嵩嶽慧安國師〈耶舍三藏誌云 九女出人倫 八女絕婚姻 朽床添六脚 心祖衆中尊〉 荊州枝江人也 姓衛氏 隋文帝開皇十七年 括天下私度僧尼 勘師 云本無名 遂遁于山谷 大業中大發丁夫開通濟渠 饑殍相枕 師乞食以救之 獲濟者甚衆 煬帝徵師不赴 潛入太和山 暨帝幸江都海內擾攘 乃杖錫登衡嶽寺行頭陀行 唐貞觀中至黃梅 謁忍祖遂得心要 麟德元年遊終南山石壁因止焉 高宗嘗召師不奉詔 遍歷名迹至嵩少云 是吾終焉之地也 自爾禪者輻湊 有坦然懷讓二人來參 問曰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何不問自己意 曰如何是自己意 師曰 當觀密作用 曰如何是密作用 師以目開合示之 然言下知歸更不他適 讓機緣不逗辭往曹谿 武后徵至輦下待以師禮 與神秀禪師同加欽重 后嘗問師甲子 對曰不記 后曰 何不記耶 師曰 生死之身其若循環 環無起盡焉用記爲 況此心流注中間無間 見漚起滅者乃妄想耳 從初識至動相 滅時亦只如此 何年月而可記乎 后聞稽顙信受 尋以神龍二年 中宗賜紫袈裟 度弟子二七人 仍延入禁中供養三年 又賜摩衲一副 辭歸嵩嶽 是年三月三日囑門人曰 吾死已將屍向林中 待野火焚之 俄爾萬迴公來見師 猖狂握手言論 傍侍傾耳都不體會 至八日閉戶偃身而寂 春秋一百二十八〈隋開皇二年壬寅生 唐景龍三年己酉滅 時稱老安國師〉 門人遵旨舁置林間 果野火自然闍維 得舍利八十粒 內五粒色紅紫 留於宮中 至先天二年門人建浮圖
●九女出人倫下; 祖庭事苑八 那連耶舍 作讖偈一十三首 授五戒優婆塞萬大懿 其十一 九女出人倫 八箇絕婚姻 朽牀添六脚 心祖衆中尊 此讖嵩山老安和上 九女 少室也 嵩少安所居也 八女 爲安字 朽牀 老安也 六脚 安之甚也 衆中尊 則天禮安爲國師也
●私度; 未經官許 私自剃髮爲僧者
●丁夫; 壯健的男子 唐代丁謂正役 夫謂雜徭 後泛指服力役的人夫 [百度漢語]
●濟渠; 通濟渠(唐宋時期稱作汴河 汴水) 始建於隋朝 是隋唐大運河的首期工程 連接黃河與淮河 [百度百科]
●嵩少; 祖庭事苑六 嵩少 嵩 高 總名也 其山東爲太室 西爲少室 故曰二室 五嶽之中也 嵩高維嶽 峻極于天(此二句出大雅蕩之什崧高)是也
●禪者; 對禪宗參禪者的稱呼 又稱禪人
●輻湊; 形容人或物聚集像車輻集中於車轂一樣 也作輻輳
●機緣; 一機謂根機 緣謂因緣 衆生之根機與悟法之因緣 兩者契合 則獲省悟 二禪師臨機應緣的問答語句 擧止作略 此指一
●輦下; 天子車駕附近 指京師
●甲子; 一卽年歲 年紀 二六十甲子之第一 此指一
●稽顙; 下首拜也 顙 額也 謂顙至地 周禮太祝之官禮有九焉 一稽首 卽久稽留停 頭至地也 二曰頓首 謂平敵如諸侯相拜 卽以頭向下虗搖拜也 三空首 君答臣下一拜 卽以頭至手 四振動 敬重之 戰慄動變拜也 五吉拜 謂稽顙齊縗不杖以下 吉者 殷之凶拜也 卽先作稽首 後作稽顙 卽額觸地 六凶拜 謂稽顙而後頓首 三年服者也 七奇拜 謂稽首先屈一膝 卽今雅拜 八襃拜 謂報拜 卽再拜也 或持節之拜 九肅拜 謂但仰首以手揖之 今之揖讓是也 [祖庭事苑二]
●萬迴; (632-711) 唐代僧 河南閿鄕人 俗姓張 其兄戍安西(一云遼陽) 久無消息 父母憂思 萬迴每朝往視之 暮持兄書返家 鄕人異之 因號萬迴 高宗時 得度爲僧 武后詔入內道場 賜錦衣 號法雲公 安樂公主將謀逆 萬迴遇之 望塵呼曰 腥腥不可近也 未幾 安樂公主果因謀反受誅 玄宗在藩 曾私謁萬迴 萬迴拊其背曰 五十年太平天子 其神異大多類此 景雲二年 忽求閿鄕河水 飮畢而逝 壽八十 追贈司徒虢國公 [傳燈錄二十七 宋高僧傳十八 神僧傳七 太平廣記異僧類]
숭악(嵩嶽; 嵩山) 혜안국사(慧安國師)는〈耶舍三藏이 誌云하되 九女가 人倫을 超出하여(九女出人倫)/ 八女가 婚姻을 끊었다/ 朽床에 六脚을 더하니/ 心祖로서 衆中에 尊貴하다〉 형주(荊州) 지강(枝江) 사람이며 성은 위씨(衛氏)다. 수문제(隋文帝) 개황(開皇) 17년(597) 천하의 사도(私度) 승니(僧尼)를 총괄(總括)하면서 스님을 감험(勘驗)하자 이르되 본래(本; 저본에 木으로 지었음) 이름이 없다. 드디어 산곡(山谷)에 은둔(隱遁)했다. 대업(大業; 605-616) 중 정부(丁夫)를 크게 징발(徵發)하여 제거(濟渠)를 개통하자 기부(饑殍; 餓死者)가 서로 베개 베었다(枕). 스님이 걸식해 그들을 구제했고 구제를 획득한 자 매우 많았다(衆). 양제(煬帝)가 스님을 불렀으나 다다르지 않고 태화산(太和山)에 잠입(潛入)했다. 양제가 강도(江都)에 거둥함(幸)에 이르러(暨) 해내(海內)가 요양(擾攘; 紛亂)했다. 이에 석장(錫杖)을 짚고(杖) 형악사(衡嶽寺)에 올라 두타행(頭陀行)을 행했다. 당(唐) 정관(貞觀; 627-649) 중 황매(黃梅)에 이르러 인조(忍祖; 弘忍祖師)를 참알했고 드디어 심요(心要)를 얻었다. 인덕(麟德) 원년(元年; 664) 종남산(終南山) 석벽(石壁)을 유람하다가 인하여 머물렀다(止). 고종(高宗)이 일찍이 스님을 불렀으나(召) 조령(詔令)을 받들지 않았고 명적(名迹; 名勝古迹)을 편력(遍歷)하다가 숭소(嵩少)에 이르러 이르되 이는 내가 마칠 땅이다. 이로부터(自爾) 선자(禪者)가 복주(輻湊)했다. 탄연(坦然)과 회양(懷讓) 2인이 있어 내참(來參)하여 문왈(問曰)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입니까. 사왈(師曰) 왜 자기의 뜻을 묻지 않느냐. 가로되 무엇이 이 자기의 뜻입니까. 사왈 마땅히 비밀스런 작용을 관찰하라. 가로되 무엇이 이 비밀스런 작용입니까. 스님이 눈을 뜨고 감아 그것을 보였다. 탄연은 언하에 귀처(歸處)를 알아 다시 다른 데로 가지 않았고 회양은 기연(機緣)이 맞지(逗) 않아 고별하고 조계(曹谿)로 갔다. 무후(武后; 측천무후)가 불러(徵) 연하(輦下)에 이르렀고 스승의 예절로 접대(接待)했으며 신수선사(神秀禪師)와 더불어 한가지로 흠중(欽重)을 더했다. 무후(武后)가 일찍이 스님의 갑자(甲子)를 물었다. 대왈(對曰) 기억하지 못합니다. 무후가 가로되 왜 기억하지 못하십니까. 사왈 생사(生死)하는 몸은 그것이 순환(循環)함과 같나니 환(環)은 기진(起盡)이 없거늘 어찌(焉) 기억을 쓰겠습니까. 하물며 이 마음은 유주(流注)하면서 중간(中間)에 사이(間)가 없거늘 물거품(漚)의 기멸(起滅)을 보는 것은 곧(乃) 망상일 뿐입니다. 초식(初識)으로 좇아 동상(動相)에 이르기까지 멸(滅)할 때 또한 다만 이와 같거늘 무슨 연월(年月)을 가히 기억하겠습니까. 무후가 듣고서 계상(稽顙)하고 신수(信受)했다. 이윽고 신룡(神龍) 2년(706) 중종(中宗)이 자가사(紫袈裟)를 주고(賜) 제자 이칠인(二七人; 14인)을 득도(得度)시키고 인하여(仍) 금중(禁中)에 연입(延入)하여 3년 동안 공양했고 또 마납(摩衲) 1부(副; 量詞. 벌)를 주었다. 고별하고 숭악으로 돌아왔다(辭歸嵩嶽; 저본에 師辭嵩嶽으로 지었음). 이 해 3월 3일 문인(門人)에게 부촉(付囑)해 가로되 내가 죽고 나면 시체를 가져다 숲 속을 향하게 하고 야화(野火)가 그것을 태움을 기다려라. 갑자기(俄爾) 만회공(萬迴公)이 와서 스님을 상견했고 창광(猖狂; 미친 것같이 사납게 날뜀)하며 악수(握手)하고 언론(言論)했는데 곁의 시승(侍僧)이 귀를 기울였으나 도무지 체회(體會; 理解)하지 못했다. 8일에 이르러 폐호(閉戶)하고 몸을 눕이더니 적(寂; 입적)했다. 춘추는 128이다〈隋 開皇二年 壬寅(582)에 生했고 唐 景龍三年 己酉(709)에 滅했다. 당시에 老安國師로 일컬었다〉. 문인들이 의지(意旨)를 준수해 마주들어(舁) 임간(林間)에 방치했는데 과연 야화(野火)가 자연히 사유(闍維)했다. 사리 80알을 얻었는데 안의 5알은 색이 홍자(紅紫)였고 궁중에 머물렀다가 선천(先天) 2년(713)에 이르러 문인이 부도(浮圖; 탑)를 세웠다.
●九女出人倫下; 조정사원8 나련야사(那連耶舍) 참게(讖偈) 13수(首)를 지어 오계우바새(五戒優婆塞) 만대의(萬大懿)에게 주었다. 그 11 구녀(九女)가 인륜(人倫)을 초출(超出)하여/ 팔개(八箇; 위에 八女로 지었음)가 혼인(婚姻)을 끊었다/ 후상(朽床)에 육각(六脚)을 더하니/ 심조(心祖)로서 중중(衆中)에 존귀(尊貴)하다. 이것은 숭산(嵩山) 노안화상(老安和上; 慧安國師)을 참(讖)했다. 구녀(九女)는 소실(少室)이니 숭소(嵩少)는 안(安)이 거주했던 곳이다. 팔녀(八女)는 안자(安字)가 된다. 후상(朽床)은 노안(老安)이며 육각(六脚)은 안정(安定)의 심(甚)함이다. 중중존(衆中尊)은 측천(則天)이 안(安)에게 예배하고 국사로 삼았다.
●私度; 관허(官許)를 거치지 않고 사사로이 스스로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는 것.
●丁夫; 장건(壯健)한 남자. 당대(唐代) 정(丁)은 정역(正役)을 말했고 부(夫)는 잡요(徭)를 말했음. 후에 널리 역역(力役)에 복역(服役)하는 인부(人夫)를 가리켰음 [백도한어].
●濟渠; 통제거(通濟渠; 唐宋時期 일컬어 汴河ㆍ汴水로 지었음)니 수조(隋朝)에서 처음 건립했음. 이는 수당(隋唐) 대운하(大運河)의 수기(首期; 初期) 공정(工程)이니 황하(黃河)와 회하(淮河)를 연접(連接)했음 [백도백과].
●嵩少; 조정사원6. 숭소(嵩少) 숭(嵩)은 고(高)니 총명(總名)임. 그 산은 동쪽이 태실산(太室山)이 되고 서쪽이 소실산(少室山)이 되므로 고로 가로되 2실(室)이며 5악(嶽)의 가운데임. 숭고(嵩高)는 유악(維嶽; 維는 발어사)이라 우뚝 높아 하늘에 이른다(極)(이 2구는 大雅 蕩之什 숭고에 나옴) 한 게 이것임.
●禪者; 선종 참선자에 대한 칭호. 또 선인(禪人)으로 호칭함.
●輻湊; 사람이나 혹 물건의 취집(聚集)한 형상이 수레의 바퀴살이 수레의 바퀴통에 집중함과 한 모양임을 형용함. 또 복주(輻輳)로 지음.
●機緣; 1. 기(機)는 이르자면 근기며 연(緣)은 이르자면 인연이니 중생의 근기와 법을 깨칠 인연임. 양자가 계합해야 곧 성오(省悟)를 얻음. 2. 선사가 임기하여 응연(應緣)하는 문답의 어구와 거지(擧止)의 작략(作略). 여기에선 1을 가리킴.
●輦下; 천자의 거가(車駕) 부근. 경사(京師)를 가리킴.
●甲子; 1. 곧 연세. 연기(年紀; 나이). 2. 60갑자의 첫째. 여기에선 1을 가리킴.
●稽顙; 머리를 숙이는 배례(拜禮)임. 상(顙)은 이마니 이르자면 이마가 땅에 이름임. 주례 태축지관(太祝之官; 大祝이니 周의 벼슬 이름. 神의 제사를 맡아 보았음) 예(禮)에 아홉이 있다. 1은 계수(稽首)다. 곧 오래 숙이어 유정(留停; 정류)해 머리가 땅에 이름이다. 2는 가로되 돈수(頓首)다. 이르자면 평적(平敵; 평등히 상대)함이 마치 제후가 서로 배례함과 같나니 곧 머리를 아래로 향해 겉치레로 흔들며 하는 배례이다. 3은 공수(空首)다. 군주가 신하에게 1배로 답함이니 곧 머리로써 손에 이름이다. 4는 진동이다. 경중(敬重)하여 전율하면서 동변(動變)하는 배례이다. 5는 길배(吉拜)다. 이르자면 계상(稽顙)이며 자최(齊縗; 喪服 五等의 한 가지. 삼베로 만들어 바지를 꿰매 붙인 것)와 부장(不杖; 五服의 하나. 부모가 생존 시 아내에 대한 복 따위. 1년만 입음) 이하이다. 길(吉)이란 것은 은(殷)의 흉배(凶拜)다. 곧 먼저 계수(稽首)를 짓고 뒤에 계상(稽顙)을 지음이니 곧 이마가 땅에 닿음이다. 6은 흉배(凶拜)다. 이르자면 계상(稽顙)한 이후에 돈수(頓首; 頓은 조아릴 돈)함이니 3년 복자(服者)다. 7은 기배(奇拜)다. 이르자면 계수하고 먼저 한 무릎을 굽힘이니 곧 금시의 아배(雅拜)이다. 8은 포배(襃拜)다. 이르자면 보배(報拜)며 곧 재배니 혹은 부절(符節)을 가지는 배례이다. 9는 숙배(肅拜)다. 이르자면 다만 앙수(仰首)하고 손으로써 읍(揖)함이니 지금의 읍양(揖讓)이 이것이다 [조정사원2].
●萬迴; (632-711) 당대승. 하남 문향(閿鄕) 사람이며 속성은 장. 그의 형이 안서(安西; 한편으론 이르기를 遼陽)에서 수자리(戍)하면서 오랫동안 소식이 없자 부모가 우사(憂思; 걱정)했음. 만회가 매번 아침에 가서 그를 보고 저녁에 형의 서신을 가지고 집에 돌아오자 고향 사람들이 이를 괴이하게 여겼으며 인하여 호를 만회(萬迴)라 했음. 고종 때 득도(得度)하여 승려가 되었음. 무후가 불러 내도량에 들게 하고 비단옷을 주고 호를 법운공(法雲公)이라 했음. 안락공주(安樂公主)가 장차 모역(謀逆)하려고 하였는데 만회가 그를 만나자 티끌을 바라보고 불러 가로되 성성(腥腥; 아주 비리다)하여 가히 가까이 하지 못하겠다. 얼마 안되어 안락공주가 과연 모반으로 인해 죽임을 받았음. 현종이 변방에 있을 적에 일찍이 만회를 사적으로 예알했는데 만회가 그의 등을 어루만지며 가로되 50년 동안의 태평천자(太平天子)다. 그의 신이(神異)는 매우 많이 이와 유사했음. 경운 2년 홀연히 문향(閿鄕)의 냇물을 요구하였고 마시기를 마치자 떠났음. 나이 80. 추증(追贈)하여 사도괵국공(司徒虢國公)이라 했음 [전등록27. 송고승전18. 신승전7. 태평광기이승류].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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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40만 원. 할인. 잔본 81질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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