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次) 연각(*緣覺)을 밝힘이니 또한 이름이 독각(*獨覺)이다. 불타의 출세를 만나 십이인연(十二因緣)의 교(敎)를 품수(稟受; 稟)하나니 이른 바 1은 무명(*無明)이며(*煩惱障과 *煩惱道) 2는 행(行)이며(*業障과 *業道니 이 二支는 과거에 속함) 3은 식(識)이며(託胎한 一分의 氣息) 4는 명색(*名色)이며(名은 이 心이며 色은 이 質) 5는 6입(*六入)이며(*六根이 이 胎中에서 이루어짐) 6은 촉(觸)이며(出胎) 7은 수(受)며(前境의 好惡 등의 일을 領納함. 識으로 좇아 受에 이르기까지는 이름이 現在五果) 8은 애(愛)며(愛色이니 남녀, 金銀錢物 등의 事임) 9는 취(取)며(무릇 一切境을 보고서 모두 取著心을 냄. 이 둘은 未來因이니 모두 번뇌에 속하며 과거의 無明과 같음) 10은 유(有)며(業을 이미 성취함. *是未來因은 業道에 속하며 과거의 行과 같다) 11은 생(生)이며(미래의 受生하는 事) 12는 노사(老死)니 이것은 이 소멸지경(*此是所滅之境)이다. 앞의 4제(諦)와 개합(開合)이 다를(異) 뿐이니 어떻게 개합(開合)하는가, 이르자면 무명ㆍ행ㆍ애ㆍ취ㆍ유 이 5지(支; 支分. 支派)는 합해 집제(集諦)로 삼고 나머지 7지(支)는 고제(苦諦)로 삼는다. 이미 명이의동(名異義同)이거늘 무슨 연고로 중설(重說)하는가 하면 기의(*機宜)가 부동하기 때문의(爲) 연고다. 연각의 사람은 먼저 집제(集諦)를 관하나니 이른 바 무명이 행을 반연(攀緣; 緣)하고 행이 식을 반연하고 내지 생이 노사를 반연함은 이것은 곧 생기(生起)다. 만약 멸관(滅觀)하면 무명이 멸한 즉 행이 멸하고 내지 생이 멸한 즉 노사가 멸한다. 십이인연을 관함으로 인해 진제(眞諦)의 이치를 깨닫는지라 고로 말하되 연각(緣覺)이다. 말한 독각(獨覺)이란 것은 부처가 없는 세상에 출현하여 고봉(孤峯)에 독숙(獨宿)하면서 만물(萬物; 物)의 변역(變易)을 관하면서 무생(無生)을 자각하나니 고로 이름이 독각이다. 양명(兩名)이 부동하나 행위(行位)는 다름이 없다. 이 사람이 3계의 견사(見思)를 단절함은 성문(聲聞)과 더불어 같지만 다시 습기(*習氣)를 침해(侵害; 侵)하는지라 고로 성문의 위에 거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