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주해

벽암록 제97칙 수시 본칙 평창

태화당 2021. 8. 28. 09:00

垂示云 拈一放一 未是作家 擧一明三 猶乖宗旨 直得天地陟陡變四方絕唱 雷奔電馳雲行雨驟 傾湫倒嶽甕瀉盆傾 也未提得一半在 還有解轉天關能移地軸底麽 試擧看

 

수시(垂示)하여 이르되 염일방일(拈一放一)하여도 이 작가가 아니며 거일명삼(擧一明三)하여도 오히려 종지(宗旨)에 어긋나나니 바로 천지가 갑자기 변하고(陟變; 와 같음. 突然, 의 뜻) 사방에 창화(唱和)가 끊기며 뇌분전치(雷奔電馳; 우레가달리고 비가 달리다)하고 운행우취(雲行雨驟; 구름이 다니고 비가 달리다)하며 경추도악(傾湫倒嶽; 늪이 기울고 산악이 거꾸러지다)하고 옹사분경(甕瀉盆傾; 독으로 쏟고 동이를 기울이다)함을 얻더라도 또한 하나에 반을 제득(提得)치 못하여 있나니 도리어 천관(天關)을 돌릴() 줄 알고 능히 지축(地軸)을 옮길 이가 있느냐, 시험삼아 들어보아라(擧看).

 

九七擧 金剛經云 若爲人輕賤放一線道 又且何妨 是人先世罪業驢駝馬載應墮*惡道陷墮了也 以今世人輕賤故酬本及末 只得忍受 先世罪業向什麽處摸索 種穀不生豆苗則爲消滅雪上加霜又一重 如湯消氷

 

惡道; 爲善道之對稱 與惡趣同義 道 爲通之義 卽指生前造作惡業 而於死後趣往之苦惡處所 一般以地獄餓鬼畜生三者 稱爲三惡道 阿修羅人間天上 則稱爲三善道 [觀無量壽經 大乘義章八末]

 

九七()하다. 금강경에 이르되 만약 타인에게 경천(輕賤)되면 일선도(一線道; 輕賤句)를 놓은들 또한(又且) 어찌 방애되리오. 이 사람은 선세(先世)의 죄업으론 나귀에 싣고 말에 실었다(죄업이 많은 모양). 응당 악도(惡道)에 떨어지련만 함타(陷墮; 陷沒墮落)하였다. 금세(今世)의 사람이 경천하는 연고로써 근본을 갚으매 지말(枝末)에 미치는지라 다만 인수(忍受)함을 얻는다. 선세의 죄업이 어느 곳을 향해 모색하겠는가. 미곡(米穀)을 심으면 콩싹이 나지 않는다. 곧 소멸된다. 눈 위에 서리를 더하고 또 한 번 거듭한다. 끓인 물로 얼음을 녹임과 같다.

 

惡道; 선도(善道)의 대칭이 됨. 악취(惡趣)와 같은 뜻. ()는 통()의 뜻이 되나니 곧 생전에 조작한 악업으로 사후에 취왕(趣往)하는 고악(苦惡)의 처소를 가리킴. 일반으로 지옥ㆍ아귀ㆍ축생 3자를 일컬어 3악도라 하고 아수라ㆍ인간ㆍ천상은 곧 일컬어 3선도라 함 [관무량수경. 대승의장8].

 

金剛經云 若爲人輕賤 是人先世罪業應墮惡道 以今世人輕賤故 先世罪業則爲消滅 只據平常*講究 乃經中常論 雪竇拈來頌這意 欲打破敎家鬼窟裏活計 昭明太子科此一分 爲能淨業障 敎中大意說此經靈驗 如此之人先世造地獄業 爲善力强未受 以今世人輕賤故 先世罪業則爲消滅 此經故能消無量劫來罪業 轉重成輕轉輕不受 復得佛果菩提 據敎家 轉此二十餘張經 便喚作持經 有什麽交涉 有底道 經自有靈驗 若恁麽 爾試將一卷放在閑處看 他有感應也無 法眼云 證佛地者 名持此經 經中云 一切諸佛 及諸佛*阿耨多羅三藐三菩提法 皆從此經出 且道喚什麽作此經 莫是黃卷赤軸底是麽 且莫錯認定盤星 金剛諭於法體堅固 故物不能壞 利用故 能摧一切物 擬山則山摧 擬海則海竭 就諭彰名 其法亦然 此般若有三種 一實相般若 二觀照般若 三文字般若 實相般若者卽是眞智 乃諸人脚跟下 一段大事 輝騰今古 逈絕知見 淨裸裸赤灑灑者是 觀照般若者卽是眞境 二六時中 放光動地 聞聲見色者是 文字般若者卽能詮文字 卽如今說者聽者 且道是般若不是般若 古人道 人人有一卷經 又道 手不執經卷 常轉如是經 若據此經靈驗 何止轉重令輕轉輕不受 設使敵聖功能未爲奇特 不見龐居士聽講金剛經 問座主曰 俗人敢有小問 不知如何 主云 有疑請問 士云 無*我相無人相 旣無我人相 敎阿誰講阿誰聽 座主無對 却云 某甲依文解義 不知此意 居士乃有頌云 無我亦無人 作麽有疏親 勸君休歷座 爭似直求眞 金剛般若性 外絕一纖塵 我聞幷信受 總是假稱名 此頌最好 分明一時說了也 *圭峰科四句偈云 凡所有相皆是虛妄若見諸相非相卽見如來 此四句偈義 全同證佛地者名持此經 又道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此亦是四句偈 但中間取其義全者 僧問晦堂 如何是四句偈 晦堂云 *話墮也不知 雪竇於此經上指出 若有人持此經者 卽是諸人本地風光本來面目 若據祖令當行 本地風光本來面目 亦斬爲三段 三世諸佛十二分敎不消一揑 到這裏 設使有萬種功能 亦不能管得 如今人只管轉經 都不知是箇什麽道理 只管道 我一日轉得多少 只認黃卷赤軸*巡行數墨 殊不知全從自己本心上起 這箇唯是轉處些子 *大珠和尙云 向空屋裏堆數函經看 他放光麽 只以自家一念發底心是功德 何故 萬法皆出於自心 一念是靈 旣靈卽通 旣通卽變 *古人道 靑靑翠竹盡是眞如 欝欝黃花無非般若 若見得徹去 卽是眞如 忽未見得 且道作麽生喚作眞如 *華嚴經云 若人欲了知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一切唯心造 爾若識得去 逢境遇緣 爲主爲宗 若未能明得 且伏聽處分 雪竇出眼頌大概 要明經靈驗也 頌云

 

講究; 硏究 探究

阿耨多羅三藐三菩提; <> anuttarā-samyak-saṃbodhi 略稱阿耨三菩提 阿耨菩提 此云無上正等正覺 無上正等覺 無上正遍知 阿耨多羅譯爲無上 三藐三菩提譯爲正遍知 乃佛陀所覺悟之智慧 含有平等圓滿之意 法華經玄贊二 阿云無 耨多羅云上 三云正 藐云等 又三云正 菩提云覺 卽是無上正等正覺

我相; 四相之一 圓覺經直解下云 由諸衆生最初不覺 迷本法身故 妄認五蘊幻妄身心 爲實我體 故名我相 計我展轉趣於餘趣 故名人相 計我盛衰苦樂變異相續 爲衆生相 計有一期命根不斷 爲壽者相

圭峰; 圭峰宗密 宗密(780-841) 華嚴宗第五祖 唐代果州(四川西充)人 俗姓何 世稱圭峰禪師 圭山大師 諡號定慧禪師 元和二年(807)赴京師應貢擧 途經遂州 聽聞道圓和尙說法 乃隨其出家 竝受具足戒 又依道圓之勸 參淨衆寺神會之弟子益州南印禪師 再謁洛陽報國寺之神照 元和五年 入澄觀座下 受持華嚴敎學 元和十一年正月 止於終南山智炬寺 自誓不下山 於此遍覽藏經三年 撰有圓覺經科文二卷 後入終南山草堂寺 潛心修學 著圓覺經大疏三卷 再遷寺南之圭峰蘭若 專事誦經修禪 太和二年(828)徵入宮中講經 帝賜紫方袍 相國裴休與朝野之士多受其敎 未久請歸山 會昌元年正月六日 坐化於興福塔院 壽六十二 臘三十四 著禪源諸詮集一百卷(現僅存序) 原人論一卷 盂蘭盆經疏二卷 華嚴經綸貫十五卷 圓覺經大疏釋義抄十三卷 金剛般若經疏論纂要二卷 起信論疏注四卷 注華嚴法界觀門一卷 中華傳心地禪門師資承襲圖一卷等三十餘部 [宋高僧傳六 傳燈錄十三 禪宗正脈一 佛祖統紀二十九 五燈會元二 全唐文七四三圭峰禪師塔銘幷序]

話墮; 自吐語而自分墮負也 卽失言 失策 又泛指禪家機用不合禪法

巡行數墨; 拘泥于言句的意義 是禪家反對的一種參學方式

大珠和尙; 大珠慧海 慧海 唐代僧 建州(福建)人 俗姓朱 世稱大珠和尙 大珠慧海 依越州(浙江紹興)大雲寺道智出家 初學經敎卽有所悟 後遊諸方 參馬祖道一 馬祖曰 自家寶藏不顧 抛家散走作什麽 師於言下自識本性 遂事馬祖六載 以受業師老 遽歸奉養 自撰頓悟入道要門論一卷 被竊呈馬祖 祖讚曰 越州有大珠 圓明光透 自在無遮障 此卽大珠和尙名之由來 [祖堂集十四 傳燈錄六 聯燈會要五 佛祖歷代通載十四]

古人道; 祖庭事苑五云道生法師說 然無典故

華嚴經云; 華嚴經十九夜摩宮中偈讚品文

 

금강경에 이르되 만약 타인에게 경천(輕賤)되면 이 사람은 선세(先世)의 죄업으론 응당 악도(惡道)에 떨어지련만 금세(今世)의 사람이 경천하는 연고로써 선세의 죄업이 곧 소멸된다 하니 다만 평상의 강구(*講究)에 의거한지라 곧 경중의 상론(常論)이거늘 설두가 염래(拈來)하여 이 뜻을 송함은 교가(敎家)가 귀굴(鬼窟) 속에서 활계(活計)함을 타파코자 함이다. 소명태자(昭明太子)가 이 1()을 과(; 科判)하여 능정업장(能淨業障)이라 하였다. 교중(敎中)의 대의(大意)는 이 경의 영험을 설함이니 이와 같은 사람(이 경을 수지독송하는 사람)은 선세에 지옥업을 지었더라도 선력(善力)이 강하기 때문에 받지 않으며 금세의 사람이 경천하는 연고로써 선세의 죄업이 곧 소멸하나니 이 경인 고로 능히 무량겁래(無量劫來)의 죄업을 소멸하되 중()을 굴려 경()을 이루고 경()을 굴려 불수(不受)하며 다시 불과(佛果)의 보리(菩提)를 얻는다 함이다. 교가(敎家)에 의거하건대 이 20여 장(; 量詞)의 경을 전독(轉讀)함을 곧 지경(持經)이라고 불러 짓나니 무슨 교섭이 있으리오. 어떤 이는 말하되 경이 스스로 영험이 있다 하나니 만약 그러하다면(恁麽) 네가 시험삼아 1권을 가져다 한적한 곳(閑處)에 놓아 두고 보아라, 그것()이 감응이 있느냐 또는 없느냐. 법안(法眼)이 이르되 불지(佛地)를 증득한 자를 이름하여 이 경을 수지(受持; )함이라 하며 경중에도 이르기를 일체제불과 및 제불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阿耨多羅三藐三菩提)이 다 이 경을 좇아서 나온다 하니 그래 말하라, 무엇을 일러 이 경이라 하는가. 이 황권적축(黃卷赤軸)이 이것이 아닐까, 또한() 정반성(定盤星)을 착인(錯認)하지 말아라. 금강은 법체(法體)의 견고함에 비유()하나니 고로 물건이 능히 파괴하지 못하며 예리함을 쓰는 연고로 능히 일체의 물건을 꺾되() 산을 향하면() 곧 산이 꺾이고 바다를 향하면 곧 바다가 마르는지라() 비유()로 나아가 이름이 나타나나니 그 법도 또한 그러하다. 이 반야가 3종이 있으니 1은 실상반야(實相般若)2는 관조반야(觀照般若)3은 문자반야(文字般若). 실상반야란 것은 곧 이 진지(眞智)니 곧 제인의 각근하(脚跟下)의 일단대사(一段大事)며 금고(今古)에 휘등(輝騰)하되 지견이 멀리 끊어져 정나라적쇄쇄(淨裸裸赤灑灑)한 것이 이것이다. 관조반야란 것은 곧 이 진경(眞境)이니 이륙시 중에 방광동지(放光動地)하면서 소리를 듣거나 색을 보는 자가 이것이다. 문자반야란 것은 곧 능전(能詮)하는 문자니 곧 여금에 설하는 자와 듣는 자이거니와 그래 말하라 이 반야인가, 이 반야가 아닌가. 고인이 말하도 사람마다 1권의 경이 있다 했고 또 말하되 손에 경권(經卷)을 가지지 않고도 늘 이와 같은 경을 굴린다 하였다. 만약 이 경의 영험에 의거하건대 어찌 중()을 굴려 경()하게 하며 경()을 굴려 불수(不受)함에 그치겠는가, 설사 성인(聖人)의 공능(功能)에 대적(對敵)하더라도 기특함이 되지 않는다. 보지 못하느냐 방거사가 금강경 강의를 듣다가 좌주(座主)에게 물어 가로되 속인이 감히 소문(小問)이 있는데 어찌해야 할지 알지 못합니다. 좌주가 이르되 의혹이 있으면 청컨대 물으십시오. 거사가 이르되 아상(*我相)이 없고 인상(人相)이 없다 하니 이미 아인상(我人相)이 없거늘 누구로 하여금 강설케 하며 누가 듣습니까. 좌주가 대답을 못하고 도리어 이르되 모갑은 글에 의해 뜻을 풀이하는지라 이 뜻을 알지 못합니다. 거사가 이에 송이 있어 이르되 아()가 없고 또한 인()도 없거늘/ 어찌(作麽) 소친(疏親)이 있으리오/ 그대에게 역좌(歷座)를 그치기를 권하노니(休講하란 말)/ 어찌 바로 진()을 구함만 같으랴/ 금강반야의 자성(自性; )/ 밖으로 한 섬진(纖塵)도 끊겼으므로/ 내가 듣고 아울러 신수(信受)함은/ 모두 이 거짓으로 일컫는 이름이다 하니 이 송이 가장 훌륭하여 분명히 일시에 설해 마쳤다. 규봉(*圭峰)이 사구게(四句偈)를 과(; 科判)하여 이르되 무릇 있는 바 모양()/ 다 이 허망이니/ 만약 제상(諸相)이 상이 아님을 보면/ 곧 여래를 본 것이다 한 이 사구게의 뜻이 불지(佛地)를 증득한 자와 전동(全同)하나니 이름이 이 경을 수지함이다 하며 또 말하되 만약 색으로써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써 나를 구한다면/ 이 사람은 사도(邪道)를 행하는지라/ 능히 여래를 보지 못한다 한 이것도 또한 이 사구게라 하니 단지 중간(中間; 經中)에 그 뜻을 전비(全備; )한 것을 취한 것이다. 중이 회당(晦堂; 祖心이니 위 제10黃龍心을 보라)에게 묻되 무엇이 이 사구게입니까. 회당이 이르되 화타(*話墮)한 줄도 또한 알지 못하느냐 하였다. 설두가 이 경상(經上)에서 가리켜 내니 만약 어떤 사람이 이 경을 수지하는 자는 곧 이 제인의 본지풍광(本地風光)이며 본래면목이지만 만약 조령(祖令)을 당행(當行)함에 의거할진대 본지풍광과 본래면목도 또한 베어져 3()이 되며 삼세제불과 십이분교도 1(; 누르다)이 쓰이지 않을지니 이 속에 이르면 설사 만 가지 공능(功能)이 있더라도 또한 능히 관득(管得)하지 못하리라. 여금의 사람은 다만 전경(轉經)을 관취(管取)하기만 하고 도무지 이것(是箇)이 무슨 도리인 줄 알지 못하나니 다만 관취(管取)하여 말하되 내가 하루에 다소(多少)를 전득(轉得)했다 한다. 다만 황권적축(黃卷赤軸)을 인지(認知)하여 순행수묵(*巡行數墨; 행을 따라 검은 글자를 세다)하기만 하고 전부 자기의 본심상(本心上)으로 좇아 일어나는지라 이것(這箇)이 오직 이 전처(轉處)의 사자(些子)인 줄 너무 알지 못한다. 대주화상(*大珠和尙)이 이르되 공옥(空屋) 속을 향해 몇 함()의 경을 쌓아 놓고 보아라, 그것이 방광하느냐 하니 지이(只以; 는 조사) 자가(自家; 자기)의 한 생각 발()한 마음이 이 공덕이니 무슨 연고냐, 만법이 다 자심(自心)에서 나오므로 일념이 이 영()이며 이미 영()한 즉 통하며 이미 통한 즉 변하여서이다. 고인이 말하되(*古人道) 청청(靑靑)한 취죽(翠竹)이 모두 이 진여며 울울(欝欝)한 황화(黃花)가 반야가 아님이 없다 하니 만약 보아 사무침을 얻어 간다면 곧 이 진여이려니와 홀연히 견득(見得)하지 못한다면 그래 말하라 무엇을 진여라고 불러 짓겠느냐. 화엄경에 이르되(*華嚴經云) 어떤 사람이 요지(了知)코자 한다면/ 삼세일체(三世一切)가 불()이다/ 응당 법계의 성품을 관할지니/ 일체가 오직 마음의 조작이다 하니 너희가 만약 식득(識得)하여 간다면 경계를 만나거나 인연을 만나매 주()가 되고 종()이 되려니와 만약 능히 명득(明得)하지 못할진대 다만() 처분(處分)을 복청(伏聽)하라. 설두가 출안(出眼)하여 대개(大概)를 송하니 경의 영험을 밝히고자 함이다. 송해 이르되

 

講究; 연구(硏究), 탐구(探究).

阿耨多羅三藐三菩提; <> anuttarā-samyak-saṃbodhi. 약칭이 아뇩삼보리(阿耨三菩提; 奴豆切 內沃切)ㆍ아뇩보리니 여기에선 이르되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ㆍ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ㆍ무상정편지(無上正遍知). 아뇩다라는 무상(無上)으로 번역하고 삼먁삼보리는 정편지(正遍知)로 번역하나니 곧 불타가 각오(覺悟)한 바의 지혜임. 평등원만(平等圓滿)의 뜻을 함유(含有)했음. 법화경현찬2. ()는 이르되 무()며 뇩다라(耨多羅)는 이르되 상()이며 삼()은 이르되 정()이며 먁()은 이르되 등()이며 또 삼()은 이르되 정()이며 보리(菩提)는 이르되 각()이니 곧 이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이다.

我相; 4상의 하나. 원각경직해하에 이르되 모든 중생이 최초의 불각으로 말미암아 본래의 법신을 미혹한 고로 5()의 환망(幻妄)의 신심(身心)을 망인(妄認)하여 진실한 아체(我體)로 삼는지라 고로 이름이 아상(我相)이다. 아가 전전(展轉)히 여취(餘趣)로 취향한다고 헤아리는지라 고로 이름이 인상(人相)이다. 아가 성쇠고락(盛衰苦樂)하면서 변이(變異)하며 상속한다고 헤아림을 중생상(衆生相)이라 한다. 1()의 명근(命根)이 있어 끊어지지 않는다고 헤아림을 수자상(壽者相)이라 한다.

圭峰; 규봉종밀임. 종밀(宗密) (780-841) 화엄종 제5. 당대 과주(사천 서충) 사람이니 속성은 하()며 세칭이 규봉선사(圭峰禪師)ㆍ규산대사(圭山大師)며 시호는 정혜선사(定慧禪師). 원화 2(807) 경사(京師)에 다다라 공거(貢擧)에 응하는데 길이 수주(遂州)를 경유했으며 도원화상(道圓和尙)의 설법을 청문(聽聞)하고 이에 그를 따라 출가했고 아울러 구족계를 받았음. 또 도원의 권유에 의해 정중사(淨衆寺) 신회(神會)의 제자 익주 남인선사(南印禪師)를 참했고 다시 낙양 보국사의 신조(神照)를 참알했음. 원화 5년 징관(澄觀)의 좌하(座下)에 들어가 화엄교학을 수지(受持)했음. 원화 11 년 정월 종남산 지거사(智炬寺)에 머물면서 스스로 맹세하기를 하산하지 않겠다 했음. 여기에서 장경을 3년 동안 편람(遍覽)했고 찬술(撰述)에 원각경과문(圓覺經科文) 2권이 있음. 후에 종남산 초당사(草堂寺)에 들어가 잠심(潛心; 마음을 가라앉힘)하고 수학하면서 원각경대소(圓覺經大疏) 3권을 지었음. 다시 사원 남쪽의 규봉란야(圭峰蘭若)로 옮겨 오로지 송경수선(誦經修禪)에 종사했음. 태화(太和) 2(828) 불러 궁중에 들어가 강경했는데 제()가 자방포(紫方袍)를 주었음. 상국(相國) 배휴(裴休)와 조야지사(朝野之士)가 많이들 그의 가르침을 받았는데 오래지 않아 귀산(歸山)을 청했음. 회창(會昌) 원년 정월 6일 흥복탑원(興福塔院)에서 좌화(坐化)했으니 나이는 62며 납은 34. 선원제전집 100(현재 겨우 만 남았음)ㆍ원인론 1권ㆍ우란분경소 2권ㆍ화엄경윤관 15권ㆍ원각경대소석의초 13권ㆍ금강반야경소론찬요 2권ㆍ기신론소주 4권ㆍ주화엄법계관문 1권ㆍ중화전심지선문사자승습도 1권 등 30여 부를 지었음 [송고승전6. 전등록13. 선종정맥1. 불조통기29. 오등회원2. 전당문743규봉선사탑명병서].

話墮; 스스로 말을 뱉고는 자분(自分)이 타부(墮負)함이니 곧 실언(失言), 실책(失策). 또 널리 선가(禪家)의 기용(機用)이 선법(禪法)에 합당하지 않음을 가리킴.

巡行數墨; 언구에 구니(拘泥; 구애)됨의 의의(意義)니 이는 선가의 반대적인 일종의 참학 방식.

大珠和尙; 대주혜해임 혜해(慧海) 당대승. 건주(建州; 복건) 사람이며 속성은 주며 세칭이 대주화상(大珠和尙)ㆍ대주혜해(大珠慧海). 월주(절강 소흥) 대운사 도지(道智)에게 의지해 출가했고 처음 경교(經敎)를 배우다가 곧 깨치는 바가 있었음. 후에 제방을 유행하다가 마조도일(馬祖道一)을 참했음. 마조가 가로되 자가(自家)의 보장(寶藏)은 돌아보지 않고 집을 버리고 산주(散走)하여 무엇하겠는가. 스님이 언하에 본성을 스스로 알았고 드디어 6() 동안 마조를 모셨음. 수업사(受業師)가 노쇠하였으므로 급히 돌아가 봉양(奉養)했음. 돈오입도요문론(頓悟入道要門論) 1권을 자찬(自撰)했는데 피절(被竊; 절도를 당함)하여 마조에게 보이자 마조가 찬양하며 가로되 월주에 대주(大珠)가 있어 원명한 빛이 투철(透徹)하고 자재하면서 차장(遮障)이 없다. 이것이 곧 대주화상(大珠和尙)이란 이름의 유래임 [조당집14. 전등록6. 연등회요5. 불조역대통재14].

古人道; 조정사원5에 이르되 도생법사(道生法師)의 설이라 했는데 그러나 전고(典故)가 없음.

華嚴經云; 화엄경19 야마궁중게찬품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