起信論海東疏刊行序
底本 卍新續藏 第 45 冊
釋於大乘起信論之疏 振古凡有三品 曰法藏 曰慧遠 曰元曉 世謂之本論三師 就中先二疏行于世年已尙矣 是機緣方熟也 今斯疏唯䎹有其本 更不閱之者 歲亦深焉 惟時宜未合也 所謂僧傳 淸涼觀公於淮南法藏 受海東起信疏義云 個書高出于諸師上者 以應知也 我之論章中往往引用 而未見其全釋 所以慵硏覈其釋之始末 因茲同門負袟者 各不能無遺憾矣 近來印氏某語余言 或人貺這錦本 乃許於刻梓而流行 願垂考點 其言至切 余復想遇時根適至 喜此疏入手 而點頭肎受 便捧讀訂校 雖然天稟駑駘 不獲罄力 奚敢覃思 俯祈達人幸爲政諸
元祿九龍飛丙子之秋日 洛東智積門下覺眼謹誌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을 해석한 소(疏)는 진고(振古; 遠古, 往昔)에 무릇 3품(品)이 있었으니 왈(曰) 법장(法藏)이며 왈 혜원(慧遠)이며 왈 원효(元曉)니 세간에서 이를 일러 본론(本論; 기신론)의 3사(師)라 한다. 취중(就中)에 앞 2소(疏)는 세간에 유행한 해가 이미 오래되었음은(尙; 古. 久遠) 이는 기연(機緣)이 바야흐로 익었음이다. 여금에 이 소(疏)는 오직 그 본(本; 책. 板本)이 있다 함을 들었고(䎹; 들을 문) 다시 그것을 열독(閱讀)하지 못한 것은 세월이 또한 깊지만 오직 시의(時宜)가 적합하지 않아서이다. 이른 바 승전(僧傳)에 청량관공(淸涼觀公)이 회남(淮南; 淮水 以南)의 법장(法藏)에게서 해동기신소(海東起信疏)의 뜻을 영수(領受; 受)하고는 이르되 이(個) 서책은 여러 스님의 위로 고출(高出)한 것임을 응당 알지니 나의 논장(論章) 중에서 왕왕 인용하지만 그 전석(全釋)을 보지 못했다 했다. 소이로 그 해석의 시말을 연핵(硏覈)함에 게을렀고 이로 인해 동문(同門)에서 부질(負袟))한 자가 각자 능하지 못함은 유감(遺憾)이 없다 하겠다. 근래에 인씨(印氏) 모(某)가 나에게 이야기하며 말하되 어떤 사람(或人)이 이 금본(錦本; 진기한 책)을 주면서 이에 각재(刻梓)하여 유행(流行)함을 허락한다 했으니 원컨대 고점(考點; 考試)을 내리십시오(垂). 그 말이 지극히 간절한지라 내가 다시 상념하기를 시근(時根; 시절의 뿌리)이 적지(適至)함을 만났구나. 기쁘게 이 소(疏)를 입수하고 점두(點頭; 머리를 끄덕이다)하며 긍수(肎受; 肎은 肯과 같음)하고는 바로 봉독(捧讀)하면서 정교(訂校)했다. 비록 그러하나 천품(天稟)이 노태(駑駘)라 경력(罄力; 힘을 다하다)을 얻지 못하거늘 어찌 감히 깊이(覃) 사유하겠는가. 달인(達人)에게 부기(俯祈; 고개 숙이며 기원하다)하나니 바르게(政) 하기를 바란다(幸) (諸는 어조사).
원록(元祿; 일본 연호니 1688-1703) 구룡비(九龍飛; 원록 9년을 가리킴) 병자(丙子; 1696) 추일(秋日)에 낙동(洛東) 지적문하(智積門下)의 각안(覺眼)이 삼가 기록한다(誌).
●海東; 발해(渤海)의 동쪽. 또 지금의 한국의 고시(古時)의 별칭.
●序; 선림보훈음의(禪林寶訓音義) 서(序)는 편수(篇首)니 문(門)의 상서(庠序; 庠은 詳과 통함. 곧 安詳)와 같다. △원각소초수문요해1(圓覺疏鈔隨文要解一). 또 서(序)란 것은 상서(庠序)다. 이아(爾雅)에 이르되 동서(東西)의 담장을 가로되 서(序)라 했다. 택사(宅舍)의 천심(淺深)을 알고자 한다면 먼저 상서(庠序)를 보고 그 사람을 알고자 한다면 먼저 그 이마와 눈(額目)을 보고 작자의 뜻을 알고자 한다면 먼저 그 서(序)를 보라.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1권. 또 명칭이 기신론임. 마명보살이 지었고 남조(南朝) 양대(梁代)의 진제(眞諦; 499-569)가 번역했음. 대정장(大正藏) 제32책에 수록되었음. 본서는 여래장(如來藏)의 연기(緣起)의 뜻 및 보살ㆍ범부 등의 발심과 수행의 모양을 천명(闡明)했음. 전서는 모두 5편(篇)으로 나뉘어졌음. 제1 인연분(因緣分)은 본론을 조립(造立)한 인연을 서술했으니 이는 서분(序分)이 됨. 제2 입의분(立義分)ㆍ제3 해석분(解釋分)ㆍ제4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 이 3분은 본론의 정종분(正宗分)이 됨. 입의와 해석 2분은 일심(一心)ㆍ이문(二門)ㆍ삼대(三大)의 이론을 천명했음. 수행신심분은 곧 사신(四信)ㆍ오행(五行)의 실천법문을 설명했음. 이른 바 일심이란 곧 중생심이 되며 또한 여래장(진여)심이 됨. 이른 바 2문이란 곧 심진여문(心眞如門)과 심생멸문(心生滅門)을 가리킴. 제5 권수이익분(勸修利益分)은 본론을 수지(受持)하는 자는 가히 광대한 이익을 얻음을 거시(擧示)하였으며 이것이 본론의 유통분(流通分)이 됨. 본론은 진제의 역본(譯本) 외에 따로 당조(唐朝)의 실차난타가 중역(重譯)한 2권본(二卷本)이 있음. 양종(兩種)의 역본이 대동소이하지만 그러나 진제의 역본이 유행함이 조금 광대함. ○대승(大乘) 불교를 대승과 소승 양대종파(兩大宗派)로 나눔. 대승불교는 공원(公元. 서기) 1세기 좌우로 인도에서 형성했음. 대자비심을 내어 널리 중생을 제도하고 대중을 위해 복무하며 성불제세(成佛濟世)를 추구하고 불국정토를 건립하기를 제창했음. 그 주요경전에 반야경ㆍ유마경ㆍ법화경ㆍ화엄경 등이 있으며 북으로 향해 유전(流傳)하여 중국ㆍ조선ㆍ일본 등의 나라에 이른지라 고로 또 명칭이 북전불교(北傳佛敎)임.
●소(疏); 소(疏)는 경론의 주석서의 통칭. 대개 불경은 의리(義理)가 유심(幽深)하여 만약 소결(疏決; 막힌 것을 통하게 터놓음)하여 개통하지 않으면 곧 쉽게 계오(啓悟)하지 못하는지라 고로 모름지기 글에 의해 뜻을 해석하여 문의(文義)를 소통함을 일컬어 가로되 소(疏)라 함. 또 소문(疏文)을 주해한 것을 일컬어 초(鈔)라 함. 초(鈔)는 초략(抄略)의 뜻이니 본소(本疏)를 수순(隨順)하여 간략히 해석을 가하여 경소(經疏)의 묘한 뜻을 요연(了然)히 쉽게 알게 함임. △연등회요29(聯燈會要二十九). 옛적에 어떤 노숙(老宿)이 한 좌주(座主)에게 묻되 소초(疏鈔)를 해의(解義; 뜻을 해석)하면 광략(廣略)이 어떠한가. 좌주가 이르되 초(鈔)는 소(疏)를 해석하고 소(疏)는 경을 해석합니다. 노숙이 이르되 경은 무엇을 해석하는가. 좌주가 대답이 없었다(昔有老宿 問一座主 疏鈔解義 廣略如何 主云 鈔解疏 疏解經 宿云 經解甚麽 主無對).
●3품(品); 수(隋) 혜원(慧遠)의 대승기신론의소(大乘起信論義疏; 상하 2권)ㆍ당(唐) 법장(法藏)의 대승기신론의기(大乘起信論義記; 3권. 大乘起信論義記別記 1권)ㆍ신라(新羅) 원효(元曉)의 기신론소(起信論疏; 상하 2권. 大乘起信論別記 1권)를 가리킴.
●법장(法藏); (643-712) 당대승. 화엄종 제3조가 됨. 자는 현수(賢首)며 호는 국일법사(國一法師), 또 명칭이 향상대사(香象大師)ㆍ강장국사(康藏國師). 속성은 강(康)이니 조선(祖先; 선조)이 강거국(康居國) 사람임. 그의 조부에 이르러 거족(擧族; 전 가족)이 옮겨 중토(中土)에 이르러 장안에 거주했음. 젊은 나이에 지엄(智儼)을 사사(師事)했고 화엄을 청강하여 그 현지(玄旨)에 깊이 들어갔음. 지엄이 시적한 후 곧 박진(薄塵)에게 의지해 체도(剃度)했으니 당시의 나이 28이었음. 처음에 서역 제국(諸國)의 언어와 범문(梵文)의 경서에 능통했기 때문에 드디어 칙명을 받들어 의정(義淨)의 역장(譯場)에 참여했으며 선후로 신화엄경(新華嚴經)ㆍ대승입릉가경 등 10여 부를 역출(譯出)했음. 일찍이 무후(武后)를 위해 화엄십현연기(華嚴十玄緣起)의 깊은 뜻을 강설하면서 전우(殿隅)의 금사자(金獅子)를 가리키며 비유로 삼았는데 무후가 드디어 휑하게 영해(領解)했음. 후에 스님이 곧 이로 인해 금사자장(金師子章)을 찬술(撰述)해 이루었음. 스님은 일생에 화엄을 30여 편(遍; 回) 선강(宣講)했으며 화엄교학의 조직을 대성(大成)함에 치력(致力; 힘쓰다)했음. 또 릉가(楞伽)ㆍ밀엄(密嚴)ㆍ범망(梵網)ㆍ기신(起信) 등의 경론을 주석했으며 아울러 천태의 예(例)를 본떠 불교의 각종 사상체계를 가지고 분류하여 오교십종(五敎十宗)으로 삼았음. 현종(玄宗) 선천원년(先天元年) 11월 대천복사(大薦福寺)에서 시적했으니 세수는 70. 저작이 매우 많았으니 계산하자면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 20권ㆍ화엄요간(華嚴料簡)ㆍ화엄오교장(華嚴五敎章)ㆍ대승밀교경소(大乘密敎經疏) 4권ㆍ범망경소(梵網經疏)ㆍ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ㆍ화엄강목(華嚴綱目)ㆍ화엄현의장(華嚴玄義章) 등 20여 부가 있음. 제자에 주요(主要)한 이는 굉관(宏觀)ㆍ문초(文超 )ㆍ지광(智光)ㆍ종일(宗一)ㆍ혜원(慧苑) 등이 있음 [賢首大師碑傳 宋高僧傳五 佛祖統紀二十九 佛祖歷代通載十五].
●혜원(慧遠); (523-592) 수대(隋代) 고승. 속성(俗姓)은 이(李)며 조적(祖籍)은 돈황(敦煌)이며 후에 장안 정영사(淨影寺)에 거주한지라 고로 호칭이 정영혜원(淨影慧遠)임. 13세에 출가했고 20세에 구족계를 받았음. 주무제(周武帝)가 북제(北齊)를 멸하고 업도(鄴都)에 들어가 폐불(廢佛)하자 혜원이 당중(當衆)하여 면척(面斥)했음,이로 좇아 태행산(太行山) 가운데 은거하며 불법을 정수(靜修)했음. 3년 후 무제가 붕어(崩御)하자 불법을 회복(恢復)했고 혜원이 비로소 출산하여 소림사에 주지(住持)했음. 수문제(隋文帝) 개황(開皇) 7년(587)대흥선사(大興善寺)에 있으면서 법사(法事)를 주지(主持)했고 불경을 주소(注疏)했으며 후에 정영사(淨影寺)로 이거(移居)했음. 혜원법사는 일생에 저술이 파다(頗多)했는데 주요(主要)한 저서에 대승장의(大乘章義)ㆍ대반야경의기(大般若經義記)ㆍ무량수경의소(無量壽經義疏) 등 120부 100여 권이 있음 [百度百科].
●원효(元曉); (617-?) 신라국 화엄종 학승. 속성은 설(薛). 29세에 황룡사에서 출가했음. 의상(義湘)과 신라 무열왕(武烈王) 7년(660) 도해(渡海)하여 당에 가려고 했음(일설에 당 永徽 원년650. 혹은 이르기를 總章年頃668-669). 그러나 스님이 도중에 홀연히 감오(感悟)하여 마음 밖에 법이 없거늘 어찌 달리 구함을 쓰겠는가 하고는 절회(折回)하여 해동을 화진(化振)했음. 세칭 그 사람을 해동사(海東師)라 하고 소(疏)를 가로되 해동소(海東疏)라 했음. 후에 고려 숙종 6년(1101) 시호(諡號)하여 대성화쟁국사(大聖和靜國師)라 했음. 저서에 화엄경소ㆍ아미타경소ㆍ금강삼매경론ㆍ대승기신론소ㆍ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ㆍ법화종요(法華宗要)ㆍ이장의(二障義)ㆍ판비량론(判比量論) 등 다수가 있음 [宋高僧傳四 三國遺事三 同四 高麗史十一 新編諸宗敎藏總錄].
●취중(就中); 취(就)는 대사(代詞)니 차(此)ㆍ기(其)에 상당함.
●기연(機緣); 기(機)는 이르자면 근기며 연(緣)은 이르자면 인연이니 중생의 근기와 법을 깨칠 인연임. 양자가 계합해야 곧 성오(省悟)를 얻음.
●승전(僧傳)에 운운; 송고승전5 징관전(澄觀傳) 대력(大曆) 중에 와관사로 나아가 기신과 열반을 전수(傳受)했고 또 회남(淮南)의 법장에게서 해동기신소의 뜻을 영수했다. 다시 천축사의 선법사(詵法師) 문하로 돌아가 화엄대경을 온습(溫習)했다(大曆中就瓦棺寺傳起信涅槃 又於淮南法藏 受海東起信疏義 却復天竺詵法師門 溫習華嚴大經) 운운.
●청량관공(淸涼觀公); 청량징관(淸涼澄觀; 738-839)을 가리킴. 당대승. 화엄종 제4조. 속성은 하후(夏侯)며 자는 대휴(大休)니 월주(越州) 산음(山陰; 浙江 紹興) 사람이며 호가 청량국사(淸涼國師)ㆍ화엄보살ㆍ화엄소주(華嚴疏主). 11세에 보림사(寶林寺) 패선사(霈禪師)에게 의지해 출가했고 14세에 득도(得度)했음. 신장이 9척4촌이었고 손을 내리면 무릎에 이르렀음. 입이 40치(齒)였고 목광(目光)이 밤에 발했고 낮에는 곧 눈을 깜작이지 않았음. 하루에 만언(萬言)을 기억했고 7행(行)을 구하(俱下; 한꺼번에 읽어 내림)했음. 재능이 2필(筆)로 이바지했고 일찍이 10사(事)로 자려(自勵)했음. 일찍이 경산흠(徑山欽; 道欽이니 牛頭法融下六世)에게 서래종지(西來宗旨)를 물어 묵묵히 인기(印記)를 받았음. 오대산에 거주하며 화엄경을 소(疏)했고 후에 경사(京師)에 거주했음. 덕종(德宗)이 내전으로 영입하여 청량국사(淸涼國師)란 호를 주었음. 출생해 9조(朝)를 경력하면서 7제(帝)의 문사(門師)가 되었음. 개성(開成) 4년 시적했고 세수는 102(一說에 元和年 중에 시적했고 나이는 70여). 종남산에 탑을 세웠고 이름해 가로되 묘각(妙覺). 저작이 파다하였음. 대방광불화엄경소 60권ㆍ수소연의초(隨疏演義鈔) 90권ㆍ화엄경강요(華嚴經綱要) 3권ㆍ오온관(五蘊觀)ㆍ삼성원융관문(三聖圓融觀門) 등 30다종(多種)이 있음 [宋高僧傳五 佛祖統紀二十九 指月錄二 禪苑蒙求中].
●이르되 …… 그 전석(全釋)을 보지 못했다; 이 글은 승전(僧傳)에 나오지 않으니 각안(覺眼)의 사족(蛇足)인가 의심됨. 또 소이로 운운한 것도 각안의 억측(臆測)인가 의심됨.
●이(個); 개(個)는 지시대사(指示代詞)니 저(這), 차(此).
●연핵(硏覈); 연핵(硏核)과 같음. 연구하며 고핵(考核)함. 핵(核)은 대조(对照), 고핵(考核).
● 부질(負袟); 질(袟)은 책갑(冊匣)이니 질(帙)과 같음.
●각재(刻梓); 판각(板刻)함. 곧, 인쇄하여 발행함.
●노태(駑駘); 노(駑; 鈍한 말)와 태(駘; 둔한 말)는 모두 이 열마(劣馬)니 저하(低下)의 재능에 비유함.
●낙동(洛東); 1. 도성의 동쪽 (지역). 2. 경도(京都) 압천(鴨川)의 동쪽 지역 [일본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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