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록

전등록 권4 보당사(保唐寺) 무주선사(無住禪師)

태화당 2023. 2. 9. 08:00

益州無相禪師法嗣忍大師第四世

益州保唐寺無住禪師 初得法於無相大師 乃居南陽白崖山 專務宴寂經累歲 學者漸至勤請不已 自此垂誨 雖廣演言敎而唯以無念爲宗 唐相國杜鴻漸出撫坤維 聞師名思一瞻禮 大曆元年九月 遣使到山延請 時節度使崔寧 亦命諸寺僧徒遠出迎引 十月一日至空慧寺 時杜公與戎帥 三學碩德俱會寺中致禮訖 公問曰 頃聞師嘗駐錫於此 而後何往耶 曰無住性好疎野多泊山間 自賀蘭五臺周遊勝境 聞先師居貴封大慈寺說最上乘 遂遠來摳衣忝預函丈 棲遲白崖已逾多載 今幸相公見召 敢不從命 公曰 弟子聞金和尙說無憶無念莫妄三句法門是否 曰然 公曰 此三句是一是三 曰無憶名戒 無念名定 莫妄名慧 一心不生具戒定慧 非一非三也 公曰 後句妄字莫是從心之忘乎 曰從女者是也 公曰 有據否 曰法句經云 若起精進心 是妄非精進 若能心不妄 精進無有涯 公聞疑情盪焉 又問 師還以三句示人否 曰對初心學人還令息念澄停識浪 水淸影現 悟無念體 寂滅現前 無念亦不立也 于時庭樹鵶鳴 公問 師聞否 曰聞 鵶去已 又問 師聞否 曰聞 公曰 鵶去無聲云何言聞 師乃普告大衆 佛世難値正法難聞 各各諦聽 聞無有聞非關聞性 本來不生何曾有滅 有聲之時是聲塵自生 無聲之時是聲塵自滅 而此聞性不隨聲生不隨聲滅 悟此聞性則免聲塵之所轉 當知聞無生滅 聞無去來 公與僚屬大衆稽首 又問 何名第一義 第一義者從何次第得入 師曰 第一義者無有次第 亦無出入 世諦一切有 第一義卽無 諸法無性性說名第一義 佛言 有法名俗諦 無性第一義 公曰 如師開示實不可思議 公又曰 弟子性識微淺 昔因公暇 撰得起信論章疏兩卷 可得稱佛法否 師曰 夫造章疏皆用識心 思量分別有爲有作 起心動念然可造成 據論文云 當知一切法從本以來 離言說相 離名字相 離心緣相 畢竟平等無有變異 唯有一心故名眞如 今相公著言說相 著名字相 著心緣相 旣著種種相 云何是佛法 公起作禮曰 弟子亦曾問諸供奉大德 皆讚弟子不可思議 當知彼等但徇人情 師今從理解說合心地法 實是眞理不可思議 公又問 云何不生 云何不滅 如何得解脫 師曰 見境心不起名不生 不生卽不滅 旣無生滅卽不被前塵所縛 當處解脫 不生名無念 無念卽無滅 無念卽無縛 無念卽無脫 擧要而言 識心卽離念 見性卽解脫 離識心見性外 更有法門證無上苦提者 無有是處 公曰 何名識心見性 師曰 一切學道人隨念流浪 蓋爲不識眞心 眞心者 念生亦不順生 念滅亦不依寂 不來不去 不定不亂 不取不捨 不沈不浮 無爲無相 活鱍鱍平常自在 此心體畢竟不可得 無可知覺 觸目皆如無非見性也 公與大衆作禮 稱讚踊躍而去 後居保唐寺而終

益州; 四川省首都 位於成都平野南東 有圜悟克勤道場昭覺寺 釋氏稽古略三云 益州 西川成都府也

無相; (684-762) 新羅國僧 俗姓金 世稱金和上 東海大師 本是新羅王族 於新羅之群南寺出家受戒後 開元十六年(728) 隨入唐使航海至華 謁玄宗 住禪定寺 未久入蜀 至資州(今四川資中)德純寺 欲師事處寂 時處寂因病不得引見 然無相燃一指供養 遂得留止二年 二十四年 處寂遣人喚無相 付囑從智詵所傳之達磨衣 遂隱山中修頭陀行 後應請開禪法 住成都府淨衆寺 化導二十年 天寶末年玄宗入蜀曾召見之 禮錫豐隆 寶應元年(762)五月 將信衣付囑無住 十九日坐化 壽七十九 師於每年十二月及正月 設道場說法 先引聲敎念佛 次說無憶無念莫妄三句 後世之淨衆宗 卽指無相之法系 其傳承及敎旨 見於宗密中華傳心地禪門師資承襲圖 [圓覺經大疏鈔三下 宋高僧傳十九 曆代法寶記 傳燈錄四 禪學思想史上(忽滑谷快天) 禪宗史硏究(宇井伯壽)]

大師; 初果以上 乃至諸佛菩薩 堪爲衆生之師範 故稱大師 瑜伽師地論八十二 能善敎誡聲聞弟子一切應作不應作事 故名大師 又能化導無量衆生 令苦寂滅 故名大師 又爲摧滅邪穢外道出現世間 故名大師

白崖山; 在今河南省鄧縣西北

相國; 戰國時代稱爲相邦 如秦國呂不韋 漢高祖劉邦卽位 爲避諱改爲相國 漢朝相國最初由蕭何擔任 後代對擔任宰相的官員 也敬稱相國 [百度百科]

杜鴻漸; (?-769) 字子巽 唐代 濮州(山東鄄城北)人 金剛智三藏弟子 出撫巴蜀 遣使白崖山 請無住入城問法 後與杜黃裳同日拜相 大歷四年(769)罷官 同年臨終命朝服加僧伽梨 薙鬚髮 以沙門法葬 謚號文憲 [名公法喜志二 佛法金湯編八 宋高僧傳一 舊唐書一八 新唐書一二六] ●●坤維; 指西南方

節度使; 唐代開始設立的地方軍政長官 一種對邊疆進行有效防備 而設立的官位 屬官有行軍司馬 參謀掌書記等 但是在唐代安史之亂 卻將這個官位推到了末路 [百度百科]

崔寧; 衛州(今衛輝市)人 本名旰 是唐代名將 喜縱橫之術 [百度百科]

戎帥; 一軍隊的統帥 二指戎族軍隊的主將 此指一

三學; 指戒學(持行戒規 防非止惡) 定學(集思靜慮 觀照佛理) 慧學(斷除疑惑 達到解脫) 是佛敎的全部內容

碩德; 精于佛法的高僧

賀蘭; 賀蘭山 距河北省邯鄲市磁縣城西北三十里 今林峰村南

函丈; 古代講學者與聽講者 坐席之間相距一丈 後用以稱講席 引申爲對前輩學者或師長的敬稱 [百度百科]

棲遲; 一遊玩休憩 二淹留 隱遁

戒定慧; 指戒律禪定與智慧 按翻譯名義集四 防非止惡爲戒 息慮靜緣爲定 破惡證眞爲慧 學此三法可達無上涅槃 故稱三學

法句經; 二卷 三十九品七五二頌(今計有七五八頌) 印度法救撰集 三國吳之維祇難等譯 收集諸經中佛之自說偈編集而成 收於大正藏第四冊 吳大帝黃武三年(224) 維祇難齎來二十六品五百頌 後又增十三品 合爲三十九品七五二頌 巴利語之原本現存

聲塵; 六塵之一 謂絲竹環珮之聲 及男女歌詠聲等 是名聲塵

僚屬; 舊時稱下屬的官吏

世諦; 對眞諦之稱 世者世間世俗 諦者事實又道理 世間之事實 又世俗人所知之道理 謂之世諦 又曰俗諦 世俗諦 覆俗諦等 涅槃經十四 善男子 世諦者卽第一義諦 世尊 若爾者則無二諦 佛言 善男子 有善方便 隨順衆生 說有二諦

俗諦; 隨順世俗而說生滅等有之諦理 卽指世間之事實與俗知之理 又作世俗諦 世諦 有諦 眞諦之對稱 碧巖錄第一則 眞諦以明非有 俗諦以明非無

性識; 天分 悟性 佛敎稱衆生的根性心識

公暇; 公務閑暇之際 指休假

心緣; 言起心而攀緣外境也 爲慮知心外事物之義

 

익주(益州) 보당사(保唐寺) 무주선사(無住禪師). 처음에 무상대사(無相大師)에게서 득법하고 이에 남양(南陽) 백애산(白崖山)에 거주하면서 연적(宴寂; 安息, 寂滅)에 오로지() 힘쓰며() 몇 해를 경과했다. 학자가 점차 이르러 근청(勤請)하여 말지 않자 이로부터 수회(垂誨; 가르침을 내리다)했다. 비록 언교(言敎)를 광연(廣演)했으나 오직 무념(無念)을 종()으로 삼았다. () 상국(相國) 두홍점(杜鴻漸)이 나가서 곤유(坤維)를 무마(撫摩; )하다가 스님의 명성을 듣고 한 번 첨례(瞻禮)하기를 사념했다. 대력(大曆; 저본에 大歷으로 지었음) 원년(元年; 766) 9월 사자(使者)를 보내어 산에 이르러 연청(延請)했다. 당시에 절도사(節度使) 최녕(崔寧)도 또한 제사(諸寺)의 승도(僧徒)에게 명령해 원출(遠出)하여 영인(迎引; 迎接하고 引導하다)하게 했다. 101일 공혜사(空慧寺)에 이르렀고 때에 두공(杜公)과 융수(戎帥; 최녕을 가리킴)가 삼학(三學)의 석덕(碩德)을 불러 모두 사중(寺中)에 모여 치례(致禮)하여 마치자 공()이 문왈(問曰) 요즘() 들으니 스님이 일찍이 여기에 주석(駐錫)하신다 하니 이후(而後; 以後)에 어디로 가시렵니까. 가로되 주성(住性)이 없어 소야(疎野; 曠野)를 좋아하고 다분히 산간(山間)에 머뭅니다(). 하란(賀蘭; 賀蘭山)과 오대(五臺)로부터 승경(勝境)을 주유(周遊)하다가 선사(先師; 無相大師)가 귀봉(貴封) 대자사(大慈寺)에 거주하며 최상승(最上乘)을 설한다 함을 듣고 드디어 먼 데서 와 구의(摳衣)하고 욕되이(; 謙辭) 함장(函丈)에 참예(參預)했고 후에 백애(白崖; 백애산)에 서지(棲遲)하면서 이미 여러 해()를 넘겼습니다. 여금에 다행히 상공(相公)이 부른다 함을 보고 감히 명()을 좇지 않겠습니까. 공왈(公曰) 제자(弟子)가 듣건대 김화상(金和尙; 無相大師)이 무억(無憶)ㆍ무념(無念)ㆍ막망(莫妄) 3() 법문을 설했다 하니 그렇습니까. 가로되 그렇습니다. 공왈(公曰) 3구는 이 하나입니까, 이 셋입니까. 가로되 무억(無憶)은 이름이 계()며 무념(無念)은 이름이 정()이며 막망(莫妄)은 이름이 혜()니 일심이 나지 않으면 계정혜(戒定慧)를 갖추며 하나도 아니고 셋도 아닙니다. 공왈 후구(後句)의 망자(妄字)는 이 심()을 좇는 망()이 아니겠습니까. 가로되 녀()를 좇는 것이 옳습니다. 공왈 근거가 있습니까. 가로되 법구경(法句經)에 이르되 만약 정진한다는 마음을 일으키면/ 이는 망(; 허망)이며 정진이 아니다/ 만약 능히 마음이 허망하지 않으면/ 정진이 끝()이 있지 않으리라. 공이 듣고서 의정(疑情)이 소탕(掃蕩; )되었다. 우문(又問) 스님도 도리어 3구로써 시인(示人)하십니까. 가로되 초심(初心)의 학인을 상대하여선 도리어 식념(息念)하게 합니다. 식랑(識浪)을 징정(澄停)하면 물이 맑아져 그림자가 나타나 무념체(無念體; 저본에 無體念으로 지었음)를 깨쳐 적멸이 현전(現前)하거니와 무념도 또한 세우지 않습니다. 우시(于時; 당시)에 정수(庭樹)에 까마귀가 울었다. 공이 묻되 스님은 듣습니까. 가로되 듣습니다. 까마귀가 떠나고 나서 또 묻되 스님은 듣습니까. 가로되 듣습니다. 공왈(公曰) 까마귀가 떠나 소리가 없거늘 어찌하여(云何) 듣는다고 말합니까. 스님이 이에 대중에게 보고(普告)하되 불세(佛世)는 만나기() 어렵고 정법은 듣기 어렵나니 각각 체청(諦聽)하라. ()은 문()이 있지 않아 문성(聞性)에 상관되지 않는다. 본래 불생(不生)이거늘 어찌 일찍이 멸()이 있으랴. 소리()가 있을 때 이 성진(聲塵)이 자생(自生)했고 소리가 없을 때 이 성진이 자멸(自滅)했다. 이 문성(聞性)은 소리 따라 생하지 않고 소리 따라 멸하지 않는다. 이 문성(聞性)을 깨치면 곧 성진(聲塵)의 소전(所轉)을 면한다. 당지(當知)하라, ()은 생멸이 없으며 문은 거래가 없다. ()과 요속(僚屬)ㆍ대중이 계수(稽首)했다. 우문(又問) 무엇을 이름해 제일의(第一義)라 하며 제일의란 것은 어디로 좇아 차제(次第)로 득입(得入)합니까. 사왈 제일의란 것은 차제가 있지 않고 또한 출입이 없다. 세제(世諦)엔 일체가 있지만 제일의엔 곧 없다. 제법(諸法)의 무성(無性)의 성()을 설명(說名)해 제일의라 한다. 불언(佛言)하시되 유법(有法)은 이름이 속제(俗諦)며 무성(無性)은 제일의다. 공왈(公曰) 스님의 개시(開示) 같은 것은 실로 불가사의합니다. 공이 또 가로되 제자는 성식(性識)이 미천(微淺)하지만 지난날 공가(公暇)로 인해 기신론장소(起信論章疏) 양권(兩卷)을 찬득(撰得)했는데 가히 불법에 칭합(稱合)함을 얻습니까. 사왈 무릇 장소(章疏)를 지음은 모두 식심(識心)을 사용하여 사량(思量)하고 분별하며 유위유작(有爲有作)하여 기심동념(起心動念)하여 그렇게() 가히 조성(造成)합니다. 논문에 의거하자면 이르되 당지(當知)하라, 일체법은 종본이래(從本以來)로 언설상(言說相)을 여의었고 명자상(名字相)을 여의었고 심연상(心緣)을 여의었다. 필경 평등하여 변이(變異)가 있지 않고 오직 일심만 있는지라 고로 이름이 진여(眞如). 여금에 상공(相公)은 언설상(言說相)에 집착했고 명자상(名字相)에 집착했고 심연상(心緣相)에 집착했습니다. 이미 갖가지 상()에 집착했거늘 어떻게(云何) 이 불법이라 하겠습니까. 공이 일어나 작례(作禮)하고 가로되 제자가 또한 일찍이 여러 공봉대덕(供奉大德)에게 물었는데 모두 제자를 칭찬하며 불가사의라 했습니다. 당지(當知)하나니 피등(彼等)은 단지 인정(人情)을 따랐습니다(). 스님이 이제 이치를 좇아 해설하여 심지법(心地法)에 합하니 실로 이는 진리며 불가사의합니다. 공이 또 묻되 어찌해야(云何) 불생(不生)이며 어찌해야 불멸(不滅)이며 어찌해야 해탈을 얻습니까. 사왈 경계를 보고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면 이름이 불생이며 불생하면 곧 불멸입니다. 이미 생멸이 없어 곧 전진(前塵)에 계박(繫縛)되는 바를 입지 않고 당처(當處)에서 해탈합니다. 불생을 이름해 무념이며 무념이 곧 무멸(無滅)이며 무념이 곧 무박(無縛)이며 무념이 곧 무탈(無脫; 해탈이 없음)입니다. 요점(要點)을 들어 말하자면 식심(識心)이 곧 이념(離念)이며 견성이 곧 해탈이니 식심과 견성을 여읜 밖에 다시 법문이 있어 무상보리(無上苦提)를 증득한다는 것은 옳은 곳이 있지 않습니다. 공왈(公曰) 무엇을 이름해 식심견성(識心見性)이라 합니까. 사왈 일체의 학도인(學道人)이 수념(隨念)하여 유랑(流浪)함은 대개 진심(眞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진심이란 것은 사념이 생해도 또한 생을 좇지() 않고 사념이 멸해도 또한 적(; 적멸)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불래불거(不來不去)하고 부정불란(不定不亂)하고 불취불사(不取不捨)하고 불침불부(不沈不浮)하고 무위무상(無爲無相)이니 활발발(活鱍鱍)하여 평상(平常)의 자재(自在)입니다. 이 마음의 체는 필경 불가득이며 가히 지각(知覺)이 없으며 눈에 닿는 대로(觸目) 모두 여()라서 견성이 아님이 없습니다. 공과 대중이 작례하고 칭찬하고 용약(踊躍)하며 떠났다. 후에 보당사(保唐寺)에 거주하다가 마쳤다.

益州; 사천성 수도. 성도평야 남동에 위치하며 원오극근의 도량 소각사가 있음. 석씨계고략3에 이르되 익주는 서천(西川) 성도부(成都府).

無相; (684-762) 신라국승. 속성은 김이며 세칭이 김화상(金和上)ㆍ동해대사(東海大師). 본래 이 신라의 왕족이었음. 신라의 군남사(群南寺)에서 출가하고 수계한 후 개원 16(728) 입당사(入唐使)를 따라 항해하여 중화에 이르렀고 현종을 알현하고 선정사에 거주했음. 오래지 않아 촉에 들어가 자주(지금의 사천 자중) 덕순사에 이르러 처적(處寂)을 사사하려 했음. 때에 처적이 병으로 인해 인견(引見;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불러 봄)을 얻지 못했음. 그러나 무상이 한 손가락을 태워 공양하자 비로소 3년 동안 유지(留止; 머묾)함을 얻었음. 24년 처적이 사람을 보내 무상을 불러 지선(智詵)으로부터 전수한 바의 달마의(達磨衣)를 부촉했음. 드디어 산중에서 은거하며 두타행을 닦았음. 후에 요청에 응해 선법을 열고 성도부(成都府) 정중사(淨衆寺)에 주()하면서 화도(化導)하기 20년이었음. 천보 말년 현종이 촉에 들어가 일찍이 그를 불러 상견했으며 예석(禮錫; 예물로 주다)이 풍륭(豐隆)했음. 보응 원년(762) 5월 신의(信衣)를 가져다가 무주(無住)에게 부촉하고 19일 좌화(坐化)했음. 나이 79. 스님은 매년 12월 및 정월에 도량을 시설하고 설법했는데 먼저 인성(引聲; 소리를 길게 끌면서 늘임)하여 염불하게 하고는 다음으론 무억(無憶)ㆍ무념(無念)ㆍ막망(莫妄) 3구를 설했음. 후세의 정중종(淨衆宗)은 곧 무상(無相)의 법계(法系)를 가리켰음. 그의 전승(傳承) 및 교지(敎旨)는 종밀(宗密)의 중화전심지선문사자승습도(中華傳心地禪門師資承襲圖)에 보임 [원각경대소초3. 송고승전19. 역대법보기. 전등록4. 선학사상사상(忽滑谷快天; 누카리아 카이텐). 선종사연구(宇井伯壽; 우이하쿠쥬)].

大師; 초과(初果) 이상 내지 제불보살은 가히 중생의 사범이 되는지라 고로 명칭이 대사임. 유가사지론82. 능히 성문제자에게 일체 응작(應作)ㆍ불응작(不應作)의 일을 교계(敎誡)하는지라 고로 명칭이 대사(大師). 또 능히 무량한 중생을 화도(化導)하여 고()를 적멸하게 하는지라 고로 명칭이 대사다. 또 삿되고 더러운 외도가 세간에 출현함을 최멸(摧滅)하는지라 고로 명칭이 대사다.

白崖山; 지금의 하남성 등현(鄧縣) 서북에 있음.

相國; 전국시대엔 일컬어 상방(相邦)이라 했음. 예컨대() 진나라 여불위를 한고조 유방(劉邦)이 즉위하자 휘()를 피해 고쳐 상국(相國)이라 했음. 한조의 상국은 최초에 소하가 담임함으로 말미암았음. 후대에 재상을 담임한 관원에 대해 또한 경칭하여 상국이라 했음 [백도백과].

杜鴻漸; (?-769) 자는 자손(子巽)이며 당대 복주(산동 견성 북) 사람. 금강지삼장의 제자임. 나가서 파촉(巴蜀)을 무마하고 백애산에 사자를 보내어 무주(無住)를 청해 입성(入城)하게 하고 법을 물었음. 후에 두황상과 같은 날에 재상에 제배(除拜)되었음. 대력 4(769) 파관(罷官)되었음. 같은 해 임종에, 명령하여 조복(朝服)에 승가리를 더하고 수염과 머리를 깎고 사문법(沙門法)으로 장사 지내게 했음. 시호는 문헌 [명공법희지2. 불법금탕편8. 송고승전1. 구당서108. 신당서126].

坤維; 서남방을 가리킴.

節度使; 당대에 설립을 개시한 지방 군정장관(軍政長官). 일종의, 변강(邊疆; 변경)에 대해 유효한 방비를 진행하려고 설립한 관위(官位). 속관(屬官)에 행군사마ㆍ참모장서기 등이 있었음. 다만 이는 당대 안사지란(安史之亂)에 도리어 이 관위를 가져다 밀어버려서 말로에 이르렀음 [백도백과].

崔寧; 위주(衛州; 지금의 衛輝市) 사람이며 본명은 간(). 이는 당대의 명장이며 종횡지술(縱橫之術)을 좋아했음 [백도백과].

戎帥; 1. 군대의 통수(統帥). 2. 융족 군대의 주장(主將)을 가리킴. 여기에선 1을 가리킴.

三學; 계학(戒學; 戒規持行하여 비행을 막고 악을 그침)ㆍ정학(定學; 靜慮集思하고 佛理를 관조함)ㆍ혜학(慧學; 의혹을 단제하고 해탈에 달도함)을 가리킴. 이는 불교의 전부의 내용임.

碩德; 불법에 정통한 고승.

賀蘭; 하란산(賀蘭山)이니 하북성 한단시 자현성 서북으로 30리 떨어진 지금의 임봉촌 남쪽임.

函丈; 고대 강학자(講學者)와 청강자의 좌석의 사이가 서로 1() 떨어졌는데 후에 써서 강석(講席)이라 일컬었음. 인신(引申; 轉義)하여 전배(前輩)의 학자 혹 사장(師長)에 대한 경칭이 되었음 [백도백과].

棲遲; 1. 유완(遊玩; 유람하면서 구경함)하면서 휴게(休憩). 2. 엄류(淹留; 은퇴). 은둔.一遊玩 二淹留 隱遁

戒定慧; 계율 선정과 지혜를 가리킴. 번역명의집4를 안험컨대 방비지악(防非止惡; 비리를 막고 악업을 그침)이 계가 되고 식려정연(息慮靜緣; 사려를 쉬고 사연을 고요히 함)이 정이 되고 파악증진(破惡證眞; 악을 깨뜨리고 진을 증험함)이 혜가 됨. 3법을 배우면 가히 위없는 열반에 도달하는지라 고로 명칭이 3학임.

法句經; 2. 39752(여금에 합계 758송이 있음). 인도 법구(法救)가 찬집(撰集)했고 삼국 오()의 유기난(維祇難) 등이 번역했음. 제경 중 불타의 자설게(自說偈)를 수집하여 편집해 이루었음. 대정장 제4책에 수록되었음. 오 대제 황무 3(224) 유기난이 265백 송을 싸 가지고 왔는데 후에 또 13품을 더하여 합계가 39752송이 되었음. 파리어(巴利語)의 원본이 현존함.

聲塵; 6진의 하나. 이르자면 사죽(絲竹; 管絃)과 환패(環珮; 고리 모양의 패옥)의 소리 및 남녀의 가영(歌詠) 소리 등이니 이 이름이 성진임.

僚屬; 구시(舊時)에 하속(下屬)의 관리를 일컬었음.

世諦; 진제(眞諦)를 상대한 일컬음임. ()란 것은 세간ㆍ세속이며 제()란 것은 사실이며 또 도리임. 세간의 사실, 또 세속인이 아는 바의 도리를 세제라고 이르며 또 가로되 속제ㆍ세속제ㆍ부속제(覆俗諦) 등임. 열반경14. 선남자여, 세제(世諦)란 것은 곧 제일의제니라. 세존이시여, 만약 그러하다면 곧 2()가 없습니까. 불타가 말씀하시되 선남자여, 좋은 방편이 있어 중생을 수순(隨順)하므로 2제의 있음을 설한다.

俗諦; 세속을 수순(隨順)하여 생멸 등 유()의 체리(諦理)를 설함. 곧 세간의 사실과 속지(俗知)의 이치를 가리킴. 또 세속제(世俗諦; 慣音이 제)ㆍ세제(世諦)ㆍ유제(有諦)로 지음. 진제(眞諦)의 대칭. 벽암록 제1. 진제(眞諦)는 비유(非有)를 밝히고 속제(俗諦)는 비무(非無)를 밝힌다.

性識; 천분(天分; 天資). 오성(悟性). 불교에선 중생의 근성을 일컬어 심식이라 함.

公暇; 공무(公務)가 한가(閑暇)할 즈음. 휴가(休假)를 가리킴.

心緣; 말하자면 마음을 일으켜 외경(外境)을 반연(攀緣). 마음 밖의 사물을 여지(慮知)함의 뜻.

 

景德傳燈錄卷第四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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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40만 원. 할인. 잔본 81질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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