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六】 세존이, 어떤 외도가 묻되 유언을 묻지 않으며 무언을 묻지 않습니다 함으로 인해 세존이 양구(良久)하셨다. 외도가 찬탄하며 이르되 세존이 대자대비(*大慈大悲)로 나의 미운(迷雲)을 열고 나로 하여금 득입(得入)케 하셨습니다. 외도가 간 후 아난이 불타에게 물어 이르되 외도가 무슨 증득한 바가 있기에 득입했다고 말했습니까. 불타가 말씀하시되 세상의 우량한 말이 채찍 그림자를 보고 달림(*見鞭影而行)과 같다.
설두현(雪竇顯)이 송하되 기륜(*機輪)이 일찍이 돌지 않나니/ 돌면 반드시 양두(兩頭)로 달아난다/ 명경이 홀연히 대(臺)에 임(臨)하니/ 당하(*當下; 즉시)에 연추(妍醜)가 나뉜다/ 연추(妍醜)가 나뉨에서 미운(迷雲)이 열리거늘/ 자문(慈門)의 어느 곳에 진애(塵埃)가 생겨나리오/ 인하여 양마(良馬)가 편영(鞭影)을 엿봄을 사유하노니/ 천 리추풍(*追風)도 불러 돌아오게 함을 얻는다/ 불러 돌아오게 함을 얻으리라 하고 세 번(三下) 손가락을 울렸다.
대각련(大覺璉)이 송하되 양마(良馬)는 채찍 그림자를 만나면 바로 달려/ 천 리에 등이(*騰夷; 유쾌)하지만 무리를 초월하지 못한다/ 보매 어찌 윤왕(*輪王)의 보배에 미치겠는가/ 한 번 몰면 3천 리에 먼지를 움직이지 않는다.
대홍은(大洪恩)이 송하되 유언(有言)을 묻지 않고/ 무언(無言)을 묻지 않는다 하니/ 춘풍은 호호(浩浩; 가없이 드넓음)하고/ 산새는 훤훤(喧喧; 떠들썩함)하다/ 노호(老胡)가 바야흐로 갑수(瞌睡; 졸다)하면서/ 콧구멍이 헛되이(謾) 요천(*撩天)하였다/ 사십구 년 동안 사람이 알지 못하는데/ 공연히 황엽(黃葉)을 잡아 금전(金錢)이라 일컬었다. 방하착(*放下着)하라.
또 송하되 유언(有言)과 무언(無言)을 묻지 않는다 하니/ 망망(茫茫; 넓고 멀어 아득한 모양)히 다투며 공권(*空拳)을 인정한다/ 구름이 열려 결정코 견불(見佛)하더라도/ 멀고 멀어 십만팔천(十萬八千)이다/ 임제와 덕산도 쉬면서 손을 옴츠리고/ 자꾸 와서 너에게 일문전(*一文錢)을 구걸한다. 어리석음을 놓아 무엇하려느냐(放憨作麽).
천의회(天衣懷)가 송하되 쌍봉(雙鋒)으로 부호(覆護)하여 둘 다 모두 꺾으니/ 미운(迷雲)이 이로부터 활연(豁然)히 열렸다/ 겁초의 영자(*劫初鈴子)를 수득(收得)한 후에/ 가볍고 가볍게 한 번 떨치매 운뢰(雲雷)를 진동한다.
자수첩(*資壽捷)이 송하되 일 없이 머리를 지고 검문(劒門)에 드니/ 바람은 슬프고 안개는 비참(悲慘)해 저절로 혼(魂)을 상(傷)한다/ 세상의 행흉(行兇; 兇惡을 행하다)하는 자를 사량(思量)하건대/ 개개(箇箇)가 상망(相亡)하며 자손이 끊기더라.
법진일(法眞一)이 송하되 무언 및 유언을 묻지 않는다 하니/ 앉아서 성패를 관(觀)하며 저절로 안연(安然)하다/ 선타(仙陀; 선타객)가 힐끗 보고(瞥爾) 종타(*宗墮)한 줄 알거늘/ 누가 세존이 일찍이 채찍을 들었따고 이르느냐.
곤산원(崑山元)이 송하되 인렵(*鱗鱲)이 분명히 변화가 완전하지 않아/ 홀연히 파랑(波浪)을 따르고 혹은 못에 잠긴다/ 때가 와서 풍뢰(風雷)의 편의를 득우(得遇)하면/ 안개가 흩어지고 구름이 열려 벽천(碧天)을 투과하리라.
보녕용(保寧勇)이 송하되 경과하다 밤을 만나 황초(荒草)에 자다가/ 눈을 개득(開得; 뜨다. 得은 조사)하니(來는 조사) 하늘이 매우 밝았더라/ 공허한 마음과 맨발로 노래 부르며 귀환하매/ 노상에 행인이 이미 적지 않더라.
설두녕(*雪竇寧)이 송하되 구담(瞿曇)에게 문착(問着)하매 모두 수대(酬對; 응대)가 없고/ 별연(瞥然; 갑자기. 얼핏)히 정(情)이 없어지고 저절로 회두(迴頭)했다/ 구름이 열리고 불타를 보매 원래 오염이 없어/ 비로소 평생에 작의(作意)하여 구했음을 후회하였다.
불적기(佛跡琪)가 송하되 파순(*波旬)이 불타에게 물어 정의(情疑)를 결단하려 했는데/ 양구(良久)하며 말이 없음에서 깊이 미묘(美妙; 微)로 나아갔다/ 기족(驥足; 천리마의 발)은 가마(駕馬; 수레를 끄는 말)의 걸음과 같지 않나니/ 옥편(玉鞭)으로 그림자를 휘두르매 빠르기가 나는 듯하였다.
숭승공(崇勝珙)이 송하되 외도의 유무는 교언(巧言)을 더했고/ 세존의 양구(良久)는 심현(深玄)으로 들어갔다/ 옹종(甕鐘; 독으로 된 종)이 어찌 이 하루아침의 말이겠는가/ 작복(杓卜)으로 도리어 응해 천고(千古)에 전한다/ 비단 같던 춘화(春花)는 터져 떨어지는 대로 좇고/ 두견이(規) 같던 추월(秋月)은 휴원(虧圓)하는 대로 맡긴다/ 견편(見鞭; 채찍 그림자를 보다)하매 만약 같은 침상에 눕지 않았다면/ 칭찬하매 어찌 이불 속이 뚫린 줄 알겠는가.
원오근(圜悟勤)이 송하되 유무의 말을 묻지 않는다 하니/ 말하기 전에 문단(問端)을 세웠다/ 양변을 모두 좌단(*坐斷)해야/ 1검이 하늘에 기대어 오싹하리라/ 채찍 그림자가 움직이지 않음에서 역괴과도(*歷塊過都)하고/ 자문(慈門)을 이미 열어서는 능유삭무(陵有轢無; 유를 陵蔑하고 무를 짓밟다)다/ 요천비공(*遼天鼻孔)을 반드시 꿰어버려야 하나니/ 무엇이 이 추풍(追風)하는 천마구(*天馬駒; 천리마)인가.
불감근(佛鑑勤)이 송하되 세존이 청동 거울과 흡사하여/ 허당(虛堂)을 향해 거니 추월(秋月)이 깨끗하다/ 표리(表裏)가 무사(無私)하여 쓸개를 비추며 차갑고(寒)/ 고저(高低)가 낱낱이 다 상영(相映)한다.
불안원(佛眼遠)이 송하되 높은 해는 하늘에 닿아 유무를 비추거늘/ 누가 이르기를 선서(善逝)가 앉아 가부(*跏趺)했다 하느냐/ 여금에 당년의 일을 보고자 한다면/ 사정(邪正)이 오히려 반도(半途)에 있다.
장령탁(長靈卓)이 송하되 외도는 추심(麁心; 거친 마음)으로 험이(*險夷)에 익숙하고(慣)/ 노호(老胡)는 편영(鞭影)으로 침추(針錐)를 드러내었다/ 행인이 동문(東門)의 토끼를 습득했거늘/ 누가 한로(*韓獹)의 정력(精力)이 피로함에 상관(相管)하겠는가.
육왕심(育王諶)이 송하되 유언을 묻지 않고/ 무언을 묻지 않는다 하매/ 세존이 대자(大慈)로/ 나의 미운(迷雲)을 열었다/ 미운이 이미 열렸다 하니/ 감파(勘破)해 마쳤다.
대혜고(大慧杲)가 송하되 두 곳의 뇌관(牢關)을 쳐서 불통(不通)하게 하니/ 섬진(纖塵)도 움직이지 않으면서 저절로 종지(宗旨)가 어긋났다/ 홀연히 업경(*業鏡)이 산산조각 나니(*百雜碎)/ 황면구담(黃面瞿曇)이 종적(蹤迹)을 잃어버렸다.
죽암규(竹庵珪)가 송하되 촉루(髑髏) 앞에서 오(悟)를 미(迷)해/ 도로(徒勞; 헛되이 수고함)하며 다시 채찍을 들었다/ 다만 계구계(*雞狗戒)를 수지(受持)하고/ 조사선(*祖師禪)을 배우지 않는다.
본연거사(*本然居士)가 송하되 외도가 어묵(語默)을 쌍으로 꿰어 왔다가/ 세존의 1찰(拶; 다그치다)에 정문(頂門; 정수리)이 열렸다/ 가련하게도 범마(凡馬)는 공연히 살(肉)만 많아/ 채찍 소리를 비진(費盡; 써 없애다)함이 질뢰(疾雷)와 같다/ 후인은 깊은 구덩이를 향해 앉지 말지니/ 아무리(任) 이 굴혈(窟穴)일지라도 꼭 타파된다.
열재거사(悅齋居士)가 송하되 설두는 3경(*三更)에 해가 탁오(*卓午)며/ 운문은 일오(*日午)에 3경을 친다/ 필경 편영(鞭影)의 일에 상간(相干)되지 않나니/ 대가(大家; 諸人)는 등불(燭)을 끄고 어둠 속을 행하라.
법안(法眼)이 백장상(*百丈常) 화상이 청익(*請益)함으로 인해 서술하는 말이 마치지도 아니했는데 법안이 가로되 멈춰라 멈춰라(住住), 네가 세존의 양구처(良久處)를 향해 이회(理會)하려 하는가. 백장이 이로 좇아 오입(悟入)했다.
오조계(五祖戒)가 이르되 대소 세존이 아난의 일장영과(一狀領過)를 입었다. 또 말을 내어 이르되 네가 물은 바가 무엇이냐.
현각(玄覺)이 징(徵; 責問)하되 어느 곳이 이 세존이 채찍을 든 곳인가.
운거석(*雲居錫)이 이르되 알고자 하느냐. 여금에 당(堂)으로 돌아 가는 것은 다시 이 누구인가.
설두현(雪竇顯)이 염(拈)하되 제선덕(諸禪德)이여, 미운(迷雲)이 이미 열려 결정코 견불(見佛)했으니 도리어 그(외도)에게 동참(*同叅)이라고 허락하겠느냐 또는 아니냐. 만약 함께 서로 위지(委知; 알다. 이해하다)한다면 곧 천하의 종사(*宗師)가 모두(並) 외도의 반려가 될 것이며 각기 인증(印證)하지 않을 것 같으면 곧 동토(東土)의 납승이 서천의 외도만 같지 못하리라. 또 염(拈)하되 사정(邪正)을 나누지 못함은 허물이 편영(鞭影) 때문이다(由). 운문고(雲門杲)가 이르되 사정(邪正)이 양분(兩分)됨은 바로 편영(鞭影) 때문이다.
법운악(法雲岳)이 이르되 전전(前箭)은 오히려 가볍고 후전(後箭)이 깊다.
동선제(*東禪齊)가 염(拈)하되 어느 곳이 이 외도의 오처(悟處)인가, 중중(衆中)에서 말하되 세존이 양구(良久)했을 때가 곧 이 세존이 채찍을 든 곳이라 하거니와 이렇게 화회(*話會)한다면 도리어 마침을 얻는가.
취암지(翠嵓芝)가 이르되 대소(大小) 세존이 외도에게 당면에 도호(*塗糊)함을 입었다. 지여(只如) 외도가 이르되 나를 득입(得入)케 하셨다 했지만 요차(要且; 종내. 도리어) 꿈에도 보지 못했다. 이미 일찍이 꿈에도 보지 못했거늘 무엇 때문에 도리어 깨달았느냐.
낭야각(瑯瑘覺)이 이르되 어슴푸레(*依稀) 곡조와 같아 겨우 가히 들을 만하더니 또 바람 붊을 입어 별다른 곡조 가운데다.
양기회(*楊歧會)가 이르되 세존은 자기를 거두고 타인을 좇았고 외도는 재(*齋)로 인해 경찬(*慶讃)했다.
취암진(翠嵓眞)이 이르되 육합(*六合)과 구유(*九有)에 치황청자(緇黃靑紫)가 낱낱이 교참(交叅)한다. 모두 말하기를 양구(良久)는 거좌(*據座)하고 대답하지 않음이라 하거니와 요차(要且; 종내. 도리어) 그렇지 않다 하노라. 또 제가(諸家)의 염(拈)를 들어 마치고 다시 이르되 오히(*於戱; 탄식)라. 가여(假如) 추자(*鶖子)와 만자(*滿慈)가 지혜를 운용하여 언사를 짓고(摛) 정신을 달려 작용하더라도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도오진(*道吾眞)이 이르되 세존은 척안(隻眼)으로 3계(界)를 통투(通透)했고 외도는 쌍모(雙眸; 두 눈)로 5천(天)을 관통했다.
천복일(薦福逸)이 상당하여 이르되 내조(*乃祖; 遠祖)의 도(猷)가 넓고도 크더니 여기에 근접(*殆茲)한 이래(而來; 以來)로 굉강(宏綱)이 거의 추락했다. 왜냐, 지여(只如) 3천 년 전 외도가 불타에게 묻되 유언(有言)을 묻지 않고 무언(無言)을 묻지 않을 때는 어떻습니까 했는데 이래(邇來; 근래)의 선도(禪徒)가 혹은 이르되 세존이 양구(良久)했다 하고 혹은 이르되 세존이 묵연했다 하고 혹은 이르되 세존이 부대(不對)했다 하고 혹은 이르되 세존이 거좌(據座)했다 한다. 시험삼아 그 이유를 물으면 서로 관견(*管見)을 보이나니(呈) 거좌(據座)라고 이른 자는 곧 적면하여 상정하고 다시 여사가 없다(*覿面相呈 更無餘事)하며 부대(不對)라고 이른 자는 곧 현전(現前)에 구남남지(口喃喃地; 말이 많은 모양)라서 대호(*大好)가 불문(不問)이니 그 화가 자타(*其話自墮)한다, 이런 까닭으로 부대(不對)했다 하며 묵연이라고 이른 자는 지리(至理)는 유현(幽玄)하여 명언로(名言路)가 단절된지라 제연(諸緣)이 문득 민몰(泯沒)해야 비로소 도에 합한다 하며 양구라고 이른 자는 그(외도)로 하여금 회광자조(迴光自照)하여 본래면목을 득견(*本來面目)케 한지라 이런 까닭으로 양구했다 한다. 이와 같은 어화(語話)가 나옴은 흉금(*胷襟)에 있음이니 바로 이 생사의 근본이거늘 어찌 일찍이 꿈에라도 세존의 수자(垂慈)와 외도의 오처(悟處)를 보았겠는가. 금야금시(今夜今時)에 다행히 가회(嘉會)를 만났으니 구참(*久叅)의 선덕(禪德)은 언전(言前)에 조치(措置)하겠지만 후진(*後進)의 초기(*初機)일진대 어찌 의논이 없겠는가. 유언을 묻지 않고 무언을 묻지 않을 땐 어떻습니까 하매 세존이 그를 향해 무엇이라고 말했는가. 시험삼아 청하노니 들어보아라(擧看). 만약 거득(擧得; 得은 조사)한다면 퇴강(頹綱; 무너지 紀綱)을 다시 정리(整理)할 뿐만 아니라 청중(淸衆)에게 공양(*供養)하면서 또한 총림(*叢林)에 사람이 있음을 표하리라. 현자(賢者)가 가끔 나오나니(閒出) 있느냐 있느냐, 양구하고 이르되 저 외도를 보아라, 오래 사종(邪宗)을 익히며 깊이 아견(*我見)에 집착했지만 봉망(鋒鋩; 칼날)을 조금 드러내매 낙처를 곧 알았다. 당시에 찬탄하며 이르되 세존이 대자대비하시어 至편영(鞭影)을 보고 달렸다 했지만 이미 이는 갈등(*葛藤)했음이다. 감히 제현(諸賢)에게 묻노니 어느 곳이 이 세존이 편영을 내린 곳인가. 만약에 말함을 얻는다면 외도와 함께 동참이라고 허락하려니와 만약 말함을 얻지 못한다면 차토(此土)의 선류(禪流; 流는 品類)가 서천의 외도만 같지 못하다 하리라.
대위철(*大潙喆)이 염(拈)하되 외도가 보경(寶鏡)을 회장(懷藏)한 것을 세존이 친히 고제(高提)하니 삼라(森羅)가 현환(顯煥)하고 만상(萬像)이 역연(歷然)하며 또 아난이 금종을 재격하매(*阿難金鍾再擊) 사중(四衆)이 함께 들음을 얻는다.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지만 2룡이 완주(玩珠)함과 매우 흡사하여 그 지자(智者)의 위녕(威獰)을 증장(增長; 長)시켰다.
천동각(天童覺)이 상당하여 차화(此話)를 들고 이르되 1구가 초연(超然)하나니 양마(良馬)의 영편(影鞭; 그림자와 채찍)이며 도가 어묵(語默)을 초출했나니 이치가 방원(方圓)에 합한다. 도끼를 운전하는 묘(*運斤之妙)는 빈주(賓主)가 가련(可憐)하고 바퀴를 깎는 기(*斲輪之伎)는 부자(父子)라도 전하지 못한다. 효상(爻象)을 가지지 말지니 귀각에서 상구함이며(*相求龜殼) 겨우 시비에 떨어지면 저사(底事; 此事)가 여년(*驢年)이다.
불인청(*佛印淸)이 상당하여 차화(此話)를 들고 이르되 이것은 이 2천 년 전에 남겼던 바(所留)의 공안이니 여금에 삼조연하(*三條椽下)에서 누가 문지(聞知; 듣고 알다)하지 못했겠는가. 종상(*從上; 從前)의 종사(宗師)가 이미 많았고 그 사이에 비판(批判)이 적지 않았다. 어떤 이(*有云)는 이르되 대소(大小) 세존이 화를 두 말뚝으로 지었다(*話作兩橛)하며 어떤 이는 이르되 대소 세존이 용두사미라 하며 또 어떤 이는 이르되 어느 곳이 이 세존이 채찍을 든 곳인가 하고는 곧 양구(良久)하는 자세를 지으며 또 어떤 이는 이르되 어느 곳이 이 외도가 득입(得入)한 곳인가 하고는 곧 이르되 혀(舌頭)를 옴츠려버려라 한다. 이와 같은 묘해(妙解)가 비록 다 작가(作家)지만 초암(草庵)에 지숙(止宿)함이며 아직 문밖에 거처함을 면하지 못했음을 어찌하리오. 소이로 지해(*智海)가 금일 조금(略) 현추(玄樞; 현묘한 樞要)를 발(發)하여 제인과 더불어 자의(恣意; 任意)로 점검하고자 한다. 제선덕(諸禪德)이여 횡념도용(*橫拈倒用)하면서 외도가 도리어 이류(*異類) 속을 향(向)해 행하고 암거명래(*暗去明來)하면서 세존이 이에 검인상사(*劒鋒上事)를 희롱했다. 다시 아난의 문처(問處)가 있나니 우차(*又且) 어떠한가. 도리어 알겠는가, 우사(藕絲)가 수미(須彌)를 끌어당겨 거꾸러뜨리고 개자(芥子)가 뇌전(雷電)을 굴려 뒤집는다.
취암종(翠嵓宗)이 염(拈)하되 세존이 하늘을 두르는(*縵天) 큰 그물을 펼쳐 중생을 노록(撈摝; 건지다)하되 그 중에 도리어 살인하는 곳이 있고 또한 활인(活人)하는 곳이 있다. 만약 이 서수(瑞獸)인 기린(麒麟)이라면 반드시 특별한 저(箇) 생애처(生涯處)가 있어야 비로소 옳다.
원오근(圜悟勤)이 염(拈)하되 외도는 삿됨으로 인해 바름을 짓고 세존은 누를 보고 누를 때림이며(看耬打耬) 아난은 잘 옆에서 보지 못하여 세존의 타니대수(*拖泥帶水)를 인득(引得)했다. 만약 산승의 견처(見處)에 의거한다면 그가 말하되 유언을 묻지 않고 무언을 묻지 않습니다 함을 기다렸다가 소리에 화응(和聲)해 문득 때렸겠다(*便打). 아난이 묻되 외도가 무슨 증득한 바가 있어 득입(得入)했다고 말합니까 함에 이르러서도(及至) 또한 소리에 화응해 문득 때렸겠다. 무슨 연고냐, 살인은 꼭 이 살인도(殺人刀)라야 하고 활인은 꼭 이 활인검(活人劒)이라야 한다.
불감근(佛鑑勤)이 상당하여 차화를 들고 이르되 후래(後來)의 선객이 다 이르되 세존이 당시에 부대(不對)했다 하며 혹은 이르되 세존이 당시에 묵연했다 하며 혹은 이르되 양구(良久)했다 하며 혹은 이르되 거좌(據座)했다 하나니 이와 같은 이론은 모두 이 식정(*識情)으로 분별함이라서 세존의 수자(垂慈)하여 채찍을 보인 곳을 보려고 한다면 멀고도 멀다. 즉금 감히 제인에게 묻노니 그래 말하라 세존이 필경 그를 향해 무엇이라고 말했는가. 양구(良久)하고 이르되 다만 분명함이 지극하기 때문에 도리어(翻) 소득(所得)을 더디게 한다.
죽암규(竹庵珪)가 상당하자 중이 묻되 외도가 불타에게 묻되 유언을 묻지 않고 무언을 묻지 않습니다 했을 때 어떠하며 세존이 양구한 뜻이 무엇입니까. 스님이 이르되 눈 위에 다시 서리를 더했다. 사뢰어 이르되(進云) 스님은 이르되 눈 위에 다시 서리를 더했다 하셨고 세존은 말씀하되 세상의 양마(良馬)가 편영(鞭影)을 보고 달림과 같다 하셨으니 또 어떻습니까. 스님이 이르되 착오를 가지고 착오로 나아감이다.
백운병(白雲昺)이 염(拈)하되 바람이 행하면 풀이 눕고(*風行草偃) 음향이 순(順)하면 소리도 화(和)하나니 비유컨대 양마(良馬)가 편영(鞭影)을 봄과 같아서 세존의 면피의 두께가 세 치다(*面皮厚三寸).
밀암걸(密庵傑)이 차화를 들고 이르되 황면노자가 인천사(*人天師)가 되어 외도의 가볍디가볍게 문착(問着)함을 입자 곧 칠천팔혈(*七穿八穴)을 보였다. 외도가 호오(好惡)를 알지 못해 다시 말하되 대자대비하시어 나의 미운(迷雲)을 열어 나로 하여금 득입(得入)하게 하셨습니다 하니 바로 이 꿈 속에서 꿈을 설했다. 외도가 간 후 아난이 묻되 외도가 무슨 증득한 바가 있어 득입했다고 말했습니까 하니 스님이 할(喝)하고 이르되 어느 곳을 향해 거래하느냐. 황면노자가 당시에 만약 이 1할을 내렸더라면(下得) 아손이 소토(掃土; 땅을 쓴 듯 없어짐)에 이르지 않았으리라. 중중(衆中)에 황면노자를 위해 작주(作主; 主宰를 짓다)할 이가 있지 않느냐. 출래(出來)하여 오거(*烏巨)와 더불어 상견하라. 양구하고 이르되 훔(*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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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60만 원.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조금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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