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신론소기

기신론소기회본(起信論疏記會本) 40

태화당 2020. 9. 19. 13:21

次釋不覺 於中有三 先明根本不覺 次顯枝末不覺 第三總結本末不覺

 

()는 불각(不覺)을 해석함이니 이 중에 셋이 있다. ()은 근본불각(根本不覺)을 밝히고 차()는 지말불각(枝末不覺)을 밝히고() 3은 본말불각(本末不覺)을 총결(總結)함이다.

 

所言不覺義者 謂不如實知眞如法一 故不覺心起而有其念 念無自相 不離本覺 猶如迷人 依方故迷 若離於方 則無有迷 衆生亦爾 依覺故迷 若離覺性 則無不覺 以有不覺妄想心故 能知名義 爲說眞覺 若離不覺之心 則無眞覺自相可說

 

말한 바 불각(不覺)의 뜻이란 것은 진여법(眞如法)이 일()임을 여실히 알지 못하는지라 고로 불각에 심()이 일어나 그 상념()이 있거니와 상념은 자상(自相)이 없어 본각을 여의지 않는다. 마치 미인(迷人)이 방위에 의한 고로 미()하거니와 만약 방위를 여의면 곧 미()가 있지 않음과 같이 중생도 또한 그러하여 각()에 의하는 고로 미()하거니와 만약 각성(覺性)을 여의면 곧 불각(不覺)도 없다. 불각의 망상심이 있는 연고로써 능히 명의(名義)를 알아서 진각(眞覺)을 설하거니와 만약 불각의 마음을 여의면 곧 진각의 자상(自相)을 가히 설함이 없다.

 

初中亦二 先明不覺依本覺立 後顯本覺亦待不覺 初中有三 謂法 喩 合 初中言不如實知眞如法一故者 根本無明 猶如迷方也 不覺心起而有其念者 業相動念 是如邪方 如離正東無別邪西 故言念無自相不離本覺 喩合之文 文相可見也 次明本覺亦待不覺 於中有二 初言以有不覺妄想心者 無明所起妄想分別 由此妄想能知名義 故有言說說於眞覺 是明眞覺之名待於妄想也 若離不覺則無眞覺自相可說者 是明所說眞覺必待不覺 若不相待 則無自相 待他而有 亦非自相 自相旣無 何有他相 是顯諸法無所得義 如下文言 當知一切染法淨法皆悉相待 無有自相可說 智度論云 若世諦如毫釐許有實者 第一義諦亦應有實 此之謂也

 

초중(初中)에 또 둘이니 선()은 불각이 본각에 의하여 성립()함을 밝힘이며 후()는 본각도 또한 불각을 응대(應待; )함을 밝힘()이댜. 초중(初中)에 셋이 있으니 이르자면 법()ㆍ유()ㆍ합()이다. 초중에 말한 진여법(眞如法)이 일()임을 여실히 알지 못한다는 것은 근본무명이니 마치 방위를 미()함과 같음이며 불각에 심()이 일어나 그 상념()이 있다는 것은 업상(業相)이 상념을 움직임이니 이는 사방(邪方)과 같다. 정동(正東)을 여의면 별다른 사서(邪西)가 없음과 같은지라 고로 말하되 상념은 자상(自相)이 없어 본각을 여의지 않는다 했다. 유합(喩合; 비유와 합)의 글은 문상(文相)을 가히 볼 것이다. ()는 본각도 또한 불각을 응대함을 밝힘이니 이 중에 둘이 있다. ()에 말한 불각의 망상심이 있기 때문()이란 것은 무명이 일으킨 바 망상분별이니 이 망상으로 말미암아 명의(名義)를 능히 아는지라 고로 언설이 있어 진각을 설한다 함이니 이는 진각의 이름이 망상을 응대함을 밝혔다. 만약 불각을 여의면 곧 진각의 자상(自相)을 가히 설함이 없다는 것은 이는 설할 바 진각이 반드시 불각을 응대함임을 밝함이니 만약 상대(相待)하지 않으면 곧 자상도 없으며 저()에 응대하여 있음이라서 또한 자상(自相)도 아니다. 자상이 이미 없거늘 어찌 타상(他相)이 있겠는가. 이는 제법이 얻을 바 없는 뜻을 밝혔음이니 예컨대() 하문(下文; 5)에 말하되 마땅히 알라 일체의 염법(染法)과 정법(淨法)이 모두 다(皆悉) 상대(相待)함이며 가히 설할 자상이 있지 않다(). 지도론에 이르되 만약 세제(世諦)에 호리(毫釐)만큼이라도 실다움이 있을 것 같으면 제일의제(第一義諦)에도 또한 응당 실다움이 있다 했으니 이것을 일컬음이다.

 

세제(世諦); 진제(眞諦)를 상대한 일컬음임. ()란 것은 세간ㆍ세속이며 제()란 것은 사실이며 또 도리임. 세간의 사실, 또 세속인이 아는 바의 도리를 세제라고 이르며 또 가로되 속제ㆍ세속제ㆍ부속제(覆俗諦) 등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