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신론소기

기신론소기회본(起信論疏記會本) 49

태화당 2020. 9. 19. 13:47

復次覺與不覺有二種相 云何爲二 一者同相 二者異相 言同相者 譬如種種瓦器 皆同微塵性相 如是無漏無明種種業幻 皆同眞如性相 是故脩多羅中 依於此眞如義 故說一切衆生本來常住入於涅槃菩提之法 非可修相 非可作相 畢竟無得 亦無色相可見 而有見色相者 唯是隨染業幻所作 非是智色不空之性 以智相無可見故 言異相者 如種種瓦器 各各不同 如是無漏無明 隨染幻差別 性染幻差別故

 

다시 다음에 각()과 더불어 불각(不覺)2종의 상()이 있나니 무엇이 둘이 되는가, 1자는 동상(同相)이며 2자는 이상(異相)이다. 말한 동상(同相)이란 것은 비여(譬如) 갖가지 와기(瓦器)가 모두 미진성(微塵性)의 상()임과 같아서 이와 같이 무루(無漏)와 무명(無明)의 갖가지 업환(業幻)이 모두 진여성(眞如性)의 상()임과 같다. 이런 고로 수다라(脩多羅) 중에서 이 진여의 뜻에 의하는지라 고로 설하되 일체중생이 본래 상주(常住)하면서 열반보리(涅槃菩提)에 드는 법은 가히 닦을 상()이 아니며 가히 지을 상이 아니며 필경 얻음이 없으며 또한 가히 볼 색상(色相)이 없으면서 색상을 봄이 있는 것은 오직 이는 염업(染業)의 환()이 짓는 바를 따름이며 이 지색(智色)인 불공지성(不空之性)이 아님이니 지상(智相)은 가히 보지 못하기() 때문의 연고다 했다. 말한 이상(異相)이란 것은 갖가지 와기(瓦器)가 각각 같지 않음과 같아서 이와 같이 무루와 무명이 염환(染幻)의 차별을 따름이며 성()의 염환차별(染幻差別)인 연고다.

 

第三明同異相 此中有三 總標 列名 次第辨相 辨相之中 先明同相 於中有三 一者引喩 二者合喩 三者引證 第二中言無漏者 本覺始覺也 無明者 本末不覺也 此二皆有業用顯現 而非定有 故名業幻 第三中言本來常住入於涅槃菩提法者 如大品經言 以是智慧 斷一切結使 入無餘涅槃 元是世俗法 非第一義 何以故 空中無有滅 亦無使滅者 諸法畢竟空 卽是涅槃故 又言 何義故爲菩提 空義 是菩提義 如義 法性義 實際義 是菩提義 復次諸法實相 不誑不異 是菩提義故 當知此中約於性淨菩提 本來淸淨涅槃 故諸衆生本來入也 非可修相者 無因行故 非可作相者 無果起故 畢竟無得者 以無能得者 無得時無得處故 亦無以下 猶是經文 而非此中所證之要 但是一處相續之文 是故相從引之而已 明異相中 先喩 後合 合中言隨染幻差別者 是無漏法 性染幻差別者 是無明法 何者 本末無明 違平等性 是故其性自有差別 諸無漏法 順平等性 直置其性 應無差別 但隨染法差別之相 故說無漏有差別耳 謂對業識等染法差別 故說本覺恒沙性德 又對治此諸法差別 故成始覺萬德差別(別記云 是故無漏 但隨彼染而有差別 不由自性有差別也) 然如是染淨 皆是相待 非無顯現 而非是有 是故通名幻差別也

 

3 동이상(同異相)을 밝힘이다. 이 중에 셋이 있으니 총표(總標)ㆍ열명(列名)ㆍ차제로 변상(辨相)함이다. 변상지중(辨相之中)에 선()은 동상(同相)을 밝힘이니 이 중에 셋이 있다. 1자는 인유(引喩)2자는 합유(合喩)3자는 인증(引證)이다. 2 중에 말한 무루(無漏)란 것은 본각과 시각이며 무명(無明)이란 것은 본말(本末; 근본과 枝末)의 불각이다. 이 둘이 다 업용(業用)이 현현(顯現)함이 있으되 꼭 있음(定有)이 아닌지라 고로 이름이 업환(業幻)이다. 3 중에 말한 본래 상주(常住)하면서 열반보리(涅槃菩提)의 법에 든다는 것은 예컨대 대품경(大品經; 25)에 말하되 이 지혜로써 일체의 결사(結使)를 끊고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듦이 원래 이 세속법이며 제1(第一義)가 아니다. 무슨 연고냐, () 가운데엔 멸()이 있지 않고() 또한 멸하게 하는 자(使滅者)도 없나니 제법이 필경 공했음이 곧 이 열반인 연고다. 또 말하되 무슨 뜻인 고로 보리(菩提)라 하는가, 공의(空義; 공의 뜻)가 이 보리의(菩提義)며 여의(如義)ㆍ법성의(法性義)ㆍ실제의(實際義)가 이 보리의(菩提義). 다시 다음에 제법의 실상은 불광불이(不誑不異; 속임이 아니며 달라짐이 아님)니 이것이 보리의인 연고다 했다. 마땅히 알라 이 중에선 성정보리(性淨菩提)와 본래 청정한 열반을 괄약한지라 고로 모든 중생이 본래 입()했다 하였다. 가히 닦을 상이 아니란 것은 인행(因行)이 없는 연고며 가히 지을 상이 아니란 것은 과기(果起)가 없는 연고며 필경 얻음이 없다는 것은 능히 얻을 자가 없으며 얻을 때가 없으며 얻을 곳이 없기 때문의 연고다. 역무(亦無) 이하는 오히려 이는 경문이니 이 중에 증명한 바의 요점(要點; )은 아니며 단지 이는 일처(一處)에 상속하는 글인지라 이런 고로 상종(相從)하며 이를 인용했을(引之) 따름이다. 이상(異相)을 밝힌 중에 선()은 유()며 후()는 합()이다. 합중에 말한 염환(染幻)의 차별을 따른다는 것은 이 무루법(無漏法)이며 성()의 염환차별(染幻差別)이란 것은 이 무명법(無明法)이다. 왜냐하면(何者) 본말무명(本末無明; 근본무명과 枝末無明)은 평등성(平等性)에 위배되는지라 이런 고로 그 성()이 스스로 차별이 있으며 모든 무루법은 평등성에 순응함이니 바로() 그 성()을 둠()이라서 응당 차별이 없지만 단지 염법(染法)의 차별지상(差別之相)을 따르는지라 고로 설하되 무루(無漏)가 차별이 있다고 하였을 뿐이다. 이르자면 업식 등 염법의 차별에 대()하는지라 고로 본각의 항사성덕(恒沙性德)을 설하며 또 제법의 차별에 대치(對治)하는지라 고로 시각(始覺)의 만덕차별(萬德差別)을 성취한다(별기에 이르되 이런 고로 無漏가 단지 그 을 따라 차별이 있거니와 自性에 차별이 있기 때문은 아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염정(染淨)은 모두 이 상대(相待)함이라서 현현(顯現)이 없지는 않지만 이 있음이 아니니 이런 고로 통명(通名)이 환차별(幻差別)이다.

 

上來廣釋立義分中是心生滅竟在於前

 

상래(上來)에 입의분 중의 시심생멸(是心生滅)을 광석(廣釋)함은 마침이 앞에 있다(竟在於前).

 

결사(結使); 번뇌의 다른 명칭. 여러 번뇌가 중생을 전박(纏縛)하여 생사를 출리(出離)하지 못하게 하는지라 고로 명칭이 결()이며 구역(驅役; 몰아서 부림)하며 중생을 뇌란하므로 고로 명칭이 사(使). 결에 9종이 있고 사에 10종이 있어 일컬어 910사라 함 [大智度論五 大乘義章五本].

무여열반(無餘涅槃); 2종 열반의 하나. 4종 열반의 하나. 신역에 이르되 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이며 약칭이 무여열반. 이르자면 생사고를 출리(出離)하여 나타내는 바의 진리임. 곧 번뇌를 단진(斷盡)하여 나머지 것인 5()의 몸도 또한 없어지고 일체 유위법의 소의(所依)를 잃어버려서 자연히 멸진(滅盡)으로 돌아가 뭇 고가 영원히 적멸함 [攝大乘論釋十三 成唯識論了義燈七末]. 금강경오십삼가주(金剛經五十三家註) 충응진인(冲應眞人) 주사경(周史卿; 北宋 때의 道士)이 끽불탁화상(喫不拓和尙. 미상)과 대담(對談)하다가 향연기를 가리키며 이르되 학인(學人. 끽불탁화상을 가리킴)의 유여열반(有餘涅槃)을 보고자 한다면 화로 중의 재가 이것이며 학인의 무여열반(無餘涅槃)을 보고자 한다면 화로 중의 재가 날아가 없어짐이 곧 이것이다.

또 말하되 운운. 대품경22의 글임.

枝末無明; 근본무명에 의해 업상(業相)ㆍ견상(見相)ㆍ경계상(境界相)3()를 일으키며 이름하여 지말무명이라 함. 위 권2 각주 근본무명을 참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