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後序
雪竇頌古百則 叢林學道詮要也 其間取譬經論或儒家文史 以發明此事 非具眼宗匠時爲後學擊揚剖析 則無以知之
圜悟老師 在成都時 予與諸人請益其說 師後住夾山道林 復爲學徒扣之 凡三提*宗綱 語雖不同 其旨一也 門人掇而錄之 旣二十年矣 師未甞過而問焉 流傳四方 或致*踳駁 諸方且因其言以其道不能尋繹之 而妄有改作 則此書遂廢矣 學者幸諦其傳焉
宣和乙巳春暮*上休 *[刀/牛]人*關友無黨記
●後序; 文體名 猶跋 刊於卷末的序文
●宗綱; 宗旨綱要
●踳駁; 錯亂 駁雜 玉篇 踳駁 色雑不同
●上休; 音義未詳 上 上旬 休 了 或疑指十日
●[刀/牛] 書無[刀/牛]字 疑牟
●關友無黨; 傳記未詳
설두의 송고(頌古) 백칙(百則)은 총림 학도(學道)의 전요(詮要; 詮釋의 要綱)니 그 사이(百則內)에 비유와 경론 혹은 유가(儒家)와 문사(文史; 文學과 史學)를 취해 차사(此事)를 발명(發明; 밝히다. 發은 明임)하는 데 썼으니 눈을 갖춘 종장(宗匠; 禪宗의 大師)이 적시(適時; 時)에 후학을 위해 격양(擊揚)하고 부석(剖析)하지 않는다면 곧 그것(차사)을 알 소이(所以; 以)가 없는지라
원오노사(圜悟老師)가 성도(成都)에 있을 때 내가 제인(諸人)과 더불어 그 설(說)을 청익(請益)하였다. 스님이 후에 협산(夾山) 도림(道林)에 거주하였는데 다시 학도(學徒)가 그것(송고 백칙)을 구문(扣問; 扣)했기 때문에 무릇 종강(*宗綱)을 세 번 제창(提唱; 提)하였다. 말씀은 비록 부동(不同)했으나 그 지취(旨)는 하나였다. 문인(門人)이 엮어서(掇) 그것을 기록함이 이미 20년이었는데 스님은 일찍이 이르러(過) 묻지 않았다. 사방에 유전(流傳)되어 혹 준박(*踳駁)됨에 이르기도 하였는데 제방에서 또한(且) 그 말씀을 인하여선 그 도를 능히 심역(尋繹; 推求)하지 못한다 하여 망령되이 개작(改作)함이 있다면 곧 차서(此書)가 드디어 폐기(廢棄; 廢)되리니 학자는 그 전(傳)을 체(諦; 細)하기를 바란다.
선화(宣和) 을사(乙巳; 1125) 춘모(春暮; 3월) 상휴(*上休)에 *[刀/牛]인(人) 관우무당(*關友無黨)이 기(記)한다.
●後序; 문체(文體)의 이름이니 발(跋)과 같음. 권말(卷末)애 새기는 서문(序文).
●宗綱; 종지(宗旨)의 강요(綱要).
●踳駁; 착란(錯亂). 박잡(駁雜). 옥편 준박(踳駁) 색이 섞여 같지 않음이다.
●上休; 음의(音義)가 미상임. 상(上)은 상순(上旬)이며 휴(休)는 료(了)니 혹 10일을 가리키는가 의심됨.
●[刀/牛] 서(書)에 [刀/牛]자가 없음. 모(牟)로 의심됨.
●關友無黨; 전기가 미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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