洛京佛光如滿禪師〈曾住五臺山金閣寺〉 唐順宗問 佛從何方來 滅向何方去 旣言常住世 佛今在何處 師答曰 佛從無爲來 滅向無爲去 法身等虛空 常在無心處 有念歸無念 有住歸無住 來爲衆生來 去爲衆生去 淸淨眞如海 湛然體常住 智者善思惟 更勿生疑慮 帝又問 佛向王宮生 滅向雙林滅 住世四十九 又言無法說 山河及大海 天地及日月 時至皆歸盡 誰言不生滅 疑情猶若斯 智者善分別 師答曰 佛體本無爲 迷情妄分別 法身等虛空 未曾有生滅 有緣佛出世 無緣佛入滅 處處化衆生 猶如水中月 非常亦非斷 非生亦非滅 生亦未曾生 滅亦未曾滅 了見無心處 自然無法說 帝聞大悅益重禪宗
●無爲; 無造作之意 有爲之對稱 卽非由因緣所造作 離生滅變化而絶對常住之法 又作無爲法 原是涅槃之異名 後世更於涅槃以外 立種種無爲 於是産生三無爲六無爲九無爲等諸說 ▲道德經觀妙章第一 是以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道德經無爲章第三十七 道常無爲而無不爲 ▲道德經第四十八日損章 爲學日益 爲道日損 損之又損 以至於無爲 無爲而無不爲矣 ▲易繫辭上 易無思也 無爲也 寂然不動 感而遂通天下之故 非天下之至神 其孰能與於此 ▲祖庭事苑六 無爲 華嚴疏主云 爲 作也 作卽生滅 寂寞沖虛 湛然常住無彼造作 故名無爲 又瑜伽云 無生滅不繫屬因緣 是名無爲 又智論云 無得故名曰無爲 又淨名云 不墮數故(上文竝出華嚴經疏二十四)
●雙林; 又云雙林樹 雙樹 祖庭事苑三 鶴樹 涅槃經 爾時世尊 娑羅林下 寢臥寶牀 於其中夜 入第四禪 寂然無聲 於是時頃 便般涅盤 入涅槃已 其娑羅林東西二雙 合爲一樹 南北二雙合爲一樹 垂覆寶牀 蓋覆如來 其樹卽時慘然變白 猶如白鶴 枝葉花果皮幹 悉皆爆烈墮落 漸漸枯悴摧朽無餘 ▲遺敎經論住法記 娑羅此翻堅固 以冬夏不改故 上枝相接 下根相連 一榮二枯 故云雙樹
낙경(洛京; 洛陽) 불광여만(佛光如滿) 선사〈일찍이 五臺山 金閣寺에 住했다〉. 당 순종(順宗)이 묻되 부처는 어느 방면으로 좇아왔으며/ 멸(滅)하여 어느 방면을 향해 갔는가/ 이미 항상 주세(住世)한다고 말했으니/ 부처가 지금 어느 곳에 있습니까. 스님이 답왈(答曰) 부처는 무위(無爲)로 좇아왔으며/ 멸해 무위를 향해 갔나니/ 법신이 허공과 제등(齊等)하여/ 항상 무심(無心)한 곳에 있습니다/ 유념(有念)은 무념(無念)으로 돌아가고/ 유주(有住)는 무주(無住)로 돌아가나니/ 옴은 중생을 위해 오고/ 감은 중생을 위해 갑니다/ 청정한 진여해(眞如海)는/ 담연(湛然)한 체(體)가 상주(常住)하나니/ 지자(智者)는 잘 사유(思惟)하여/ 다시 의려(疑慮)를 내지 마십시오. 황제가 또 묻되 부처가 왕궁을 향해 탄생했다가/ 멸하여 쌍림(雙林)을 향해 멸했나니/ 주세(住世)한 지 사십구며/ 또 말하되 법을 설함이 없다 했습니다/ 산하 및 대해와/ 천지 및 일월도/ 때가 이르면 모두 없어짐으로 돌아가거늘/ 누가 생멸이 아니라고 말하는가/ 의정(疑情)이 오히려 이와 같으니/ 지자(智者)가 잘 분별하십시오. 스님이 답왈 불체(佛體)는 본래 무위(無爲)거늘/ 미정(迷情; 미혹한 마음)으로 허망하게 분별하나니/ 법신은 허공과 제등(齊等)하여/ 일찍이 생멸이 있지 않습니다/ 유연(有緣)이면 부처가 출세하고/ 무연(無緣)이면 부처가 입멸하나니/ 처처에서 중생을 교화함이/ 마치 수중(水中)의 달과 같습니다/ 상(常)도 아니고 또한 단(斷)도 아니며/ 생도 아니고 또한 멸도 아니니/ 생해도 또한 일찍이 생이 아니며/ 멸해도 또한 일찍이 멸이 아닙니다/ 무심한 곳을 또렷이 보면/ 자연히 법을 설함이 없습니다. 황제가 듣고 대열(大悅)했으며 더욱 선종을 중시했다.
●無爲; 조작이 없음의 뜻이니 유위의 대칭임. 곧 인연으로 말미암아 조작된 바가 아닌, 생멸변화(生滅變化)를 여읜 절대상주(絶對常住)의 법임. 또 무위법으로 지으며 원래 이것은 열반의 다른 이름임. 후세에 다시 열반의 밖에 갖가지 무위를 세워 이에 3무위ㆍ6무위ㆍ9무위 등의 여러 설을 산생(産生)했음. ▲도덕경 관묘장 제1. 이런 가닭으로 성인은 무위지사(無爲之事)에 처하면서 불언(不言)의 교를 행한다. ▲도덕경 무위장 제37. 도는 늘 무위이면서 하지 않음이 없다. ▲도덕경 제48 일손장. 학(學)을 하면 날로 더하고(益) 도(道)를 하면 날로 더나니(損) 덜고 또 덜어 무위에 이르면 무위이면서 하지 못함이 없다. ▲역(易) 계사상(繫辭上). 역(易)은 무사(無思)며 무위(無爲)니 적연(寂然)하여 부동(不動)하면서 감응하여 드디어 천하의 고(故. 事. 萬事)에 통한다. 천하의 지신(至神)이 아니라면 그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하겠는가. ▲조정사원6. 무위(無爲) 화엄소주(華嚴疏主. 澄觀)가 이르되 위(爲)는 작(作)이며 작(作)은 곧 생멸이다. 적막(寂寞)하고 충허(沖虛. 沖은 빌 충)하여 담연(湛然)히 상주(常住)하며 저 조작(造作)이 없으므로 고로 이름이 무위다. 또 유가(瑜伽)에 이르되 생멸이 없고 인연에 계속(繫屬)하지 않나니 이 이름이 무위다. 또 지론(智論)에 이르되 얻음이 없는 고로 이름해 가로되 무위다. 또 정명(淨名. 維摩詰經)에 이르되 수(數)에 떨어지지 않는 연고라 하였다(위의 글은 모두 華嚴經疏24에 나옴).
●雙林; 또 이르되 쌍림수(雙林樹), 쌍수(雙樹). 조정사원3. 학수(鶴樹) 열반경 이때 세존이 사라림(娑羅林; 堅固林으로 번역) 아래에서 보상(寶牀)에 잠들어 누우셨다. 그 중야(中夜)에 제4선(禪)에 들어 적연(寂然)해 소리가 없더니 이때 쯤에 곧 반열반(般涅盤)하셨다. 열반에 드신 다음 그 사라림의 동서 2쌍이 합쳐 한 나무가 되었고 남북 2쌍이 합쳐 한 나무가 되어 드리워져 보상을 덮더니 여래를 덮었다. 그 나무가 즉시 참연(慘然; 慘은 슬플 참. 참혹할 참)하더니 희게 변했는데 마치 백학 같았으며 지엽(枝葉)ㆍ화과(花果)ㆍ피간(皮幹; 껍질과 줄기)이 다 모두 폭렬(爆烈)해 타락하고 점점 고췌(枯悴; 悴는 파리할 췌)하더니 꺾이고 썩어 나머지가 없었다. ▲유교경론주법기. 사라(娑羅)는 여기에서 번역하면 견고니 겨울이나 여름에도 바뀌지 않는 연고다. 위의 가지가 서로 이어졌고 아래의 뿌리도 서로 연결되어 한 번 번영하고 두 번 마르므로 고로 이르되 쌍수(雙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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