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八九四】潭州龍牙山*居遁禪師 初叅翠微 乃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微云 *與我過禪板來 師取禪板與翠微 微接得便打 師云 打卽任打 要且無祖師意 又問臨濟 如何是祖師西來意 濟云 與我過蒲團來 師取蒲團與臨濟 濟接得便打 師云 打卽任打 要且無祖師意 師住後 有僧問 和尙行脚時 問二尊宿祖師意 未審二尊宿道眼明也未 師云 明卽明也 要且無祖師意
雪竇顯頌 龍牙山裏龍無眼 死水何曾振古風 禪板蒲團不能用 只應分付與*盧公
又云 *遮老漢也未得勦絶 復成頌曰 盧公付了亦何憑 坐倚休將繼祖燈 堪對暮雲歸未合 遠山無限碧層層
大覺璉頌 兩處叅尋用一般 將爲祖意却瞞頇 朔風掃盡*胡天雪 依舊中霄徹骨寒
天童覺頌 蒲團禪板對龍牙 何事當機不作家 *未意*成褫明目下 恐將流落在天涯 虛空那掛劒 *星漢却浮楂 *不萌草解藏香象 無底籃能著活虵 今日江湖何障礙 通方津渡有舩車
佛陁遜頌 可憐禪板與蒲團 持去持來役夢魂 直道始終無祖意 *螺師何日透龍門
智海淸頌 翠微關林際闢 關兮闢兮轟霹靂 八臂那吒到恐難 三足麒麟*庸詎敵 老龍牙曾扣擊 擭浪拏雲衝鐵壁 禪板蒲團便過來 命若懸絲都不惜 報君知休更覔 个事圓成如皎日 打任打兮意且無 肯深肯兮妙何極
石門聰拈 龍牙無人挨著猶可 纔被衲子挨着 失却一隻眼
五祖戒拈 祖師*土宿臨頭 又云 和尙得與麽*面長
雪竇顯拈 臨濟翠微 只解放不解收 我當時若作龍牙 待伊索蒲團禪板 拈得劈胷便擲
翠嵓芝拈 當初如是 今時衲僧 皮下還有血麽
東禪齊拈 衆中道 佛法卽有 只是無祖師意 若恁麽會 有何交涉 別作麽生會無祖師意底道理
法眞一拈 龍牙恁麽道 也是藏身露影 且道 那个是隱身處
大潙喆拈 翠微臨濟 可謂本分宗師 龍牙一等是*撥草瞻風 與他後人爲龜爲鑑 又擧住後僧問處 乃云 龍牙瞻前顧後 應病與藥 大潙則不然 待問當時二尊宿明不明 劈脊便棒 非唯扶豎翠微臨濟 亦乃不辜他來問
圜悟勤拈 者漢叅來莽鹵 學處顢頇 雖然顧後瞻前 爭乃藏身露影 旣是無祖師意 用肯作麽 若向个裏辨得 山僧與你柱杖子 若見不得 和鼻孔一時失却
白雲昺拈 翠微臨濟 垂絲千尺 意在深潭 龍牙離鉤三寸 却不呑鉤 直得五湖浪起 四海波飜 蝦蟹魚鼈 神驚目悚 爲甚麽直得如此 丈夫自有衝天志 不向如來行處行
僧寶傳龍牙賛曰 余觀龍牙偈曰 學道先須有悟由 還如*曾鬪快龍舟 雖然舊閣閑田地 一度嬴來方始休 君若隨緣得似風 吹沙走石不勞功 但於事上通無事 見色聞聲不用聾 皆淸深精密 如其爲人 疑問翠微林際祖意 度禪板蒲團機語 在已見洞山之後 雪竇以瞎龍死水罪之 龍牙聞之必大笑
●第八九四則; 此話出聯燈會要二十二 五燈會元十三
●居遁; (835-923) 唐代曹洞宗僧 撫州南城(江西)人 俗姓郭 世稱龍牙居遁禪師 十四歲 於吉州(江西)滿田寺出家 復於嵩嶽受戒 後遊歷諸方 初參翠微無學與臨濟義玄 復謁德山 後禮謁洞山良价 竝嗣其法 其後受湖南馬氏之禮請 住持龍牙山妙濟禪苑 號證空大師 五代後梁龍德三年示寂 壽八十九 [五燈會元十三 傳燈錄十七 祖堂集八]
●與我過禪板; 過 給予 通雅 予亦謂之過 辰州人謂以物予人曰過
●盧公; 碧巖錄第二十則 昔雪竇自呼爲盧公 他題晦迹自貽云 圖畫當年愛洞庭 波心七十二峯靑 而今高臥思前事 添得盧公倚石屏 ▲碧巖錄第二十則種電鈔云 盧公者雪竇自稱 古人自稱公者多
●遮老漢; 指龍牙居遁
●胡天; 胡地天 ▲五燈會元十四靈竹守珍 錫帶胡天雪 甁添漢地泉
●未意成褫明目下; 從容錄五第八十則云 龍牙非不作家 未意成褫明目下 不欲當機雷奔電掃 一期峭峻
●成褫; 從容錄五第八十則云 成褫猶成就 結裹也
●星漢; 星河 銀河 天河
●星漢却浮楂; 從容錄五第八十則云 聞世傳 天河與海通 海濱年年八月 有浮槎往來 不失信 博望侯張騫 乃多齎糧食乘槎而去 怱怱不覺晝夜 奄至一處 見城郭居室 室中多織女 唯一丈夫 牽牛臨渚 不飮驚問 何人至此 騫問 此是何處 曰 君可往蜀問嚴君平 乃如其言 君平曰 某年月有客星犯牛斗 因話錄漢書載 張騫窮河源 言奉使之遠 實無天河之說 唯博物志說 有人齎糧乘槎 到天河 見飮牛丈夫 問君平 客星犯牛斗 卽此人也
●不萌草解藏香象; 從容錄五第八十則云 僧問曹山 不萌之草 爲甚能藏香象 山云 闍梨幸是作家
●螺師; 師 疑螄
●庸詎; 庸 表示疑問 相當于何
●土宿; 土曜星也 是九曜其一 凶惡星故 歲運當之則災害最深 故方語命如懸絲 [碧巖錄第二十則種電鈔]
●面長; 緩慢悠長不伶俐之相也 [碧巖錄第二十則種電鈔]
●撥草瞻風; 又曰撥草參玄 撥無明之荒草 瞻望佛祖之玄風也 又涉險路 瞻仰知識之德風也
●曾鬪快龍舟; 碧巖錄第四十五則種電鈔 曾鬪快龍舟 事文類聚端午下云 荊楚歲時記 屈原以是日死於汨羅 人惕其死 竝以舟楫拯之 至今競渡 是其遺俗
【八九四】 담주(潭州) 용아산(龍牙山) 거둔선사(*居遁禪師)가 취미(翠微; 無學)를 초참(初叅)했다. 이에 묻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취미가 이르되 나에게 선판(禪板)을 갖다 주게나(*與我過禪板來). 스님이 선판을 취해 취미에게 주었다. 취미가 접득(接得)하자 바로 때렸다. 스님이 이르되 때린다면 곧 때리는 대로 맡기지만 요차(要且; 종내. 도리어) 조사의(祖師意)는 없습니다. 또 임제에게 묻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임제가 이르되 나에게 포단(蒲團)을 갖다 주게나. 스님이 포단을 취해 임제에게 주었다. 임제가 접득(接得)하자 곧 때렸다. 스님이 이르되 때린다면 곧 때리는 대로 맡기지만 요차(要且) 조사의(祖師意)는 없습니다. 스님이 주후(住後)에 어떤 중이 묻되 화상이 행각할 때 두 존숙에게 조사의(祖師意)를 물었거니와 미심하나니 두 존숙이 도안(道眼)이 밝았습니까 또는 아닙니까. 스님이 이르되 밝기는 곧 밝았지만 요차(要且) 조사의는 없었따.
설두현(雪竇顯)이 송하되 용아산 속에 용이 눈이 없나니/ 사수(死水)에서 어찌 고풍을 떨치랴/ 선판과 포단을 능히 쓰지 못하니/ 단지 응당 분부하여 노공(*盧公)에게 주어야 하리라.
또 이르되 이 노한(*遮老漢)을 초절(勦絶; 斷絶. 勦는 끊다)함을 얻지 못했다 하고 다시 송을 이루어 가로되 노공(盧公)에게 분부해 마침도 또한 무엇을 빙거(憑據)하리오/ 좌의(坐倚; 포단과 선판에 앉거나 기댐)하여 장차 조등(祖燈)을 계승(繼承)함을 그만두어라/ 가히(堪) 모운(暮雲)이 돌아가다 합하지 않음을 대했나니/ 먼 산은 무한히 푸르름만 층층(層層)이로다.
대각련(大覺璉)이 송하되 양처(兩處)에서 참심(叅尋)하매 용(用)이 일반인데/ 거의(將) 조의(祖意)가 도리어 만한(瞞頇; 糊塗)이 되었다/ 삭풍(朔風)이 호천(*胡天)의 눈을 쓸어 없앴거늘/ 의구히 중소(中霄; 霄는 宵와 통함)에 뼈에 사무치게 춥다.
천동각(天童覺)이 송하되 포단과 선판으로 용아를 상대하니/ 무슨 일로 당기(當機)하여 작가가 아니더냐/ 명목 아래 성치(*成褫; 성취)를 뜻하지 않았음은(*未意*成褫明目下)/ 이에 유락(流落)하여 천애(天涯)에 있을까 염려했음이다/ 허공에 어찌 괘검(掛劒)하리오만/ 성한에 도리어 뗏목을 띄운다(*星漢却浮楂)/ 불맹초에 향상을 숨길 줄 알고(*不萌草解藏香象)/ 무저람(無底籃)에 능히 활사(活虵)를 붙인다/ 금일 강호(江湖)가 어찌 장애가 되리오/ 통방(通方)의 진도(津渡)에 선거(舩車)가 있다.
불타손(佛陁遜)이 송하되 가련하다 선판과 포단이여/ 지거지래(持去持來)하며 몽혼(夢魂)을 부리는구나/ 바로 시종(始終) 조의(祖意)가 없다고 말하더라도/ 나사(*螺師)가 어느 날 용문을 투과하리오.
지해청(智海淸)이 송하되 취미는 닫고(關) 임제는 열었나니(闢)/ 닫고 열면서 우렁찬(轟) 벽력(霹靂)이다/ 팔비나타(八臂那吒)가 이르러도 어려울까 염려되는데/ 삼족기린(三足麒麟)이 어찌(*庸詎) 당적(當敵)하겠는가/ 노용아(老龍牙)가 일찍이 구격(扣擊)하여/ 획랑나운(擭浪拏雲)하며 철벽을 쳤다(衝)/ 선판과 포단을 곧 건네어 주니(過來)/ 목숨이 현사(懸絲; 실에 매달리다)와 같지만 모두 아끼지 않았다/ 그대에게 알려 알게 하나니 다시 찾음을 그쳐라/ 개사(个事; 此事)는 원성(圓成)하여 교일(皎日)과 같다/ 때리면 때리는 대로 맡기지만 서래의(意)는 또 없고/ 긍정은 깊이 긍정한다 하니 묘(妙)가 어찌 다하랴(極).
석문총(石門聰)이 염하되 용아를 애착(挨著; 압박하다)하는 사람이 없으면 오히려 옳거니와 겨우 납자가 애착함을 입자 일척안(一隻眼)을 잃어버렸다.
오조계(五祖戒)가 염하되 조사(祖師)의 토수가 임두(*土宿臨頭)했다. 또 이르되 화상은 이렇게 면장(*面長)을 얻었습니까.
설두현(雪竇顯)이 염하되 임제와 취미는 다만 놓을 줄만 알고 거둘 줄을 알지 못했다. 내가 당시에 만약 용아가 되었다면 그가 포단과 선판을 찾음을 기다렸다가 집어서(拈得) 가슴에다가 곧 던졌겠다.
취암지(翠嵓芝)가 염하되 당초(當初)에 이와 같았거니와 금시(衲僧)의 납승은 피하(皮下)에 도리어 피가 있느냐.
동선제(東禪齊)가 염하되 중중(衆中)에서 말하되 불법은 곧 있지만 다만 이 조사의(祖師意)가 없다 하거니와 만약 이렇게 이회한다면 무슨 교섭이 있으리오. 달리 조사의가 없는 도리를 어떻게 이회하느냐.
법진일(法眞一)이 염하되 용아의 이러한 말은 또한 이 몸은 감췄으나 그림자가 드러났다. 그래 말하라, 어느 것이 이 은신한 곳인가.
대위철(大潙喆)이 염하되 취미와 임제는 가위(可謂) 본분종사며 용아는 일등(一等; 一樣으로 평등) 이 발초첨풍(*撥草瞻風)인지라 저 후인에게 귀(龜)가 되고 감(鑑)이 되어 주었다. 또 주후(住後)에 중이 물은 곳을 들고는 이에 이르되 용아가 첨전고후(瞻前顧後)하면서 응병여약(應病與藥)하였거니와 대위(大潙)는 곧 그렇지 않다. 당시에 두 존숙이 (道眼이) 명(明)했는지 불명(不明)했는지 물음을 기다렸다가 등에다 곧 방(棒)했더라면 취미와 임제를 부수(扶豎)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곧 그 내문(來問)을 저버리지 않았으리라.
원오근(圜悟勤)이 염하되 자한(者漢)은 참래(叅來)가 망로(莽鹵; 粗率)하고 학처(學處)가 만한(顢頇; 糊塗)이다. 비록 그러히 고후첨전(顧後瞻前)했지만 이에 몸을 감췄으나 그림자가 드러났음을 어찌하겠는가. 이미 이 조사의(祖師意)가 없다면 긍정을 써서 무엇하리오. 만약 이 속을 향해 변득(辨得)한다면 산승이 너에게 주장자를 주려니와 만약 봄을 얻지 못한다면 비공(鼻孔)마저 일시에 실각(失却)한다.
백운병(白雲昺)이 염하되 취미와 임제가 낚싯줄을 천 척 드리움은 뜻이 심담(深潭)에 있었지만 용아는 갈고리와 세 치 떨어진지라 도리어 갈고리를 삼키지 못했다. 바로 오호(五湖)에 파랑이 일어나고 사해(四海)에 파도가 번복(飜覆)하며 하해(蝦蟹; 새우와 게)와 어별(魚鼈)이 정신이 놀라고 눈이 송연(悚然)함을 얻었다. 무엇 때문에 바로 이와 같음을 얻는가, 장부는 스스로 충천(衝天)할 의지(意志)가 있는지라 여래의 행처(行處)를 향해 행하지 않는다.
승보전(僧寶傳)에 용아를 찬(賛)해 가로되 내(德洪)가 용아의 게를 보았는데 가로되 학도는 먼저 반드시 오유(悟由)가 있어야 하나니/ 도리어 일찍이 쾌룡주를 다툼(*曾鬪快龍舟)과 같다/ 비록 그렇게 구각(舊閣)의 한가한 전지(田地)지만/ 한 차례 이기고 와야 비로소 쉰다/ 그대가 만약 수연(隨緣)하되 바람과 같음을 얻는다면/ 모래를 불고 돌을 달리게 하면서 노고롭게 공(功)들이지 않는다/ 단지 사상(事上)에서 무사(無事)를 통하여/ 견색문성(見色聞聲)하매 귀먹음을 쓰지 않으리라. 대개 청심정밀(淸深精密)하다. 그 사람됨과 같다면 취미와 임제에게 조의(祖意)를 의문(疑問)하매 선판과 포단을 건넨 기어(機語)는 이미 동산(洞山)을 참견한 후에 있었거늘 설두가 할룡(瞎龍)과 사수(死水)로써 그에게 죄준 것은 용아가 이를 듣는다면 반드시 대소(大笑)하리라.
●第八九四則; 차화는 연등회요22, 오등회원13에 나옴.
●居遁; (835-923) 당대 조동종승. 무주 남성(강서) 사람이며 속성은 곽이며 세칭이 용아거둔선사(龍牙居遁禪師). 14세에 길주(강서) 만전사에서 출가했고 다시 숭악에서 수계했음. 후에 제방을 유력(遊歷)하다가 처음에 취미무학과 임제의현을 참했음. 다시 덕산을 알현하고 후에 동산양개(洞山良价)를 예알하였으며 아울러 그의 법을 이었음. 그 후에 호남 마씨의 예청(禮請)을 받아 용아산(龍牙山) 묘제선원에 주지했음. 호가 증공대사며 5대 후량 용덕 3년에 시적했음. 나이는 89 [오등회원13. 전등록17. 조당집8].
●與我過禪板; 과(過)는 급여(給予)임. 통아(通雅) 여(予)를 일컬어 과(過)라 한다. 진주(辰州) 사람들이 이르기를 물건을 타인에게 줌을 가로되 과(過)라 한다.
●盧公; 벽암록 제20칙. 옛적에 설두가 스스로 호칭하기를 노공(盧公)이라 했다. 그가 회적자이(晦迹自貽; 자취를 숨기며 스스로에게 줌)를 제(題)해 이르되 도화(圖畫)로 당년에 동정호를 사랑했나니/ 파도 가운데 72봉(峯)이 푸르더라/ 여금에 높이 누워 앞의 일을 생각하노니/ 석병(石屛)에 기댄 노공(盧公)을 첨득(添得; 득은 조사)했구나. ▲벽암록 제20칙 종전초에 이르되 노공(盧公)이란 것은 설두의 자칭이니 고인은 자칭 공(公)이라 한 자가 많다.
●遮老漢; 용아거둔(龍牙居遁)을 가리킴.
●胡天; 호지(胡地)의 하늘. ▲오등회원14 영죽수진. 석장은 호천(胡天)의 눈을 가졌고 병에는 한지(漢地)의 샘을 더했다.
●未意成褫明目下; 종용록5 제80칙에 이르되 용아가 작가가 아님은 아니지만 명목(明目) 아래에서 성치(成褫)를 뜻하지 않았음은 당기(當機)하여 뇌분전소(雷奔電掃)하면서 일기(一期)에 초준(峭峻)하려고 하지 않았음이다.
●成褫; 종용록5 제80칙에 이르되 성치(成褫)는 성취(成就)와 같다. 결과(結裹)다.
●星漢; 성하(星河), 은하(銀河), 천하(天河).
●星漢却浮楂; 종용록5 제80칙에 이르되 듣건대 세상에서 전하기를 천하(天河)가 바다와 더불어 통하며 해빈(海濱)에 해마다 8월이면 부사(浮槎)의 왕래가 있어 신(信)을 잃지 않는다. 박망후(博望侯) 장건(張騫)이 이에 양식을 많이 가지고(齎) 승사(乘槎)하여 떠났다. 총총(怱怱)하며 주야를 깨닫지 못했는데 문득(奄) 한 곳에 이르렀다. 성곽과 거실(居室)이 보였고 실중(室中)에 직녀(織女)가 많았다. 오직 한 장부(丈夫)가 견우(牽牛)하여 물가(渚)에 임했는데 마시지 않고 놀라며 묻되 어떤 사람이 여기에 이르렀는가. 장건이 묻되 여기는 이 어느 곳인가. 가로되 그대가 가히 촉(蜀)으로 가서 엄군평(嚴君平)에게 물어라. 이에 그의 말과 같이 했더니 군평이 가로되 모년월(某年月)에 객성(客星)이 우두(牛斗)를 범함이 있었습니다. 인화록(因話錄) 한서의 기재에 장건이 하원(河源)을 궁진했다 했는데 봉사(奉使)의 멂을 말했음이지 실로 천하(天河)의 설이 없다. 오직 박물지(博物志)에 설하되 어떤 사람이 양식을 가지고 승사(乘槎)하여 천하(天河)에 이르러 음우(飮牛; 소에게 물을 먹이다)하는 장부를 보았다. 군평에게 물으니 객성이 우두(牛斗)를 범했다 했으니 곧 이 사람이다.
●不萌草解藏香象; 종용록5 제80칙에 이르되 중이 조산에게 묻되 불맹지초(不萌之草)가 무엇 때문에 능히 향상(香象)을 감춥니까. 조산이 이르되 사리(闍梨)가 다행히 이 작가다.
●螺師; 사(師)는 사(螄; 소라)로 의심됨.
●庸詎; 용(庸)은 의문을 표시함. 하(何)에 상당함.
●土宿; 토요성(土曜星)이니 이는 9요(曜)에 그 하나임. 흉악성(凶惡星)인 고로 세운(歲運)이 이에 당하면 곧 재해가 가장 깊음. 고로 방어(方語)로 명이 실에 매달림과 같다(命如懸絲) [벽암록제20칙종전초].
●面長; 완만하고 유장(悠長; 길고 오램)하여 영리하지 못한 상임 [벽암록제20칙종전초].
●撥草瞻風; 또 가로되 발초참현(撥草參玄)이니 무명의 거친 잡초를 헤치고 불조의 현풍(玄風)을 첨망(瞻望)함. 또 험로를 건너면서 지식의 덕풍을 첨앙함.
●曾鬪快龍舟; 벽암록 제45칙 종전초. 증투쾌룡주(曾鬪快龍舟) 사문류취(事文類聚) 단오하(端午下)에 이르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 굴원(屈原)이 이날에 멱라강(汨羅江)에서 죽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죽음을 불쌍히 여겨 모두 주즙(舟楫; 楫은 노)으로써 그를 건지려 했다. 지금(至今)의 경도(競渡)가 이는 그 유속(遺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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