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燈會元卷第三
六祖大鑒禪師法嗣
南嶽懷讓禪師者
姓杜氏 金州人也 於唐儀鳳二年四月八日降誕 感白氣應於玄象 在安康之分 太史瞻見 奏聞高宗皇帝 帝乃問 是何祥瑞 太史對曰 國之法器 不染世榮 帝傳勑金州太守韓偕親往 存慰其家 家有三子 唯師最小 炳然殊異 性唯恩讓 父乃安名懷讓 年十歲時 唯樂佛書 時有三藏玄靜過舍 告其父母曰 此子若出家 必獲上乘 廣度衆生 至垂拱三年方十五歲辭親 往荊州玉泉寺 依弘景律師出家 通天二年受戒後習毗尼藏 一日自歎曰 夫出家者 爲無爲法 天上人間 無有勝者 時同學坦然 知師志氣高邁 勸師謁嵩山安和尙 安啓發之 乃直指詣曹谿參六祖 祖問 甚麽處來 曰 嵩山來 祖曰 甚麽物恁麽來 師無語 遂經八載 忽然有省 乃白祖曰 某甲有箇會處 祖曰 作麽生 師曰 說似一物卽不中 祖曰 還假修證否 師曰 修證則不無 污染卽不得 祖曰 祇此不污染 諸佛之所護念 汝旣如是 吾亦如是 西天般若多羅讖汝足下出一馬駒 踏殺天下人 病在汝心 不須速說 師執侍左右一十五年
●玄象; 天象 謂日月星辰在天所成之象
●太史; 官職名 夏商周三代爲史官與曆官之宅 朝廷大臣 後職位漸低 秦稱太史令 漢屬太常 掌天文曆法 魏晉以後太史僅掌管推算曆法 至明淸兩朝 修史之事由翰林院負責 又稱翰林爲太史 [百度漢語]
남악혜양(南嶽懷讓) 선사란 자는
성이 두씨(杜氏)며 금주(金州; 지금의 陝西 安康) 사람이다. 당 의봉(儀鳳) 2년(677) 4월 8일에 강탄(降誕)했다. 백기(白氣)가 현상(玄象)에 응해 안강(安康)의 분야(分野; 分)에 있음을 감득(感得)했다. 태사(太史)가 바라보고(瞻見) 고종황제(高宗皇帝)에게 주문(奏聞; 아룀)했다. 황제가 이에 묻되 이것이 무슨 상서(祥瑞)인가. 태사가 대왈(對曰) 나라의 법기(法器)가 세영(世榮)에 물들지 않음입니다. 황제가 금주태수(金州太守) 한해(韓偕)에게 전칙(傳勑)해 친히 가서 그 집을 존위(存慰; 慰撫)하라 했다. 집에 세 아들이 있는데 오직 스님이 가장 어렸고(小) 병연(炳然; 明白)히 수이(殊異)했고 성품이 오직 은양(恩讓; 恩愛하고 謙讓)한지라 부친이 이에 안명(安名; 이름을 둠)하여 회양(懷讓)이라 했다. 나이 10세 때 오직 불서(佛書)를 좋아했다. 때에 삼장(三藏) 현정(玄靜)이 있어 집에 이르러(過舍; 過는 至임) 그 부모에게 고해 가로되 차자(此子)가 만약 출가한다면 반드시 상승(上乘; 大乘)을 얻어 중생을 널리 제도할 것입니다. 수공(垂拱) 3년(687)에 이르러 바야흐로 15세에 사친(辭親; 양친에게 고별)하고 형주(荊州) 옥천사(玉泉寺)로 가서 홍경율사(弘景律師)에게 의지해 출가했다. 통천(通天; 萬歲通天) 2년(697) 수계한 후 비니장(毗尼藏; 律藏)을 학습했는데 어느 날 스스로 탄식하며 가로되 무릇 출가란 것은 무위법(無爲法)을 위함이며 천상과 인간에 수승한 자가 있지 않다. 때에 동학(同學) 탄연(坦然)이 스님의 지기(志氣)가 고매(高邁; 高超)함을 알았고 스님에게 권해 숭산(嵩山) 혜안(慧安) 화상을 참알하게 했다. 혜안이 그를 계발(啓發)했고 이에 조계(曹谿)로 나아가 6조를 참알하라고 직지(直指)했다. 조문(祖問) 어느 곳에서 오느냐. 가로되 숭산에서 옵니다. 조왈(祖曰) 무슨 물건(甚麽物)이 이렇게(恁麽) 왔느냐. 스님이 말이 없었다. 드디어 8재(載)를 경과하여 홀연히 성찰이 있었다. 이에 6조에게 사뢰어 가로되 모갑이 저(箇) 아는 곳(會處)이 있습니다. 조왈 무엇인가(作麽生). 사왈(師曰) 한 물건이라고 설해 주더라도(說似) 곧 맞지 않습니다. 조왈 도리어 수증(修證)을 빌리지 않았느냐. 사왈 수증은 곧 없지 않으나 오염(污染)은 곧 얻지 못합니다. 조왈 다만 이 불오염(不污染)을 제불이 호념(護念)하는 바이다. 네가 이미 이와 같으니 나도 또한 이와 같다. 서천(西天) 반야다라(般若多羅)가 참(讖)하되 너의 족하(足下)에 1마구(馬駒)가 나와 천하인을 답살(蹋殺; 밟아 죽이다)한다 했는데 병(病)이 너의 마음에 있으니 속설(速說)함을 쓰지(須) 말아라. 스님이 좌우에서 집시(執侍)하기 15년이었다.
●玄象; 천상(天象)이니 이르자면 일월성신이 하늘에서 이루는 바의 상(象).
●太史; 관직의 이름이니 하상주(夏商周) 3대(代)에 사관(史官)과 역관(曆官) 댁(宅)의 조정 대신이 되었는데 후에 직위가 점차 낮아졌음. 진(秦)에선 태사령이라 일컬었고 한(漢)에선 태상(太常)에 속했으며 천문과 역법(曆法)을 관장했음. 위진(魏晉) 이후의 태사는 다만 역법의 추산(推算)을 관장했음. 명ㆍ청 양조(兩朝)에 이르러선 수사지사(修史之事)는 한림원으로 말미암아 부책(負責)했고 또 한림을 일컬어 태사라 했음 [백도한어].
先天二年往衡嶽居般若寺 開元中有沙門道一〈卽馬祖也〉 在衡嶽山常習坐禪 師知是法器 往問曰 大德坐禪圖甚麽 一曰 圖作佛 師乃取一甎 於彼庵前石上磨 一曰 磨作甚麽 師曰 磨作鏡 一曰 磨甎豈得成鏡邪 師曰 磨甎旣不成鏡 坐禪豈得作佛 一曰 如何卽是 師曰 如牛駕車 車若不行 打車卽是 打牛卽是 一無對 師又曰 汝學坐禪 爲學坐佛 若學坐禪 禪非坐臥 若學坐佛 佛非定相 於無住法 不應取捨 汝若坐佛 卽是殺佛 若執坐相 非達其理 一聞示誨 如飮醍醐 禮拜問曰 如何用心 卽合無相三昧 師曰 汝學心地法門 如下種子 我說法要 譬彼天澤 汝緣合故 當見其道 又問 道非色相 云何能見 師曰 心地法眼能見乎道 無相三昧亦復然矣 一曰 有成壞否 師曰 若以成壞聚散而見道者 非見道也 聽吾偈曰 心地含諸種 遇澤悉皆萌 三昧華無相 何壞復何成 一蒙開悟 心意超然 侍奉十秋 日益玄奧
●衡嶽; 卽衡山 又作南嶽 五嶽之一
●醍醐; 製自牛乳 味中第一 藥中第一 涅槃經八云 因乳生酪 因酪得生酥 因生酥得熟酥 因熟酥得醍醐 又云 雪山有草 名曰肥膩 牛若食者 純得醍醐
●天澤; 上天的恩澤
●玄奧; 玄妙深奥
선천(先天) 2년(713) 형악(衡嶽)으로 가서 반야사(般若寺)에 거주했다. 개원(開元; 713-741) 중 사문(沙門) 도일(道一)〈곧 馬祖다〉이 있어 형악산(衡嶽山)에 있으면서 늘 좌선을 익혔다. 스님이 이 법기(法器)임을 알고 가서 문왈(問曰) 대덕(大德)은 좌선하여 무엇을 도모하느냐. 도일이 가로되(一曰) 작불(作佛)을 도모합니다. 스님이 이에 하나의 벽돌(甎)을 취해 그의 암자 앞의 돌 위에 갈았다. 일왈(一曰) 갈아서 무엇을 만드십니까. 사왈 갈아서 거울을 만든다. 일왈(一曰) 벽돌을 갈아 어찌 거울 이룸을 얻겠습니까. 사왈(師曰) 벽돌을 갈아 이미 거울을 이루지 못하거늘 좌선하여 어찌 작불(作佛)함을 얻겠는가. 일왈(一曰) 어떻게 해야 곧 옳습니까. 사왈 소가 수레를 부리는데(駕車) 수레가 만약 가지 않을 것 같으면 수레를 때림이 곧 옳으냐, 소를 때림이 곧 옳으냐. 도일이 대답이 없었다. 스님이 또 가로되 네가 좌선을 배우느냐, 좌불(坐佛)을 배우느냐. 만약 좌선을 배운다면 선(禪)은 좌와(坐臥)가 아니며 만약 좌불을 배운다면 불(佛)은 정상(定相)이 아니다. 무주법(無住法)에서 응당 취사(取捨)하지 말아야 하리라. 네가 만약 좌불한다면 즉시(卽是) 살불(殺佛)이며 만약 좌상(坐相)에 집착한다면 그 이치에 통달하지 못했다. 도일이 시회(示誨)를 듣자 제호(醍醐)를 마신 듯하였다. 예배하고 문왈(問曰) 어떻게 용심(用心)해야 곧 무상삼매(無相三昧)에 합하겠습니까. 사왈 네가 심지법문(心地法門)을 배움은 종자(種子)를 내림과 같고 내가 법요(法要)를 설함은 저 천택(天澤)에 비유하나니 너의 인연이 합하는 고로 마땅히 그 도를 본다. 또 묻되 도는 색상(色相)이 아니니 어떻게 능히 봅니까. 사왈 심지법안(心地法眼)이 능히 도를 보나니 무상삼매(無相三昧)도 또한 다시 그러하다. 일왈(一曰) 성괴(成壞)가 있습니까. 사왈 만약 성괴와 취산(聚散)으로써 도를 보는 자는 견도(見道)가 아니다. 나의 게를 들어라, 가로되 심지(心地)가 모든 종자를 머금었나니/ 천택(天澤)을 만나면 모두 다 싹튼다/ 삼매화(三昧華)는 무상(無相)이거늘/ 어찌 무너지고 다시 어찌 이루겠는가. 도일이 몽수(蒙受; 承受)하자 개오(開悟)했고 심의(心意)가 초연(超然)했다. 시봉하기 10추(秋)에 날로 현오(玄奧)를 더했다.
●衡嶽; 곧 형산이니 또 남악(南嶽)으로 지음. 5악의 하나.
●醍醐; 우유로부터 제조하며 맛 중에 제일이며 약 중에 제일임. 열반경8에 이르되 우유로 인해 낙(酪; 진한 유즙 락)이 나오고 낙으로 인해 생소(生酥; 酥는 煉乳 소)를 얻고 생소로 인해 숙소(熟酥)를 얻고 숙소로 인해 제호(醍醐)를 얻는다. 또 이르되 설산에 풀이 있는데 이름해 가로되 비니(肥膩)다. 소가 만약 먹는다면 순전히 제호를 얻는다.
●天澤; 상천(上天)의 은택.
●玄奧; 현묘하고 심오(深奥)함.
入室弟子總有六人 師各印可曰 汝等六人同證吾身 各契其一 一人得吾眉 善威儀〈常浩〉 一人得吾眼 善顧盻〈智達〉 一人得吾耳 善聽理〈坦然〉 一人得吾鼻 善知氣〈神照〉 一人得吾舌 善譚說〈嚴峻〉 一人得吾心 善古今〈道一〉 又曰 一切法皆從心生 心無所生 法無所住 若達心地 所作無礙 非遇上根 宜愼辭哉 有一大德問 如鏡鑄像 像成後未審光向甚麽處去 師曰 如大德爲童子時相貌何在〈法眼別云 阿那箇是大德鑄成底像〉 曰 祇如像成後 爲甚麽不鑑照 師曰 雖然不鑑照 謾他一點不得 後馬大師闡化於江西 師問衆曰 道一爲衆說法否 衆曰 已爲衆說法 師曰 總未見人持箇消息來 衆無對 因遣一僧去 囑曰 待伊上堂時 但問作麽生 伊道底言語 記將來 僧去一如師旨 回謂師曰 馬師云 自從胡亂後 三十年不曾少鹽醬 師然之 天寶三年八月十一日 圓寂於衡嶽 諡大慧禪師最勝輪之塔
●印可; 指印證認可 卽弟子修道成就時 爲師者加以印證而承認許可其所悟境界之意 此詞屢見於維摩經上之經文 禪宗密敎亦常用之
●別云; 對于上文拈擧之公案語句 禪家認爲不合己意 另外再擬機語代替之 示以別云 是禪家說法的一種形式 也是禪家語錄的一種類型
●闡化; 弘揚道法 進行敎化
입실제자(入室弟子; 입실하여 嗣法한 제자)가 모두 6인이 있다. 스님이 각기 인가(印可)하여 가로되 너희 등 6인은 나의 몸을 동증(同證)해 각자 그 하나(一)에 계합했다. 1인은 나의 눈썹을 얻었으니 좋은 위의(善威儀)며〈常浩〉 1인은 나의 눈을 얻었으니 잘 돌아보며(善顧盻)〈智達〉 1인은 나의 귀를 얻었으니 잘 청리(聽理)하며〈坦然〉 1인은 나의 코를 얻었으니 잘 지기(知氣; 냄새를 알다)하며〈神照〉 1인은 나의 혀를 얻었으니 잘 담설(譚說)하며〈嚴峻〉 1인은 나의 심장(心臟)을 얻었으니 고금을 잘 안다〈道一〉. 우왈(又曰) 일체법은 모두 마음으로부터 생하지만 마음은 생하는 바가 없고 법은 머무는 바가 없다. 만약 심지(心地)를 통달하면 소작(所作)이 무애(無礙)하리니 상근(上根)을 만나지 않거든 의당 언사(言辭)를 삼가라. 1대덕(大德)이 있어 묻되 거울이 영상(影像)을 주성(鑄成)할 것 같으면 영상이 이루어진 후 미심하오니 광(光; 거울의 빛)은 어느 곳을 향해 갑니까. 사왈 대덕이 동자(童子)로 되었을 때의 상모(相貌)가 어디에 있음과 같다〈法眼이 別云하되 어느 것이 이 대덕이 鑄成한 像인가〉. 가로되 지여(只如; 例擧를 표시) 영상이 이루어진 후에 무엇 때문에 감조(鑑照; 비추다)하지 못합니까. 사왈 비록 그렇게 감조하지 못하지만 그를 일점(一點)도 속임(謾)을 얻지 못한다. 후에 마대사(馬大師)가 강서(江西)에서 천화(闡化)했다. 스님이 대중에게 물어 가로되 도일(道一)이 대중을 위해 설법하느냐. 대중이 가로되 이미 대중을 위해 설법합니다. 사왈 사람이 저(箇) 소식(消息)을 가지고 옴을 모두 보지 못했다. 대중이 대답이 없었다. 인하여 1승(僧)을 보내어 가게 하면서 부촉해 가로되 그(伊)가 상당(上堂)할 때를 기다렸다가 단지 묻되 어떻습니까(作麽生) 하라. 그가 말한 언어를 기록해 가져 오너라. 중이 가서 사지(師旨)와 일여(一如)하게 했다. 돌아와 스님에게 일러 가로되 마사(馬師)가 이르되 호란(胡亂; 胡도 亂의 뜻)한 후로부터 30년 동안 일찍이 염장(鹽醬)이 적지(少) 않았다. 스님이 그렇다 하였다. 천보(天寶) 3년(744) 8월 11일 형악(衡嶽)에서 원적(圓寂)했고 시(諡)가 대혜선사최승륜지탑(大慧禪師最勝輪之塔)이다.
●印可; 인증(印證)하여 인가(認可)함을 가리킴. 곧 제자가 수도를 성취했을 때 스승 된 자가 인증을 가하여 그의 깨친 바 경계를 승인하여 허가함의 뜻. 이 사(詞)는 유마경상(維摩經上)의 경문에 여러 차례 보임. 선종과 밀교에서도 또한 이를 상용함.
●別云; 윗글의 염거(拈擧)의 공안 어구에 대해 선가가 인식하기를 자기의 뜻에 맞지 않으면 영외(另外; 이것을 제한 밖)에 다시 기어(機語)를 헤아려 이에 대체하여 별운(別云)을 보임이니 이것은 선가의 설법의 일종 형식임. 또 이는 선가 어록의 일종 유형(類型)임.
●闡化; 도법을 홍양(弘揚)하고 교화를 진행함.
南嶽讓禪師法嗣〈第一世〉
江西道一禪師
漢州什邡縣人也 姓馬氏 本邑羅漢寺出家 容貌奇異 牛行虎視 引舌過鼻 足下有二輪文 幼歲依資州唐和尙落髮 受具於渝州圓律師 唐開元中 習禪定於衡嶽山中 遇讓和尙 同參六人 唯師密受心印〈讓之一 猶思之遷也 同源而異派 故禪法之盛 始於二師 劉軻云 江西主大寂 湖南主石頭 往來憧憧 不見二大士 爲無知矣 西天般若多羅記達磨云 震旦雖濶無別路 要假兒孫脚下行 金雞解銜一粒粟 供養十方羅漢僧 又六祖謂讓和尙曰 向後佛法從汝邊去 馬駒蹋殺天下人 厥後江西嗣法 布於天下 時號馬祖〉 始自建陽佛迹嶺 遷至臨川 次至南康龔公山 大曆中 𨽻名於鍾陵開元寺 時連帥路嗣恭聆風景慕 親受宗旨 由是四方學者 雲集座下
●江西; 一唐代僧馬祖道一住江西南昌府新建縣開元寺 故稱江西 二揚子江中流南岸之地 又稱江右
●漢州; 今四川省廣漢市
●資州; 今四川資中資陽兩縣均是古資州地
●渝州; 隋初改楚州爲渝州 治巴縣 卽今重慶 後遂以渝爲重慶的簡稱 [百度百科]
●同參; 指同事一師而共同參禪者 亦指共同行脚參訪者
●劉軻; (772-840) 字希仁 廣東韶州曲江(今韶關)人 生於唐大曆七年(772) 因其幼年好學 仰慕孟子 故自名劉軻 他曾在曹溪落髮爲僧 後隱居廬山 唐元和十三年(818) 登進士 歷任監察御史 唐侍御史等 後出任洺州刺史等職 [百度百科]
●連帥; 一古代十國諸侯之長 二泛稱地方高級長官 ▲陶廬雜錄六 柳宗元言 有里胥而後有縣大夫 有縣大夫而後有諸侯 有諸侯而後有方伯連帥 有方伯連帥而後有天子
●路嗣恭; (約710-780) 字懿范 唐朝大臣 京兆郡三原縣(治今三原縣東北三十里)人 政績考核爲天下第一 玄宗認爲他可以嗣漢代良吏魯恭 因賜名嗣恭 [百度百科]
강서(江西) 도일선사(道一禪師)
한주(漢州) 십방현(什邡縣) 사람이며 성이 마씨(馬氏)다. 본읍(本邑; 本鄕) 라한사(羅漢寺)에서 출가했다. 용모가 기이(奇異)하고 소의 행보며 범의 눈초리(牛行虎視)였다. 혀를 늘이면 코에 이르렀고(過) 발 아래 두 바퀴의 문양(文樣; 文)이 있었다. 유세(幼歲)에 자주(資州) 당화상(唐和尙)에게 의지해 낙발(落髮)했고 투주(渝州) 원율사(圓律師)에게서 수구(受具)했다. 당 개원(開元; 713-741) 중 형악산(衡嶽山) 가운데에서 선정(禪定)을 익히다가 회양화상(懷讓和尙)을 만났고 동참(同參) 6인에 오직 스님만 심인(心印)을 밀수(密受)했다〈懷讓의 道一은 行思의 希遷과 같나니 同源이면서 異派다. 고로 禪法의 興盛은 二師에서 비롯한다. 劉軻가 이르되 江西의 主는 大寂(마조의 시호)이며 湖南의 主는 石頭(希遷)다. 왕래하며 동동(憧憧; 왕래가 끊기지 않는 모양)하면서 두 大士를 친견하지 않았다면 無知로 삼았다. 西天의 般若多羅가 達磨에게 記해 이르되 震旦이 비록 넓지만 다른 길이 없고/ 요컨대 兒孫이 脚下에 行함을 빌린다/ 金雞가 一粒의 粟을 머금을 줄 알아/ 十方의 羅漢僧에게 공양하리라. 또 六祖가 회양화상에게 일러 가로되 향후의 불법이 汝邊으로 좇아가리니 馬駒가 천하인을 蹋殺한다. 厥後에 江西(마조)의 嗣法이 천하에 分布되니 당시에 호가 馬祖다〉. 건양(建陽) 불적령(佛迹嶺)으로부터 시작하여 옮겨 임천(臨川)에 이르렀고 다음에 남강(南康) 공공산(龔公山)에 이르렀고 대력(大曆; 766-779) 중 종릉(鍾陵) 개원사(開元寺)에 이름을 붙였다(隷). 당시에 연수(連帥) 노사공(路嗣恭)이 도풍(道風)을 듣고(聆) 경모(景慕; 景仰)했고 종지(宗旨)를 친수(親受)했고 이로 말미암아 사방의 학자가 좌하(座下)로 운집했다.
●江西; 1. 당대승 마조도일이 강서 남창부 신건현의 개원사에 주(住)한지라 고로 명칭이 강서임. 2. 양자강 중류의 남쪽 언덕의 땅이니 또 명칭이 강우(江右)임.
●漢州; 지금의 사천성 광한시(廣漢市).
●資州; 지금의 사천 자중(資中)ㆍ자양(資陽) 두 현은 균일하게 이 옛 자주(資州) 지역임.
●渝州; 수초(隋初)에 초주(楚州)를 고쳐 투주로 삼았고 치소(治所)는 파현(巴縣)이니 즉금의 중경(重慶)임. 후에 드디어 투(渝)를 중경의 간칭으로 삼았음 [백도백과].
●同參; 한 스승을 함께 모시면서 공동으로 참선하는 자를 가리킴. 또한 공동으로 행각하면서 참방하는 자를 가리킴.
●劉軻; (772-840) 자는 희인(希仁)이며 광동 소주(韶州) 곡강(曲江; 지금의 韶關) 사람이며 당 대력 7년(772)에 출생했음. 그가 유년(幼年)에 호학(好學)했고 맹자를 앙모(仰慕)했음으로 인해 고로 자명(自名)하여 유가(劉軻)라 했음. 그는 일찍이 조계(曹溪)에 있으면서 낙발(落髮)하고 승인이 되었고 후에 여산(廬山)에 은거했다가 당 원화(元和) 13년(818) 진사(進士)에 올랐고 감찰어사ㆍ당시어사(唐侍御史) 등을 역임했고 후에 명주자사(洺州刺史) 등의 관직에 출임(出任)했음 [백도백과].
●連帥; 1. 고대 10국 제후의 장(長). 2. 널리 지방의 고급장관을 일컬음. ▲도려잡록6. 유종원(柳宗元)이 말하되 이서(里胥)가 있은 이후에 현대부(縣大夫)가 있고 현대부가 있은 이후에 제후가 있고 제후가 있은 이후에 방백연수(方伯連帥)가 있고 방백연수가 있은 이후에 천자가 있다.
●路嗣恭; (약 710-780) 자는 의범이며 당조의 대신. 경조군 삼원현(治所는 지금의 삼원현 동북 30리) 사람. 정적(政績)과 고핵(考核; 심사하다)이 천하제일이 되었음. 현종(玄宗)이 인식하기를 그는 가이(可以) 한대(漢代)의 양리(良吏) 노공(魯恭)을 잇는다 하고는 인하여 사공(嗣恭)이란 이름을 주었음 [백도백과].
一日謂衆曰 汝等諸人 各信自心是佛 此心卽是佛心 達磨大師從南天竺國來至中華 傳上乘一心之法 令汝等開悟 又引楞伽經文 以印衆生心地 恐汝顚倒不自信 此一心之法 各各有之 故楞伽經以佛語心爲宗 無門爲法門 夫求法者應無所求 心外無別佛 佛外無別心 不取善不捨惡 淨穢兩邊 俱不依怙 達罪性空 念念不可得 無自性故 故三界唯心 森羅萬象 一法之所印 凡所見色 皆是見心 心不自心 因色故有 汝但隨時言說 卽事卽理 都無所礙 菩提道果 亦復如是 於心所生 卽名爲色 知色空故 生卽不生 若了此意 乃可隨時著衣喫飯 長養聖胎 任運過時 更有何事 汝受吾敎 聽吾偈曰 心地隨時說 菩提亦祇寧 事理俱無礙 當生卽不生
●佛語心; 佛所說之如來藏心也 楞伽經一部之所明者 以如來藏心爲宗 故經之品名名爲佛語心品 ▲楞伽經註解一 佛語心者 卽諸佛所說心法也 ▲宗鏡錄五十七 楞伽經云 佛語心爲宗 無門爲法門(檢三部之楞伽經 不見此文)
●祇寧; 同只寧 只麽
어느 날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 등 제인(諸人)은 각자 자심(自心)이 이 부처며 차심(此心)이 즉시(卽是) 불심(佛心)임을 믿어라. 달마대사가 남천축국으로부터 와서 중화(中華)에 이르러 상승(上乘; 大乘)의 일심(一心)의 법을 전하여 너희 등으로 하여금 개오(開悟)하게 했다. 또 릉가경문(楞伽經文)을 인용해 중생의 심지(心地)에 인(印)을 쳤음은 너희가 전도(顚倒)하여 자신(自信)하지 않을까 염려했음이다. 이 마음의 법은 각각 이를 가졌나니(有) 고로 릉가경은 불어심(佛語心)으로써 종(宗)을 삼고 무문(無門)으로 법문(法門)을 삼는다. 무릇 구법자(求法者)는 응당 구하는 바가 없어야 하나니 마음 밖에 다른 부처가 없고 부처 외에 다른 마음이 없다. 선(善)을 취하지 말고 악(惡)을 버리지 말고 정예(淨穢)의 양변(兩邊)에 모두 의호(依怙; 의지하며 믿다)하지 말아라. 죄성(罪性)이 공(空)해 염념(念念)에 불가득임을 통달할지니 자성이 없는 연고이다. 고로 3계(界)가 유심(唯心)이며 삼라만상(森羅萬象)이 1법(法)으로 인(印)을 친 것이다. 무릇 보는 바의 색은 모두 이 마음을 봄이니 마음이 스스로 마음이 아니라 색을 인한 연고로 있다. 너희가 단지 수시(隨時)로 언설(言說)하지만 즉사(卽事)가 즉리(卽理)이므로 도무지 장애되는 바가 없나니 보리(菩提)의 도과(道果)도 또한 다시 이와 같다. 마음의 소생(所生)을 곧 이름하여 색이니 색이 공한 줄 아는 연고로 생(生)이 곧 불생(不生)이다. 만약 이 뜻을 깨치면(了) 이에 가히 수시(隨時)로 착의끽반(著衣喫飯)하면서 성태(聖胎)를 장양(長養)하고 임운(任運)하여 시절을 지내거늘 다시 무슨 일이 있어 너희가 나의 가르침을 받겠는가. 나의 게를 들어라, 가로되 심지(心地)를 수시(隨時)로 설하나니/ 보리(菩提)도 또한 지녕(祇寧; 다만 이러함)이다/ 사리(事理)에 모두 장애가 없나니/ 생(生)에 당해 곧 불생(不生)이다.
●佛語心; 불타가 설한 바의 여래장심(如來藏心)임. 릉가경 1부에서 밝힌 바의 것은 여래장심을 종(宗)으로 삼음. 고로 경의 품명(品名)을 이름해 불어심품(佛語心品)임. ▲릉가경주해1. 불어심(佛語心)이란 것은 곧 제불이 설한 바의 심법이다. ▲종경록57. 릉가경에 이르되 불어는 마음으로 종을 삼고(佛語心爲宗) 무문으로 법문을 삼는다(3부의 릉가경을 검색해도 이 글이 보이지 않음).
●祇寧; 지녕(只寧)과 같음. 지마(只麽; 如此)임.
僧問 和尙爲甚麽說卽心卽佛 師曰 爲止小兒啼 曰 啼止時如何 師曰 非心非佛 曰 除此二種人來 如何指示 師曰 向伊道不是物 曰 忽遇其中人來時如何 師曰 且敎伊體會大道 問 如何是西來意 師曰 卽今是甚麽意 龐居士問 不昧本來人 請師高著眼 師直下覷 士曰 一等沒絃琴 唯師彈得妙 師直上覷 士禮拜 師歸方丈 居士隨後曰 適來弄巧成拙 又問 如水無筋骨 能勝萬斛舟 此理如何 師曰 這裏無水亦無舟 說甚麽筋骨 一夕西堂百丈南泉隨侍翫月次 師問 正恁麽時如何 堂曰 正好供養 丈曰 正好修行 泉拂袖便行 師曰 經入藏 禪歸海 唯有普願 獨超物外 百丈問 如何是佛法旨趣 師曰 正是汝放身命處 師問百丈 汝以何法示人 丈竪起拂子 師曰 祇這箇 爲當別有 丈拋下拂子 僧問 如何得合道 師曰 我早不合道 問 如何是西來意 師便打曰 我若不打汝 諸方笑我也 有小師耽源行脚回 於師前畫箇圓相 就上拜了立 師曰 汝莫欲作佛否 曰 某甲不解揑目 師曰 吾不如汝 小師不對
●其中人; 指超越一切對待分別的悟道者
●一等; 乃一樣平等之意
●適來; 方今 暫時前
●弄巧成拙; 戱弄工巧而反成拙劣
●小師; 少年僧人 又指弟子 相對於師家而言
●揑目; 猶捏目 捏目生花的略語 按捏眼睛而産生幻視 似乎有花出現 比喩制造幻象 自欺欺人
중이 묻되 화상은 무엇 때문에 곧 마음이 곧 부처(卽心卽佛)라고 설하십니까. 사왈(師曰) 소아(小兒)의 울음을 그치게 하기 위함이다. 가로되 울음을 그쳤을 땐 어떻습니까. 사왈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非心非佛). 가로되 이 두 종류를 제한 사람이 온다면 어떻게 지시하시렵니까. 사왈 그를 향해 말하되 이 물건도 아니다(不是物). 가로되 홀연히 그 중의 사람(其中人)이 옴을 만났을 땐 어떻습니까. 사왈 다만 그로 하여금 대도(大道)를 체회(體會; 체험하여 領會)하게 하리라. 묻되 무엇이 이 서래의(西來意)입니까. 사왈 즉금은 이 무슨 뜻이냐. 방거사(龐居士)가 본래인(本來人)을 암매(暗昧)하지 말고 스님의 높은 착안(著眼)을 청합니다. 스님이 바로 아래(直下)를 보았다. 거사가 가로되 일등(一等; 한 모양으로 평등)의 몰현금(沒絃琴)은 오직 스님이라야 퉁겨 묘함을 얻습니다. 스님이 바로 위(直上)를 쳐다보았다. 거사가 예배했다. 스님이 방장(方丈)으로 돌아가는데 거사가 뒤따르며 가로되 적래(適來; 아까) 농교성졸(弄巧成拙)했습니다. 또 묻되 물이 근골(筋骨이 없으면서 능히 만곡주(萬斛舟; 만 섬을 실은 배)를 이김과 같다고 한 이 이치가 무엇입니까. 사왈 이 속(遮裏)은 물도 없고 또한 배도 없거늘 무슨 근골을 설하느냐. 어느 날 저녁 서당(西堂; 智藏)ㆍ백장(百丈; 懷海)ㆍ남천(南泉; 普願)이 수시(隨侍)하며 달구경(翫月)하던 차에 스님이 묻되 바로 이러한 때 어떠한가. 서당이 가로되 바로 공양하기에 좋습니다(正好供養). 백장이 가로되 바로 수행하기에 좋습니다. 남천이 소매를 떨치고 바로 갔다. 사왈(師曰) 경(經)은 입장(入藏; 지장에게 들어감)하고 선(禪)은 귀해(歸海; 회해에게 돌아감)하고 오직 보원(普願)이 있어 홀로 물외(物外)를 초출(超出)했다. 백장이 묻되 무엇이 이 불법의 지취(旨趣)입니까. 사왈 바로 이 네가 신명(身命)을 놓을 곳이다. 스님이 백장에게 묻되 너는 어떤 법으로써 사람에게 보이느냐. 백장이 불자(拂子)를 세워 일으켰다. 사왈 다만 이것(這箇)인가. 마땅히 딴 게 있음이 되는가. 백장이 불자를 던져 떨어뜨렸다(拋下). 중이 묻되 어찌 해야 도에 합함을 얻습니까. 사왈 나는 일찍 도에 합하지 않았다. 묻되 무엇이 이 서래의(西來意)입니까. 스님이 바로 때리고 가로되 내가 만약 너를 때리지 않으면 제방에서 나를 비웃을 것이다. 소사(小師) 탐원(耽源)이 있어 행각하고 돌아와 스님 앞에 저(箇) 원상(圓相)을 그리고 위로 나아가 예배하여 마치고 섰다. 사왈 네가 작불(作佛)하려고 하지 않느냐. 가로되 모갑은 날목(揑目)할 줄 알지 못합니다. 사왈 내가 너만 같지 못하다. 소사가 대답이 없었다.
●其中人; 일체의 대대(對待)와 분별을 초월한 오도자를 가리킴.
●一等; 곧 한 모양으로 평등함의 뜻.
●適來; 방금(方今). 잠시 전.
●弄巧成拙; 공교(工巧; 工도 巧)를 희롱하다가 도리어 졸렬을 이룸.
●小師; 소년 승인. 또 제자를 가리킴. 사가(師家)에 상대해 말함임.
●揑目; 날목(捏目)과 같음. 날목생화(捏目生花)의 약어(略語)니 눈동자를 누르고 비비어 환시(幻視)를 산생(産生)하면 흡사 꽃이 출현함이 있는 듯함. 환상(幻象)을 제조하여 스스로 속고 남을 속임에 비유.
鄧隱峯辭師 師曰 甚麽處去 曰 石頭去 師曰 石頭路滑 曰 竿木隨身 逢場作戲 便去 纔到石頭 卽繞禪牀一匝 振錫一聲 問 是何宗旨 石頭曰 蒼天蒼天 峯無語 却回擧似師 師曰 汝更去問 待他有答 汝便噓兩聲 峯又去依前問 石頭乃噓兩聲 峯又無語 回擧似師 師曰 向汝道石頭路滑 有僧於師前作四畫 上一畫長 下三畫短 曰 不得道一畫長三畫短 離此四字外 請和尙答 師乃畫地一畫曰 不得道長短 答汝了也〈忠國師聞 別云 何不問老僧〉 有講僧來問曰 未審禪宗傳持何法 師却問曰 座主傳持何法 主曰 忝講得經論二十餘本 師曰 莫是師子兒否 主曰 不敢 師作噓噓聲 主曰 此是法 師曰 是甚麽法 主曰 師子出窟法 師乃默然 主曰 此亦是法 師曰 是甚麽法 主曰 師子在窟法 師曰 不出不入 是甚麽法 主無對〈百丈代云 見麽〉 遂辭出門 師召曰 座主 主回首 師曰 是甚麽 主亦無對 師曰 這鈍根阿師
●竿木; 又作干木 法會時 師家所用之拄杖 或指一般步行時之拄杖 於禪林中 轉指師家胸中無形之妙棒 以之爲接化學人之機略 故禪林中每以竿木隨身一語 譬喩自在無礙之機用
●噓; 吹也 吹噓也 出氣急曰吹 緩曰嘘
●依前; 依 仍舊 依前 如前之義
●座主; 大衆一座之主也 如言上座首座 禪家云住持 敎家云座主 爲大衆一座之主 統理一山者 如天台山修禪寺座主道邃是也 又禪家名敎家皆曰座主 ▲釋氏要覽上 摭言曰 有司謂之座主 今釋氏取學解優贍穎拔者名座主 謂一座之主 古高僧呼講者爲高座 或是高座之主
●代云; 上文拈擧之公案話頭 若缺答語 禪家代擬答語 示以代云 是禪家說法的一種形式 也是禪家語錄的一種類型
●阿師; 對和尙之親切稱呼 阿 助詞 名詞詞頭 宋代趙彦衛雲麓漫鈔十 古人多言阿字 如秦皇阿房宮 漢武阿嬌金屋 晉尤甚 阿戎阿連等語極多 唐人號武后爲阿武婆 婦人無名 以姓加阿字
등은봉(鄧隱峯)이 스님에게 고별했다. 사왈(師曰) 어느 곳으로 가느냐. 가로되 석두(石頭; 希遷)로 갑니다. 사왈 석두의 길이 미끄럽다(滑). 가로되 간목(竿木)이 수신(隨身)하니 장소를 만나면 희롱을 지을 것입니다. 바로 갔다. 겨우 석두에 이르자 곧 선상을 한 바퀴 돌고 한 소리 석장(錫杖)을 떨치고 묻되 이 무슨 종지(宗旨)입니까. 석두가 가로되 창천(蒼天), 창천(蒼天). 은봉이 말이 없었다. 돌아와(却回) 스님에게 거사(擧似; 擧示)하자 사왈 네가 다시 가서 물어 그의 답 있음을 기다렸다가 네가 바로 (噓)를 양성(兩聲)하라. 은봉이 또 가서 의전(依前)히 물었다. 석두가 이에 허(噓)를 양성(兩聲)했다. 은봉이 또 말이 없었다. 돌아와 스님에게 거사(擧似)하자 사왈 너를 향해 말하되 석두의 길이 미끄럽다고 했다. 어떤 중이 스님 앞에 4획(畫)을 지었는데 위의 1획은 길고 아래의 3획은 짧았다. 가로되 1획은 길고 3획은 짧다(一畫長三畫短; 전등록에 一長三短으로 지었음) 라고 말함을 얻지 못합니다. 이 4자(字)를 여읜 밖에 화상의 답을 청합니다. 스님이 이에 땅에 1획(畫)을 긋고(畫) 가로되 길거나 짧다 라고 말함을 얻지 못한다. 너에게 답해 마쳤다〈忠國師가 듣고 別云하되 왜 노승에게 묻지 않느냐〉. 어떤 강승(講僧)이 와서 물어 가로되 미심하오니 선종에선 무슨 법을 전지(傳持)합니까. 스님이 도리어 물어 가로되 좌주(座主)는 무슨 법을 전지하느냐. 좌주가 가로되(主曰) 욕되이(忝; 謙辭) 경론 20여 본(本)을 강득(講得)합니다. 사왈 이 사자아(師子兒; 兒는 조사)가 아닌가. 주왈(主曰) 불감(不敢)입니다. 스님이 허허(噓噓) 소리를 지었다. 주왈(主曰) 이것은 이 법입니다. 사왈 이 무슨 법인가. 주왈(主曰) 사자(師子; 獅子와 같음)가 출굴(出窟)하는 법입니다. 스님이 이에 묵연(默然)했다. 주왈 이것도 역시(亦是) 법입니다. 사왈 이 무슨 법인가. 주왈 사자가 재굴(在窟)하는 법입니다. 사왈 불출불입(不出不入)은 이 무슨 법인가. 좌주가 대답이 없었다〈百丈이 代云하되 봅니까〉. 드디어 고별하고 출문(出門)하자 스님이 불러 가로되 좌주. 좌주가 머리를 돌렸다. 사왈 이 뭣고. 좌주가 또 대답이 없었다. 사왈 이(這) 둔근(鈍根) 아사(阿師)야.
●竿木; 또 간목(干木)으로 지음. 법회 때 사가가 쓰는 바의 주장자. 혹은 일반의 보행할 때의 지팡이를 가리킴. 선림 중에선 전(轉)하여 사가의 흉중의 무형의 묘한 몽둥이를 가리킴. 이것으로써 학인을 접화 하는 기략(機略)이 되는지라 고로 선림 중에서 매양 간목이 몸을 따른다는 한 말씀으로써 자재무애의 기용(機用)에 비유함.
●噓; 취(吹)임. 취허(吹噓)임. 출기(出氣)가 급함을 가로되 취(吹)며 느림을 가로되 허(嘘)임.
●依前; 의(依)는 잉구(仍舊; 예전과 그대로)니 의전은 여전의 뜻.
●座主; 대중일좌(大衆一座)의 주(主)임. 상좌(上座)ㆍ수좌(首座)라고 말함과 같음. 선가(禪家)에선 이르되 주지(住持)며 교가(敎家)에선 이르되 좌주(座主)니 대중일좌(大衆一座)의 주(主)가 되어 일산(一山)을 통리(統理)하는 자임. 천태산 수선사(修禪寺) 좌주 도수(道邃) 같은 게 이것임. 또 선가(禪家)에선 교가를 이름해 다 가로되 좌주라 함. ▲석씨요람상. 척언(摭言; 摭은 주울 척. 五代十國 시절 王定保가 지었음. 혹은 彼이고 혹은 此라 首尾가 갖추어지지 못해 족히 저술이라고 일컫지 못하므로 고로 이름이 척언임)에 가로되 유사(有司)를 좌주라고 일컫나니 지금 석씨(釋氏; 釋迦. 佛家. 僧侶)가 학해(學解)가 넉넉하고 영발(穎拔; 特出)한 자를 취해 좌주라고 이름하니 이르자면 일좌(一座)의 주(主)다. 옛날에 고승이, 강설하는 자를 호칭해 고좌(高座)라 했으니 혹 이는 고좌의 주(主)다.
●代云; 상문(上文)에 염거(拈擧)한 공안화두에 만약 답어가 결손하면 선가가 대신해 답어하려 하면서 대운(代云)으로 보임. 이는 선가의 설법의 일종 형식임. 또 이는 선가어록의 일종 유형임.
●阿師; 화상에 대한 친절한 칭호(稱呼)임. 아(阿)는 조사니 명사(名詞)의 사두(詞頭)임. 송대(宋代) 조언위(趙彦衛)의 운록만초10. 고인이 많이들 아자(阿字)를 말했으니 진시황의 아방궁(阿房宮)과 한무제의 아교금옥(阿嬌金屋) 같은 것들이다. 진(晉)은 더욱 심했으니 아융(阿戎)과 아련(阿連) 등의 말이 극히 많았다. 당인(唐人)은 무후(武后; 則天武后)를 아무파(阿武婆)라 호칭했고 부인(婦人)이 이름이 없으면 성에 아자(阿字)를 더했다.
洪州廉使問曰 喫酒肉卽是 不喫卽是 師曰 若喫是中丞祿 不喫是中丞福 師入室弟子一百三十九人 各爲一方宗主 轉化無窮 師於貞元四年正月中 登建昌石門山 於林中經行 見洞壑平坦 謂侍者曰 吾之朽質 當於來月歸茲地矣 言訖而回 旣而示疾 院主問 和尙近日尊候如何 師曰 日面佛 月面佛 二月一日沐浴 跏趺入滅 元和中 諡大寂禪師 塔曰大莊嚴
●廉使; 官名 按察使的異名 唐代按察地方事情的長官 宋元廉訪使以及後世的按察使 廉 通覝
●中丞; 官名 漢代御史大夫下設兩丞 一稱御史丞 一稱御史中丞 因中丞居殿中而得名 掌管蘭臺圖籍祕書 外督部刺史 內領侍御史 受公卿奏事 擧劾按章 [百度百科]
●宗主; 衆所景仰歸依者 某一方面的代表與權威
●尊候; 見面時問候對方身體起居等情況的敬詞
홍주(洪州) 염사(廉使)가 문왈(問曰) 주육(酒肉)을 먹음이 곧 옳습니까, 먹지 않음이 곧 옳습니까. 사왈(師曰) 만약 먹는다면 이 중승(中丞)의 녹(祿)이며 먹지 않는다면 이 중승의 복(福)이다. 스님의 입실제자(入室弟子)가 1백3십9인이며 각자 일방(一方)의 종주(宗主)가 되어 전화(轉化; 展轉히 교화하다)가 무궁했다. 스님이 정원(貞元; 저본에 眞元으로 지었음) 4년(788) 정월 중 건창(建昌) 석문산(石門山)에 올라 임중(林中)에서 경행(經行)하다가 동학(洞壑)이 평탄함을 보고 시자에게 일러 가로되 나의 후질(朽質)이 다음달에 당해 이 땅으로 돌아올 것이다. 말을 마치자 돌아갔다. 이미 질병을 보이자 원주(院主)가 묻되 화상이 근일(近日) 존후(尊候)가 어떻습니까. 사왈 일면불(日面佛), 월면불(月面佛)이다. 2월 1일 목욕하고 가부(跏趺)하여 입멸(入滅)했다. 원화(元和; 806-820) 중 시(諡)하여 대적선사(大寂禪師)라 했고 탑을 가로되 대장엄(大莊嚴)이라 했다
●廉使; 벼슬 이름이니 안찰사의 다른 이름. 당대(唐代) 지방의 사정을 안찰(按察)하던 장관. 송ㆍ원의 염방사(廉訪使) 그리고 후세의 안찰사임. 렴(廉)은 렴(覝; 살펴보다)과 통함.
●中丞; 벼슬 이름. 한대(漢代) 어사대부 아래 양승(兩丞)을 설립했으니 하나는 명칭이 어사승(史中丞)이며 하나는 명칭이 어사중승(御史中丞)이었음. 중승(中丞)은 전중(殿中)에 거처함으로 인해 이름을 얻었음. 난대(蘭臺)의 도적(圖籍)과 비서(祕書)를 장관했고 밖으론 부자사(部刺史)를 감독하면서 안으론 시어사(侍御史)를 거느렸음. 공경(公卿)의 주사(奏事)를 접수하고 거핵(擧劾; 허물을 들어 탄핵함)하고 안장(按章; 奏章을 안험함)했음 [백도백과].
●宗主; 대중이 경앙하는 바며 귀의하는 자니 어떤 한 방면의 대표와 권위.
●尊候; 견면(見面)했을 때 상대방의 신체나 기거(起居) 등의 정황을 문후(問候)하는 경사(敬詞).
南嶽下二世
馬祖一禪師法嗣
洪州百丈山懷海禪師者
福州長樂人也 姓王氏 丱歲離塵 三學該練 屬大寂闡化江西 乃傾心依附 與西堂智藏南泉普願同號入室 時三大士爲角立焉 師侍馬祖行次 見一羣野鴨飛過 祖曰 是甚麽 師曰 野鴨子 祖曰 甚處去也 師曰 飛過去也 祖遂把師鼻扭 負痛失聲 祖曰 又道飛過去也 師於言下有省 却歸侍者寮 哀哀大哭 同事問曰 汝憶父母邪 師曰 無 曰 被人罵邪 師曰 無 曰 哭作甚麽 師曰 我鼻孔被大師扭得痛不徹 同事曰 有甚因緣不契 師曰 汝問取和尙去 同事問大師曰 海侍者有何因緣不契 在寮中哭 告和尙爲某甲說 大師曰 是伊會也 汝自問取他 同事歸寮曰 和尙道汝會也 敎我自問汝 師乃呵呵大笑 同事曰 適來哭 如今爲甚却笑 師曰 適來哭 如今笑 同事罔然 次日馬祖陞堂 衆纔集 師出卷却席 祖便下座 師隨至方丈 祖曰 我適來未曾說話 汝爲甚便卷却席 師曰 昨日被和尙扭得鼻頭痛 祖曰 汝昨日向甚處留心 師曰 鼻頭今日又不痛也 祖曰 汝深明昨日事 師作禮而退 師再參侍立次 祖目視繩牀角拂子 師曰 卽此用 離此用 祖曰 汝向後開兩片皮 將何 爲人 師取拂子竪起 祖曰 卽此用 離此用 師挂拂子於舊處 祖振威一喝 師直得三日耳聾 自此雷音將震 檀信請於洪州新吳界 住大雄山 以居處巖巒峻極故號百丈 旣處之未朞月 參玄之賓 四方麏至 潙山檗當其首
●百丈山; 位於江西奉新縣西北 靠近洞山 巖巒峻極 故號百丈 以山勢超群 故又稱大雄山或大雄峰 唐德宗興元元年(784) 懷海入山 創建鄕導庵(卽百丈寺) 大揚禪風 當時有黃檗希運 潙山靈祐 百丈涅槃等才智之士雲集於此 遂營建法堂 僧堂等 竝折衷大小乘律典 制訂禪林淸規(百丈淸規) 自此 始有獨立 完整之禪院 而於此之前 禪僧多居於律寺 憲宗元和九年(814)懷海入寂 門人涅槃繼掌住持之職 未久 奉唐宣宗敕命 興建大智聖禪寺 成爲禪宗道場 宋代以後 優秀禪僧輩出 如 明照安 道恒 寶月 智贇 惟政 元肅 惟古 淨悟等師相繼住寺 元文宗至順元年(1330) 東陽德輝重修法堂 堂上設天下師表閣 以供奉懷海之像 順帝至元元年(1335) 重輯百丈淸規 頒行於全國禪林 百丈山因此淸規而著稱於世 明英宗正統七年(1442) 沙門忠智再編淸規 崇禎年間(1628-1644) 瑞白明雪住寺 撰闢語 闢妄說各一篇 駁斥費隱通容之說 淸世祖順治年間(16 44-1661) 爲霖道霈來此弘法 現今尙存之古蹟有涅槃禪師碑 木人塚 黃犬塚 野狐巖 大義石 及柳公權所書天下師表等字之大石碑 [宋高僧傳十 傳燈錄六 同九 同二十 同二十五 五燈會元續略二 大明一統志四十九 古今圖書集成山川典一三六]
●福州; 今福建省福州 南北朝時代晉安 隋代建安 唐代稱福州 附近有雪峰山
●離塵; 離開塵世離塵脫俗 袈裟的別稱
●該練; 博通熟習
●角立; 一超群 二爭持 角 競爭 比試 此指一
●同事; 指同事一師而共同參禪者
●兩片皮; 有牙齒一具骨耳朶兩片皮之句 兩片皮 禪錄多指口吻也
●喝; 許葛切 (一)叱咤之聲音 唐代以後 禪師常以大喝破除學人之謬見邪執 或發於言語思慮所不及之際 按古尊宿語錄一 百丈曾受馬祖大寂禪師一喝 或卽爲用喝之起源 (二)卽唱之意 禪林中用之 喝參卽告知自己已來到 喝散卽宣告解散大衆 喝火指就寢前點檢各寮 以防火災 此指(一)
●檀信; 施主也 謂修檀行的信士
●參玄; 參究玄義 亦卽參禪
●麏至; 群集而來
홍주(洪州) 백장산(百丈山) 회해선사(懷海禪師)란 자는
복주(福州) 장락(長樂) 사람이며 성이 왕씨(王氏)다. 관세(丱歲; 童年)에 이진(離塵)하고 삼학(三學; 戒學ㆍ定學ㆍ慧學)을 해련(該練)했다. 대적(大寂; 마조의 시호)이 강서(江西)에서 천화(闡化)함을 당해(屬) 이에 마음을 기울여 의부(依附)했다. 서당지장(西堂智藏)ㆍ남천보원(南泉普願)과 더불어 동호(同號)가 입실(入室; 입실하여 嗣法함)이니 당시에 세 대사(大士)가 각립(角立)하였다. 스님이 마조(馬祖)를 모시고 가던 차에 한 무리의 들오리가 날아 지나감을 보았다. 마조가 가로되(祖曰) 이 무엇인고. 사왈(師曰) 들오리(野鴨子; 子는 조사)입니다. 조왈(祖曰) 어느 곳으로 가는가. 사왈 날아 지나갔습니다. 마조가 드디어 스님의 코를 잡아 비틀었다. 아픔을 지고(負) 실성(失聲)했다. 조왈(祖曰) 또 날아 지나갔다고 말해라. 스님이 언하(言下)에 살핌이 있었다. 시자료(侍者寮)에 돌아오자 애애(哀哀)하며 대곡(大哭)했다. 동사(同事)가 물어 가로되 네가 부모를 추억하느냐. 사왈 아니다(無). 가로되 사람에게 욕을 먹었는가. 사왈 아니다. 가로되 곡해서 무엇하는가. 사왈 내 콧구멍이 대사(大師)의 비틀음(扭得)을 입었으나 아픔이 사무치지 못했다. 동사(同事)가 가로되 무슨 인연이 있었기에 계합(契合)치 못했는가. 사왈 네가 화상(和尙)에게 물으러(問取) 가거라. 동사가 대사(大師)에게 물어 가로되 해시자(海侍者)가 무슨 인연이 있어 계합(契合)치 못해 요(寮) 가운데 있으면서 곡합니까. 화상(和尙)에게 고해 모갑(某甲)을 위해 설하시게 했습니다. 대사가 가로되 이는 그가 알았으니 네가 스스로 그에게 물어라(問取). 동사가 요(寮)에 돌아와 가로되 화상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알았다 하시며 나로 하여금 스스로 너에게 묻게 하셨다. 스님이 이에 하하(呵呵; 원음이 하)하며 대소했다. 동사가 가로되 아까(適來)는 곡하더니 여금(如今)엔 무엇 때문에 도리어 웃는가. 사왈 아까는 곡했고 여금엔 웃었다. 동사가 망연(罔然. 어찌할 바를 모름)했다. 다음날 마조(馬祖)가 승당(陞堂)했다. 대중이 겨우 모이자 스님이 나가서 방석(方席)을 걷어버렸다. 조(祖)가 바로 하좌(下座)했다. 스님이 뒤따라 방장(方丈)에 이르자 조왈(祖曰) 내가 아까 일찍이 설화(說話)하지도 못했는데 네가 무엇 때문에 바로 방석을 걷어버렸는가. 사왈 어제 화상(和尙)에게 코(鼻頭; 頭는 조사)를 비틀림을 입어 아픕니다. 조왈(祖曰) 네가 어제 어느 곳을 향해 마음을 머물렀는가. 사왈 코가 오늘은 또 아프지 않습니다. 조왈 네가 깊이 어제의 일을 밝혔구나. 스님이 작례(作禮)하고 물러났다. 스님이 재참(再參)하여 시립(侍立)하던 차에 마조가 눈으로 승상(繩牀) 모퉁이의 불자(拂子)를 보았다. 사왈 이 용에 붙음입니까(卽此用), 이 용을 여읨입니까(離此用). 조왈 네가 향후에 양편피(兩片皮; 입)를 연다면 무엇을 가져 사람을 위하겠는가. 스님이 불자를 취해 세워 일으켰다. 조왈(祖曰) 이 용에 붙음인가, 이용을 여읨인가. 스님이 불자를 구처(舊處)에 걸었다. 마조가 위엄을 떨치며 일할(一喝)했다. 스님이 바로 3일 동안 귀먹음을 얻었다. 이로부터 뇌음(雷音)을 장차 떨치려고(震) 하는데 단신(檀信)이 홍주(洪州) 신오(新吳)의 경계에 청하여 대웅산(大雄山)에 거주했다. 거처의 암만(巖巒)이 준극(峻極)한 연고로써 호해 백장이라 했다. 이미 거처한 지 기월(期月; 온 한 달. 만 한 달)도 안되어 참현지빈(參玄之賓)이 사방에서 균지(麏至)했고 위산(潙山)과 황벽(黃蘗)이 그 수위(首位; 首)에 당했다.
●百丈山; 강서 봉신현(奉新縣) 서북에 위치하며 동산(洞山)을 등져 가까이했음. 바위의 봉우리가 험준(險峻)을 다한지라 고로 호가 백장(百丈)임. 산세가 무리를 초출했기 때문에 고로 또 명칭이 대웅산(大雄山) 혹은 대웅봉(大雄峰)임. 당 덕종(德宗) 흥원 원년(784) 회해(懷海)가 입산하여 향도암(鄕導庵; 곧 百丈寺)을 창건하고 선풍(禪風)을 크게 드날렸음. 당시(當時)에 황벽희운(黃檗希運)ㆍ위산영우(潙山靈祐)ㆍ백장열반(百丈涅槃) 등의 재지(才智)의 사내들이 여기에 운집했고 드디어 법당과 승당 등을 영건(營建)했으며 아울러 대소승(大小乘)의 율전(律典)을 절충(折衷)해 선림청규(禪林淸規; 百丈淸規)를 제정(制訂)했으니 이로부터 비로소 독립된 완정(完整)의 선원(禪院)이 있었음. 이 이전에는 선승이 많이들 율사(律寺)에 거처했음. 헌종 원화 9년(814) 회해(懷海)가 입적하자 문인인 열반(涅槃)이 주지(住持)의 직(職)을 계장(繼掌)했고 오래지 않아 당 선종(宣宗)의 칙명을 받들어 대지성선사(大智聖禪寺)를 흥건(興建)해 선종도량(禪宗道場)을 이루었음. 송대(宋代) 이후 우수한 선승을 배출했으니 예컨대(如) 명조안(明照安)ㆍ도항(道恒)ㆍ보월(寶月)ㆍ지윤(智贇)ㆍ유정(惟政)ㆍ원숙(元肅)ㆍ유고(惟古)ㆍ정오(淨悟) 등의 스님들이 서로 이어 주사(住寺)했음. 원 문종 지순 원년(1330) 동양덕휘(東陽德輝)가 법당을 중수(重修)하고 당상(堂上)에 천하사표각(天下師表閣)을 설립해 회해의 상(像)을 공봉(供奉)했음. 순제 지원 원년(1335) 백장청규(百丈淸規)를 중집(重輯)하여 전국 선림(禪林)에 반행(頒行)했으며 백장산은 이 청규로 인해 세상에 명칭이 두드러졌음. 명 영종 정통 7년(1442) 사문 충지(忠智)가 청규를 재편(再編)했음. 숭정년 간(1628-16 44) 서백명설(瑞白明雪)이 주사(住寺)하며 벽어(闢語)ㆍ벽망설(闢妄說) 각 1편을 지어 비은통용(費隱通容)의 설을 박척(駁斥; 논박하여 배척하다)했음. 청세조 순치년 간(1644–1661) 위림도패(爲霖道霈)가 여기에 와서 홍법했음. 현금(現今)에 아직 존재하는 고적(古蹟)으로는 열반선사비(涅槃禪師碑)ㆍ목인총(木人塚)ㆍ황견총(黃犬塚)ㆍ야호암(野狐巖)ㆍ대의석(大義石) 및 유공권(柳公權)이 쓴 바 천하사표(天下師表) 등 글자의 대석비(大石碑)가 있음. [송고승전10. 전등록6, 동9, 동20, 동25. 오등회원속략2. 대명일통지49. 고금도서집성산천전136].
●福州; 지금의 복건성 복주니 남북조시대의 진안(晉安)이며 수대의 건안(建安)이니 당대에 복주로 일컬었음. 부근에 설봉산이 있음.
●離塵; 진세(塵世)를 떠나고(離開) 이진(離塵)하여 탈속(脫俗)함. 가사(袈裟)의 별칭(別稱).
●該練; 박통(博通)하고 숙습(熟習)함.
●角立; 1. 무리를 초월함. 2. 다투어 가짐. 각(角)은 경쟁이며 비시(比試)임. 여기에선 1을 가리킴.
●同事; 한 스승을 함께 모시며 공동으로 참선하는 자.
●兩片皮; 아치(牙齒; 이빨)는 일구(一具)의 뼈며 이타(耳朶; 귓불)는 양편피란 구가 있음. 양편피는 선록에서 다분히 입술을 가리킴.
●喝; 허갈절(許葛切; 할). (1). 질타(叱咤)의 성음(聲音)이니 당대 이후 선사들이 늘 대할(大喝)로 학인의 유견사집(謬見邪執)을 파제(破除)하거나 혹 언어와 사려가 미치지 않는 바의 제애(際涯)를 계발(啓發)했음. 고존숙어록1을 안험컨대 백장이 일찍이 마조대적선사(馬祖大寂禪師)의 1할(喝)을 받았는데 혹 곧 용할(用喝)의 기원(起源)이 됨. (2). 곧 창(唱)의 뜻이니 선림 중에서 이를 씀. 할참(喝參)은 자기가 이미 내도(來到)했음을 고지함이며 할산(喝散)은 곧 대중을 해산함을 선고함이며 할화(喝火)는 취침 전 각료(各寮)를 점검하며 화재를 방지함을 가리킴. 여기에선 (1)을 가리킴.
●檀信; 시주(施主)니 이르자면 단행(檀行)을 닦는 신사(信士).
●參玄; 현의(玄義)를 참구함. 또한 곧 참선임.
●麏至; 무리가 모여 옴.
一日師謂衆曰 佛法不是小事 老僧昔被馬大師一喝 直得三日耳聾 黃檗聞擧 不覺吐舌 師曰 子已後莫承嗣馬祖去麽 檗曰 不然 今日因和尙擧 得見馬祖大機之用 然且不識馬祖 若嗣馬祖 已後喪我兒孫 師曰 如是如是 見與師齊 減師半德 見過於師 方堪傳授 子甚有超師之見 檗便禮拜〈潙山問仰山 百丈再參馬祖因緣 此二尊宿意旨如何 仰云 此是顯大機大用 潙云 馬祖出八十四人善知識 幾人得大機 幾人得大用 仰云 百丈得大機 黃檗得大用 餘者盡是唱導之師 潙云 如是如是〉 有僧哭入法堂來 師曰 作麽 曰 父母俱喪 請師選日 師曰 明日來 一時埋却 潙山五峯雲巖侍立次 師問潙山 併却咽喉唇吻 作麽生道 山曰 却請和尙道 師曰 不辭向汝道 恐已後喪我兒孫 又問五峯 峯曰 和尙也須併却 師曰 無人處斫額望汝 又問雲巖 巖曰 和尙有也未 師曰 喪我兒孫 師謂衆曰 我要一人傳語西堂 阿誰去得 五峯曰 某甲去 師曰 汝作麽生傳語 峯曰 待見西堂卽道 師曰 見後道甚麽 峯曰 却來說似和尙
●大機; 指微妙幽玄 不落迹象的禪義
●唱導; 宣說道法 引導學人 唱導一詞 出自法華經五從地踊出品 是四菩薩 於其衆中 最爲上首唱導之師 法華經三大部補注九云 啓發法門稱爲唱 引接物機 稱爲導
스님이 어느 날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불법은 이 소사(小事)가 아니다. 노승(老僧)이 지난날(昔) 마대사의 1할(喝)을 입고(被) 바로 3일 동안 귀먹음(耳聾)을 얻었다. 황벽(黃檗)이 문거(聞擧)하고는 불각에 토설(吐舌)했다. 사왈(師曰) 네(子)가 이후에 마조를 승사(承嗣)하여 가지 않겠는가. 황벽이 가로되 그렇지 않습니다. 금일 화상의 거(擧)로 인해 마조의 대기(大機)의 용(用)을 득견(得見)했습니다. 그러하여 또 마조를 알지 못하면서 만약 마조를 잇는다면 이후에 나의 아손(兒孫)을 상(喪)할 것입니다. 사왈(師曰) 이와 같고 이와 같다. 지견이 스승과 가지런하면 스승의 반덕(半德)을 감하고 지견이 스승을 초과해야 비로소 전수를 감내한다(見過於師 方堪傳授). 자네는 매우 스승을 초월하는 지견이 있다. 황벽이 바로 예배했다〈위산이 앙산에게 묻되 백장이 마조를 再參한 인연에 이 두 존숙의 의지가 무엇인가. 仰云 이것은 이 大機大用을 나타내었습니다. 潙云 마조가 84인의 선지식을 배출했는데 몇 사람이 大機를 얻었으며 몇 사람이 大用을 얻었는가. 仰云 백장이 대기를 얻으셨고 황벽이 대용을 얻으셨습니다. 나머지는 다 이 唱導의 스님들입니다. 潙云 이와 같고 이와 같다〉. 어떤 중이 곡(哭)하며 법당으로 들어왔다. 사왈 왜냐(作麽). 가로되 부모가 모두 죽었으니(喪) 스님의 선일(選日; 擇日)을 청합니다. 사운 내일(明日) 오너라, 일시에 매각(埋却)하겠다. 위산(潙山)ㆍ오봉(五峯)ㆍ운암(雲巖)이 시립(侍立)하던 차(次)에 스님이 위산에게 묻되 목구멍(咽喉)과 입술(唇吻)을 닫아버리고(併却) 어떻게 말하겠는가. 위산(潙山)이 가로되 도리어 화상의 말씀을 청합니다. 사왈 너에게 말해 줌은 사양하지 않겠으나 이후에 나의 아손을 상(喪)할까 염려한다. 또 오봉(五峯)에게 묻자 오봉이 가로되 화상도 또한 모름지기 닫아버리십시오. 사왈 사람이 없는 곳에서 작액(斫額)하고 너를 바라본다. 또 운암(雲巖; 曇晟)에게 묻자 운암이 가로되 화상은 있습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나의 아손을 상(喪)했다. 스님이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내가 1인이 서당(西堂)에게 전어(傳語)함을 요하나니 누가(阿誰) 감을 얻겠는가. 오봉(五峯)이 가로되 모갑이 가겠습니다. 사왈 네가 어떻게(作麽生) 전어(傳語)하겠느냐. 봉왈(峯曰) 서당을 상견(相見; 見)함을 기다렸다가 곧 말하겠습니다. 사왈 상견한 후 무엇이라고 말하겠느냐(道甚麽). 봉왈(峯曰) 돌아와서(却來) 화상에게 설해 드리겠습니다(說似).
●大機; 미묘하고 유현(幽玄)하여 적상(迹象)에 떨어지지 않는 선의 뜻을 가리킴.
●唱導; 도법을 선설(宣說)하여 학인을 인도(引導)함. 창도(唱導)의 1사(詞)는 법화경5 종지용출품으로부터 나옴. 이 4보살은 그 대중 가운데에 가장 상수(上首)의 창도지사(唱導之師)가 된다. 법화경삼대부보주9에 이르되 법문을 계발(啓發)함을 일컬어 창(唱)이라 하고 물기(物機)를 인접(引接)함을 일컬어 도(導)라 한다.
師每上堂 有一老人隨衆聽法 一日衆退 唯老人不去 師問 汝是何人 老人曰 某非人也 於過去迦葉佛時 曾住此山 因學人問 大修行人還落因果也無 某對云 不落因果 遂五百生墮野狐身 今請和尙代一轉語 貴脫野狐身 師曰 汝問 老人曰 大修行人還落因果也無 師曰 不昧因果 老人於言下大悟 作禮曰 某已脫野狐身 住在山後 敢乞依亡僧津送 師令維那白椎告衆 食後送亡僧 大衆聚議 一衆皆安 涅槃堂又無病人 何故如是 食後師領衆至山後巖下 以杖挑出一死野狐 乃依法火塟 師至晩上堂 擧前因緣 黃檗便問 古人錯祇對一轉語 墮五百生野狐身 轉轉不錯 合作箇甚麽 師曰 近前來 向汝道 檗近前 打師一掌 師拍手笑曰 將謂胡鬚赤 更有赤鬚胡〈潙山擧問仰山 仰曰 黃檗常用此機 潙曰 汝道天生得 從人得 仰曰 亦是稟受師承 亦是自性宗通 潙曰 如是如是〉 時潙山在會下作典座 司馬頭陀擧野狐話問典座 作麽生 座撼門扇三下 司馬曰 大麤生 座曰 佛法不是這箇道理
●一轉語; 一句或一則機語 多指應對語 轉 量詞 相當于回 次
●貴; 一希望 貴 欲也 二使 使得 此指二
●津送; 津 卽渡口 禪家稱送葬爲津送 含有二義 本乃送人至津而止之謂 後則用於送亡者 蓋以印度人之習俗 運死者至河津 使足浸於水 後於河邊茶毘 或流遺骨於河水之中 又因人之逝 猶如舟之發津而人送之 此外 送生人至津渡 亦稱津送
●涅槃堂; 又作延壽堂 省行堂 無常院 將息寮 安置老病僧人
●宗通; 禪門自悟徹底云宗通 說法自在曰說通 宗說俱通爲大宗師 ▲楞伽經三 佛告大慧 一切聲聞緣覺菩薩 有二種通相 謂宗通說通 同註曰 宗者道之本 說者敎之跡
●司馬頭陀; 祖庭事苑六曰 漢有複姓五氏 司馬司功司徒司宼司空 竝以官爲氏 古沙門尙從俗姓 或從師姓 始道安法師以沙門從佛出家 方稱釋氏 今村俗猶以俗姓稱吾儕者多矣
스님이 매번 상당하매 한 노인이 있어 대중 따라 청법(聽法)했다. 어느 날 대중이 물러갔는데 오직 노인만 가지 않았다. 스님이 묻되 너는 이 어떤 사람이냐. 노인이 가로되 모(某)는 사람이 아닙니다. 과거 가섭불 때 일찍이 이 산에 거주했습니다. 학인이 묻되 크게 수행한 사람도 도리어 인과에 떨어집니까 또는 아닙니까 모(某)가 대답해 이르되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不落因果) 함으로 인해 드디어 5백 생에 들여우의 몸에 떨어졌습니다. 이제 화상에게 일전어(一轉語)를 대체(代替)하기를 청하여 들여우의 몸을 벗게(貴) 하겠습니다. 사왈(師曰) 네가 물어라. 노인이 가로되 크게 수행한 사람도 도리어 인과에 떨어집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인과에 매(昧)하지 않는다(不昧因果). 노인이 언하에 대오했다. 작례(作禮)하고 가로되 모(某)가 이미 들여우의 몸을 벗어 산 뒤에 주재(住在)합니다. 감히 비옵나니(乞) 망승(亡僧)의 진송(津送)에 의하십시오. 스님이 유나(維那)를 시켜 백추(白椎)케 하고 대중에게 고하되 식후에 망승을 보낼 것입니다. 대중이 모여 의논하기를 일중(一衆)이 다 편안하고 열반당(涅槃堂)에도 또 병인(病人)이 없거늘 무슨 연고로 이와 같은가. 식후에 스님이 대중을 거느리고 산 뒤의 바위 아래에 이르러 주장자로 한 죽은 들여우를 들어내었고 이에 의법(依法)히 화장했다. 스님이 저녁에 이르러 상당해 앞의 인연을 들었다. 황벽(黃檗)이 바로 묻되 고인이 일전어(一轉語)를 틀리게 지대(祇對; 應對)해 5백 생에 들여우의 몸으로 떨어졌거니와 단지 전전(轉轉; 轉은 量詞니 대답할 적마다의 뜻)이 틀리지 않았다면 합당히 이(箇) 무엇을 지었을까요. 사왈 앞으로 가까이 오너라 너를 향해 말하리라. 황벽이 앞으로 가까이 가서 스님을 일장(一掌) 때렸다. 스님이 박수(拍手)하고 웃으며 가로되 장차 오랑캐 수염이 붉다 하였더니(將謂胡鬚赤) 다시 붉은 수염 오랑캐가 있구나〈潙山이 들어 仰山에게 물었다. 仰曰 황벽이 늘 이 機를 쓰셨습니다. 潙曰 네가 말하라 天生으로 얻으셨는가, 사람으로부터 얻으셨는가. 仰曰 또한 이는 稟受하여 師承하셨으며 또한 이는 自性으로 宗通하셨습니다. 潙曰 이와 같고 이와 같다〉. 때에 위산(潙山)이 회하(會下)에 있으면서 전좌(典座) 노릇을 했는데 사마두타(司馬頭陀)가 야호화(野狐話)를 들어 전좌에게 묻되 어떤가(作麽生). 전좌가 문짝을 세 번 흔들었다. 사마가 가로되 너무 거칠다(太麤生; 生은 조사). 전좌가 가로되 불법은 이 저개(這箇) 도리가 아니다.
●一轉語; 1구 혹은 1칙의 기어(機語). 다분히 응대어를 가리킴. 전(轉)은 양사니 회(回)ㆍ차(次)에 상당함.
●貴; 1. 희망이니 귀(貴)는 욕(欲)임. 2. 사(使)임. 사득(使得). 여기에선 2를 가리킴.
●津送; 진(津)은 곧 나루니 선가에서 송장(送葬)을 일컬어 진송이라 함. 두 뜻을 함유했음. 본래는 곧 송인(送人)하여 나루에 이르면 그침을 말했음이나 후에 곧 망자를 송별함에 사용했음. 대개 인도인의 습속(習俗)에 사자(死者)를 운송해 강나루에 이르러 발을 물에 잠기게 하고는 후에 하변에서 다비하거나 혹은 유골을 하수(河水) 가운데 떠내려가게 함. 또 사람이 서거함은 마치 배가 나루에서 출발함과 같음으로 인해 사람이 그것을 송별함. 이 밖에 산 사람을 송별하며 나루에 이름도 또한 호칭이 진송(津送)임.
●涅槃堂; 또 연수당(延壽堂)ㆍ성행당(省行堂)ㆍ무상원(無常院)ㆍ장식료(將息寮)로 지음. 늙고 병든 승인을 안치함.
●宗通; 선문에서 스스로 깨달아 철저함을 이르되 종통이며 설법이 자재함을 가로되 설통(說通)이며 종설(宗說)을 다 통해야 대종사가 됨. ▲릉가경3. 불타가 대혜에게 고하셨다. 일체 성문ㆍ연각ㆍ보살이 2종의 통상(通相)이 있다. 이르자면 종통과 설통이다. 동 주(註)에 가로되 종(宗)이란 것은 도의 근본이며 설(說)이란 것은 교(敎)의 자취다.
●司馬頭陀; 조정사원6에 가로되 한(漢)에 복성(複姓) 5씨가 있었다. 사마ㆍ사공ㆍ사도ㆍ사구ㆍ사공이니 모두 관직으로 씨를 삼았다. 옛날의 사문은 오히려 속성(俗姓)을 좇았으며 혹은 스승의 성을 좇기도 했으나 처음 도안법사(道安法師)가 사문은 불타를 좇아 출가했다 하여 비로소 석씨(釋氏)로 일컬었음. 지금도 촌속(村俗; 시골의 풍속)으로 오히려 속성으로써 우리의 무리(儕는 무리 제. 僧徒를 가리킴)를 일컬음이 많음.
問 如何是奇特事 師曰 獨坐大雄峯 僧禮拜 師便打 上堂 靈光獨耀 迥脫根塵 體露眞常 不拘文字 心性無染 本自圓成 但離妄緣 卽如如佛 問 如何是佛 師曰 汝是阿誰 曰 某甲 師曰 汝識某甲否 曰 分明箇 師乃擧起拂子曰 汝還見麽 曰 見 師乃不語 普請钁地次 忽有一僧聞鼓鳴 擧起钁頭 大笑便歸 師曰 俊哉 此是觀音入理之門 師歸院乃喚其僧問 適來見甚麽道理 便恁麽 曰 適來肚饑 聞鼓聲 歸喫飯 師乃笑 問 依經解義 三世佛冤 離經一字 如同魔說時如何 師曰 固守動靜 三世佛冤 此外別求 卽同魔說 因僧問西堂 有問有答卽且置 無問無答時如何 堂曰 怕爛却那 師聞擧 乃曰 從來疑這箇老兄 曰 請和尙道 師曰 一合相不可得 師謂衆曰 有一人長不喫飯不道饑 有一人終日喫飯不道飽 衆無對 雲巖問 和尙每日區區爲阿誰 師曰 有一人要 巖曰 因甚麽不敎伊自作 師曰 他無家活
●體露; 事物全然顯出
●如如佛; 覺悟如如理體之佛也 又佛體卽如如之理也
●普請; 一禪林集衆作務曰普請 僧史略上曰 共作者 謂之普請 二但集衆云普請 此指一
●觀音入理之門; 楞嚴經六 爾時觀世音菩薩卽從座起 頂禮佛足而白佛言 世尊憶念我昔無數恒河沙劫 於時有佛出現於世名觀世音 我於彼佛發菩提心 彼佛敎我從聞思修入三摩地 初於聞中入流亡所 所入旣寂動靜二相了然不生 如是漸增聞所聞盡 盡聞不住覺所覺空 空覺極圓空所空滅 生滅旣滅寂滅現前
●一合相; 指由衆緣和合而成之一件事物 以佛敎之觀點言之 世間之一切法 皆爲一合相 ▲三藏法數一 一合相[出金剛經] 一合相者 蓋言衆塵和合而爲一世界也 世界本空 微塵不有 但衆生不了 妄執爲實 若是實有 卽應世界不可分爲微塵 若是實無 不應微塵合爲世界 是知執有執無 皆不當理 經云 如來說一合相 卽非一合相 是名一合相是也
●區區; 一奔走勞碌 二卑屈也 自謙也 [禪林寶訓音義]
묻되 무엇이 이 기특사(奇特事)입니까. 사왈 홀로 대웅봉(大雄峯)에 앉았다. 중이 예배하자 스님이 바로 때렸다. 상당(上堂) 영광(靈光)이 독요(獨耀)하여 근진(根塵)을 멀리 벗어났나니 진상(眞常)이 체로(體露)하여 문자에 구애되지 않는다. 심성(心性)이 물듦 없는지라 본래 스스로 원성(圓成)했나니 단지 망연(妄緣)만 여읜다면 곧 여여불(如如佛)이다.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너는 이 누구냐(阿誰). 가로되 모갑입니다. 사왈 네가 모갑을 아느냐. 가로되 분명합니다(分明箇; 箇는 조사). 스님이 이에 불자를 들어 일으키고 가로되 네가 도리어 보느냐. 가로되 봅니다. 스님이 이에 말하지 않았다. 보청(普請)하여 괭이로 땅을 매던 차에 홀연히 어떤 1승(僧)이 북이 욺(鼓鳴)을 듣고 괭이(钁頭; 頭는 조사)를 들어 일으키고 크게 웃으며 바로 돌아갔다. 사왈 준재(俊哉)로다, 이것은 이 관음입리지문(觀音入理之門)이다. 스님이 귀원(歸院)하여 이에 그 중을 불러 묻되 적래(適來; 아까) 무슨 도리를 보았기에 바로 이러했는가(恁麽). 가로되 아까 배가 고팠는데(肚饑) 고성(鼓聲)을 들은지라 돌아가 끽반(喫飯)했습니다. 스님이 이에 웃었다. 묻되 경에 의해 뜻을 해석하면 삼세불(三世佛)이 원망(怨望; 冤)하고 경의 1자(字)라도 여의면 마설(魔說)과 여동(如同; 같음)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동정(動靜)을 고수(固守)하면 삼세불이 원망하고 이 밖에 달리 구하면 곧 마설(魔說)과 같다. 중이 서당(西堂)에게 묻되 유문유답(有問有答)은 곧 차치(且置)하고 무문무답(且置) 시에 어떻습니까 함으로 인해 서당이 가로되 난각(爛却; 문드러져버리다)을 두려워하느냐. 스님이 문거(聞擧)하고 이에 가로되 종래(從來)에 저개(這箇; 箇는 조사) 노형(老兄)을 의심했다. 가로되 화상의 말씀을 청합니다. 사왈 일합상(一合相)은 불가득이다. 스님이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어떤 한 사람은 늘 끽반(喫飯)하지 않지만 배고프다고 말하지 않고 어떤 한 사람은 종일 끽반하지만 배부르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중이 대답이 없었다. 운암(雲巖; 曇晟)이 묻되 화상은 매일 구구(區區)하시니 누구(阿誰)를 위합니까. 사왈 한 사람이 요(要)함이 있다. 운암이 가로되 무엇 때문에 그로 하여금 자작(自作)하게 하지 않습니까. 사왈 그는 가활(家活; 家産)이 없다.
●體露; 사물이 전연(全然; 완전)히 현출(顯出)함.
●如如佛; 여여의 이체(理體)를 각오(覺悟)한 불임. 또 불체(佛體)가 곧 여여의 이(理)임.
●普請; 1. 선림에서 대중을 소집해 작무(作務)함을 가로되 보청임. 승사략상에 가로되 공동으로 작업하는 것을 일컬어 보청이다. 2. 다만 대중을 소집함을 일러 보청이라 함. 여기에선 1을 가리킴.
●觀音入理之門; 릉엄경6. 이때 관세음보살이 곧 자리로부터 일어나 불족에 정례하고 불타에게 사뢰어 말하되 세존이시여, 억념컨대 내가 옛적 무수한 항하사겁에 때에 어떤 불타가 세상에 출현하셨으니 이름이 관세음입니다. 내가 그 불타에게 보리심을 발했는데 그 불타가 나로 하여금 문사수(聞思修)로부터 삼마지(三摩地)에 들게 하셨습니다. 처음 문중(聞中)에 입류(入流)하여 망소(亡所)하였으며(聲塵을 따르지 않고 法流에 문득 들어가서 그 所入이 없어짐) 소입(所入)이 이미 고요하매 동정(動靜) 2상(相)이 요연(了然; 분명한 모양)히 나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점차 증가하여 문(聞)과 소문(所聞)이 진(盡)하고 진문(盡聞)도 머물지 않으며 각과 소각이 공(空)하고 공각(空覺)이 극히 원만해져 공(空)과 소공(所空)도 없어졌으며 생멸이 이미 없어지매 적멸이 현전했습니다.
●一合相; 중연(衆緣)의 화합으로 인하여 1건(件)의 사물을 형성함을 가리킴. 불교의 관점으로써 이를 말하자면 세간의 일체법이 다 일합상이 됨. ▲삼장법수1 일합상[출금강경] 일합상(一合相)이란 것은 대개 말하자면 중진(衆塵)이 화합하여 일세계가 됨이다. 세계가 본공(本空)이며 미진(微塵)이 불유(不有)지만 단지 중생이 깨치지 못해 망령되이 집착하여 실(實)로 삼는다. 만약 이것이 실유(實有)라면 곧 응당 가히 세계를 나누어 미진(微塵)으로 만들지 못하며 만약 이것이 실무(實無)라면 응당 미진을 합해 세계로 만들지 못한다. 이로 알지니 집유집무(執有執無)는 다 이치에 합당하지 않다. 경에 이르되 여래가 설한 일합상은 곧 일합상이 아닌 이 이름이 일합상이라 한 게 이것이다.
●區區; 1. 분주하며 노록(勞碌; 게을리 하거나 쉬지 아니하고 꾸준히 힘을 다함)함. 2. 비굴임. 스스로 겸손함임 [선림보훈음의].
問 如何是大乘頓悟法要 師曰 汝等先歇諸緣 休息萬事 善與不善 世出世間 一切諸法 莫記憶 莫緣念 放捨身心 令其自在 心如木石 無所辨別 心無所行 心地若空 慧日自現 如雲開日出相似 但歇一切攀緣 貪嗔愛取 垢淨情盡 對五欲八風不動 不被見聞覺知所縛 不被諸境所惑 自然具足神通妙用 是解脫人 對一切境 心無靜亂 不攝不散 透過一切聲色 無有滯礙 名爲道人 善惡是非俱不運用 亦不愛一法 亦不捨一法 名爲大乘人 不被一切善惡空有垢淨有爲無爲世出世間福德智慧之所拘繫 名爲佛慧 是非好醜是理非理 諸知見情盡 不能繫縛 處處自在 名爲初發心菩薩 便登佛地 問 對一切境 如何得心如木石去 師曰 一切諸法 本不自言空 不自言色 亦不言是非垢淨 亦無心繫縛人 但人自虛妄計著 作若干種解會 起若干種知見 生若干種愛畏 但了諸法不自生 皆從自己一念 妄想顚倒 取相而有知 心與境本不相到 當處解脫 一一諸法當處寂滅 當處道場 又本有之性不可名目 本來不是凡不是聖 不是垢淨 亦非空有 亦非善惡 與諸染法相應 名人天二乘界 若垢淨心盡 不住繫縛 不住解脫 無一切有爲無爲縛脫心量處 於生死其心自在 畢竟不與諸妄虛幻塵勞蘊界生死諸入和合 逈然無寄 一切不拘 去留無礙 往來生死 如門開相似 夫學道人 若遇種種苦樂 稱意不稱意事 心無退屈 不念名聞利養衣食 不貪功德利益 不爲世間諸法之所滯礙 無親無愛 苦樂平懷 麤衣遮寒 糲食活命 兀兀如愚如聾 稍有相應分 若於心中廣學知解 求福求智 皆是生死 於理無益 却被知解境風之所漂溺 還歸生死海裏 佛是無求人 求之卽乖 理是無求理 求之卽失 若著無求 復同於有求 若著無爲 復同於有爲 故經云 不取於法 不取非法 不取非非法 又云 如來所得法 此法無實無虛 若能一生心如木石相似 不被陰界五欲八風之所漂溺 卽生死因斷 去住自由 不爲一切有 爲因果所縛 不被有漏所拘 他時還以無因縛爲因 同事利益 以無著心應一切物 以無礙慧解一切縛 亦云應病與藥
●出世間; 略稱出世 超出世間之意 卽出離有漏繫縛之無漏解脫法 爲世間之對稱
●五欲; 一色欲 聲欲 香欲 味欲 觸欲 二財欲 色欲 飮食欲 名欲 睡眠欲 ▲祖庭事苑四 五欲 謂色聲香味觸 大論(大智度論三十五)云 世間中五欲 無不愛樂 於五欲中 觸爲第一 能繫人心 如人墮在深泥 難可救濟 若受餘欲 猶不失智慧 婬欲會時 身心荒迷 無所省覺 深著自沒 是故出家法中 婬戒在初
●八風; 又作八法 八世風 謂此八法 爲世間所愛所憎 能煽動人心 故以風爲喩 稱爲八風 一利 二衰 三毁 四譽 五稱 六譏 七苦 八樂
●初發心; 初發求菩提之心也
●心量; 謂心起妄想 對外境起種種度量 此爲凡夫之心量 如來眞證之心量 則遠離一切所緣能緣 而住於無心 [楞伽經三]
●利養; 可以養身的物質利益
●兀兀; 混沌無知 隨性自在的樣子
●應病與藥; 佛菩薩等 對衆生種種之機 說種種之敎 猶之醫應人之病而與藥也
묻되 무엇이 이 대승(大乘)의 돈오(頓悟)의 법요(法要)입니까. 사왈(師曰) 너희 등은 먼저 제연(諸緣)을 쉬고(歇) 만사를 휴식(休息)하라. 선(善)과 불선(不善), 세(世; 세간)와 출세간(出世間)의 일제제법(一切諸法)을 기억하지 말고 연념(緣念; 想念)하지 말아라. 신심(身心)을 방사(放捨)하여 그것으로 하여금 자재하게 하라. 마음이 목석과 같아서 변별(辯別)하는 바가 없고 마음에 행하는 바가 없고 심지(心地)가 만약 공(空)하면 혜일(慧日)이 스스로 나타남이 마치 구름이 개이매 해가 나옴과 상사(相似)하다. 단지 일체의 반연(攀緣)을 쉬고(歇) 탐진(貪嗔)ㆍ애취(愛取)ㆍ구정(垢淨)의 정(情)이 다해야 5욕(五欲)과 8풍(八風)을 대하여 동(動)하지 않고 견문각지(見聞覺知)에 계박(繫縛)되는 바를 입지 않고 제경(諸境)에 미혹되는 바를 입지 않아 자연히 신통과 묘용(妙用)을 구족하리니 이는 해탈인(解脫人)이다. 일체의 경계를 상대해 마음에 정란(靜亂)이 없고 불섭불산(不攝不散)하여 일체의 성색(聲色)을 투과해 체애(滯礙)가 있지 않아야 이름하여 도인(道人)이다. 선악과 시비를 모두 운용하지 않고 또한 1법도 좋아하지 않고 또한 1법도 버리지 않아야 이름하여 대승인(大乘人)이다. 일체의 선악ㆍ공유(空有)ㆍ구정(垢淨)ㆍ유위(有爲)ㆍ무위(無爲)ㆍ세(世)ㆍ출세간(出世間)의 복덖과 지혜에 구계(拘繫)되는 바를 입지 않아야 이름하여 불혜(佛慧)다. 시비와 호추(好醜), 시리(是理)와 비리(非理)의 모든 지견의 정(情)이 없어져 능히 계박(繫縛)하지 못하고 처처에 자재(自在)해야 이름하여 초발심(初發心) 보살이며 바로 불지(佛地)에 오른다. 묻되 일체 경계를 대해 어찌해야 마음이 목석(木石)과 같아짐을 얻습니까. 사왈 일체제법(一切諸法)이 본래 스스로 공(空)했다고 말하지 않으며 스스로 색이라고 말하지 않으며 또한 시비와 구정(垢淨)을 말하지 않으며 또한 마음이 사람을 계박(繫縛)함이 없다. 단지 사람이 스스로 허망하게 계착(計著)하여 약간(若干) 종류의 해회(解會)를 짓고 약간 종류의 지견을 일으키고 약간 종류의 애외(愛畏)를 내거니와(生) 단지 제법(諸法)이 스스로 생하지 않고 모두 자기의 일념으로 좇아 망상전도(妄想顚倒)로 취상(取相)하여 지(知)가 있음임을 깨달으면(了) 마음과 경계가 본래 서로 이르지(到) 않아서 당처(當處)에서 해탈하고 하나하나의 제법이 당처에서 적멸(寂滅)이며 당처가 도량(道場)이다. 또 본유지성(本有之性)은 가히 명목(名目)하지 못하며 본래 이 범(凡)이 아니며 이 성(聖)이 아니며 이 구정(垢淨)이 아니며 또한 공유(空有)가 아니며 또한 선악이 아니지만 여러 염법(染法)과 상응(相應)함을 이름해 인천(人天)과 이승계(二乘界)다. 만약 구정(垢淨)의 마음이 없어지면 계박에 머물지 않고 해탈에 머물지 않고 일체의 유위와 무위가 심량(心量)을 박탈(縛脫)하는 곳이 없고 생사에 그 마음이 자재하다. 필경 모든 허망한 허환(虛幻)의 진로(塵勞)ㆍ온계(蘊界; 五蘊과 十八界)ㆍ생사ㆍ제입(諸入; 十二入)과 화합하지 않으며 형연(逈然)히 맡김(寄)이 없어 일체에 구애되지 않으며 거류(去留)에 무애(無礙)하며 생사에 왕래함이 마치 문을 엶과 상사하다. 무릇 학도인(學道人)이 만약 갖가지 고락(苦樂)이나 뜻에 맞거나(稱意) 뜻에 맞지 않는 일을 만나더라도 마음에 퇴굴(退屈)함이 없으며 명문(名聞; 名聲)ㆍ이양(利養)ㆍ의식(衣食)을 사념하지 않으며 공덕과 이익을 탐하지 않으며 세간의 제법(諸法)에 체애(滯礙)되는 바가 되지 않으며 무친무애(無親無愛)하며 고락(苦樂)이 평회(平懷; 평상심)며 거친(麤) 옷으로 추위를 가리고 거친(糲) 음식으로 활명(活命)하며 올올(兀兀)하여 어리석은 듯하고 귀머거리 같아야(如愚如聾) 조금(稍) 상응할 분한(分限)이 있다. 만약 심중에 지해(知解)를 광학(廣學)하고 구복구지(求福求智)하면 모두 이 생사며 이치에 무익하며 도리어 지해(知解)의 경풍(境風)에 표닉(漂溺)함을 입고 도리어 생사해(生死海) 속으로 돌아간다. 부처는 이 구함이 없는 사람이니 이를 구하면 곧 어긋나고(乖) 이치(理致; 理)는 이 구함이 없는 이치니 이를 구하면 곧 잃으며 만약 무구(無求)에 집착하면 다시 유구(有求)와 한가지며 만약 무위(無爲)에 집착하면 다시 유위와 한가지다. 고로 경(금강경)에 이르되 법을 취하지 않고 비법(非法)을 취하지 않고 비비법(非非法)을 취하지 않는다. 또 이르되 여래가 얻은 바 법, 이 법은 실(實)도 없고 허(虛)도 없다. 만약 능히 일생토록 마음이 마치 목석과 상사(相似)하여 음계(陰界; 五陰과 十八界)ㆍ5욕(欲)ㆍ8풍(風)에 표닉(漂溺)하는 바를 입지 않으면 곧 생사인(生死因)이 끊어지고 거주(去住)에 자유며 일체의 유위(有爲)의 인과에 계박(繫縛)되는 바가 되지 않으며 유루(有漏)에 구속되는 바를 입지 않으리니 그때(他時)엔 도리어 무인박(無因縛)을 인(因)으로 삼아 동사(同事)로 이익(利益)하리라. 무착심(無著心)으로써 일체물(一切物)에 응하고 무애혜(無礙慧)로써 일체박(一切縛)을 풀 것이니 또한 이르되 응병여약(應病與藥)이다.
●出世間; 약칭이 출세니 세간을 초출함의 뜻. 곧 유루(有漏)의 계박(繫縛)을 출리(出離)한 무루(無漏)의 해탈법. 세간의 대칭이 됨.
●五欲; 1. 색욕ㆍ성욕ㆍ향욕ㆍ미욕ㆍ촉욕. 2. 재욕(財欲)ㆍ색욕ㆍ음식욕ㆍ명욕(名欲)ㆍ수면욕. ▲조정사원4. 5욕(欲) 이르자면 색ㆍ성ㆍ향ㆍ미ㆍ촉임. 대론(대지도론35)에 이르되 세간 중의 5욕(欲)을 애요(愛樂)하지 않는 이 없거니와 5욕 중에 촉(觸)이 첫째가 된다. 능히 사람의 마음을 얽어맴이 마치 사람이 깊은 수렁(泥)에 떨어져 있음과 같아서 가히 구제하기 어렵다. 만약 나머지 욕(欲)은 받더라도 오히려 지혜를 잃지 않지만 음욕(婬欲)을 만났을 땐 신심(身心)이 황미(荒迷)하여 성각(省覺)하는 바가 없어 깊이 집착해 스스로 잠기나니 이런 고로 출가법 중에 음계(婬戒)가 초(初)에 있다.
●八風; 또 8법ㆍ8세풍(世風)으로 지음. 이르자면 이 8법이 세간에서 소애소증(所愛所憎)함이 되어 능히 인심을 선동하는지라 고로 풍으로써 비유를 삼으며 일컬어 8풍이라 함. 1은 이(利)며 2는 쇠(衰)며 3은 훼(毁)며 4는 예(譽)며 5는 칭(稱)이며 6은 기(譏)며 7은 고(苦)며 8은 낙(樂)임.
●初發心; 보리(菩提)를 구하는 마음을 처음 발함.
●心量; 이르자면 마음이 망상을 일으켜 외경(外境)에 대해 갖가지 탁량(度量)을 일으킴이니 이것은 범부의 심량이 됨. 여래의 진증(眞證)의 심량은 곧 일체 소연(所緣)과 능연(能緣)을 멀리 여의고 무심에 머묾임 [릉가경3].
●利養; 가이(可以) 몸을 양육하는 물질의 이익.
●兀兀; 혼돈(混沌)하여 앎이 없으며 성품 따라 자재한 양자(樣子; 形狀).
●應病與藥; 불보살 등이 중생의 갖가지 근기를 상대로 갖가지 교를 설함이 의사가 사람의 병에 응해 약을 줌과 같음.
問 如今受戒 身口淸淨 已具諸善 得解脫否 師曰 少分解脫 未得心解脫 亦未得一切處解脫 曰 如何是心解脫及一切處解脫 師曰 不求佛法僧 乃至不求福智知解等 垢淨情盡 亦不守此無求 爲是 亦不住盡處 亦不欣天堂畏地獄 縛脫無礙 卽身心及一切處皆名解脫 汝莫言有少分戒 身口意淨 便以爲了 不知河沙戒定慧門無漏解脫 都未涉一毫在 努力向前 須猛究取 莫待耳聾眼暗 面皺髮白 老苦及身 悲愛纏綿 眼中流淚 心裏慞惶 一無所據 不知去處 到恁麽時節 整理脚手不得也 縱有福智名聞利養 都不相救 爲心眼未開 唯念諸境 不知返照 復不見佛道 一生所有善惡業緣 悉現於前 或忻或怖 六道五蘊 俱時現前 盡敷嚴好舍宅舟船車轝 光明顯赫 皆從自心貪愛所現 一切惡境 皆變成殊勝之境 但隨貪愛重處 業識所引 隨著受生 都無自由分 龍畜良賤 亦總未定 問 如何得自由分 師曰 如今得卽得 或對五欲八風 情無取舍 慳嫉貪愛 我所情盡 垢淨俱亡 如日月在空 不緣而照 心心如木石 念念如救頭然 亦如香象渡河 截流而過 更無疑滯 此人天堂地獄所不能攝也 夫讀經看敎語言 皆須宛轉歸就自己 但是一切言敎 祇明如今鑒覺自性 但不被一切有無諸境轉 是汝導師 能照破一切有無諸境 是金剛慧 卽有自由獨立分 若不能恁麽會得 縱然誦得十二韋陀典 祇成憎上慢 却是謗佛 不是修行 但離一切聲色 亦不住於離 亦不住於知解 是修行讀經看敎 若准世間是好事 若向明理人邊數 此是壅塞人 十地之人脫不去 流入生死河 但是三乘敎 皆治貪瞋等病 祇如今念念若有貪瞋等病 先須治之 不用求覔義句知解 知解屬貪 貪變成病 祇如今但離一切有無諸法 亦離於離 透過三句外 自然與佛無差 旣自是佛 何慮佛不解語 秖恐不是佛 被有無諸法縛 不得自由 以理未立 先有福智 被福智載去 如賤使貴 不如先立理後有福智 若要福智 臨時作得 撮土成金 撮金爲土 變海水爲酥酪 破須彌爲微塵 攝四大海水入一毛孔 於一義作無量義 於無量義作一義 伏惟珍重
●天堂; 指天衆所住之宮殿 又作天宮 與地獄對稱
●慞惶; 彷徨疑惧貌
●去處; 指對禪法的領悟之處
●六道; 又作六趣 卽衆生各依其業而趣往之世界 一地獄道 二餓鬼道 三畜生道 四修羅道 五人間道 六天道 此六道中 前三者稱爲三惡道 後三者稱爲三善道 [大智度論三十 俱舍論光記八 往生要集上]
●頭然; 然卽燃 頭上火燃也 急遽宜救者 譬危急 ▲佛藏經三 勤行精進 如救頭然
●宛轉; 順坦圓滑而轉之義 宛 順利 順遂
●韋陀; 又作吠陀 圍陀 毘陀 皮陀 鞞陀 薜陀等 譯曰明智 明分等 婆羅門所傳經典之名也 明實事 發生智慧故名 大本別爲四分 西域記二曰 其婆羅門 學四吠陀論 一曰壽 謂養生繕性 二曰祠 謂享祭祈禱 三曰平 謂禮儀占卜 兵法軍陣 四曰術 謂異能伎數 禁咒醫方
●增上慢; 言我得增上之法而起慢心也 如未得聖道 謂爲已得是也 七慢之一 ▲俱舍論十九 於未證得殊勝德中 謂已證得 名增上慢
●三句; 禪宗諸家爲表現禪之宗旨 而用以開示接引學人之語
●伏惟; 表示伏在地上想 下對上陳述時的表敬之辭
●珍重; 勸自重自愛之詞也 ▲大宋僧史略一 臨去辭曰珍重者何 此則相見旣畢 情意已通 囑曰珍重 猶言善加保重 請加自愛 好將息 宜保惜 同也
묻되 여금에 수계(受戒)하여 신구(身口)가 청정하고 이미 제선(諸善)을 갖추면 해탈을 얻습니까. 사왈 소분(少分) 해탈하지만 마음의 해탈을 얻지 못하며 또한 일체처(一切處)의 해탈을 얻지 못한다. 가로되 무엇이 이 마음의 해탈 및 일체처의 해탈입니까. 사왈 불법승(佛法僧)을 구하지 않고 내지 복지(福智)와 지해(知解) 등을 구하지 않고 구정(垢淨)의 정(情)이 없어져야 하지만 또한 이 무구(無求)가 옳다 함을 지키지 말며 또한 다한 곳(盡處)에 머물지 말아야 한다. 또한 천당(天堂)을 기뻐하거나 지옥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박탈(縛脫)에 무애(無礙)하며 곧 신심(身心) 및 일체처가 다 이름이 해탈이다. 너는, 소분(少分)의 계(戒)가 있고 신구의(身口意)가 청정하여 바로 요득(了得; 了)했다고 말하지 말아라. 하사(河沙)의 계정혜문(戒定慧門)과 무루해탈(無漏解脫)이라도 모두(都) 1호(毫)도 건너지(涉) 못하는 줄 알지 못하나니 노력(努力)하여 향전(向前)하고 모름지기 맹렬히 구취(究取)하라. 이롱안암(耳聾眼暗; 귀멀고 눈이 어둠)하고 면추발백(面皺髮白; 얼굴이 주름이 잡히고 머리가 흼)함을 기다리지 말지니 노고(老苦)가 몸에 미치면 비애(悲愛)가 전면(纏綿; 칭칭 얽힘)하고 안중(眼中)에 눈물 흘리고 심리(心裏)가 장황(慞惶)하여 하나도 기댈 바가 없고 거처(去處)를 알지 못한다. 이러한(恁麽) 시절에 이르러선 각수(脚手)를 정리(整理)함을 얻지 못하나니 비록(縱) 복지(福智)ㆍ명문(名聞; 名聲)ㆍ이양(利養)이 있더라도 모두(都) 상구(相救)하지 못한다. 심안(心眼)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오직 제경(諸境)을 사념(思念)하며 반조(返照)를 알지 못하고 다시 불도를 보지 못한다. 일생에 소유한 선악의 업연(業緣)이 모두(悉) 앞에 나타나매 혹 기뻐하고 혹 두려워 한다. 6도(六道)의 5온(蘊)이 구시(俱時; 同時. 一時)에 현전(現前)하여 엄호(嚴好)한 사택(舍宅)ㆍ주선(舟船)ㆍ거여(車輿)를 모두 펴(盡敷) 광명이 현혁(顯赫)함은 모두 자심(自心)의 탐애(貪愛)로 좇아 나타난 것이다. 일체의 악경(惡境)이 모두 수승(殊勝)한 경계로 변성(變成)하여 단지 탐애(貪愛)의 무거운 곳을 따라 업식(業識)이 견인(牽引; 引)하는 바로, 집착 따라 수생(受生)하되 도무지 자유분(自由分)이 없어 용축(龍畜; 용과 축생)과 양천(良賤)이 또한 모두 미정(未定)이다. 문(問) 어찌해야 자유분(自由分)을 얻습니까. 사왈 여금에 얻으려면 곧 얻나니 혹 5욕(欲)과 8풍(風)을 대하여 정(情)에 취사(取捨)가 없고 간질(慳嫉)과 탐애(貪愛), 아소(我所; 我所有)의 정(情)이 다하고(盡) 구정(垢淨)이 모두(俱) 망하면 일월이 허공에 있음과 같아서 반연(攀緣)하지 않아도 비추며 심심(心心)이 목석과 같고 염념(念念)이 두연(頭然)을 구제(救濟; 救)함과 같고 또한 향상(香象)이 도하(渡河)하되 절류(截流)하여 지나감과 같아서 다시 의체(疑滯)가 없다. 이 사람은 천당과 지옥이 능히 거두지 못하는 바이다. 무릇 독경하거나 간교(看敎)하는 어언(語言)이 모두 모름지기 완전(宛轉)하며 자기로 귀취(歸就)하나니 단지 이 일체의 언교(言敎)는 다만 여금의 감각(鑒覺)하는 자성을 밝히며 단지 일체 유무의 제경(諸境)에 굴림을 입지 않나니 이는 너의 도사(導師)며 능히 일체 유무의 제경(諸境)을 조파(照破)하나니 이는 금강혜(金剛慧)며 곧 자유(自由)의 독립분(獨立分)이 있다. 만약 능히 이러히(恁麽) 회득(會得)하지 못한다면 비록 그러히(縱然) 십이위타전(十二韋陀典)을 송득(誦得)하더라도 다만 증상만(增上慢)을 이루므로 도리어 이는 방불(謗佛)이며 이 수행이 아니다. 단지 일체의 성색(聲色)을 여의고 또한 여읨(離)에 머물지 않고 또한 지해(知解)에 머물지 않아야 이것이 수행이며 독경과 간교(看敎)이다. 만약 세간에 준거(准據; 準據와 같음)한다면 이는 호사(好事)지만 만약 명리인변(明理人邊)의 수(數)를 향한다면 이것은 이 옹색인(壅塞人)이다. 십지지인(十地之人)도 해탈하여 가지 못하고 생사하(生死河)에 유입(流入)한다. 단지 이 삼승교(三乘敎)는 모두 탐진(貪瞋) 등의 병을 다스리나니(治) 다만 여금의 염념(念念)에 만약 탐진 등의 병이 있다면 먼저 꼭 이를 다스리되 의구(義句)와 지해(知解)를 구멱(求覔)함을 쓰지 말아야 한다. 지해(知解)는 탐(貪)에 속하고 탐이 변하여 병(病)을 이루나니 다만 여금에 단지 일체의 유무제법(有無諸法)을 여의고 또한 여읨(離)도 여의어 3구(三句) 밖을 투과하면 자연히 부처와 차이가 없다. 이미 자기가 이 부처거늘 어찌 부처가 말할 줄 알지 못할까 염려하겠는가. 다만 이 부처가 아니라서 유무의 제법의 계박(繫縛)을 입어 자유를 얻지 못할까 염려스럽다. 리(理)를 세우지 못했는데 먼저 복지(福智)가 있으면 복지가 실어 감을 입나니 천인(賤人)이 귀인을 부림과 같으므로(如賤使貴) 리(理)를 먼저 세운 후 복지(福智)가 있음만 같지 못하다. 만약 복지(福智)를 요한다면 임시(臨時)하여 작득(作得)할지니 흙을 쥐어(撮) 금으로 만들고 금을 취어 흙으로 만들고 해수(海水)를 변화해 소락(酥酪)으로 만들고 수미산을 깨뜨려 미진(微塵)을 만들고 사대해수(四大海水)를 거두어 1모공(毛孔)에 넣고 1의(義)에 무량의(無量義)를 짓고 무량의에 1의를 짓는다. 복유(伏惟)컨대 진중(珍重)하라.
●天堂; 천중(天衆)이 거주하는 바의 궁전을 가리킴. 또 천궁으로 지으며 지옥과 대칭됨.
●慞惶; 방황하며 의구(疑惧; 의심하고 두려워함)하는 모양.
●去處; 선법에 대해 영오(領悟)한 곳을 가리킴.
●六道; 또 6취(趣)로 지음. 곧 중생이 각자 그 업에 의해 취왕(趣往)하는 세계임. 1은 지옥도며 2는 아귀도며 3은 축생도며 4는 수라도며 5는 인간도며 6은 천도임. 이 6도 중에 앞의 3자는 일컬어 삼악도라 하고 뒤의 3자는 일컬어 삼선도(三善道)라 함 [대지도론30. 구사론광기8. 왕생요집상].
●頭然; 연(然)은 곧 연(燃)이니 두상의 화연(火燃)임. 급거(急遽) 마땅히 구제해야 하는 것이니 위급에 비유함. ▲불장경3. 부지런히 정진하되 두연(頭然)을 구제함과 같아야 한다(如救頭然).
●宛轉; 순탄하고 원활히 구름의 뜻. 완(宛)은 순리(順利), 순수(順遂).
●韋陀; 또 폐타(吠陀; 梵 veda)ㆍ위타(圍陀)ㆍ비타(毘陀)ㆍ피타(皮陀)ㆍ비타(鞞陀)ㆍ벽타(薜陀)등으로 지음. 번역해 가로되 명지(明智)ㆍ명분(明分) 등이니 바라문이 전수하는 바의 경전의 이름임. 실사(實事)를 밝혀 지혜를 발생하는 고로 이름했음. 대본(大本)을 4분으로 분리했으니 서역기2에 가로되 그 바라문은 4폐타론(吠陀論)을 배운다. 1은 가로되 수(壽)니 이르자면 양생(養生)과 선성(繕性; 본성을 涵養)이며 2는 가로되 사(祠)니 이르자면 향제(享祭; 祭祀)와 기도며 3은 가로되 평(平)이니 이르자면 예의와 점복(占卜), 병법과 군진(軍陣)이며 4는 가로되 술(術)이니 이르자면 이능(異能; 특이한 技能)과 기수(伎數; 方伎와 數術), 금주(禁咒)와 의방(醫方)이다.
●增上慢; 나는 증상(增上)의 법을 얻었다고 말하면서 만심(慢心)을 일으킴이니 예컨대(如) 성도(聖道)를 얻지 못했으면서 이르기를 이미 얻었다고 함이 이것임. 7만(慢)의 하나. ▲구사론19. 증득하지 못한 수승한 덕 가운데에 이르기를 이미 증득했다 하면 이름이 증상만(增上慢)이다.
●三句; 선종의 제가(諸家)가 선의 종지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여 학인을 개시하고 접인하는 말.
●伏惟; 지상에 엎드려 있으면서 생각함을 표시함. 하급(下級)이 상급에 대해 진술할 때의 표경(表敬)의 언사임.
●珍重; 자중자애(自重自愛)를 권하는 말임. ▲대송승사략1. 떠남에 임해서 말해 가로되 진중(珍重)이라고 하는 것은 왜인가 하면 이것은 곧 상견을 이미 마치고 정의(情意)가 이미 통했음이다. 부촉(付囑)해 가로되 진중이라 함은 오히려 말하되 잘 보중(保重)을 더하라, 청컨대 자애(自愛)를 더하라, 좋게 장차 쉬어라(好將息), 의당 보호하여 아껴라(宜保惜) 함과 같음이다.
師有時說法竟 大衆下堂 乃召之 大衆回首 師曰 是甚麽〈藥山目之 爲百丈下堂句〉 師兒時隨母入寺拜佛 指佛像問母 此是何物 母曰 是佛 師曰 形容似人無異 我後亦當作焉 師凡作務執勞 必先於衆 主者不忍 密收作具而請息之 師曰 吾無德 爭合勞於人 旣徧求作具不獲 而亦忘飡 故有一日不作一日不食之語 流播寰宇矣 唐元和九年正月十七日歸寂 諡大智禪師 塔曰大寶勝輪
스님이 어떤 때 설법을 마치고 대중이 하당(下堂; 법당에서 내려감)하자 이에 그들을 불렀다. 대중이 머리를 돌리자 사왈 이 뭣고(是什麽)〈藥山이 이를 名目해 百丈下堂句라 했다〉. 스님이 아이였을 때 모친을 따라 입사(入寺)하여 배불(拜佛)하고는 불상(佛像)을 가리키며 모친에게 묻되 이것은 이 무슨 물건입니까. 모왈(母曰) 이 부처님이다. 사왈 형용(形容)이 사람과 흡사하여 다름이 없구나. 내가 후에 또한 마땅히 지으리라. 스님이 무릇 작무(作務)하며 집로(執勞)하면 반드시 대중에 앞선지라 주자(主者; 主事者)가 참지 못해 몰래 작구(作具; 작업 도구)를 거두고 쉬기를 청했다. 사왈 내가 덕이 없거늘 어찌 합당히 타인을 노고롭게 하겠는가. 이미 작구(作具)를 두루 구해도 얻지 못하자 또한 먹음(飡)을 잊었다. 고로 하루라도 일하지(作)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말이 환우(寰宇; 천하)에 유파(流播)되었다. 당 원화(元和) 9년(814) 정월 17일 귀적(歸寂)했다 시(諡)가 대지선사(大智禪師)며 탑을 가로되 대보승륜(大寶勝輪)이다.
池州南泉普願禪師者
鄭州新鄭人也 姓王氏 幼慕空宗 唐至德二年依大隗山大慧禪師受業 詣嵩嶽受具足戒 初習相部舊章 究毗尼篇聚 次遊諸講肆 歷聽楞伽華嚴 入中百門觀 精練玄義 後扣大寂之室 頓然忘筌 得遊戲三昧 一日爲衆僧行粥次 馬祖問 桶裏是甚麽 師曰 這老漢合取口 作恁麽語話 祖便休 自餘同參之流無敢詰問 貞元十一年憩錫於池陽 自建禪齋 不下南泉三十餘載 大和初 宣城廉使陸公亘嚮師道風 遂與監軍同請下山 伸弟子之禮 大振玄綱 自此學徒不下數百 言滿諸方 目爲郢匠
●池州; 今安徽貴池 安徽省轄市
●鄭州; 今河南省省都
●相部; 相部律 四分律三派之一 相部之法礪 對南山之道宣 東塔之懷素而立一派 謂之相部律
●篇聚; 指比丘比丘尼所學之戒律 因有五篇六聚七聚之分 故稱篇聚 具足戒類別爲篇門與聚門 篇門則依結成之罪果 及急要之義而區別爲五篇 聚門則類聚其罪性 及因罪(犯波羅夷僧殘二罪而未成者曰偸蘭遮) 而爲六聚七聚八聚
●中百門; 中觀論百法論十二門論的簡稱
●玄義; 幽玄之義理 深妙之義理
●忘筌; 祖庭事苑一 忘筌 易略例曰 言者所以明象 得象而忘言 象者所以存意 得意而忘象 猶蹄者所以在兔 得兔而忘蹄 筌者所以在魚 得魚而忘筌也 然則言者象之蹄也 象者意之筌也 存言者非得象者也 存象者非得意者也
●憩錫; 意謂行脚僧人棲止于某寺院 或其他適宜之處 錫 拄杖
●監軍; 夜半巡行都城內外 檢督軍士行巡 臨時官職 ▲祖庭事苑一 監軍 唐官也 皆中貴爲之 如魚朝恩 至德中監軍事是也
●玄綱; 謂幽玄之法義大綱
●郢匠; 謂工巧木匠 肇論疏中 來問婉切 難爲郢人者 婉曲切要難酬答也 郢人者 莊子雜篇徐無鬼章云 莊子送葬 至惠子之墓 顧謂從者曰 郢人以堊慢其鼻端 若蠅翼 使匠石斵之 匠石運斧成風而斵之 盡堊而鼻不傷 郢人立不失容 宋元君聞之 召匠石曰 甞試爲寡人爲之 匠石云 臣嘗能斵之 然臣質已死久矣 自夫子之死也 吾無以爲質矣 吾無與言矣 郭象注云 非夫不動之質忘言之對 則雖有至言妙斵 而無所取之 今謂劉公之問 事同匠石 肇公之答 事同郢人 問能而答難也
지주(池州) 남천보원(南泉普願) 선사란 자는
정주(鄭州) 신정(新鄭) 사람이며 성이 왕씨(王氏)다. 어릴 적에 공종(空宗)을 흠모했고 당 지덕(至德) 2년(757) 대외산(大隗山) 대혜선사(大慧禪師)에게 의지해 수업(受業)했고 숭악(嵩嶽)으로 나아가 구족계를 받았다. 처음에 상부(相部) 구장(舊章)을 학습했고 비니(毗尼; 律)의 편취(篇聚)를 연구했다. 다음으로 여러 강사(講肆)에 노닐면서 릉가ㆍ화엄을 역청(歷聽)했고 중백문관(中百門觀)에 들어가 현의(玄義)를 정련(精練)했다. 후에 대적지실(大寂之室)에 구문(扣問)하여 돈연(頓然)히 망전(忘筌)했고 유희삼매(遊戲三昧)를 얻었다. 어느 날 승중(僧衆)을 위해 행죽(行粥; 죽을 分配)하던 차에 마조(馬祖)가 묻되 통(桶) 속에 이 무엇인가. 사왈 이 노한(老漢)이 입을 닫아야(合取口) 하거늘 이러한(恁麽) 어화(語話)를 지으시는가. 마조가 바로 쉬었다. 저절로 여타의 동참지류(同參之流)는 감히 징문(徵問)하지 못했다. 정원(貞元) 11년(796) 지양(池陽)에 게석(憩錫)하면서 스스로 선재(禪齋; 禪室)를 건립했고 남천(南泉; 南泉山)에서 내려오지 않은 지 30여 재(載)였다. 태화(大和; 827-835) 초 선성(宣城) 염사(廉使) 육공긍(陸公亘; 陸亘)이 스님의 도풍(道風)을 향(嚮; 向)했고 드디어 감군(監軍)과 함께 하산(下山)을 청했고 제자지례(弟子之禮)를 폈다(伸). 현강(玄綱)을 대진(大振)했고 이로부터 학도(學徒)가 몇 백 아래가 아니었고 언어가 제방에 가득했고 명목(名目)해 영장(郢匠)이라 했다.
●池州; 지금의 안휘 귀지(貴池)니 안휘성할시(安徽省轄市).
●鄭州; 지금의 하남성 성도(省都).
●相部; 상부율(相部律)이니 사분율 3파의 하나. 상부의 법려(法礪)는 남산의 도선과 동탑(東塔)의 회소(懷素)에 대해 세운 1파니 이를 일러 상부율이라 함.
●篇聚; 비구와 비구니가 배우는 바의 계율을 가리킴. 5편(篇)ㆍ6취(聚)ㆍ7취(聚)의 구분이 있음으로 인하여 고로 명칭이 편취(篇聚)임. 구족계를 유별(類別)하면 편문(篇門)과 취문(聚門)이 되며 편문은 곧 결성의 죄과(罪果) 및 급요(急要)의 의(義)에 의해 구별하여 5편으로 삼음. 취문은 곧 그 죄성(罪性) 및 인죄(因罪)(波羅夷와 僧殘 2죄를 범했으나 이루지 못한 것을 가로되 偸蘭遮)를 유취(類聚)하여 6취ㆍ7취ㆍ8취로 삼음.
●中百門; 중관론ㆍ백법론ㆍ십이문론의 간칭(簡稱).
●玄義; 유현(幽玄)한 의리(義理). 심묘한 의리.
●忘筌; 조정사원1. 망전(忘筌) 역(易) 약례(略例)에 가로되 언(言)이란 것은 상(象)을 밝히기 때문(所以)이니 상을 얻으면 언을 잊으며 상(象)이란 것은 뜻에 있기 때문이니 뜻을 얻으면 상을 잊는다. 마치 올무란 것은 토끼에 있기 때문이니 토끼를 얻으면 올무를 잊으며 통발이란 것은 물고기에 있기 때문이니 물고기를 얻으면 통발을 잊음과 같다. 그러한 즉 언(言)이란 것은 상(象)의 올무며 상이란 것은 뜻의 통발이니 언을 두는 자는 상을 얻은 자가 아니며 상을 두는 자는 뜻을 얻은 자가 아니다.
●憩錫; 뜻은 이르자면 행각하는 승인이 어떤 사원이나 혹 기타 마땅한 곳에 서지(棲止)함임. 석(錫)은 주장자.
●監軍; 야반에 도성 내외를 순행하며 군사의 행순(行巡; 순행)을 검독(檢督)하는 임시 관직. ▲조정사원1. 감군(監軍). 당나라의 벼슬 이름이다. 다 중귀(中貴; 중인과 귀인)가 이것을 한다. 예컨대(如) 어조은이 지덕(至德) 중에 군사를 감독한 게 이것이다.
●玄綱; 이르자면 유현(幽玄)한 법의(法義)의 대강(大綱).
●郢匠; 이르자면 공교(工巧)한 목장(木匠)임. 조론소중. 내문(來問)이 완절(婉切)하나 영인(郢人)이 되기 어렵다는 것은 완곡절요(婉曲切要)하나 수답(酬答; 응답)하기 어려움이다. 영인이란 것은 장자 잡편 서무귀장(徐無鬼章)에 이르되 장자가 송장(送葬)하여 혜자(惠子)의 묘에 이르자 돌아보며 종자(從者)에게 일러 가로되 영인(郢人)이 그의 코 끝에 백토를 파리의 날개만큼 얇게 바르고 장석(匠石)으로 하여금 이것을 깎아 내게 했다. 장석이 도끼를 움직여 바람을 이루면서 그것을 깎았고 백토는 없어졌지만 코는 상하지 않았으며 영인은 선 채로 모습을 잃지 않았다. 송원군(宋元君)이 이를 듣고 장석을 불러 가로되 시험삼아(甞은 試임) 과인을 위해 그렇게 하라. 장석이 가로되 신이 곧 일찍이 능히 이를 깎았지만 비록 그러하나 신의 바탕(영인을 가리킴)이 죽은 지 오래입니다. 부자(夫子)의 죽음으로부터 내가 바탕으로 삼을 게 없었고 더불어 말할 이가 없었습니다. 곽상(郭象)의 주(注)에 이르되 무릇 부동지질(不動之質)이며 망언지대(忘言之對)가 아니면 곧 비록 지언묘착(至言妙斵)이 있더라도 취할 바가 없음이다. 여금에 이르자면 유공(劉公)의 물음은 사건이 장석(匠石)과 같고 조공(肇公)의 답은 사건이 영인(郢人)과 같아서 물음은 능하나 답하기는 어려움이다.
上堂 然燈佛道了也 若心相所思 出生諸法 虛假不實 何以故 心尙無有 云何出生諸法 猶如形影 分別虛空 如人取聲 安置篋中 亦如吹網 欲令氣滿 故老宿云 不是心 不是佛 不是物 且敎你兄弟行履 據說十地菩薩住首楞嚴三昧 得諸佛秘密法藏 自然得一切禪定解脫神通妙用 至一切世界 普現色身 或示現成等正覺 轉大法輪 入涅槃 使無量入毛孔 演一句經無量劫 其義不盡 敎化無量億千衆生得無生法忍 尙喚作所知愚極微細所知愚 與道全乖 大難大難 珍重
●然燈佛; <梵> Dipamkara 梵名提洹竭 提和竭羅 瑞應經譯曰錠光 智度論譯曰然燈 錠爲燈之足 釋迦如來因行中第二阿僧祇劫滿時逢此佛出世 買五華之蓮 以供養佛 布髮著地 令佛蹈之 以受未來成佛之記別 [修行本起經上 心地觀經一]
●心相; 心之行相 卽見分也
●兄弟; 自少壯卽居於叢林而諳熟淸規者 稱山中之兄弟 又禪刹同門之人 亦稱兄弟 卽雲兄水弟之意 廣指大衆 [象器箋五稱呼類]
●行履; 行者進退 履者實踐 指日常一切行爲 衲僧行履 佛祖不能窺 外魔不能亂 頭頭物物 擧足下足 都是道之現成
●等正覺; 梵語三藐三菩提 譯曰等正覺 又三藐三佛陀 譯曰等正覺者 徧知者 如來十號之第三 覺卽知也 覺知徧於一切 是徧也 覺知契於理 是正也 謂徧正覺知一切法也 又三世諸佛之覺知平等 故曰等 離邪妄故曰等 [無量壽經義疏上]
상당(上堂) 연등불(然燈佛)이 말해 마쳤다. 만약 심상(心相)의 소사(所思)로 제법(諸法)을 출생하면 허가(虛假)라서 실답지 못하다. 무슨 연고냐, 심(心)도 오히려 있지 않거늘 어떻게 제법을 출생하겠는가. 마치 형영(形影)과 같으며 허공을 분별함이다. 사람이 소리를 취해 상자(箱子; 篋) 가운데 안치함과 같고 또한 그물을 불어 공기가 가득하게 하려 함과 같다. 고로 노숙(老宿)이 이르되 이 마음이 아니며 이 부처가 아니며 이 물건이 아니라 하여 다만(且) 너희 형제(兄弟)로 하여금 행리(行履)하게 했다. 거설(據說)하건대 십지보살(十地菩薩)이 수릉엄삼매(首楞嚴三昧)에 주(住)하면서 제불의 비밀법장(秘密法藏)을 얻었으며 자연히 일체의 선정(禪定)ㆍ해탈ㆍ신통ㆍ묘용을 얻었다. 일체 세계(世界)에 이르러 색신을 널리 나타내되 혹 등정각(等正覺) 이룸을 시현(示現)하고 대법륜을 굴리고 열반에 들며 무량(無量)으로 하여금 모공(毛孔)에 들게 하고 1구(句)를 연설하되 무량겁을 경과해도 그 뜻이 다하지 않으며 무량한 억천(億千) 중생을 교화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게 하더라도 오히려 소지우(所知愚)ㆍ극미세소지우(極微細所知愚)라고 불러 지으며 도와 전부 어긋난다. 매우 어렵고(大難) 매우 어렵다. 진중(珍重)하라.
●然燈佛; <범> Dipamkara. 범명(梵名)은 제원갈(提洹竭)ㆍ제화갈라(提和竭羅)니 서응경에 번역해 가로되 정광(錠光)이라 했고 지도론엔 번역해 가로되 연등(然燈)이라 했음. 정(錠)은 등(燈)의 발임. 석가여래가 인행(因行) 중 제2아승기겁이 찼을 때 이 부처의 출세를 만났음. 5화(華)의 연꽃을 사서 불타에게 공양하고 머리카락을 펴서 땅에 깔고 불타로 하여금 그것을 밟게 했고 미래에 성불한다는 기별(記別)을 받았음 [수행본기경상. 심지관경1].
●心相; 마음의 행상(行相)이니 곧 견분(見分)임.
●兄弟; 소장(少壯)으로부터 곧 총림에 거주하면서 청규를 암숙(諳熟; 외우고 익힘)한 자를 일컬어 산중의 형제라 함. 또 선찰의 동문의 사람을 또한 일컬어 형제라 하나니 곧 운형수제(雲兄水弟)의 뜻. 널리 대중을 가리킴 [상기전5칭호류].
●行履; 행(行)이란 것은 진퇴며 리(履)란 것은 실천이니 일상의 일체 행위를 가리킴. 납승의 행리(行履)는 불조라도 능히 엿보지 못하고 마외(外魔)도 능히 어지럽히지 못하나니 두두물물(頭頭物物)과 거족하족(擧足下足)이 모두 이 도의 현성(現成)임.
●等正覺; 범어 삼먁삼보리(三藐三菩提; 梵 samyak-saṃbodhi)는 번역해 가로되 등정각이며 또 삼먁삼불타(三藐三佛陀; 梵 samyak-sa ṃbuddha)는 번역해 가로되 등정각자(等正覺者)ㆍ편지자(徧知者)니 여래십호의 제3. 각(覺)은 곧 지(知)니 각지(覺知)가 일체에 두루함이 이 편(徧)이며 각지가 이(理)에 계합함이 이 정(正)임. 이르자면 일체법을 편정각지(徧正覺知)함임. 또 삼세제불의 각지는 평등하므로 고로 가로되 등(等)이며 사망(邪妄)을 여읜지라 고로 가로되 등(等)임 [무량수경의소상].
上堂曰 王老師自小養一頭水牯牛 擬向溪東牧 不免食他國王水草 擬向溪西牧 亦不免食他國王水草 不如隨分納些些 總不見得 師問僧曰 夜來好風 曰 夜來好風 師曰 吹折門前一枝松 曰 吹折門前一枝松 次問一僧曰 夜來好風 曰 是甚麽風 師曰 吹折門前一枝松 曰 是甚麽松 師曰 一得一失 師有書與茱萸曰 理隨事變 寬廓非外 事得理融 寂寥非內 僧達書了 便問萸 如何是寬廓非外 萸曰 問一答百也無妨 曰 如何是寂寥非內 萸曰 覩對聲色 不是好手 僧又問長沙 沙瞪目視之 僧又進後語 沙乃閉目示之 僧又問趙州 州作喫飯勢 僧又進後語 州以手作拭口勢 後僧擧似師 師曰 此三人不謬爲吾弟子
●王老師; 池州南泉之普願禪師 姓王氏 承馬祖之法 弘道於南泉 常自稱王老師
●水牯牛; 一卽水牛 玉篇 牯 牝牛 正字通 牯 俗稱牡牛曰牯 二喩自心自性 此指一
●好手; 高超的手段 亦指有高超手段者 高手
상당해 가로되 왕노사(王老師)가 어릴 적부터(自小) 한 마리(頭; 量詞)의 수고우(水牯牛)를 길렀다. 계동(溪東; 개울의 동쪽)을 향해 기르려고 하니 저 국왕의 수초(水草)를 먹음을 면하지 못하고 계서(溪西)를 향해 기르려고 해도 또한 저 국왕의 수초를 먹음을 면하지 못한다. 분수 따라 조금(些些) 받아들이면서 모두 견득(見得; 득은 조사)하지 않음만 같지 못하다. 스님이 중에게 물어 가로되 야래(夜來; 래는 조사)에 좋은 바람(好風)이었다. 가로되 야래에 좋은 바람이었습니다. 사왈 불어 문 앞의 한 가지 소나무를 꺾었다. 가로되 불어 문 앞의 한 가지 소나무를 꺾었습니다. 다음에 한 중에게 물어 가로되 야래에 좋은 바람이었다. 가로되 이 무슨(甚麽) 바람입니까. 사왈 불어 문 앞의 한 가지 소나무를 꺾었다. 가로되 이 무슨 소나무입니까. 사왈 하나는 얻었고 하나는 잃었다. 스님이 글이 있어 수유(茱萸)에게 주어 가로되 리(理)는 사(事) 따라 변하나니 관확(寬廓; 廣闊)하여 밖이 아니며 사는 리를 얻어 녹나니(融) 적료(寂寥)하여 안이 아니다. 중이 글을 송달(送達; 達)하여 마치자 바로 수유에게 묻되 무엇이 이 관확하여 안이 아님입니까. 유왈(萸曰) 문일답백(問一答百)해도 또한 무방(無妨)하다. 가로되 무엇이 이 적료하여 안이 아님입니까. 유왈(萸曰) 성색(聲色)을 대하여 봄(覩)은 이 호수(好手)가 아니다. 중이 또 장사(長沙; 景岑)에게 묻자 장사가 눈을 똑바로 뜨고 보았다. 중이 또 후어(後語)를 진행하자 장사가 이에 눈을 감아 보였다. 중이 또 조주(趙州; 從諗)에게 묻자 조주가 밥을 먹는 자세를 지었다. 중이 또 후어를 진행하자 조주가 손으로써 입을 닦는 자세를 지었다. 후에 중이 스님에게 들어 보이자 사왈 이 3인은 나의 제자가 됨에 어긋나지(謬) 않는다.
●王老師; 지주(池州) 남천의 보원선사는 성이 왕씨며 마조의 법을 승계했고 남천에서 홍도(弘道)했는데 늘 자칭이 왕노사였음.
●水牯牛; 1. 곧 수우(水牛; 물소)임. 옥편 고(牯) 빈우(牝牛; 암소)다. 정자통 고(牯) 세속에서 모우(牡牛; 수소)를 일러 가로되 고(牯)라 한다. 2. 자심과 자성에 비유함. 여기에선 1을 가리킴.
●好手; 고초(高超)의 수단. 또한 고초의 수단을 가진 자를 가리킴이니 고수임.
南泉山下有一庵主 人謂曰 近日南泉和尙出世 何不去禮見 主曰 非但南泉出世 直饒千佛出興 我亦不去 師聞 乃令趙州去勘 州去便設拜 主不顧 州從西過東 又從東過西 主亦不顧 州曰 草賊大敗 遂拽下簾子 便歸擧似師 師曰 我從來疑著這漢 次日 師與沙彌擕茶一甁盞三隻 到庵擲向地上 乃曰 昨日底 昨日底 主曰 昨日底是甚麽 師於沙彌背上拍一下曰 賺我來 賺我來 拂袖便回 上堂 道箇如如早是變了也 今時師僧須向異類中行 歸宗曰 雖行畜生行 不得畜生報 師曰 孟八郞漢又恁麽去也 上堂 文殊普賢昨夜三更相打 每人與二十棒 趁出院去也 趙州曰 和尙棒敎誰喫 師曰 且道王老師過在甚處 州禮拜而出 師因至莊所 莊主預備迎奉 師曰 老僧居常出入 不與人知 何得排辦如此 莊主曰 昨夜土地報道 和尙今日來 師曰 王老師修行無力 被鬼神覷見 侍者便問 和尙旣是善知識 爲甚麽被鬼神覷見 師曰 土地前更下一分飯〈玄覺云 甚麽處是土地前更下一分飯 雲居錫云 是賞伊罰伊 只如土地前見 是南泉不是南泉〉
●草賊; 與草竊同 草野之賊也 ▲三國志六十吳書 周魴曰 山棲草藏 亂心猶存
●師僧; 堪爲人師之僧 又爲僧人之敬稱
●異類; 一指佛果位以外之因位 如菩薩衆生之類 二畜生 此指一
●畜生; <梵> tiryag-yoni 梵語底栗車 又作傍生 橫生 畜生道 傍生趣 五道之一 六道之一 三惡道之一 指鳥獸蟲魚等一切動物 畜生之名 乃由人畜養之意而得 新譯爲傍生 乃取其形不如人之直 傍橫且傍行之義
●孟八郞漢; 指不依道理行事者 孟 孟浪 八郞 生子之行次 如李四張六之類 禪林中 常以孟八郞 形容强橫暴戾之粗漢
●三更; 自午後十一時至翌日午前一時 更 古代夜間計時單位 一夜分爲五更 每更約兩小時 正字通 又因時變易 漏刻曰更 ▲顔氏家訓 或問 一夜何故五更 更何所訓 答曰 漢魏以來 謂爲甲夜乙夜丙夜丁夜戊夜 又云鼓 一鼓二鼓三鼓四鼓五鼓 亦云一更二更三更四更五更 皆以五爲節
●棒; 禪錄多指拄杖 棒 步項切 棍也 棓也 又用棍棒打 廣韻 棒 打也
●莊主; 寺院裏管理田地莊舍等事務的職事僧 管掌事務監視田界 修葺莊舍 安撫莊佃(又稱莊客 地客) 莊內所有小事 當隨時處理之 古淸規本無此職 乃後世所立 [百丈淸規四列職雜務條 象器箋職位類]
●居常; 平常時 日常
●土地; 土地神的略稱 俗稱里社之神曰土地
●一分; 分 一半 又所分之物 如部分
남천산(南泉山) 아래 한 암주(庵主)가 있었다. 사람이 일러 가로되 요사이(近日) 남천화상이 출세했는데 왜 가서 예견(禮見)하지 않는가. 암주가 가로되 단지 남천의 출세만이 아니라 직요(直饒; 가령. 卽使) 천 불이 출흥(出興)했다 하더라도 나는 또한 가지 않겠다. 스님이 듣고서 조주(趙州)를 시켜 가서 감험(勘驗; 勘)하게 하였다. 조주가 가서 바로 예배를 베풀었다. 암주가 돌아보지 않았다. 조주가 서쪽으로부터 동쪽에 이르고(過) 또 동쪽으로부터 서쪽에 이르렀다. 암주가 또 돌아보지 않았다. 조주가 가로되 초적(草賊)이 대패(大敗)했다. 드디어 발(簾子; 子는 조사)을 끌어내리고 바로 돌아와 스님에게 들어 보이자 사왈 내가 종래로 이 자를 의심했었다(疑著). 다음날 스님이 사미와 더불어 차(茶) 1병(甁)과 잔(盞) 3척(隻)을 휴대(擕帶: 擕)하고 암자에 이르러 지상(地上)을 향해 던졌다. 이에 가로되 어제의 것이다(昨日底), 어제의 것이다. 암주가 가로되 어제의 것이란 이 무엇입니까. 스님이 사미의 등 위를 한 번(一下) 치고(拍) 가로되 나를 속였구나(賺我來), 나를 속였구나. 소매를 떨치고 바로 돌아왔다. 상당(上堂). 저(箇) 여여(如如)라고 말하더라도 벌써 이것은 변한 것이다. 금시의 사승(師僧)은 반드시 이류(異類) 가운데를 향해 가야 한다. 귀종(歸宗; 智常)이 가로되 비록 축생행(畜生行)을 행하더라도 축생보(畜生報)를 얻지 않습니다. 사왈 맹팔랑한(孟八郞漢)이 또 이렇게 가는구나. 상당(上堂) 문수(文殊)와 보현(普賢)이 어젯밤 3경(三更)에 상타(相打)하는지라 매인(每人)에게 20방(棒) 주어 사원에서 쫓아내었다. 조주(趙州)가 가로되 화상은 방(棒)을 누구로 하여금 먹이게 해야 합니까. 사왈 그래 말하라, 왕노사(王老師; 남천)의 허물이 어느 곳에 있느냐. 조주가 예배하고 나갔다. 스님이 장소(莊所)에 이름으로 인해 장주(莊主)가 예비(預備)하여 영봉(迎奉)했다. 사왈 노승이 거상(居常)의 출입에 사람에게 알려 주지 않는데 어찌 배판(排辦; 준비. 安排)함이 이와 같음을 얻었는가. 장주가 가로되 어젯밤 토지(土地; 토지신)가 알려 말하되 화상이 금일 오신다 했습니다. 사왈 왕노사가 수행이 무력(無力)하여 귀신(鬼神)이 엿봄(覷見)을 입었구나. 시자가 바로 묻되 화상은 이미 이 선지식이거늘 무엇 때문에 귀신이 엿봄을 입었습니까. 사왈 토지(土地; 토지신) 앞에 다시 1분(一分)의 밥을 내려라〈玄覺(行言)이 이르되 어느 곳이 이 토지 앞에 다시 내린 1분의 밥인가. 雲居錫(淸錫)이 이르되 이는 그를 상주었는가, 그를 벌주었는가. 只如 土地 앞에 보인 것은 이 남천인가 이 남천이 아닌가〉.
●草賊; 초절(草竊; 좀도둑. 竊은 훔칠 절)과 같음. 초야(草野)의 도적임. ▲삼국지60 오서. 주방(周魴)이 가로되 산에 살고 풀속에 숨어서(山棲草藏) 난심(亂心)이 오히려 존재한다.
●師僧; 사람의 스승이 됨을 감내할 만한 승인. 또 승인의 경칭이 됨.
●異類; 1. 불과위(佛果位) 이외의 인위(因位)를 가리킴이니 보살과 중생의 무리 같은 것임. 2. 축생. 여기에선 1을 가리킴.
●畜生; <범> tiryag-yoni 범어로 지률차(底栗車)니 또 방생(傍生)ㆍ횡생(橫生)ㆍ축생도(畜生道)ㆍ방생취(傍生趣)로 지음. 5도(道)의 하나. 6도의 하나. 삼악도의 하나. 새ㆍ짐승ㆍ벌레ㆍ물고기 등 일체의 동물을 가리킴. 축생의 이름은 곧 사람이 축양(畜養)함의 뜻으로 말미암아 얻었음. 신역은 방생(傍生)이 되며 곧 그 형상이 사람의 직(直)과 같지 못하고 방횡(傍橫)하고 또 방행(傍行)함의 뜻을 취했음.
●孟八郞漢; 도리에 의하지 않고 행사하는 자를 가리킴. 맹(孟)은 맹랑(孟浪)이며 팔랑(八郞)은 태어난 자식의 행차(行次)니 이사장륙(李四張六)의 종류와 같음. 선림 중에선 늘 맹팔랑으로써 강횡포려(强橫暴戾; 강하고 橫暴하며 포악함)의 거친 자를 형용함.
●三更; 오후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1시에 이르기까지임. 경(更)은 고대 야간의 계시단위(計時單位)니 1야(夜)를 5경으로 분류했고 매경(每更)은 약 두 소시(小時; 시간)임. 정자통 또 시(時)로 인해 변역(變易)했으니 누각(漏刻)을 가로되 경(更)이다. ▲안씨가훈. 누가(或) 묻되 1야(夜)가 무슨 연고로 5경(更)인가. 경은 무엇을 가르치는 바인가. 답해 가로되 한위(漢魏) 이래로 이르기를 갑야(甲夜)ㆍ을야ㆍ병야ㆍ정야ㆍ무야라 했다. 또 이르되 고(鼓)니 1고(鼓)ㆍ2고ㆍ3고ㆍ4고ㆍ5고다. 또 이르되 1경(更)ㆍ2경ㆍ3경ㆍ4경ㆍ5경이다. 모두 5로써 마디를 삼았다.
●棒; 선록에서 다분히 주장자를 가리킴. 방(棒)은 보항절(步項切; 방)이니 곤(棍; 몽둥이. 곤장)임. 부(棓; 몽둥이)임. 또 곤봉을 사용해 때림임. 광운(廣韻) 방(棒) 때림이다.
●莊主; 사원 속에서 전지(田地)와 장사(莊舍) 등의 사무를 관리하는 직사승(職事僧). 전계(田界)를 감시하고 장사(莊舍)를 수즙(修葺)하고 장전(莊佃; 또 명칭이 莊客, 地客)을 안무(安撫)하는 사무를 관장하면서 장내(莊內)에 있는 바 소사(小事)를 마땅히 수시로 그것을 처리함. 고청규엔 본래 이 직책이 없었고 곧 후세에 세운 것임 [백장청규4열직잡무조. 상기전직위류].
●居常; 평상시. 일상(日常).
●土地; 토지신의 약칭. 속칭 이사(里社)의 신을 가로되 토지라 함.
●一分; 분(分)은 일반(一半; 절반). 또 나눈 바의 물건이니 예컨대(如) 부분(部分).
師有時曰 江西馬祖說卽心卽佛 王老師不恁麽道 不是心 不是佛 不是物 恁麽道還有過麽 趙州禮拜而出 時有一僧隨問趙州曰 上座禮拜便出 意作麽生 州曰 汝却問取和尙 僧乃問 適來諗上座意作麽生 師曰 他却領得老僧意旨 黃檗與師爲首座 一日捧鉢向師位上坐 師入堂見 乃問曰 長老甚麽年中行道 檗曰 威音王已前 師曰 猶是王老師兒孫在 下去 檗便過第二位坐 師便休 師一日問黃檗 黃金爲世界 白銀爲壁落 此是甚麽人居處 檗曰 是聖人居處 師曰 更有一人居何國土 檗乃叉手立 師曰 道不得 何不問王老師 檗却問 更有一人居何國土 師曰 可惜許 師問黃檗 定慧等學 明見佛性 此理如何 檗曰 十二時中不依倚一物 師曰 莫是長老見處麽 檗曰 不敢 師曰 漿水錢且置 草鞋錢敎阿誰還 師見僧斫木次 師乃擊木三下 僧放下斧子歸僧堂 師歸法堂 良久却入僧堂 見僧在衣鉢下坐 師曰 賺殺人 問 師歸丈室 將何指南 師曰 昨夜三更失却牛 天明起來失却火
●首座; 寺院參禪僧衆中居于首位者 又僧堂中居于首位的參禪僧 是禪寺職事僧之一 若僧堂分作前後兩堂 則分別設前堂首座與後堂首座 ▲大宋僧史略中 首座之名 卽上座也 居席之端 處僧之上 故曰也 尋唐世敕辯章 撿校修寺 宣宗賞其功 署三敎首座 …… 次復經論之學 或置首座 三敎首座則辯章爲始也 ▲祖庭事苑八 首座 卽古之上座也 梵語悉替那 此云上座 此有三焉 集異足毘曇曰 一生年爲耆年 二世俗財名與貴族 三先受戒及證道果 古今立此位 皆取其年德幹局者充之 今禪門所謂首座者 卽其人也 必擇其己事已辨 衆所服從 德業兼備者充之
●威音王已前; 又作威音王佛出世已前 乃禪林常用以指點學人自己本來面目之語句 意同父母未生以前 天地未分以前 空劫以前等語 蓋威音王佛 乃過去莊嚴劫最初之佛名 故以之表示無量無邊的久遠之前
●壁落; 壁籬也 說文 杝 落也 ▲文選 張衡西京賦 揩枳藩 突棘落 李善注 落 亦籬也
●可惜許; 可惜 許 語助辭 又語氣詞 表示感嘆
●漿水; 字彙補 水亦曰漿 說文 漿 酢漿也
●僧堂; 指禪林中僧衆日常修禪起臥之堂舍 又稱雲堂 坐堂 選佛堂 聖僧堂 枯木堂 禪宗七堂伽藍之一 卽凡於禪刹掛搭者 悉依戒臘而安排位次 凡坐禪 起臥 飮食 皆行於此堂 此兼有古代僧房及食堂之功用 按大智度論二 於原始佛敎僧團中 僧堂指僧房與精舍 故性質與現今之僧堂相異 支那自唐宋以降 於僧堂之中央安置聖僧像 衆僧圍之 周圍設置坐床 爲起臥及日夜坐禪辨道之道場 又現今僧堂之制 依據唐代百丈懷海禪師所制定之禪門淸規 而更加具體化 又僧堂依其作用 具有多重意義 故有多種稱呼 爲雲水僧群集之處 稱爲雲堂 爲選出佛祖之道場 稱爲選佛場 於此堂凝然坐禪 猶如枯木 稱爲枯木堂 亦有廣堂之稱 僧堂多建於寺之東側 隨堂之廣狹設四板 八板 十二板等床位 就四板之情形而言 中央爲聖僧龕 安置聖僧像 聖僧像前 後方之左右各有床 前方稱爲前堂 後方稱爲後堂 於前堂兩側之床 稱爲東北床東南床 又稱首座板西堂板 於後堂兩側之床 稱爲西北床西南床 又稱後堂板立僧板 每床各安排五人 大衆之被位(坐位) 由東北床之首座板 依戒臘次第排下 經由西北床西南床 終至東南床之西堂板 更由北床移向南床 各床有板頭 稱爲四板頭 卽指坐首位者 又在聖僧龕之左右稱爲出入板 東北床之首位 稱爲前堂首座 後堂之首位 稱後堂首座 在僧堂 各人之座位橫占三尺 頭上之椽有三條 故古來有三條椽下七尺單前之語 又僧堂內所定之座位 稱爲堂位 百丈淸規六日用軌範條 齋罷不得僧堂內聚頭說話 不得在僧堂中看經看冊子 不得上下間行道穿堂直過 蓋看經讀誦於衆寮 說法問答於法堂行之 於此堂須保持緘默 因此與浴室西淨 共稱爲三默堂 此外 掛錫於僧堂之修行者 稱爲堂衆堂僧 [傳燈錄六禪門規式]
●衣鉢下; 指僧堂中的長連床 是禪僧坐禪參習之處 禪僧的衣鉢用具挂在床上方的木架或墻上 故稱長連床爲衣鉢下
●賺殺; 賺 賤買貴賣 正字通 賺 俗謂相欺誑曰賺 殺 所八切 副詞 用在謂語後面 表示程度甚 如醉殺 想殺 愁殺 又殺 所拜切 疾也 猛也 又很 甚 俗語大甚曰殺 如殺有 殺大 殺高
●指南; 又云司南 亦云司方 藏經音義隨函錄十一 鬼谷子云 鄭人肅愼氏獻白雉還 周公爲作指南車送 恐其迷惑也 帝記云 高辛氏造指南車 ▲從容錄第五十三則 黃帝與蚩尤 戰於涿鹿 蚩尤作大霧 迷於四方 帝在車以指 指南而示 士卒擒蚩尤而斬之 遂號指南車
스님이 어떤 때 가로되 강서(江西) 마조(馬祖)는 설하기를 곧 마음이 곧 부처(卽心卽佛)라 하셨거니와 왕노사(王老師)는 이렇게(恁麽) 말하지 않으리니 이 마음도 아니며 이 부처도 아니며 이 물건도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도리어 허물이 있느냐. 조주(趙州)가 예배하고 나갔다. 때에 1승(僧)이 있어 곧바로(隨) 조주에게 물어 가로되 상좌(上座)가 예배하고 바로 나간 뜻이 무엇입니까. 조주가 가로되 네가 도리어 화상에게 문취(問取)하라. 중이 이에 묻되 아까(適來) 심(諗; 從諗) 상좌의 뜻이 무엇입니까. 사왈 그가 도리어 노승의 의지(意旨)를 영득(領得; 領會)했다. 황벽(黃檗)이 스님을 위해(與) 수좌(首座)가 되었다. 어느 날 발우를 받들고 사위(師位)의 위를 향해 앉았다. 스님이 입당(入堂)하여 보고는 이에 문왈(問曰) 장로(長老)는 어느 해(甚麽年) 중에 행도(行道; 불도를 수행)했는가. 벽왈(檗曰) 위엄왕이전(威音王已前)입니다. 사왈 오히려 이는 왕노사의 아손(兒孫)이니(在는 조사) 내려가거라. 황벽이 바로 제2위(第二位)에 이르러(過) 앉았다. 스님이 바로 쉬었다. 스님이 어느 날 황벽에게 묻되 황금을 세계로 삼고 백은(白銀)을 벽락(壁落)으로 삼으면 이것은 이 어떤 사람(甚麽人)의 거처(居處)인가. 벽왈(檗曰) 이는 성인(聖人)의 거처입니다. 사왈 다시 1인이 있으니 어떤 국토에 거처하는가. 황벽이 이에 차수(叉手)하고 섰다. 사왈 말함을 얻지 못하거든 왜 왕노사에게 묻지 않느냐. 황벽이 도리어 묻되 다시 1인이 있으니 어떤 국토에 거처합니까. 사왈 가석허(可惜許)로다. 스님이 황벽에게 묻되 정혜(定慧)를 균등히 배워야 불성을 환히 본다 하니 이 이치가 무엇인가. 벽왈(檗曰) 12시 중에 1물(物)에도 의의(依倚)하지 않습니다. 사왈 이는 장로의 견처가 아닌가. 벽왈 불감(不敢)입니다. 사왈 장수전(漿水錢)은 그래 두고(且置) 초혜전(草鞋錢)은 누구로 하여금 상환(償還)하게 하나. 스님이 중을 보매 나무를 패는(斫木) 차(次)였다. 스님이 이에 나무를 세 번(三下) 쳤다(擊). 중이 부자(斧子; 도끼. 子는 조사)를 내려놓고(放下) 승당(僧堂)으로 돌아갔고 스님은 법당으로 돌아갔다. 양구(良久)에 도리어 승당에 들어 중이 의발하(衣鉢下)에 있으면서 앉았음을 보았다. 사왈 사람을 너무 속이는구나(賺殺人). 묻되 스님이 장실(丈室)로 돌아가시면 무엇을 가지고 지남(指南)하십니까. 사왈 작야(昨夜) 3경(更)에 소를 잃어버렸고 천명(天明)에 일어나며 불을 잃어버렸다.
●首座; 사원의 참선하는 승중(僧衆) 가운데 수위(首位)에 거처하는 자임. 또 승당(僧堂) 중에 수위에 거처하는 참선승임. 이는 선사(禪寺)의 직사승(職事僧)의 하나임. 만약 승당을 전후의 양당(兩堂)으로 나누어 지으면 곧 전당수좌(前堂首座)와 후당수좌(後堂首座)를 분별해 시설함. ▲대송승사략중. 수좌(首座)란 이름은 곧 상좌(上座)다. 좌석의 첫째(端)에 거처하면서 승중의 위에 거처하는지라 고로 말함이다. 찾아보니 당세(唐世)에 변장(辯章)에게 칙령하여 사원을 검교(撿校)하고 다스리게 했는데 선종(宣宗)이 그 공을 상(賞)주어 삼교수좌(三敎首座)로 임명(署)했다 …… 다음에 다시 경론의 학(學)으로 혹 수좌를 두었으니 삼교수좌는 곧 변장(辯章)이 처음이 된다. ▲조정사원8. 수좌(首座) 곧 옛날의 상좌(上座)임. 범어로 실체나(悉替那; 梵 sthavira)는 여기에선 이르되 상좌니 이에 셋이 있음. 집이족비담(集異足毗曇)에 가로되 1은 생년(生年)이 기년(耆年)이 되며 2는 세속의 재명(財名)과 귀족이며 3은 먼저 수계함과 및 도과(道果)를 증득함이다. 고금에 이 자리를 세움엔 다 그 연덕간국자(年德幹局者; 年德은 나이와 도덕. 幹局은 일을 능숙하게 처리하는 재간과 局量)를 취해 이에 충당했다. 지금 선문에서 이르는 바 수좌란 것은 곧 그 사람이니 반드시 자기의 일을 이미 분변했고 대중이 복종하는 바며 덕업을 겸비한 자를 취해 이에 충당해야 함.
●威音王已前; 위음왕불출세이전으로 지음. 곧 선림에서 상용하여 학인 자기의 본래면목을 지점(指點; 지시)하는 어구임. 뜻이 부모미생이전ㆍ천지미분이전ㆍ공겁이전 등의 말과 같음. 대개 위음왕불은 곧 과거장엄겁 최초의 부처 이름이니 고로 이로써 무량무변의 아주 오랜 앞을 표시함.
●壁落; 벽 울타리임. 설문 이(杝; 울타리) 락(落)이다. ▲문선. 장형의 서경부. 지번(枳藩; 탱자 울타리)을 문지르고 극락(棘落)에 충돌한다. 이선(李善) 주(注) 락(落) 또한 리(籬; 울타리)다.
●可惜許; 가석이니 허는 어조사며 또 어기사(語氣詞)니 감탄을 표시함.
●漿水; 자휘보(字彙補) 물을 또한 가로되 장(漿)이다. 설문 장(漿) 초장(酢漿)이다.
●僧堂; 선림 중에 승중(僧衆)이 일상에 수선(修禪)하고 기와(起臥)하는 당사(堂舍)를 가리킴. 또 명칭이 운당(雲堂)ㆍ좌당(坐堂)ㆍ선불당(選佛堂)ㆍ성승당(聖僧堂)ㆍ고목당(枯木堂)이며 선종 칠당가람(七堂伽藍)의 하나임. 곧 무릇 선찰(禪刹)에서 괘탑(掛搭)하는 자는 모두 계랍(戒臘)에 의해 위차(位次)를 안배하며 무릇 좌선(坐禪)ㆍ기와(起臥)ㆍ음식(飮食)을 다 이 승당에서 행함. 이것은 고대의 승방(僧房)과 식당(食堂)의 공용(功用)을 겸해 있음. 대지도론2를 안험(按驗)컨대 원시불교(原始佛敎)의 승단(僧團) 중에서 승당은 승방(僧房)과 정사(精舍)를 가리키는지라 고로 성질이 현금(現今)의 승당과 상이(相異)함. 지나(支那)는 당송(唐宋) 이강(以降; 以下)으로부터 승당의 중앙에 성승상(聖僧像)을 안치하고 중승(衆僧)이 이를 위요(圍繞)하며 주위에 좌상(坐床)을 설치하여 기와(起臥) 및 일야(日夜)의 좌선변도(坐禪辨道)의 도량(道場)으로 삼았음. 또 현금의 승당의 제도(制度)는 당대(唐代) 백장회해선사가 제정한 바 선문청규에 의거하면 다시 구체화(具體化)를 가했음. 또 승당은 그 작용에 의해 다중(多重)의 의의를 갖추어 있는지라 고로 여러 가지의 칭호가 있음. 운수승이 군집(群集)한 곳이 되므로 명칭이 운당(雲堂)이 되며 불조를 선출하는 도량이 되므로 명칭이 선불장(選佛場)이 되며 이 당에서 응연(凝然)히 좌선함이 마치 고목과 같으므로 명칭이 고목당(枯木堂)이 되며 또한 광당(廣堂)의 명칭이 있음. 승당은 다분히 사원의 동측(東側)에 건립하며 승당의 광협(廣狹)에 따라 4판(板)ㆍ8판ㆍ12판 등의 상위(床位)를 설치함. 4판의 정형(情形)으로 나아가 말하자면 중앙은 성승감(聖僧龕)이 되고 성승상(聖僧像)을 안치함. 성승상 앞과 후방의 좌우에 각기 상(床)이 있는데 전방을 일컬어 전당(前堂)이라 하고 후방을 일컬어 후당(後堂)이라 함. 전당의 양측의 상을 일컬어 동북상(東北床)ㆍ동남상(東南床)이라 하는데 또 명칭이 수좌판(首座板)ㆍ서당판(西堂板)임. 후당 양측의 상(床)을 일컬어 서북상(西北床)ㆍ서남상(西南床)이라 하는데 또 명칭이 후당판(後堂板)ㆍ입승판(立僧板)임. 매(每) 상마다 각기 5인을 안배함. 대중의 피위(被位; 坐位)는 동북상의 수좌판으로 말미암아 계랍에 의해 차제로 배하(排下)하여 서북상ㆍ서남상을 경유하여 동남상의 서당판에 이르러 마침. 다시 북상(北床)으로 말미암아 남상(南床)으로 이향(移向)하면서 각 상에 판두(板頭)가 있으며 일컬어 4판두라 함. 곧 좌(坐)의 수위자(首位者)를 가리킴. 또 성승감(聖僧龕)의 좌우를 일컬어 출입판(出入板)이라 함. 동북상의 수위(首位)를 일컬어 전당수좌(前堂首座)라 하고 후당의 수위를 일컬어 후당수좌(後堂首座)라 함. 승당에 각인의 좌위(座位)는 가로로 3척을 점유하고 두상의 서까래가 3조(條)가 있으므로 고로 고래로 삼조연하칠척단전(三條椽下七尺單前)이란 말이 있음. 또 승당 내 소정(所定)의 좌위를 일컬어 당위(堂位)라 함. 백장청규6 일용궤범조. 재(齋)를 마치면 승당 내에서 취두(聚頭)하여 설화(說話)함을 얻지 못한다. 승당 중에서 간경(看經)ㆍ간책자(看冊子)를 얻지 못한다. 상하간(上下間)에서 행도(行道)하며 승당을 꿰뚫어 직과(直過)함을 얻지 못한다. 대개 간경은 중료(衆寮)에서 독송하고 설법과 문답은 법당에서 이를 행함. 이 승당에선 모름지기 함묵(緘默)을 보지(保持)해야 함. 이로 인하여 욕실ㆍ서정(西淨)과 더불어 공칭(共稱)이 삼묵당(三默堂)이 됨. 이 밖에 승당에 괘석(掛錫)한 수행자를 일컬어 당중(堂衆)ㆍ당승(堂僧)이라 함 [전등록6선문규식].
●衣鉢下; 승당 중의 장련상(長連床)을 가리킴. 이는 선승이 좌선하고 참습(參習)하는 곳이며 선승의 의발과 용구(用具)를 상(床)의 상방(上方)의 목가(木架)나 혹 장상(墻上)에 걸어 두는지라 고로 장련상을 일컬어 의발하라 함.
●賺殺; 잠(賺)은 싸게 사서 비싸게 팖임. 정자통 잠(賺) 세속에서 이르기를 서로 속임을 가로되 잠(賺)이다. 살(殺)은 소팔절(所八切; 살)이며 부사(副詞)니 쓰임이, 위어(謂語; 일러 말하다)한 후면에 있으며 정도의 심함을 표시함. 예컨대(如) 취살(醉殺)ㆍ상살(想殺)ㆍ수살(愁殺). 또 쇄(殺)는 소배절(所拜切; 쇄)이니 빠름임. 사나움임. 또 흔(很; 매우. 몹시)임. 심(甚)임. 속어에 매우 심함을 가로되 쇄(殺)니 예컨대(如) 쇄유(殺有)ㆍ쇄대(殺大)ㆍ쇄고(殺高).
●指南; 또 이르되 사남(司南)이며 또한 이르되 사방(司方)임. 장경음의수함록11. 귀곡자(鬼谷子)에 이르되 정(鄭)나라 사람 숙신씨(肅愼氏)가 흰 꿩을 바치고 돌아가자 주공(周公)이 위하여 지남거를 만들어 전송했다. 그가 미혹할까 염려했음이다. 제기(帝記)에 이르되 고신씨(高辛氏)가 지남거(指南車)를 만들었다. ▲종용록 제53칙. 황제(黃帝)와 치우가 탁록(涿鹿)에서 전투했는데 치우(蚩尤)가 큰 안개를 만들어 사방을 혼미케 했다. 황제가 수레에 있으며 지휘하는데 지남(指南)하여 보이자 사졸(士卒)이 치우를 사로잡아 그를 베었다. 드디어 지남거(指南車)로 호했다.
師因東西兩堂爭猫兒 師遇之 白衆曰 道得卽救取猫兒 道不得卽斬却也 衆無對 師便斬之 趙州自外歸 師擧前語示之 州乃脫履安頭上而出 師曰 子若在 卽救得猫兒也 師在方丈 與杉山向火次 師曰 不用指東指西 直下本分事道來 山插火箸叉手 師曰 雖然如是 猶較王老師一線道 有僧問訊 叉手而立 師曰 太俗生 其僧便合掌 師曰 太僧生 僧無對 一僧洗鉢次 師乃奪却鉢 其僧空手而立 師曰 鉢在我手裏 汝口喃喃作麽 僧無對 師因入菜園見一僧 師乃將瓦子打之 其僧回顧 師乃翹足 僧無語 師便歸方丈 僧隨後入問訊曰 和尙適來擲瓦子打某甲 豈不是警覺某甲 師曰 翹足又作麽生 僧無對〈後有僧問石霜云 南泉翹足意作麽生 霜擧手云 還恁麽無〉
●東西兩堂; 東堂與西堂 禪寺中的僧堂因人多而分爲東堂西堂 或前堂後堂 合稱兩堂 又禪林稱當寺前住之人名爲東堂 他山隱退之長老來住本寺 名爲西堂 以西是賓位故也 東堂又稱東庵
●本分事; 一禪人本身分內的大事 指獲得禪悟超脫生死 二指禪家宗匠著眼本分大事 而采取的接引學人之手段 此指一
●一線道; 形容極小的距離或空間
●太俗生; 太 表示程度過分 相當于甚 生 語助詞 有時可作樣字或然字解
●喃喃; 呢喃 玉篇 喃 呢喃 ▲玄應音義九 引埤蒼曰 喃 語聲也
●瓦子; 碎瓦片
스님이 동서양당(東西兩堂)이 고양이(猫兒; 兒는 조사)를 다툼으로 인해 스님이 이를 만나자 대중에게 알려(白) 가로되 말함을 얻으면 곧 고양이를 구취(救取)하려니와 말함을 얻지 못하면 곧 베어버리겠다. 대중이 대답이 없자 스님이 바로 베었다. 조주가 밖으로부터 돌아오자 스님이 전어(前語)를 들어 보였다. 조주가 이에 신을 벗어 두상(頭上)에 안치하고 나갔다. 사왈(師曰) 네가 만약 있었다면 곧 고양이를 구득(救得)했으리라. 스님이 방장에 있으면서 삼산(杉山; 智堅)과 더불어 불을 향하던 차에 사왈 지동지서(指東指西)를 쓰지 말고 직하(直下; 즉시)에 본분사(本分事)를 말하라. 삼산이 화저(火箸)를 삽입하고 차수(叉手)했다. 사왈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지만 오히려 왕노사와 1선도(一線道)가 어긋난다(較). 어떤 중이 문신(問訊)하고 차수(叉手)하여 서자 사왈 태속생(太俗生; 너무 속인과 같다). 그 중이 바로 합장했다. 사왈 태승생(太僧生; 너무 승인과 같다). 중이 대답이 없었다. 1승(僧)이 발우(鉢盂; 鉢)를 씻던 차에 스님이 곧 발우를 뺏아버렸다. 그 중이 곧 빈손으로 섰다. 사왈 발우가 나의 손안에 있거늘 네가 입으로 남남(喃喃)하여 무엇하겠느냐. 중이 대답이 없었다. 스님이 채원(菜園)에 들어가 1승을 봄으로 인해 스님이 곧 와자(瓦子)를 가지고 그(之)를 때렸다. 그 중이 돌아보았다. 스님이 이에 발을 들었다(翹; 음 교). 중이 말이 없었다. 스님이 바로 방장으로 돌아갔다. 중이 뒤따라 들어와 문신(問訊)하고 가로되 화상이 아까 와자(瓦子)를 던져 모갑을 때린 것은 어찌 이 모갑을 경각(警覺)함이 아니겠습니까. 사왈 발을 든 것은 또 무엇인가(作麽生). 중이 대답이 없었다〈후에 어떤 중이 石霜(慶諸)에게 물어 이르되 남천이 발을 든 뜻이 무엇입니까. 석상이 擧手하고 이르되 도리어 이러한가 아닌가(還恁麽無)〉.
●東西兩堂; 동당(東堂)과 서당(西堂). 선사(禪寺) 중의 승당은 사람이 많음으로 인해 동당과 서당, 혹 전당과 후당으로 분리하며 합칭이 양당(兩堂)임. 또 선림에서 일컫기를 당사(當寺)에 전부터 거주한 사람을 이름해 동당(東堂)이라 하고 타산에서 은퇴한 장로가 본사에 와서 거주하는 이를 이름해 서당(西堂)이라 함. 서(西)는 이 빈위(賓位)인 연고임. 동당은 또 명칭이 동암(東庵).
●本分事; 1. 선인(禪人)의 본 신분 내의 대사. 선오(禪悟)를 획득하여 생사를 초탈함을 가리킴. 2. 선가의 종장이 본분대사에 착안해 채취한, 학인을 접인하는 수단을 가리킴. 여기에선 1을 가리킴.
●一線道; 극소의 거리나 혹은 공간을 형용함.
●太俗生; 태(太)는 정도가 과분함을 표시하며 심(甚)에 상당함. 생(生)은 어조사며 어떤 때는 가히 양자(樣字) 혹 연자(然字)의 해석을 지음.
●喃喃; 니남(呢喃; 재잘거림. 지지배배). 옥편 남(喃) 니남(呢喃)이다. ▲현응음의9. 비창(埤蒼)을 인용해 가로되 남(喃) 말하는 소리다.
●瓦子; 파쇄된 기와 조각.
上堂 王老師賣身去也 還有人買麽 一僧出曰 某甲買 師曰 不作貴 不作賤 汝作麽生買 僧無對〈臥龍代云 屬某甲去也 禾山代云 是何道理 趙州代云 明年與和尙縫一領布衫〉 師與歸宗麻谷同去參禮南陽國師 師於路上畫一圓相曰 道得卽去 宗便於圓相中坐 谷作女人拜 師曰 恁麽則不去也 宗曰 是甚麽心行 師乃相喚便回 更不去禮國師〈玄覺云 只如南泉恁麽道 是肯語是不肯語 雲居錫云 比來去禮拜國師 南泉爲甚麽却相喚回 且道古人意作麽生〉 師在山上作務 僧問 南泉路向甚麽處去 師拈起鎌子曰 我這茆鎌子 三十錢買得 曰 不問茆鎌子 南泉路向甚麽處去 師曰 我使得正快 有一座主辭師 師問 甚麽處去 對曰 山下去 師曰 第一不得謗王老師 對曰 爭敢謗和尙 師乃噴嚏曰 多少 主便出去〈雲居膺云 非師本意 先曹山云 賴也 石霜云 不爲人斟酌 長慶云 請領話 雲居錫云 座主當時出去 是會不會〉
●南陽國師; 唐代僧慧忠長期住南陽白崖山黨子谷 世稱南陽國師
●女人拜; 卽女子所行之禮拜樣式 其式有多種異說 古來女子多爲立拜屈膝 或以兩手置於胸前 略作鞠躬 或兩膝同時跪地 而頭不低下
●心行; 一心爲念念遷流者 故曰心行 又善惡之所念 謂之心行 二心中念念不忘爲心行 禪宗明心見性 不使心有昏昧也 此指一
●比來; 近來 最近 比 副詞 近 近來
●斟酌; 計較卜度之義 說文 斟 勺也 玉篇 酌 斟也 挹也
상당(上堂) 왕노사(王師老)가 매신(賣身; 몸을 팔다)하려고 하나니 도리어 살 사람이 있는가. 1승(僧)이 나와 가로되 모갑이 사겠습니다. 사왈 귀(貴; 비싸다)도 짓지 않고 천(賤; 싸다)도 짓지 않거늘 네가 어떻게(作麽生) 사겠는가. 중이 대답이 없었다〈臥龍(慧球)이 代云 모갑에게 屬했습니다. 禾山(無殷)이 代云 이 무슨 도리입니까. 趙州가 代云 明年에 화상에게 일령(一領; 한 벌)의 布衫을 縫製해 드리겠습니다〉. 스님이 귀종(歸宗; 智常), 마곡(麻谷)과 더불어 함께 가서 남양국사(南陽國師)를 참례(參禮)하는데 스님이 노상(路上)에 1원상(圓相)을 그리고 가로되 말함을 얻으면 곧 가겠다. 귀종이 바로 원상 가운데에 앉았다. 마곡이 여인배(女人拜)를 지었다. 사왈 이러하다면 곧 가지 않겠다. 귀종이 가로되 이 무슨 심행(心行)인가. 스님이 이에 상환(相喚)하며 바로 돌아갔으며 다시 국사에게 참례하러 가지 않았다〈玄覺(行言)이 이르되 只如 남천의 이러한 말은 이는 수긍한 말인가 수긍하지 아니한 말인가. 雲居錫(淸錫)이 이르되 比來 가서 국사에게 예배하려고 했는데 남천이 무엇 때문에 도리어 相喚하며 돌아갔는가. 且道하라 고인의 뜻이 무엇인가〉. 스님이 산 위에 있으면서 작무(作務)했다. 중이 묻되 남천로(南泉路)는 어느 곳을 향해 가야 합니까. 스님이 겸자(鎌子; 낫. 子는 後綴)를 집어 일으키고 가로되 나는 이 모겸자(茆鎌子; 띠풀을 베는 낫. 茆는 茅와 통함)를 30전(錢)에 사서 얻었다. 가로되 모겸자를 물음이 아니라 남천로는 어느 곳을 향해 가야 합니까. 사왈 내가 사용하매(使得) 바로 쾌(快)하다. 1좌주(座主)가 있어 스님에게 고별했다. 스님이 묻되 어느 곳으로 가느냐. 대왈(對曰) 산 아래로 갑니다. 사왈 첫째(第一) 왕노사를 비방함을 얻지 말아라. 대왈 어찌 감히 화상을 비방하겠습니까. 스님이 곧 분체(噴嚏; 재채기)하고 가로되 얼마인가(多少). 좌주가 바로 나갔다〈雲居膺(道膺)이 이르되 스님의 본의(本意)가 아니다. 先曹山(本寂)이 이르되 다행이다(賴也). 石霜(慶諸)이 이르되 남을 위해 짐작(斟酌)하지 말아라. 長慶(慧稜)이 이르되 청컨대 話를 領會하라. 雲居錫(淸錫)이 이르되 좌주가 당시에 나갔음은 이는 알았는가(會), 알지 못했는가〉.
●南陽國師; 당대승 혜충(慧忠)이 장기간 남양(南陽) 백애산 당자곡에 거주한지라 세칭이 남양국사임.
●女人拜; 즉 여자가 행하는 바의 예배 의식임. 그 방식에 여러 가지의 이설이 있음. 고래로 여자는 다분히 서서 절하고 무릎을 굽힘. 혹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놓고 약간 몸을 굽힘. 혹은 두 무릎을 동시에 땅에 꿇고 머리는 아래로 낮추지 않음.
●心行; 1. 심은 염념(念念)에 천류(遷流)하는 것이 되는지라 고로 가로되 심행임. 또 선악의 소념(所念)을 일러 심행이라 함. 2. 심중의 염념에 잊지 않음을 심행이라 함. 선종은 명심견성하여 마음에 혼매(昏昧)가 있지 않게 함. 여기에선 1을 가리킴.
●比來; 근래. 최근. 비(比)는 부사니 근(近)ㆍ근래.
●斟酌; 계교(計較), 복탁(卜度)의 뜻. 설문 짐(斟) 작(勺; 구기. 잔질하다)이다. 옥편 작(酌) 짐(斟; 술 따르다. 짐작하다)이다. 읍(挹; 뜨다)이다.
師一日掩方丈門 將灰圍却門外曰 若有人道得卽開 或有祇對 多未愜師意 趙州曰 蒼天 師便開門 師翫月次 僧問 幾時得似這箇去 師曰 王老師二十年前 亦恁麽來 曰 卽今作麽生 師便歸方丈 陸亘大夫問 弟子從六合來 彼中還更有身否 師曰 分明記取 擧似作家 曰 和尙不可思議 到處世界成就 師曰 適來總是大夫分上事 陸異日謂師曰 弟子亦薄會佛法 師便問 大夫十二時中作麽生 曰 寸絲不挂 師曰 猶是堦下漢 師又曰 不見道 有道君王不納有智之臣 上堂次 陸大夫曰 請和尙爲衆說法 師曰 敎老僧作麽生說 曰 和尙豈無方便 師曰 道他欠少甚麽 曰 爲甚麽有六道四生 師曰 老僧不敎他 陸大夫與師見人雙陸 指骰子曰 恁麽不恁麽 正恁麽信彩去時如何 師拈起骰子曰 臭骨頭十八 又問 弟子家中有一片石 或時坐 或時臥 如今擬鐫作佛 還得否 師曰 得 陸曰 莫不得否 師曰 不得〈雲巖云 坐卽佛 不坐卽非佛 洞山云 不坐卽佛 坐卽非佛〉
●祇對; 又作秖對秪對 回答 應對 祇 與秖秪用同
●大夫; 官名 各個朝代所指的內容不盡相同 有時可指中央機關的要職 禮記王制篇 天子 三公 九卿 二十七大夫 八十一元士 大國 三卿皆命于天子 下大夫五人 上士二十七人(云云) 又指官僚謂大夫
●六合; 天地與四方 天下 宇宙 ▲祖庭事苑五 六合 莊子(齊物論) 六合之外 聖人存而不論 六合之內 聖人論而不議
●作家; 同作者 機用傑出的禪家高手
●六道四生; 六道 指地獄 餓鬼 畜生 阿修羅 人間 天上等六種世界 又依六道衆生出生之形態 可分胎生 卵生 濕生 化生等四類 竝稱六道四生 其中 人趣與畜生趣各具四生 鬼趣通胎化二生 一切地獄諸天及中有 唯爲化生 [俱舍論八]
●雙陸; 又作雙六 古代的一種賭博遊戱 ▲祖庭事苑七 雙陸 博戲也 如樗蒲 雉盧是也 ▲慧琳音義五十九 博掩 博 博戲也 用六箸六棊謂之六博 掩 圍幕也 纂文云 撲掩 跳錢戲也 俗人謂之射意 一曰射數 亦云博戲 掩 取 又財物也
●骰子; 賭具 也用以占卜 行酒令或作遊戲 多以獸骨製成 爲小正方塊 六面分刻一 二 三 四 五 六點 一 四 塗以紅色 餘塗黑色 擲之視所見點數或顔色爲勝負
●信彩; 骰子彫一二三等數 此言彩 信彩 本指在雙陸博戲中信手擲骰子 引申指隨意 不拘 信 隨意 任凭 如信手拈來 彩 又文彩 文章 又彩 賞品或賞金 賭博或某種競爭活動中 給得勝者的錢物 唐代李白送外甥鄭灌從軍三首之一 六博爭雄好彩來 金盤一擲萬人開
스님이 어느 날 방장문(方丈門)을 닫고(掩) 재를 가져다 문밖에 둘러버리고 가로되 만약 어떤 사람이 도득(道得)하면 곧 열겠다. 혹 지대(祇對)함이 있었지만 다분히 스님의 뜻에 맞지(愜) 않았다. 조주가 가로되 창천(蒼天). 스님이 바로 문을 열었다. 스님이 달구경(翫月)하던 차에 중이 묻되 어느 때(幾時)에 이것(這箇)과 같음을 얻어 가겠습니까. 사왈 왕노사가 20년 전에도 또한 이렇게(恁麽) 왔다. 가로되 즉금은 어떻습니까(作麽生). 스님이 바로 방장으로 돌아갔다. 육긍대부(陸亘大夫)가 묻되 제자가 육합(六合)으로부터 왔습니다만 그(彼) 중에 도리어 다시 몸이 있습니까. 사왈 분명히 기취(記取)하여 작가(作家)에게 들어 보여라. 가로되 화상은 불가사의합니다. 도처(到處)에서 세계(世界)를 성취합니다. 사왈 적래(適來; 잠시 전)에 모두(總) 이 대부(大夫)의 분상사(分上事)다. 육긍이 다른 날 스님에게 일러 가로되 제자도 또한 불법을 희박(稀薄; 薄)하게 압니다(會). 스님이 바로 묻되 대부가 12시 중에 어떠한가(作麽生). 가로되 촌사(寸絲)도 걸치지 않습니다. 사왈 오히려(猶) 이는 계하한(堦下漢)이다. 스님이 또 가로되 말함을 보지 못했는가, 도가 있는 군왕(君王)은 지혜가 있는 신하를 수납(受納)하지 않는다. 상당차(上堂次)에 육대부(陸大夫)가 가로되 청컨대 화상이 대중을 위해 설법하십시오. 사왈 노승으로 하여금(敎) 어떻게(作麽生) 설하라 하는가. 가로되 화상이 어찌 방편이 없겠습니까. 사왈 말하노니 그가 흠소(欠少)한 게 무엇인가. 가로되 무엇 때문에(爲甚麽) 육도사생(六道四生)이 있습니까. 사왈 노승은 그를 가르치지 않는다. 육대부가 스님과 더불어 쌍륙(雙陸)하는 사람을 보다가 투자(骰子)를 가리키며 가로되 이러한가(恁麽), 이러하지 않는가. 바로 이렇게(恁麽) 신채(信彩)하여 갈 땐 어떠합니까. 스님이 투자(骰子)를 집어 일으키고 가로되 취골두(臭骨頭; 骰子를 가리킴)가 십팔(十八)이다. 또 묻되 제자의 가중(家中)에 일편석(一片石)이 있는데 어떤 때(或時)는 앉고 어떤 때는 눕습니다. 여금에 조각(彫刻; 鐫)하여 부처를 만들려고 하는데 도리어 얻겠습니까(得否). 사왈 얻는다(得). 육왈(陸曰) 부득(不得)하지 않겠습니까. 사왈 얻지 못한다(不得)〈雲巖(曇晟)이 이르되 앉으면 곧 부처며 앉지 못하면 부처가 아니다. 洞山이 이르되 앉지 못하면 곧 부처며 앉으면 곧 부처가 아니다〉.
●祇對; 또 지대(秖對)ㆍ지대(秪對)로 지음. 회답임. 응대임. 지(祇)는 지(秖)ㆍ지(秪)와 용이 같음.
●大夫; 벼슬 이름. 각개 조대(朝代)에 가리키는 바의 내용이 다 서로 같지는 아니함. 어떤 때엔 가히 중앙기관의 요직을 가리켰음. 예기 왕제편 천자는 3공(公)ㆍ9경(卿)ㆍ27대부(大夫)ㆍ81원사(元士)다. 대국(大國) 3경은 다 천자에게서 임명 받는다. 하대부가 5인이며 상사(上士)가 27인이다 (운운). 또 관료를 가리켜 대부로 일컬음.
●六合; 천지와 사방이니 천하, 우주. ▲조정사원5. 육합(六合) 장자(齊物論) 육합의 밖은 성인이 두되 논하지 않으며 육합의 안은 성인이 논하되 의(議; 시비를 가림)하지 않는다.
●作家; 작자와 같음. 기용(機用)이 걸출한 선가의 고수.
●六道四生; 6도는 지옥ㆍ아귀ㆍ축생ㆍ아수라ㆍ인간ㆍ천상 등 6종 세계를 가리키며 또 육도중생이 출생하는 형태에 의해 가히 태생ㆍ난생ㆍ습생ㆍ화생 등의 4류(類)로 분류하며 병칭하여 6도4생(六道四生)이라 함. 그 중에 인취(人趣)와 축생취는 각기 4생을 갖추고 귀취(鬼趣)는 태화(胎化) 2생에 통하며 일체의 지옥과 제천(諸天) 및 중유(中有)는 오직 화생함 [구사론8].
●雙陸; 또 쌍륙(雙六)으로 지음. 고대의 1종 도박 유희임. ▲조정사원7. 쌍륙(雙陸) 박희(博戲; 도박놀이)니 저포(樗蒲; 樗는 가죽나무 저. 저포는 윷놀이의 한 가지. 옛날의 도박)와 치로(雉盧) 같은 게 이것임. ▲혜림음의59. 박엄(博掩) 박(博)은 박희(博戲)임. 6저(箸)ㆍ6기(棊)를 사용함을 일러 육박(六博)이며 엄(掩)은 위막(圍幕)임. 찬문(纂文)에 이르되 박엄(撲掩) 도전희(跳錢戲)다. 속인이 이를 일러 사의(射意)라 함. 한편으론 가로되 사수(射數)며 또 이르되 박희(博戲)니 엄(掩)은 취(取)며 또 재물임.
●骰子; 도박 용구. 또한 사용하여 점복(占卜)하거나 주령(酒令)을 행하거나 혹 유희를 지음. 많이들 짐승의 뼈로 제작해 이룸. 작고 정방(正方)의 덩어리가 되며 6면에 각기 일(一)ㆍ이(二)ㆍ삼(三)ㆍ사(四)ㆍ오(五)ㆍ육(六) 점을 새기고 일(一)ㆍ사(四)는 홍색을 칠하고 나머지는 흑색을 칠함. 이를 던져 보이는 바 점수 혹 안색(顔色)을 보아서 승부를 지음.
●信彩; 투자(骰子; 주사위)에 일이삼(一二三) 등의 수를 새기는데 이것을 채(彩)라고 말함. 신채(信彩)는 본래 쌍륙(雙陸)의 박희(博戲; 노름) 중에 손 닿는 대로 투자를 던짐을 가리킴. 인신(引申; 轉義)하여 수의(隨意)ㆍ불구(不拘)를 가리킴. 신(信)은 수의(隨意)ㆍ임빙(任凭; 마음대로 하게 하다)이니 신수염래(信手拈來)와 같음. 채(彩)는 또 문채ㆍ문장임. 또 채(彩)는 상품 혹 상금이니 도박 혹 모종의 경쟁 활동 중 승자에게 급여하는 전물(錢物)임. 당대 이백(李白)의, 종군하는 외생 정관을 보냄(送外甥鄭灌從軍)의 3수의 하나 육박(六博)에서 쟁웅(爭雄)하매 호채(好彩)가 오고 금반(金盤)에 한 번 던지니 만인(萬人)이 열리다.
趙州問 道非物外 物外非道 如何是物外道 師便打 州捉住棒曰 已後莫錯打人去 師曰 龍蛇易辨 衲子難謾 師喚院主 主應諾 師曰 佛九十日在忉利天 爲母說法 時優塡王思佛 請目連運神通三轉 攝匠人往彼彫佛像 秖雕得三十一相 爲甚麽梵音相雕不得 主問 如何是梵音相 師曰 賺殺人 師問維那 今日普請作甚麽 對曰 拽磨 師曰 磨從你拽 不得動著磨中心樹子 那無語〈保福代云 比來拽磨 如今却不成 法眼代云 恁麽卽不拽也〉 一日有大德問師曰 卽心是佛又不得 非心非佛又不得 師意如何 師曰 大德且信卽心是佛便了 更說甚麽得與不得 祇如大德喫飯了 從東廊上西廊下 不可總問人得與不得也 師住庵時 有一僧到庵 師向伊道 我上山去作務 待齋時作飯自喫了 送一分上來 少時 其僧自作飯喫了 却一時打破家事就牀臥 師待不見來 便歸庵 見僧臥 師亦就伊邊臥 僧便起去 師住後曰 我往前住庵時 有箇靈利道者 直至如今不見
●院主; 又名寺主 禪家監事之舊名也 今之監事 古稱院主或寺主 院主之名 以住持之稱 號旣濫故 改爲監事云
●優塡王; 慧琳音義十五 拘睒彌 上音俱 次商染反 此句梵語不求字義 中印度國名也 佛在時此國有王名隖陀衍那 唐言出愛 古譯或云優陀延 或名優塡王 皆訛略也
●目連; 摩訶目犍連之略 佛陀十大弟子之一 又作目犍連 目揵連 大目犍連 沒特伽羅等 此云天抱 被譽爲神通第一 摩揭陀國王舍城外拘律陀村人 婆羅門種 自幼卽與舍利弗交情甚篤 同爲刪闍耶外道之弟子 各領徒衆二百五十人 後舍利弗因逢佛陀弟子阿說示 而悟諸法無我之理 竝告目犍連 目犍連遂率弟子一同拜謁佛陀 蒙其敎化 時經一月 證得阿羅漢果 於佛本行集經四十七舍利弗目連緣品 四分律三十三等 並載有此事
●梵音相; 佛三十二相之一 佛之梵音深遠相
●家事; 一家用器具 日用器具 二玩具 此指一
●靈利; 機靈 有悟性 禪家稱根器好 悟性高者爲靈利人 靈利衲僧等 靈 聰明也 利 剡也
조주가 묻되 도는 사물 밖이 아니며 사물 밖은 도가 아니라 하니 무엇이 이 사물 밖의 도입니까. 스님이 바로 때렸다. 조주가 방(棒)을 착주(捉住)하고 가로되 이후(已後)에 사람을 잘못 때리지 마십시오. 사왈 용사(龍蛇)는 분변하기 쉽지만 납자는 속이기 어렵구나. 스님이 원주(院主)를 불렀다. 원주가 응낙했다. 사왈 부처가 90일 동안 도리천(忉利天)에 있으면서 어머니를 위해 설법했는데 당시에 우전왕(優塡王)이 부처를 사모(思慕)하여 목련(目連)에게 청해 신통을 운행해 3전(轉; 量詞) 장인(匠人)을 거두어 거기에 가서 불상(佛像)을 조각했다. 다만 31상(相)을 조각함을 얻었다 하니 무엇 때문에 범음상(梵音相)을 조각함을 얻지 못했는가. 원주가 묻되 무엇이 이 범음상입니까. 사왈 사람을 너무 속이는구나(賺殺人). 스님이 유나(維那)에게 묻되 금일 보청(普請)하여 무엇을 하느냐. 대왈(對曰) 맷돌을 끕니다(拽磨). 사왈 맷돌은 너의 끄는 대로 좇지만 맷돌의 중심(中心) 수자(樹子; 子는 조사)는 동착(動著)함을 얻지 말아라. 유나가 말이 없었다〈保福(從展)이 代云 比來에 拽磨했는데 여금에 도리어 이루지 못했습니다. 法眼이 代云 이러하다면 곧 끌지 않겠습니다〉. 어느 날 어떤 대덕(大德)이 스님에게 물어 가로되 즉심시불(卽心是佛)도 또 얻지(得) 못하고 비심비불(非心非佛)도 또 얻지 못합니다. 스님의 뜻은 어떻습니까. 사왈 대덕이 즉심시불(卽心是佛)을 다만 믿고 바로 마칠 것이지 다시 무슨(甚麽) 득(得)과 부득(不得)을 설하느냐. 지여(祇如; 例擧를 表示) 대덕이 끽반(喫飯)하여 마치면 동랑상(東廊上)이나 서랑하(西廊下)를 좇을 것이지 줄곧(總) 타인에게 득과 부득을 물음은 옳지 못하다. 스님이 주암(住庵)할 때 어떤 1승이 암자에 이르렀다. 스님이 그를 향해 말하되 나는 산에 올라가서 작무(作務)할 것이니 재시(齋時)를 기다렸다가 밥을 지어 스스로 먹어 마치고 일분(一分)을 올려 보내어라. 소시(少時; 잠시)에 그 중이 스스로 밥을 지어 먹어 마치고 도리어 일시에 가사(家事)를 타파하고 상(牀)으로 나아가 누웠다. 스님이 기다려도 오는 게 보이지 않자 바로 귀암(歸庵)하여 중이 누운 것을 보았다. 스님도 또한 그의 가(伊邊)로 나아가 누웠다. 중이 바로 일어나 갔다. 스님이 주후(住後)에 가로되 내가 왕전(往前; 以前)에 주암(住庵)할 때 저(箇) 영리(靈利)한 도자(道者; 禪人)가 있었는데 바로 여금에 이르도록 보지 못했다.
●院主; 또 명칭이 사주(寺主)니 선가의 감사(監事)의 옛 명칭임. 여금의 감사는 옛 명칭이 원주 혹 사주였음. 원주의 명칭은 주지(住持)의 호칭으로 썼으나 호가 이미 범람하는 고로 고쳐 감사라 했음.
●優塡王; 혜림음의15. 구섬미(拘睒彌; 梵 kauśāmbī) 상은 음이 구며 다음은 상염반(商染反; 섬)이니 이 구는 범어며 자의(字義)를 구하지 못한다. 중인도의 나라 이름이다. 불타가 재세(在世)했을 때 이 나라에 왕이 있었으니 이름이 오다연나(隖陀衍那)며 당나라 말로 출애(出愛)다. 고역(古譯)에 혹 이르되 우다연(優陀延) 혹 이름이 우전왕(優塡王; 梵 udayana)은 모두 와략(訛略)이다.
●目連; 마하목건련(摩訶目犍連; 梵 Mahāmaudgalyāyana)의 약명. 불타 10대 제자의 하나. 또 목건련(目犍連)ㆍ목건련(目揵連)ㆍ대목건련ㆍ몰특가라 등으로 지음. 여기에선 이르되 천포(天抱)니 신통제일이란 명예를 입음. 마갈타국 왕사성 밖 구률타촌(拘律陀村) 사람이며 바라문종. 어릴 적부터 곧 사리불과 교정(交情)이 매우 돈독했고 함께 산사야(刪闍耶) 외도의 제자가 되었으며 각기 도중 250인을 거느렸음. 후에 사리불이 불타의 제자 아설시(阿說示)를 만남으로 인해 제법무아의 이치를 깨달았고 아울러 목건련에게 고했으며 목건련이 드디어 제자를 인솔하여 일동(一同)이 불타를 배알(拜謁)했으며 그의 교화를 입었는데 한 달이란 시일이 경과하자 아라한과를 증득했음. 불본행집경47 사리불목련연품과 사분율33 등에 모두 이 일이 기재되어 있음.
●梵音相; 불타의 32상의 하나. 불타의 범음의 심원(深遠)한 상(相).
●家事; 1. 집에서 쓰는 기구. 일용의 기구. 2. 완구(玩具) 여기에선 1을 가리킴.
●靈利; 기령(機靈)이니 오성(悟性)이 있음. 선가에서 근기가 좋고 오성이 높은 자를 일컬어 영리인ㆍ영리납승 등이라 함. 령(靈)은 총명이며 리(利)는 염(剡; 날카로울 염)임.
師拈起毬子問僧 那箇何似這箇 對曰 不似 師曰 甚麽處見那箇 便道不似 曰 若問某甲見處 和尙放下手中物 師曰 許你具一隻眼 陸大夫向師道 肇法師也甚奇怪 解道天地與我同根 萬物與我一體 師指庭前牡丹花曰 大夫 時人見此一株花如夢相似 陸罔測 又問 天王居何地位 師曰 若是天王 卽非地位 曰 弟子聞說天王是居初地 師曰 應以天王身得度者 卽現天王身而爲說法 陸辭歸宣城治所 師問 大夫去彼 將何治民 曰 以智慧治民 師曰 恁麽則彼處生靈盡遭塗炭去也 師入宣州 陸大夫出迎接 指城門曰 人人盡喚作雍門 未審和尙喚作甚麽門 師曰 老僧若道 恐辱大夫風化 曰 忽然賊來時作麽生 師曰 王老師罪過 陸又問 大悲菩薩用許多手眼作甚麽 師曰 秖如國家又用大夫作甚麽
●毬子; 卽毬 子 後綴 最初以毛糾結而成 後以皮爲之 中實以毛 或充以氣
●一隻眼 一指於佛法上 具有眞實正見之慧眼 非凡夫之肉眼 義同頂門眼 正眼 活眼 明眼 二與兩隻眼相對 只見一邊的深刻的眼光 此指一
●肇; 僧肇(384-414) 略稱肇法師 東晉僧 長安人 俗姓張 家貧 以傭書爲業 遂得博覽經史 初好老莊 及讀維摩經而感悟 遂出家 善方等大乘經典 兼通三藏 冠年名聲已震關中 才思幽玄 精於談論 聞鳩摩羅什羈留涼土 前往從之 羅什歎爲奇才 及至姚秦破涼 乃隨侍羅什入長安 稟姚興之命 與僧叡等於逍遙園詳定經論 解悟彌深 被稱爲解空第一 弘始六年(404) 羅什譯出大品般若經 師乃撰般若無知論呈之 後又撰述不眞空論 物不遷論 涅槃無名論 注維摩詰經十卷等 義熙十年示寂 年僅三十一 後人收集僧肇所著之宗本義 物不遷 不眞空 般若無知 涅槃無名諸論 題名爲肇論行世 [佛祖歷代通載八 梁高僧傳六 出三藏記集八 同九 肇論疏上 魏書釋老志二十]
●天地與我同根下; 肇論云 天地與我同根 萬物與我一體 ◆一體; 外相雖異而其本性則一 故曰一體
●天王; 指大梵天王 又作梵天王 梵王 名爲尸棄 或世主 印度古傳說中 爲劫初時從光音天下生 造作萬物 佛敎中則以之與帝釋天同爲佛敎之護法神 其所住之宮殿 稱爲梵王宮 [大智度論十 大毘婆沙論九十八 大唐西域記四]
●初地; 菩薩乘五十二位中 十地之第一歡喜地 故初地菩薩稱爲歡喜地菩薩
●生靈; 對於死靈之語 卽生者之神識也 又指生命 生民
●風化; 風俗敎化
●大悲菩薩; 觀音菩薩也 大悲之名 雖通於諸佛諸菩薩 而此菩薩爲慈悲門之主 故特以名之
스님이 구자(毬子)를 집어 일으켜 중에게 묻되 나개(那箇; 저것)가 저개(這箇)와 어찌 같은가(何似). 대왈(對曰) 같지 않습니다(不似). 사왈 어느 곳에서 나개(那箇)를 보았기에 바로 같지 않다고 말하느냐. 가로되 만약 모갑의 견처(見處)를 물으신다면 화상이 손안의 물건을 방하(放下)해야 합니다. 사왈 너에게 일척안(一隻眼)을 갖추었다고 허락하겠다. 육긍대부(陸亘大夫; 陸大夫)가 스님을 향해 말하되 조법사(肇法師)가 또한 심히 기괴(奇怪)하나니 천지가 나와 동근이며(天地與我同根) 만물이 나와 일체다(萬物與我一體) 라고 말할 줄 알았습니다. 스님이 뜰 앞의 모란화(牡丹花)를 가리키며 가로되 대부(大夫)여, 시인(時人)이 이 한 그루의 꽃을 봄이 마치 꿈과 상사(相似)하다. 육긍이 헤아리지 못했다(罔測). 또 묻되 천왕(天王)이 어떤 지위에 거주합니까. 사왈 만약 이 천왕이라면 곧 지위가 아니다. 가로되 제자가 설함을 듣기로 천왕은 이 초지(初地)에 거처한다 했습니다. 사왈 응당 천왕신(天王身)을 써야(以) 득도(得度)할 자는 곧 천왕신을 나타내어 설법한다. 육긍이 고별하고 선성(宣城)의 치소(治所)로 돌아가자 스님이 묻되 대부(大夫)가 거기로 가서 무엇을 가지고 치민(治民)하겠는가. 가로되 지혜로써 치민하겠습니다. 사왈 이러하다면 곧 그곳의 생령(生靈)이 모두(盡) 도탄(塗炭)을 만날 것이다. 스님이 선주(宣州)로 들어가자 육대부(陸大夫)가 나와서 영접(迎接)했다. 성문(城門)을 가리키며 가로되 사람마다 모두(盡) 옹문(雍門)이라고 불러 짓습니다. 미심하오니 화상은 무슨 문이라고 불러 짓습니까. 사왈 노승이 만약 말한다면 대부(大夫)의 풍화(風化)를 욕되게 할까 염려스럽다. 가로되 홀연히 도적이 올 때 어떻습니까. 사왈 왕노사의 죄과(罪過)로다. 육긍이 또 묻되 대비보살(大悲菩薩)이 허다한 수안(手眼)을 써서 무엇합니까. 사왈 지여(秖如) 국가가 또 대부(大夫)를 써서 무엇하는가.
●毬子; 곧 구(毬; 공)니 자는 후철. 최초에 털로 얽어 매어 만들었으며 후에 가죽으로 이를 만들었는데 속을 털로 채우거나 혹은 공기로 채웠음.
●一隻眼 1. 불법상(佛法上)에 진실정견(眞實正見)의 혜안을 갖추어 있음을 가리킴. 범부의 육안이 아니며 뜻이 정문안(頂門眼)ㆍ정안(正眼)ㆍ활안(活眼)ㆍ명안(明眼)과 같음. 2. 양척안(兩隻眼)과 상대됨. 단지 일변(一邊)만 보는 심각(深刻)한 안광임. 여기에선 1을 가리킴.
●肇; 승조(僧肇; 384-414)니 약칭이 조법사(肇法師)임. 동진(東晉)의 승려며 장안 사람이며 속성(俗姓)이 장(張). 집안이 가난해 용서(傭書; 남에게 고용되어 글씨를 쓰는 일)로써 업(業)을 삼았으며 드디어 경사(經史)를 박람(博覽)함을 얻었음. 처음엔 노장(老莊)을 좋아했는데 및 유마경을 읽고서 감오(感悟)하여 드디어 출가했음. 방등(方等)의 대승경전을 잘했으며 겸하여 3장(藏)을 통달했음. 관년(冠年)에 명성이 이미 관중(關中)을 진동(震動)했고 재사(才思)가 유현(幽玄)하고 담론에 정밀했음. 구마라집이 양토(涼土)에 기류(羈留)한다 함을 듣고 앞으로 가서 그를 좇았는데 라집이 기재(奇才)라고 탄복했으며 그리고 요진(姚秦)이 파량(破涼)함에 이르자 이에 라집을 수시(隨侍)하며 장안에 들어갔음. 요흥(姚興)의 명령을 받아 승예(僧叡) 등과 함께 소요원(逍遙園)에서 경론을 상정(詳定)하면서 해오(解悟)가 더욱 깊어졌으며 해공제일(解空第一)로 일컬어짐을 입었음. 홍시 6년(404) 라집이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을 역출(譯出)하자 스님이 이에 반야무지론(般若無知論)을 지어 그에게 드렸으며 후에 또 부진공론(不眞空論)ㆍ물불천론(物不遷論)ㆍ열반무명론(涅槃無名論)ㆍ주유마힐경(注維摩詰經) 10권 등을 찬술(撰述)했음. 의희 10년에 시적(示寂)했으니 나이는 겨우 31. 후인이 승조가 지은 바인 종본의(宗本義)ㆍ물불천(物不遷)ㆍ부진공(不眞空)ㆍ반야무지(般若無知)ㆍ열반무명(涅槃無名)의 여러 논을 수집(收集)하여 조론(肇論)으로 제명(題名)했으며 세상에 유행함 [불조역대통재8. 양고승전6. 출삼장기집8, 동9. 조론소상. 위서석로지20].
●天地與我同根下; 조론(肇論)에 이르되 천지와 내가 동근이며 만물과 내가 일체다(天地與我同根 萬物與我一體). ◆一體; 외상(外相)은 비록 다르나 그 본성은 곧 하나인지라 고로 가로되 일체임.
●天王; 대범천왕(大梵天王)을 가리킴. 또 범천왕ㆍ범왕(梵王)으로 지음. 이름이 시기(尸棄) 혹 세주(世主)가 됨. 인도 옛 전설 중 겁초 때 광음천으로부터 하생했으며 만물을 조작(造作)한다 함. 불교 중에선 곧 제석천과 더불어 한가지로 불교의 호법신이 됨. 그가 거주하는 바의 궁전을 일컬어 범왕궁이라 함 [대지도론10. 대비바사론98. 대당서역기4].
●初地; 보살승 52위 중 10지의 제1이 환희지(歡喜地)며 고로 초지보살을 일컬어 환희지보살이라 함.
●生靈; 사령(死靈)에 상대한 말이니 곧 산 자의 신식(神識)임. 또 생명ㆍ생민(生民)을 가리킴.
●風化; 풍속과 교화(敎化).
●大悲菩薩; 관음보살임. 대비의 명칭은 비록 제불과 제보살에 통하지만 이 보살이 자비문의 주(主)가 되므로 고로 특별히 이것을 이름함.
師洗衣次 僧問 和尙猶有這箇在 師拈起衣曰 爭奈這箇何〈玄覺云 且道是一箇 是兩箇〉 師問僧良欽 空劫中還有佛否 對曰 有 師曰 是阿誰 對曰 良欽 師曰 居何國土 欽無語 問 祖祖相傳 合傳何事 師曰 一二三四五 問 如何是古人底 師曰 待有卽道 曰 和尙爲甚麽妄語 師曰 我不妄語 盧行者却妄語 問 十二時中以何爲境 師曰 何不問王老師 曰 問了也 師曰 還曾與汝爲境麽 問 靑蓮不隨風火散時是甚麽 師曰 無風火不隨是甚麽 僧無對 師問 不思善 不思惡 思總不生時 還我本來面目來 曰 無容止可露〈洞山云 還曾將示人麽〉
●空劫; 四劫之第四 世界自成立至破壞之間 分爲成劫 住劫 壞劫 空劫等四階段 稱爲四劫 空劫 卽謂此時期之世界已壞滅 於欲界與色界之有情有色身者之中 唯存色界第四禪天 其他則全然虛空 又世界形成以前而萬物未生之時期 亦稱爲空劫 [俱舍論十二 瑜伽師地論二 立世阿毘曇論九]
●容止; 儀容擧止
스님이 옷을 빨던 차에 중이 묻되 화상이 아직 저개(這箇; 이것)가 있습니까. 스님이 옷을 집어 일으키고 가로되 저개(這箇)를 어찌하겠는가〈玄覺(行言)이 이르되 且道하라, 이 一箇인가, 이 兩箇인가〉. 스님이 승(僧) 양흠(良欽)에게 묻되 공겁(空劫) 중에 도리어 부처가 있는가. 대왈(對曰) 있습니다. 사왈 이 누구(阿誰)인가. 대왈(對曰) 양흠(良欽)입니다. 사왈 어떤 국토에 거처하는가. 양흠이 말이 없었다. 묻되 조조(祖祖)가 서로 전한다 하니 합당히 무슨 일을 전합니까. 사왈 일 이 삼 사 오. 묻되 무엇이 이 고인의 것(古人底)입니까. 사왈 있음을 기다렸다가 곧 말하겠다. 가로되 화상은 무엇 때문에 망어(妄語)하십니까. 사왈 내가 망어하지 않았고 노행자(盧行者; 慧能을 가리킴)가 도리어 망어했다. 묻되 12시 중에 무엇을 경계(境界)로 삼습니까. 사왈 왜 왕노사에게 묻지 않느냐. 가로되 물었습니다. 사왈 도리어 일찍이 너에게 경계가 되어 주느냐. 묻되 청련(靑蓮)이 풍화(風火)의 흩어짐(散)을 따르지 않을 때 이 무엇입니까(是什麽). 사왈 풍화가 없어서 따르지 않으면 이 무엇인가. 중이 대답이 없었다. 스님이 묻되 선(善)도 생각(思)하지 말고 악(惡)도 생각하지 말아라 했거니와 생각(思)이 모두(總) 생하지 않을 때 나에게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송환해 오너라. 가로되 가히 드러낼(露) 용지(容止)가 없습니다〈洞山이 이르되 도리어 일찍이 가져서 사람에게 보였는가〉.
●空劫; 4겁의 제4. 세계가 성립함으로부터 파괴에 이르는 사이를 나누어 성겁ㆍ주겁ㆍ괴겁ㆍ공겁 등의 4계단으로 삼는데 일컬어 4겁이라 함. 공겁은 곧 이르자면 이 시기의 세계는 이미 괴멸하여 욕계와 색계의 유정에 색신이 있는 자 중에 오직 색계의 제사선천(第四禪天)만 생존하고 기타는 곧 전연(全然; 완전히) 허공임. 또 세계가 형성되기 이전에 만물이 나지 아니한 시기를 또한 일컬어 공겁이라 함 [구사론12. 유가사지론2. 입세아비담론9].
●容止; 의용(儀容)과 거지(擧止).
師問座主 你與我講經得麽 曰 某甲與和尙講經 和尙須與某甲說禪始得 師曰 不可將金彈子博銀彈子去 曰 某甲不會 師曰 汝道空中一片雲 爲復釘釘住 爲復藤纜著 問 空中有一珠 如何取得 師曰 斫竹布梯空中取 曰 空中如何布梯 師曰 汝擬作麽生取 僧辭問曰 學人到諸方 有人問 和尙近日作麽生 未審如何祗對 師曰 但向道近日解相撲 曰 作麽生 師曰 一拍雙泯 問 父母未生時 鼻孔在甚麽處 師曰 父母已生了 鼻孔在甚麽處 師將順世 第一座問 和尙百年後向甚麽處去 師曰 山下作一頭水牯牛去 座曰 某甲隨和尙去還得也無 師曰 汝若隨我 卽須銜取一莖草來 師乃示疾 告門人曰 星翳燈幻亦久矣 勿謂吾有去來也 言訖而逝
●相撲; 卽摔跤 古代體育種目 又曰角抵 角力 爭交 ▲慧琳音義五 角勝 上古岳反 切韻 角 競也 角 觸也 漢書故事云 未夬庭設角抵戲者 使角力相抵 卽今之相撲也
●父母未生時; 與父母未生前同義 父母未生以前也 與空劫已前 空王以前 空王那畔 朕兆未萌以前 本來面目等 皆爲同類同語
●第一座; 寺院參禪僧衆的首座 稱爲第一座
●星翳燈幻; 大般若經五七六 如星翳燈幻 露泡夢電雲 於一切有爲 應作如是觀
스님이 좌주(坐主)에게 묻되 네가 나에게 강경(講經)하여 줌을 얻겠는가. 가로되 모갑이 화상에게 강경하여 주겠습니다만 화상은 모름지기 모갑에게 설선(說禪)하여 주셔야 비로소 옳습니다(始得). 사왈 가히 금탄자(金彈子; 彈子는 彈丸)를 가지고 은탄자(銀彈子)와 바꾸지(博) 못한다. 가로되 모갑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네가 말하라, 공중의 일편운(一片雲)이 다시 정정(釘釘; 자꾸 못질함)하며 머묾이 되는가, 다시 등람(藤纜; 藤으로 묶다)하여 붙음이 되는가. 묻되 공중에 1주(珠)가 있으면 어떻게 취득(取得)합니까. 사왈 작죽(斫竹; 쪼갠 대)으로 사다리를 펼쳐(布梯) 공중에서 취한다. 가로되 공중에 어떻게 사다리를 폅니까. 사왈 네가 어떻게(作麽生) 취하려고 하는가. 중이 고별하며 물어 가로되 학인이 제방에 이르매 어떤 사람이 묻되 화상이 근일 어떠하신가(作麽生) 하면 미심하오니 어떻게 지대(祗對; 응대)해야 합니까. 사왈 단지 향해 말하되 근일 상박(相撲)할 줄 안다(解) 하라. 가로되 어떻게요(作麽生). 사왈 일박(一拍)에 쌍민(雙泯; 쌍으로 망하다)한다. 묻되 부모미생시(父母未生時)의 비공(鼻孔)이 어느 곳에 있습니까. 사왈 부모가 이미 생했다, 비공이 어느 곳에 있느냐. 스님이 장차 순세(順世)하려 하자 제1좌(第一座)가 묻되 화상이 백년후(百年後; 死後) 어느 곳을 향해 가십니까. 사왈 산 아래 한 마리(頭; 양사)의 수고우(水牯牛)가 되어 간다. 좌왈(座曰) 모갑이 화상을 따라가려는데 도리어 얻겠습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네가 만약 나를 따른다면 곧 모름지기 한 줄기의 풀을 물고(啣取; 取는 조사) 와야 한다. 스님이 이에 질병을 보였고 문인(門人)에게 고해 가로되 성예등환(星翳燈幻)이 또한 오래되었다. 내가 가고 옴이 있었다고 이르지 말아라. 말을 마치자 서거했다.
●相撲; 곧 솔교(摔跤; 씨름). 고대 체육종목이니 또 가로되 각저(角抵)ㆍ각력(角力)ㆍ쟁교(爭交)임. ▲혜림음의5. 각승(角勝) 상은 고악반(古岳反; 각). 절운(切韻) 각(角) 경(競)이다. 각(角) 촉(觸)이다. 한서고사에 이르되 미쾌(未夬; 未定)면 뜰에 각저희(角抵戲)를 시설하는 것은 각력(角力)으로 서로 겨루게(抵) 했음이니 즉금의 상박(相撲)이다.
●父母未生時;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과 같은 뜻. 부모가 출생하지 아니한 이전임. 공겁이전ㆍ공왕이전ㆍ공왕나반(空王那畔)ㆍ짐조미맹이전(朕兆未萌以前)ㆍ본래면목 등과 모두 동류의 동어(同語)가 됨.
●第一座; 사원의 참선하는 승중의 수좌를 일컬어 제일좌라 함.
●星翳燈幻; 대반야경576 성(星)ㆍ예(翳)ㆍ등(燈)ㆍ환(幻)/ 로(露)ㆍ포(泡)ㆍ몽(夢)ㆍ전(電)ㆍ운(雲)과 같나니/ 일체의 유위(有爲)에/ 응당 이와 같은 관(觀)을 지어라.
오등회원 주역(五燈會元 註譯) 주문 제본
2024. 12월 말 번역 필. 5책 1질. 합4,615쪽. 本註와 補註 총 6,500 目. 미출간. 원문과 출처가 분명한 한문 주석을 넣고 다시 전체를 한글 번역. 주문 요청이 있을 시 인쇄소 에 부탁해 5일 내에 복사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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