고 도량에 앉아 정각을 이루면서 결정코 저 1분(分)을 적게 함도 얻지 못하리라. 그래 말하라, 무슨 빙거(憑據)가 있는가, 주장자를 던지고 하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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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제(支提); <梵> caitya. 또 지제(支帝)ㆍ지제(脂帝)ㆍ지징(支徵)ㆍ제다(制多)ㆍ제지(制底)ㆍ제지야(制底耶) 등으로 지음. 적집(積集)의 뜻이며 또 취상(聚相)으로 번역함. 석존을 다비할 때 일찍이 향시(香柴)를 적집하여 대적(大積)을 이루었으니 이것이 지제(支提) 1명(名)의 기인(起因)이 됨. 그 후 불타의 영적(靈蹟) 등에 전토(甎土)를 퇴적(堆積)하여 그것을 영조(營造)했음. 또 이르기를 세존은 무량한 복덕이 여기에 적집한지라 고로 무릇 탑묘ㆍ영묘(靈廟)ㆍ묘(廟)ㆍ방분(方墳) 등을 들어 모두 일컬어 지제라 했음. 이 밖에 석굴을 천착(穿鑿)한 특수한 구조도 또한 일컬어 지제라 함.
-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梵> anuttarā-samyak -saṃbodhi. 약칭이 아뇩삼보리(阿耨三菩提; 耨은 奴豆切 또 內沃切)ㆍ아뇩보리니 여기에선 이르되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ㆍ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ㆍ무상정편지(無上正遍知)임. 아뇩다라는 무상(無上)으로 번역하고 삼먁삼보리는 정편지(正遍知)로 번역하나니 곧 불타가 각오(覺悟)한 바의 지혜임. 평등원만(平等圓滿)의 뜻을 함유(含有)했음. △유마경 불국품 조주(肇註). 아뇩다라는 진(秦)나라 말로 무상(無上)이며 삼먁삼보리는 진나라 말로 정편지(正遍知)다. 도(道)가 막대(莫大)하게 큰 것이 무상(無上)이며 그 도가 진정(眞正)하며 알지 못할 법이 없음이 정편지(正遍知)다. △법화경현찬2(法華經玄贊二). 아(阿)는 이르되 무(無)며 뇩다라(耨多羅)는 이르되 상(上)이며 삼(三)은 이르되 정(正)이며 먁(藐)은 이르되 등(等)이며 또 삼(三)은 이르되 정(正)이며 보리(菩提)는 이르되 각(覺)이니 곧 이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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