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염송집주(5권)

선문염송집 권5 제147칙(한글)

태화당 2021. 10. 6. 05:54

一四七청원(*淸源) 행사선사(*行思禪師)6조에게 묻되 마땅히 어떤 소무(所務)라야 곧 계급에 떨어지지 않습니까. (; 6)가 가로되 너는 일찍이 무엇을 하다가 왔느냐. 스님이 가로되 성제(聖諦)도 또한 하지 않습니다. 조가 가로되 어떤 계급(階級)에 떨어졌는가. 스님이 가로되 성제도 오히려 하지 않거늘 무슨 계급이 있겠습니까. 조가 깊이 법기(法器)로 여겼다.

 

투자청(投子靑)이 송하되 무견정(*無見頂)이 드러나 구름의 모임이 급한데/ 겁외(劫外)의 영지(靈枝)는 봄을 띠지 않았다/ 나변(*那邊)은 공왕전(空王殿)에 앉지 않거늘/ 어찌 운전(耘田)하면서 일륜(日輪)을 향함을 긍정하리오.

 

금산원(金山元)이 송하되 성제(聖諦)도 종래로 오히려 하지 않는지라/ 다시 가히 수지(修持)할 계급이 없다/ 지금토록 노로(盧老)는 아직 쌀을 찧나니/ 미곡에 섞고 겨에 섞어 누구에게 부여하나.

 

단하순(丹霞淳)이 송하되 탁이(卓爾; 뛰어남)하여 정안(正眼)을 가지고 엿보기 어렵나니/ 금고(今古)를 멀리 초월했거늘 무엇으로 제등(齊等)히 비류(比類; 비교)하겠는가/ 이끼가 고전(古殿)을 봉()했고 시중드는 사람 없으며/ 달이 창오(蒼梧)를 에워 봉()이 깃들지() 않는다.

 

천동각(天童覺)이 송하되 계급에 떨어지지 않고/ 탁탁(卓卓; 매우 뛰어난 모양)하여 초출했다/ 3()로 어찌 안배하리오/ 시방에 자연히 핍색(逼塞)했다/ 오색선(五色線)이 나를 기미(羈縻; 옭아매다)하지 못하거늘/ 칠보관(七寶冠)을 이 누가 엄식(嚴飾)하는가.

 

불국백(佛國白)이 송하되 무계무급(無階無級)하고 다시 구함이 없어/ 조계의 제일주(第一*)를 탈득(奪得)했다/ 도리어 여릉을 향해 쌀값을 말하며(*却向廬陵言米價)/ 백항천시(*百行千市)에서 다투어 상수(相酬; 서로 酬唱)한다.

 

대매영(*大梅英)이 시중하여 차화를 들고 이르되 만약 저() 사자(師資)를 연다면 마침내 그의 이와 같은 말을 얻지 못할 것이며 만약 그 계급에 떨어짐을 요한다면 마침내 성제도 하지 않는다는 말을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은 이 제불제조가 수수(授受)하는 시절이며 역시 중생도 분한 밖이 아니다.

 

황룡신(黃龍新)이 상당하여 차화를 들고 이르되 성제도 하지 않으니 곧 계급도 없다. 이미 계급이 없거늘 6조가 어찌 그를 깊이 법기로 여김을 썼는가, 이미 그를 깊이 법기로 여겼으니 계급이 없지 않다. 중중(衆中)에 도리어 계급에 떨어지지 않는 자 있느냐. 시험삼아 청하노니 분변해 보아라.

 

대혜고(大慧杲)가 시중하여 차화를 들고 이르되 한화(閑話)를 가지고 한화로 삼지 말지니 왕왕 사()가 한화로 좇아 발생한다.

 

송원(松源)이 상당하여 차화를 들고 이르되 옳기는 곧 옳지만 모두 출신지로(出身之路)가 있지 않다. 영은문하(*靈隱門下)에 독탈(獨脫)한 이가 있지 않느냐, 봉황의 오색수(五色髓)를 고출(敲出; 두드려서 냄)하고 이룡(驪龍; 여룡)의 함하주(頷下珠; 턱 아래 구슬)를 박쇄(撲碎; 쳐서 깨뜨림)하라.

 

第一四七則; 차화는 육조단경에 나옴.

淸源; 또 청원(靑原)으로 지음. 길주(吉州) 청원산(靑原山)이니 강서(江西) 여릉(廬陵; 지금의 吉安) 동남 15의 곳에 위치함. 또 명칭이 청원안은산(靑原安隱山). 6조 혜능의 법사(法嗣) 행사선사(行思禪師; ?-740)가 일찍이 이 산에서 정거사(靜居寺)를 개창(開創)했고 북송 치평 3(106 6) 안은사(安隱寺)의 편액을 하사(下賜)함을 받았으며 청() 태종 숭덕년 간(1636-1643)에 이르러 구명(舊名)을 회복(恢復)했음. 원말(元末)에 소훼(燒燬)되었다가 명말(明末)에 다시 수복(修復)하여 총림이 되었고 지금(至今)에도 아직 존재함 [대명일통지46. 대청일통지249. 청원산지략].

行思; (?-740) 당대승. 길주(吉州) 안성(安城; 강서 安福) 사람이며 속성은 유(). 어린 나이에 출가하여 6조 혜능(慧能)에게 나아가 법을 배웠음. 남악회양(南嶽懷讓)과 나란히 이대제자(二大弟子)로 일컬으며 한가지로 6조의 법을 이었음. 후에 길주(吉州)의 청원산(靑原山) 정거사(靜居寺)에 주()한지라 고로 호가 청원행사(靑原行思). 문도가 운집하고 선풍을 크게 떨쳤으며 그 유파(流派)가 남악하(南嶽下)에 상대하므로 청원하(靑原下)로 일컬음. 개원(開元) 28년에 시적(示寂)했고 희종(僖宗)이 홍제선사(弘濟禪師)란 시호를 주었으며 탑명(塔名)은 귀진(歸眞) [송고승전9. 조당집3. 전등록5. 청원산지략2].

無見頂; 무견정상(無見頂相). 릉엄경직해7에 이르되 무견정상(無見頂相)이란 것은 화엄초(華嚴鈔)에 이르되 이것은 불타의 32상의 하나다. 곧 육계상(肉髻相)이다. 불타의 정수리에 살이 있어 높이 일어난 게 계(; 상투)와 같다. 또 이름이 무견정상(無見頂相)이니 명칭이 무견상이란 것은 이르자면 3()의 사람이 능히 그 정수리를 보지 못하는 연고이다.

那邊; 1. 대사(代詞). 먼 사람과 사물을 지시하며 비교함. (; 이것)의 상대. 2. 진속(塵俗)을 초월하고 공간을 초월한 선오(禪悟)의 경계를 은유로 가리킴. 여기에선 2를 가리킴.

; 주마(籌碼; 計數와 계산을 진행하는 用具). 옥편 주() ()이다. 또 계모(計謀)니 옥편 주() (; 점대)이다.

却向廬陵言米價; 차칙(次則)을 보라.

百行; ()은 호랑절(胡郞切; )이니 매매하고 교역하는 영업처임. 곧 시장ㆍ집시(集市; 재래 시장).

大梅英; 대매법영(大梅法英)이니 송대 운문종승. 이름이 조경(祖鏡)이며 명주(절강 영파) 장씨. 시경(試經)하여 득도했음. 무릇 의학(義學)이 숙덕(宿德)을 곤란하게 하면 법영이 매번 언사(言辭)를 놓아 그를 변명했으며 대중이 복종하는 바가 되었음. 후에 홀연히 선종을 흠모하여 구봉감소(九峰鑑韶)를 참알했고 아울러 그의 법을 이었으며 명주 대매에 거주했음. 선화(1119-1125) 초 천하 승니에게 칙명해 덕사(德士)로 삼자 법영이 법난을 우려해 사필(肆筆; 붓을 놀려 서사함)하여 노자를 해석해 진상했음. 휘종이 열람하고 기뻐하며 근신(近臣)에게 일러 가로되 법영의 도덕경해(道德經解)는 언사가 간단하고 이치는 놀랍다. 하사하여 도장(道藏)에 넣어 유행하게 했음. 소흥(1131-1162) 초에 시적했음 [오등회원16. 속전등록11].

靈隱; 송원숭악(松源崇嶽) 자신을 가리킴. 일찍이 영은사(靈隱寺)에 주()했음.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불교신문 광고 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60만 ...

blo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