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조단경

단경 附錄 跋

태화당 2023. 1. 5. 07:37

六祖大師平昔所說之法 皆大乘圓頓之旨 故目之曰經 其言近指遠 詞坦義明 誦者各有所獲 明敎嵩公常讚云 天機利者得其深 天機鈍者得其淺 誠哉言也 余初入道 有感於斯 續見三本不同 互有得失 其板亦已漫滅 因取其本校讎 訛者正之 略者詳之 復增入弟子請益機緣 庶幾學者得盡曹溪之旨 按察使雲公從龍 深造此道 一日過山房睹余所編 謂得壇經之大全 慨然命工鋟梓 顓爲流通 使曹溪一派不至斷絕 或曰 達磨不立文字 直指人心見性成佛 盧祖六葉正傳 又安用是文字哉 余曰 此經非文字也 達磨單傳直指之指也 南嶽靑原諸大老 嘗因是指以明其心 復以之明馬祖石頭諸子之心 今之禪宗流布天下 皆本是指 而今而後 豈無因是指 而明心見性者耶 問者唯唯再拜謝曰 予不敏 請併書于經末以詔來者 至元辛卯夏 南海釋宗寶跋

 

6조 대사가 평석(平昔)에 설한 바의 법은 모두 대승원돈(大乘圓頓)의 지취(旨趣)니 고로 그것을 명목(名目)해 가로되 경()이라 했다. 그 언어(言語)는 가까우나 지시(指示)는 멀고 언사(言詞)는 평탄하나 의미(義味)는 고명(高明)하여 송자(誦者)가 각자 획득하는 바가 있다. 명교숭공(明敎嵩)이 일찍이(; 과 통함) 칭찬해 이르되 천기(天機)가 예리한 자는 그 깊음을 얻고 천기가 우둔한 자는 그 얕음을 얻는다 했으니 성재(誠哉)의 말씀이다. 내가 처음 입도(入道)하여 여기에 감동함이 있어 3()을 이어서 보매 같지 못했고 서로 득실이 있었고 그 목판도 또한 이미 만멸(漫滅; 磨滅)했다. 인하여 그 본()들을 취해 교수(校讎)하면서 와자(訛者)는 그것을 바르게 하고 약자(略者)는 그것을 상세히 하고 다시 제자의 청익기연(請益機緣)을 증입(增入)했으니 서기(庶幾; 거의) 학자가 조계지지(曹溪之旨)를 득진(得盡)하리라. 안찰사(按察使) 운공(雲公) 종룡(從龍)이 이 도에 깊이 나아갔다. 어느 날 산방(山房)에 이르러() 나의 소편(所編; 편집한 것)을 보고 이르되 단경(壇經)의 대전(大全)을 얻었다. 개연(慨然; 感慨)하며 공인(工人)에게 침재(鋟梓)를 명령하고 오로지() 유통하여 조계의 일파(一派)가 단절에 이르지 않게 했다. 혹왈(或曰; 누가 가로되) 달마는 문자를 세우지 않고 인심(人心)을 직지(直指)하여 견성성불하게 했는데 노조(盧祖; 혜능의 성이 )6(; 世代)의 정전(正傳)이거늘 또 어찌 이 문자를 쓰겠는가. 내가 가로되 차경(此經)은 문자가 아니니 달마가 단전(單傳)한 직지(直指)의 지(). 남악(南嶽)ㆍ청원(靑原) 여러 대로(大老)가 일찍이 이 지()로 인해 그 마음을 밝혔고 다시 이로써 마조(馬祖)ㆍ석두(石頭) 제자(諸子)의 마음을 밝혔다. 여금에 선종이 천하에 유포(流布)되었음도 모두 근본이 이 지()며 이금이후(而今而後; 如今以後)에 어찌 이 지()를 인하지 않고 명심견성(明心見性)한다 하겠는가. 문자(問者)가 유유(唯唯; , )하고 재배(再拜)하고 물러나며() 가로되 내가 불민(不敏)했으니 청컨대 경말(經末)에 병서(併書)하여 내자(來者)를 가르치시오(). 지원(至元) 신묘(辛卯; 1291) 여름, 남해(南海) 석종보(釋宗寶) ().

 

附錄

 


; 文體的一種 寫在書籍或文章的後面 多用以評介內用 或說明寫作經過等

문체의 일종. 서적 혹 문장의 후면에 서사해 두며 다분히 내용을 평개(評介; 평론하며 소개하다)하는 데 사용하거나 혹 경과 등을 설명하여 서사함.

 

圓頓; 圓滿頓足之意 卽一切圓滿無缺 以圓滿具足之心 立地可達悟界 卽可頓速成佛 故有圓頓一乘 圓頓止觀等名稱出現 此爲天台敎義所言 又其圓頓之觀法則稱圓觀 此外 諸宗派中 究極之敎或修行 亦稱爲圓頓

원만하고 돈족(頓足)함의 뜻이니 곧 일체가 원만무결함. 원만히 구족한 마음으로 입지(立地; 즉시. 바로)에 가히 도달하는 오계(悟界)니 곧 가히 돈속(頓速)히 성불하는지라 고로 원돈일승(圓頓一乘), 원돈지관(圓頓止觀) 등의 명칭이 출현했음. 이것은 천태교의(天台敎義)에서 말하는 바가 되며 또 그 원돈의 관법을 곧 일컬어 원관(圓觀)이라 함. 이 밖에 여러 종파 중에 구극(究極)의 교나 혹 수행을 또한 일컬어 원돈이라 함.

 

明敎嵩; 宋代雲門宗僧契嵩(雲門下四世)之封號明敎大師 藤州鐔津(廣西藤縣)人 徧通內外典籍 善於著述 仁宗嘉祐七年(1062) 師所著之傳法正宗記 輔敎篇等 奉敕入藏 賜號明敎大師 [鐔津明敎大師行業記]

송대 운문종승 계숭(운문하 4)의 봉호(封號)가 명교대사(明敎大師). 등주 심진(鐔津; 광서 등현) 사람. 내외의 전적을 두로 통달했고 저술을 잘했음. 인종 가우 7(1062) 스님이 지은 바 전법정종기(傳法正宗記)ㆍ보교편 등이 칙명을 받들어 입장(入藏)되고 명교대사란 호를 주었음 [심진명교대사행업기].

 

天機; 天然之機感 或謂天之機密 猶言天意 亦指天性而言

천연의 기감(機感). 혹은 하늘의 기밀을 말함. 하늘의 뜻이라고 말함과 같음. 또 천성을 가리켜 말함.

 

校讎; 對書籍 以正誤謬

서적을 교대(; 비교하며 대조)하면서 오류를 정정(訂正).

 

按察使; 唐朝初年仿漢刺史制設立 職責是赴各道巡察 考核吏治 宋代轉運使初亦兼領提刑 後乃別設提點刑獄 遂爲後世按察使之前身 與唐代之觀察使性質不同 [百度百科]

당조(唐朝) 초년 한()의 자사제(刺史制)를 모방해 설립했음. 직책은 이 각도(各道)에 다다라 순찰하면서 이치(吏治)를 고핵(考核)했음. 송대(宋代) 전운사(轉運使)도 또한 제형(提刑)을 겸령(兼領)했고 후에 곧 따로 제점형옥(提點刑獄)를 설립했으니 드디어 곧 후세의 안찰사의 전신(前身)이 되었음. 당대의 관찰사와 성질이 같지 않음 [백도백과].

 

鋟梓; 以刀鏤板也 [禪林寶訓音義]

칼로 판에 새김임 [선림보훈음의].

 

馬祖; 古尊宿語錄一 馬祖大寂禪師 師諱道一 漢州什邡人也 俗姓馬氏 江西法嗣布於天下 時號馬祖焉

고존숙어록1 마조대적선사. 스님의 휘는 도일(道一; 709-788)이며 한주 십방 사람이니 속성은 마씨다. 강서의 법사가 천하에 분포하자 당시에 호하기를 마조(馬祖)라 했다.

 

石頭; 希遷(700-790) 唐代僧 又稱無際大師 端州高要(廣東高要)人 俗姓陳 曾禮六祖慧能 靑原行思爲師 得靑原行思之印可 天寶(742-755)初年 居衡山南寺 寺之東有石狀如臺 乃結庵其上 時號石頭和尙 時江西以馬祖爲主 湖南以石頭爲主 四方學徒多輻湊於二師之門 唐貞元六年十二月示寂 壽九十一 臘六十三 諡無際大師 著有參同契 草庵歌各一篇行世 [宋高僧傳九 傳燈錄十四 五燈會元五]

희천(希遷; 700-790)이니 당대승. 또 호칭이 무제대사(無際大師). 단주(端州) 고요(高要; 광동 고요)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진(). 일찍이 6조 혜능을 참례했고 청원행사(靑原行思)를 스승으로 삼아 청원행사의 인가(印可)를 얻었음. 천보(天寶; 742-755) 초년(初年)에 형산(衡山)의 남사(南寺)에 거주했는데 사원의 동쪽에 암석이 있어 형상(形狀)이 돈대()와 같았으며 이에 암자를 그 위에 엮은지라 당시에 호하기를 석두화상(石頭和尙)이라 했음. 당시(當時)에 강서(江西)는 마조(馬祖)를 주체(主體)로 삼았고 호남(湖南)에선 석두(石頭)를 주체로 삼았는데 사방의 학도(學徒)가 많이 두 스님의 문으로 복주(輻湊)하였음. 당 정원(貞元) 612월에 시적(示寂)했으니 나이는 91이며 승랍은 63. 시호(諡號)가 무제대사(無際大師)며 저서에 참동계(參同契)ㆍ초암가(草庵歌) 1()이 있어 세상에 행함 [송고승전9. 전등록14. 오등회원5].

 

'태화당총서 다운로드 23종 파일첨부' 카테고리의 글 목록 (tistory.com)

'육조단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경 壇經註譯跋  (0) 2023.01.05
단경 附錄 佛衣銘 03  (0) 2023.01.05
단경 附錄 佛衣銘 02  (0) 2023.01.05
단경 附錄 佛衣銘 01  (0) 2023.01.05
단경 附錄 大鑒禪師碑 02  (0) 2023.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