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히 하건대(詳夫; 夫는 조사) 세;존과 가섭(*迦葉) 이래로부터 대대(代代)로 상승(相承)하여 등등(燈燈)이 다함 없으면서 갈마들며 서로(*遆相) 비밀스럽게 부촉(密付)하여 정전(正傳)으로 삼는다. 그 정전(正傳)하여 밀부(密付)한 곳은 언의(言義)를 갖추지(該) 않음은 아니지만 언의(言義)가 미치지 않는지라 고로 비록 지진(指陳)함이 있더라도 문자를 세우지 않고(*不立文字)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할(以心傳心) 따름이다. 호사자(好事者)가 억지로(强) 그 자취를 기록하여 방책(*方冊)에 기재하여 지금(至今)에 전하니 곧 그 추적(*麁迹)은 참으로(固) 족히 귀한 게 아니다. 그러나 흐름을 찾아 근원을 얻고 지말(枝末)에 의거하여 근본을 앎에 방애되지 않는지라 본원(本源)을 얻은 자는 비록 만별(萬別)로 이것을 말하더라도 애초(始)에 적중하지 않음이 없지만 이것을 얻지 못한 자는 비록 절언(絶言)하면서 이를 지키더라도 애초(始)에 미혹하지 않음이 없다(未). 이런 까닭으로 제방의 존숙(*尊宿)이 문자를 외면(外面; 外)하지 않고 자비(*慈悲)를 아끼지 않아 혹은 징(*徵)하고 혹은 념(拈; 評議)하고 혹은 대(代; 代云)하고 혹은 별(別; 別云)하고 혹은 송(頌)하고 혹은 가(歌)하면서 오지(奧旨)를 발양(發揚)하여 후인에게 끼친다(貽). 곧 무릇 정안(正眼)을 열고 현기(玄機)를 갖추어 3계(*三界)를 나롱(羅籠; 制御)하고 4생(*四生)을 제발(*提拔)하려고 한다면 이것(문자)을 버리고 무엇을 쓰겠는가. 하물며 본조(*本朝)는 조성(*祖聖)이 회삼(*會三)한 이후로부터 선도(禪道)로써 국조(國祚; 祚는 복)를 늘이고(延) 지론(智論; 지혜로운 논의)으로 인병(隣兵)을 진정(鎭靜)하였으니 오종논도(悟宗論道)의 자재(資財; 資)로는 이 보다 급한 게 없는지라 고로 종문(*宗門)의 학자가 목마름(渇)에 마실 것(飮)을 갈망(渴望; 望)함과 같고 기아(飢餓; 飢)에 밥을 생각함과 같다 하리라. 내가 학도(學徒)의 역청(力請)을 입었고 조성(祖聖)의 본회(本懷)를 상념하고서 바라건대(庶) 국가에 복을 받들고 불법에 도움(裨)이 있게 하고자 이에 문인(眞訓)인 진훈(眞訓)등을 거느리고 고화(古話)를 채집(採集)하였으니 무릇 1천1백2십5칙(則)이며 여러 스님의 염송(拈頌) 등의 어요(語要)를 병합(*并合)하여 30권을 녹성(錄成)하여 전등(*傳燈)에 짝짓는다. 바라는 바는 요풍(*堯風)이 선풍(禪風)과 더불어 영원히 부채질하고 순일(*舜日)이 불일(佛日)과 함께 항상 밝고 해안하청(海晏河淸; 바다가 평안하고 강하가 맑음)하고 시화세임(時和歲稔; 시절이 화평하고 해마다 곡식이 잘 익음)하고 물물(物物)마다 각기 그 적소(適所; 所)를 얻고 집집마다 순전히 무위(*無爲)를 즐길지니 구구(*區區)한 마음으로 여기에 절절(*切切)할 뿐이다. 다만(*弟) 한스러운 것은 제가(諸家)의 어록을 진람(盡覽; 모두 열람)함을 얻지 못해 유탈(遺脫)이 있을까 염려스럽나니 미진(未盡)한 바는 다시 후현(後賢)을 기다린다. 정우(*貞祐) 14년 병술(丙戍) 중동(仲冬)에 해동(*海東) 조계산 수선사(修禪社) 무의자(*無衣子)가 서(序)한다.
●迦葉; 전명(全名)이 대가섭ㆍ마하가섭(摩訶迦葉; 梵 Mahā-kāśyapa)이며 또 가섭파(迦葉波)ㆍ가섭파(迦攝波)로 지음. 여기에선 번역하여 이르되 음광(飮光)이니 십대제자의 하나이며 선종의 제1조. 왕사성 근교의 바라문가에서 출생했으며 불타가 성도한 후 3년에 불제자가 되었고 8일 후에 곧 아라한과에 증득해 들어갔음. 불제자 중 두타제일이 됨. 불타가 입멸한 후 교단의 통솔자가 된 자며 왕사성에서 제1차의 경전결집을 소집하였고 바로 아난이 법의 계승자가 됨에 이르자 비로소 계족산(鷄足山)에 들어가 입정하여 미륵의 출세를 기다렸다가 바야흐로 열반을 행하게 됨. 선종에서 삼처전심(三處傳心)의 고사(故事)로써(多子塔前에서 分半座함이 1이며 靈山會上에서 擧拈花함이 2며 雙樹下에서 槨示雙趺한 게 3임) 지금에 이르도록 전송(傳誦)하여 끊이지 않음. 이 밖에 과거 7불의 제6불도 또한 칭호가 가섭불이며 또 불제자 중 우루빈라가섭과 가야가섭 등도 다 가섭의 호칭이 있으며 불타가 입멸한 후 3백 년의 소승음광부의 비조도 또한 가섭과 같은 이름임 [잡아함경41. 증일아함경20, 동35, 동44. 불본행집경45. 사분율54. 오분율30. 비니모경1. 유부필추니비나야1. 전등록1. 선가귀감]. ▲현응음의((一切經音義 二十五卷 唐 玄應撰)) 24. 범언(梵言)으로 가섭파니 가섭은 여기에선 이르되 광(光)이며 파는 여기에선 이르되 음(飮)이다.
●遆; 체(遞)와 같음. 체(遞)는 혹 체(遆)로 지으며 속자(俗字)임.
●不立文字; 달마대사혈맥론(達磨大師血脉論; 一卷 梁 菩提達磨述)에 가로되 삼계가 혼란하게 일어나 한가지로 일심으로 돌아가나니 전불(前佛)과 후불(後佛)이 마음으로 마음에 전하고 문자를 세우지 않았다(不立文字).
●方冊; 방(方)은 고대 서사용의 목판. 정자통(正字通) 방(方) 책(策)이다. 판(版)이다. 큰 것을 가로되 책(策)이며 작은 것을 가로되 방(方)이다. 책(冊)은 책(册)과 같음. 서간(書簡)이니 고대 문서용 죽간(竹簡)임. 편간(編簡)을 이름해 책(冊)이니 후에 무릇 부적(簿籍)을 균일하게 가히 책(冊)으로 일컬었음.
●麁; 추(麤)와 같음. 본래 추(麤)로 지음.
●尊宿; 덕이 높은 연장자. ▲관경서분의(觀經序分義; 觀無量壽佛經疏四卷 唐 善導集記) 2. 덕고(德高)를 가로되 존(尊)이며 기년(耆年)을 가로되 숙(宿)이다.
●慈悲; 중생을 자애하면서 아울러 쾌락을 급여(給與)함을(與樂) 일컬어 자(慈)라 하고 그 고통에 동감(同感)하여 중생을 연민하고 아울러 그 고통을 발제(拔除)함을(拔苦) 일컬어 비(悲)라 함. 2자의 합칭이 자비가 됨. 불타의 비(悲)는 곧 이 중생의 고(苦)를 자기의 고로 삼는 동심동감(同心同感)의 상태인지라 고로 명칭이 동체대비(同體大悲)임. 또 그 비심(悲心)이 광대무진한지라 고로 명칭이 무개대비(無蓋大悲; 이 悲보다 更廣更大更上할 게 있지 않는 것)임.
●徵; 증명. 추구. 책문(責問).
●三界; 삼장법수(三藏法數; 五十卷 明 一如等集註)七. 삼계(三界) [출화엄공목] 1은 욕계(欲界)니 욕(欲)에 4종이 있음. 1자는 정욕(情欲)이며 2자는 색욕이며 3자는 식욕이며 4자는 음욕(婬欲)임. 아래로 아비지옥에 이르고 위로 제6 타화천(他化天)에 이르기까지 남녀가 서로 섞여 여러 염욕(染欲)이 많으므로 고로 이름이 욕계임. 2는 색계(色界)니 색은 곧 색질(色質)임. 이르자면 비록 욕계의 더러운(穢惡) 색을 여의었으나 청정한 색이 있음. 처음인 초선범천(初禪梵天)으로부터 마침인 아가니타천(阿迦膩吒天)에 이르기까지 무릇 18천이 있음. 모두 여형(女形)이 없고 또한 욕염(欲染)도 없으며 다 이는 화생(化生)임. 아직 색질이 있으므로 고로 이름이 색계임. 3은 무색계(無色界)니 이르자면 다만 심식(心識)만 있고 색질이 없음. 처음인 공처(空處)로부터 마침인 비비상처(非非想處)에 이르기까지 무릇 4천이 있음. 다만 수상행식(受想行識)의 4심(心)만 있고 형질이 없으므로 고로 이름이 무색계임.
●提拔; 이르자면 깊은 곳으로부터 위로 향해 들어올림. 또한 해구(解救)에 비유함.
●四生; 난생(卵生)ㆍ태생(胎生)ㆍ습생(濕生)ㆍ화생(化生)이니 인취(人趣)와 축생취는 각기 4생을 갖췄고 귀취(鬼趣)는 태ㆍ화 2생에 통하고 일체의 지옥ㆍ제천 및 중유(中有)는 오직 화생함. 구사론8을 보라.
●本朝; 고려를 가리킴.
●祖聖; 고려 태조 왕건(王建)을 가리킴. 조(祖)는 개국군주(開國君主)며 성(聖)은 봉건시대 제왕(帝王)의 존칭.
●會三; 삼(三) 후삼국을 가리킴이니 신라ㆍ후백제ㆍ태봉(泰封).
●宗門; 혹은 명칭이 종승(宗乘)이며 혹은 약칭이 종(宗)임. 종(宗)은 숭상하는 바의 교지(敎旨)가 되며 문(門)은 통입(通入)의 뜻이 됨. 종문(宗門)의 일사(一詞)는 송(宋) 이후로는 선종의 자찬(自讚)이 되어 나머지 종(宗)은 곧 교문(敎門)이라 일컬음. 그러나 이 명칭은 선종에 한정하지 않음. 천태(天台)에 경부종(經部宗)살바다종(薩婆多宗)이 있고 따로 진종(眞宗)ㆍ원종(圓宗) 등의 명목이 있음. ▲조정사원8. 종문(宗門) 이르자면 삼학자(三學者; 三學은 戒學ㆍ定學ㆍ慧學)가 이 문(門)을 근본(宗)으로 하지 않음이 없으므로 고로 이를 일러 종문이라 함. 정종기(正宗記; 傳法正宗論下)를 생략해 이르자면 옛 사람이 이르기를 선문(禪門)을 종문(宗門)으로 삼음은 또한 용목조사(龍木祖師)의 뜻이다. 또한 이르기를 우리 종문은 곧 석가문(釋迦文)의 일불교(一佛敎)의 대종(大宗)의 정취(正趣)이다 (중략) 세세(世世)에 삼학자(三學者)가 이를 자뢰(資賴)하여 그 입도(入道)의 인험표정(印驗標正)으로 삼아야 하리라(以上은 傳法正宗論下의 文). 곧 알지니 옛 사람이 우리 선문을 명명(命名)해 이를 일러 종문이라 한 것은 교적(敎迹)의 밖에 존칭(尊稱)하여 다르게 함이 이것임. ▲고신록(考信錄; 五卷 日僧 景耀玄智撰) 4를 안험(按驗; 查驗)하니 종문이란 1사(詞)는 선림으로부터 나왔음. 릉가경에서 설한 바 불어심위종(佛語心爲宗) 무문위법문(無門爲法門)으로써 불심종(佛心宗)을 세워 자칭 종문이라 했음.
●并; 병(幷)과 같음.
●傳燈;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이니 30권. 송대 도원(道原)이 지었음. 약칭이 전등록. 본서는 과거 7불로부터 및 역대 선종의 제조(諸祖) 5가(家) 52세(世) 공히 1,701인(人)의 전등법계(傳燈法系)를 집록했음. 송 진종(眞宗) 경덕(景德) 원년(1004)에 표문(表文)을 갖춰 상진(上進)하였고 아울러 칙명을 받들어 입장(入藏)한지라 고로 경덕으로써 그것을 이름했음. 또 등(燈)이 능히 어둠을 비추듯이 법계(法系)가 상승(相承)함이 마치 등화가 전전(輾轉)히 상전(相傳)함과 같으며 사자(師資; 師弟)의 정법(正法)이 영원히 단절되지 않음에 비유하는지라 고로 명칭이 전등(傳燈)임.
●堯; (약 前 2377-前 2257) 석씨계고략(釋氏稽古略; 四卷 明 覺岸編集再治) 1. 제요도당씨(帝堯陶唐氏) 제곡(帝嚳)의 아들이며 지(摯)의 동생이다. 지(摯)가 옹립되자 요(堯)를 봉(封)해 도후(陶侯)로 삼았는데 고쳐 당(唐)에 봉했으므로 고로 가로되 도당씨(陶唐氏)며 이기(伊祁)는 성이다. 요(堯)가 이미 지(摯)의 선위(禪位)를 받아 화덕(火德)을 썼으며 평양(平陽; 今晉寧路 冀州之域)에 도읍했다. 모자(茅茨)를 베지 않았으며 토계(土階)가 3척이었다. 명협(蓂莢)이 뜰에 났는데 명초(蓂草)다. 하루에 1협(莢)이 나서 15일에 이르면 15협을 이루고 16일에 1협이 떨어져 30일에 이르면 떨어져 다했다(月小면 연달아 二莢이 떨어졌음). 다시 나고 다시 떨어졌다. 제(帝)가 스스로 매우 박봉(薄俸)을 받들었고 부역(賦役)은 매우 적었다. 이 시절에 대풍(大風)ㆍ알유(猰貐)ㆍ봉희(封豨)ㆍ수사(脩蛇)가 있어 다 민해(民害)가 되었다. 제(帝)가 이에 예(羿)를 시켜 청구(靑丘)의 택(澤; 東方의 澤名)에서 대풍을 포박하고 알유를 죽이고 동정(洞庭)에서 수사(脩蛇)를 잘랐고 봉희를 상림(桑林)에서 사로잡았다. 백성이 이에 기뻐했다. 홍수가 재앙이 되므로 4악(岳)이 곤(鯀; 禹之父也)을 천거했는데 치수(治水)하기 9년에 이루지 못했다. 제(帝)의 아들 단주(丹朱)가 불초(不肖)하여 가이(可以) 손위(遜位)할 만한 현덕(賢德)을 구하자 군신(群臣)이 순(舜)을 천거하였다. 제(帝)가 두 딸을 순에게 처로 주었다. 여러 어려움을 역시(歷試)하여 대록(大麓; 今順德路)에서 받아들였다. 열풍(烈風)과 뇌우(雷雨)에 미란(迷亂)하지 않자 섭정(攝政)의 지위로 썼다. 또 28년에 제(帝)가 붕(崩)했다. 요(堯)는 재위가 순(舜)의 섭정을 통틀어 모두 98년이며 수(壽)는 198세다. 요(堯)가 음악을 만들었는데 가로되 대장(大章)이다. 순(舜)이 하남(河南; 今汴梁地)에서 요(堯)의 아들 단주(丹朱)를 피양(避讓)했다. 천하에서 조근(朝覲)하고 송옥(訟獄)하는 자가 단주에게 귀의하지 않고 순에게 귀의했다. 순이 이에 천자위에 즉위했다. 史記
●舜; (약 前 2277-約 前 2178) 석씨계고략1. 제순유우씨(帝舜有虞氏) 가로되 중화(重華)니 도군(都君)이라고 일컫는다. 황제(黃帝)의 8대손이다. 황제가 창의(昌意)를 낳았고 창의가 전욱(顓頊)을 낳았고 전욱이 궁선(窮蟬)을 낳았고 궁선이 강경(康敬)을 낳았고 강경이 구망(句芒)을 낳았고 구망이 교우(蟜牛)를 낳았고 교우가 고수(瞽瞍)를 낳았고 고수가 순(舜)을 낳았다. 요성(姚姓)이다. 순의 어머니가 죽자 계모가 상(象)을 낳았다. 부모와 및 상(象)이 늘 순을 죽이려고 했으나 순이 효제(孝悌)의 도를 다해 부모를 모셨으며 그 동생을 접대하매 더욱 공경스러웠다. 역산(歷山; 河東)에서 경작하고 뇌택(雷澤; 兗州)에서 어렵(漁獵)했고 하빈(河濱; 今濟陰定陶 西南 陶丘亭)에서 질그릇을 구웠다. 거주하는 곳이 취락을 이루어 2년 만에 읍(邑)을 이루고 3년 만에 도(都)를 이루었다. 20에 효도로써 소문났고 나이 30에 요(堯)가 두 딸을 그에게 시집보내었고 장차 자리를 양위하려 했다. 순이 고양씨(高陽氏)를 천거했다. 고신씨(高辛氏)의 아들이 팔개(八凱)와 팔원(八元)인데 개(凱)는 후토(后土)를 주재했고 원(元)은 사방에 오교(五敎)를 폈다. 요가 이에 순으로 하여금 자리를 섭정케 했다. 제홍씨(帝鴻氏)에게 부재(不才)의 아들이 있었는데 호해 가로되 혼돈(渾沌)이니 환두(驩兜)다. 소호씨(少皡氏)에게 부재(不才)의 아들이 있었는데 호해 가로되 궁기(窮奇)다. 공공씨(共工氏)와 전욱씨(顓頊氏)에게 부재(不才)의 아들이 있었는데 호해 가로되 도올(檮杌)과 곤(鯀)이다. 진운씨(縉雲氏)에게 부재(不才)의 아들이 있었는데 호해 가로되 도철(饕餮)이니 삼묘(三苗)다. 이를 일러 사흉(四凶)이라 하는데 요(堯)에게 벼슬했다. 요가 능히 제거하지 못했는데 순이 모두 사예(四裔)에 던져버렸다. 우(禹)를 천거해 치수(治水)케 했다. 순이 요의 자리를 섭정한 지 28년 만에 요가 붕어하자 순이 천자의 자리에 즉위했다. 토덕(土德)으로써 왕 노릇했고 포판(蒲阪; 今晉寧路 河中府也)에 도읍했다. 오현금(五弦琴)을 퉁겨 남풍(南風)을 노래했다. 선기(璇璣)와 옥형(玉衡)으로 칠정(七政)을 가지런히 하고 역수(曆數)를 바르게 해 윤여(閏餘)로 세(歲)를 만들었다. 음악을 만들었는데 가로되 구소(九韶)다. 묘민(苗民)이 역명(逆命)하자 문덕(文德)을 폈으며 두 섬돌에서 간우(干羽)를 춤추기가 70일에 묘(苗)가 와서 이르렀다. 아들인 상균(商均)이 불초하여 순이 우(禹)를 하늘에 천거했고 자기의 자리를 대신케 했다. 재위 50년에 남으로 순수(巡狩)하다가 창오(蒼梧; 今廣西道 梧州路 郡名이 蒼梧니 荊州 지역)의 들에서 붕어하니 수(壽)가 110세다. 우(禹)가 양성(陽城)에서 순의 아들 상균에게 피양(避讓)했다. 천하의 사람들이 상균에게 귀의하지 않고 우에게 귀의했다. 우가 드디어 천자의 자리에 즉위했으니 국호가 하(夏)다. 순이 칠기(漆器)를 만들려고 하다가 간(諫)함을 만나 그만두었다.
●無爲; 조작이 없음의 뜻이니 유위의 대칭임. 곧 인연으로 말미암아 조작된 바가 아닌, 생멸변화(生滅變化)를 여읜 절대상주(絶對常住)의 법임. 또 무위법으로 지으며 원래 이것은 열반의 다른 이름임. 후세에 다시 열반의 밖에 갖가지 무위를 세워 이에 3무위ㆍ6무위ㆍ9무위 등의 여러 설을 산생(産生)했음. ▲도덕경 제48 일손장(日損章). 학(學)을 하면 날로 더하고(益) 도(道)를 하면 날로 더나니(損) 덜고 또 덜어 무위에 이르면 무위이면서 하지 못함이 없다.
●區區; 분주하며 노록(勞碌; 게을리 하거나 쉬지 아니하고 꾸준히 힘을 다함)함.
●切切; 간절한 모양.
●弟; 제()와 통함. 지(只; 다만)임.
●貞祐十四年丙戍; 정우(貞祐)는 금(金) 선종(宣宗) 때의 연호. 정우는 병자(丙子)에서 그침. 병술(丙戌)은 금 정대(正大) 3년이니 서기 1226.
●海東; 발해의 동쪽. 또 지금의 한국의 고시(古時)의 별칭.
●無衣子; 동사열전(東師列傳; 六卷 朝鮮 覺岸述) 1 진각국사전. 스님의 이름은 혜심(惠諶; 1178-1234)이며 성은 조씨(曹氏)며 화순(和順) 사람이다. 모친이 겨울에 천과(泉瓜)를 취해 먹었는데 인하여 임신(妊娠)이 있었고 출생했다. 그 샘(泉)을 이름해 가로되 적천(跡泉)이라 했고 호는 가로되 무의자(無衣子)다. 또 위의 선문염송집표주서 혜심(慧諶)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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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60만 원.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조금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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