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주해

벽암록 제98칙 수시 본칙 평창

태화당 2021. 8. 28. 09:08

垂示云 一夏嘮嘮打葛藤 幾乎絆倒五湖僧 金剛寶劍當頭截 始覺從來百不能 且道作麽生是金剛寶劍 *眨上眉毛 試請露鋒鋩看

 

眨上眉毛; 上 助詞 一禪家勸誡學人 振作精神 頓悟禪法的習語 二形容領會禪義 應接禪機 極爲快捷 此指一

 

수시(垂示)하여 이르되 일하(一夏)에 노로(嘮嘮; 지껄이는 모양)하며 타갈등(打葛藤; 언구에 뒤얽힘)하였으니 얼마나 오호(五湖)의 승인(僧人)들을 반도(絆倒; 얽어매고 거꾸러뜨림)하였던가. 금강보검으로 당두(當頭; 當面)를 절단하매 비로소 종래에 온갖 것에 능하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그래 말하라 무엇이 이 금강보검인가, 눈썹을 깜작거려라(*眨上眉毛), 시험삼아 청하노니 봉망(鋒鋩; 칼날)을 드러내어 보아라.

 

眨上眉毛; ()은 조사. 1. 선가에서 학인에게 권계(勸誡)하여 정신을 진작하고 선법을 돈오하라는 습어(習語). 2. 선의 뜻을 영회(領會)하고 선기(禪機)에 응접함이 극히 쾌첩(快捷)함을 형용. 여기에선 1을 가리킴.

 

九八*天平和尙行脚時參*西院 常云 莫道會佛法 覓箇擧話人也無漏逗不少 這漢是則是 爭奈靈龜曳尾 一日西院遙見召云 從漪*鐃鉤搭索了也 平擧頭著 兩重公案 西院云 錯也須是鑪裏煅過始得 *劈腹剜心 *三要印開朱點窄 未容擬議主賓分 平行三兩步已是半前落後 這漢泥裏洗土塊 西院又云 錯劈腹剜心 人皆喚作兩重公案 殊不知似水入水 如金博金 平近前依前不知落處 展轉摸索不著 西院云 適來這兩錯 是西院錯 是上座錯前箭猶輕後箭深 平云 從漪錯錯認*馬鞍橋 喚作爺下頷 似恁麽衲僧 打殺千箇萬箇 有什麽罪 西院云 錯雪上加霜 平休去錯認定盤星 果然不知落處 軒知爾鼻孔在別人手裏 西院云 且在這裏過夏 待共上座商量這兩錯西院尋常*脊梁硬似鐵 當時何不趕將出去 平當時便行也似衲僧 似則似 是則未是 後住院謂衆云貧兒思舊債 也須是*點過 我當初行脚時 被*業風吹 到思明長老處 連下兩錯 更留我過夏 待共我商量 我不道恁麽時錯 我發足向南方去時 早知道錯了也爭奈這兩錯何 千錯萬錯 爭奈沒交涉 轉見郞當愁殺人

 

天平; 天平從漪; 從漪 宋代僧 得法於淸溪洪進(嗣玄沙) 居相州(今河南安陽)天平山 [傳燈錄二十六 五燈會元八]

西院; 西院思明 思明 五代臨濟宗僧 參寶壽沼(嗣臨濟)得法 住汝州(今河南臨汝)西院 [傳燈錄十二]

鐃鉤搭索; 鐃 通撓 鐃鉤和搭索均爲鈎物器具 比喩禪家作略東拉西扯 陷入言辭知見而非直截了當

劈腹剜心; 謂劈腹剜心盡情吐露

三要印開朱點窄; 臨濟語錄 上堂 僧便問 如何是第一句 師云 三要印開朱點窄 未容擬議主賓分 云 如何是第二句 師云 妙解豈容無著問 漚和爭負截流機 云 如何是第三句 師云 但看棚頭弄傀儡 抽牽全藉裏頭人

馬鞍橋; 卽馬鞍 其拱起處形似橋 故稱

脊梁; 脊梁骨 脊柱 用以比喩人的志氣和精神力量 亦比喩人的節操

點過; 點檢 過 助詞

業風; 謂善惡之業如風

 

九八()하다. 천평화상(*天平和尙)이 행각할 때 서원(*西院)을 참했다. 늘 이르되 불법을 이회(理會)한다고 말하지 말아라. () 거화(擧話)하는 사람을 찾아도 또한 없다. 누두(漏逗; 泄漏)가 적지 않다. 저한(這漢)이 옳기야 곧 옳지만 영귀(靈龜)가 꼬리를 당김임을 어찌하랴. 어느 날 서원이 멀리서 보고 불러 이르되 종의(從漪). 요구탑삭(*鐃鉤搭索)했다. 천평이 머리를 들었다. (; 붙다). 양중공안(兩重公案; 尋常漏逗가 적지 않더니 지금은 남의 말을 따라 머리를 돌린 연고로 이것이 양중공안)이다. 서원이 이르되 착(; 어긋나다). 또한 반드시 이는 화로 속에서 단과(煅過; 는 조사)해야 비로소 옳다. 배를 가르고 심장을 도려내었다(*劈腹剜心). 삼요인이 열려 인주(印朱)가 점 찍히니( *三要印開朱點窄) 의의(擬議)를 용납하지 아니한 전에 주빈(主賓)이 나뉜다. 천평이 세두(三兩) 걸음을 행했다. 이미 이는 반전낙후(半前落後). 저한(這漢)이 진흙 속에서 흙덩이를 씻는구나. 서원이 또 이르되 착(). 배를 가르고 심장을 도려내는구나(劈腹剜心) 사람들이 모두 양중공안(兩重公案)이라고 불러 짓지만 불이 물에 들어감과 흡사하고 금으로 금과 바꿈과 같은 줄 너무 알지 못한다. 천평이 앞으로 다가갔다. 의전(依前)히 낙처를 알지 못하는구나. 전전(展轉)히 모색함을 얻지 못하는구나. 서원이 이르되 아까의 이 양착(兩錯)은 이 서원의 착인가 이 상좌의 착인가. 전전(前箭)은 오히려 가볍지만 후전(後箭)이 깊다. 천평이 이르되 종의(從漪)의 착입니다. 마안교(*馬鞍橋)를 착인(錯認)하여 아비의 아래턱이라고 불러 지음이다. 이런 납승과 같은 이는 천 개 만 개를 때려 죽인들 무슨 죄가 있으리오. 서원이 이르되 착(). 설상가상(雪上加霜)이다. 천평이 쉬려고 하자 정반성(定盤星)을 착인(錯認)하였으니 과연 낙처를 알지 못했다. 너의 콧구멍이 다른 사람의 손 안에 있는 줄을 헌지(軒知; 은 환한 모양, 탁 트인 모양)한다. 서원이 이르되 다만 이 속에 있으면서 과하(過夏)하며 상좌와 함께 이 양착(兩錯)을 상량(商量)함을 기다려라. 서원이 심상(尋常)에 척량골(*脊梁)이 굳세기가 쇠와 같더니 당시에 왜 쫓아 보내지 않았을까. 천평이 당시에 바로 떠났다. 또한 납승과 흡사한지라 비슷하기야 곧 비슷하지만 옳기는 곧 옳지 않다. 후에 주원(住院)하면서 대중에게 일러 이르되 빈아(貧兒; 貧者)가 묵은 빚을 생각하는구나. 또한 반드시 이는 점과(*點過; 점검)해야 하리라. 내가 당초에 행각할 때 업풍(*業風)의 붊을 입어 사명장로(思明長老)의 처소에 이르렀는데 연달아 양착(兩錯)을 내리더니 다시 나를 만류하며 과하(過夏)하면서 나와 함께 상량함을 기다려라 했다. 나는 이러한 때 어긋났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내가 발족(發足)하여 남방을 향해 갈 때 벌써, 어긋났다고 말할 줄 알았다. 이 양착(兩錯; 자기의 은 그래 두고 서원의 양착은 또 어찌하겠는가)은 어찌하려느냐. 천착만착(千錯萬錯)하더라도 교섭이 없음을 어찌하려느냐(비록 천착만착인 줄 알더라도 서원의 양착엔 교섭 없다). 더욱 낭당(郞當)을 보는지라 사람을 너무 수심케 한다).

 

天平; 천평종의임; 종의(從漪) 송대승. 청계홍진(현사를 이었음)에게서 득법했고 상주(지금의 하남 안양) 천평산에 거주했음 [전등록26. 오등회원8].

西院; 서원사명임. 사명(思明) 오대 임제종승. 보수소(寶壽沼; 임제를 이었음)를 참해 득법했고 여주(지금의 하남 임여) 서원(西院)에 주()했음 [전등록12].

鐃鉤搭索; ()는 뇨()와 통함. 요구와 탑삭은 모두 물건을 옭아매는() 기구가 됨. 선가의 작략이 동랍서지(東拉西扯; 동쪽으로 끌고 서쪽으로 가름하다)하여 언사와 지견에 함입(陷入)하여 직절(直截)의 요당(了當; 大事를 성공하여 심지를 明悟)이 아님에 비유함.

劈腹剜心; 이르자면 벽복완심(劈腹剜心; 배를 가르고 심장을 도려내다)하여 정을 다해 토로함

三要印開朱點窄; 임제어록. 상당. 중이 곧 묻되 무엇이 제1구입니까. 스님이 이르되 삼요인(三要印)을 열어 붉은 점이 찍히매 의의(擬議)를 용납하지 아니한 전에 주빈이 나뉜다. 이르되 무엇이 이 제2구입니까. 스님이 이르되 묘해(妙解)가 어찌 무착의 물음을 용납하리오만 구화(漚和)로는 어찌 절류기(截流機)를 저버리리오. 이르되 무엇이 이 제3구입니까. 스님이 이르되 다만 붕두(棚頭)의 괴뢰 희롱함을 보아라 잡아당김이 전부 안쪽 사람을 의뢰한다.

馬鞍橋; 곧 말의 안장이니 그 공기(拱起; 맞잡아 일어나다)한 곳의 형상이 다리와 같은지라 고로 일컬음.

脊梁; 척량골(脊梁骨)이니 척주(脊柱; 등골뼈). 사람의 지기(志氣)와 정신의 역량의 비유로 사용함. 또한 사람의 절조(節操)에 비유함.

點過; 점검이니 과()는 조사.

業風; 이르자면 선악의 업이 바람과 같음.

 

思明先參*大覺 後承嗣*前寶壽 一日問 踏破化城來時如何 壽云 利劍不斬死漢 明云 斬 壽便打 思明十回道斬 壽十回打云 這漢著甚死急 將箇死屍 抵他痛棒 遂喝出 其時有一僧 問寶壽云 適來問話底僧 甚有道理 和尙方便接他 寶壽亦打趕出這僧 且道寶壽亦趕這僧 唯當道他說是說非 且別有道理 意作麽生 後來俱承嗣寶壽 思明一日出見南院 院問云 甚處來 明云 *許州來 院云 將得什麽來 明云 將得箇江西*剃刀 獻與和尙 院云 旣從許州來 因甚却有江西剃刀 明把院手搯一搯 院云 侍者收取 思明以衣袖拂一拂便行 院云 *阿剌剌 阿剌剌 天平曾參*進山主來 爲他到諸方 參得些*蘿蔔頭禪 在肚皮裏 到處便輕開大口道 我會禪會道 常云 莫道會佛法 覓箇擧話人也無 屎臭氣薰人 只管放輕薄 且如諸佛未出世 祖師未西來 未有問答 未有公案已前 還有禪道麽 古人事不獲已 對機垂示 後人喚作公案 因世尊拈花 迦葉微笑 後來阿難問迦葉 世尊傳金襴外別傳何法 迦葉云 阿難 阿難應諾 迦葉云 倒却門前刹竿著 只如未拈花阿難未問已前 甚處得公案來 只管被諸方*冬瓜印子印定了便道 我會佛法奇特 莫敎人知 天平正如此 被西院叫來連下兩錯 直得*周慞惶怖分疏不下 前不搆村後不迭店 有者道 說箇西來意 早錯了也 殊不知西院這兩錯落處 諸人且道 落在什麽處 所以道 他參活句不參死句 天平擧頭 已是落二落三了也 西院云錯 他却不薦得當陽用處 只道我肚皮裏有禪 莫管他 又行三兩步 西院又云錯 却依舊黑漫漫地 天平近前 西院云 適來兩錯 是西院錯 是上座錯 天平云 從漪錯 且喜沒交涉 已是第七第八頭了也 西院云 且在這裏度夏 待共上座商量這兩錯 天平當時便行 似則也似 是則未是 也不道他不是 只是*趕不上 雖然如是 却有些子衲僧氣息 天平後住院謂衆云 我當初行脚時 被業風吹到思明和尙處 連下兩錯 更留我度夏 待共我商量 我不道恁麽時錯 我發足向南方去時 早知道錯了也 這漢也殺道 只是落第七第八頭 *料掉沒交涉 如今人聞他道 發足向南方去時 早知道錯了也 便去卜度道 未行脚時 自無許多佛法禪道 及至行脚 被諸方熱瞞不可 未行脚時 喚地作天 喚山作水 幸無一星事 若總恁麽作流俗見解 何不買一片帽戴大家過時 有什麽用處 佛法不是這箇道理 若論此事 豈有許多般葛藤 爾若道我會他不會 擔一檐禪 遶天下走 被明眼人勘破 一點也使不著 雪竇正如此頌出

 

大覺; 魏府大覺禪師 臨濟義玄法嗣 未詳名號貫籍生卒年 [傳燈錄十二]

前寶壽; 指寶壽沼 五代後唐僧 字寶壽 名沼 又作保壽沼 嗣臨濟義玄 [五燈會元十一 廣燈錄十二]

許州; 今河南省許昌

剃刀; 剃除毛髮者

阿剌剌; 又作阿喇喇 形容驚駭之樣子

進山主; 指襄州淸溪山主洪進 五代後唐僧 亦作洪璡 師事羅漢桂琛得法 桂琛居地藏時居第一座 輔弼久之 後出居襄州(今湖北襄樊)淸溪山 禪侶跟踪而至 繞座千指 一日端坐說法而寂 [傳燈錄二十四] 五燈會元八淸谿山洪進禪師 師經行次 衆僧隨從 乃謂衆曰 古人有甚麼言句 大家商量 時有從漪上座出衆擬問次 師曰 這沒毛驢 漪渙然省悟

蘿蔔頭禪; 有小滋味而烹之便敗壞 [碧巖錄第九十八則種電鈔] 蘿蔔頭 蘿蔔 頭 後綴

冬瓜印子; 冬瓜刻成的印章 比喩邪師的見解 又胡亂印可的言詞

周慞; 周 至也 極端的 廣雅 周 至也

趕不上; 上 著也

料掉; 又作料調 料度計校之義 或遼迢的轉訛 疏遠之義

 

사명(思明; 임제하 2)이 먼저 대각(*大覺)을 참()하고 뒤에 전보수(*前寶壽)를 승사(承嗣)했다. 어느 날 묻되 화성(化城; 위 제25칙을 보라)을 답파(踏破)하고 왔을 때는 어떻습니까. 보수(寶壽)가 이르되 예리한 검은 죽은 놈을 베지 않는다. 사명이 이르되 베셨습니다(). 보수가 문득 때렸다. 사명이 10회 베셨습니다 라고 말했고 보수가 10회 때리고 이르되 이 자(這漢)가 무슨 사급(死急)함에 붙어 이() 사시(死屍)를 가져다 저 통방(痛棒)과 겨루는가(), 드디어 할출(喝出; 꾸짖어 쫏아냄)했다. 그때 한 중이 있어 보수에게 물어 이르되 적래(適來; 조금 전)에 문화(問話)한 중은 심히() 도리가 있으니 화상이 방편으로 그를 접인(接引)하십시오. 보수가 또한 때리고 이 중을 쫏아내었다. 그래 말하라. 보수가 또한 이 중을 쫏아낸 것이 오직 그(這僧)에게만 설시설비(說是說非)하여 마땅히 말했음인가, 또는() 따로이 도리가 있느가. 뜻이 어떤 것인가. 후래(後來)에 모두 보수를 승사(承嗣)했다. 사명이 어느 날 나가서 남원(南院; 慧顒이니 임제하 2)을 상견하니 남원이 물어 이르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사명이 이르되 허주(*許州)에서 왔다. 남원이 이르되 무엇을 장득(將得; 가지다. 은 조사)하여 왔느냐. 사명이 이르되 저 강서(江西)의 체도(*剃刀)를 장득(將得)하였으니 화상에게 바쳐() 줄까 한다. 남원이 이르되 이미 허주로 좇아왔거늘 무엇 때문에(因甚) 도리어 강서의 체도가 있는가. 사명이 남원의 손을 잡아 긁어서(; 挖也) 한 번 긁었다. 남원이 이르되 시자야, 수취(收取)하라. 사명이 옷소매로 떨쳐서 한 번 떨치고 곧 떠났다. 남원이 이르되 아랄랄(*阿剌剌), 아랄랄. 천평(天平)이 일찍이 진산주(*進山主)를 참()하고 왔으며 그가 제방에 이르러 이(; 此也) 나복두선(*蘿蔔頭禪)을 참득(參得)하여 두피(肚皮) 속에 두었으므로() 도처에서 곧 가볍게 큰 입을 벌려 말하되 내가 선()을 알고 도를 안다 하였다. 늘 말하되 불법을 이회(理會)한다고 말하지 말아라. () 거화(擧話)하는 사람을 찾아도 또한 없다 하여 시취기(屎臭氣; 똥 냄새)로 타인을 훈()하며 다만 경박(輕薄)을 관방(管放)하니 차여(且如) 제불이 출세하지 않고 조사가 서래(西來)하지 않고 문답이 있지 않고 공안이 있지 아니한 이전에도 도리어 선도(禪道)가 있느냐. 고인이 일(()이 불획이(不獲已; 부득이)하여 대기수시(對機垂示)한 것을 후인이 공안이라고 불러 지으니 인하여 세존이 염화(拈花)하시매 가섭이 미소하였으며 후래에 아난이 가섭에게 묻되 세존이 금란(金襴; 金襴袈裟니 위 제15칙을 보라)을 전하신 밖에 따로 어떤 법을 전하셨습니까. 가섭이 이르되 아난아, 아난이 응낙하자 가섭이 이르되 문 앞의 찰간(刹竿)을 거꾸러뜨려버려라 하였거니와 지여(只如) 염화(拈花)하지 않고 아난이 묻지 아니한 이전엔 어느 곳에서 공안을 얻어 오리오. 다만 관대(管帶)하여 제방에서 동과인자(*冬瓜印子)로 인정(印定)해 마침을 입고는 곧 말하되 내가 불법의 기특함을 안다. 남이 알지 못하게 해야 겠다 하나니 천평이 바로 이와 같다. 서원이 규래(叫來; 는 조사)하여 연달아 양착(兩錯)을 내림을 입고는 바로 주장황포(*周慞惶怖)함을 얻어 분소(分疏; 分辨)함을 얻지 못하니 앞으로는 촌을 만나지 못하고 뒤로는 가게를 바꾸지 못했다. 어떤 자는 말하되 저() 서래의(西來意)를 설함이 벌써 틀려버렸다 하나니 서원의 이 양착(西院)의 낙처를 너무 알지 못한다. 제인은 그래 말하라, 어느 곳에 떨어져 있느냐. 소이로 말하되 그는 활구를 참하고 사구를 참하지 않는다 하니 천평이 머리를 든 것이 이미 이는 둘에 떨어지고 셋에 떨어져버린 것이다. 서원이 이르되 착()이라 해도 그가 도리어 당양(當陽; 햇빛을 對著하여 환히 드러나서 명백함)의 용처(用處)를 천득(薦得; 領解)하지 못하고 다만 나의 두피(肚皮) 속에 선()이 있다고 말하며 그(서원)에 상관(相管)하지 않고 또 세두(三兩) 걸음 행하니 서원이 또 이르되 착()이라 하여도 도리어 의구히 흑만만지(黑漫漫地). 천평이 앞으로 다가가자 서원이 이르되 적래(適來; 아까. 조금 전)의 양착(兩錯)은 이 서원의 착인가 이 상좌의 착인가. 천평이 이르되 종의(從漪)의 착입니다 하니 다만 교섭 없음을 기뻐하나니 이미 이는 제칠제팔두(第七第八頭; 落七落八). 서원이 이르되 다만 이 속에 있으면서 도하(度夏; 過夏)하며 상좌와 함께 이 양착(兩錯)을 상량(商量)함을 기다려라. 천평이 당시에 바로 떠났으나 비슷하기는 곧 비숫하지만 옳기는 곧 옳지 않나니 또한 그(천평)가 옳지 않다고 말함이 아니라 다만 이는 도달하지 못했음이다(*趕不上).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지만 도리어 조금(些子)의 납승의 기식(氣息)이 있다. 천평이 후에 주원(住院)하면서 대중에게 일러 이르되 내가 당초에 행각할 때 업풍(*業風)의 붊을 입어 사명장로(思明長老)의 처소에 이르렀는데 연달아 양착(兩錯)을 내리더니 다시 나를 만류하며 도하(度夏; 過夏)하면서 나와 함께 상량함을 기다려라 했다. 나는 이러한 때 어긋났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내가 발족(發足)하여 남방을 향해 갈 때 벌써, 어긋났다고 말할 줄 알았다 하니 저한(這漢)이 또한 심하게 말했으나(殺道) 다만 이는 제칠제팔두(第七第八頭)에 떨어진 것이라서 요도(*料掉)하여도 교섭이 없다. 여금의 사람은 그가 말하되 발족(發足)하여 남방을 향해 갈 때 벌써, 어긋났다고 말할 줄 알았다 한 것을 듣고는 곧 가서 복탁(卜度)하여 말하되 행각하지 아니한 때엔 저절로 허다한 불법선도(佛法禪道)가 없다가 행각함에 이르러선(及至) 제방의 열만(熱瞞; 매우 속임)을 입으니 옳지 못하다. 행각하지 아니한 때에도 땅을 일러 하늘이라고 하며 산을 일러 물이라고 하여 다행히 일성사(一星事; 一點事)도 없다 하나니 만약 다 이러히 유속(流俗; 凡俗)한 견해를 짓는다면 어찌하여 한 조각의 모자를 사서 쓰고는() 대가(大家)로서 시절을 지내지 않느냐, 무슨 용처(用處)가 있으리오. 불법이 이는 이런(這箇) 도리가 아니니 만약 차사(此事)를 논하자면 어찌 허다한 종류()의 갈등이 있으리오. 너희가 만약 말하되 나는 알고 타인은 알지 못한다 하여 한 짐의 선()을 짊어지고 천하를 두루() 달리다가 명안인(明眼人)의 감파(勘破)를 입으면 한 점도 사용함을 얻지 못하나니(使不著) 설두가 바로 이와 같음을 송해 낸다.

 

大覺; 위부(魏府) 대각선사니 임제의현의 법사. 명호(名號)ㆍ관적(貫籍)ㆍ생졸년은 미상 [전등록12].

前寶壽; 보수소(寶壽沼)를 가리킴. 오대 후당승. 자는 보수며 이름은 소. 또 보수소(保壽沼)로 지음. 임제의현을 이었음 [오등회원11. 광등록12].

許州; 지금의 하남성 허창(許昌).

剃刀; 모발(毛髮)을 체제(剃除)하는 것.

阿剌剌; 또 아라라(阿喇喇)로 지음. 경해(驚駭; 놀람)의 양자(樣子)를 형용.

進山主; 양주(襄州) 청계산주(淸溪山主) 홍진(洪進)을 가리킴. 오대 후당승. 또 홍진(洪璡)으로 지음. 라한계침(羅漢桂琛)을 사사(師事)하여 득법했고 계침이 지장(地藏)에 거주할 때 제1좌에 거처하며 보필함이 오래였음. 후에 출세해 양주(襄州; 지금의 호북 양번) 청계산(淸溪山)에 거주했음. 선려(禪侶)가 근종(跟踪; 뒤를 따르다)하여 이르렀고 요좌(繞座; 법좌를 에워 쌈)가 천지(千指)였음. 어느 날 단좌(端坐)하여 설법하고 적()했음 [전등록24]. 오등회원8 청계산 홍진선사. 스님이 경행(經行)하던 차에 중승(衆僧)이 수종(隨從)했다. 이에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고인이 무슨 언구가 있어서 대가(大家; 諸人)가 상량(商量)하는가. 때에 종의상좌(從漪上座)가 대중에서 나와 물으려던 차에 스님이 가로되 이 털 없는 나귀야. 종의가 환연(渙然)하여 성오(省悟)했다.

蘿蔔頭禪; 적은 자미(滋味)는 있으나 그것을 삶으면 바로 패괴(敗壞)[벽암록제98칙종전초]. 蘿蔔頭 나복(蘿蔔; )이니 두()는 후철.

冬瓜印子; 동과를 깎아서 만든 인장(印章). 삿된 스승의 견해에 비유함. 또 호란(胡亂; 의 뜻)히 인가함의 언사.

周慞; ()는 지()니 극단적. 광아 주() ().

趕不上; ()은 착().

料掉; 또 요조(料調)로 지음. 요탁계교(料度計校; 헤아림)의 뜻. 혹 요초(遼迢)의 전와(轉訛)니 소원(疏遠)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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