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염송집주(25권)

선문염송집 권23 제1011칙

태화당 2022. 2. 23. 08:36

一一雲門大師垂語云 人人盡有光明在 看時不見暗昏昏 作麽生是諸人光明 自代云 厨庫三門 又云 好事不如無

 

雪竇顯頌 *自照列孤明 爲君通一線 花謝樹無影 看時誰不見 見不見 倒騎牛兮入佛殿

薦福逸頌 黑黑 無問東西與南北 厨庫三門相對高 撑天拄地同聚墨 雖然好事不如無 敢保韶陽避不得

蔣山勤頌 夜明簾外千峯秀 鸞鏡臺前萬像虛 掃蹤滅迹不立錙銖 誰爲佛殿誰是香厨 敲出鳳凰五色髓 擊碎驪龍明月珠

佛眼遠上堂云 今時學者 不究佛語 只究祖師語 殊不知祖師語卽是佛語 莫如此揀擇 却成謗佛法去 只如雲門大師示衆曰 好事不如無 者个是祖師語 是他道三門佛殿 厨庫僧堂 諸人尋常看時 是看是不看 若看 他道看時不見暗昏昏 如何得成光明 旣是光明了 又道好事不如無作麽生 *又不要去 且如楞嚴會上 說个晦昧爲空 空晦暗中 結暗爲色 色雜妄想 想相爲身 聚緣內搖 趣外奔逸 昏擾擾相 以爲心性 一迷爲心 決定惑爲色身之內 不知色身外 洎山河虛空大地 咸是妙眀眞精妙心中所現物 者个說話 甚是子細 且道 與雲門道底事 相去多少 莫只明祖師語不究佛語 有人曰 我亦不用佛語 不用祖師語 只用自語 祖師語佛語尙不用 更用自語 又道我宗無語 不用言語 有語尙不是 況無語耶 莫作夢 從朝至夜 佛語作一邊 祖師語作一邊 無語作一邊 有語作一邊 妄想作一邊 無妄想作一邊 若恁麽 眞可謂看時不見暗昏昏也

 

第一一一則; 此話出雲門錄上 碧巖錄第八十六則 雲門室中垂語接人 爾等諸人脚跟下 各各有一段光明 輝騰今古逈絶見知 雖然光明 恰到問著又不會 豈不是暗昏昏地 二十年垂示 都無人會他意 香林後來請代語 門云 厨庫三門 又云 好事不如無 尋常代語只一句 爲什麼這裏却兩句 前頭一句爲爾略開一線路教爾見 若是箇漢 聊聞擧著剔起便行 他怕人滯在此 又云好事不如無 依前與爾掃却

自照列孤明; 碧巖錄第八十六則 自照列孤明 自家脚跟下 本有此一段光明 只是尋常用得暗 所以雲門大師 與爾羅列此光明 在爾面前 且作麼生是諸人光明 厨庫三門 此是雲門列孤明處也

又不要去; 拈頌說話曰 又不要去者 好事不如無也 去者 語助辭也

 

一一운문대사가 수어(垂語)하여 이르되 사람마다 다 광명이 있지만 볼 때는 보이지 않고 어두워 캄캄하다. 무엇이 이 제인(諸人)의 광명인가. 스스로 대운(代云)하되 주고(厨庫)와 삼문이다. 또 이르되 좋은 일도 없음만 같지 못하다(好事不如無).

 

설두현(雪竇顯)이 송하되 자조(自照)하여 고명(孤明)을 나열하여(*自照列孤明)/ 그대를 위해 일선(一線)을 통하노니/ 꽃 떨어지고() 나무에 그림자 없지만/ 볼 때에 누가 보지 못하리오/ ()이 불견(不見)인지라/ 소를 거꾸로 타고 불전에 들어간다.

 

천복일(薦福逸)이 송하되 캄캄함이여(黑黑)/ 동서와 남북을 물을 게 없다/ 주고(厨庫)와 삼문(三門)이 상대하여 높나니/ 탱천주지(撑天拄地)하며 함께 먹()을 모았다/ 비록 그렇게 호사(好事)라도 없음만 같지 못하지만/ 감히 보증하나니 소양(韶陽; 운문)도 피함을 얻지 못한다.

 

장산근(蔣山勤)이 송하되 야명렴(夜明簾) 밖에 천봉(千峯)이 빼어나고/ 난경대(鸞鏡臺) 앞에 만상(萬像)이 비었다()/ 소종멸적(掃蹤滅迹)하여 치수(錙銖; 중량)를 세우지 않거늘/ 무엇()이 불전이 되며 무엇이 이 향주(香厨)인가/ 봉황의 오색수(五色髓)를 두드려 내고(敲出)/ 이룡(驪龍)의 명월주(明月珠)를 쳐서 부수었다(擊碎).

 

불안원(佛眼遠)이 상당하여 이르되 금시의 학자들은 불어(佛語)를 연구하지 않고 다만 조사어(祖師語)를 연구하나니 조사어가 곧 이 불어임을 너무 알지 못한다. 이와 같이 간택하여 도리어 불법을 비방함을 이루지 말아라. 지여(只如) 운문대사가 시중하여 가로되 좋은 일도 없음만 같지 못하다. 이것은 이 조사어다. 이 그가 말하되 삼문과 불전, 주고(厨庫)와 승당(僧堂)이라 했거니와 제인이 심상(尋常)에 볼 때(看時) 이 보는가(), 이 보지 않음인가(不看). 만약 본다면 그가 말하되 볼 때 보이지 않고 어두워 캄캄하다(暗昏昏) 했거늘 어떻게 광명을 이룸을 얻겠는가. 이미 이 광명이거늘 또 말하되 좋은 일도 없음만 같지 못하다 했으니 또 요하지 않음이다(*又不要去). 차여(且如) 릉엄회상(楞嚴會上)에서 설하되 저() 회매(晦昧; 昏暗)를 공()으로 삼고 공회(空晦)의 암중(暗中)에서 결암(結暗)하여 색()으로 삼으며 색이 망상(妄想)과 섞인 상상(想相)을 신()으로 삼는다. 취연(聚緣)하여 안으론 흔들리고 취외(趣外; 밖으로 趣向)하여 분일(奔逸)하나니 어두워 요요(擾擾)한 상()을 심성(心性)으로 삼는다. 한 번 미()해 심()으로 삼으면 결정코 미혹하여 색신의 안으로 삼거니와 색신의 밖, 및 산하ㆍ허공ㆍ대지가 모두 이 묘명(妙眀)한 진정묘심(眞精妙心) 중에 나타난 바의 물건인 줄 알지 못한다. (者个) 설화가 심히 이 자세하다. 그래 말하라, 운문이 말한 일과 더불어 서로 떨어짐이 얼마인가. 다만 조사어만 밝히고 불어를 불구(不究; 연구하지 않음)하지 말아라. 어떤 사람이 가로되 나는 또한 불어도 쓰지 않고 조사어도 쓰지 않고 다만 자어(自語)를 쓴다 하거니와 조사어와 불어도 오히려 쓰지 않거늘 다시 자어를 쓰겠는가. 또 말하되 아종(我宗)은 말이 없어서(無語) 언어를 쓰지 않는다 하거니와 유어(有語)도 오히려 옳지 않거늘 하물며 무어(無語)이겠는가. 꿈꾸지 말아라. 아침으로부터 밤에 이르기까지 불어(佛語)로 일변(一邊)을 짓고 조사어(祖師語)로 일변을 짓고 무어(無語)로 일변을 짓고 유어(有語)로 일변을 짓고 망상(妄想)으로 일변을 짓고 무망상(無妄想)으로 일변을 지을지니 만약 이러하다면 참으로 가위(可謂) 볼 때 보이지 않고 어두워 캄캄한 것이다.

 

第一一一則; 차화는 운문록상에 나옴. 벽암록 제86. 운문이 실중(室中)에서 수어(垂語)하여 접인(接人)하되 너희 등 제인의 각근하(脚跟下)에 각각 한 조각의 광명이 있어서 금고(今古)에 휘등(輝騰)하여 견지(見知)가 형절(逈絕)하다 하니라. 비록 그러하여 광명이지만 마침() 문착(問著)함에 이르러선 또 알지 못하거늘 어찌 이 어두워 캄캄한 게(暗昏昏地) 아니겠는가. 20년을 수시(垂示)하여도 도무지 그의 뜻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향림(香林; 澄遠)이 후래(後來)에 대어(代語)를 청하자 운문이 이르되 주고(廚庫)와 삼문(三門)이다. 또 이르되 호사(好事)라도 없음만 같지 못하다 하였다. 심상(尋常)의 대어(代語)는 다만 1구이거늘 무엇 때문에 이 속에선 도리어 양구(兩句)인가. 전두(前頭)1(주고와 삼문)는 너희를 위해 일선로(一線路)를 조금() 열어 너희로 하여금 보게 한 것이니 만약 이 개한(箇漢; 진정한 장부)일진대 애오라지 거착(擧著)함을 들으면 척기(剔起; 눈썹을 치켜세우다)하여 곧 가겠지만 그(운문)가 사람들이 여기(주고와 삼문)에 체재(滯在)할까 두려워하여 또 이르되 호사(好事)라도 없음만 같지 못하다 하여 의전(依前)히 너희에게 소각(掃却)해 준 것이다.

自照列孤明; 벽암록 제86. 자조(自照)하여 고명(孤明)을 나열하여 라고 하니 자가(自家; 는 조사)의 각근하(脚跟下)에 본래 이 한 조각의 광명이 있지만 다만 이 심상(尋常)에 쓰면서 어둠()을 얻는지라 소이로 운문대사가 너희에게 이 광명을 나열해 주어 너희의 면전에 두었나니() 그래 무엇이 이 제인의 광명인가. 주고(廚庫)와 삼문(三門)이라 하니 이것이 이 운문이 고명(孤明)을 나열한 곳이다.

又不要去; 염송설화에 가로되 우불요거(又不要去)란 것은 호사불여무(好事不如無). ()란 것은 어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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