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용록

종용록 제34칙 송

태화당 2022. 5. 20. 08:19

皤然*渭水起垂綸老不歇心 何似*首陽淸餓人少不努力 只在一塵分變態拈起拄杖云看 高名勳業兩難放下拄杖云 雪竇猶在

 

渭水; 源出甘肅省渭源縣鳥鼠山 流經陝西省與涇河 北洛河合 至潼關縣入黃河

首陽; 首陽山 現山西省永濟縣南 [百度漢語]

 

하얀(皤然) 위수(*渭水)에 수륜(垂綸; 낚시줄을 내림)을 일으킴이 늙어서도 마음을 쉬지 못했다/ 어찌 수양(*首陽)의 청아인(淸餓人)과 같으랴 소년(少年)에 노력하지 않았구나/ 다만 1()이 변태(變態)를 나눔에 있나니 주장자를 집어 일으키고 이르되 보아라/ 고명(高名)과 훈업(勳業)은 둘 다 없애기(; 저본에 으로 지었음) 어렵다 주장자를 방하하고 이르되 설두가 아직 있다

 

渭水; 수원(水源)이 감숙성 위원현 조서산에서 나와 섬서성과 경하(涇河)를 유경(流經; 흘러 경유)하여 북쪽 낙하(洛河)와 합쳐 동관현에 이르렀다가 황하로 유입함.

首陽; 수양산이니 현재의 산서성 영제현(永濟縣) 남쪽 [백도한어].

 

師云 *西伯將出獵 卜之曰 所獲非熊非羆 非彪非虎 霸王之輔 果獲*呂尙於渭水之陽 與語大悅曰 自吾先君大公甞云 當有聖人適周 吾太公望子久矣 故號太公望 立爲師也 *伯夷叔齊*孤竹君二子 讓國俱亡 武王伐紂 叩馬諫曰 父死不葬 爰及干戈 可謂孝乎 以臣弒君 可謂仁乎 左右欲兵之 太公曰 此義人也 扶而去之 武王平殷 天下宗周 夷齊恥之 不食周粟 採薇首陽餓死 太公伐殷宗周 家國興盛者也 夷齊讓位餓死 家國喪亡者也 *賢首國師 只立一塵變態 說*百門義海 高名夷齊也 勳業太公也 洛浦云 野老門前不話朝堂之事 故安貼*農桑 未甞顰蹙 何也 無用處成眞用處 好因緣是惡因緣

 

西伯; 一爵位 自周始祖後稷以至周文王等十餘人都曾在西伯位 二特指周文王 [百度百科]

呂尙; 見上第十八則姜子牙

伯夷叔齊; 商末孤竹君的兩個兒子 禪林寶訓音義 伯夷叔齊 孤竹君之二子也 孤竹 卽殷湯所封之邦君也 姓墨胎氏 名初 字子助 其子伯夷名允 字公信 季子叔齊名智 字公達 諡曰 伯夷叔齊也 其父將薨 遺命立叔齊 齊以天倫爲重 我在位不義 伯夷以父命爲尊 我在位不孝 二人俱迯 國人立其仲子爲君 其二人聞西伯昌善養老 盍往而歸之 文王卒 武王伐紂 二人叩馬首而諫曰 父死不葬 爰及干戈 可謂孝乎 以臣弒君 可謂忠乎 左右欲兵之 太公曰 此義人也 扶而去之 武王平定 天下宗周 夷齊耻不食周粟 遂隱首陽山 採薇而食 卒之餓死

孤竹君; 商朝孤竹國國君的封號 史記伯夷列傳 伯夷叔齊 孤竹君之二子也

賢首; 賢首法藏(643712) 唐代僧 爲華嚴宗第三祖 字賢首 號國一法師 又稱香象大師 康藏國師 俗姓康 祖先康居國人 至其祖父 擧族遷至中土 居於長安 早年師事智儼 聽講華嚴 深入其玄旨 智儼示寂後 乃依薄塵剃度 時年二十八 初以能通西域諸國語與梵文經書 遂奉命參與義淨之譯場 先後譯出新華嚴經 大乘入楞伽經等十餘部 嘗爲武后講華嚴十玄緣起之深義 而指殿隅金獅子爲喩 武后遂豁然領解 後師乃因之撰成金師子章 師一生宣講華嚴三十餘遍 致力於華嚴敎學之組織大成 又注釋楞伽 密嚴 梵網 起信等經論 竝仿天台之例 將佛敎各種思想體系分類爲五敎十宗 於玄宗先天元年十一月 示寂於大薦福寺 世壽七十 著作甚多 計有華嚴經探玄記二十卷 華嚴料簡 華嚴五敎章 大乘密敎經疏四卷 梵網經疏 大乘起信論疏 華嚴綱目 華嚴玄義章等二十餘部 弟子主要有宏觀 文超 智光 宗一 慧苑等 [賢首大師碑傳 宋高僧傳五 佛祖統紀二十九 佛祖歷代通載十五]

百門義海; 唐代李通玄長者著

農桑; 泛指農業生產 種地與養蠶 舊時江南以農桑爲業 [百度漢語]

 

스님이 이르되 서백(*西伯)이 장차 출렵(出獵)하려다가 그것을 점을 치매 가로되 획득하는 것은 곰도 아니고 큰 곰도 아니고 표범도 아니고 범도 아니며 패왕(霸王)의 보좌(輔佐). 과연 위수지양(渭水之陽; 위수의 북쪽)에서 여상(*呂尙)을 획득했다. 함께 이야기하고는 크게 기뻐하며 가로되 나의 선군(先君) 태공(大公)이 일찍이 이르기를 마땅히 성인이 있어 주()로 가리라 함으로부터 나의 태공이 자네를 바란() 게 오래되었다. 고로 호를 태공망(太公望)이라 했으며 바로() 스승으로 삼았다. 백이숙제(*伯夷叔齊)는 고죽군(*孤竹君)의 두 아들이다. 양국(讓國; 나라를 讓位)하고 모두 망명(亡命)했다. 무왕(武王)이 벌주(伐紂)하자 고마(叩馬; 말을 잡아당김)하며 간()해 가로되 아버지가 죽었는데 장사 지내지 못하고 이에 간과(干戈; 전쟁)에 미치면() 가히 효()라 이르겠습니까. ()으로서 군()을 시()하면 가히 인()이라고 이르겠습니까. 좌우가 그를 죽이려고() 하자 태공이 가로되 이느 의인(義人)입니다. 부기(扶起)하여 그를 보냈다. 무왕이 은()을 평정하자 천하가 종주(宗周; 周朝)였다. 이제(夷齊)가 이를 부끄럽게 여겨 주속(周粟)을 먹지 않고 수양(首陽)에서 채미(採薇; 고비를 캐다)하다 아사(餓死)했다. 태공은 벌은(伐殷)한 종주(宗周)니 가국(家國)을 흥성(興盛)케 한 자며 이제(夷齊)는 양위(讓位)하고 아사(餓死)했으니 가국(家國)을 상망(喪亡)케 한 자다. 현수국사(*賢首國師)가 다만 일진변태(一塵變態)를 세워 백문의해(*百門義海)를 설했다. 고명(高名)은 이제(夷齊)며 훈업(勳業)은 태공이다. 낙포(洛浦)가 이르되 야로의 문앞에서 조당(朝堂; 朝廷)의 일을 말하지 않는다 한지라 고로 농상(*農桑)에 안첩(安貼)하면서 일찍이 빈축(顰蹙)하지 않는다. 왜냐, 무용처(無用處)가 진용처(眞用處)가 되고 호인연(好因緣)이 이 악인연이다.

 

西伯; 1. 작위(爵位)니 주()의 시조 후직(後稷)으로부터 이지(以至; 내지) 주문왕 등 10여 인이 모두 일찍이 서백위(西伯位)에 있었음. 2. 특별히 주문왕(周文王)을 가리킴 [백도백과].

呂尙; 위 제18칙 강자아(姜子牙)를 보라.

伯夷叔齊; 상말(商末) 고죽군(孤竹君)의 두 개의 아자(兒子; 아들). 선림보훈음의. 백이숙제(伯夷叔齊) 고죽군(孤竹君)의 두 아들이다. 고죽(孤竹)은 곧 은()의 탕()이 봉()한 바의 방군(邦君)이다. 성은 묵태씨(墨胎氏)며 이름은 초()며 자는 자조(子助). 그의 아들 백이(伯夷)는 이름이 윤()이며 자는 공신(公信)이다. 막내아들 숙제(叔齊)는 이름이 지()며 자는 공달(公達)이다. 시호하여 가로되 백이숙제다. 그 아버지가 장차 훙()하려 하면서 유명(遺命)으로 숙제를 세우게 했다. 숙제는, 천륜(天倫)을 중시해야 하나니 내가 재위하면 불의(不義)라 했고 백이는, 부명(父命)을 존중해야 하나니 내가 재위하면 불효(不孝)라 했다. 두 사람이 모두 도망갔다. 국인(國人)이 그의 중자(仲子)를 세워 주군으로 삼았다. 그 두 사람이, 서백창(西伯昌)이 잘 양로(養老)한다 함을 듣고 모두 가서 그에게 귀의했다. 문왕이 죽자 무왕이 주()를 정벌했다. 두 사람이 말머리를 잡아당기며 간해 가로되 부왕이 죽고 장사도 지내지 못했는데 이에 간과(干戈; 방패와 창. 전쟁)에 이른다면 가히 효()라고 이르겠는가. 신하로서 군주를 시해한다면 가히 충()이라고 이르겠는가. 좌우가 그를 죽이려() 하자 태공(太公)이 가로되 이는 의인(義人)이다. 부축해 떠나게 했다. 무왕이 평정(平定)하자 천하가 주()를 종앙(宗仰)했다. 이제(夷齊)는 수치로 여겨 주속(周粟; 주의 곡식)을 먹지 않고 드디어 수양산(首陽山)에 은거하면서 고사리를 채취해 먹었는데 마침내 아사(餓死)했다.

孤竹君; 상조(商朝) 고죽국 국군(國君)의 봉호(封號). 사기 백이열전 백이와 숙제는 고죽군의 두 아들이다.

賢首; 현수법장(賢首法藏; 643712)이니 당대승. 화엄종 제3조가 됨. 자는 현수(賢首)며 호는 국일법사(國一法師), 또 명칭이 향상대사(香象大師)ㆍ강장국사(康藏國師). 속성은 강()이니 조선(祖先; 선조)이 강거국(康居國) 사람임. 그의 조부에 이르러 거족(擧族; 전 가족)이 옮겨 중토(中土)에 이르러 장안에 거주했음. 젊은 나이에 지엄(智儼)을 사사(師事)했고 화엄을 청강하여 그 현지(玄旨)에 깊이 들어갔음. 지엄이 시적한 후 곧 박진(薄塵)에게 의지해 체도(剃度)했으니 당시의 나이 28이었음. 처음에 서역 제국(諸國)의 언어와 범문(梵文)의 경서에 능통했기 때문에 드디어 칙명을 받들어 의정(義淨)의 역장(譯場)에 참여했으며 선후로 신화엄경(新華嚴經)ㆍ대승입릉가경 등 10여 부를 역출(譯出)했음. 일찍이 무후(武后)를 위해 화엄십현연기(華嚴十玄緣起)의 깊은 뜻을 강설하면서 전우(殿隅)의 금사자(金獅子)를 가리키며 비유로 삼았는데 무후가 드디어 휑하게 영해(領解)했음. 후에 스님이 곧 이로 인해 금사자장(金師子章)을 찬술(撰述)해 이루었음. 스님은 일생에 화엄을 30여 편(; ) 선강(宣講)했으며 화엄교학의 조직을 대성(大成)함에 치력(致力; 힘쓰다)했음. 또 릉가ㆍ밀엄ㆍ범망ㆍ기신 등의 경론을 주석했으며 아울러 천태의 예()를 본떠 불교의 각종 사상체계를 가지고 분류하여 오교십종(五敎十宗)으로 삼았음. 현종 선천 원년 11월 대천복사(大薦福寺)에서 시적했으니 세수는 70. 저작이 매우 많았으니 계산하자면 화엄경탐현기 20권ㆍ화엄요간ㆍ화엄오교장ㆍ대승밀교경소 4권ㆍ범망경소ㆍ대승기신론소ㆍ화엄강목ㆍ화엄현의장 등 20여 부가 있음. 제자에 주요(主要)한 이는 굉관ㆍ문초ㆍ지광ㆍ종일ㆍ혜원(慧苑) 등이 있음 [현수대사비전. 송고승전5. 불조통기29. 불조역대통재15].

百門義海; 당대 이통현(李通玄) 장자(長者)가 지었음.

農桑; 널리 농업생산을 가리킴. 종지(種地; 농사짓다. 種田)와 양잠(養蠶). 구시에 강남은 농상(農桑)으로써 업을 삼았음 [백도한어].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daum.net)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60만 원.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조금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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