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時後魏光統律師 菩提流支三藏 與師論議 師斥相指心 而偏局之量 自不堪任 競起害心 數加毒藥 至第六度 化緣已畢 傳法得人 遂不復救 端居而逝 葬於熊耳山定林寺 後魏宋雲奉使 於葱嶺遇師手携隻履而往 〖碧巖錄一 一則〗
때에 후위(後魏)의 광통율사(光統律師)와 보리류지삼장(菩提流支三藏)이 스님(達磨)과 논의했는데 스님이 모양을 배척하고 마음임을 가리키자 편국(偏局)의 사량(思量)인지라 스스로 감임(堪任)치 못하고 다투어 해심(害心)을 일으켜 수 차례 독약을 가하더니 여섯 번째에 이르러 화연(化緣)을 이미 마치고 법을 전하고 사람(慧可等)을 얻었으므로 드디어 다시 구(救)하지 않고 단거(端居)히 떠나매 웅이산(熊耳山) 정림사(定林寺)에 장사지냈다. 뒤에 위(魏)의 송운(宋雲)이 봉사(奉使; 使臣의 일을 받들어 행함)하다가 총령(蔥嶺)에서 스님이 손에 외짝 신을 갖고 가는 것을 만났다.
전등록3(傳燈錄三) 보리달마(菩提達磨). 효장(孝莊)이 즉위하자 운(雲; 宋雲)이 그 일을 갖추어 아뢰었다. 제(帝)가 광혈(壙穴)을 열게 했는데 오직 빈 관이었고 한 짝의 가죽신만 있었다.
'태화일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태화일적(泰華一滴) 134 (0) | 2020.11.06 |
---|---|
태화일적(泰華一滴) 133 (0) | 2020.11.06 |
태화일적(泰華一滴) 131 (0) | 2020.11.06 |
태화일적(泰華一滴) 130 (0) | 2020.11.06 |
태화일적(泰華一滴) 129 (0) | 2020.1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