京兆府章敬寺懷惲禪師 泉州同安人也 姓謝氏 受大寂心印 初住定州柏巖 次止中條山 唐元和初憲宗詔居上寺玄學者奔湊 師上堂示徒曰 至理忘言時人不悉 彊習他事以爲功能 不知自性元非塵境 是箇微妙大解脫門 所有鑒覺不染不礙 如是光明未曾休廢 曩劫至今固無變易 猶如日輪遠近斯照 雖及衆色不與一切和合 靈燭妙明非假鍛鍊 爲不了故取於物象 但如揑目妄起空華 徒自疲勞枉經劫數 若能返照無第二人 擧措施爲不虧實相 僧問心法雙亡指歸何所 師曰 郢人無污徒勞運斤 曰請師不返之言 師曰 卽無返句〈後人擧之於洞山 洞山云 道卽甚易 罕遇作家〉 百丈和尙令一僧來伺候 師上堂次 展坐具禮拜了 起來拈師一隻靸鞋 以衫袖拂却塵了 倒覆向下 師曰 老僧罪過
●京兆府; 京兆 所轄範圍相當於陝西西安及其附近所屬地區 府是唐朝行政區劃 比縣高一級 在道以下 與州同級 京兆府 唐朝開元元年(713)設置 北宋時的長安城 人口減少 仍爲全國主要的商業都市之一 宋金兩代仍在城中置京兆府統之 轄長安 萬年(樊川) 咸寧等十四縣(金十二縣) [百度百科]
●泉州; 今福建省泉州 景雲(710-711)初置泉州
●定州; 今河北省定縣
●玄學; 玄妙之學問 佛學之通名
●鑒覺; 猶鑑覺 鑑別覺悟
●指歸; 主旨 意向
●郢人; 在楚國京城郢都之人 出自莊子徐無鬼 後用郢人喩知己 ▲肇論疏中 來問婉切 難爲郢人者 婉曲切要難酬答也 郢人者 莊子雜篇徐無鬼章云 莊子送葬 至惠子之墓 顧謂從者曰 郢人以堊慢其鼻端 若蠅翼 使匠石斵之 匠石運斧成風而斵之 盡堊而鼻不傷 郢人立不失容 宋元君聞之 召匠石曰 甞試爲寡人爲之 匠石云 臣嘗能斵之 然臣質已死久矣 自夫子之死也 吾無以爲質矣 吾無與言矣 郭象注云 非夫不動之質忘言之對 則雖有至言妙斵 而無所取之 今謂劉公之問 事同匠石 肇公之答 事同郢人 問能而答難也
●坐具; 比丘六物之一 坐臥時敷於地上或臥具上之長方形布 禮拜時先敷坐具 就其上作之 是甚爲不法 南山義淨皆痛斥之 釋門歸敬儀下曰 坐具之目 本是坐時之具 所以禮拜之中 無文敷者也 ▲釋氏要覽一 梵云尼師壇 此云隨坐衣 根本毘奈耶云 尼師但那 唐言坐具 淨法師註云 文言坐具 此乃敷具 坐臥皆得 佛制者 本爲儭替臥具 恐有所損 不擬餘用也 五分律云 爲護身護衣護僧床褥故著坐具
경조부(京兆府) 장경사(章敬寺) 회운선사(懷惲禪師). 천주(泉州) 동안(同安) 사람이며 성이 사씨(謝氏)다. 대적(大寂)의 심인(心印)을 받고 처음 정주(定州) 백암(柏巖)에 거주했고 다음으론 중조산(中條山)에 머물렀다(止). 당 원화(806-820) 초 헌종(憲宗)이 불러(詔) 상사(上寺)에 거주했고 현학자(玄學者)가 분주(奔湊; 集聚. 會合)했다. 스님이 상당(上堂)하여 도중(徒衆)에게 보여 가로되 지리(至理)는 망언(忘言)이지만 시인(時人)이 알지(悉) 못해 억지로(彊) 타사(他事)를 학습하며 공능(功能)으로 삼나니 자성(自性)은 원래 진경(塵境)이 아님을 알지 못하다. 이것(是箇)은 미묘한 대해탈문(大解脫門)이니 소유(所有)한 감각(鑒覺)이 불염(不染)하고 불애(不礙)한다. 이와 같은 광명이 일찍이 휴폐(休廢)하지 않아 낭겁(曩劫; 지난 겁)에서 지금(至今)토록 확고히 변역(變易)이 없으며 마치 일륜(日輪)이 원근을 이에 비춤과 같아서 비록 뭇 색에 미치지만 일체와 화합하지 않는다. 영촉(靈燭; 신령한 등불)이 묘명(妙明)하여 단련(鍛鍊)을 빌리지 않거늘 깨치지(了) 못한 연고로 물상(物象)을 취하나니 단지 눈을 짓눌러(揑目) 허망하게 공화(空華)를 일으킴과 같아서 도연(徒然)이 스스로 피로하고 헛되이(枉) 겁수(劫數)를 경과한다. 만약 능히 반조(返照)하면 제이인(第二人)이 없어 거조(擧措)하는 시위(施爲)가 실상(實相)을 저버리지(虧) 않는다. 승문(僧問) 심법(心法)을 쌍망(雙亡)하면 지귀(指歸)가 어느 곳(何所)입니까. 사왈 영인(郢人)은 더러워짐(污)이 없거늘 도로(徒勞) 운근(運斤)하는구나. 가로되 스님의 불반(不返; 돌이키지 아니하다)의 말씀을 청합니다. 사왈 반구(返句)가 없다〈後人이 洞山에게 이를 들자 동산이 이르되 말하기는 곧 심히 쉽지만 작가를 만남이 드물다〉. 백장화상(百丈和尙)이 1승(僧)으로 하여금 와서 사후(伺候; 엿보다)하게 했다. 스님이 상당(上堂)한 차에 좌구(坐具)를 전개(展開)하여 예배하고 나서 일어나 스님의 1척(隻) 삽혜(靸鞋; 신)를 집어 들어 옷소매(衫袖)로써 티끌을 털어버리고(拂却) 나서 거꾸로 엎어(倒覆) 아래로 향했다. 사왈 노승의 죄과(罪過)다.
●京兆府;; 경조니 관할하는 바의 범위는 섬서의 서안 및 그 부근의 소속지구에 상당함. 부(府)는 이 당조(唐朝)의 행정구획이니 현(縣)에 비하면 1급이 높고 도(道) 이하에 있으며 주(州)와 동급임. 경조부는 당조 개원 원년(713)에 설치했음. 북송 때 장안성의 인구가 감소하였으나 그대로 전국에서 주요한 도시의 하나가 되었음. 송ㆍ금 양대엔 그대로 성중에 경조부를 설치해 두고 다스렸는데 장안ㆍ만년(번천)ㆍ함녕 등 14현(금은 12현)을 관할했음 [백도백과].
●泉州; 지금의 복건성 천주니 경운(710-711) 초 천주를 설치했음.
●定州; 지금의 하북성 정현(定縣).
●玄學; 현묘한 학문. 불학의 통명(通名; 일반에 통하는 이름).
●鑒覺; 감각(鑑覺)과 같음. 감별(鑑別)과 각오(覺悟).
●指歸; 주지(主旨). 의향(意向).
●郢人; 초국(楚國) 경성(京城) 영도(郢都)에 있는 사람이니 장자 서무귀(徐無鬼)로부터 나오며 후에 영인을 써서 지기(知己)에 비유했음. ▲조론소중. 내문(來問)이 완절(婉切)하나 영인(郢人)이 되기 어렵다는 것은 완곡절요(婉曲切要)하나 수답(酬答; 응답)하기 어려움이다. 영인이란 것은 장자 잡편 서무귀장(徐無鬼章)에 이르되 장자가 송장(送葬)하여 혜자(惠子)의 묘에 이르자 돌아보며 종자(從者)에게 일러 가로되 영인(郢人)이 그의 코 끝에 백토를 파리의 날개만큼 얇게 바르고 장석(匠石)으로 하여금 이것을 깎아 내게 했다. 장석이 도끼를 움직여 바람을 이루면서 그것을 깎았고 백토는 없어졌지만 코는 상하지 않았으며 영인은 선 채로 모습을 잃지 않았다. 송원군(宋元君)이 이를 듣고 장석을 불러 가로되 시험삼아(甞은 試임) 과인을 위해 그렇게 하라. 장석이 가로되 신이 곧 일찍이 능히 이를 깎았지만 비록 그러하나 신의 바탕(영인을 가리킴)이 죽은 지 오래입니다. 부자(夫子)의 죽음으로부터 내가 바탕으로 삼을 게 없었고 더불어 말할 이가 없었습니다. 곽상(郭象)의 주(注)에 이르되 무릇 부동지질(不動之質)이며 망언지대(忘言之對)가 아니면 곧 비록 지언묘착(至言妙斵)이 있더라도 취할 바가 없음이다. 여금에 이르자면 유공(劉公)의 물음은 사건이 장석(匠石)과 같고 조공(肇公)의 답은 사건이 영인(郢人)과 같아서 물음은 능하나 답하기는 어려움이다.
●坐具; 비구 6물의 하나. 좌와(坐臥) 시 지상이나 혹 와구(臥具) 위에 펴는 장방형의 포(布). 예배할 때 먼저 좌구를 펴고 그 위에 나아가 이를 지음은 이는 심히 불법(不法)이 됨. 남산과 의정이 모두 통렬히 그것을 배척했음. 석문귀경의하(釋門歸敬儀下)에 가로되 좌구의 명목은 본시 앉을 때의 도구다. 소이로 예배하는 중에 편다(敷)는 글이 없다. ▲석씨요람1. 범어로 이르되 니사단(尼師壇)은 여기에선 이르되 수좌의(隨坐衣)다. 근본비나야(根本毘奈耶)에 이르되 니사단나(尼師但那)는 당나라 말로 좌구다. 의정법사의 주(註)에 이르되 문(文)에 좌구라고 말한 것은 이는 곧 부구(敷具; 敷는 펼 부)니 앉거나 눕는데 다 합당하다. 불타가 제정한 것은 본래 깔개(儭; 襯과 같음. 藉임)가 되었는데 와구(臥具)로 대체했음은 손상하는 바가 있을까 염려했음이니 여타의 용도로 향하지(擬는 向임) 못하게 했음이다. 오분율에 이르되 몸을 보호하고 옷을 보호하고 승상(僧床)의 요를 보호하기 위한 연고로 좌구를 두었다.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tistory.com)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40만 원. 할인. 잔본 81질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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