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염송집주(30권)

선문염송집 권30 제1436칙

태화당 2022. 4. 14. 09:27

一四三六文殊問*無着 近離甚處 着云 南方 殊云 南方佛法 如何住持 着云 *末法比丘 小奉戒律 殊云 多小衆 着云 或三百 或五百 着問 此間如何住持 殊云 凡聖同居 *龍蛇混雜 着云 多小衆 殊云 前三三後三三 具見後話

 

明招頌 *廓周沙界聖伽藍 滿目文殊接話談 言下不知開佛眼 迴頭只見翠山巖

雪竇顯頌 千峯*盤屈色如藍 誰謂文殊是對談 *堪笑*淸涼多小衆 前三三與後三三

大覺璉頌 前三三與後三三 且問*均提作麽諳 一拍迴頭是多小 嵓西鍾皷過山南

薦福逸頌 積翠千峯倚半空 龍蛇凡聖混其中 其中凡聖知多小 前後三三數莫窮

翠嵓眞頌 前三後三是多小 大事光輝明皎皎 迴頭不見解空人 滿目白雲臥荒草

東林摠頌 聖者由來不可陪 相逢相問豈安排 三三前後輝今古 一句無私振*九垓

法眞一頌 無着文殊不易逢 相逢各自問家風 淸涼*海衆知多小 前後三三數莫窮

佛鑑勤頌 前三三與後三三 便是文殊對面談 若向箇中玄會得 不須更用問瞿曇

育王諶頌 三三何必分前後 一一當頭細度量 卽放卽收全主伴 何妨到處是淸涼

心聞賁頌 七花八裂不成團 前後三三作麽觀 昨夜月邊偸眼覷 *沉香亭北倚欄干

翠嵓芝拈 文殊道 前三三後三三 作麽生會 要會麽 千年無影樹 今時沒底靴

佛眼遠上堂擧此話云 大衆 無着遠遠遊五臺 禮拜文殊 及乎親見 要且不識 誠實苦哉 是故明招雪竇 有頌云云 大衆 此二頌 通古徹今 美則美矣 要且不見文殊 山僧今日 爲諸人頌出 乃云 靑山門外白雲飛 綠水溪邊引客歸 莫恠坐來頻勸酒 自從別後見君稀

大慧杲上堂擧此話云 徑山當時若見 卽向他道 和尙如此住持 極是不易

密庵傑擧此話 師乃召大衆云 或三百或五百 置之勿論 只如文殊道 前三三後三三 如何話會 良久云 竹影掃階塵不動 月穿潭底水無痕

 

第一四三六則; 此話出碧巖錄第三十五則擧話文 祖庭事苑二 前三三 延一廣淸凉傳(三卷 宋 延一編)曰 釋無著 姓董氏 永嘉人 年十二 依本州龍泉寺猗律師出家 誦大乘經數十萬偈 唐天寶八年(749) 以業優得度 二十一歲首習毗尼 因詣金陵牛頭山忠禪師 參受心要 忠謂師曰 衆生與佛 元無別心 如雲翳若除 虛空本淨 無著言下頓開法眼 後大曆三年(768)夏五月 至臺山嶺下 時日將暮 倐見寺宇 鮮華絶世 因扣扉請入 有童子胊胝 啓出應 無著請童子入白欲以寓宿 童子得報 延無著入 僧問師 自何方來 著具對 又曰 彼方佛法如何 答曰 時逢像季 隨分戒律 復問 衆有幾何 答 或三百 或五百 著曰 此處佛法如何 答曰 龍蛇混雜 凡聖同居 又問 衆有幾何 答曰 前三三後三三 著良久無對 僧曰 解否 答曰 不解 曰 旣不解 速須引去 童子送客出門 著曰 此寺何名 曰 淸凉寺 童子曰 向所問前三三後三三 師解否 曰 不解 童子曰 金剛背後 汝可觀之 師乃回首 其寺卽隱 著愴然久之 乃有偈云 廓周沙界聖伽藍 滿目文殊接話談 言下不知開佛印 回頭只見萑山巖

無着; 正作無著 釋無著也 姓董氏 永嘉人 年十二 依本州龍泉寺猗律師出家 誦大乘經數十萬偈 唐天寶八年(749) 以業優得度 二十一歲首習毘尼 因詣金陵牛頭山忠禪師 參受心要 詳見廣淸涼傳卷中無著和尙入化般若寺章 五燈會元九所云仰山法嗣無著文喜於五臺山見文殊者誤矣

末法; 正像末三時之一 謂去佛世長遠而敎法轉微末之時期也 三時有四說 一說正法五百年 像法一千年 末法一萬年 多取此說 法華義疏五 轉復微末 謂末法時

龍蛇混雜; 比喩好人和惡人混雜在一處

廓周沙界聖伽藍; 廣淸涼傳中 無著和尙愒曰 廓周沙界聖伽藍 滿目文殊接話譚 言下不知開何印 迴頭秖見舊山巖

盤屈; 盤曲

堪笑; 可笑 堪 可也

淸涼; 淸涼山 山西五臺山之別稱 此山歲積堅冰 夏仍飛雪 無炎暑 故稱淸涼 此指文殊

均提; 文殊之侍者名

九垓; 九天之外 國之界限 中國全土 垓 兼備八極之地 又域 界限

海衆; 衆僧一味和合 譬如海也 增壹阿含經四十五 衆僧者如彼大海 所以然者 流河決水以入于海 便滅本名 但有大海之名耳

沉香亭; 唐時宮中亭名 在於長安興慶宮內

 

一四三六문수(文殊)가 무착(*無着)에게 묻되 최근에 어느 곳을 떠났는가. 무착이 이르되 남방입니다. 문수가 이르되 남방의 불법은 어떻게 주지(住持)하는가. 무착이 이르되 말법(*末法)의 비구인지라 계율을 봉지(奉持)함이 적습니다(). 문수가 이르되 대중이 얼마인가(多小衆). 무착이 이르되 혹 3백이며 혹 5백입니다. 무착이 묻되 차간(此間)은 어떻게 주지합니까. 문수가 이르되 범성(凡聖)이 동거(同居)하고 용사가 혼잡(*龍蛇混雜)하다. 무착이 이르되 대중이 얼마입니까. 문수가 이르되 전삼삼후삼삼(前三三後三三)이다. 후어(後話)를 구견(具見)하라.

 

명초(明招)가 송하되 사계를 빙 두른 성가람이여(*廓周沙界聖伽藍)/ 눈 가득히 문수가 접인(接引)해 화담(話談)한다/ 언하에 불안(佛眼)을 엶을 알지 못하고/ 머리를 돌리니 다만 푸른 산암(山巖)만 보인다.

 

설두현(雪竇顯)이 송하되 천봉(千峰)이 반굴(*盤屈)하고 색이 쪽()과 같거늘/ 누가, 문수가 이 대담(對談)한다고 이르리오/ 가히 우습구나(*堪笑) 청량(*淸涼)의 다소중(多少衆)이여/ 전삼삼과 후삼삼이로다.

 

대각련(大覺璉)이 송하되 전삼삼과 후삼삼이여/ 균제(*均提)에게 차문(且問; 물어봄)하노니 어떻게 아느냐/ 한 번 박수하고 회두(迴頭)하나니 이 얼마인가/ 암서(嵓西)의 종고(鍾皷)가 산남(山南)을 지난다.

 

천복일(薦福逸)이 송하되 적취(積翠)한 천봉(千峯)이 반공(半空)에 기댔는데/ 용사(龍蛇)와 범성(凡聖)이 그 가운데 섞였다/ 그 중의 범성이 얼마인지 아느냐/ 전후로 삼삼이라 수를 궁구하지 못한다.

 

취암진(翠嵓眞)이 송하되 전삼 후삼이 이 얼마인가/ 대사(大事)의 광휘(光輝)가 밝아 교교(皎皎)하다/ 회두(迴頭)하니 해공(解空)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고/ 눈 가득히 백운이 황초(荒草)에 누웠다.

 

동림총(東林摠)이 송하되 성자(聖者)는 유래(由來)로 가히 배석(陪席)하지 못하는데/ 상봉하고 상문(相問)하니 어찌 안배(安排)했으랴/ 삼삼(三三)이 전후(前後)라 금고(今古 )를 빛내나니/ 1구가 무사(無私)하여 구해(*九垓)를 진동(振動)한다.

 

법진일(法眞一)이 송하되 무착과 문수가 만나기 쉽지 않는데/ 상봉하여 각자 가풍을 물었다/ 청량(淸涼)의 해중(*海衆)이 얼마인지 아느냐/ 전후로 삼삼이라 수를 궁구하지 못한다.

 

불감근(佛鑑勤)이 송하되 전삼삼과 후삼삼이여/ 곧 이 문수가 대면하여 얘기한다/ 만약 개중(箇中)을 향해 현회(玄會; 현묘한 理會)를 얻는다면/ 꼭 다시 구담(瞿曇)에게 물음을 쓰지는 않으리라.

 

육왕심(育王諶)이 송하되 삼삼을 하필이면 전후를 나누리오/ 하나하나 당두(當頭; 당면)하여 자세히 탁량(度量)하라/ 즉방즉수(卽放卽收)하며 완전한 주반(主伴)이니/ 어찌 도처(到處)가 이 청량임에 방애되리오.

 

심문분(心聞賁)이 송하되 칠화팔렬(七花八裂)하여 덩어리를 이루지 못하고/ 전후삼삼(前後三三)이거늘 어떻게 관하겠는가/ 어젯밤 월변(月邊)을 투안(偸眼)으로 엿보며/ 침향정(*沉香亭)의 북쪽에서 난간에 기대었다.

 

취암지(翠嵓芝)가 염하되 문수가 말한 전삼삼 후삼삼을 어떻게 이회하느냐. 알고자 하느냐, 천년(千年)의 무영수(無影樹)며 금시(今時)의 몰저화(沒底靴).

 

불안원(佛眼遠)이 상당하여 차화를 들고 이르되 대중이여 무착이 멀고도 멀리 오대산을 유람하며 문수에게 예배하려다가 친견함에 이르러선 요차(要且; 도리어. 종내) 알지 못했으니 성실(誠實)로 고재(苦哉)로다. 이런 고로 명초(明招)와 설두가 송이 있어 운운. 대중이여 이 2송은 통고철금(通古徹今; 고금에 통함)하여 아름답기는 곧 아름답지만 요차(要且) 문수를 보지 못했다. 산승이 금일 제인을 위해 송출(頌出)하겠다. 이에 이르되 청산의 문 밖에 백운이 날고/ 녹수(綠水)의 계변(溪邊)에 인객(引客; 여관이나 유곽에서 손님을 끄는 일)도 돌아갔다/ 앉아서 자주 권주(勸酒)함을 괴이히 여기지 말지니/ 이별한 후로부터 그대를 봄이 드물리라.

 

대혜고(大慧杲)가 상당하여 차화를 들고 이르되 경산(徑山)이 당시에 만약 보았다면 곧 그를 향해 말하되 화상이 이와 같이 주지하시니 극히 이 쉽지 않겠습니다.

 

밀암걸(密庵傑)이 차화를 들고 스님이 이에 대중을 부르고 이르되 혹 3백 혹 5백은 이를 방치하고 논하지 않겠지만 지여(只如) 문수가 말한 전삼삼 후삼삼을 어떻게 화회(話會)하느냐. 양구하고 이르되 죽영(竹影)이 섬돌을 쓸어도 티끌은 동하지 않고 달이 담저(潭底)를 뚫어도 물은 흔적이 없다.

 

第一四三六則; 차화는 벽암록 제35칙 거화문(擧話文)에 나옴. 조정사원2. 전삼삼(前三三) 연일(延一)의 광청량전(廣淸凉傳; 三卷 宋 延一編)에 가로되 석무착(釋無著)은 성이 동시(董氏)며 영가(永嘉) 사람이다. 나이 12에 본주(本州) 용천사의 의율사에게 의지해 출가했고 대승경 수십만 게를 외웠다. 당 천보 8(749) 업이 우수해 득도했다. 21세에 처음 비니(毘尼)를 익혔고 인해 금릉 우두산의 혜충선사(慧忠禪師)에게 나아가 심요를 참수(參受; 參問해 받음)했다. 혜충이 스님에게 일러 가로되 중생과 부처가 원래 다른 마음이 없나니 마치 운예(雲翳; 는 가릴 예)가 만약 제거되면 허공만 본래 청정함과 같다. 무착이 언하에 법안을 돈개(頓開)했다. 뒤에 대력 3(768) 여름 5월에 오대산의 고개 아래 이르렀다. 때에 해가 장차 저무는데 갑자기 사우(寺宇)가 보였고 선명하고 화려해 절세(絶世)였다. 인해 문을 두드리며 들어가기를 청했다. 구지(胊胝)란 동자가 있어 빗장()을 열고 나와 응접했다. 무착이 동자에게 청해 우숙(寓宿)하려 한다고 들어가 알리게 했다. 동자가 알림을 얻었고 무착을 맞이해 들어갔다. 승인이 스님에게 묻되 어느 지방으로부터 왔는가. 무착이 갖취 대답했다. 또 가로되 그 지방의 불법은 어떠한가. 답해 가로되 때가 상계(像季; 像法末法)를 만난지라 수분(隨分)의 계율입니다. 다시 묻되 대중은 얼마나 있는가. 답하되 혹은 3백이며 혹은 5백입니다. 무착이 가로되 이곳은 불법이 어떻습니까. 답해 가로되 용사(龍蛇)가 혼잡(混雜)하고 범성(凡聖)이 동거한다. 또 묻되 대중은 얼마나 있습니까. 답해 가로되 전삼삼후삼삼(前三三後三三)이다. 무착이 양구(良久)하며 대꾸가 없자 승인이 가로되 알겠는가. 답해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가로되 이미 알지 못하겠거든 속히 인거(引去; 退)함을 써라. 동자가 객을 보내며 문을 나서자 무착이 가로되 이 절은 무엇이라 이름하느냐. 가로되 청량사(淸凉寺)입니다. 동자가 가로되 아까 물은 바 전삼삼후삼삼을 스님이 아십니까. 가로되 알지 못한다. 동자가 가로되 금강(金剛)의 등 뒤를 그대가 가히 그것을 보시라. 스님이 곧 머리를 돌리자 그 절이 곧 은몰했다. 무착이 창연(愴然; 은 슬플 창)함이 오래였으며 이에 게가 있어 이르되 사계(沙界)에 확주(廓周; 빙 두르다)한 성가람(聖伽藍)이여/ 눈 가득히 문수가 접인(接引)해 화담(話談)한다/ 언하에 불인(佛印)을 엶을 알지 못하고/ 머리를 돌리니 단지 풀 우거진 산암(山巖)만 보인다.

無着; 바르게는 무착(無著)으로 지음. 석무착(釋無著)이니 성이 동씨(董氏)며 영가(永嘉) 사람. 나이 12에 본주(本州) 용천사의 의율사(猗律師)에게 의지해 출가했고 대승경 수십만 게를 외웠음. 당 천보 8(749) ()이 우수했으므로 득도(得度)했음. 21세에 처음으로 비니(毗尼)를 익혔고 인해 금릉 우두산의 충선사(忠禪師; 慧忠禪師니 우두법융하 5)에게 나아가 심요(心要)를 참수(參受; 參問해 받음)했음. 상세한 것은 광청량전권중(廣淸涼傳卷中) 무착화상입화반야사장(無著和尙入化般若寺章)을 보라. 오등회원9에 이른 바 앙산의 법사인 무착문희(無著文喜)가 오대산에서 문수를 보았다는 것은 오류임.

末法; 정상말(正像末) 3()의 하나. 이르자면 불세(佛世)와 떨어지기가 장원(長遠)하여 교법이 더욱 미말(微末; 아주 작음)한 시기임. 3시에 4()이 있음. 1설은 정법 5백 년, 상법(像法) 1천 년, 말법 1만 년, 다분히 이 설을 취함. 법화의소5. 더욱 다시 미말(微末)하나니 이르자면 말법 시().

龍蛇混雜; 호인(好人)과 악인이 혼잡하게 한 곳에 있음을 비유함.

廓周沙界聖伽藍; 광청량전중(廣淸涼傳中) 무착화상의 게에 가로되 사계(沙界)를 빙 두른(廓周) 성가람(聖伽藍)이여/ 눈 가득히 문수가 접대하며 얘기하네/ 언하에 무슨 인()을 연 줄을 알지 못하고/ 머리를 돌리니 단지 구일(舊日)의 산암(山巖)만 보이누나.

盤屈; 반곡(盤曲; 얽히어 꼬불꼬불함).

堪笑; 가소(可笑)니 감()은 가().

淸涼; 청량산이니 산서 오대산의 별칭. 이 산은 해마다 견고한 얼음이 쌓여 여름에도 그대로 눈이 날리면서 염서(炎暑)가 없는지라 고로 명칭이 청량임. 여기에선 문수를 가리킴.

均提; 문수의 시자의 이름.

九垓; 구천(九天)의 밖. 나라의 계한(界限). 중국 전토. ()는 팔극(八極)의 땅을 겸비함. 또 역(), 계한(界限).

海衆; 중승(衆僧)1()로 화합함이 비유컨대 바다와 같음. 증일아함경45. 중승이란 것은 저 대해와 같나니 소이가 그러한 것은 유하(流河)와 결수(決水; 둑이 무너져 흐르는 물)가 바다에 들면 바로 본명이 없어지고 단지 대해의 이름만 있을 뿐이다.

沉香亭; 당나라 때 궁중의 정자 이름. 장안 흥경궁 안에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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