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주해

벽암록 제96칙 송(木佛) 평창

태화당 2021. 8. 28. 08:57

木佛不渡火燒却了也 唯我能知 常思*破竈墮東行西行有何不可 癩兒牽伴 杖子忽擊著在山僧手裏 山僧不用人 阿誰手裏無 方知辜負我似爾相似 摸索不著 有什麽用處 蒼天蒼天 三十年後始得 *寧可永劫沈淪 不求諸聖解脫 若向箇裏薦得 未免辜負 作麽生得不辜負去 拄杖子未免在別人手裏

 

破竈墮; 唐代僧 嵩山慧安法嗣 隱居嵩嶽 言行難測 傳將竈打破 對竈神說法 [傳燈錄四]

寧可永劫沈淪; 傳燈錄五靑原行思 師令希遷持書與南嶽讓和尙曰 汝達書了速迴 吾有箇鈯斧子 與汝住山 遷至彼未呈書 便問 不慕諸聖不重己靈時如何 讓曰 子問太高生 何不向下問 遷曰 寧可永劫沈淪 不慕諸聖解脫 讓便休

 

목불(木佛)은 불을 건너지 못함이여 소각해버렸다. 오직 나만이 능히 안다. 늘 파조타(*破竈墮)를 생각한다 동으로 가든 서로 가든 무슨 불가함이 있으리오. 문둥이가 동무를 끌고 온다. 주장자로 홀연히 격착(擊著)하매 산승의 손 안에 있나니 산승이 사람(; 어떤 책에 로 지어졌음)을 쓰지 않아도 누구의 손 안엔들 없겠는가. 바야흐로 나를 저버린 줄 알았다 흡사 너와 상사하다. 모색함을 얻지 못할진대 무슨 쓸 곳이 있겠는가. 창천, 창천이여. 30년 후라야 비로소 옳다. 차라리 영겁토록 침륜할지언정(*寧可永劫沈淪) 제성(諸聖)의 해탈을 구하지 않겠다. 만약 이 속(箇裏)을 향해 천득(薦得)하더라도 저버림을 면치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저버리지 않음을 얻어 가겠는가. 주장자가 다른 사람의 손 안에 있음을 면하지 못한다.

 

破竈墮; 당대승 숭산혜안(嵩山慧安)의 법사(法嗣). 숭악(嵩嶽)에 은거했는데 언행이 헤아리기 어려웠음. ()하기를 부뚜막()을 가져다 타파하고 조신(竈神)을 대해 설법했다 함 [전등록사].

寧可永劫沈淪; 전등록5 청원행사(靑原行思). 스님이 희천(希遷)을 시켜 지서(持書)하여 남악양(南嶽讓; 懷讓) 화상에게 주게 하면서 가로되 네가 서신을 전달하고 나서 속히 돌아오너라. 나에게 저() 돌부자(鈯斧子)가 있으니 너에게 주어서 주산(住山)하게 하겠다. 희천이 거기에 이르자 서신을 주지도 않고 곧 묻되 제성(諸聖)을 흠모하지 않고 기령(己靈)도 존중하지 않을 땐 어떻습니까. 회양이 이르되 자네의 물음이 너무 높구나 왜 향하(向下)하여 묻지 않는가. 희천이 가로되 차라리 가히 영겁토록 침륜(沈淪)할지언정 제성의 해탈을 흠모하지 않겠습니다. 회양이 곧 쉬었다.

 

木佛不渡火 常思破竈墮 此一句亦頌了 雪竇因此木佛不渡火 常思破竈墮 嵩山破竈墮和尙不稱姓字 言行叵測隱居嵩山 一日領徒 入山塢間 有廟甚靈 殿中唯安一竈 遠近祭祀不輟 烹殺物命甚多 師入廟中 以拄杖敲竈三下云 咄 汝本塼土合成 靈從何來 聖從何起 恁麽烹殺物命 又乃擊三下 竈乃自傾破墮落 須臾有一人 靑衣峨冠 忽然立師前設拜曰 我乃竈神 久受業報 今日蒙師說無生法 已脫此處 生在天中 特來致謝 師曰 汝本有之性 非吾强言 神再拜而沒 侍者曰 某甲等久參侍和尙 未蒙指示 竈神得何徑旨 便乃生天 師曰 我只向伊道 汝本塼土合成 靈從何來 聖從何起 侍僧俱無對 師云 會麽 僧云 不會 師云 禮拜著 僧禮拜 師云 破也破也 墮也墮也 侍者忽然大悟 後有僧擧似安國師 師歎云 此子會盡物我一如 竈神悟此則故是 其僧乃五蘊成身 亦云破也墮也 二俱開悟 且四大五蘊 與塼瓦泥土 是同是別 旣是如此 雪竇爲什麽道 杖子忽擊著 方知辜負我 因甚却成箇辜負去 只是未得拄杖子在 且道雪竇頌木佛不渡火 爲什麽却引破竈墮公案 老僧直截與爾說 他意只是絕得失情塵意想 淨裸裸地 自然見他親切處也

 

목불(木佛)은 불을 건너지 못함이여, 늘 파조타(破竈墮)를 생각한다 하니 이 1구로 또한 송료(頌了)했다. 설두가 이 목불은 물을 건너지 못한다 함으로 인해 늘 파조타를 생각한다 함은 숭산의 파조타 화상이 성자(姓字)를 일컫지 않고 언행은 헤아리기 어려웠으며 숭산에 은거했다. 어느 날 도중(徒衆)을 거느리고 산 언덕 사이에 들어갔는데 사당()이 있어 매우 신령스러웠다. 전중(殿中)에 오직 한 부뚜막()을 안치했는데 원근(遠近)에서 제사(祭祀)를 그치지 않아 물명(物命)을 팽살(烹殺)함이 매우 많았다. 스님이 묘중(廟中)에 들어가 주장자로써 부뚜막을 세 번(三下) 두드리고 이르되 돌(), 너는 본래 전토(塼土)로 합성(合成)되었거늘 영()이 어디로 좇아서 오며 성()이 어디로 좇아 일어나기에 이렇게 물명(物命)을 팽살(烹殺)하느냐 하고 또 곧 세 번(三下) 쳤다. 부뚜막이 이에 저절로 기울어지면서 깨어져 타락(墮落)했다. 수유(須臾; 잠시 후)에 어떤 한 사람이 청의아관(靑衣峨冠; 푸른 옷에 높은 )으로 홀연히 스님 앞에 서더니 예배를 베풀고 가로되 나는 곧 조신(竈神)입니다. 오랫동안 업보를 받다가 금일 스님의 무생법(無生法) 설하심을 입어() 이미 이곳을 벗어나 천중(天中)에 태어나 있지만 특별히 와서 감사드립니다. 스님이 가로되 너에게 본래 있는 자성(自性; )이므로 내가 억지로() 설한 게 아니다. 신이 재배(再拜)하고 사라졌다(). 시자가 가로되 모갑 등은 오랫동안 화상을 참시(參侍)하였으되 지시를 입지() 못했거늘 조신(竈神)은 어떤 경지(徑旨; 徑截의 지취)를 얻었기에 바로(便) 곧 생천(生天)했습니까. 스님이 가로되 내가 다만 그를 향해 말하되 너는 본래 전토(塼土)로 합성되었거늘 영()이 어디로 좇아서 오며 성()이 어디로 좇아 일어나느냐 하였다. 시승(侍僧)이 모두 대답이 없자 스님이 이르되 알겠느냐. 중이 이르되 알지 못합니다. 스님이 이르되 예배하거라(禮拜著). 중들이 예배하자 스님이 이르되 깨어졌다, 깨어졌다. 떨어졌다, 떨어졌다. 시자가 홀연히 대오했다. 후에 어떤 중이 안국사(安國師; 慧安)에게 거사(擧似)하니 스님이 감탄하며 이르되 차자(此子; 는 남자의 통칭)가 물아일여(物我一如)를 알아 다했다(會盡) 하였다. 조신(竈神)이 이를 깨달은 것은 곧 짐짓 옳거니와 그 중(시자)은 이에 5()으로 몸을 이루었거늘 또한 이르되 깨어졌다, 떨어졌다 하매 둘(조신과 시자) 다 개오(開悟)했는가. 다만() 45(四大五蘊)이 전와이토(塼瓦泥土)와 더불어 이 같은가 이 다른가. 이미 이는 이와 같거늘 설두가 무엇 때문에 말하되 주장자로 홀연히 격착(擊著)하매 바야흐로 나를 저버린 줄 알았다 하였는가. 무엇으로 인해 도리어 저() 저버림을 이루어 가는가. 다만 이는 주장자를 얻지 못하여 있음이니 그래 말하라. 설두가 목불부도화(木佛不渡火)를 송하면서 무엇 때문에 도리어 파조타 공안을 인용했는가. 노승(원오)이 직절(直截)하여 너희에게 설해 주노니 그(설두)의 뜻이 다만 이는 득실의 정진의상(情塵意想)을 끊어 정나라지(淨裸裸地)이므로 자연히 그(파조타)의 친절처(親切處)를 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