或問 祖師傳心地法門 爲是眞如心 妄想心 非眞非妄心 爲是三乘敎外別立心 師曰 汝見目前虛空麽 曰信知常在目前人自不見 師曰 汝莫認影像 曰和尙作麽生 師以手撥空三下 曰作麽生卽是 師曰 汝向後會去在 有一僧來繞師三匝振錫而立 師曰 是是〈長慶代云 和尙佛法身心何在〉 其僧又到南泉 亦繞南泉三匝振錫而立 南泉云 不是不是 此是風力所轉始終成壞 僧云 章敬道是 和尙爲什麽道不是 南泉云 章敬卽是是汝不是〈長慶代云 和尙是什麽心行 雲居錫云 章敬未必道是 南泉未必道不是 又云 遮僧當初但持錫出去恰好〉 師有小師行脚迴 師問曰 汝離此間多少年耶 曰離和尙左右將及八年 師曰 辦得箇什麽 小師於地畫一圓相 師曰 只遮箇更別有 小師乃畫破圓相後禮拜 僧問 四大五蘊身中 阿那箇是本來佛性 師乃呼僧名 僧應諾 師良久曰 汝無佛性 唐元和十三年十二月二十二日示滅 建塔于㶚水 勅諡大覺禪師大寶相之塔
●心行; 一心爲念念遷流者 故曰心行 又善惡之所念 謂之心行 二心中念念不忘爲心行 禪宗明心見性 不使心有昏昧也 此指一
혹문(或問; 누가 묻다) 조사가 심지법문(心地法門)을 전했거니와 이 진여심(眞如心)이 됩니까, 망상심(妄想心)입니까, 비진비망심(非眞非妄心)입니까. 이 삼승교(三乘敎) 밖에 따로 세운 마음이 됩니까. 사왈(師曰) 네가 목전(目前)의 허공을 보느냐. 가로되 목전에 상재(常在)함을 믿고 압니다만 사람들이 스스로 보지 못합니다. 사왈 너는 영상(影像)을 인정하지 말아라. 가로되 화상은 어떻습니까. 스님이 손으로써 허공을 세 번(三下; 下는 量詞) 제거했다(撥). 가로되 어찌해야 곧 옳습니까(是). 사왈 네가 향후에 이회(理會)하여 가리라. 어떤 1승(僧)이 와서 스님을 세 바퀴(匝) 돌고 석장(錫杖)을 떨치고 섰다. 사왈 옳다(是), 옳다〈長慶이 代云 화상의 佛法의 身心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 중이 또 남천(南泉)에 이르러 또한 남천을 세 바퀴 돌고 석장을 떨치고 서자 남천이 이르되 옳지 않다(不是), 옳지 않다. 이것은 이 풍력(風力)에 굴리는 바라 시종 무너짐을 이룬다. 승운(僧云) 장경(章敬)은 옳다고 말했거늘 화상은 무엇 때문에 옳지 않다고 말합니까. 남천이 이르되 장경은 곧 옳지만 이 너는 옳지 않다〈長慶이 代云 화상은 이 무슨 心行입니까. 雲居錫이 이르되 章敬은 반드시 옳다고 말하지 않았고 南泉은 반드시 옳지 않다고 말하지 않았다. 又云 이 중이 當初에 단지 석장을 가지고 나갔어야 恰好다〉. 스님에게 소사(小師)가 있어 행각하고 돌아왔다. 스님이 물어 가로되 네가 차간(此間)을 떠난 지 얼마의 해던가. 가로되 화상의 좌우를 떠난 지 거의(將) 8년에 이릅니다. 사왈 저(箇) 무엇을 판득(辦得)했느냐. 소사가 땅에다 1원상(圓相)을 그렸다. 사왈 다만 이것(遮箇)이냐, 다시 딴 게 있느냐. 소사가 이에 원상을 그어 깨뜨린(畫破) 후에 예배했다. 승문(僧問) 4대5온(四大五蘊)의 신중(身中)에 어느 것(阿那箇)이 이 본래의 불성입니까. 스님이 곧 중의 이름을 불렀다. 중이 응낙했다. 스님이 양구(良久)하고 가로되 너는 불성이 없다. 당 원화(元和) 13년(818) 12월 22일 시멸(示滅)했다. 패수(㶚水)에 건탑(建塔)했고 칙시가 대각선사대보상지탑(大覺禪師大寶相之塔)이다.
●心行; 1. 심은 염념(念念)에 천류(遷流)하는 것이 되는지라 고로 가로되 심행임. 또 선악의 소념(所念)을 일러 심행이라 함. 2. 심중의 염념에 잊지 않음을 심행이라 함. 선종은 명심견성하여 마음에 혼매(昏昧)가 있지 않게 함. 여기에선 1을 가리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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