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陽張濆行者問 伏承和尙說無情說法 某甲未體其事 乞和尙垂示 師曰 汝若問無情說法 解他無情方得聞我說法 汝但聞取無情說法去 濆曰 只約如今有情方便之中 如何是無情因緣 師曰 如今一切動用之中 但凡聖兩流都無少分起滅 便是出識不屬有無 熾然見覺 只聞無其情識繫執 所以六祖云 六根對境分別非識 有僧到參禮 師問 蘊何事業 曰講金剛經 師曰 最初兩字是什麽 曰如是 師曰 是什麽 無對 有人問 如何是解脫 師曰 諸法不相到當處解脫 曰恁麽卽斷去也 師曰 向汝道諸法不相到斷什麽 師見僧來 以手作圓相 相中書日字 僧無對 師問本淨禪師 汝已後見奇特言語如何 淨曰 無一念心愛 師曰 是汝屋裏事
●無情說法; 洞山良价語錄 次參潙山 問云 頃聞南陽忠國師有無情說法話 某甲未究其微 潙山云 闍黎莫記得麽 師云 記得 潙山云 汝試擧一遍看 師遂擧 僧問 如何是古佛心 國師云 牆壁瓦礫是 僧云 牆壁瓦礫 豈不是無情 國師云 是 僧云 還解說法否 國師云 常說熾然說無間歇 僧云 某甲爲甚麽不聞 國師云 汝自不聞 不可妨他聞者也 僧云 未審甚麽人得聞 國師云 諸聖得聞 僧云 和尙還聞否 國師云 我不聞 僧云 和尙旣不聞 爭知無情解說法 國師云 賴我不聞 我若聞 卽齊於諸聖 汝卽不聞我說法也 僧云 恁麽則衆生無分去也 國師云 我爲衆生說 不爲諸聖說 僧云 衆生聞後如何 國師云 卽非衆生 僧云 無情說法 據何典敎 國師云 灼然言不該典 非君于之所談 汝豈不見 華嚴經云 刹說衆生說三世一切說
●垂示; 垂說示衆 又作垂語 垂說 示衆 於禪林 師家對弟子大衆開示宗要 稱爲垂示 又於說示法要時 先以簡明語句標示所說之要諦 亦稱垂示 如碧巖錄從容錄等 均先垂示 次揭本則 後再評唱 又於垂示之後 師家接受學人之請問 爲彼等解疑釋難 稱爲索語 索話 或稱鉤語 鉤話 [六祖壇經定慧品 臨濟語錄 禪林寶訓三 象器箋垂說類]
●情識; 俗情妄識
남양(南陽) 장분(張濆) 행자(行者)가 묻되 복승(伏承)하건대 화상이 무정설법(無情說法)을 설하셨거니와 모갑이 그 일을 체득하지 못하오니 화상의 수시(垂示)를 구걸합니다. 사왈(師曰) 네가 무정설법을 묻는다면 저 무정을 알아야(解) 바야흐로 나의 설법을 득문(得聞)하나니 너는 단지 무정설법을 문취(聞取)하러 가거라. 장분이 가로되 다만 여금의 유정의 방편 가운데를 대약(大約)한다면 무엇이 이 무정의 인연입니까. 사왈 여금의 일체의 동용(動用)하는 가운데 단지 범성(凡聖) 양류(兩流)에 모두 소분(少分)의 기멸(起滅)이 없어야 바로 이 식(識)을 벗어나 유무에 속하지 않나니 치연(熾然)히 견각(見覺)하면서 다만 그 정식(情識)의 계집(繫執)이 없음을 듣는다. 소이로 6조가 이르되 6근(根)이 경계를 상대해 분별해도 식(識)이 아니라 했다. 어떤 중이 이르러 참례했다. 사문(師問) 무슨 사업(事業)을 쌓았는가(蘊). 가로되 금강경을 강의합니다. 사왈 최초의 두 자는 이 무엇인가. 가로되 여시(如是)입니다. 이 뭣고(是什麽). 대답이 없었다. 어떤 사람이 묻되 무엇이 이 해탈입니까. 사왈 제법(諸法)이 서로 이르지 않는 당처(當處)에서 해탈한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단절하여 갑니다. 사왈 너를 향해 말하되 제법이 서로 이르지 않는다 했거늘 무엇을 단절하느냐. 스님이 중이 옴을 보고 손으로써 원상(圓相)을 짓고 상중(相中)에 일자(日字)를 썼다. 중이 대답이 없었다. 스님이 본정선사(本淨禪師)에게 묻되 네가 이후에 기특한 언어를 본다면 어찌 하겠는가. 본정이 가로되 일념의 마음도 사랑함이 없습니다. 사왈 이는 너의 옥리사(屋裏事)다.
●無情說法; 동산양개어록. 다음에 위산을 참알해 물어 이르되 요사이 남양충국사(南陽忠國師)가 무정설법(無情說法)의 얘기가 있다 함을 들었습니다만 모갑이 그 미묘함을 연구하지 못했습니다. 위산이 이르되 사리(闍黎)가 기억하지 못하는가. 스님이 이르되 기억합니다. 위산이 이르되 네가 시험삼아 한 차례 들어 보아라. 스님이 드디어 들었다. 중이 묻되 무엇이 이 고불의 마음입니까. 국사가 이르되 장벽과 와력(瓦礫)이 이것이다. 중이 이르되 장벽과 와력은 어찌 이 무정이 아니겠습니까. 국사가 이르되 그렇다. 중이 이르되 도리어 설법할 줄 압니까. 국사가 이르되 늘 설하고 치연히 설해 중간에 쉼이 없다. 중이 이르되 모갑은 무엇 때문에 듣지 못합니까. 국사가 이르되 네가 스스로 듣지 못한다 하여 타인의 들음을 방애(妨礙)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중이 이르되 미심하오니 어떤 사람이 득문(得聞)합니까. 국사가 이르되 제성(諸聖)이 득문(得聞)한다. 중이 이르되 화상도 도리어 듣습니까. 국사가 이르되 나는 듣지 못한다. 중이 이르되 화상이 이미 듣지 못하신다면 어찌 무정이 설법할 줄 앎을 아십니까. 국사가 이르되 내가 듣지 못함이 다행이다. 내가 만약 듣는다면 곧 제성과 제등하므로 너는 곧 나의 설법을 듣지 못할 것이다. 중이 이르되 이러하시다면 곧 중생은 분한이 없을 것입니다. 국사가 이르되 나는 중생을 위해 설하고 제성을 위해 설하지 않는다. 중이 이르되 중생이 들은 후엔 어떻습니까. 국사가 이르되 곧 중생이 아니다. 중이 이르되 무정설법은 어떤 전교(典敎)에 의거함입니까. 국사가 이르되 작연(灼然)하나니 말이 전거(典據)를 갖추지 못하면 군자가 얘기할 바가 아니다. 네가 어찌 보지 못했는가, 화엄경에 이르되 찰토가 설하고 중생이 설하고 삼세와 일체가 설한다.
●垂示; 수설시중(垂說示衆)이니 또 수어(垂語)ㆍ수설(垂說)ㆍ시중(示衆)으로 지음. 선림에서 사가가 제자나 대중을 상대로 종요를 개시함을 일컬어 수시라 함. 또 법요를 설시(說示)할 때 먼저 간명한 어구로 설할 바의 요체(要諦)를 표시함도 또한 일컬어 수시임. 예컨대(如) 벽암록ㆍ종용록 등에서 균일하게 먼저 수시(垂示)하고 다음에 본칙을 게시하고 후에 다시 평창(評唱)했음. 또 수시한 후에 사가가 학인의 청문(請問)을 접수하고 그들 등을 위해 의혹을 해석하고 난제를 풀이함을 일컬어 색어(索語)ㆍ색화(索話), 혹은 일컬어 구어(鉤語)ㆍ구화(鉤話)라 함 [육조단경정혜품. 임제어록. 선림보훈3. 상기전수설류].
●情識; 속정(俗情)과 망식(妄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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