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록

전등록 권4 거방선사(巨方禪師)

태화당 2023. 2. 6. 08:07

前北宗神秀禪師法嗣忍大師第二世法嗣

五臺山巨方禪師安陸人也 姓曹氏 幼稟業於明福院朗禪師 初講經論後參禪 會及造北宗 秀師問曰 白雲散處如何 師曰不昧 秀又問 到此間後如何 師曰 正見一枝生五葉 秀默許之 入室侍對庶幾無爽 尋至上黨寒嶺居焉 數歲之間衆盈千數 後於五臺山闡化 涉二十餘載入滅 年八十一 以唐開元十五年九月三日 奉全身入塔

五臺山; 位於山西五臺縣東北 與峨眉山 普陀山 九華山 合稱爲中國佛敎四大靈山 以東西南北中五峰聳立 山頂無林木 壘土如臺 故稱五臺山 又以五巒巍然 拔乎群山 盛夏仍不知炎暑 故別號淸涼山 爲古來文殊菩薩示現之道場 五臺之外 稱臺外 五臺之內稱臺內 以臺懷鎭爲中心 山中寺廟林立 北魏時建有佛寺 北齊時擴建寺院二百餘所 唐開元(713-741)以後 佛敎發展處于極盛時期 寺院多達三百餘所 五臺山有顯通寺 塔院寺 文殊寺 羅睺寺等禪寺 歷代禪宗高僧也有許多曾在五臺山活動 如晩唐著名禪僧趙州從諗 曾九次行脚五臺

入室; 一乃進入師家室中 親受法門而嗣法之意 二學人進入師家之室 參學問道 稱爲入室 此指二

闡化; 弘揚道法 進行敎化

入塔; 將亡僧屍骨安葬于塔墓中 有相應的入塔儀式

 

오대산(五臺山) 거방(巨方; 저본에 巨玄으로 지었음) 선사는 안륙(安陸) 사람이며 성이 조씨(曹氏). 유년(幼年)에 명복원(明福院) 낭선사(朗禪師)에게서 품업(稟業; 受業)했다. 처음엔 경론을 강설했고 후에 선회(禪會; 禪宗 法會)에 참여(參與)했다.  북종(北宗)으로 나아감에 이르러 수사(秀師; 神秀 스님)가 문왈(問曰) 백운이 흩어진 곳은 어떠한가. 사왈(師曰) ()하지 않습니다. 신수가 또 묻되 차간(此間)에 이른 후 어떠한가. 사왈 바로() 1()5()이 생겨남을 봅니다. 신수가 묵연히 허가(許可)했다. 입실(入室)하여 시대(侍對)하면서 거의(庶幾) 어긋남()이 없었다. 이윽고 상당(上黨) 한령(寒嶺)에 이르러 거주했는데 몇 해 사이에 대중이 천수(千數)를 채웠다(). 후에 오대산에서 천화(闡化)했고 20여 재()를 지나() 입멸(入滅)했다. 나이는 81이다. () 개원(開元) 15(727) 93일 전신(全身)을 받들어 입탑(入塔)했다.

五臺山; 산서 오대현 동북에 위치함. 아미산ㆍ보타산ㆍ구화산과 합칭하여 중국불교 4대 영산(靈山)으로 삼음. 동ㆍ서ㆍ남ㆍ북ㆍ중 5봉이 용립(聳立)했고 산정에 임목(林木)이 없으며 흙이 쌓여 대()와 같은지라 고로 명칭이 오대산(五臺山). 또 다섯 봉우리가 외연(巍然; 우뚝한 모양)하여 뭇 산보다 빼어나며 성하(盛夏)에도 그대로 염서(炎暑)를 알지 못하는지라 고로 별호가 청량산(淸涼山). 고래로 문수보살이 시현하는 도량이 됨. 오대의 밖은 호칭이 대외(臺外)며 오대의 안은 호칭이 대내(臺內)니 대회진(臺懷鎭)을 중심으로 삼음. 산중에 사묘(寺廟)가 숲처럼 건립되었으며 북위 때 불사(佛寺)를 건립해 있었고 북제(北齊) 때 사원 2백 여 곳을 확건(擴建)했음. 당 개원(713-741) 이후 불교가 발전하여 극히 성한 시기에 처했는데 사원이 많을 적엔 300여 곳에 달했음. 오대산에 현통사ㆍ탑원사ㆍ문수사ㆍ라후사(羅睺寺) 등의 선사(禪寺)가 있으며 역대 선종 고승도 허다하게 일찍이 오대산에 있으면서 활동함이 있었으니 예컨대() 만당(晩唐)의 저명한 선승 조주종심이 일찍이 아홉 차례 오대산에 행각했음.

入室; 1.곧 사가(師家)의 실중(室中)에 진입하여 법문을 친히 받고 사법(嗣法)함의 뜻. 2. 학인이 사가(師家)의 방에 들어가 참학하고 문도(問道)함을 일컬어 입실이라 함. 여기에선 2를 가리킴.

闡化; 도법(道法)을 홍양(弘揚)하고 교화를 진행함.

入塔; 망승의 시골(屍骨)을 가져다 탑묘 중에 안장함이니 상응적인 입탑의식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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