六祖大師法寶壇經
風旛報恩光孝禪寺住持嗣祖比丘宗寶編
行由第一
時 大師至寶林 韶州韋刺史〈名璩〉與官僚入山請師 出於城中大梵寺講堂 爲衆開緣說法 師陞座次 刺史官僚三十餘人 儒宗學士三十餘人 僧尼道俗一千餘人 同時作禮 願聞法要
때에 대사(大師)가 보림(寶林)에 이르렀다. 소주(韶州) 위자사(韋刺史)〈이름이 거(璩)〉가 관료(官僚)와 더불어 입산하여 스님에게, 성중(城中) 대범사(大梵寺) 강당에 나와 대중을 위해 개연(開緣)하여 설법하기를 청했다. 스님이 승좌(陞座)한 차에 자사와 관료 30여 인, 유종(儒宗) 학사(學士) 30여 인, 승니(僧尼)와 도속(道俗) 1천 여 인이 동시에 작례(作禮)하고 법요(法要)를 듣기를 원했다.
六祖大師法寶壇經; 一卷 又稱六祖壇經 法寶壇經 壇經 六祖慧能述 法海集 元代宗寶編 收於大正藏第四十八冊 其敦煌寫本亦收於同冊 爲禪宗六祖慧能於韶州大梵寺之說法內容 其弟子法海集錄而成 共分十門 一行由 二般若 三疑問 四定慧 五坐禪 六懺悔 七機緣 八頓漸 九宣詔 十付囑 本書法海奉韶州刺史韋璩之命集錄而成 然後人多所節略 而未能見祖意之大全 元代德異乃探求諸方 得其全文 世祖至元二十七年(1290) 於吳中休休庵上梓 翌年 宗寶更校讎三種異本 正其訛誤 詳其節略 竝新增入弟子請益機緣而印行 卷首竝附德異之序 宋代契嵩之贊 卷尾附法海等所集之六祖大師緣起外紀 歷朝崇奉事蹟 柳宗元之賜諡大鑑禪師碑 劉禹錫之大鑑禪師碑 佛衣銘及編者後跋
1권. 또 육조단경, 법보단경ㆍ단경으로 일컬음. 육조혜능이 술(述)했고 법해(法海)가 집(集)했고 원대(元代)의 종보(宗寶)가 편(編)했음. 대정장 제48책에 수록되었음. 그 돈황사본(敦煌寫本)도 또한 동책(同冊)에 수록되었음. 선종 6조 혜능이 소주(韶州) 대범사(大梵寺)에서 설법한 내용이 되는데 그 제자 법해(法海)가 집록(集錄)하여 이루었음. 모두 10문(門)으로 분류했으니 1은 행유(行由)며 2는 반야(般若)며 3은 의문(疑問)이며 4는 정혜(定慧)며 5는 좌선(坐禪)이며 6은 참회(懺悔)며 7은 기연(機緣)이며 8은 돈점(頓漸)이며 9는 선조(宣詔)며 10은 부촉(付囑)임. 본서는 법해가 소주자사(韶州刺史) 위거(韋璩)의 명을 받들어 집록하여 이루었음. 그러나 후인이 다분히 절략(節略. 간략)한 바라 능히 조의(祖意)의 대전(大全)을 보지 못했는데 원대(元代)의 덕이(德異)가 이에 제방(諸方)을 탐구(探求)하여 그 전문(全文)을 얻었음. 세조(世祖) 지원 27년(1290) 오중(吳中)의 휴휴암(休休庵)에서 상재(上梓; 인쇄에 부침)했고 다음해에 종보(宗寶)가 다시 3종(種)의 이본(異本)을 교수(校讎. 대조하며 校正함)하여 그 그릇됨을 바로잡고 그 절략(節略)을 상세히 했음. 아울러 제자의 청익기연(請益機緣)을 새로 증입(增入)하여 인행(印行)했음. 권수에 덕이의 서ㆍ송대 계숭(契嵩)의 찬이 병부(竝附)되었고 권미(卷尾)에 법해 등이 모은 바의 육조대사연기외기(六祖大師緣起外紀)ㆍ역조숭봉사적(歷朝崇奉事蹟)ㆍ유종원의 사시대감선사비(賜諡大鑑禪師碑)ㆍ유우석의 대감선사비ㆍ불의명(佛衣銘) 및 편자의 후발(後跋)이 첨부되었음.
報恩光孝禪寺; 位於江蘇鎭江黃鶴山下 舊名竹林寺 晉大興四年(321)創建 劉宋武帝 改名鶴林寺 稱鶴林律院 唐開元天寶年間 有玄素禪師法照 得法於牛頭山智威 歸主其地 僧徒日衆 始改爲禪寺 又稱古竹院 宋紹興(1131-1162)年間重建 改稱報恩光孝禪寺
강소 진강 황학산 아래 위치하며 옛 이름은 죽림사였음. 진(晉) 대흥 4년(321) 창건했고 유송(劉宋) 무제가 학림사(鶴林寺)로 개명하고 학림율원이라 일컬었음. 당 개원ㆍ천보년 간 현소선사(玄素禪師) 법조(法照)가 있어 우두산 지위(智威)에게서 득법하고 그 땅에 귀주(歸主)했는데 승도가 날로 많아졌고 비로소 고쳐 선사(禪寺)라 했음. 또 명칭이 고죽원임. 송 소흥(1131-1162)년 간 중건했고 개칭하여 보은광효선사(報恩光孝禪寺)라 했음.
住持; (一)安住於世而保持法也 (二)一寺之主僧名住持 此由禪門起
(1) 세간에 안주하며 법을 보지(保持)함임. (2) 1사(寺)의 주승(主僧)을 이름해 주지니 이는 선문(禪門)으로부터 일어났음.
比丘; <梵> bhiksu <巴> bhikku 又作比邱 指出家得度 受具足戒之男子 新云苾芻 金剛般若經偈會本 比邱名含三義 一破惡 謂修戒定慧 能破見思煩惱惡故 二怖魔 謂魔王驚怖 恐出三界 損其黨故 三乞士 謂離四邪命 乞食資身 利檀那故 翻一遺二故存梵名
<梵> bhiksu. <巴> bhikku. 또 비구(比邱)로 지음. 출가하여 득도(得度)하고 구족계를 받은 남자를 가리킴. 신역(新譯)은 이르되 필추(苾芻; 梵 bhiksu)임. 금강반야경게회본 비구(比邱)의 이름은 3의(義)를 포함한다. 1. 파악(破惡) 이르자면 계정혜를 닦아 능히 견사(見思)의 번뇌악(煩惱惡)을 깨뜨리는 연고이다. 2. 포마(怖魔) 이르자면 마왕이 경포(驚怖)함이니 3계(界)를 벗어나 그의 당(黨)을 손상할까 두려워하는 연고이다. 3. 걸사(乞士) 이르자면 4사명(邪命)을 여의고 걸식하여 자신(資身)하며 단나(檀那)를 이롭게 하는 연고이다. 하나만 번역하면 둘을 잃는지라 고로 범명(梵名)을 존치(存置)했다.
宗寶; 元代僧 曾住韶州(廣東曲江)風旛報恩光孝寺 至元二十八年(1291) 校讎三種壇經異本 訂正訛誤 補繕簡略之處 又增編弟子請益機緣 乃刊行六祖大師法寶壇經(宗寶本壇經) [六祖壇經跋]
원대승. 일찍이 소주(광동 곡강) 풍번보은광효사에 거주했음. 지원 28년(1291) 3종의 단경이본(壇經異本)을 교수(校讎)하고 와오(訛誤)를 정정(訂正)하고 간략(簡略)한 곳을 보선(補繕)하고 또 제자청익기연(弟子請益機緣)을 증편(增編)하여 이에 육조대사법보단경(宗寶本壇經)을 간행했음 [육조단경발].
行由; 修行之因緣由來
수행의 인연과 유래.
大師; 初果以上 乃至諸佛菩薩 堪爲衆生之師範 故稱大師
초과(初果) 이상 내지 제불보살은 가히 중생의 사범이 되는지라 고로 명칭이 대사임.
寶林; 寶林寺 位於廣東曲江縣南三十五公里曹溪山 今稱南華寺 南華古寺 南華禪寺 梁天監元年(502) 天竺僧智藥所建 唐儀鳳年間(676-678) 六祖大鑑慧能開法擴建 學徒雲集 法道大振 南獄懷讓 靑原行思等 皆嗣其法 神龍元年(705) 改稱中興寺 景龍二年(708)重建 改名法泉寺 五代間復稱寶林寺 宋開寶年中(968-975) 遭兵火燒毁靈照塔 尋卽營修廟塔 改稱南華寺 明時 憨山德淸應請入山 大擧興復 今存有六祖肉身像 飯鉢 響鞋等遺物 及唐代之卓錫泉 宋代之靈照塔等古蹟 [六祖壇經 六祖大師緣記外記 宋高僧傳八 憨山大師夢遊全集五十至五十五]
보림사(寶林寺)니 광동 곡강현(曲江縣) 남쪽 35㎞ 조계산에 위치함. 지금의 명칭은 남화사(南華寺)ㆍ남화고사(南華古寺)ㆍ남화선사(南華禪寺). 양 천감 원년(502) 천축승 지약(智藥)이 건립한 것임. 당 의봉년 간(676-678) 6조 대감혜능이 개법하면서 확건(擴建)했고 학도가 운집했으며 법도를 크게 떨쳤음. 남악회양ㆍ청원행사 등이 모두 그의 법을 이었음. 신룡 원년(705) 중흥사로 개칭했고 경룡 2년(708) 중건하고 법천사(法泉寺)로 개명했음. 오대간(五代間)에 다시 보림사(寶林寺)로 호칭했음. 송 개보년 중(968-975) 병화(兵火)를 만나 영조탑이 소훼(燒毁)되었고 이윽고 곧 탑묘를 영수(營修)하고 남화사(南華寺)로 개칭했음. 명나라 때 감산덕청이 입산하여 대거 흥복(興復)했음. 지금 6조의 육신상(肉身像)ㆍ반발(飯鉢)ㆍ향혜(響鞋) 등 유물과 및 당대의 탁석천(卓錫泉)ㆍ송대의 영조탑 등의 고적(古蹟)이 존재해 있음 [육조단경. 육조대사연기외기. 송고승전8. 감산대사몽유전집50지55].
韶州; 廣東省韶州府曲江縣的古稱 又稱韶陽或如興 有六祖慧能所住的南華山寶林寺(南華寺) 說示六祖壇經的大梵寺 雲門文偃所住的雲門山光泰院等
광동성 소주부 곡강현의 고칭(古稱). 또 명칭이 소양(韶陽) 혹 여흥이며 6조 혜능이 거주했던 곳인 남화산 보림사(寶林寺; 南華寺)ㆍ육도단경을 설해 보였던 대범사(大梵寺)ㆍ운문문언이 거주했던 곳인 운문산 광태원(光泰院) 등이 있음.
刺史; 官名 自漢設立 本爲監察郡縣的官員 隋唐以後沿用爲一州長官的別稱 屬官有長史司馬等 [百度漢語]
벼슬 이름. 한(漢)으로부터 설립했으며 본래 군현(郡縣)을 감찰하는 관원이었음. 수ㆍ당 이후에 연용(沿用)하여 1주(州)의 장관의 별칭이 되었음. 속관(屬官)에 장사(長史)ㆍ사마(司馬) 등이 있음 [백도한어].
大梵寺; 位於廣東曲江縣 乃刺史韋宙請六祖說法之處 唐開元二年(714) 僧宗錫建 始稱開元寺 後改稱大梵寺 刺史韋宙曾請六祖於此宣說壇經 [廣東通志二二九]
광동 곡강현에 위치함. 곧 자사 위주(韋宙)가 6조에게 청해 설법한 곳임. 당 개원 2년(714) 중 종석이 건립했으며 처음의 명칭은 개원사였으며 후에 개칭하여 대범사라 했음. 자사 위주가 일찍이 6조에게 청해 여기에서 단경을 선설했음 [광동통지229].
陞座; 陞高座之意 指師家登高座說法 據古制 陞座與上堂同義 至後世乃有所別 又作昇座 升座 [象器箋垂說類]
고좌에 오름의 뜻. 사가가 고좌에 올라 설법함을 가리킴. 고제(古制)에 의거하면 승좌와 상당이 같은 뜻이었으나 후세에 이르러 이에 구별하는 바가 있었음. 또 승좌(昇座)ㆍ승좌(升座)로 지음 [상기전수설류].
儒宗; 儒者的宗師 漢以後亦泛指爲讀書人所宗仰的學者
유자(儒者)의 종사. 한(漢) 이후엔 또한 널리 독서인이 종앙(宗仰)하는 바의 학자를 지칭했음.
學士; 南北朝以後 以學士爲司文學撰述之官 唐代翰林學士亦本爲文學侍從之臣 因接近皇帝 往往參預機要 宋代始設專職 其地位職掌 與唐代略同 明代設翰林院學士 及翰林院侍讀 侍講學士 學士遂專爲詞臣之榮銜 淸代改翰林院學士爲掌院學士 餘如故 淸末期內閣典禮院 亦置學士 [百度百科]
남북조 이후 학사(學士)로써 문학찬술(文學撰述)을 맡는 관리로 삼았음. 당대(唐代) 한림학사도 또한 본래 문학시종(文學侍從)의 신하가 되었으며 인하여 황제에게 접근해 왕왕 기요(機要)에 참예(參預)했음. 송대(宋代) 비로소 전직(專職)을 시설했으며 그 지위와 직장(職掌)은 당대와 대략 같았음. 명대(明代)에 한림원학사 및 한림원시독, 시강학사를 설치했고 학사는 드디어 오로지 사신(詞臣)의 영함(榮銜)이 되었음. 청대(淸代) 한림원학사를 고쳐 장원학사(掌院學士)로 삼았고 나머지는 예전과 같았음. 청 말기 내각 전례원에 또한 학사를 설치했음 [백도백과].
僧尼; 僧爲梵語僧伽之略 雖通於男女 然但以名男子之出家者 尼爲比丘尼之略 女子之出家者也 ▲侯鯖錄 漢明帝聽陽成侯劉峻等出家 僧之始也 濟陽婦女等出家 尼之始也
승(僧)은 범어 승가(僧伽)의 약칭이며 비록 남녀에 통하지만 그러나 다만 남자의 출가자를 이름함. 니(尼)는 비구니의 약칭이며 여자의 출가자임. ▲후청록. 한명제(漢明帝)가 양성후(陽成侯) 유준(劉峻) 등의 출가를 허락했으니 승(僧)의 시작이다. 제양(濟陽)의 부녀(婦女) 등의 출가는 니(尼)의 시작이다.
道俗; 又稱僧俗 緇素 緇白 道 指佛敎或佛敎徒
또 승속ㆍ치소ㆍ치백으로 지음. 도(道)는 불교 혹 불교도를 가리킴.
法要; 簡約說法之樞要者 卽樞要之法義也
설법의 추요(樞要)를 간약(簡約)한 것. 곧 추요의 법의(法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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