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염송집주(30권)

선문염송집 권29 제1362칙

태화당 2022. 4. 5. 09:02

一三六二*天台山*德韶國師在衆時 問龍牙云 天不能盖 地不能載 此理如何 牙云 道者合如是 師云 再乞垂示 牙云 子向後自會去在 師不諭其旨 尋遊*臨川 *淨慧法席 以徧涉諸方 倦於叅問 但隨衆而已 一日因僧入室次 淨慧開示其僧 師聞之 忽然省悟

 

智海淸頌 天不能盖 地不能載 裂破虛空 雄雄絶對 寒山放箒覓豐干 普化搖鈴尋布帒 叅玄人須慷慨 箇事由來明大殺 龍牙尖上現全身 *丹丘道者猶疑在 纍垂依衆下臨川 擬涉諸方心已憊 心已憊 屛蔽之間忽醒快 *節髦落盡獨歸來 *蘇公不下單于拜

 

第一三六二則; 聯燈會要二十七 天台德韶國師 師處州龍泉縣陳氐子 問龍牙云 天不能盖 地不能載時如何 牙云 道者合如是 凡經十七次問 牙云 若爲汝說 汝已後罵我去 師後住天台通玄峰 因澡浴 忽省前話 遂具威儀 焚香遙禮龍牙云 當時若爲我說 今日決定罵他 …… 師參五十三員善知識 後謁法眼 但隨衆而已 一日有僧問法眼 如何是曹源一滴水 眼云 是曹源一滴水 僧罔措 師在座側 豁然開悟 凝滯氷釋

天台山; 位於浙江臺州府(天台縣)佛霞嶺山脈東北端 又稱天梯山 或稱臺嶽 以山形如八葉覆蓮 有八支八溪及上臺 中臺 下臺等 似三星之臺宿 故稱天台

德韶; (891-972) 五代吳越法眼宗僧 處州龍泉(浙江龍泉)人 一說縉雲(浙江縉雲)人 俗姓陳 十五歲出家 十八歲受具足戒 嘗遍訪明師五十三人 後爲臨川法眼文益之法嗣 復入天台山訪智顗之遺蹟 止住白沙寺 後受吳越王錢弘俶 迎至杭州 尊爲國師 時天台山之螺溪義寂 慨嘆天台敎籍之散佚 聞高麗存有天台敎籍 與師共議之 師乃乞錢弘俶遣使帶回 後遷天台般若寺 竝興建道場數十所 宋太祖開寶五年入寂 壽八十二 [宋高僧傳十三 禪林僧寶傳七 聯燈會要二十七]

臨川; 江西臨川

淨慧; 文益禪師號 南唐國主李氏 賜號淨慧大師 見上第一二八七則

丹丘; 指無樹木之丘陵 緇門警訓七 呑舟之魚不隱卑流 合抱之木不生丹丘

節髦; 節旄 符節上裝飾的犛牛尾

蘇公; 指蘇武(?-60) 字子卿 杜陵(今陝西省西安市東南)人 武帝時 以中郞將使匈奴 抑留十九年 昭帝卽位後 持漢節而迴長安 昭帝爲典屬國 宣帝封關內侯 見漢書 智者大師別傳註(二卷 宋 曇照註)上 蘇武使凶奴十九年 持漢節而迴

 

一三六二천태산(*天台山) 덕소국사(*德韶國師)가 대중에 있을 때 용아(龍牙)에게 물어 이르되 하늘이 능히 덮지 못하고 땅이 능히 싣지 못한다 하니 이 이치가 무엇입니까. 용아가 이르되 도자(道者)가 합당히 이와 같다. 스님이 이르되 다시 수시(垂示)를 구걸합니다. 용아가 이르되 자네가 향후에 스스로 이회하여 갈 것이다. 스님이 그 뜻을 깨닫지 못했다. 이윽고 임천(*臨川)에 노닐다가 정혜(*淨慧)의 법석에 이르렀는데 제방을 편섭(徧涉)했기 때문에 참문(叅問)에 게을러졌고 단지 수중(隨衆)할 따름이었다. 어느 날 중이 입실하던 차에 정혜가 그 중에게 개시(開示)함으로 인해 스님이 이를 듣다가 홀연히 성오(省悟)했다.

 

지해청(智海淸)이 송하되 하늘이 능히 덮지 못하고/ 땅이 능히 싣지 못한다/ 허공을 열파(裂破)해야/ 웅웅(雄雄)히 절대(絶對)/ 한산이 비를 놓고 풍간을 찾고/ 보화(普化)가 요령(搖鈴)하며 포대(布帒)를 찾았다/ 참현인(叅玄人)은 모름지기 강개(慷慨)해야 하나니/ 개사(箇事; 此事)는 유래(由來)로 밝음이 태쇄(大殺; 매우 심함)하다/ 용아는 첨상(尖上)에서 전신(全身)을 나타내었거늘/ 단구(*丹丘)의 도자(道者)는 아직 의심하고 있다/ 유수(纍垂; 下垂)하며 의중(依衆)하여 임천(臨川)으로 내려갔고/ 제방을 섭렵(涉獵)하려다 마음이 이미 피곤했다()/ 마음이 이미 피곤했지만/ 병폐지간(屛蔽之間)에서 홀연히 쾌히 깨쳤다/ 절모(*節髦)가 떨어져 없어지고 홀로 돌아왔지만/ 소공(*蘇公)은 선우(單于)에게 예배하지 않았다(不下).

 

第一三六二則; 연등회요27 천태덕소국사(天台德韶國師). 스님은 처주 용천현 진씨의 아들이다. 용아(龍牙)에게 물어 이르되 하늘이 능히 덮지 못하고 땅이 능히 싣지 못할 때는 어떻습니까. 용아가 이르되 도자(道者)가 합당히 이와 같다. 무릇 17차의 물음을 경과했는데 용아가 이르되 만약 너를 위해 설한다면 네가 이후에 나를 욕하여 갈 것이다. 스님이 후에 천태 통현봉(通玄峰)에 거주하다가 조욕(澡浴)으로 인해 홀연히 전화(前話)를 성찰했다. 드디어 위의를 갖추어 분향하고 용아에게 멀리서 예배하고 이르되 당시에 만약 나를 위해 설하셨다면 금일 결정코 그를 욕했을 것이다 …… 스님이 53()의 선지식을 참했다. 후에 법안(法眼)을 참알했는데 단지 수중(隨衆)할 따름이었다. 어느 날 어떤 중이 법안에게 묻되 무엇이 이 조원(曹源)의 한 방울 물입니까. 법안이 이르되 이것이 이 조원의 한 방울 물이다. 중이 망조(罔措)했다. 스님이 좌측(座側)에 있다가 홀연히 개오(開悟)했고 응체(凝滯)가 얼음 녹 듯하였다.

天台山; 절강 대주부(臺州府; 천태현) 불하령산맥 동북단(東北端)에 위치함. 또 호칭이 천제산(天梯山)이며 혹 호칭이 대악(臺嶽). 산형(山形)8()의 복련(覆蓮)과 같으며 8()8() 및 상대(上臺)ㆍ중대ㆍ하대 등이 있으며 3()의 대수(臺宿)와 같으므로 고로 명칭이 천태(天台).

德韶; (891-972) 오대 오월 법안종승. 처주 용천(절강 용천) 사람인데 일설엔 진운(절강 진운) 사람. 속성은 진. 15세에 출가했고 18세에 구족계를 받았음. 일찍이 명사(明師) 53인을 두루 참방했으며 후에 임천의 법안문익(法眼文益)의 법사가 됨. 다시 천태산에 들어가 지의(智顗)의 유적(遺蹟)을 참방하고 백사사에 지주(止住)했는데 뒤에 오월왕 전홍숙이 영접해 항주에 이르게 하고 존경하여 국사로 삼음을 받았음. 때에 천태산의 나계의적(螺溪義寂)이 천태의 교적(敎籍)이 산일(散佚; 흩어져 없어짐)함을 개탄하였는데 고려에 천태의 교적이 존재하여 있다 함을 듣고 스님과 함께 의논했으며 스님이 이에 전홍숙에게 걸구(乞求)하여 사신을 파견하여 가지고 오게 했음. 후에 천태 반야사로 옮겼고 아울러 도량 수십 곳을 흥건(興建)했음. 송태조 개보 5년에 입적했으니 나이는 82 [송고승전13. 선림승보전7. 연등회요27].

臨川; 강서 임천(臨川).

淨慧; 문익선사(文益禪師)의 호. 남당국주(南唐國主) 이씨가 사호(賜號)하여 정혜대사(淨慧大師)라 했음. 위 제1287칙을 보라.

丹丘; 수목(樹木)이 없는 구릉(丘陵)을 가리킴. 치문경훈7. 탄주지어(呑舟之魚)는 비류(卑流)에 숨지 않고 합포지목(合抱之木)은 단구(丹丘)에 나지 않는다.

節髦; 절모(節旄)와 같음. 부절(符節) 위에 장식한 이우(犛牛; 검정소)의 꼬리.

蘇公; 소무(蘇武; ?-60)를 가리킴. 자는 자경(子卿)이며 두릉(지금의 섬서성 서안시 동남) 사람. 무제 때 중랑장(中郞將)으로서 흉노에 사신으로 갔다가 19년 동안 억류되었음. 소제(昭帝)가 즉위한 후 한절(漢節)을 가지고 장안으로 돌아왔음. 소제가 전속국(典屬國)으로 삼았고 선제(宣帝)가 관내후(關內侯)로 봉했음. 한서를 보라. 지자대사별전주(智者大師別傳註; 二卷 宋 曇照註) . 소무(蘇武)가 흉노에 사신으로 갔다가 19년 만에 한절(漢節)을 가지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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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60만 원.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조금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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