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록

전등록 권8 무업선사(無業禪師)

태화당 2023. 3. 9. 08:41

景德傳燈錄卷第八

 

懷讓禪師第二世下五十六人馬祖法嗣

汾州無業禪師

澧州大同廣澄禪師

池州南泉普願禪師

五臺鄧隱峯禪師

溫州佛嶴和尙

烏臼和尙

潭州石霜山大善和尙

石臼和尙

本谿和尙

石林和尙

洪州西山亮坐主

黑眼和尙

米嶺和尙

齊峯和尙

大陽和尙

紅螺山和尙

泉州龜洋無了禪師

利山和尙

韶州乳源和尙

松山和尙

則川和尙

南嶽西園曇藏禪師

百靈和尙

鎭州金牛和尙

洞安和尙

忻州打地和尙

潭州秀谿和尙

磁州馬頭峯神藏禪師

潭州華林善覺禪師

汀州水塘和尙

古寺和尙

江西椑樹和尙

京兆草堂和尙

袁州陽岐山甄叔禪師

濛谿和尙

洛京黑㵎和尙

京兆興平和尙

逍遙和尙

福谿和尙

洪州水老和尙

浮杯和尙

潭州龍山和尙

襄州居士龐蘊已上四十三人見錄

天目山明覺禪師

王屋山行明禪師

京兆智藏禪師

大陽山希頂禪師

蘇州崑山定覺禪師

隨州洪山大師

連州元堤禪師

泉州無了禪師

泉州慧忠禪師

安豐山懷空禪師

羅浮山道行禪師

廬山法藏禪師

呂后山寧賁禪師已上一十三人無機緣語句不錄

 

懷讓禪師第二世法嗣

汾州無業禪師者 商州上洛人也 姓杜氏 初母李氏聞空中言寄居得否 乃覺有娠 誕生之夕神光滿室 甫及丱歲行必直視坐卽跏趺 九歲依開元寺志本禪師受大乘經 五行俱下諷誦無遺 十二落髮 二十受具戒於襄州幽律師 習四分律疏 才終便能敷演 每爲衆僧講涅槃大部 冬夏無廢 後聞馬大師禪門鼎盛 特往瞻禮 馬祖覩其狀貌瓌偉語音如鐘 乃曰 巍巍佛堂其中無佛 師禮跪而問曰 三乘文學麁窮其旨 常聞禪門卽心是佛 實未能了 馬祖曰 只未了底心卽是 更無別物 師又問 如何是祖師西來密傳心印 祖曰 大德正鬧在 且去別時來 師才出 祖召曰 大德 師迴首 祖云 是什麽 師便領悟禮拜 祖云 遮鈍漢禮拜作麽雲居錫拈云 什麽處是汾州正閙自得旨尋詣曹谿禮祖塔及廬嶽天台遍尋聖迹 自洛抵雍憩西明寺 僧衆擧請充兩街大德 師曰 非吾本志也 後至上黨 節度使李抱眞重師名行旦夕瞻奉 師常有倦色 謂人曰 吾本避上國浩穰 今復煩接君侯 豈吾心哉 乃之縣上抱腹山 未久又往淸涼金閣寺 重閱大藏周八稔而畢 復南下至于西河 刺史董叔纏請住開元精舍 師曰 吾緣在此矣 繇是雨大法雨垂二十載廣語具別錄 幷汾緇白無不嚮化 凡學者致問 師多答之云 莫妄想 唐憲宗屢遣使徵召 師皆辭疾不赴 暨穆宗卽位思一瞻禮 乃命兩街僧錄靈阜等 齎詔迎請 至彼作禮曰 皇上此度恩旨不同常時 願和尙且順天心 不可言疾也 師微笑曰 貧道何德累煩世主 且請前行吾從別道去矣 乃沐身剃髮 至中夜告弟子惠愔等曰 汝等見聞覺知之性 與太虛同壽不生不滅 一切境界本自空寂 無一法可得 迷者不了卽爲境惑 一爲境惑流轉不窮 汝等當知 心性本自有之 非因造作 猶如金剛不可破壞 一切諸法如影如響無有實者 故經云 唯此一事實餘二卽非眞 常了一切空無一物當情 是諸佛用心處 汝等勤而行之 言訖跏趺而逝 荼毘日祥雲五色異香四徹 所獲舍利璨若玉珠 弟子等貯以金棺 當長慶三年十二月二十一日 葬于石塔 壽六十二 臘四十二 勅諡大達國師 塔曰澄源

汾州; 今山西省汾陽

商州; 今陝西商縣

四分律; 四律之一 六十卷 五部中曇無德部之律藏也 姚秦佛陀耶舍 竺佛念共譯 收於大正藏第二十二冊 佛滅後百年 法正尊者(又曰法護尊者 梵名曇無德)於上座部之律藏中契同己見者 采集成文 隨說所止 而爲一分 四度完結 故稱爲四分律 蓋四分之名 非依義而判段章之名 乃四度結集之 分之爲四夾 故名四分也 初分二十卷 二分十五卷 三分十四卷 四分十一卷

鼎盛; 正當興旺發達或强壯 鼎 相當于正 正當

瓌偉; 瓌 公回切 玉美也 偉 音葦 乃奇大也 [禪林寶訓音義]

拈云; 略稱拈 擧說公案幷加以評議 是禪家說法的一種形式

上國; 在某種場合對祖國的愛稱敬稱

浩穰; 一衆多 繁多 二重大 此指一

君侯; 一秦漢時稱列侯而爲丞相者 二漢以後 用爲對達官貴人的敬稱 此指二

法雨; 妙法能滋潤衆生 故譬之爲雨

辭疾; 猶辭病 以身體有病爲由 辭讓不就某種職務或不做某件事

僧錄; 掌理登錄僧尼名籍與僧官補任等事宜之僧職 推行此類職務之官署則稱僧錄司 大宋僧史略中 至文宗開成(836-840)中 始立左右街僧錄 尋其人卽端甫法師也 …… 由此觀之 僧錄之起 自端甫也 甫公文宗開成中卒 開成後則雲端爲僧錄也 …… 所言錄者 有晉宋錄 錄其經法傍敎傳翻譯人物等事 故魏詔曰 近得錄公等表 錄公乃是僧曹總錄 猶言錄事也 僞秦始立僧正 則以法欽慧斌二人 掌僧錄也

 

분주(汾州) 무업선사(無業禪師)란 자는 상주(商州) 상락(上洛) 사람이며 성이 두씨(杜氏). 처음에 모친 이씨가 공중에서 말하되 기거(寄居)함을 얻겠습니까 함을 들었고 이에 깨자(; 음이 교) 임신(妊娠)이 있었다. 탄생하던 저녁에 신광(神光)이 만실(滿室)했고 겨우(; 저본에 로 지었음) 관세(丱歲; 童年)에 이르자 다니면() 반드시 직시(直視)하고 앉으면() 곧 가부(跏趺)했다. 9세에 개원사(開元寺) 지본선사(志本禪師)에게 의지해 대승경을 수업(受業; )했는데 5()함께 내리읽었고(俱下) 풍송(諷誦)하면서 유실(遺失)함이 없었다. 12에 낙발(落髮)하고 20에 양주(襄州) 유율사(幽律師)에게서 구계(具戒)를 받았고 사분율소(四分律)를 학습했는데 겨우 마치자 바로 능히 부연(敷演)했다. 매번 중승(衆僧)을 위해 열반대부(涅槃大部)를 강설했고 동하(冬夏)에 폐()함이 없었다. 후에 마대사(馬大師)의 선문(禪門)이 정성(鼎盛)함을 듣고 특별히 가서 첨례(瞻禮)했다. 마조가 그의 상모(狀貌)를 보매() 괴위(瓌偉)하고 어음(語音)이 종()과 같았다. 이에 가로되 외외(巍巍)한 불당(佛堂)이지만 그 가운데 부처가 없구나. 스님이 예궤(禮跪)하고 물어 가로되 3()의 문학(文學)은 대강() 그 지취(旨趣)를 궁구했습니다만 늘 듣건대 선문에선 곧 마음이 이 부처(卽心是佛)라고 하니 실로 능히 깨닫지() 못하겠습니다. 마조가 가로되 다만 깨닫지 못한다는 마음이 곧 이것이라 다시 다른 물건이 없다. 스님이 또 묻되 무엇이 이 조사가 서래(西來)하여 밀전(密傳)한 심인(心印)입니까. 마조가 가로되 대덕(大德)이 정요(正鬧; 바로 시끄럽다)하여 있으니 다만 가고 다른 때 오너라. 스님이 겨우 나가자 마조가 불러 가로되 대덕(大德). 스님이 머리를 돌리자 마조가 이르되 이 뭣고(是什麽). 스님이 바로 영오(領悟)하고 예배했다. 마조가 이르되 이() 둔한(鈍漢)아 예배하여 무엇하리오(作麽)雲居錫拈云 什麽處가 이 汾州(無業)正閙인가. 득지(得旨)함으로부터 이윽고 조계(曹谿)로 나아가() 조탑(祖塔)에 예배하고 여악(廬嶽; 廬山)과 천태(天台)에 이르러() 성적(聖迹)을 두루 찾았다. ()으로부터 옹()에 다다라() 서명사(西明寺)에 쉬었다(). 승중(僧衆)이 천거(薦擧)하여 양가대덕(兩街大德)에 충임(充任)할 것을 청했으나 사왈(師曰) 나의 본지(本志)가 아니다. 후에 상당(上黨)에 이르자 절도사(節度使) 이포진(李抱眞)이 스님의 명행(名行; 名聲品行)을 중시하여 단석(旦夕)으로 첨봉(瞻奉)했다. 스님이 늘 권색(倦色)이 있었고 사람들에게 일러 가로되 내가 본디 상국(上國)의 호양(浩穰)을 회피(回避)했는데 이제 다시 군후(君侯; 저본에 君俟로 지었음)를 번접(煩接)하니 어찌 나의 마음이겠는가. 이에 현()으로 가서() 포복산(抱腹山)에 올랐고 오래지 않아 또 청량(淸涼; 청량산이니 오대산) 금각사(金閣寺)로 가서 대장경을 중열(重閱)했는데 8(; )을 돌아() 마쳤다(). 다시 남하(南下)하여 서하(西河)에 이르니 자사(刺史) 동숙전(董叔纏)이 청하여 개원정사(開元精舍)에 주()했다. 사왈 나의 인연이 여기에 있다. 이로 말미암아(; ) 대법우(法雨)를 비 내려 20()를 드리웠고廣語別錄에 갖추었다 병분(幷汾; 二州의 이름)의 치백(緇白; 승속)이 교화를 향(; )하지 않음이 없었다. 무릇 학자가 치문(致問; 질문하다)하면 스님이 다분히 그에 답해 이르되 망상하지 말아라(莫妄想). 당헌종(唐憲宗)이 여러번(; 저본에 로 지었음) 사자(使者)를 보내어 징소(徵召; 부르다)했으나 스님이 모두 사질(辭疾)하며 다다르지 않았다. 목종(穆宗)이 즉위함에 이르러() 한 번 첨례(瞻禮)함을 사유하고 이에 양가승록(兩街僧錄) 영부(靈阜) 등에게 명()하여 조서를 가지고(齎詔) 영청(迎請)하게 했다. 거기에 이르러 작례(作禮)하고 가로되 황상(皇上)이 이번(此度)엔 은지(恩旨)가 상시(常時)와 같지 않습니다. 원컨대 화상이 다만() 천심(天心; 천자의 마음)에 순()하고 가히 질병을 말하지 마십시오. 스님이 미소하며 가로되 빈도(貧道)가 무슨 덕으로 세주(世主; 國君)를 여러번 번거롭게 하겠습니까. 차청(且請)하노니 먼저 가신다면 내가 다른 길로 좇아 가겠습니다. 이에 몸을 목욕하고 머리카락을 깎고 중야(中夜)에 이르러 제자 혜음(惠愔) 등에게 고해 가로되 너희 등의 견문각지지성(見聞覺知之性)은 태허(太虛; 허공)와 더불어 동수(同壽)라서 불생불멸(不生不滅)이다. 일체의 경계가 본래 스스로 공적(空寂)하여 1법도 가히 얻음이 없다. 미자(迷者)가 깨닫지 못해(不了) 곧 경계에 미혹하나니 한번() 경계에 미혹하면 유전(流轉)하며 다하지() 않는다. 너희 등이 당지(當知)하라, 심성(心性)은 본래 스스로 그것을 가진지라 조작을 인하지 않나니 마치 금강과 같아서 가히 파괴되지 않는다. 일체제법(一切諸法)이 영상(影像) 같고 음향 같아서 실다운 것이 있지 않나니 고로 경(법화경)에 이르되 오직 이(; 저본에 로 지었음) 일사만 실이며 나머지 둘은 곧 진이 아니다(唯此一事實餘二卽非眞). 늘 일체공(一切空)을 깨달으면 1()도 당정(當情)함이 없나니 이것이 제불의 용심처(用心處). 너희 등은 부지런히 이를 행하라. 말을 마치자 가부(跏趺)하고 떠났다(). 다비일(荼毘日)에 상운(祥雲)이 오색(五色)이며 이향(異香)이 사방으로 사무쳤다(). 획득한 바 사리(舍利)는 빛남()이 옥주(玉珠)와 같았고 제자 등이 금관(金棺)을 써서() 저장(貯藏)했다. 장경(長慶) 3(823) 1221일에 당()했고 석탑(石塔)에 안장(安葬)했다. 나이는 62며 납은 42며 칙시가 대달국사(大達國師)며 탑왈(塔曰) 징원(澄源)이다.

汾州; 지금의 산서성 분양(汾陽).

商州; 지금의 섬서(陝西) 상현(商縣).

四分律; 4()의 하나. 60. 5() 중 담무덕부(曇無德部)의 율장임. 요진(姚秦) 불타야사(佛陀耶舍)와 축불념(竺佛念)이 공역(共譯)했으며 대정장 제22책에 수록되었음. 불멸후 백 년에 법정존자(法正尊者; 또 가로되 法護尊者梵名曇無德)가 상좌부의 율장 중에서 자기의 견해와 계합하여 같은 것을 채집하여 문서를 이루었는데 수설(隨說)하여 그치는 바로 1()을 삼았고 4차례에 완결한지라 고로 명칭이 사분율이 됨. 대개 사분의 이름은 뜻에 의해 단장(段章)을 판단한 이름이 아니라 곧 4차례 그것을 결집해 그것을 나누어 4(; 夾子)으로 삼은지라 고로 이름이 사분임. 초분은 20권이며 2분은 15권이며 3분은 14권이며 4분은 11권임.

鼎盛; 바로() 흥왕(興旺)하여 발달하거나 혹 강장(强壯)함에 당(). ()은 정()ㆍ정당(正當; 어떤 시기나 계급에 처해 있음)에 상당함.

瓌偉; ()는 공회절(公回切; )이니 옥의 아름다움이며 위()는 음이 위니 곧 기대(奇大)[선림보훈음의].

拈云; 약칭이 염(). 공안을 들어 설하고 아울러 평의(評議)를 가함. 이는 선가에서 설법하는 1종의 형식임.

上國; 모종(某種) 장소에 있으면서 합당히 조국(祖國)에 대한 애칭(愛稱)이며 경칭(敬稱).

浩穰; 1. 중다(衆多). 번다(繁多). 2. 중대(重大). 여기에선 1을 가리킴.

君侯; 1. 진한(秦漢) 때 열후(列侯)이면서 승상(丞相)이 된 자를 일컬었음. 2. () 이후엔 달관(達官)과 귀인에 대한 경칭(敬稱)으로 사용했음. 여기에선 2를 가리킴.

法雨; 묘법이 능히 중생을 자윤(滋潤; 濕潤)하는지라 고로 비유하여 비로 삼음.

辭疾; 사병(辭病)과 같음. 신체에 질병이 있음을 사유로 삼아 사양(辭讓)하며 모종(某種)의 직무에 나아가지 않거나 혹 모건(某件)의 일을 짓지 않음.

僧錄; 승니의 명적(名籍)을 등록함과 승관(僧官)의 보임(補任) 등 사의(事宜)를 장리(掌理; 관장하여 관리)하는 승직. 이런 종류의 직무를 추행(推行; 추진하며 실행)한 관서를 곧 일컬어 승록사(僧錄司)라 했음. 대송승사략중 문종 개성(836-840) 중에 이르러 비로소 좌우승록사(左右街僧錄)를 세웠다. 그 사람을 심멱(尋覓)하니 곧 단보법사(端甫法師)였다 …… 이로 말미암아 관찰하니 승록의 일어남은 단보로부터이다. 보공(甫公)은 문종 개성(開成) 중에 졸()했다. 개성 후는 곧 운단(雲端)이 승록이 되었다 …… 말한 바 록()이란 것은 진송록(晉宋錄)이 있으니 그 경법(經法)의 방교(傍敎)와 전번역(傳翻譯)한 인물 등의 일을 기록함이다. 고로 위조(魏詔)에 가로되 최근에 녹공(錄公) 등의 표를 얻었다 했는데 녹공은 곧 이 승조(僧曹)의 총록(總錄)이니 녹사(錄事)라고 말함과 같다. 위진(僞秦)에서 처음으로 승정(僧正)을 세웠으며 곧 법흠(法欽)과 혜빈(慧斌) 2인이 승록을 관장했다.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tistory.com)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40만 원. 할인. 잔본 81질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pyungsimsa.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