相州隆化寺慧滿禪師 滎陽人也 姓張氏 始於本寺遇僧那禪師開示 志存儉約唯蓄二鍼 冬則乞補夏乃捨之 自言一生心無怯怖身無蚤虱睡而不夢 常行乞食住無再宿 所至伽藍則破柴製履 貞觀十六年於洛陽會善寺側 宿古墓中遇大雪 旦入寺見曇曠法師 曠怪所從來 師曰 法有來耶 曠遣尋來處 四邊雪積五尺許 曠曰 不可測也 尋聞有括錄事 諸僧逃隱 師持鉢周行聚落無所滯礙 隨得隨散索爾虛閑 有請宿齋者 師曰 天下無僧方受斯請也 又嘗示人曰 諸佛說心令知心 相是虛妄 今乃重加心相 深違佛意 又增論議殊乖大理 故常齎楞伽經四卷 以爲心要 如說而行 蓋遵歷世之遺付也 後於陶冶中無疾坐化 壽七十許
●相州; 卽鄴都 今河南省安陽
●宿齋; 古代指擧行祭祀等禮儀前的齋戒
●陶冶; 制作陶器和冶煉金屬
상주(相州) 융화사(隆化寺) 혜만선사(慧滿禪師). 형양(滎陽) 사람이며 성은 장씨(張氏)다. 처음(始) 본사(本寺)에서 승나선사(僧那禪師)의 개시(開示)를 만났다. 의지(意志)를 검약(儉約; 儉素하게 節約함)에 두고(存) 오직 2침(鍼; 바늘)을 수용(受容; 蓄)해 겨울엔 곧 취해(乞) 보수(補修)하고 여름엔 곧 그것을 버렸다. 스스로 말하되 일생토록 마음에 겁포(怯怖)가 없었고 몸에 조슬(蚤虱; 벼룩과 이)이 없었고 수면(睡眠)하면서 꿈꾸지 않았다. 늘 걸식을 행했고 머물면서 재숙(再宿)함이 없었다. 이르는 곳의 가람(伽藍)에서 곧 섶(柴)을 쪼개어 신을 제작(製作)했다. 정관(貞觀) 16년(642) 낙양(洛陽) 회선사(會善寺) 곁, 고묘(古墓) 중에 자면서(宿) 대설(大雪)을 만났다. 아침에 입사(入寺)하여 담광법사(曇曠法師)를 보자 담광이 좇아온 곳을 괴이히 여겼다. 사왈(師曰) 법에 옴이 있습니까. 담광이 보내어(遣; 사람을 보내어) 내처(來處)를 찾게 했는데 사변(四邊)에 눈이 5척 가량 쌓였다. 담광이 가로되 가히 헤아리지 못한다. 이윽고(尋) 괄록사(括錄事)가 있다 함을 듣고 제승(諸僧)이 도망가 숨었다. 스님이 지발(持鉢)하고 취락(聚落)을 주행(周行)하면서 체애(滯礙)하는 바가 없이 곧바로(隨) 얻는 대로 곧바로 흩어 삭이(索爾; 쓸쓸한 모양)하고 허한(虛閑)했다. 숙재(宿齋)를 청하는 자가 있자 사왈(師曰) 천하에 중이 없으면 바야흐로 이 청을 받아들이겠다. 또 일찍이 시인(示人)하여 가로되 제불이 마음을 설함은 마음을 알게 함이며 상(相)은 이 허망하다. 이제 이에 심상(心相)을 거듭 더하니(加) 깊이 불의(佛意)에 위배되거늘 또 논의(論議)를 더하니(增) 대리(大理)에 너무(殊) 어긋난다(乖). 고로 늘 릉가경(楞伽經) 4권을 지녀서(齎) 심요(心要)로 삼았나니 설함과 같이 행한다면 대개(大蓋) 역세(歷世; 累世)의 유부(遺付; 遺囑)를 준수(遵守)함이다. 후에 도야(陶冶) 중에서 질병 없이 좌화(坐化)했다. 나이는 70 가량이다.
●相州; 곧 업도(鄴都)니 지금의 하남성 안양(安陽).
●宿齋; 고대에 제사 등의 예의(禮儀)를 거행하기 전의 재계(齋戒)를 가리킴.
●陶冶; 도기(陶器)를 제작(制作)하고 금속을 야련(冶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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