師入塔後 至開元十年壬戌八月三日 夜半忽聞塔中如拽鐵索聲 衆僧驚起 見一孝子從塔中走出 尋見師頸有傷 具以賊事聞于州縣 縣令楊侃 刺史柳無忝 得牒切加擒捉 五日於石角村捕得賊人 送韶州鞠問 云 姓張名淨滿 汝州梁縣人 於洪州開元寺 受新羅僧金大悲錢二十千 令取六祖大師首 歸海東供養 柳守聞狀 未卽加刑 乃躬至曹溪 問師上足令韜曰 如何處斷 韜曰 若以國法論 理須誅夷 但以佛敎慈悲冤親平等 況彼求欲供養 罪可恕矣 柳守加歎曰 始知佛門廣大 遂赦之
스님을 입탑(入塔)한 후 개원(開元) 10년(722) 임술 8월 3일에 이르자 야반(夜半; 한밤중)에 홀연히 탑중(塔中)에서 철삭(鐵索; 쇠끈)을 끄는 것과 같은 소리가 들렸으므로 중승(衆僧)이 놀라 일어났다. 한 효자(孝子)가 탑중으로부터 주출(走出)함을 보았는데 이윽고 스님의 목이 손상됨이 있음을 보았다. 갖추어 적사(賊事)를 주현(州縣)에 알렸는데(聞은 알릴 문) 현령(縣令)은 양간(楊侃)이며 자사(刺史)는 유무첨(柳無添)이었으며 간절히 금착(擒捉)을 더하라는 문서(牒)를 얻었다. 5일 석각촌(石角村)에서 적인(賊人)을 포득(捕得; 체포)하여 소주(韶州)로 보내 국문(鞠問)했는데 이르되 성은 장(張)이며 이름은 정만(淨滿)이며 여주(汝州)의 양현(梁縣) 사람이다. 홍주(洪州) 개원사(開元寺)에서 신라승(新羅僧) 김대비(金大悲)의 돈 20천(二十千; 2만)을 받았으며 6조 대사의 머리를 취하게 했고 해동(海東)으로 돌아가 공양하려 했다. 유수(柳守)가 백상(白狀)을 듣고 곧 가형(加刑)하지 않고 이에 몸소 조계에 이르러 스님의 상족(上足) 영도(令韜)에게 물어 가로되 어떻게 처단(處斷)해야 합니까. 영도가 가로되 만약 국법으로써 논하자면 이치가 모름지기 주이(誅夷; 誅殺)해야 하지만 단지 불교는 자비로써 원친(冤親; 怨親과 같음)이 평등한데 하물여 그는 구해 공양하려고 했으니 죄를 가히 용서해야 합니다. 유수(柳守)가 감탄을 더하며 가로되 비로소 불문(佛門)이 광대함을 알겠습니다. 드디어 그를 사면(赦免)했다.
海東; 渤海之東 又今之韓國的古時別稱
발해의 동쪽. 또 지금의 한국의 고시(古時)의 별칭.
令韜; (666-760) 唐代僧 江西人 俗姓張 又號行滔 從六祖慧能出家 不離左右 慧能示寂後 納衣守塔 按傳燈錄五 開元四年(716) 帝聞其德風 召之 師稱疾不赴 上元元年(760) 肅宗以節度使韋利見之奏請 詔迎六祖之傳法衣入宮內供養 師以疾辭 壽九十五 諡號大曉禪師 又按曹溪大師別傳 師於上元二年與門人惠象永和等人 共同奉詔入宮 且於當年正月示寂 壽八十九
(666-760) 당대승. 강서 사람. 속성은 장. 또 호가 행도(行滔). 6조 혜능을 좇아 출가했으며 좌우를 떠나지 않았음. 혜능이 시적한 후 옷을 수납(收納)하고 탑을 지켰음. 전등록5를 안험컨대 개원 4년(716) 제(帝)가 그의 덕풍을 듣고 그를 불렀으나 스님이 질환을 일컬으며 다다르지 않았음. 상원 원년(760) 숙종이 절도사 위리견의 주청을 써서 조칙으로 6조의 전법의(傳法衣)를 맞이해 궁내에 들여 공양하겠다 했는데 스님이 질병으로 사양했음. 나이 95. 시호가 대효선사. 또 조계대사별전을 안험컨대 스님이 상원 2년 문인 혜상ㆍ영화 등의 사람과 공동으로 조칙을 받들어 입궁했으며 또 당년(當年) 정월에 시적했으니 나이는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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