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염송집주(25권)

선문염송집 권21 제871칙

태화당 2022. 2. 6. 08:31

八七一踈山在香嚴會中 一日嚴上堂 有僧問 不慕諸聖 不重己靈時如何 嚴云 萬機休罷 千聖不携 師作嘔吐勢 嚴云 *師叔不肯那 師云 不得無過 嚴云 過在甚處 師云 萬機休罷 猶有物在 千聖不携 亦從人得 嚴云 師叔莫道得麽 師云 還我法座 與你道 於是嚴令陞座 如前問之 師云 何不道肯諾不得全 嚴云 肯又肯个什麽 諾又諾个什麽 師云 肯則肯他諸聖 諾則諾於己靈 嚴云 師叔伊麽道 也須倒屙三十年始得 後住踈山 常病*返胃 一日擧此話 問鏡淸 病僧肯諾不得全 道者作麽生會 淸云 全歸肯諾 師云 不得全又作麽生 淸云 个中無肯路 師云 始契病僧意

 

圜悟勤頌 刀不自割 指不自觸 鵠白烏玄 松直棘曲 纔有纖塵帶影來 脫體全抛無眹迹 肯不存諾不立 一片淸光射斗牛 天上人間得自由

 

第八七一則; 聯燈會要八香嚴智閑 僧問 不慕諸聖 不重己靈時如何 師云 萬機休罷 千聖不携 踈山時在衆 作嘔聲云 是何言歟 師問誰 衆云 師叔 師云 不肯老僧那 山出衆云 是 師云 師叔莫道得麼 云 道得 師云 試道看 山云 若教某甲道 須還師資禮始得 師下座 讓坐作禮 躡前問 山云 萬機休罷 猶有物在 千聖不携 亦從人得 師云 請師叔道 山云 肯重不得全 師云 肯又肯箇甚麼 重又重阿誰 山云 肯則肯他諸聖 重則重自己靈 師云 饒汝恁麼 也須倒屙三十年 設有住處 近山無柴燒 近水無水喫 分明記取 後住疎山 果如師記 得疾 經二十七年方愈 自云 香嚴師兄 記我三十年倒屙 猶少三年在 每食罷 以手抉而吐之 以應前記

師叔; 疎山因其身形矮小 容貌不揚 故叢林稱爲矮師叔 矬師叔 或矮闍黎 香嚴智閑嗣潙山靈祐 南嶽下四世 疏山匡仁嗣洞山良价 靑原下五世

返胃; 同反胃 謂嘔吐症狀

 

八七一소산(踈山)이 향엄(香嚴)의 회중에 있었다. 어느 날 향엄이 상당했다. 어떤 중이 묻되 제성(諸聖)을 흠모하지 않고 기령(己靈; 자기의 靈機)도 존중하지 않을 때엔 어떠합니까. 향엄이 이르되 만기(萬機)를 휴파(休罷; 쉬어 마침)하고 천성(千聖)도 불휴(不携; 가지지 않음)니라. 스님이 구토(嘔吐)하는 형세를 지었다. 향엄이 이르되 사숙(*師叔)이 긍낙(肯諾)하지 않는가. 스님이 이르되 허물이 없음을 얻지 못한다. 향엄이 이르되 허물이 어느 곳에 있는가. 스님이 이르되 만기를 휴파하여도 오히려 물건이 있으며 천성을 불휴라도 또한 사람을 좇아 얻는다. 향엄이 이르되 사숙이 말함을 얻지 못하느냐. 스님이 이르되 법좌를 나에게 돌려준다면 너에게 말해 주겠다. 이에 향엄이 승좌하게 하고 앞과 같이 물었다. 스님이 이르되 왜 긍낙(肯諾)은 온전함을 얻지 못한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향엄이 이르되 긍()은 또 이 무엇을 긍함이며 낙()은 또 이 무엇을 낙함인가. 스님이 이르되 긍()은 곧 저 제성(諸聖)을 긍함이며 낙()은 곧 기령(己靈)을 낙함이다. 향엄이 이르되 사숙이 이렇게 말한다면 또한 반드시 30년 동안 거꾸로 똥을 누어야 비로소 옳을 것이다. 후에 소산에 거주했는데 늘 반위(*返胃)의 병을 앓았다. 어느 날 이 화()를 들어 경청(鏡淸)에게 물었다. 병승(病僧)이 긍낙은 온전함을 얻지 못한다 한 것을 도자(道者)는 어떻게 이회하느냐. 경청이 이르되 전부 긍낙으로 돌아갑니다. 스님이 이르되 온전을 얻지 못한다 한 것은 또 어떠한가. 경청이 이르되 개중(箇中)에 긍로(肯路)가 없습니다. 스님이 이르되 비로소 병승(病僧)의 뜻에 계합한다.

 

원오근(圜悟勤)이 송하되 칼이 스스로를 베지 못하고/ 손가락이 스스로를 접촉하지 못한다/ 고니는 희고 까마귀는 검고/ 소나무는 곧고 가시나무는 굽었다/ 겨우 섬진(纖塵)만큼 그림자를 가지고 옴이 있어도/ 탈체(脫體)를 전부 던져 진적(眹迹)이 없다/ ()도 두지 않고 낙()도 세우지 않으면/ 일편청광(一片淸光)이 두우(斗牛)를 쏘아/ 천상인간(天上人間)이 자유를 얻는다.

 

第八七一則; 연등회요8 향엄지한(香嚴智閑). 중이 묻되 제성(諸聖)을 흠모하지 않고 기령(己靈; 자기의 靈機)도 존중하지 않을 때엔 어떠합니까. 스님이 이르되 만기(萬機)를 휴파(休罷; 쉬어 마침)하고 천성(千聖)도 불휴(不携; 가지지 않음)니라. 소산(踈山)이 때에 대중에 있다가 구성(嘔聲)을 짓고 이르되 이 무슨 말인가. 스님이 묻되 누구인가. 대중이 이르되 사숙(師叔)입니다. 스님이 이르되 노승을 긍정하지 않는가. 소산이 대중에서 나와 이르되 그렇다. 스님이 이르되 사숙이 말함을 얻지 않겠는가. 이르되 도득(道得)한다. 스님이 이르되 시험삼아 말해 보아라. 소산이 이르되 만약 모갑으로 하여금 말하게 하려면 모름지기 사자(師資)의 예()를 돌려주어야 비로소 옳다. 스님이 하좌하여 자리를 양보하고 작례(作禮)하고는 앞의 물음을 밟았다(諸聖을 구하지 않고 己靈云云한 구). 소산이 이르되 만기(萬機)를 휴파(休罷)하여도 오히려 물건이 있으며 천성(千聖)을 불휴(不携)해도 또한 사람으로부터 얻는다. 스님이 이르되 사숙의 말을 청한다. 소산이 이르되 긍중(肯重)은 온전함을 얻지 못한다. 스님이 이르되 긍()은 또 저 무엇을 긍함이며 중()은 또 누구를 중함인가. 소산이 이르되 긍()은 곧 저 제성(諸聖)을 긍함이며 중()은 곧 자기의 영()을 중함이다. 스님이 이르되 가령() 네가 이러하다면 또한 모름지기 30년을 거꾸로 똥눌(倒屙) 것이다. 설사 주처(住處)가 있더라도 산을 가까이하면 태울 섶이 없을 것이며 물을 가까이하면 먹을 물이 없으리니 분명히 기취(記取)하라. 후에 소산(疎山)에 거주했는데 과연 스님의 예언()과 같았다. 득질(得疾)했는데 27년을 경과하고서야 비로소 나았다. 스스로 이르되 향엄사형(香嚴師兄)이 예언하기를 내가 30년 동안 도아(倒屙)한다 했는데 아직 3년이 모자란다. 매번 식사를 마치면 손으로써 긁어내어 그것을 토해 전기(前記)에 응했다.

師叔; 소산은 그의 신형(身形)이 왜소하고 용모가 불양(不揚)함으로 인해 고로 총림에서 호칭하기를 왜사숙(矮師叔)ㆍ좌사숙(矬師叔) 혹 왜사리(矮闍黎)라 했음. 향엄지한은 위산영우를 이었으니 남악하 4세며 소산광인은 동산양개를 이었으니 청원하 5.

返胃; 반위(反胃)와 같음. 이르자면 구토증상(嘔吐症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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