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신론소기

기신론소기회본(起信論疏記會本) 26

태화당 2020. 9. 19. 11:15

[別記]當知此云有生滅心 正謂識藏 今通取所依如來藏 與能依生滅心 合爲心生滅門 故言心生滅者依如來藏故有生滅心 非棄如來藏而取生滅心爲生滅門也 如下文云此識有二種義 故知二義皆在生滅門也

 

[별기] 마땅히 알라 여기에서 이른 생멸심이 있다 함은 바로 식장(識藏)을 일컬음()이다. 여금에 소의(所依)의 여래장과 능의(能依)의 생멸심을 통취(通取; 다 취함)하여 합해 심생멸문(心生滅門)으로 삼은지라 고로 말하되 심생멸이란 것은 여래장에 의하는 고로 생멸심이 있다 했음이니 여래장을 버리고서 생멸심을 취해 생멸문(生滅門)을 삼은 게 아니다. 예컨대 하문(下文)에 이르되 이 식에 2종의 뜻이 있다 했으니 고로 두 뜻이 다 생멸문에 있음을 안다.

 

所謂以下 第二辯相 不生不滅者 是上如來藏 不生滅心動作生滅 不相捨離 名與和合 如下文言 如大海水因風波動 水相風相不相捨離 乃至廣說 此中水之動是風相 動之溼是水相 水擧體動 故水不離風相 無動非溼 故動不離水相 心亦如是 不生滅心擧體動 故心不離生滅相 生滅之相莫非神解 故生滅不離心相 如是不相離 故名與和合(別記云 心之生滅 依無明成 生滅之心 從本覺成 而無二體 不相捨離 故爲和合) 此是不生滅心與生滅和合 非謂生滅與不生滅和合也 非一非異者 不生滅心擧體而動 故心與生滅非異 而恒不失不生滅性 故生滅與心非一 又若是一者 生滅識相滅盡之時 心神之體亦應隨滅 墮於斷邊 若是異者 依無明風熏動之時 靜心之體不應隨緣 卽墮常邊 離此二邊 故非一非異(別記云 雖有二義 心體無二 此合二義不二之心 名爲棃耶識也) 如四卷經云 譬如泥團微塵 非異非不異 金莊嚴具亦如是 若泥團微塵異者 非彼所成 而實彼成 是故非異 若不異者 泥團微塵應無差別 如是轉識藏識眞相若異者 藏識非因 若不異者 轉識滅 藏識亦應滅 而自眞相實不滅 是故非自眞相識滅 但業相滅 今此論主正釋彼文 故言非一非異 此中業識者 因無明力不覺心動 故名業識 又依動心轉成能見 故名轉識 此二皆在棃耶識位(別記云 棃耶識內生滅見相 名爲轉識 於中體 名爲藏識) 如十卷經言 如來藏卽阿棃耶識 共七識生 名轉滅相 故知轉相在棃耶識 自眞相者 十卷經云 中眞名自相 本覺之心 不藉妄緣 性自神解名自眞相 是約不一義門說也 又隨無明風作生滅時 神解之性與本不異 故亦得名爲自眞相 是依不異義門說也(別記云 當知自眞名 不偏在不生滅) 於中委悉 如別記說也

 

이른 바(所謂) 이하는 제2 변상(辯相; 상을 分辨. 과 통함)이다. 불생불멸이란 것은 이는 위의 여래장이며 불생멸심이 생멸을 동작(動作)하여 서로 사리(捨離)하지 않음을 이름해 여화합(與和合; 더불어 화합함)이다. 예컨대() 하문(下文)에 말하되 마치 대해의 물이 바람으로 인해 파도()가 움직이매 수상(水相)과 풍상(風相)이 서로 사리(捨離)하지 않음과 같다 하고 내지 광설(廣說)했다. 이 중에 물의 움직임()은 이 풍상(風相)이며 동()의 습(; 과 같음)은 이 수상(水相)이다. ()의 거체(擧體; 전체)가 동()함인지라 고로 수()가 풍상(風相)을 여의지 않으며 습()이 아닌 동()이 없는지라 고로 동()이 수상(水相)을 여의지 않는다. ()도 또한 이와 같아서 불생멸심의 거체(擧體)가 동()함인지라 고로 심이 생멸상을 여의지 않으며 생멸의 상이 신해(神解)하지 않음이 없는지라() 고로 생멸이 심상(心相)을 여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서로 여의지 않는지라 고로 이름이 여화합(與和合)이다(별기에 이르되 의 생멸은 무명에 의해 이루어지고 생멸의 은 본각으로 좇아 이루어지므로 二體가 없어 서로 捨離하지 않는지라 고로 화합이라 한다). 이것은 이 불생멸심이 생멸과 더불어 화합함이지 생멸이 불생멸과 더불어 화합함을 일컬음()이 아니다. ()도 아니고 이()도 아니란 것은 불생멸심의 거체(擧體)가 동()함인지라 고로 심()이 생멸과 더불어 이()가 아니며 항상() 불생멸성(不生滅性)을 잃지 않는지라 고로 생멸이 심과 더불어 일()이 아니다. 또 만약 이 일()이라면 생멸식상(生滅識相)이 멸진(滅盡)할 때 심신(心神)의 체()도 또한 응당 따라 멸진()해야 하리니 단변(斷邊)에 떨어지고 만약 이 다르다면() 무명풍(無明風)에 의해 훈동(熏動)할 때 정심(靜心)의 체가 수연(隨緣)에 응하지 않아야 하리니 곧 상변(常邊)에 떨어진다. 2()을 여의는지라 고로 비일비이(非一非異)(별기에 이르되 비록 두 뜻이 있지만 心體는 둘이 없으니 여기에서 두 뜻이 不二을 합해 이름하여 棃耶識이다). 예컨대 사권경(四卷經; 1)에 이르되 비유컨대 이단(泥團; 진흙덩이)과 미진이 다름()도 아니고 다르지 않음(不異)도 아님과 같이 금장엄구(金莊嚴具)도 또한 이와 같다 했다. 만약 이단(泥團)과 미진이 다르다면 그것이(泥團) 이루어질 바가 아니지만 실로는 그것이 이루어지나니 이런 고로 다르지() 않으며 만약 다르지 않다면 이단과 미진이 응당 차별이 없으리라. 이와 같이 전식(轉識)과 장식(藏識; 아리야식)의 진상(眞相)이 만약 다르다면 장식(藏識)이 인()이 아니며 만약 다르지 않다면 전식(轉識)이 없어지면 장식도 또한 응당 없어져야 하지만 자진상(自眞相)은 실로 없어지지 않는지라 이런 고로 자진상(自眞相)의 식이 없어짐이 아니라 단지 업상(業相)만 없어짐이다. 지금의 이 논주(論主)가 그(四卷經) 글을 바로 해석한지라 고로 말하되 비일비이(非一非異)라 했다. 이 중에 업식이란 것은 무명의 힘으로 인해 불각에 심()이 동하나니 고로 이름이 업식이다. 또 동한 심에 의해 굴러 능견(能見)을 이루는지라 고로 이름이 전식(轉識)이다. 이 둘이 다 아리야식의 위()에 있다(별기에 이르되 棃耶識 안에 생멸의 見相을 이름하여 轉識이며 이 중의 를 이름하여 藏識이다). 예컨대 십권경(十卷經)에 말하되 여래장이 곧 아리야식이며 7(七識; 七種識)과 함께 생()하나니 이름이 전멸상(轉滅相)이라 했다. 고로 알지니 전상(轉相)이 리야식(棃耶識)에 있다. 자진상(自眞相)이란 것은 십권경(十卷經)에 이르되 중진(中眞)의 이름이 자상(自相)이며 본각의 심이 망연(妄緣)을 빌리지() 않고 자성()이 스스로 신해(神解)함을 이름해 자진상(自眞相)이다 했으니 이는 불일의문(不一義門)을 괄약하여 설했음이다. 또 무명풍을 따라 생멸을 지을 때 신해지성(神解之性)이 본()과 더불어 다르지 않는지라 고로 또한 이름하여 자진상이라 함을 얻나니 이는 불이의문(不異義門)에 의해 설했음이다(별기에 이르되 마땅히 알지니 自眞이란 이름은 오직 불생멸에만 있는 게 아니다). 이 중에 위실(委悉; 細說. 詳盡)은 별기의 설과 같다.

 

전식(轉識); 칠전식(七轉識)이니 8식 중 말나식(末那識) 이하의 7식임. 8식으로부터 전생(轉生)한 식인지라 고로 제8식에 대해 이를 일러 7전식이라 함.

십권경(十卷經); 북위(北魏)의 보리류지(菩提流支)가 번역한 입릉가경(入楞伽經)이니 또 명칭이 십권릉가경(十卷楞伽經)ㆍ위역릉가경(魏譯楞伽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