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여유칙어록2

천여유칙선사어록2(天如惟則禪師語錄二) 제7일

태화당 2020. 2. 7. 11:14
    1.  

第七日 滿散華嚴會升座 僧問 一法若有毗盧墯在凡夫 萬法若無普賢失其境界 畢竟如何和會 師云 你在那裏見他?鬪來 進云 爭奈前話何 師便喝 僧云 某甲到者裏有耳如聾 有眼如盲 師云 更要和會箇甚麼 僧良久云 某甲會也 師云 你作麼生會 僧云 性空卽是佛 不可得思量 師又喝云 三十年後思量者一喝在 乃云 遮那淨法身 藏在一毛孔裏 普賢行願海 散在百草頭邊 雖在一毛孔 分明拄地撑天 雖在百草頭 畢竟掃蹤滅跡 低聲低聲 遮那與普賢來也 諸人要見一毛孔麼 卓主丈云 橫亘十方竪窮三際 諸人要見百草頭麼 擊拂子云 石火電光不容眨眼 有時一毛孔重重呑却百草頭 有時百草頭各各現出諸毛孔 有時一毛孔卽是百草頭 有時百草頭卽是一毛孔 直得遮那普賢輥作一片 使無邊開士大地衆生討頭不著 挨身不入 用力不到 劄脚不牢 旣無定體亦無定名 有時喚作一眞法界 有時喚作大光明藏 有時喚作法菩提場 有時喚作妙莊嚴域 有時喚作六相義 有時喚作十玄門 有時喚作一心三觀 有時喚作直指單傳 有時喚作故家田地 有時喚作向上牢關 或號金剛圈 或名銕酸餡 或稱暗號子 或曰本來人 乃至用之爲棒 變之爲喝 放去收來千差萬別 及乎盡底掀翻從頭勘破 元來只是一箇自己 這箇自己在天同天 在地同地 在人同人 在物同物 於自己分上或說本具 或說本空 或說悟迷 或說脩證 引起許多閑絡索 春色無高下 花枝自短長 只如徐氏了心居士宿有資熏 不肯昧却自己 所以一出母胎便自靈利 雖現女人身 同行世間事 其不昧者終自了然 指廩捐金不待勸而行矣 誦經解義豈待敎而通乎 又能痛念死生大事 力參無字話頭 日用工夫心心不間 自己面目念念究明 壽至五十八年 臨終端坐而逝 旣有賢夫賢子爲之廣作佛事 又有孝女孝婿爲之翻閱大經 向普賢行願海中滿注八功德水 就遮那淨法身上莊嚴萬行因華 居士自己一著可謂美矣善矣 如今滿世間人皆不知有自己一著 以其不知故不肯信 以其不信故不能行 只在富貴功名中酒色財氣上乾弄一生 有何成就 去死日不遠 猶自不回頭 豈不哀哉痛哉 又有一等雖信自己 雖曰參禪學道 而用心不切不能勇猛精進 也要口頭胡說亂道 臘月三十日到來 十箇有五雙虛生浪死 其視居士得無媿於心乎 山僧六七日間 將一把龜毛拂子 攪翻華藏海 曲順孝家之情 做箇座主模樣 牽經引敎忉忉怛怛 要與居士發揚自己一著 而今看來發揚也發揚不著 贊歎也贊歎不及 徒爾閑言長語 弄成滿地葛藤 且請主丈子出來自家收拾去也 以主丈畫一畫 記得善財童子參徧南方五十三員善知識 末後遇普賢菩薩敎發十種願王 引導往生樂土 喚作一生參學事畢 大小善財參方無眼目 走得脚生瘡 帶累後來人長年在途路 爭似徐氏了心不出門庭徧參知識 不離華藏海親見安樂邦 不待往生何煩引導 敢保善財童子羨慕不及也 諸人還會麼 娑婆安養路無差 了得心源共一家 坐看重重香水海 紫金光照白蓮花

 

71)만산화엄회(滿散華嚴會) 승좌. 중이 묻되 1법이 만약 있으면 비로(毗盧)가 범부에 떨어져 있고 만법이 만약 없으면 보현이 그의 경계를 잃는다 했습니다, 필경 어떻게 화회(和會)해야 합니까. 스님이 이르되 네가 나리(那裏)에 있으면서 그것을 보고 시투(?鬪)하여 오는가. 2)진운(進云) 전화(前話)를 어찌하겠습니까. 스님이 곧 할()했다. 중이 이르되 모갑(某甲)이 이 속에 이르러선 귀가 있어도 귀머거리와 같고 눈이 있어도 소경과 같습니다. 스님이 이르되 다시 화회(和會)를 요구하는 게 무엇인가. 중이 3)양구(良久)하고 이로되 모갑이 이회(理會; 理解와 같은 뜻)했습니다. 스님이 이르되 네가 어떻게 이회하는가. 중이 이르되 성품(性品; )이 공한 게 곧 이 불()인지라 사량을 불가득입니다. 스님이 또 할하고 이르되 30년 후에 이 1할을 사량할 것이다. 이에 이르되 자나(遮那)의 청정한 법신이 1모공(毛孔) 속에 감춰져 있고 보현의 행원(行願)의 바다가 백초두변(百草頭邊; 는 조사)에 흩어져 있다. 비록 1모공에 있지만 분명히 주지탱천(拄地撑天)하고 비록 백초두에 있지만 필경 소종멸적(掃蹤滅跡)이다. 소리를 낮추고 소리를 낮추거라, 자나(遮那)와 보현이 오셨다. 제인이 1모공을 보고자 하느냐, 주장자를 치고 이르되 시방에 횡긍(橫亘)하고 3()에 수궁(竪窮)했다. 제인이 백초두를 보고자 하느냐, 불자를 치고 이르되 석화전광이라 잡안(眨眼; 눈을 깜작임)을 용납하지 않는다. 어떤 때의 1모공은 중중(重重)히 백초두를 삼켜버리고 어떤 때의 백초두는 각각 모든 모공을 현출(現出)한다. 어떤 때는 1모공이 곧 이 백초두며 어떤 때는 백초두가 곧 이 1모공이다. 바로 자나와 보현을 굴려 한 조각을 만듦을 얻어 무변한 4)개사(開士)와 대지의 중생으로 하여금 머리를 찾지 못하게 하고 애신(挨身)하여도 들지 못하고 용력(用力)하여도 이르지 못하고 차각(劄脚; 著脚)하여도 견뢰(堅牢)하지 못하다. 이미 정체(定體)가 없고 또한 정명(定名)이 없다. 어떤 때는 1진법계(一眞法界)로 불러 짓고 어떤 때는 대광명장(大光明藏)으로 불러 짓고 어떤 때는 법보리장(法菩提場)으로 불러 짓고 어떤 때는 묘장엄역(妙莊嚴域)으로 불러 짓고 어떤 때는 6상의(六相義)로 불러 짓고 어떤 때는 10현문(十玄門)으로 불러 짓고 어떤 때는 5)일심삼관(一心三觀)으로 불러 짓고 어떤 때는 직지단전(直指單傳)으로 불러 짓고 어떤 때는 고가전지(故家田地)로 불러 짓고 어떤 때는 향상뇌관(向上牢關)으로 불러짓는다. 혹은 호가 금강권(金剛圈)이며 혹은 이름이 6)철산함(銕酸餡)이며 혹은 명칭이 암호자(暗號子; 는 조사)며 혹은 가로되 7)본래인이다. 내지 이를 쓰매 방()이 되고 이를 변화하면 할()이 된다. 방거수래(放去收來)하매 천차만별이지만 바닥까지(盡底) 흔번(掀翻)하여 머리로 좇아 감파(勘破)함에 이르러선 원래 다만 이 1개의 자기다. 저개(這箇; 이것)의 자기는 하늘에 있으면 하늘과 같고 땅에 있으면 땅과 같고 사람에 있으면 사람과 같고 물건에 있으면 물건과 같다. 자기 분상(分上)에서 혹은 본구(本具)를 설하고 혹은 본공(本空)을 설하고 혹은 오미(悟迷)를 설하고 혹은 수증(脩證)을 설하면서 허다한 쓸데없는 8)낙삭(絡索)을 인기(引起)한다. 춘색은 고하가 없지만 화지(花枝)가 스스로 짧거나 길다. 지여(只如) 서씨 요심거사(了心居士)는 본디(宿) 자훈(資熏)이 있어 자기를 매각(昧却)함을 긍정하지 않은지라 소이로 모태에서 한 번 나오자 곧 스스로 영리(靈利)했다. 비록 여인의 몸을 나타내어 세간사를 동행(同行)했지만 그 불매(不昧)한 것은 마침내 스스로 요연(了然)했다. 9)지름연금(指廩捐金)하면서 권함을 기다리지 않고도 행했고 송경해의(誦經解義)하면서 어찌 가르침을 기다리고서야 통했겠는가. 또 능히 사생대사(死生大事)를 통념(痛念)하고 무자화두를 역참(力參)했다. 일용의 공부는 심심(心心)이 불간(不間)하고 자기의 면목은 염념(念念)이 구명(究明)하면서 나이 58년에 이르러 임종에 단좌(端坐)하여 떠났다. 이미 현부현자(賢夫賢子)가 있어 그를 위해 널리 불사를 짓고 또 효녀효서(孝女孝婿)가 있어 그를 위해 대경(大經)을 번열(翻閱)하였으니 보현행원해(普賢行願海)를 향해 10)8공덕수(八功德水)를 만주(滿注)했고 자나정법신상(遮那淨法身上)으로 나아가 만행인화(萬行因華)를 장엄했다. 거사 자기의 1(一著)은 가위(可謂) 미의선의(美矣善矣)나 여금 세간에 가득한 사람들은 모두 자기 1착이 있는 줄 알지 못하니 그 알지 못하는 고로 믿음을 긍정하지 않으며 그 믿지 않는 고로 능히 행하지 못한다. 다만 부귀공명 가운데와 주색재기상(酒色財氣上)에 있으면서 일생을 건롱(乾弄; 헛되이 희롱)하니 무슨 성취가 있겠는가. 죽음으로 가는 날이 멀지 않거늘 오히려 스스로 머리를 돌리지 않으니 어찌 애재통재(哀哉痛哉)가 아니겠는가. 또 일등(一等; 一樣)이 있어 비록 자기를 믿고 비록 가로되 참선학도한다지만 용심이 간절하지 못하고 능히 용맹정진하지 못하고 또한 구두(口頭)의 호설난도(胡說亂道; 의 뜻)를 요하니 납월삼십일(臘月三十日; 死期)이 도래하면 10개애 5쌍이 11)허생낭사(虛生浪死)함이 있다. 그가 거사를 보매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음을 얻겠는가. 산승이 6, 7일 간 한 자루의 귀모불자(龜毛拂子)를 가지고 화장해(華藏海)를 교번(攪翻)하며 효가(孝家)의 정에 곡순(曲順)하면서 좌주(座主)의 모양을 짓고 견경인교(牽經引敎)하면서 도도달달(忉忉怛怛; 말이 많음)하였음은 거사에게 자기 1착을 발양(發揚)하여 주려고 하였음이다. 이금(而今)에 보아오매 발양도 발양을 붙이지 못했고 찬탄도 찬탄이 미치지 못하고서 도이(徒爾; 徒然)히 한언장어(閑言長語)로 땅에 가득한 갈등을 농성(弄成)했다. 주장자에게 차청(且請)하나니 나와서 자가(自家)가 수습하여 가게 하리라. 주장자로 그어서 한 번 그었다. 기득(記得)컨대 선재동자가 남방 53() 선지식을 참편(參徧)하고 말후에 보현보살을 만나매 12)10종 원왕(願王)을 발하게 하여 낙토(樂土)로 인도(引導)하여 왕생(往生)하게 했으니 일생참학사(一生參學事)를 마쳤다고 불러 짓는다. 13)대소(大小) 선재가 참방(參方)하면서 안목이 없고 달려 발에 종기가 생김을 얻고 후래인에게 누를 끼쳐 오랜 해에 도로에 있게 했다. 어찌 서씨 요심(了心)이 문정(門庭)을 나서지 않고도 지식을 편참(徧參)하고 화장해를 여의지 않고도 안락방(安樂邦)을 친견함만 같으랴. 왕생을 기다리지 않거늘 어찌 번거롭게 인도(引導)하리오. 감히 보증하노니 선재동자가 선모(羨慕)하여도 미치지 못하리라. 제인은 도리어 아느냐, 사바와 14)안양(安養)의 길이 차이 없으니/ 심원(心源)을 요득(了得)하면 한가지로 일가(一家)로다/ 중중한 향수해를 좌간(坐看)하니/ 자금광(紫金光)이 백련화를 비추도다.

 


  1. 만산(滿散); 날짜를 기약하여 법사(法事)를 거행하고 법사가 종료됨을 일컬어 만산이라 함. 사만중산(事滿衆散)의 뜻임. 또 그, 산장(散場)에 임해 풍송함을 일컬어 만산(滿散), 또 가로되 산경(散經)임[象器箋十三].

  2. 진운(進云); 진(進)은 봉헌. 송상(送上). 진운(進云)이란 것은 선가문답의 기록용어니 문화자(問話者)가 계속 선사를 향해 제문(提問)함을 표시함.

  3. 양구(良久); 묵연. 침묵. 원래의 뜻은 허구(許久; 매우 오래)한 시간이 되지만 선림 중에선 전(轉)하여 무언무어(無言無語)의 상태를 가리킴.

  4. 개사(開士); 범어 보리살타(菩提薩埵)의 번역어. 또 천사(闡士)로 지음. 개(開)란 것은 명달(明達)의 뜻이니 정도를 열어 중생을 인도하는 자를 가리킴. 경중에서 다분히 보살을 호칭하여 개사라 함. △릉엄경집주5. 훈문(熏聞; 훈문기)에 이르되 옛적에 보살을 번역해 개사(開士)라 하였다. 개사는 시사(始士)니 개(開)는 이르자면 마음이 처음 열린 연고며 시(始)는 이르자면 비로소 발심한 연고이다. △조정사원3. 개사(開士) 응(應; 玄應)법사가 이르되 범어로 보살은 여기 말로는 개사니 이르자면 법으로써 개도하는 사내다. 전진(前秦)의 부견(符堅)이 사문에 덕해(德解)가 있는 자에게 주면서 이름해 가로되 개사라 했다.

  5. 일심삼관(一心三觀); 인천안목5. 대사(천태지자를 가리킴)가 장중(藏中)에서 용수가 지은 바 중론을 얻었는데 열람하다가 제4권에 이르자 설파하기를 모든 법성에 정성(定性)이 있다면 인과 등의 일이 없다 했음. 예컨대(如) 송왈 인연으로 난 바의 법은/ 내가 설하기를 곧 이 공(空)이다/ 또한 이름해 가명(假名)이며/ 또한 이름이 중도(中道)의 뜻이다. 다음 송에 이르되 1법이라도/ 인연으로부터 나지 아니함이 일찍이 있지 않나니/ 이런 고로 일체법은/ 이 공(空)이 아닌 게 없다. 이로 말미암아 1심3관(一心三觀)을 서술했으니 왈공왈가왈중(曰空曰假曰中)이다. 만약 교의(敎意)에 의거하면 대범(大凡) 1게지만 모두 4구가 있어 그 뜻을 이루었다. 지자가 3관(觀)을 원리(遠離)하면 지만(枝蔓)과 같고 또 전수(傳授)가 미상(未詳)인지라 이로 인해 곧 말하기를 멀리로는 용수에게서 품수(稟受)하여 용수를 시조로 삼고 가까이로는 사대(思大)에게서 품수했다 했으니 곧 가히 알 것이다(大師(指天台智者) 於藏中得龍樹所造中論 覽至第四卷 破諸法性有定性則無因果等事 如頌曰 因緣所生法 我說卽是空 亦名爲假名 亦名中道義 次頌云 未曾有一法 不從因緣生 是故一切法 無不是空者 繇此述一心三觀 曰空曰假曰中 若據敎意 大凡一偈 皆有四句以成其意耳 智者離爲三觀似枝蔓 又未詳傳授 因此便言 遠稟龍樹 以樹爲祖 近稟思大 則可知矣).

  6. 철산함(銕酸餡); 면병(麵餠)이니 만두(饅頭) 중 또 단단하고 신 함자(餡子; 떡소)임(씹어서 소화하기 어려움). 언구와 의리를 초월하여 극히 참구하기 어려운 공안의 기어(機語)에 비유함.

  7. 본래인(本來人); 본래신(本來身)ㆍ본래면목과 같은 뜻. 우리 사람의 본래 청정한 자성을 가리킴.

  8. 낙삭(絡索); 락(絡)은 전사(纏絲; 얽어매는 실)며 삭(索)은 승삭(繩索; 노끈)이니 곧 승삭(繩索)임. 혹 어언이 규갈(糾葛; 糾紛)하여 맑지 못함의 뜻.

  9. 지름연금(指廩捐金); 곳집을 가리키며 금을 내놓음이니 사람을 부리는 모양.

  10. 8공덕수(八功德水); 조정사원6. 8공덕수(功德水) 칭찬정토경(稱讚淨土經; 稱讚淨土佛攝受經)에 이르되 8덕이란 것은 경(輕)ㆍ청(淸)ㆍ냉(冷)ㆍ연(軟)ㆍ미(美; 맛날 미)ㆍ냄새 나지 않음ㆍ마실 때 조적(調適; 고르게 快適함)함ㆍ마신 다음 병환이 없음이다(칭찬정토불섭수경에 이르되 무엇 등을 이름해 8공덕수인가. 1자는 澄淨이며 2자는 淸冷이며 3자는 甘美며 4자는 輕軟이며 5자는 潤澤이며 6자는 安和며 7자는 마실 때 飢渴 등 無量過患을 제거함이며 8자는 마신 다음 꼭 능히 諸根의 四大를 長養하며 갖가지 殊勝한 善根을 增益함이다).

  11. 허생낭사(虛生浪死); 인생을 헛되이 보내다가 호도(糊塗; 흐리터분함)하며 죽음. 랑(浪)은 공(空)한 것, 무용(無用)한 것.

  12. 10종 원왕(願王); 1자(者)는 제불에게 예경함이며 2자는 여래를 칭찬함이며 3자는 공양을 널리 닦음이며 4자는 업장을 참회함이며 5자는 공덕에 수희함이며 6자는 법륜 굴리기를 청함이며 7자는 불타의 주세(住世)를 청함이며 8자는 불학을 늘 수순(隨順)함이며 9자는 중생을 늘 따름이며 10자는 널리 다 회향함이다(一者 禮敬諸佛 二者 稱讚如來 三者 廣修供養 四者 懺悔業障 五者 隨喜功德 六者 請轉法輪 七者 請佛住世 八者 常隨佛學 九者 恒順衆生 十者 普皆迴向)[40화엄 제40권 入不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

  13. 대소(大小); ①대와 소. △고존숙어록34 용문불안. 묻되 허공이 도리어 변이(變異)함이 있는가 또는 없는가. 대운(代云)하되 청황적백이며 장단대소(長短大小)다. ②대소대(大小大)니 곧 야대(偌大. 저렇게 큰). 저마대(這麽大; 이렇게 큰). 나마대(那麽大; 저렇게 큰). △벽암록 불이초2(不二鈔二). 릉가(楞伽; 竺仙)가 이르되 북방인이 사람의 장단을 의논하려 하면 말의 처음에 먼저 대소(大小) 2자를 말한다. 아래에 반드시 기과(譏誇; 나무람과 자랑)의 말이 있다. 혹 말하기를 대소대(大小大)의 사람이라 하면 뜻에 이르기를 너는 이 대대(大大)한 사람이거늘 도리어 이러한 쇄세소소(瑣細小小; 자질구레하고 아주 작음)한, 기량이 없는 일을 짓는가 함이다. △벽암록 제1칙 종전초(種電鈔). 대소(大小)란 것은 북방에서 사람을 욕하는 기두(起頭)의 말이다. 현성(現成)하여 명료하면서 초절(勦絶)의 기(機)가 없음을 억제하여 보임이다. △원오어록11(圓悟語錄十一). 대소(大小) 세존이 용두사미다. △선문염송집 제14칙. 운봉열(雲峰悅)이 염(拈)하되 대소(大小) 구담(瞿曇)이 외도에게 감파를 입었다. 곁에서 불긍하는 자가 있느냐. 나온다면 내가 너에게 묻고자 한다. 어떤 것이 이 저 1통(通)인가. ③구말에 두어서 의문을 표시함. 다(多)ㆍ대(大)에 상당함. △오등회원7 현사사비(玄沙師備). 묻되 무엇이 이 무봉탑(無縫塔)입니까. 스님이 가로되 이 1봉(縫)은 대소(大小)아(큰가). △오등회원8 초경성등(招慶省僜). 중에게 묻되 최근에 어느 곳을 떠났는가. 가로되 보은입니다. 스님이 가로되 승당은 대소(大小)아(큰가). 가로되 화상이 시험삼아 말해 보십시오.

  14. 안양(安養); 안양국(安養國)이니 서방극락세계의 이명(異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