鎭州永泰智航禪師
上堂 散爲氣者 乃道之漓 適於變者 爲法之弊 靈機不昧 亘古亘今 大用現前 何得何失 雖然如是 忽遇無孔鐵槌 作麽生話會 拈拄杖曰 穿過了也 上堂 龍騰碧漢 變化無方 鳳翥靑霄 誰知蹤跡 可行則行 不出百千三昧 可止則止 寧忘萬象森羅 所以道取不得 舍不得 不可得中祇麽得 且道得箇甚麽 良久曰 莫妄想
진주(鎭州) 영태(永泰) 지항선사(智航禪師)
상당(上堂) 분산해 기(氣)가 되는 것은 이에 도(道)의 천박(淺薄; 漓)함이며 변함에 적합(適合; 適)한 것은 법의 폐단(弊)이 된다. 영기(靈機)가 불매(不昧)하여 긍고긍금(亘古亘今)하나니 대용(大用)이 현전하거늘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겠는가.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지만 홀연히 무공철추(無孔鐵槌)를 만나면 어떻게(作麽生) 화회(話會)하겠는가. 주장자를 잡고 가로되 천과(穿過)했다. 상당(上堂) 용(龍)이 벽한(碧漢)에 오르니(騰) 변화가 무방(無方)하고 봉(鳳)이 청소(靑霄)에 날아오르니(翥) 누가 종적(蹤跡)을 알겠는가. 가히 행(行)하면 곧 행하지만 백천삼매(百千三昧)를 벗어나지 못하고 가히 멈추면(止) 곧 멈추지만 어찌(寧) 만상삼라(萬象森羅)를 잊겠는가. 소이로 말하되 취함을 얻지 못하고 버림(舍)을 얻지 못하나니 불가득 가운데 이렇게 얻는다. 차도(且道)하라 저(箇) 무엇을 얻느냐. 양구하고 가로되 망상하지 말아라.
江陰軍壽聖子邦圓覺禪師
僧問 祖意敎意拈放一邊 如何得速成佛去 師曰 有成終不是 是佛亦非眞 僧擬議 師叱曰 話頭道甚麽
강음군(江陰軍) 수성(壽聖) 자방(子邦) 원각선사(圓覺禪師)
승문(僧問) 조의(祖意)와 교의(敎意)를 집어다 일변(一邊)에 놓고 어찌해야 속히 성불(成佛)함을 얻습니까. 사왈 이룸(成)이 있으면 마침내 옳지 못하고 이 불(佛)도 또한 진(眞)이 아니다. 중이 의의(擬議)하자 스님이 꾸짖으며 가로되 화두(話頭; 말의 첫머리)에 무엇이라고 말했느냐.
長蘆夫禪師法嗣
明州雪竇道榮覺印禪師
郡之陳氏子 僧問 寒山逢拾得時如何 師曰 揚眉飛閃電 曰 更有何事 師曰 開口放毫光 曰 如何是向上一路 師曰 七六八
명주(明州) 설두(雪竇) 도영(道榮) 각인선사(覺印禪師)
군(郡)의 진씨(陳氏)의 아들이다. 승문 한산이 습득을 만났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눈썹을 치키매(揚眉) 섬전(閃電)을 날린다(飛). 가로되 다시 무슨 일이 있습니까. 사왈 입을 열면 호광(毫光)을 놓는다. 가로되 무엇이 이 향상일로(向上一路)입니까. 사왈 칠ㆍ육ㆍ팔이다.
眞州長蘆宗賾慈覺禪師
洛州孫氏子 僧問 達磨面壁 此理如何 師良久 僧禮拜 師曰 今日被這僧一問 直得口瘂 上堂 冬去寒食 一百單五 活人路上 死人無數 頭鑽荊棘林 將謂衆生苦 拜掃事如何 骨堆上添土 唯有出家人 不踏無生路 大衆且道 向甚麽處去 還會麽 南天台 北五臺 參 上堂 新羅別無妙訣 當言不避截舌 但能心口相應 一生受用不徹 且道如何是心口相應底句 良久曰 焦甎打著連底凍 參 問 六門未息時如何 師曰 鼻孔裏燒香 曰 學人不會 師曰 耳朵裡打鼓 問 如何是無功之功 師曰 泥牛不運步 天下沒荒田 曰 恁麽則功不浪施也 師曰 雖然廣大神通 未免遭他痛棒
●單; 放在兩箇數量中間 用同零
●拜掃; 在墓前祭奠 掃墓
●焦甎打著連底凍; 謂徹底無礙
●功不浪施; 功力不空然施行 浪 空也
진주(眞州) 장로(長蘆) 종색(宗賾) 자각선사(慈覺禪師)
낙주(洛州) 손씨(孫氏)의 아들이다. 승문 달마가 면벽한 이 이치가 무엇입니까. 스님이 양구했다. 중이 예배했다. 사왈 금일 이 중의 일문(一問)을 입자 바로(直) 입이 벙어리(瘂)가 됨을 얻었다. 상당 동지(冬至; 冬)에서 한식(寒食)까지의 거리(距離; 去)가 일백단오(一百單五; 105일)며 활인(活人)의 노상(路上)에 사인(死人)이 무수하다. 머리로 형극림(鑽)을 뚫으매/ 다만 이르기를 중생이 괴롭다 하거니와/ 배소(拜掃)하는 일이 어떠한가 하면/ 골퇴(骨堆) 위에 첨토(添土)한다/ 오직 출가인이 있어/ 무생로(無生路)를 밟지 않는다. 대중은 차도(且道)하라. 어느 곳을 향해 가느냐. 도리어 아느냐. 남은 천태며(南天台) 북은 오대다(北五臺). 참(參)하라. 상당(上堂) 신라(新羅; 宗賾 자신을 가리킴)는 달리 묘결(妙訣)이 없나니/ 말함에 당해 절설(截舌)를 피하지 않는다/ 단지 능히 심구(心口)가 상응하면/ 일생토록 수용(受用)해도 다하지(徹) 않는다. 차도(且道)하라 무엇이 이 심구가 상응하는 구(句)인가. 양구하고 가로되 달군 벽돌로 바닥에 닿은 얼음을 때린다(焦甎打著連底凍). 참(參)하라. 묻되 6문(門)이 쉬지 않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비공(鼻孔) 속에 소향(燒香)한다.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이타(耳朵; 귓불) 속에 타고(打鼓)한다. 묻되 무엇이 이 무공(無功)의 공입니까. 사왈 이우(泥牛)가 걸음을 움직이지 않고 천하에 황전(荒田)이 없다(沒).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공을 공연히 베풀지 않았습니다(功不浪施). 사왈 비록 그러히 광대한 신통이지만 저(他) 통방(痛棒)을 만남을 면하지 못한다.
●單; 양개의 수량 중간에 놓아둠. 용이 영(零; 0)과 같음.
●拜掃; 묘 앞에서 제전(祭奠)하고 소묘(掃墓; 묘를 청소)함.
●焦甎打著連底凍; 이르자면 철저하여 막힘이 없음.
●功不浪施; 공력을 공연히 시행하지 않음. 랑(浪)은 공(空)임.
上堂 金屑雖貴 落眼成翳 金屑旣除 眼在甚麽處 若如此者 未出荊棘林中 棒頭取證 喝下承當 正在金峯窠裏 上堂 樓外紫金山色秀 門前甘露水聲寒 古槐陰下淸風裏 試爲諸人再指看 拈拄杖曰 還見麽 擊香卓曰 還聞麽 靠却拄杖曰 眼耳若通隨處足 水聲山色自悠悠
상당(上堂) 금가루가 비록 귀하지만 눈에 떨어지면 예병(翳病; 翳)을 이루거니와 금가루가 이미 제거되면 눈이 어느 곳에 있느냐. 만약 이와 같은 자라면 형극림(荊棘林) 가운데를 벗어나지 못했다. 방두(棒頭)에 취증(取證)하고 할하(喝下)에 승당(承當)하더라도 바로(正) 금봉(金峯; 宗賾 자신을 가리킴)의 둥지 속에 있다. 상당(上堂) 누각 밖(樓外)의 자금(紫金)의 산색이 빼어나고/ 문 앞의 감로(甘露)의 수성(水聲)이 차갑다/ 고괴(古槐; 늙은 느티나무)의 그늘 아래 청풍 속에서/ 시험 삼아 제인을 위해 다시 가리켜 보리라. 주장자를 잡고 가로되 도리어 보느냐. 향탁(香卓)을 치고 가로되 도리어 듣느냐. 주장자를 등지고(靠却) 가로되 안이(眼耳)가 만약 통하면 곳 따라 족하나니 수성(水聲)과 산색이 저절로 유유(悠悠)하다.
平江府慧日智覺廣燈禪師
本郡梅氏子 上堂 良久曰 休休休 徒悠悠 釣竿長在手 魚冷不呑鉤 喝一喝 下座
평강부(平江府) 혜일(慧日) 지각(智覺) 광등선사(廣燈禪師)
본군(本郡) 매씨(梅氏)의 아들이다. 상당(上堂) 양구하고 가로되 쉬어라 쉬어라 쉬어라/ 도연히 유유(悠悠)하다/ 낚싯대가 늘 손에 있으나/ 물고기가, 차가워 갈고리를 삼키지 않는다. 할로 한 번 할하고 하좌했다.
佛日才禪師法嗣
澧州夾山靈泉自齡禪師
常州周氏子 僧問 金鷄啄破琉璃殻 玉兔挨開碧海門 此是人間光影 如何是祖師機 師曰 針劄不入 曰 祇如朕兆未生已前 作麽生道 師擧起拂子 僧曰 如何領會 師曰 斫額望扶桑 問 混沌未分時如何 師曰 春風𩖼𩖼 曰 分後如何 師曰 春日遲遲 曰 向上更有事也無 師曰 一年三百六十日 上堂 良久顧大衆曰 月裏走金烏 誰云一物無 趙州東壁上 挂箇大葫蘆 參 上堂 良久打一圓相曰 大衆 五千餘卷詮不盡 三世諸佛讚不及 令人却憶賣油翁 狼忙走下繩牀立 參 上堂 便乃忘機守默 已被金粟占先 擬欲展演詞鋒 落在瞿曇之後 離此二途 作麽生是衲僧透脫一路 良久曰 好笑南泉提起處 刈茆鎌子曲彎彎 參
예주(澧州) 협산(夾山) 영천(靈泉) 자령선사(自齡禪師)
상주(常州) 주씨(周氏)의 아들이다. 승문 금계(金鷄)가 유리각(琉璃殻)을 쪼아 깨뜨리고 옥토(玉兔)가 벽해문(碧海門)을 밀쳐(挨) 엶은 이것은 이 인간의 광영(光影)입니다. 무엇이 이 조사기(祖師機)입니까. 사왈 침으로 찔러도 들어가지 않는다. 가로되 지여(祇如) 짐조(朕兆)가 생하지 아니한 이전(已前)에 어떻게 말합니까. 스님이 불자를 들어 일으켰다. 승왈 어떻게 영회(領會)해야 합니까. 사왈 작액(斫額)하고 부상(扶桑)을 바라보아라. 묻되 혼돈(混沌)하여 나뉘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춘풍이 불불(𩖼𩖼; 바람이 부는 모양)하다. 가로되 나뉜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춘일(春日)이 지지(遲遲; 몹시 더딤)하다. 가로되 향상에 다시 일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 1년은 3백6십 일이다. 상당(上堂) 양구했다가 대중을 돌아보며 가로되 달 속에 금오(金烏)가 달리거늘 누가 이르되 일물(一物)도 없다 하는가. 조주(趙州) 동벽(東壁) 위에 저(箇) 큰 호로(葫蘆; 표주박)가 걸렸다. 참(參)하라. 상당(上堂) 양구했다가 1원상을 짓고(打一圓相) 가로되 대중이여 5천여 권이 설명해도(詮) 다하지 못하고/ 삼세제불이 찬탄해도 미치지 못한다/ 사람으로 하여금 매유옹(賣油翁)을 추억케 하나니/ 이리가 바쁘게 달려 승상(繩牀) 아래 섰다. 참(參)하라. 상당(上堂) 바로 곧 망기(忘機)하고 수묵(守默)하더라도 이미 금속(金粟)이 선점(占先)함을 입었고 사봉(詞鋒)을 전연(展演; 전개하여 演出)하려고 한다면 구담(瞿曇)의 뒤에 떨어져 있다. 이 2도(途)를 여의고 무엇이 이 납승의 투탈(透脫)의 일로(一路)인가. 양구하고 가로되 남천(南泉)이 제기(提起)한 곳을 좋이 웃나니 띠를 베는 겸자(鎌子; 낫)가 굽어 만만(彎彎: 굽은 모양)하다. 참(參)하라.
天鉢元禪師法嗣
衛州元豐院淸滿禪師
滄州田氏子 僧問 如何是佛 師曰 天寒地冷 曰 如何是道 師曰 不道 曰 爲甚麽不道 師曰 道是閑名字 上堂 無異思惟 諦聽諦聽 昨日寒 今日寒 抖擻精神著力看 著力看 看來看去轉顢頇 要得不顢頇 看 參 上堂 堪作梁底作梁 堪作柱底作柱 靈利衲僧便知落處 驀拈拄杖曰 還知這箇堪作甚麽 打香臺一下曰 莫道無用處 復打一下曰 參 上堂 看看 堂裏木師伯 被聖僧打一摑 走去見維那 被維那打兩摑 露柱呵呵笑 打著這師伯 元豐路見不平 與你雪正 拈拄杖曰 來來 然是聖僧也須喫棒 擊香臺下座
위주(衛州) 원풍원(元豐院) 청만선사(淸滿禪師)
창주(滄州) 전씨(田氏)의 아들이다. 승문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하늘은 춥고 땅은 차갑다. 가로되 무엇이 이 도(道)입니까. 사왈 도가 아니다(不道). 가로되 무엇 때문에 도가 아닙니까. 사왈 도는 이 쓸데없는(閑) 명자(名字)다. 상당(上堂) 다른(異) 사유(思惟)가 없이 체청(諦聽)하고 체청(諦聽)하라. 어제는 춥고 금일도 춥나니 정신을 두수(抖擻; 털다)하고 착력(著力)하여 보아라. 착력해 보아라, 간래간거(看來看去)하매 더욱(轉) 만한(顢頇; 糊塗)하다. 만한하지 않음을 얻고자 하느냐. 보아라(看). 참(參)하라. 상당(上堂) 가히(堪) 대들보(梁)를 지을 것은 대들보를 짓고 가히 기둥을 지을 것은 기둥을 짓나니 영리(靈利)한 납승은 바로 낙처(落處)를 안다. 갑자기(驀) 주장자를 잡고 가로되 이것은 가히 무엇을 지을 줄 도리어 아느냐. 향대(香臺)를 한 번 때리고 가로되 쓸 곳이 없다고 말하지 말아라. 다시 한 번 때리고 가로되 참(參)하라. 상당(上堂) 보아라, 보아라. 당리(堂裏)의 목사백(木師伯; 주장자를 가리킴)이 성승(聖僧)이 때려 한 번 후려갈김(摑)을 입었다. 달려가 유나를 보자 유나가 때려 두 번 후려갈김을 입었다. 노주(露柱)가 하하 웃고는 이(這) 사백(師伯)을 때렸다(打著). 원풍(元豐; 淸滿)이 길에서 공평하지 못함을 보았으니 너를 위해(與) 씻어(雪) 바르게 하겠다. 주장자를 잡고 가로되 오너라, 오너라. 그러나 이 성승(聖僧)도 또한 꼭 끽방(喫棒)해야 한다. 향대(香臺)를 치고 하좌했다.
歲旦上堂 憶昔山居絕糧 有頌擧似大衆 飢飡松栢葉 渴飮㵎中泉 看罷靑靑竹 和衣自在眠 大衆 更有山懷爲君說 今年年是去年年 上堂 此劒刃上事 須劒刃上漢始得 有般名利之徒 爲人天師 懸羊頭賣狗肉 壞後進初機 滅先聖洪範 你等諸人聞恁麽事 豈不寒心 由是疑悞衆生 墮無間獄 苦哉苦哉 取一期快意 受萬劫餘殃 有甚麽死急來爲釋子 喝曰 聵人徒側耳 便下座 上堂 喝一喝曰 不是道 不是禪 每逢三五夜 皓月十分圓 參 師凡見僧 乃曰 佛法世法 眼病空花 有僧曰 翳消花滅時如何 師曰 將謂汝靈利
●懸羊頭賣狗肉; 比喩表裏不同 名不符實 也表示欺詐言行
●洪範; 一大法 楷模 二尙書篇名 此指一
세단(歲旦)에 상당(上堂) 추억컨대 지난날 산거(山居)하며 양식이 끊어졌는데 송(頌)이 있어 대중에게 거사(擧似; 들어 보이다)하겠다. 배고프면 송백(松栢)의 잎을 먹었고(飡)/ 목마르면 개울 중의 샘을 마셨다/ 청청(靑靑)한 대를 보아 마치면(罷)/ 옷 입은 채(和衣) 자재(自在)하게 잠잤다. 대중이여 다시 산회(山懷; 山中의 懷抱)가 있어 그대를 위해 설하나니 금년의 연(年)이 거년(去年)의 연(年)이다. 상당(上堂) 이 검인상사(劒刃上事)는 모름지기 검인상(劒刃上)의 사내(漢)라야 비로소 옳다. 일반(一般; 般)의 명리지도(名利之徒)가 있어 인천사(人天師)가 되어 양두를 매달아 놓고 구육을 팔면서(懸羊頭賣狗肉) 후진(後進)과 초기(初機)를 파괴하고 선성(先聖)의 홍범(洪範)을 파멸한다. 너희 등 제인이 이러한 일을 듣고 어찌 한심(寒心)하지 않겠는가. 이로 말미암아 중생을 의오(疑悞; 疑誤와 같음)케 하여 무간옥(無間獄)에 떨어지리니 고재(苦哉), 고재로다. 일기(一期)의 쾌의(快意)를 취하여 만겁(萬劫)의 여앙(餘殃)을 받으니 무슨 사급(死急)함이 있어 와서 석자(釋子)가 되었느냐. 할(喝)하고 가로되 외인(聵人; 귀머거리)이 도연히 귀를 기울이는구나. 바로 하좌했다. 상당(上堂) 할로 한 번 할하고 가로되 이 도(道)가 아니며 이 선(禪)이 아니니 매번 삼오야(三五夜; 15일 밤)를 만나면 호월(皓月)이 십분(十分) 둥글다. 참(參)하라. 스님이 무릇 중을 보면 이에 가로되 불법과 세법(世法)이 안병(眼病)의 공화(空花)다. 어떤 중이 가로되 예(翳)가 사라지고 화(花; 空花)가 없어질 때 어떻습니까. 사왈 다만(將) 이르나니 네가 영리(靈利)하다.
●懸羊頭賣狗肉; 표리가 부동(不同)하고 이름이 사실과 부합(符合)하지 않음에 비유함. 또한 기사(欺詐)의 언행을 표시함.
●洪範; 1. 대법. 해모(楷模; 모범). 2. 상서(尙書)의 편명(篇名). 여기에선 1을 가리킴.
靑州定慧院法本禪師
僧問 古人到這裏 爲甚麽拱手歸降 師曰 理合如是 曰 畢竟如何 師曰 夜眠日走
청주(靑州) 정혜원(定慧院) 법본선사(法本禪師)
승문 고인이 이 속에 이르러 무엇 때문에 공수(拱手)하고 귀항(歸降)했습니까. 사왈 이치가 합당히 이와 같다. 가로되 필경 어떻습니까. 사왈 밤에는 자고 낮에는 걷는다(走).
西京善勝眞悟禪師
上堂 揚聲止響 不知聲是響根 弄影逃形 不知形爲影本 以法問法 不知法本非法 以心傳心 不知心本無心 心本無心 知心如幻 了法非法 知法如夢 心法不實 莫謾追求 夢幻空花 何勞把捉 到這裏 三世諸佛一大藏敎祖師言句 天下老和尙路布葛藤 盡使不著 何故 太平本是將軍致 不許將軍見太平
●揚聲止響; 比喩手段和目的互相矛盾
서경(西京) 선승(善勝) 진오선사(眞悟禪師)
상당(上堂) 소리를 지르면서 곡향(谷響; 메아리)을 그치게 함은(揚聲止響) 소리가 이 메아리의 뿌리인 줄 알지 못함이며 그림자를 희롱하며 형체를 도주(逃走; 逃)함은 형체가 그림자의 근본이 됨을 알지 못함이다. 법으로써 법을 물음은 법이 본래 법이 아닌 줄 알지 못함이며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함은 마음이 본래 마음이 없는 줄 알지 못함이다. 마음이 본래 마음이 없으므로 마음이 환(幻)과 같음을 알고 법이 법이 아님을 깨달으면(了) 법이 꿈과 같음을 안다. 마음과 법이 진실이 아니니 헛되이(謾) 추구(追求)하지 말며 몽환공화(夢幻空花)를 어찌 노고롭게 파착(把捉)하리오. 이 속에 이르러선 삼세제불ㆍ일대장교(一大藏敎)ㆍ조사의 언구(言句)ㆍ천하 노화상의 노포(路布)와 갈등을 모두(盡) 부리지 못한다(使不著). 무슨 연고냐, 태평은 본시(本是) 장군이 이루지만(致) 장군에게 태평을 봄을 허락하지 않는다.
●揚聲止響; 수단과 목적이 호상 모순됨에 비유함.
瑞巖鴻禪師法嗣
明州育王曇振眞戒禪師
上堂 今日布袋頭開 還有買賣者麽 時有僧出曰 有 師曰 不作貴 不作賤 作麽生酬價 僧無語 師曰 老僧失利
명주(明州) 육왕(育王) 담진(曇振) 진계선사(眞戒禪師)
상당(上堂) 금일 포대두(布袋頭; 頭는 後綴)가 열렸으니 도리어 매매(買賣)할 자가 있느냐. 때에 어떤 중이 나와 가로되 있습니다. 사왈 귀(貴; 비쌈)도 짓지 않고 천(賤; 쌈)도 짓지 않거늘 어떻게 수가(酬價; 값을 매김)하겠는가. 중이 말이 없었다. 사왈 노승이 실리(失利)했다.
棲賢遷禪師法嗣
舒州王屋山崇福燈禪師
上堂 天不能葢 地不能載 一室無私 何處不在 大衆 直饒恁麽會去 也是鬼弄精魂 怎生說箇常在底道理 良久曰 金風昨夜起 徧地是黃花
서주(舒州) 왕옥산(王屋山) 숭복등(崇福燈) 선사
상당(上堂) 하늘이 능히 덮지 못하고 땅이 능히 싣지 못하나니 일실(一室)이 무사(無私)하거늘 어느 곳엔들 있지 않겠는가. 대중이여 직요(直饒) 이렇게 이회(理會)하여 가더라도 또한 이 귀(鬼)가 정혼(精魂)을 희롱함이니 어찌해야(怎生) 저(箇) 상재(常在)하는 도리를 설하겠는가. 양구하고 가로되 금풍(金風; 서풍)이 어젯밤 일어나더니 온 땅(徧地)에 이 황화(黃花)다.
淨衆言首座法嗣
西京招提惟湛廣燈禪師
嘉禾人也 僧問 如何是和尙家風 師曰 秋風黃葉亂 遠岫白雲歸 曰 專爲流通也 師曰 卽今作麽生擧 僧便喝 師便打 上堂 偏不偏正不正 那事從來難比竝 滿天風雨骨毛寒 何須更入那伽定 卓拄杖下座 上堂 六塵不惡 還同正覺 馬上誰家白面郞 穿花折柳垂巾角 夜來一醉明月樓 呼盧輸却黃金宅 臂鷹走犬歸不歸 娥眉皓齒嗔無力 此心能有幾人知 黃頭碧眼非相識 囉囉哩 拍手一下 下座
●娥眉皓齒; 修長的眉毛 潔白的牙齒 形容美女之容貌 亦代指美女
서경(西京) 초제(招提) 유담(惟湛) 광등선사(廣燈禪師)
가화(嘉禾) 사람이다. 승문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 추풍에 황엽이 어지럽고 먼 산봉우리(岫)에 백운이 돌아온다. 가로되 오로지(專) 유통하겠습니다. 사왈 즉금은 어떻게 거(擧)하겠는가. 중이 바로 할했다. 스님이 바로 때렸다. 상당(上堂) 편(偏)이 편이 아니며 정(正)이 정이 아니니/ 나사(那事; 오도하고 성불하는 일)는 종래로 비병(比竝)하기 어렵다/ 하늘에 가득한 풍우에 골모(骨毛)가 차갑거늘(寒)/ 어찌 꼭 나가정(那伽定)에 다시 들겠는가(更入). 주장자를 치고(卓) 하좌했다. 상당(上堂) 6진(塵)을 싫어하지(惡) 않으면 도리어 정각(正覺)과 같다(증도가). 마상(馬上)에 뉘집의 백면랑(白面郞)인가/ 꽃을 꿰고(穿) 버들을 꺾고 건각(巾角; 頭巾)을 드리웠다/ 야래(夜來; 來는 조사)에 명월루(明月樓)에서 일취(一醉)하여/ 호로(呼盧; 賭博遊戲)로 황금택(黃金宅)에 실어 날랐다(輸却; 저본에 輪却으로 지었음)/ 비응(臂鷹)과 주견(走犬)이 돌아왔나 돌아오지 않았나/ 아미호치(娥眉皓齒)가 무력함에 성을 낸다/ 이 마음을 능히 몇 사람이나 아는 이 있는가/ 황두(黃頭)와 벽안(碧眼)이 상식(相識)하지 못한다. 라라리(囉囉哩), 한 번 박수하고 하좌했다.
●娥眉皓齒; 수장(修長; 긺)의 눈썹과 결백한 아치(牙齒; 치아)니 미녀의 용모를 형용하며 또한 미녀를 대지(代指)함.
靑原下十三世
法雲本禪師法嗣
臨安府淨慈楚明寶印禪師
百粵張氏 上堂 祖師心印 非長非短 非方非圓 非內非外 亦非中間 且問大衆 決定是何形貌 拈拄杖曰 還見麽 古篆不成文 飛帛難同體 從本自分明 何須重特地 擊禪牀下座 上堂 出門見山水 入門見佛殿 靈光觸處通 諸人何不薦 若不薦 淨慈今日不著便 上堂 祖師道 吾本來茲土 傳法救迷情 一花開五葉 結果自然成 淨慈當時若見恁麽道 用黑漆拄杖子一棒打殺 埋向無陰陽地上 令他出氣不得 何故 尀耐他瞞我唐土人 衆中莫有爲祖師出氣底麽 出來 和你一時埋却 上堂 若論此事 如散鋪寶貝 亂堆金玉 昧己者自甘窮困 有眼底信手拈來 所以道閻浮有大寶 見少得還稀 若人將獻我 成佛一餉時 乃拈拄杖曰 如今一時呈似 普請大衆高著眼 擲拄杖 下座
●飛帛; 同飛白 書法中的一種特殊筆法 ▲緇門警訓註下 飛白 後漢蔡邕所造歸田錄曰 凡飛白 以點畫像物形 唯點最難工
임안부(臨安府) 정자(淨慈) 초명(楚明) 보인선사(寶印禪師)
백월(百粵) 장씨(張氏)다. 상당(上堂) 조사심인(祖師心印)은 비장비단(非長非短)이며 비방비원(非方非圓)이며 비내비외(非內非外)며 또한 중간이 아니다. 대중에게 차문(且問)하나니 결정코 이 어떤 형모(形貌)인가. 주장자를 잡고 가로되 도리어 보느냐. 고전(古篆)이 문자를 이루지 못하고/ 비백(飛帛)이 체가 같기 어렵다/ 본래로 좇아 저절로 분명하거늘/ 어찌 거듭 특지(特地)를 쓰리오(須). 선상을 치고 하좌했다. 상당(上堂) 출문(出門)하면 산수(山水)를 보고/ 입문하면 불전(佛殿)을 본다/ 영광(靈光)이 촉처(觸處)에 통하거늘/ 제인이 왜 천(薦; 領會)하지 못하느냐. 만약 천(薦)하지 못한다면/ 정자(淨慈; 楚明)가 금일 편의를 만나지 못했다(不著便). 상당(上堂) 조사가 말하되 내가 본래 이 국토에 온 것은/ 전법하여 미정(迷情)을 구제함이다/ 1화(花)에 5엽(葉)이 열리니/ 결과(結果)를 자연히 이루리라. 정자(淨慈)가 당시에 만약 이러한 말을 보았더라면 흑칠(黑漆) 주장자를 써서 1방(棒)으로 타살(打殺)하여 음양이 없는 지상(地上)을 향해 묻어 그로 하여금 출기(出氣)함을 얻지 못하게 했겠다. 무슨 연고냐, 그가 우리 당토(唐土)의 사람을 속임(瞞)을 참지 못해서이다(尀耐). 중중(衆中)에 조사를 위해 출기(出氣)할 이가 있지 않느냐, 나오너라, 너마저 일시에 묻어버리겠다(埋却). 상당(上堂) 만약 차사(此事)를 논하자면 산포(散鋪; 閑散한 店鋪)의 보패(寶貝; 보배)와 같아서 금옥이 어지럽게 쌓였다(堆). 자기를 매(昧)한 자는 스스로 궁곤(窮困)을 달게 여기고 눈이 있는 이는 손 닿는 대로 집어 온다(信手拈來). 소이로 말하되 염부(閻浮)에 대보(大寶)가 있나니/ 보고서 조금 얻음도 도리어 드물다(稀)/ 어떤 사람이 가지고 나에게 바친다면/ 성불이 일향시(一餉時; 한 번 식사할 시간)다(龍牙和尙의 偈頌). 이에 주장자를 잡고 가로되 여금에 일시에 정사(呈似; 보여 주다)했다. 대중에게 보청(普請)하나니 높이 착안(著眼)하라. 주장자를 던지고 하좌했다.
●飛帛; 비백(飛白)과 같음. 서법(書法) 중의 일종의 특수한 필법. ▲치문경훈주하. 비백(飛白) 후한 채옹이 지은 바 귀전록에 가로되 무릇 비백(飛白)이란 점화(點畫)로 물형(物形)을 형상함이다. 오직 점이 가장 어려운 공작(工作)이다.
眞州長蘆道和祖照禪師
興化潘氏子 僧問 無遮聖會 還有不到者麽 師曰 有 曰 誰是不到者 師曰 金剛脚下鐵崑崙 問 不許夜行 投明須到 意旨如何 師曰 羊頭車子推明月 曰 便恁麽去時如何 師曰 鐵門路嶮 問 一槌兩當時如何 師曰 踏藕得魚歸 問 敎外別傳 未審傳箇甚麽 師曰 鐵彈子 問 百城遊罷時如何 師曰 前頭更有趙州關 上堂 一二三四五六 碧眼胡僧數不足 泥牛入海過新羅 木馬追風到天竺 天竺茫茫何處尋 補陀巖上問觀音 普賢拍手呵呵笑 歸去來兮秋水深
진주(眞州) 장로(長蘆) 도화(道和) 조조선사(祖照禪師)
흥화(興化) 반씨(潘氏)의 아들이다. 승문 무차(無遮)의 성회(聖會; 성스러운 법회)에 도리어 이르지 않는 자가 있습니까. 사왈 있다. 가로되 누가 이 이르지 않는 자입니까. 사왈 금강(金剛; 금강역사)의 발 아래 철곤륜(鐵崑崙)이다. 묻되 야행(夜行)을 허락하지 않으니 날이 새거든(投明) 이름을 써라(須到) 하니 의지가 무엇입니까. 사왈 양두거자(羊頭車子)가 명월을 민다(推). 가로되 바로 이렇게 갈 때 어떻습니까. 사왈 철문로(鐵門路)가 험하다. 묻되 일추(一槌)로 둘을 당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연뿌리(藕)를 밟고 물고기를 얻어 돌아온다. 묻되 교외별전(敎外別傳)이라 하니 미심합니다 저(箇) 무엇을 전합니까. 사왈 철탄자(鐵彈子)다. 묻되 백성(百城)을 유람하여 마쳤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전두(前頭; 전면)에 다시 조주관(趙州關)이 있다. 상당(上堂) 일이삼사오육/ 벽안호승(碧眼胡僧)도 셈이 부족하다/ 이우(泥牛)가 입해(入海)하여 신라를 지나고/ 목마가 추풍(追風)하여 천축에 이른다. 천축이 망망(茫茫)하거늘 어느 곳에서 찾느냐/ 보타암(補陀巖) 위에서 관음에게 물었다/ 보현이 박수하며 하하 웃나니/ 돌아가자(歸去來兮) 추수(秋水)가 깊다.
福州雪峯思慧妙湛禪師
錢塘兪氏子 僧問 古殿無燈時如何 師曰 東壁打西壁 曰 恁麽則撞著露柱也 師曰 未敢相許 上堂 一法若通 萬緣方透 拈拄杖曰 這裏悟了 提起拄杖 海上橫行 若到雲居山頭 爲我傳語雪峯和尙 咄 上堂 布大敎網 摝人天魚 護聖不似老胡拖泥帶水 祇是見兔放鷹 遇獐發箭 乃高聲召衆曰 中 上堂 昔日藥山早晩不參 動經旬月 一日 大衆纔集 藥山便歸方丈 諸禪德 彼時佛法早自淡薄 論來猶較些子 如今每日鳴皷陞堂 忉忉怛怛地 問者口似紡車 答者舌如霹靂 總似今日 靈山慧命 殆若懸絲 少室家風 危如纍卵 又安得箇慨然有志扶竪宗乘底衲子出來喝散大衆 非唯耳邊靜辦 當使正法久住 豈不偉哉 如或棒上不成龍 山僧倒行此令 以拄杖一時趂散
●旬月; 一一個月 二十個月 三十日至一個月 指較短的時日
복주(福州) 설봉(雪峯) 사혜(思慧) 묘담선사(妙湛禪師)
전당(錢塘) 유씨(兪氏)의 아들이다. 승문 고전(古殿)에 등(燈)이 없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동벽이 서벽을 때린다(東壁打西壁). 가로되 이러한 즉 노주(露柱)를 당착(撞著)했습니다. 사왈 감히 상허(相許)하지 못한다. 상당(上堂) 일법(一法)을 만약 통하면 만연(萬緣)을 바야흐로 투과한다. 주장자를 잡고 가로되 이 속에서 깨달아 마치면 주장자를 제기(提起)하고서 해상(海上)에 횡행(橫行)하리니 만약 운거산두(雲居山頭)에 이르거든 나를 위해 설봉화상에게 전어(傳語)하라. 돌(咄). 상당(上堂) 대교망(大敎網)을 펴 인천어(人天魚)를 건지거니와(摝) 호성(護聖)이 노호(老胡)의 타니대수(拖泥帶水)와 같지 못하나니 다만 이는 토끼를 보고 송골매를 놓고 노루를 만나 화살을 쏨이다. 이에 고성으로 대중을 부르며 가로되 맞혔다(中). 상당(上堂) 석일(昔日)에 약산(藥山)이 조만(早晩; 아침과 저녁)에 참(參)하지 않았는데 순월(旬月)을 옮겨 지났다(動經). 어느 날 대중이 겨우 모이자 약산이 바로 방장으로 돌아갔다. 제선덕(諸禪德)이여 그 당시에 불법이 일찍(早) 저절로 담박(淡薄)했으니 논하건대(論來) 오히려 조금은 상당했다(較些子). 여금엔 매일 북을 울리고 승당(陞堂)하여 도도달달지(忉忉怛怛地; 말이 많음. 地는 조사)에 묻는 자는 입이 방거(紡車)와 같고 답하는 자는 혀가 벽력과 같지만 모두(總) 금일과 같다면 영산(靈山)의 혜명(慧命)이 위태(危殆; 殆)하기가 현사(懸絲; 실에 매달리다)와 같고 소실(少室)의 가풍이 위험(危險; 危)하기가 누란(纍卵; 累卵과 같음)과 같거늘 또 어찌(安), 저(箇) 개연(慨然)히 뜻(志)이 있고 종승(宗乘)을 부수(扶竪)할 납자가 나와서 대중을 할산(喝散)함을 얻겠는가. 귓가에 정판(靜辦; 淸靜. 安寧)할 뿐만 아니라 마땅히 정법(正法)으로 하여금 구주(久住)케 하리니 어찌 위재(偉哉)가 아니겠는가. 여혹(如或) 방상(棒上)에서 용을 이루지 못한다면 산승이 이 영(令)을 거꾸로 행하겠다. 주장자로써 일시에 쫓아내어 흩어지게 했다(趂散).
●旬月; 1. 1개 월 2. 10개 월. 3. 10일에서 1개 월에 이르기까지. 조금 짧은 시일을 가리킴.
上堂 眼睫橫亘十方 眉毛上透靑天 下徹黃泉 且道鼻孔在甚麽處 良久曰 劄 上堂 妙高山頂 雲海茫茫 少室巖前 雪霜凜凜 齊腰獨立 徒自苦疲 七日不逢 一場懡㦬 別峯相見 落在半途 隻履西歸 遠之遠矣 卓拄杖 下座 上堂 大道祇在目前 要且目前難睹 欲識大道眞體 今朝三月十五 不勞久立 建炎改元 上堂 天地之大德曰生 聖人之大寶曰位 今上皇帝踐登寶位 萬國歸仁 草木禽魚 咸被其德 此猶是聖主應世邊事 王宮降誕已前一句 天下人摸索不著
상당(上堂) 안첩(眼睫; 속눈썹)은 시방에 횡긍(橫亘)했고 눈썹은 위로 청천을 투과하고 아래로 황천(黃泉)에 통했거니와(徹) 차도(且道)하라, 비공(鼻孔)은 어느 곳에 있느냐. 양구하고 가로되 찔렀다(劄). 상당(上堂) 묘고산정(妙高山頂)에 운해(雲海)가 망망(茫茫)하고 소실암전(少室巖前)에 설상(雪霜)이 늠름(凜凜)하다. 허리에 가지런하도록(齊) 독립(獨立)함은 도연히 스스로 고피(苦疲)며 7일 동안 만나지 못함은 일장마라(一場懡㦬)다. 별봉(別峯)에서 상견함은 반도(半途)에 떨어져 있음이며 척리(隻履)로 서귀(西歸)함은 멀고도 멀다(遠之遠矣). 주장자를 치고(卓) 하좌했다. 상당(上堂) 대도(大道)가 다만 목전에 있지만/ 요차(要且; 도리어. 종내) 목전에서 보기 어렵다/ 대도의 진체(眞體)를 알고자 한다면/ 금조(今朝)는 3월 15다. 노고롭게 구립(久立)하지 말아라. 건염(建炎) 개원(改元; 1127) 상당(上堂) 천지의 대덕(大德)을 가로되 생(生)이며 성인(聖人)의 대보(大寶)를 가로되 위(位)다. 금상황제(今上皇帝)가 보위(寶位)에 천등(踐登)하시니 만국(萬國)이 귀인(歸仁)하고 초목과 금어(禽魚; 새와 물고기)가 모두(咸) 그 덕을 입는다. 이것은 오히려 이 성주(聖主)의 응세변사(應世邊事)며 왕궁에 강탄하기 이전의 1구는 천하인이 모색함을 얻지 못한다(摸索不著).
上堂 一切法無差 雲門胡餠趙州茶 黃鶴樓中吹玉笛 江城五月落梅花 慚愧太原孚上座 五更聞鼓角 天曉弄琵琶 喝一喝 上堂 南詢諸友 踏破草鞋 絕學無爲 坐消日月 凡情易脫 聖解難忘 但有纖毫 皆成滲漏 可中爲道 似地擎山 應物現形 如驢覰井 縱無計較 途轍已成 若論相應 轉沒交涉 勉諸仁者 莫錯用心 各自歸堂 更求何事
상당(上堂) 일체법이 차이가 없으니 운문의 호병(胡餠)과 조주(趙州)의 차(茶)다. 황학루(黃鶴樓) 속에서 옥적(玉笛)을 불고 강성(江城)의 5월에 매화가 떨어진다. 태원(太原) 부상좌(孚上座)에게 부끄럽나니(慚愧) 5경에 고각(鼓角)을 들었고 천효(天曉)에 비파(琵琶)를 희롱했다. 할로 한 번 할했다. 상당(上堂) 여러 벗을 남순(南詢)함은 짚신을 답파(踏破)함이며 절학(絕學)과 무위(無爲)는 앉아 일월을 소비함이다. 범정(凡情; 범부의 情識)은 벗기가 쉽지만 성해(聖解; 성인이란 이해)는 잊기 어렵나니 단지 섬호(纖毫)라도 있으면 모두 삼루(滲漏)를 이룬다. 가중(可中; 當中)에 도가 됨은 땅이 산을 받듦과 같고 응물(應物; 사람에 응함)하여 현형(現形)함은 나귀가 우물을 엿봄과 같다. 비록(縱) 계교(計較)가 없더라도 도철(途轍)을 이미 이루었나니 만약 상응을 논한다면 더욱 교섭이 없다(轉沒交涉). 제인자(諸仁者)에게 권면(勸勉; 勉)하나니 잘못 용심하지 말아라. 각자 귀당(歸堂)할지니 다시 무슨 일을 구하는가.
婺州寶林果昌寶覺禪師
安州時氏子 師與提刑楊次公入山同遊山次 楊拈起大士飯石 問 旣是飯石 爲甚麽齩不破 師曰 祇爲太硬 楊曰 猶涉繁詞 師曰 未審提刑作麽生 楊曰 硬 師曰 也是第二月 楊爲寫七佛殿額 乃問 七佛重出世時如何 師曰 一回相見一回新 上堂 一卽一 二卽二 齅著直是無香氣 驀拈拄杖卓一下曰 識得山僧楖栗條 莫向南山尋鼈鼻
무주(婺州) 보림(寶林) 과창(果昌) 보각선사(寶覺禪師)
안주(安州) 시씨(時氏)의 아들이다. 스님과 입산한 제형(提刑) 양차공(楊次公)이 함께 유산(遊山)하던 차에 양(楊)이 대사(大士)의 반석(飯石)을 집어 일으켜 묻되 이미 이 반석이거늘 무엇 때문에 씹어 깨뜨리지 못합니까. 사왈 다만 너무 단단하기 때문입니다. 양왈(楊曰) 오히려 번사(繁詞)에 건넜습니다. 사왈 미심하나니 제형은 어떻습니까. 양왈 단단합니다(硬). 사왈 또한 이 제2월(第二月)입니다. 양이 칠불전(七佛殿)의 액(額; 扁額)을 서사(書寫)하고 이에 묻되 7불이 거듭 출세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1회 상견하면 1회 새롭습니다. 상당(上堂) 일(一)은 곧 일이며 이(二)는 곧 이다. 후착(齅著; 냄새를 맡다)하면 바로(直) 이 향기가 없다. 갑자기 주장자를 집어 한 번 치고 가로되 산승의 즐률조(楖栗條; 즐률나무의 주장자)를 식득(識得)하고 남산을 향해 별비(鼈鼻; 鼈鼻蛇)를 찾지 말아라.
鄭州資福法明寶月禪師
上堂 資福別無所補 五日一參擊鼓 何曾說妙談玄 祇是麤言直語 甘草自來甜 黃連依舊苦 忽若鼻孔遼天 逢人切忌錯擧 參 上堂 若論此事 譬如伐樹得根 灸病得穴 若也得根 豈在千枝徧斫 若也得穴 不假六分全燒 以拄杖卓一下曰 這箇是根 那箇是穴 擲下拄杖曰 這箇是穴 又喚甚麽作根 咄 是何言歟
정주(鄭州) 자복(資福) 법명(法明) 보월선사(寶月禪師)
상당(上堂) 자복(資福)은 달리 꾸미는(補) 바가 없나니 5일에 1참(參)하며 격고(擊鼓)한다. 어찌 일찍이 설묘담현(說妙談玄)하겠는가, 다만 이 추언직어(麤言直語)다. 감초(甘草)는 저절로(自來) 달고 황련(黃連)은 의구(依舊)히 쓰다(苦). 홀연히 만약 비공(鼻孔)이 요천(遼天)하면 사람을 만나매 착거(錯擧)함을 절기(切忌)한다. 참(參)하라. 상당(上堂) 만약 차사(此事)를 논하자면 비유컨대 나무를 베어 뿌리를 얻고 병에 뜸질하여(灸病) 혈(穴)을 얻음과 같다. 만약에 뿌리를 얻는다면 어찌 천지(千枝)를 두루 쪼갬에 있을 것이며 만약에 혈을 얻는다면 6분(分)을 전소(全燒)함을 빌리지 않는다. 주장자로써 한 번 치고(卓) 가로되 저개(這箇)는 이 뿌리니 나개(那箇; 어느 것)가 이 혈(穴)인가. 주장자를 척하(擲下)하고 가로되 저개(這箇)는 이 혈이니 또 무엇을 일러 뿌리라 하는가. 돌(咄), 이 무슨 말이더냐(是何言歟).
潭州雲峯志璿祖燈禪師
南粵陳氏子 上堂 休去歇去 一念萬年去 寒灰枯木去 古廟香爐去 一條白練去 大衆 古人見處 如日暉空 不著二邊 豈墮陰界 堪嗟後代兒孫 多作一色邊會 山僧卽不然 不休去 不歇去 業識茫茫去 七顚八倒去 十字街頭閙浩浩地 聲色裏坐臥去 三家村裏 盈衢塞路 荊棘裏游戲去 刀山劒樹 劈腹剜心 鑊湯爐炭 皮穿骨爛去 如斯擧唱 大似三歲孩兒輥繡毬 上堂 一切聲是佛聲 塗毒鼓透入耳朵裏 一切色是佛色 鐵蒺藜穿過眼睛中 好事不如無 便下座
담주(潭州) 설봉(雲峯) 지선(志璿) 조등선사(祖燈禪師)
남월(南粵) 진씨(陳氏)의 아들이다. 상당(上堂) 휴거헐거(休去歇去)하고 일념만년거(一念萬年去)하고 한회고목거(寒灰枯木去)하고 고묘향로거(古廟香爐去)하고 일조백련거(一條白練去)하라. 대중이여 고인의 견처(見處)는 해가 허공에 빛남(暉)과 같아서 이변(二邊)에 붙지 않거늘 어찌 음계(陰界)에 떨어지겠는가. 가히 슬프나니(堪嗟) 후대의 아손이 다분히 일색변(一色邊)으로 이회(理會)함을 짓거니와 산승은 곧 그렇지 않다. 불휴거(不休去)하고 불헐거(不歇去)하고 업식망망거(業識茫茫去)하고 칠전팔도거(七顚八倒去)하고 십자가두(十字街頭)의 요호호지(閙浩浩地)에 성색 속에 좌와거(坐臥去)하고 삼가촌리(三家村裏)와 영구색로(盈衢塞路; 거리에 가득하고 길을 메움)와 형극리(荊棘裏)에 유희거(游戲去)하고 도산검수(刀山劒樹)에 벽복완심(劈腹剜心; 배를 가르고 심장을 도려냄)하고 확탕노탄(鑊湯爐炭)에 피천골란거(皮穿骨爛去; 피부가 뚫리고 뼈가 문드러져 감)한다. 이와 같은 거창(如斯擧唱)은 3세 해아(孩兒)가 수구(繡毬)를 굴림과 매우 흡사하다. 상당(上堂) 일체의 소리가 이 불성(佛聲)이라 함은 도독고(塗毒鼓)가 이타(耳朵; 귓불) 속에 투입(透入)함이며 일체의 색이 이 불색(佛色)이라 함은 철질려(鐵蒺藜)가 안정(眼睛) 중에 천과(穿過)함이다. 호사(好事)도 없음만 같지 못하다. 바로 하좌했다.
上堂 盡乾坤大地 是箇熱鐵圓 汝等諸人向甚麽處下口 良久曰 呑不進 吐不出 上堂 瘦竹長松滴翠香 流風疏月度炎涼 不知誰住原西寺 每日鐘聲送夕陽 上堂 聲色頭上睡眠 虎狼羣裏安禪 荊棘林內翻身 雪刃叢中遊戲 竹影掃堦塵不動 月穿潭底水無痕 上堂 不是風動 不是幡動 衲僧失却鼻孔 是風動 是幡動 分明是箇漆桶 兩段不同 眼暗耳聾 㵎水如藍碧 山花似火紅 上堂 僧問 如何是西來意 師曰 築著額頭磕著鼻 曰 意旨如何 師曰 驢駝馬載 曰 向上還有事也無 師曰 朝到西天 暮歸唐土 曰 謝師答話 師曰 大乘砑郞當 僧退 師乃曰 僧問西來意 築著額頭磕著鼻 意旨又如何 驢駝幷馬載 朝到西天暮歸唐 大乘恰似砑郞當 何故 沒量大人 被語脉裏轉却 遂拊掌大笑 下座
●砑郞當; 又作訝郞當 狼藉之義 又疑怪之義
상당(上堂) 온 건곤대지가 시개(是箇)의 열철원(熱鐵圓; 뜨거운 쇳덩이)이거늘 너희 등 제인이 어느 곳을 향해 하구(下口)하겠는가. 양구하고 가로되 삼켜 진입하지 못하고 토해 내지 못한다. 상당(上堂) 수죽(瘦竹)과 장송(長松)이 취향(翠香)을 떨어뜨리고(滴)/ 유풍(流風)과 소월(疏月)이 염량(炎涼)을 지난다(度)/ 누가 원서사(原西寺)에 거주하는지 알지 못하지만/ 매일 종소리가 석양을 송별한다. 상당(上堂) 성색두상(聲色頭上)에 수면(睡眠)하고 호랑(虎狼)의 무리 속에 안선(安禪)하고 형극림 안에 번신(翻身)하고 설인(雪刃)의 총중(叢中)에 유희(遊戲)하나니 죽영(竹影)이 섬돌을 쓸어도 티끌은 움직이지 않고 달이 담저(潭底)를 뚫어도 물은 흔적이 없다. 상당(上堂) 이 풍동(風動)이 아니며 이 번동(幡動)이 아님은 납승이 비공(鼻孔)을 실각(失却)하고 이 풍동이며 이 번동은 분명히 시개(是箇)의 칠통(漆桶)이다. 양단(兩段)이 부동(不同)하니 눈은 어둡고 귀는 멀었다. 간수(㵎水)는 쪽(藍)과 같이 푸르고 산화(山花)는 불과 같이 붉다. 상당(上堂) 승문 무엇이 이 서래의(西來意)입니까. 사왈 액두(額頭; 頭는 조사)를 찌르고(築著) 코를 두드린다(磕著). 가로되 의지(意旨)가 무엇입니까. 사왈 나귀에 싣고 말에 싣는다(驢駝馬載). 가로되 향상에 도리어 일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 아침에 서천(西天)에 이르렀다가 저녁에 당토(唐土)로 돌아온다. 가로되 스님의 답화(答話)에 감사합니다. 사왈 대승(大乘)이 아랑당(砑郞當)이다. 중이 물러났다. 스님이 이에 가로되 중이 서래의를 물으매 액두(額頭)를 찌르고(築著) 코를 두드린다(磕著). 의지(意旨)가 또 무엇인가. 나귀에 싣고 아울러 말에 싣는다. 아침에 서천(西天)에 이르렀다가 저녁에 당(唐)으로 돌아온다. 대승이 아랑당과 흡사하다. 무슨 연고냐, 몰량대인(沒量大人)도 어맥(語脉) 속에 전각(轉却)함을 입는다. 드디어 부장(拊掌)하고 대소(大笑)하고 하좌했다.
●砑郞當; 또 아랑당(訝郞當)으로 지음. 낭자(狼藉)의 뜻. 또 의괴(疑怪)의 뜻.
僧問 丹霞燒木佛 院主爲甚麽眉鬚墮落 師曰 一人傳虛 萬人傳實 曰 恁麽則不落也 師曰 兩重公案 曰 學人未曉 特伸請益 師曰 筠袁虔吉 頭上插筆 問 德山入門便棒 意旨如何 師曰 束杖理民 曰 臨濟入門便喝 又作麽生 師曰 不言而化 曰 未審和尙如何爲人 師曰 一刀兩段 問 無縫鐵門 請師一啓 師曰 進前三步 曰 向上無關 請師一閉 師曰 退後一尋 曰 不開不閉 又作麽生 師曰 吽吽 便打
●筠袁虔吉; 四字皆地名 晚唐有民諺筠袁贛吉腦後插筆 解云 筠州 袁州 贛州 吉安四地多讀書人 [百度知道]
승문 단하(丹霞)가 목불을 태웠거늘 원주가 무엇 때문에 눈썹(眉鬚)이 떨어졌습니까(墮落). 사왈 한 사람이 허(虛)를 전하매 만 사람이 실(實)로 전한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사왈 양중공안(兩重公案)이다. 가로되 학인이 깨닫지(曉) 못하겠으니 특별히 청익을 폅니다(伸). 사왈 균원건길(筠袁虔吉)은 두상(頭上)에 붓을 꽂았다. 묻되 덕산은 입문하면 바로 방(棒)한 의지가 무엇입니까. 사왈 지팡이를 묶어(束杖) 주민을 다스린다. 가로되 임제는 입문하면 바로 할(喝)한 것은 또 어떻습니까. 사왈 말하지 않고도 교화한다. 가로되 미심하오니 화상은 어떻게 위인(爲人)합니까. 사왈 일도양단(一刀兩段)한다. 묻되 꿰맴 없는 철문(鐵門)을 청컨대 스님이 한 번 여십시오(啓). 사왈 세 걸음 진전(進前)하라. 가로되 향상에 관문이 없지만 청컨대 스님이 한 번 닫으십시오 사왈 1심(尋; 길. 발. 8尺) 퇴후(退後)하라. 가로되 열지 않고 닫지 않으면 또 어떻습니까. 사왈 후후(吽吽), 바로 때렸다.
●筠袁虔吉; 넉 자는 모두 땅 이름임. 만당(晚唐)에 민언(民諺; 민간의 속담)이 있었으니 균ㆍ원ㆍ공ㆍ길은 머리 뒤에 붓을 꽂았다. 해석해 이르되 균주ㆍ원주ㆍ공주ㆍ길안 4지(地)엔 독서인이 많았다 [백도지도].
東京慧林常悟禪師
僧問 若不傳法度衆生 擧世無由報恩者 未審傳箇甚麽法 師曰 開宗明義章第一 問 達磨未來時如何 師曰 省得草鞋錢 曰 來後如何 師曰 重疊關山路
동경(東京) 혜림(慧林) 상오선사(常悟禪師)
승문 만약 전법하여 중생을 제도하지 않으면 거세(擧世; 온 세계)에 보은(報恩)을 말미암을 자가 없다 하니 미심합니다 저(箇) 무슨 법을 전합니까. 사왈 개종명의장제일(開宗明義章第一)이다. 묻되 달마가 오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초혜전(草鞋錢)을 줄였다(省得). 가로되 온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중첩한 관산로(關山路)다.
安吉州道場有規禪師
婺州姜氏子 上堂 拈拄杖曰 還見麽 窮諸玄辯 若一毫置於太虛 竭世樞機 似一滴投於巨壑 德山老人雖則焚其疏鈔 也是賊過後張弓 且道文彩未彰以前 又作麽生理論 三千劒客今何在 獨許莊周致太平 上堂 種田博飯 地藏家風 客來喫茶 趙州禮度 且道護聖門下 別有甚麽長處 良久曰 尋常不放山泉出 屋底淸池冷照人 化士出問 促裝已辦 乞師一言 師曰 好看前路事 莫比在家時 曰 恁麽則三家村裏 十字街頭 等箇人去也 師曰 照顧打失布袋
●促裝; 整理行裝
안길주(安吉州) 도량(道場) 유규선사(有規禪師)
무주(婺州) 강씨(姜氏)의 아들이다. 상당(上堂) 주장자를 잡고 가로되 도리어 보느냐, 모든 현변(玄辯)을 다하더라도(窮) 일호(一毫)를 태허(太虛)에 놓음과 같고(若) 세상의 추기(樞機)를 다하더라도(竭) 일적(一滴)을 거학(巨壑)에 던짐과 같다(似). 덕산 노인이 비록 곧 그 소초(疏鈔)를 불살랐지만(焚) 또한 이는 도적이 지나간 후 활을 당김(張弓)이다. 차도(且道)하라 문채(文彩)가 나타나지(彰) 아니한 이전에 또 어떻게 이론(理論)하겠는가. 3천 검객이 지금 어디에 있는가, 오직(獨) 장주(莊周)가 태평을 이룸을 허락한다. 상당(上堂) 밭에 씨를 뿌려 밥과 바꿈(種田博飯)은 지장(地藏)의 가풍이며 객이 오면 차를 마심은 조주의 예도(禮度; 禮法)다. 차도(且道)하라 호성문하(護聖門下)에 달리 무슨 장처(長處)가 있느냐. 양구하고 가로되 심상(尋常)에 산천(山泉)이 나감을 방면(放免; 放)하지 않고 옥저(屋底)의 청지(淸池)가 차갑게 사람을 비춘다. 화사(化士; 化主)가 나와서 묻되 촉장(促裝)을 이미 갖추었습니다(辦). 스님의 일언을 구걸합니다. 사왈 전로(前路)의 일을 잘 보고 재가(在家)할 때와 비교하지 말아라.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삼가촌(三家村) 속과 십자가두에 이(箇) 사람을 기다릴(等) 것입니다. 사왈 조고(照顧; 注意)할지니 포대를 잃는다(打失布袋).
●促裝; 행장(行裝)을 정리(整理)함.
越州延慶可復禪師
上堂 胡來胡現 漢來漢現 忽然胡漢俱來時 如何祗準 良久曰 落霞與孤鶩齊飛 秋水共長天一色 參 上堂 驀拈拄杖橫按膝上曰 苦痛深 苦痛深 碧潭千萬丈 那箇是知音 卓一下 下座
●祗準; 應對 對處 亦作支準
월주(越州) 연경(延慶) 가복선사(可復禪師)
상당(上堂) 호래호현(胡來胡現)하고 한래한현(漢來漢現)하거니와 홀연히 호한(胡漢)이 함께 올 때 어떻게 지준(祗準)하느냐. 양구하고 가로되 낙하(落霞)가 고목(孤鶩; 외로운 오리)과 더불어 가지런히 날고 추수(秋水)가 장천(長天)과 함께 일색(一色)이다. 참(參)하라. 상당(上堂) 갑자기 주장자를 집어 무릎 위에 가로놓아 누르며 가로되 고통이 깊다. 고통이 깊다. 벽담(碧潭)이 천만장(千萬丈)이니 어느 것(那箇)이 이 지음(知音)인가. 한 번 치고 하좌했다.
●祗準; 응대. 대처. 또한 지준(支準)으로 지음.
安吉州道場慧顔禪師
上堂 世尊按指 海印發光 拈拄杖曰 莫妄想 便下座
안길주(安吉州) 도량(道場) 혜안선사(慧顔禪師)
상당 세존이 안지(按指; 손가락을 누르다)하매 해인이 발광(發光)한다. 주장자를 잡고 가로되 망상하지 말아라. 바로 하좌했다.
溫州雙峰普寂宗達佛海禪師
僧問 如何是永嘉境 師曰 華葢峰 曰 如何是境中人 師曰 一宿覺 上堂衆集定 喝一喝曰 冤有頭債有主 珍重
●冤有頭債有主; 寃 通怨 頭 事情的始末 謂寃屈或怨恨有其事情 負債有其債主
온주(溫州) 쌍봉(雙峰) 보적(普寂) 종달(宗達) 불해선사(佛海禪師)
승문 무엇이 이 영가경(永嘉境)입니까. 사왈 화개봉(華葢峰)이다. 가로되 무엇이 이 경중인(境中人)입니까. 사왈 일숙각(一宿覺)이다. 상당(上堂)하자 대중이 집정(集定)했다. 할로 한 번 할하고 가로되 원유두채유주(冤有頭債有主)다. 진중(珍重)하라.
●冤有頭債有主; 원(寃)은 원(怨)과 통함. 두(頭)는 사정의 시말이니 이르자면 원굴(寃屈) 혹은 원한에는 그 사정이 있고 부채에는 그 채주(債主)가 있음.
越州五峰子琪禪師
僧問 學人上來 乞師垂示 師曰 花開千朵秀 曰 學人不會 師曰 雨後萬山靑 曰 謝指示 師曰 你作麽生會 僧便喝 師曰 未在 僧又喝 師曰 一喝兩喝後作麽生 曰 也知和尙有此機要 師曰 適來道甚麽 僧無語 師便喝
월주(越州) 오봉(五峰) 자기선사(子琪禪師)
승문 학인이 올라왔으니 스님의 수시(垂示)를 구걸합니다. 사왈 꽃이 천 송이(朵) 피어 빼어나다(秀).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우후(雨後)에 만산(萬山)이 푸르다. 가로되 지시에 감사합니다. 사왈 네가 어떻게 이회하느냐. 중이 바로 할했다. 사왈 미재(未在; 그렇지 않음)다. 중이 또 할했다. 사왈 일할양할(一喝兩喝)한 후에 어떻게 하겠는가. 가로되 또한 화상이 이 기요(機要)가 있는 줄 압니다. 사왈 적래(適來)에 무어라고 말했는가. 중이 말이 없자 스님이 바로 할했다.
西京韶山雲門道信禪師
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千年古墓蛇 今日頭生角 曰 莫便是和尙家風也無 師曰 卜度則喪身失命 問 如何是學人自己 師曰 無人識者 曰 如何得脫灑去 師曰 你問我答
서경(西京) 소산(韶山) 운문(雲門) 도신선사(道信禪師)
승문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천 년 고묘(古墓)의 뱀이 금일 머리에 뿔이 생겼다. 가로되 바로 이 화상의 가풍이 아니겠습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복탁(卜度)하면 곧 상신실명(喪身失命)한다. 묻되 무엇이 이 학인의 자기입니까. 사왈 알 사람이 없는 자다. 가로되 어찌해야 탈쇄(脫灑)를 얻어 갑니까. 사왈 네가 묻고 내가 답한다.
臨安府上天竺從諫慈辯講師
處之松陽人也 具大知見 聲播講席 於止觀深有所契 每與禪衲遊 甞以道力扣大通 通一日作書寄之 師發緘 睹黑白二圓相 乃悟 答偈曰 黑相白相 擔枷過狀 了不了兮 無風起浪 若問究竟事如何 洞庭山在太湖上
임안부(臨安府) 상천축(上天竺) 종간(從諫) 자변강사(慈辯講師)
처(處)의 송양(松陽) 사람이다. 대지견(大知見)을 갖추어 명성이 강석(講席)에 전파되었고 지관(止觀)에 깊이 계합하는 바가 있었다. 매양 선납(禪衲)과 더불어 교유(交遊; 遊)했는데 일찍이 도력(道力)으로써 대통(大通; 善本의 賜號)에게 물었다(扣). 대통이 어느 날 글을 지어 기탁했는데 스님이 발함(發緘)하매 혹백 2원상을 보았고(睹) 이에 깨달았다. 답게(答偈)에 가로되 흑상백상(黑相白相)은/ 담가과상(擔枷過狀)이며/ 요(了)와 불료(不了)는/ 무풍기랑(無風起浪)이다/ 만약 구경사(究竟事)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동정산(洞庭山)이 태호(太湖) 위에 있다.
金山寧禪師法嗣
婺州普濟子淳圓濟禪師
僧問 摩尼珠人不識 如來藏裏親收得 如何是珠 師曰 不撥自轉 曰 如何是藏 師曰 一撥便轉 曰 轉後如何 師曰 把不住 上堂 雨過山靑 雲開月白 帶雪寒松 搖風庭栢 山僧恁麽說話 還有祖師意也無 其或未然 良久曰 看看
무주(婺州) 보제(普濟) 자순(子淳) 원제선사(圓濟禪師)
승문 마니주를 사람이 알지 못하나니 여래장 속에서 친히 수득(收得)했다(증도가). 무엇이 이 주(珠)입니까. 사왈 건드리지(撥) 않아도 스스로 돈다. 가로되 무엇이 이 장(藏)입니까. 사왈 한 번 건드리자 바로 돈다. 가로되 돈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잡아 머물게 하지 못한다. 상당(上堂) 비가 지나가자 산이 푸르고/ 구름이 개이자 달이 밝다/ 눈을 띤(帶) 한송(寒松)이며/ 바람에 흔들리는 정백(庭栢)이다. 산승의 이러한 설화에 도리어 조사의(祖師意)가 있느냐 또는 없느냐. 그 혹 그렇지 못하다면, 양구하고 가로되 보아라, 보아라.
吉州禾山用安禪師
僧問 蓮華未出水時如何 師曰 魚挨鼈倚 曰 出水後如何 師曰 水仙頭上戴 好手絕躋攀 曰 出與未出時如何 師曰 應是乾坤措 不敎容易看
길주(吉州) 화산(禾山) 용안선사(用安禪師)
승문 연화가 물에서 나오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물고기가 자라에게 접근(挨)하여 기대었다. 가로되 물에서 나온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수선(水仙; 水仙花)을 두상에 이니(戴) 호수(好手)도 제반(躋攀; 올라 잡아당김)이 끊어졌다. 가로되 나옴과 나오지 않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응당 이 건곤을 두고(措) 용이하게 보게 하지 않는다.
本覺一禪師法嗣
福州越峰粹珪妙覺禪師
本郡林氏子 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瘦田損種 曰 未審如何領會 師曰 刈禾鎌子曲如鉤 問 機關不到時如何 師曰 抱甕灌園 曰 此猶是機關邊事 師曰 須要雨淋頭
복주(福州) 월봉(越峰) 수규(粹珪) 묘각선사(妙覺禪師)
본군(本郡) 임씨(林氏)의 아들이다. 승문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수전(瘦田; 瘠薄한 밭)에 종자(種子; 種)가 손상(損傷)되었다. 가로되 미심하오니 어떻게 영회(領會)해야 합니까. 사왈 벼를 베는 겸자(鎌子; 낫)가 굽기가 갈고리 같다. 묻되 기관(機關)이 이르지 않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독(甕; 독 옹)을 안고 밭(園)에 물을 댄다. 가로되 이것은 오히려 이 기관변사(機關邊事)입니다. 사왈 비가 머리에 퍼붓기를 수요(須要; 需要와 같음)하는가.
台州天台如庵主
久依法眞 因看雲門東山水上行語 發明己見 歸隱故山 猿鹿爲伍 郡守聞其風 遣使逼令住持 師作偈曰 三十年來住此山 郡符何事到林間 休將瑣瑣塵寰事 換我一生閑又閑 遂焚其廬 竟不知所止
●郡符; 郡太守的符璽
태주(台州) 천태여(天台如) 암주(庵主)
오래 법진(法眞; 守一의 호)에게 의지했다. 운문의 동산수상행(東山水上行)의 어(語)를 간(看)함으로 인해 기견(己見)을 발명(發明)했다. 고산(故山)에 귀은(歸隱)하면서 원록(猿鹿)을 동반(同伴; 伍)으로 삼았다. 군수(郡守)가 그 도풍을 듣고 사자(使者)를 보내 핍박하며 주지(住持)하게 했다. 스님이 작게(作偈)하여 가로되 삼십 년 래에 이 산에 거주하나니/ 군부(郡符)가 무슨 일로 임간(林間)에 이르렀나/ 자질구레한(瑣瑣) 진환(塵寰; 티끌 세상)의 일을 가지고/ 나의 일생의 한가하고 또 한가함과 바꾸려 하지 말아라. 드디어 그 오두막을 불살랐는데 마침내 소지(所止)를 알지 못했다.
●郡符; 군태수(郡太守)의 부새(符璽; 印信).
平江府西竺寺尼法海禪師
寶文呂嘉之姑也 首參法雲秀和尙 後領旨於法眞言下 諸名儒屢挽應世 堅不從 殂日說偈曰 霜天雲霧結 山月冷涵輝 夜接故鄕信 曉行人不知 屆明坐脫
●寶文; 寶文閣學士
평강부(平江府) 서축사(西竺寺) 니(尼) 법해선사(法海禪師)
보문(寶文) 여가(呂嘉)의 고모(姑)다. 처음(首) 법운수(法雲秀; 法秀) 화상을 참(參)했고 후에 법진(法眞)의 언하에 영지(領旨)했다. 여러 명유(名儒)가 여러 번(屢) 당기며(挽) 응세(應世)하게 했으나 굳게(堅) 좇지 않았다. 조일(殂日; 죽는 날)에 설게(說偈)하여 가로되 상천(霜天)에 운무(雲霧)가 맺히고/ 산월(山月)이 차갑게 빛을 담갔다(涵)/ 밤에 고향의 소식(信)을 접했는데/ 새벽에 떠나매 사람이 알지 못하더라. 천명(天明)에 이르러(屆明) 좌탈(坐脫)했다.
●寶文; 보문각 학사.
投子顒禪師法嗣
壽州資壽灌禪師
上堂 良久曰 便恁麽散去 已是葛藤 更若喃喃 有何所益 以拂子擊禪牀 下座
수주(壽州) 자수관(資壽灌) 선사
상당 양구하고 가로되 바로 이렇게 흩어져 가더라도 이미 이 갈등이거늘 다시 만약 남남(喃喃)한다면 무슨 이익되는 바가 있겠는가. 불자로써 선상을 치고 하좌했다.
西京白馬崇壽江禪師
僧問 知師久蘊囊中寶 今日開堂略借看 師曰 不借 曰 爲甚麽不借 師曰 賣金須是買金人
서경(西京) 백마(白馬) 숭수강(崇壽江) 선사
승문 스님이 오래 낭중보(囊中寶)를 간직(蘊)한 줄 압니다. 금일 개당했으니 조금(略) 빌려 볼까 합니다. 사왈 빌리지 못한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빌리지 못합니까. 사왈 매금(賣金; 금을 팔다)은 꼭 이 매금인(買金人; 금을 사는 사람)이라야 한다.
鄧州香嚴智月海印禪師
僧問 法雷已震 選佛場開 不昧宗乘 請師直指 師曰 三月三日時 千花萬花拆 曰 普天匝地承恩力 覺苑仙葩一夜開 師曰 切忌隨他去 乃曰 判府吏部 此日命山僧開堂祝聖 紹續祖燈 祇如祖燈作麽生續 不見古者道 六街鐘鼓響鼕鼕 卽處鋪金世界中 池長芰荷庭長栢 更將何法演眞宗 恁麽說話 也是事不獲已 有旁不肯底出來 把山僧拽下禪牀 痛打一頓 許伊是箇本分衲僧 若未有這箇作家手脚 切不得草草匆匆 勘得脚跟下不實頭沒去處 却須倒喫香嚴手中钁柄 莫言不道 上堂 吾家寶藏不慳惜 覿面相呈人罕識 輝今耀古體圓時 照地照天光赫赤 荊山美玉奚爲貴 合浦明珠比不得 借問誰人敢酬價 波斯鼻孔長三尺 咄
●覺苑; 指佛所居之淨土 又喩指心
●仙葩; .仙界的異草奇花
●草草匆匆; 又作草草怱怱 十分匆忙倉促的樣子
●赫赤; 一耀眼 刺眼 引人注目的樣子 二深紅色 引申指貧窮 空無一物 此指一
등주(鄧州) 향엄(香嚴) 지월(智月) 해인선사(海印禪師)
승문 법뢰(法雷)가 이미 진동(震動; 震)하고 선불장(選佛場)이 열렸습니다. 종승(宗乘)을 매(昧)하지 않고 스님의 직지(直指)를 청합니다. 사왈 3월 3일의 때에 천화만화(千花萬花)가 터졌다(拆). 가로되 보천잡지(普天匝地; 온 천지)가 은력(恩力)을 승수(承受)했고 각원(覺苑)의 선파(仙葩)가 하룻밤에 피었습니다. 사왈 수타거(隨他去)함을 절기(切忌)한다. 이에 가로되 판부(判府)의 이부(吏部)가 이날 산승에게 명하여 개당(開堂) 축성(祝聖)하고 조등(祖燈)을 소속(紹續)케 했다. 지여(祇如) 조등(祖燈)을 어떻게 잇는가(續). 보지 못하는가 고자(古者)가 말하되 육가(六街)에 종고(鐘鼓)의 음향이 동동(鼕鼕)하니/ 즉처(卽處; 바로 그곳)에 금을 편 세계 가운데다/ 연못엔 기하(芰荷; 마름과 연꽃)가 자라고 뜰엔 측백(栢)이 자라나니/ 다시 무슨 법을 가져 진종(眞宗)을 펴겠는가(演). 이러한 설화도 또한 이 사불획이(事不獲已)다. 곁(旁)에서 불긍(不肯)하는 이가 있어 나와서, 산승을 잡아 선상에서 끌어 내려 아프게 1돈(頓) 때린다면 그가 시개(是箇)의 본분납승임을 허락하겠다. 만약 저개(這箇) 작가수각(作家手脚)이 있지 않다면 간절히 초초총총(草草匆匆)함을 얻지 말아라. 발꿈치 아래가 실두(實頭)가 아니며 거처(去處)가 없음을 감득(勘得)하고는 도리어 꼭 향엄(香嚴)의 수중(手中)의 곽병(钁柄; 괭이 자루)을 도끽(倒喫)하리니 말하지 않았다고 말하지 말아라. 상당(上堂) 오가(吾家)는 보장(寶藏)을 간석(慳惜)하지 않나니/ 적면(覿面; 當面)하여 상정(相呈)하매 사람이 드물게 안다/ 휘금요고(輝今耀古)하는 체(體)가 원만할 때/ 조지조천(照地照天)하는 빛(光)이 혁적(赫赤)하다/ 형산(荊山)의 미옥(美玉)이 어찌(奚) 귀함이 되겠는가/ 합포(合浦)의 명주(明珠)도 비교함을 얻지 못한다/ 차문(借問)하나니 어떤 사람(誰人)이 감히 수가(酬價; 값을 매김)하는가/ 파사(波斯; 파사인)의 콧구멍의 길이가 석 자다. 돌(咄).
●覺苑; 불타가 거주하는 바의 정토를 가리킴. 또 마음을 비유로 가리킴.
●仙葩; .선계(仙界)의 이초기화(異草奇花).
●草草匆匆; 또 초초총총(草草怱怱)으로 지음. 십분 총망(匆忙)하고 창촉(倉促; 倉卒)한 양자(樣子; 形狀).
●赫赤; 1. 요안(耀眼; 눈에 번쩍임). 자안(刺眼; 눈을 찌름). 사람의 주목을 당기는 양자. 2. 심홍색(深紅色). 인신(引申; 轉義)하여 빈궁(貧窮)하고 비어서 한 물건도 없음을 가리킴. 여기에선 1을 가리킴.
丞相富弼居士
字彦國 由淸獻公警勵之後 不舍晝夜 力進此道 聞顒禪師主投子 法席冠淮甸 往質所疑 會顒爲衆登座 見其顧視如象王回旋 公微有得 因執弟子禮 趨函丈 命侍者請爲入室 顒見卽曰 相公已入來 富弼猶在外 公聞汗流浹背 卽大悟 尋以偈寄圓照本曰 一見顒公悟入深 夤緣傳得老師心 東南謾說江山遠 目對靈光與妙音 後奏署顒師號 顒上堂謝語 有曰 彼一期之悞我 亦將錯而就錯 公作偈贊曰 萬木千花欲向榮 臥龍猶未出滄溟 彤雲彩霧呈嘉瑞 依舊南山一色靑
●淮甸; 祖庭事苑四 淮甸 上戶乖切 水名 釋名曰 圍也 圍繞楊州北界 東至海也
●函丈; 古代講學者與聽講者 坐席之間相距一丈 後用以稱講席 引申爲對前輩學者或師長的敬稱 [百度百科]
승상(丞相) 부필거사(富弼居士)
자가 언국(彦國)이다. 청헌공(淸獻公)이 경려(警勵)한 후로부터 주야를 쉬지(舍) 않고 힘껏 차도(此道)를 진수(進修; 進)했다. 옹선사(顒禪師; 修顒)가 투자(投子)를 주지(主持; 主)하며 법석이 회전(淮甸)에서 으뜸(冠)이라 함을 듣고 가서 의심되는 바를 질의했다. 마침(會) 수옹이 대중을 위해 등좌(登座)했는데 그가 고시(顧視)함이 상왕(象王)이 회선(回旋)함과 같음을 보고서 공(公)이 조금(微) 얻음이 있었다. 인하여 제자례(弟子禮)를 가졌고(執) 함장(函丈)으로 달려가(趨) 시자에게 명하여 입실을 청했다. 수옹이 보자 곧 가로되 상공(相公)은 이미 들어왔지만 부필(富弼)은 아직 밖에 있습니다. 공이 듣고서 땀이 흘러 등을 적셨고(浹) 곧 대오했다. 이윽고 게를 원조본(圓照本; 宗本)에게 기탁해 가로되 옹공(顒公)을 일견(一見)하자 오입(悟入)이 깊었나니/ 인연(夤緣; 深緣)으로 노사(老師)의 마음을 전득(傳得)했다/ 동남에서 헛되이(謾) 설하기를 강산이 멀다 하지만/ 눈으로 영광(靈光)과 묘음(妙音)을 상대했다. 후에 상주(上奏; 奏)하여 옹사(顒師)의 호를 서(署; 簽)했다. 옹(顒)이 상당하여 감사의 말을 했는데 말함(曰)이 있기를 그는 일기(一期)에 나를 그르쳤고(悞) 또한 착오를 가지고 착오로 나아갔다. 공이 작게(作偈)하여 찬왈(贊曰) 만목천화(萬木千花)가 영화(榮華; 榮)를 향하려고 하건만/ 와룡(臥龍)은 오히려 창명(滄溟)에서 나오지 않았다/ 동운(彤雲; 붉은 구름)과 채무(彩霧)가 가서(嘉瑞)를 보이지만(呈)/ 의구히 남산은 일색으로 푸르다.
●淮甸; 조정사원4. 회전(淮甸) 상은 호괴절(戶乖切; 회)이니 물 이름임. 석명(釋名; 釋水)에 가로되 위(圍)다. 양주 북계(北界)를 위요(圍繞)해 동으로 바다에 이른다.
●函丈; 고대 강학자(講學者)와 청강자의 좌석의 사이가 서로 1장(丈) 떨어졌는데 후에 써서 강석(講席)이라 일컬었음. 인신(引申; 轉義)하여 전배(前輩)의 학자 혹 사장(師長)에 대한 경칭이 되었음 [백도백과].
甘露宣禪師法嗣
平江府妙湛寺尼文照禪師
溫陵人 上堂 靈源不動 妙體何依 歷歷孤明 是誰光彩 若道眞如實際 大似好肉剜瘡 更作祖意商量 正是迷頭認影 老胡四十九年說夢卽且止 僧堂裏憍陳如上座 爲你諸人擧覺底 還記得麽 良久曰 惜取眉毛好
●擧覺; 祖庭事苑一 擧覺 當作搉 博雅云 掦搉 都凡也 搉音角
평강부(平江府) 묘담사(妙湛寺) 니(尼) 문조선사(文照禪師)
온릉(溫陵) 사람이다. 상당(上堂) 영원(靈源)이 동(動)하지 않거늘 묘체(妙體)가 어디에 의지하겠는가. 역력히 고명(孤明)하나니 이 누구의 광채(光彩)인가. 만약 말하기를 진여의 실제(實際)라 한다면 호육완창(好肉剜瘡)과 매우 흡사하고 다시 조의(祖意)로 상량(商量)함을 짓는다면 바로(正) 이 미두인영(迷頭認影)이다. 노호(老胡)가 49년 꿈을 설함은 곧 차지(且止; 且置)하고 승당 속 교진여(憍陳如) 상좌가 너희 제인을 위해 거각(擧覺)한 것을 도리어 기득(記得)하느냐. 양구하고 가로되 눈썹을 석취(惜取)해야 좋다.
●擧覺; 조정사원1. 거각(擧覺) 마땅히 각(搉)으로 지어야 함. 박아에 이르되 양각(掦搉) 도범(都凡)이다 했음. 각(搉)은 음이 각임.
瑞巖居禪師法嗣
台州萬年處幽禪師
上堂 先聖行不到處 凡流恰到 凡流旣到 先聖莫知 到與不到 知與不知 總置一壁 祇如僧問乾峰 十方薄伽梵 一路涅槃門 未審路頭在甚麽處 峰以拄杖畫一畫曰 在這裏 且道此老與他先聖凡流 相去幾何 南山虎齩石羊兒 須向其中識生死
태주(台州) 만년(萬年) 처유선사(處幽禪師)
상당(上堂) 선성(先聖)이 행하여 이르지(到) 못한 곳을 범류(凡流)가 꼭(恰) 이르고 범류가 이미 이르매 선성이 알지 못한다. 도(到)와 부도(不到), 지(知)와 부지(不知)를 모두(總) 일벽(一壁)에 두고 지여(祇如) 중이 건봉(乾峰)에게 묻되 시방의 박가범(薄伽梵)이 일로(一路)의 열반문(涅槃門)이라 하니 미심합니다 노두(路頭)가 어느 곳에 있습니까. 건봉이 주장자로써 그어 한 번 긋고 가로되 이 속에 있다. 차도(且道)하라 차로(此老)와 저(他) 선성(先聖)ㆍ범류(凡流)가 서로 떨어짐이 얼마인가. 남산의 범이 석양아(石羊兒)를 물었나니(齩) 모름지기 그 가운데를 향해 생사를 알아라.
廣靈祖禪師法嗣
處州縉雲仙巖懷義禪師
僧問 如何是佛 師曰 自屈作麽 曰 如何是道 師曰 你道了 曰 向上更有事也無 師曰 無 曰 恁麽則小出大遇也 師曰 祇恐不恁麽 曰 也是 師曰 却恁麽去也
●小出大遇; 所出底小 所遇底大
처주(處州) 진운(縉雲) 선암(仙巖) 회의선사(懷義禪師)
승문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스스로 굴복해 무엇하려느냐. 가로되 무엇이 이 도입니까. 사왈 네가 말해 마쳤다. 가로되 향상에 다시 일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 없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소출대우(小出大遇)입니다. 사왈 다만 이러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가로되 또한 그렇습니다(也是). 사왈 도리어 이렇게 가는구나.
●小出大遇; 내놓은 바의 것은 작고 만난 바의 것은 큼.
淨因岳禪師法嗣
福州鼓山體淳禪鑒禪師
上堂 由基弓矢 不射田蛙 任氏絲綸 要投溟渤 發則穿楊破的 得則脩鯨巨鰲 隻箭旣入重城 長竿豈釣淺水 而今莫有呑鉤齧鏃底麽 若無 山僧卷起絲綸 抝折弓箭去也 擲拄杖 下座
●由基; 養由基(?-前559) 羋姓 養氏 字叔 名由基(一作繇基) 春秋時期楚國將領 是中國古代著名的神射手 養國被楚國滅亡後 養由基成爲楚國大夫 相傳養由基能在百步之外射穿作標記的柳葉 [百度百科] ▲史記四 楚有養由基者 善射者也 去柳葉百步而射之 百發而百中之
●任氏; 指任公子 是古代傳說中善於捕魚的人 亦稱任公 任父 成玄英疏 任 國名 任國之公子 [百度百科] ▲從容錄第二十九則風穴鐵牛 鯨鯢橫海大魚也 莊子任公子五十犗爲餌 曾得此魚
●溟渤; 溟海和渤海 多泛指大海
복주(福州) 고산(鼓山) 체순(體淳) 선감선사(禪鑒禪師)
상당(上堂) 유기(由基)의 궁시(弓矢; 화살)는 전와(田蛙)를 쏘지 않고 임씨(任氏)의 사륜(絲綸; 낚싯줄)은 요컨대 명발(溟渤)에 던진다. 쏘면(發) 곧 버들잎을 뚫고 표적을 깨뜨리며(穿楊破的) 얻으면 곧 수경(脩鯨; 長大한 고래)이나 거별(巨鰲)이다. 척전(隻箭)이 이미 중성(重城)에 들었거늘 장간(長竿)이 어찌 천수(淺水)에 낚시질하겠는가. 이금(而今)에 탄구설족(呑鉤齧鏃)할 이가 있지 않느냐. 만약 없다면 산승이 사륜(絲綸)을 권기(卷起; 말아 일으키다)하고 궁전(弓箭)을 요절(抝折)하여 가겠다. 주장자를 던지고 하좌했다.
●由基; 양유기(養由基; ?-前 559)니 미성(羋姓)이며 양씨며 자는 숙이며 이름이 유기(由基; 한편으론 繇基로 지음)임. 춘추시기 초국(楚國)의 장령(將領; 장수)이며 이는 중국 고대 저명한 신사수(神射手)임. 양국(養國)이 초국에 멸망을 입은 후 양유기는 초국의 대부(大夫)가 되었음. 서로 전하기를 양유기는 능히 백 보 밖에서 표기(標記)로 만든 버들잎을 쏘아서 뚫었다 함 [백도백과]. ▲사기4. 초(楚)에 양유기란 자가 있었는데 잘 쏘는 자다. 버들잎과 떨어지기가 백보(百步)에 그것을 쏘면 백발(百發)에 그것을 백중했다.
●任氏; 임공자(任公子)를 가리킴. 이는 고대 전설 중 포어(捕魚)를 잘한 사람이니 또한 호칭이 임공(任公)ㆍ임부(任父). 성현영(成玄英) 소(疏) 임은 나라 이름이니 임국의 공자다 [백도백과]. ▲종용록 제29칙 풍혈철우. 경예(鯨鯢)는 바다를 가로지르는 대어다. 장자(莊子) 임공자(任公子)가 50개(犗; 불친소)를 미끼로 하여 일찍이 이 고기를 얻었다.
●溟渤; 명해(溟海)와 발해(渤海). 다분히 대해를 널리 가리킴.
乾明覺禪師法嗣
岳州平江長慶應圓禪師
上堂 寒氣將殘春日到 無索泥牛皆𨁝跳 築著崑崙鼻孔頭 觸倒須彌成糞掃 牧童兒 鞭棄了 懶吹無孔笛 拍手呵呵笑 歸去來兮歸去來 煙霞深處和衣倒 良久曰 切忌睡著
악주(岳州) 평강(平江) 장경(長慶) 응원선사(應圓禪師)
상당(上堂) 한기(寒氣)가 거의(將) 쇠잔(衰殘; 殘)하고 춘일(春日)이 이르렀나니/ 끈이 없는 이우(泥牛)가 모두 발도(𨁝跳; 펄쩍 뛰다)한다/ 곤륜(崑崙)의 비공두(鼻孔頭; 頭는 조사)를 축착(築著; 찌르다)하고/ 수미(須彌)를 촉도(觸倒)하여 분소(糞掃; 쓰레기)를 이루었다/ 목동아(牧童兒)가/ 채찍을 버리고 나서/ 무공적(無孔笛)을 나른하게 불고/ 박수하며 하하 웃는다/ 돌아가자(歸去來兮) 돌아가자(歸去來)/ 연하(煙霞)가 깊은 곳에 옷 껴입고(和衣) 누웠다. 양구하고 가로되 잠듦(睡著)을 절기(切忌)한다.
長蘆信禪師法嗣
東京慧林懷深慈受禪師
壽春府夏氏子 生而祥光現舍 文殊堅禪師遙見 疑火也 詰旦知師始生 往訪之 師見堅輒笑 母許出家 十四割愛冠祝髮 後四年 訪道方外 依淨照於嘉禾資聖 照擧良遂見麻谷因緣 問曰 如何是良遂知處 師卽洞明 出住資福 屨滿戶外 蔣山佛鑑懃禪師行化至 茶退 師引巡寮 至千人街坊 鑑問 旣是千人街坊 爲甚麽祇有一人 師曰 多虛不如少實 鑑曰 恁麽那 師赧然 偶朝廷以資福爲神霄宮 因棄往蔣山 留西庵陳請益 鑑曰 資福知是般事便休 師曰 某實未穩 望和尙不外 鑑擧倩女離魂話 反覆窮之 大豁疑礙 呈偈曰 祇是舊時行履處 等閑擧著便誵訛 夜來一陣狂風起 吹落桃花知幾多 鑑拊几曰 這底豈不是活祖師意
●倩女離魂; 始見於唐陳玄祐之小說離魂記 剪燈新話上聚景園記曰 淸河張鑑(離魂記作鎰)季女倩娘 鑑嘗許外甥王宙爲妻 旣而悔之 欲嫁賓僚之賢者 女聞之鬱抑 宙亦深恨 赴京師至山郭 半夜忽聞有人行聲 問之 乃倩娘也 遂匿於船 至蜀 凡五年 遂與還歸 旣至 宙獨先到鑑家謝其事 鑑曰 吾女病在閨中 何其詭說 宙曰 見在舟中 鑑使人驗 果然 使者還報 室中病女聞而喜 起出相迎 合爲一體 前之倩娘實乃病女之離魂
동경(東京) 혜림(慧林) 회심(懷深) 자수선사(慈受禪師)
수춘부(壽春府) 하씨(夏氏)의 아들이다. 출생하자 상광(祥光)이 집(舍)에 나타났다. 문수견(文殊堅) 선사가 멀리서 보고 불(火)로 의심했는데 힐단(詰旦; 淸晨)에 스님이 처음 출생했음을 알고 가서 방문하자 스님이 견(堅)을 보고 문득(輒) 웃었다. 모친이 출가를 허락했고 14에 할애(割愛)했고 관세(冠歲; 冠)에 축발(祝髮; 剃髮)했다. 4년 후에 방외(方外;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로 방도(訪道)했고 가화(嘉禾) 자성(資聖)에서 정조(淨照; 崇信의 字)에게 의지했다. 정조가, 양수가 마곡을 본 인연(良遂見麻谷因緣)을 들고 물어 가로되 무엇이 이 양수가 안 곳인가. 스님이 곧 통명(洞明; 환히 明察)했다. 출세해 자복(資福)에 주(住)했는데 구(屨; 신)가 호외(戶外)에 가득했다. 장산(蔣山) 불감근(佛鑑懃; 慧懃) 선사가 행화(行化)하다가 이르렀다. 차를 물리자(茶退) 스님이 인도(引導; 引)하면서 순료(巡寮)했는데 천인가방(千人街坊)에 이르자 불감이 묻되 이미 이 천인가방이거늘 무엇 때문에(爲甚麽) 다만 한 사람만 있는가. 사왈 다허(多虛)가 소실(少實)만 같지 못하다. 감왈(鑑曰) 이러한가(恁麽那). 스님이 난연(赧然; 얼굴을 붉히다)했다. 마침(偶) 조정(朝廷)에서 자복(資福)을 신소궁(神霄宮)으로 삼자 인하여 버리고 장산(蔣山)으로 가서 서암(西庵)에 머물며 청익을 말하자(陳) 감왈(鑑曰) 자복(資福)은 이러한 일(是般事)인 줄 알았으니 바로 쉬어라. 사왈 모(某)가 실로 안온(安穩; 穩)하지 못하니 화상의 불외(不外; 어떤 범위나 한계에서 벗어나지 아니함)를 바란다. 불감이 천녀이혼화(倩女離魂話)를 들고 반복하여 추궁(追窮; 窮)하매 의애(疑礙)가 크게 뚫렸다(豁). 게를 보여 가로되 다만 이 구시(舊時)의 행리처(行履處)지만/ 등한(等閑)히 거착(擧著)하매 바로 효와(誵訛)다/ 야래(夜來)에 일진(一陣)의 광풍(狂風)이 일어나/ 도화(桃花)를 불어 떨어뜨림이 얼마나 많은지 안다. 불감이 안궤(案几)를 두드리며(拊几) 가로되 이것(這底)이 어찌 이 활조사의(活祖師意)가 아니겠는가.
●倩女離魂; 당(唐) 진현우(陳玄祐)의 소설 이혼기(離魂記)에 처음으로 보임. 전등신화상(剪燈新話上) 취경원기(聚景園記)에 가로되 청하(淸河) 장감(張鑑; 이혼기에 鎰로 지어졌음)의 막내딸은 천랑(倩娘)이었다. 장감이 일찍이 외생(外甥) 왕주(王宙)의 처가 됨을 허락했는데 그러고선 이를 후회했다. 빈료(賓僚)의 현자(賢者)에게 시집보내려 하자 여자가 이를 듣고 울억(鬱抑; 억눌리어 가슴이 답답함)했으며 왕주(王宙)도 또한 깊이 한(恨)했다. 경사(京師; 帝都)에 다다라 산곽(山郭; 높이 우뚝 솟아 벽같이 된 산)에 이르렀는데 반야(半夜)에 홀연히 어떤 사람의 가는 소리를 듣고 이를 물었더니 곧 천랑이었으며 드디어 배에 숨겨 촉(蜀)에 이르렀다. 무릇 5년 만에 드디어 함께 돌아왔는데 이미 이르러선 왕주가 홀로 먼저 장감(張鑑)의 집에 도착해 그 일을 감사했다. 장감이 가로되 내 딸은 규방(閨房) 가운데 병들어 있는데 무슨 그 궤변(詭辯)의 말인가. 왕주가 가로되 현재 배 속에 있습니다. 장감이 사람을 시켜 시험했는데 과연 그러했다. 사자(使者)가 돌아와 보고하자 실중(室中)의 병녀(病女)가 듣고 기뻐하며 일어나 나가서 상영(相迎)하자 합쳐져 일체(一體)가 되었다. 앞의 천랑은 곧 병녀(病女)의 분리된 혼(魂)이었다.
未幾 被旨住焦山 僧問 如何是佛 師曰 面黃不是眞金貼 曰 如何是佛向上事 師曰 一箭一蓮華 僧作禮 師彈指三下 問 知有道不得時如何 師曰 瘂子喫蜜 曰 道得不知有時如何 師曰 鸚鵡喚人 僧禮拜 師叱曰 這傳語漢 問 甚麽人不被無常呑 師曰 祇恐他無下口處 曰 恁麽則一念通玄箭 三尸鬼失姧也 師曰 汝有一念 定被他呑了 曰 無一念時如何 師曰 捉著闍黎
미기(未幾; 동안이 오래지 않음)에 성지(聖旨)를 입어 초산(焦山)에 주(住)했다. 승문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얼굴 누럼(面黃)은 이 진금을 붙인(貼) 게 아니다. 가로되 무엇이 이 불향상사(佛向上事)입니까. 사왈 1전(箭)에 1연화(蓮華)다. 중이 작례(作禮)했다. 스님이 세 번 탄지(彈指)했다. 묻되 지유(知有)하지만 말함을 얻지 못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아자(瘂子; 벙어리)가 꿀을 먹었다. 가로되 말함을 얻지만 지유(知有)하지 못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앵무가 사람을 부른다. 중이 예배했다. 스님이 꾸짖으며 가로되 이 전어한(傳語漢)아. 묻되 어떤 사람(甚麽人)이 무상(無常)의 삼킴을 입지 않습니까. 사왈 다만 그가 하구(下口)할 곳이 없을까 염려스럽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일념의 통현전(通玄箭)에 삼시귀(三尸鬼)가 실간(失姧)합니다. 사왈 너는 일념이 있어 꼭(定) 그가 삼켜버림을 입을 것이다. 가로되 일념도 없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사리(闍黎)를 붙잡았다(捉著).
上堂 古者道 忍忍 三世如來從此盡 饒饒 萬禍千殃從此消 默默 無上菩提從此得 師曰 會得此三種語了 好箇不快活漢 山僧祇是得人一牛 還人一馬 潑水相唾 插觜廝罵 卓拄杖曰 平出平出 上堂 雲自何山起 風從甚㵎生 好箇入頭處 官路少人行 上堂 不是境亦非心 喚作佛時也陸沈 箇中本自無階級 切忌無階級處尋 總不尋 過猶深 打破雲門飯袋子 方知赤土是黃金 咄
●陸沈; 陸地無水而沈 莊子則陽 方且與世違 而心不屑與之俱 是陸沈者也 注云 人中隱者 譬無水而沈 則陸沈正言隱者
상당(上堂) 고자(古者)가 말하되 참아라 참아라(忍忍) 삼세제불이 이로 좇아 없어진다. 용서하라 용서하라(饒饒) 만화천앙(萬禍千殃)이 이로 좇아 소멸(消)한다. 침묵하라 침묵하라(默默) 무상보리(無上菩提)를 이로 좇아 얻는다. 사왈 이 삼종어(三種語)를 회득(會得)하여 마치면 호개(好箇)의 불쾌활한(不快活漢)이다. 산승은 다만 이, 사람에게서 1우(牛)를 얻고 사람에게 1마(馬)를 돌려주고 물을 뿌리며 상타(相唾)하고 부리를 꽂아 시매(廝罵; 서로 욕함)한다. 주장자를 치고 가로되 평출(平出)이다, 평출이다. 상당(上堂) 구름이 어느 산으로부터 일어나며/ 바람은 어느 개울(甚㵎)로 좇아 나는가/ 호개(好箇)의 입두처(入頭處)지만/ 관로(官路)에 다니는 사람이 적다. 상당(上堂) 이 경계가 아니며 또한 마음도 아니니/ 부처라고 불러 지을 때 또한 육침(陸沈)한다/ 개중(箇中)에 본래 스스로 계급이 없나니/ 계급이 없는 곳에서 찾음을 절기(切忌)한다/ 모두 찾지 않아도/ 허물이 오히려 깊다/ 운문의 반대자(飯袋子)를 타파하고서야/ 적토(赤土)가 이 황금인 줄 비로소 안다. 돌(咄).
●陸沈; 육지에서 물이 없는데 침몰함. 장자 즉양(則陽). 방차(方且; 또한) 세상과 위배하면서 마음에 그들과 함께함을 달갑게 여기지 않나니 이는 육침(陸沈)한 자이다. 주(注)에 이르되 인중(人中)의 은자(隱者)는 물 없이 침몰함에 비유한다. 곧 육침은 바로 은자를 말함이다.
平江府萬壽如璝證悟禪師
建寧魏氏 開堂日 僧問 如何是蘇臺境 師曰 山橫師子秀 水接太湖淸 曰 如何是境中人 師曰 衣冠皇宋後 禮樂大周前 師凡見僧 必問 近日如何 僧擬對 卽拊其背曰 不可思議 將示寂 衆集 復曰 不可思議 乃合掌而終
평강부(平江府) 만수(萬壽) 여괴(如璝) 증오선사(證悟禪師)
건녕(建寧) 위씨(魏氏)다. 개당일 승문 무엇이 이 소대경(蘇臺境)입니까. 사왈 산에 사자(師子)가 가로놓이니 빼어나고 물이 태호(太湖)와 인접(隣接; 接)하여 맑다. 가로되 무엇이 이 경중인(境中人)입니까. 사왈 의관(衣冠)은 황송(皇宋)의 뒤며 예악(禮樂)은 대주(大周) 앞이다. 스님이 무릇 중을 보면 반드시 묻되 근일(近日) 어떠한가. 중이 대답하려고 하면 스님이 그의 등을 두드리며 가로되 불가사의다. 장자 시적(示寂)하려 하자 대중이 모였다. 다시 가로되 불가사의다. 이에 합장하고 마쳤다.
越州天衣如哲禪師
族里未詳 自退席寓平江之萬壽 飮啖無擇 人多侮之 有以瑞巖喚主人公話問者 師答以偈曰 瑞巖長喚主人公 突出須彌最上峯 大地掀翻無覓處 笙歌一曲畵樓中 一日曰 吾行矣 令拂拭所乘笋輿 乃書偈告衆曰 道在用處 用在死處 時人祇管貪歡樂 不肯學無爲 敘平昔參問 勉衆進修已 忽竪起拳曰 諸人且道 這箇落在甚麽處 衆無對 師揮案一下曰 一齊分付與秋風 遂入輿 端坐而逝
●笋輿; 指竹轎子 竹輿 輿泛指馬車
월주(越州) 천의(天衣) 여철선사(如哲禪師)
족리(族里; 씨족과 鄕里)가 미상이다. 퇴석(退席)함으로부터 평강(平江)의 만수(萬壽)에 우거(寓居)하면서 음담(飮啖)에 간택이 없었고 사람들이 다분히 업신여겼다(侮). 서암이 주인공을 부른 화(瑞巖喚主人公話)로써 묻는 자가 있자 스님이 게로써 답해 가로되 서암이 늘 주인공을 부르니/ 수미(須彌)의 최상봉(最上峯)이 돌출했다/ 대지를 번쩍 들어 엎어도 찾을 곳이 없나니/ 생가(笙歌)의 일곡(一曲)이 화루(畵樓) 가운데로다. 어느 날 가로되 내가 가겠다. 타던 바의 순여(笋輿)를 불식(拂拭)하게 하고 이에 게를 쓰고 고중(告衆)해 가로되 도는 용처(用處)에 있고 용(用)은 사처(死處)에 있다. 시인(時人)이 다만 관대(管帶)하여 환락(歡樂)을 탐하고 무위(無爲)를 배움을 긍정하지 않는다. 평석(平昔)의 참문(參問)을 서술하고 대중에게 권하여(勉) 자기를 진수(進修; 정진하며 닦음)하게 했다. 홀연히 주먹을 세워 일으키고 가로되 제인은 차도(且道)하라, 저개(這箇)가 어느 곳에 떨어져 있느냐. 대중이 대답이 없었다. 스님이 한 번 궤안(几案)을 휘두르고 가로되 일제(一齊)히 추풍에게 분부하여 준다. 드디어 입여(入輿)하더니 단좌(端坐)하여 서거했다.
●笋輿; 죽교자(竹轎子)ㆍ죽여(竹輿)를 가리킴. 여(輿)는 널리 마차를 가리킴.
婺州智者法銓禪師
上堂 要扣玄關 須是有節操 極慷慨 斬得釘 截得鐵 硬剝剝地漢始得 若是隈刀避箭 碌碌之徒看卽有分 以拂子擊禪牀 下座
●硬剝剝地; 形容物之堅硬
●隈刀避箭; 回避刀箭 隈 回避之義
●碌碌; 指平凡 無所作爲
무주(婺州) 지자(智者) 법전선사(法銓禪師)
상당 현관(玄關)을 두드리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이는 절조(節操)가 있어야 한다. 극히 강개(慷慨)하여 못을 벰을 얻고 쇠를 자름을 얻는 경박박지한(硬剝剝地漢)이라야 비로소 옳다. 만약 이 외도피전(隈刀避箭)하는 녹록지도(碌碌之徒)일진대 간(看)하매 분한이 있다. 불자로써 선상을 치고 하좌했다.
●硬剝剝地; 물건의 견경(堅硬)함을 형용.
●隈刀避箭; 도전(刀箭)을 회피함. 외(隈)는 회피의 뜻.
●碌碌; 평범하면서 작위(作爲; 적극적인 행위, 동작 또는 거동)하는 바가 없음을 가리킴.
臨安府徑山智訥妙空禪師
僧問 牛頭未見四祖時如何 師曰 坐久成勞 曰 見後如何 師曰 不妨我東行西行
임안부(臨安府) 경산(徑山) 지눌(智訥) 묘공선사(妙空禪師)
승문 우두가 4조를 뵙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앉음이 오래면 노곤함을 이룬다(坐久成勞). 가로되 뵌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내가 동행서행(東行西行)함에 방애되지 않는다.
金山慧禪師法嗣
常州報恩覺然寶月禪師
越州鄭氏子 上堂 學者無事空言 須求妙悟 去妙悟而事空言 其猶逐臭耳 然雖如是 罕逢穿耳客 多遇刻舟人 一日謂衆曰 世緣易染 道業難辦 汝等勉之 語卒而逝
상주(常州) 보은(報恩) 각연(覺然) 보월선사(寶月禪師)
월주(越州) 정씨(鄭氏)의 아들이다. 상당(上堂) 학자는 공언(空言)에 종사(從事; 事)함이 없어야 하나니 모름지기 묘오(妙悟)를 구해야 한다. 묘오를 제거하고 공언에 종사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냄새를 쫓음일 뿐이다. 그러하여 비록 이와 같지만 천이객(穿耳客)은 만남이 드물고(罕) 각주인(刻舟人)을 만남이 많다. 어느 날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세연(世緣)엔 물들기 쉽고 도업(道業)은 갖추기(辦) 어렵다. 너희 등은 근면(勤勉; 勉)하라. 말을 마치자(卒) 서거했다.
法雲白禪師法嗣
婺州智者紹先禪師
潭州人也 上堂 根塵同源 縛脫無二 不動絲毫 十方游戲 子湖犬子雖獰 爭似南山鼈鼻 遂高聲曰 大衆看脚下 上堂 團不聚 撥不散 日曬不乾 水浸不爛 等閑挂在太虛中 一任傍人冷眼看
무주(婺州) 지자(智者) 소선선사(紹先禪師)
담주(潭州) 사람이다. 상당(上堂) 근진(根塵; 6근과 6진)이 동원(同源)이며 박탈(縛脫; 묶임과 벗어남)이 무이(無二)다. 사호(絲毫)도 움직이지 않고 시방에 유희(游戲)한다. 자호(子湖)의 견자(犬子; 子는 조사)가 비록 모질지만(獰) 어찌(爭) 남산의 별비(鼈鼻; 저본에 氅鼻로 지었음)와 같겠는가. 드디어 고성(高聲)으로 가로되 대중이여 발 아래를 보아라. 상당(上堂) 뭉쳐도(團) 모이지 않고 헤쳐도(撥) 흩어지지 않고 햇볕에 쬐어도(日曬) 마르지 않고 물에 담가도(浸) 문드러지지 않는다(爛). 등한(等閑)히 태허(太虛) 속에 걸려 있나니 방인(傍人)이 냉안(冷眼)으로 보는 대로 일임한다.
沂州馬鞍山福聖院仲易禪師
上堂 一二三四五 陞堂擊法鼓 簇簇齊上來 一一面相睹 秋色滿虛庭 秋風動寰宇 更問祖師禪 雪峰到投子 咄
기주(沂州) 마안산(馬鞍山) 복성원(福聖院) 중이선사(仲易禪師)
상당 일이삼사오/ 승당하여 법고를 친다/ 족족(簇簇; 빽빽이 나열한 모양) 일제히 올라와서/ 하나하나 얼굴을 서로 본다/ 추색이 허정(虛庭)에 가득하고/ 추풍이 환우(寰宇)를 진동(振動)한다/ 다시 조사선을 묻는다면/ 설봉이 투자(投子)에 이르렀다. 돌(咄).
東京慧林慧海月印禪師
僧問 師唱誰家曲 宗風嗣阿誰 師曰 黃金地上玉樓臺 曰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三月洛陽人戴花 上堂 黃金地上 具眼者未肯安居 荊棘林中 本分底留伊不得 祇如去此二途 作麽生是衲僧行履處 良久曰 擧頭煙靄裏 依約見家山 上堂 顧視大衆 拍禪牀一下 曰 聊表不空 便下座
●依約; 一依據 二彷彿 三大約 四形容情意纏綿
동경(東京) 혜림(慧林) 혜해(慧海) 월인선사(月印禪師)
승문 스님은 뉘집 노래를 부르며 종풍은 누구에게서 이었습니까. 사왈 황금지상(黃金地上)에 옥누대(玉樓臺)다. 가로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3월에 낙양 사람이 꽃을 이었다(戴). 상당(上堂) 황금지상(黃金地上)에 구안자(具眼者)는 안거(安居)를 긍정하지 않고 형극림중(荊棘林中)에 본분의 것(本分底)은 그(伊)를 머묾을 얻지 못한다. 지여(祇如) 이 2도(途)를 제거하고 무엇이 이 납승의 행리처(行履處)인가. 양구하고 가로되 연애(煙靄; 아지랑이) 속에 거두(擧頭)하니 의약(依約; 어슴푸레) 가산(家山)을 본다. 상당(上堂) 대중을 돌아보고는 선상을 한 번 치고 가로되 애오라지 불공(不空)을 표(表)한다. 바로 하좌했다.
●依約; 1 의거(依據). 2. 방불. 3. 대약(大約). 4. 정의(情意)가 전면(纏綿)함을 형용.
楊州建隆原禪師
姑蘇夏氏子 上堂 拈拄杖曰 買帽相頭 依模畵樣 從他野老自顰眉 誌公不是閑和尙 卓拄杖 下座
●依模畵樣; 按照模式樣子描摹 比喻單純模仿 缺乏創新 [百度百科]
양주(楊州) 건륭원(建隆原) 선사
고소(姑蘇) 하씨(夏氏)의 아들이다. 상당 주장자를 잡고 가로되 매모상두(買帽相頭; 머리를 보고 모자를 사다)하고 의모화양(依模畵樣)한다. 그로 좇아 야로(野老)가 스스로 눈썹을 찌푸리나니 지공(誌公)은 이 한화상(閑和尙)이 아니다. 주장자를 치고 하좌했다.
●依模畵樣; 모식(模式)과 양자(樣子)를 안조(按照)하여 묘모(描摹; 描寫)함. 단순히 모방만 하고 창신(創新)이 결핍함에 비유 [백도백과].
保寧英禪師法嗣
臨安府廣福院惟尙禪師
初參覺印 問曰 南泉斬貓兒 意旨如何 印曰 須是南泉始得 印以前語詰之 師不能對 至僧堂 忽大悟曰 古人道 從今日去 更不疑天下老和尙舌頭 信有之矣 述偈呈印曰 須是南泉第一機 不知不覺驀頭錐 覿面若無靑白眼 還如守空池 擧未絕 印竪拳曰 正當恁麽時作麽生 師掀倒禪牀 印遂喝 師曰 賊過後張弓 便出 住廣福日 室中問僧 提起來作麽生會 又曰 且道是箇甚麽 要人提起
●靑白眼; 按晉書四十九阮籍傳 籍又能爲靑白眼 見禮俗之士 以白眼對之 他的母親死了 稽喜來吊 籍作白眼 喜不懌而退 喜弟康聞之 乃齎酒挾琴造焉 籍大悅 乃見靑眼 於禪林中 善能分辨相對方根機淺深的眼目也
●; 書無字
임안부(臨安府) 광복원(廣福院) 유상선사(惟尙禪師)
각인(覺印; 子英의 字)을 초참(初參)하여 문왈(問曰) 남천(南泉)이 고양이(貓兒)를 벤 의지가 무엇입니까. 인왈(印曰) 모름지기 이는 남천이라야 비로소 옳다. 각인이 전어(前語)로써 힐문(詰問; 詰之)하자 스님이 능히 대답하지 못했다. 승당에 이르렀다가 홀연히 대오하고 가로되 고인이 말하되 금일로 좇아가면서 다시는 천하 노화상의 설두(舌頭)를 의심하지 않는다 하더니 믿음이 있다. 술게(述偈)하여 각인에게 보여 가로되 모름지기 이 남천이 제1기(第一機)니/ 부지불각(不知不覺)에 갑자기(驀頭; 頭는 조사) 찔렀다(錐)/ 적면(覿面)하여 만약 청백안(靑白眼)이 없다면/ 도리어 감감()이 공지(空池)를 지킴과 같다. 듦이 끊어지지 아니하여서 각인이 주먹을 세우고 가로되 바로 이러한 때를 당해 어떠한가. 스님이 선상을 번쩍 들어 넘어뜨렸다. 각인이 드디어 할(喝)했다. 사왈 도적이 지나간 후에 활을 당깁니다. 바로 나갔다. 광복(廣福)에 주(住)하던 날 실중(室中)에서 중에게 묻되 제기(提起)하여 오매 어떻게 이회하느냐. 또 가로되 차도(且道)하라 이것(是箇)이 무엇인가. 제기할 사람을 요한다.
●靑白眼; 진서49(晉書四十九) 완적전(阮籍傳)을 안험컨대 완적은 또 능히 청백안(靑白眼)을 지었음(爲). 예속지사(禮俗之士)를 보면 백안(白眼)으로 그를 상대했음. 그의 모친이 죽은 다음 계희(稽喜)가 와서 조문하자 완적이 백안을 지은지라 계희가 기뻐하지 않고 물러갔음. 계희의 동생 계강(稽康)이 이를 듣고 이에 술을 갖고 거문고를 끼고 나아가자 완적이 크게 기뻐하며 이에 청안(靑眼)을 보였음. 선림 중에선 잘 능히 상대방의 근기의 천심(淺深)을 분변하는 안목임.
●; 서(書)에 字가 없음.
明州雪竇法寧禪師
衢州杜氏子 上堂 百川異流 以海爲極 森羅萬象 以空爲極 四聖六凡 以佛爲極 明眼衲子 以拄杖子爲極 且道拄杖子以何爲極 有人道得 山僧兩手分付 儻或未然 不如閑倚禪牀畔 留與兒孫指路頭
●四聖六凡; 四聖者 佛 菩薩 聲聞 緣覺也 六凡者 天 人 阿修羅 餓鬼 畜生 地獄也
명주(明州) 설두(雪竇) 법녕선사(法寧禪師)
구주(衢州) 두씨(杜氏)의 아들이다. 상당(上堂) 백천이류(百川異流)가 바다로써 지극함을 삼고 삼라만상이 공(空)으로써 지극함을 삼고 사성육범(四聖六凡)이 불(佛)로써 지극함을 삼고 명안납자(明眼衲子)가 주장자로써 지극함을 삼는다. 차도(且道)하라 주장자는 무엇으로써 지극함을 삼느냐. 어떤 사람이 말함을 얻는다면 산승이 양수(兩手)로써 분부(分付)하려니와 당혹(儻或; 만일 혹) 그렇지 못하다면 한가하게 선상 가에 기대어 머물러둬 아손에게 노두(路頭)를 가리켜 줌만 같지 못하다.
●四聖六凡; 4성이란 것은 불ㆍ보살ㆍ성문ㆍ연각이며 6범이란 것은 천ㆍ인ㆍ아수라ㆍ아귀ㆍ축생ㆍ지옥임.
開先珣禪師法嗣
廬州延昌熈詠禪師
僧問 少林面壁 意旨如何 師曰 慚惶殺人
여주(廬州) 연창(延昌) 희영선사(熈詠禪師)
승문 소림에서 면벽한 의지가 무엇입니까. 사왈 사람을 너무 참황(慚惶; 부끄럽고 두려움)하게 한다.
廬州開先宗禪師
上堂 一不做 二不休 棙轉鼻孔 捺下雲頭 禾山解打鹽官鼓 僧繇不寫戴嵩牛 廬陵米投子油 雪峯依舊輥雙毬 夜來風送衡陽信 寒鴈一聲霜月幽
●戴嵩; 唐中期畵家 特善畵牛之圖
여주(廬州) 개선종(開先宗) 선사
상당(上堂) 하나는 짓지 않고/ 둘은 쉬지 않는다/ 콧구멍을 비틀어 돌리고/ 운두(雲頭; 頭는 조사)를 눌러 내린다/ 화산(禾山)은 염관(鹽官)의 북을 칠 줄 알았고/ 승요(僧繇)는 대숭(戴嵩)의 소를 그리지(寫) 않았다/ 여릉(廬陵)의 쌀과 투자(投子)의 기름(油)이며/ 설봉은 의구히 쌍구(雙毬)를 굴렸다(輥)/ 야래(夜來)에 바람이 형양(衡陽)의 소식(信)을 보내고/ 한안(寒鴈)의 일성(一聲)에 상월(霜月)이 그윽하다.
●戴嵩; 당 중기의 화가. 특히 소 그림을 잘 그렸음.
甘露顒禪師法嗣
楊州光孝元禪師
僧問 如何是和尙家風 師曰 七顚八倒 曰 忽遇客來 如何祇待 師曰 生鐵蒺藜劈口𡎺
양주(楊州) 광효원(光孝元) 선사
승문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 칠전팔도(七顚八倒)한다. 가로되 홀연히 객이 오면 어떻게 지대(祇待)합니까. 사왈 생철(生鐵) 질려(蒺藜; 남가새)로 입에다(劈口) 때린다(𡎺).
雪竇榮禪師法嗣
福州雪峯大智禪師
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銜拂柄示之 僧曰 此是香嚴底 和尙又作麽生 師便喝 僧大笑 師叱曰 這野狐精
복주(福州) 설봉(雪峯) 대지선사(大智禪師)
승문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스님이 불병(拂柄; 불자 자루)을 물어 보였다. 승왈 이것은 이 향엄의 것(香嚴底)입니다. 화상은 또 어떻습니까. 스님이 바로 할했다. 중이 크게 웃었다. 스님이 꾸짖으며 가로되 이 야호정(野狐精)아.
元豐滿禪師法嗣
福州雪峰宗演圓覺禪師
恩州人也 僧問 不慕諸聖不重己靈時如何 師曰 欵出囚口 曰 便恁麽會去時如何 師曰 換手槌胸 問 如何是大善知識心 師曰 十字街頭片瓦子 辭衆日 僧問 如何是臨岐一句 師曰 有馬騎馬 無馬步行 曰 途中事作麽生 師曰 賤避貴 上堂 遣迷求悟 不知迷是悟之鉗鎚 愛聖憎凡 不知凡是聖之鑪鞴 祇如聖凡雙泯迷悟俱忘一句作麽生道 半夜彩霞籠玉像 天明峰頂五雲遮
복주(福州) 설봉(雪峰) 종연(宗演) 원각선사(圓覺禪師)
은주(恩州) 사람이다. 승문 제성(諸聖)을 흠모하지 않고 기령(己靈)을 존중하지 않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정관(情款)이 죄수의 입에서 나오는구나(欵出囚口). 가로되 바로 이렇게 이회(理會)하여 갈 때 어떻습니까. 사왈 손을 바꾸며 가슴을 친다(換手槌胸). 묻되 무엇이 이 대선지식의 마음입니까. 사왈 십자가두의 편와자(片瓦子; 子는 조사)다. 대중에게 고별하는 날(辭衆日) 승문 무엇이 이 임기(臨岐)의 1구입니까. 사왈 말이 있으면 말을 타고 말이 없으면 걸어간다(步行). 가로되 도중(途中)의 일이 어떻습니까. 사왈 천한 사람이 귀인을 피한다(賤避貴). 상당(上堂) 미(迷)를 보내고 오(悟)를 구하면서 미(迷)가 이 오(悟)의 겸추(鉗鎚)임을 알지 못한다. 성인을 좋아하고 범부를 싫어하면서(愛聖憎凡) 범부가 이 성인의 노비(鑪鞴)임을 알지 못한다. 지여(祇如) 성범(聖凡)이 쌍민(雙泯)하고 미오(迷悟)를 구망(俱忘)하는 1구를 어떻게 말하겠는가. 반야(半夜)에 채하(彩霞)가 옥상(玉像)을 휘감고(籠) 천명(天明)에 봉정(峰頂)을 오운(五雲)이 가린다(遮).
衛州王大夫
遺其名 以喪偶猒世相 遂參元豐 於言下知歸 豐一日謂曰 子乃今之陸亘也 公便掩耳 旣而回壇山之陽 縛茅自處者三載 偶歌曰 壇山裏 日何長 靑松嶺 白雲鄕 吟鳥啼猿作道場 散髮采薇歌又笑 從敎人道野夫狂
위주(衛州) 왕대부(王大夫)
그 이름을 잃었다. 배필(配匹; 偶)을 잃음으로써 세상(世相)을 싫어했다. 드디어 원풍(元豐; 淸滿)을 참(參)했고 언하에 지귀(知歸)했다. 원풍이 어느 날 일러 가로되 자네는 곧 지금의 육긍(陸亘)이다. 공(公)이 바로 귀를 막았다. 이미 그러고선 단산(壇山)의 양(陽; 南)으로 돌아가 띳집을 엮고(縛茅) 자처(自處)한 것이 3재(載)였다. 우연히 노래해 가로되 단산(壇山) 속에/ 해가 왜 긴가/ 청송의 고개(嶺)며/ 백운의 고향이다/ 읊조리는 새와 우는 원숭이(吟鳥啼猿)로 도량(道場)을 삼았다/ 산발(散髮)로 채미(采薇; 고비를 캐다)하며 노래하고 또 웃나니/ 사람이 말하되 야부(野夫)가 미쳤다고 하는 대로 좇는다.
育王振禪師法嗣
明州岳林眞禪師
上堂 古人道 初秋夏末 合有責情三十棒 岳林則不然 靈山會上 世尊拈華 迦葉微笑 正當恁麽時 好與三十棒 何故 如此太平時節 强起干戈 敎人吹大法螺 擊大法鼓 擧步則金蓮𨇾蹀 端居則寶座巍峩 梵王引之於前 香花繚繞 帝釋隨之於後 龍象騈羅 致令後代兒孫 遞相倣斆 三三兩兩 皆言出格風標 劫劫波波 未肯歸家隱坐 鼓脣搖舌 宛如鐘磬笙竽 奮臂點胸 何啻稻麻竹葦 更逞遊山翫水 撥草瞻風 人前說得石點頭 天上飛來花撲地 也好與三十棒 且道坐夏賞勞 如何酬獎 良久曰 萬寶功成何厚薄 千鈞價重自低昂
●責情; 據實情處理
●劫劫波波; 劫劫者汲汲不息也 波波者奔波流浪也
●鼓脣搖舌; 形容講說議論的樣子 多合貶義
●點胸; 一手指胸口 二自我炫耀的動作 高傲 自負
●撥草瞻風; 又曰撥草參玄 撥無明之荒草 瞻望佛祖之玄風也 又涉險路 瞻仰知識之德風也
●賞勞; 賞 通償 報償 廣雅 償 復也 ▲祖庭事苑六 賞勞 郞到切 尉也
●酬獎; 給以獎賞
명주(明州) 악림진(岳林眞) 선사
상당(上堂) 고인(古人)이 말하되 초추하말(初秋夏末)에 합당히 책정(責情)이 있어 30방(棒)이다 했거니와 악림(岳林)은 곧 그렇지 않다. 영산회상에서 세존이 염화하고 가섭이 미소하니 바로 이러한 때를 당해 좋이 30방 주어야 한다. 무슨 연고냐, 이와 같은 태평시절에 억지로 간과(干戈; 방패와 창)를 일으켜 사람으로 하여금 대법라(大法螺)를 불고 대법고(大法鼓)를 치게 했다. 거보(擧步)하면 곧 금련(金蓮)을 섭접(𨇾蹀; 걸으며 밟음)하고 단거(端居)하면 곧 보좌(寶座)가 외아(巍峩; 높은 모양)했다. 범왕(梵王)이 앞에서 인도(引導)하며 향화(香花)가 요요(繚繞; 휘감다)했고 제석이 뒤에서 따르며 용상(龍象)이 변라(騈羅; 나란히 나열)했다. 후대 아손으로 하여금 체상(遞相; 互相) 방효(倣斆; 본뜨다)하게 했나니 삼삼양량(三三兩兩)이 모두 말하기를 출격(出格)의 풍표(風標)라 하고 겁겁파파(劫劫波波)하며 귀가하여 온좌(隱坐)함을 긍정하지 않는다. 고순요설(鼓脣搖舌)함이 완연히 종경생우(鐘磬笙竽; 종ㆍ경쇠ㆍ생황ㆍ피리)와 같고 분비점흉(奮臂點胸)함이 어찌 도마죽위(稻麻竹葦)일 뿐(啻)이겠는가. 다시 유산완수(遊山翫水)와 발초첨풍(撥草瞻風)을 자랑하며(逞) 사람 앞에서 설하매 돌이 머리를 끄덕임을 얻고 천상에서 날아 온 꽃이 땅을 치거니와 또한 좋이 30방 주어야 한다. 차도(且道)하라, 좌하(坐夏; 안거)의 상로(賞勞)는 어떻게 수장(酬獎)하겠는가. 양구하고 가로되 만보(萬寶)의 공을 이루었으나 어찌하여 후박(厚薄)한가, 천균(千鈞)의 값이 무거워 스스로 저앙(低昂; 起伏)한다.
●責情; 실정(實情)에 의거해 처리함.
●劫劫波波; 겁겁(劫劫)이란 것은 급급(汲汲; 골똘하게 한 가지 일에만 정신을 쏟음)하며 쉬지 않음이며 파파(波波)란 것은 분파(奔波; 세찬 물결)가 유랑함임.
●鼓脣搖舌; 강설하고 의논하는 양자(樣子; 모양)를 형용. 다분히 폄의(貶義)를 함유했음.
●點胸; 1. 손으로 흉구(胸口; 가슴 한가운데)를 가리킴. 2. 자아(自我)가 현요(炫耀; 誇耀)하는 동작이니 고오(高傲), 자부임.
●撥草瞻風; 또 가로되 발초참현(撥草參玄)이니 무명의 거친 잡초를 헤치고 불조의 현풍(玄風)을 첨망(瞻望)함. 또 험로를 건너면서 지식의 덕풍을 첨앙함.
●賞勞; 상(賞)은 상(償)과 통함. 보상임. 광아 상(償) 복(復)이다. ▲조정사원6. 상로(賞勞) 랑도절(郞到切; 로)이니 위(尉; 慰勞할 위)임.
●酬獎; 장상(獎賞)을 줌.
招提湛禪師法嗣
秀州華亭觀音和尙
僧問 如何是佛 師曰 半夜烏龜火裏行 曰 意作麽生 師曰 虛空無背面 僧禮拜 師便打
수주(秀州) 화정(華亭) 관음화상(觀音和尙)
승문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반야(半夜)에 오귀(烏龜)가 불 속에 간다. 가로되 뜻이 무엇입니까. 사왈 허공은 배면(背面)이 없다. 중이 예배했다. 스님이 바로 때렸다.
靑原下十四世
淨慈明禪師法嗣
臨安府淨慈象禪師
越州山陰人也 上堂 古者道 一翳在眼 空花亂墜 拈拄杖曰 淨慈拈起拄杖 豈不是一翳在眼 百千諸佛總在拄杖頭 現丈六紫磨金色之身 乘其國土 遊歷十方 說一切法 度一切衆 豈不是空花亂墜 卽今莫有向拄杖未拈已前坐斷得麽 出來與淨慈相見 如無 切忌向空本無花眼本無翳處著倒 乃擲拄杖 下座
임안부(臨安府) 정자상(淨慈象) 선사
월주(越州) 산음(山陰) 사람이다. 상당(上堂) 고자(古者)가 말하되 일예(一翳)가 눈에 있으면 공화(空花)가 어지럽게 떨어진다. 주장자를 잡고 가로되 정자(淨慈)가 주장자를 집어 일으킴이 어찌 이 일예가 눈에 있음이 아니겠는가. 백천제불(百千諸佛)이 모두(總) 주장두(拄杖頭)에 있으면서 장륙(丈六)의 자마금색지신(紫磨金色之身)을 나타내고 그 국토를 타고(乘) 시방에 유력(遊歷)하면서 일체법을 설해 일체중(一切衆)을 제도함이 어찌 이 공화가 어지럽게 떨어짐이 아니겠는가. 즉금 주장자를 잡지 아니한 이전을 향해 좌단(坐斷)함을 얻을 이가 있지 않느냐. 나와서 정자(淨慈)와 상견하라. 없을 것 같으면 허공에 본래 꽃이 없고 눈에 본래 예(翳)가 없는 곳을 향해 착도(著倒; 著到와 같음)함을 절기(切忌)한다. 이에 주장자를 던지고 하좌했다.
福州雪峰隆禪師
上堂 一不成 二不是 口喫飯 鼻出氣 休云北斗藏身 說甚南山鼈鼻 家財運出任交關 勸君莫競錐頭利
복주(福州) 설봉륭(雪峰隆) 선사
상당 하나는 이루지 않음이며/ 둘은 이것이 아님이다/ 입은 끽반(喫飯)하고/ 코는 출기(出氣)한다/ 북두장신(北斗藏身)을 이르지 말지니/ 무슨 남산별비(南山鼈鼻)를 설하느냐/ 가재(家財)을 운반해 내어 교관(交關; 交易)하는 대로 맡기지만/ 그대에게 권하나니 추두(錐頭)의 이익을 다투지 말아라.
長蘆和禪師法嗣
鎭江府甘露達珠禪師
福州人 上堂 聖賢不分 古今惟一 可謂火就燥 水流濕 鑿井而飮 耕田而食 大衆 東村王老去不歸 紛紛黃葉空狼籍
진강부(鎭江府) 감로(甘露) 달주선사(達珠禪師)
복주(福州) 사람이다. 상당(上堂) 성현(聖賢)을 불분(不分)하고 고금이 유일(惟一)하다. 가위(可謂) 불은 마른 데로 나아가고(火就燥) 물은 습한 데로 흐르고(水流濕) 우물을 파서 마시고 밭을 갈아 먹는다. 대중이여 동촌(東村) 왕로(王老)가 가서 돌아오지 않고 분분(紛紛)한 황엽(黃葉)이 허공에 낭자(狼籍; 狼藉와 같음)하다.
臨安府靈隱惠淳圓智禪師
上堂 吾心似秋月 碧潭淸皎潔 乃喝曰 寒山子話墮了也 諸禪德 皎潔無塵 豈中秋之月可比 虛明絕待 非照世之珠可倫 獨露乾坤 光呑萬象 普天匝地 耀古騰今 且道是箇甚麽 良久曰 此夜一輪滿 淸光何處無
●耀古騰今; 形容事業或功績非常偉大
임안부(臨安府) 영은(靈隱) 혜순(惠淳) 원지선사(圓智禪師)
상당 오심(吾心)이 추월(秋月)과 같아 벽담(碧潭)처럼 맑고 교결(皎潔)하다. 이에 할하고 가로되 한산자(寒山子)가 화타(話墮)했다. 제선덕(諸禪德)이여, 교결(皎潔)하여 티끌이 없거늘 어찌 중추의 달로 가히 비교(比)하겠는가. 허명(虛明)하여 절대(絕待)라서 조세(照世)하는 구슬로 가히 비교(倫)하지 못한다. 건곤에 독로(獨露)하고 빛이 만상(萬象)을 삼켰고 보천잡지(普天匝地; 천지에 두루함)하고 요고등금(耀古騰今)하나니 차도(且道)하라 이것이 무엇인가. 양구하고 가로되 차야(此夜)에 일륜(一輪)이 가득하나니 청광(淸光)이 어느 곳엔들 없겠는가.
●耀古騰今; 사업 혹 공적(功績)이 비상(非常)으로 위대함을 형용함
雪峰慧禪師法嗣
臨安府淨慈月堂道昌佛行禪師
湖州寶溪吳氏 僧問 大用現前 不存軌則時如何 師曰 張家兄弟太無良 曰 恁麽則一切處皆是去也 師曰 莫唐突人好 問 心生則法生 心滅則法滅 祇如心法雙忘時 生滅在甚麽處 師曰 左手得來右手用 問 如何是從上宗門中事 師曰 一畆地 曰 便恁麽會時如何 師曰 埋沒不少 問 如何是諸佛本源 師曰 屋頭問路 曰 向上還有事也無 師曰 月下拋甎 上堂 未透祖師關 千難與萬難 旣透祖師關 千難與萬難 未透時難卽且置 旣透了因甚麽却難 放下笊籬雖得價 動他杓柄也無端
●唐突; 指橫沖直撞 冒犯 非常突然的意思
임안부(臨安府) 정자(淨慈) 월당(月堂) 도창(道昌) 불행선사(佛行禪師)
호주(湖州) 보계(寶溪) 오씨(吳氏)다. 승문 대용(大用)이 현전하여 궤칙(軌則)을 두지 않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장가(張家) 형제가 매우 선량(善良; 良)함이 없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일체처에 모두 이것이겠습니다(是去也). 사왈 사람에게 당돌(唐突)하지 말아야 좋다. 묻되 마음이 생하면 곧 법이 생하고 마음이 멸하면 곧 법이 멸한다 했거니와 지여(祇如) 마음과 법을 쌍망(雙忘)했을 때 생멸이 어느 곳에 있습니까. 사왈 왼손으로 얻어 와서 오른손으로 쓴다. 묻되 무엇이 이 종상(從上)의 종문 중의 일입니까. 사왈 1묘(畆)의 땅이다. 가로되 바로 이렇게 알 때 어떻습니까. 사왈 매몰(埋沒)함이 적지 않다. 묻되 무엇이 이 제불의 본원(本源)입니까. 사왈 옥두(屋頭; 屋邊. 屋上)에서 길을 묻는구나. 가로되 향상에 도리어 일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 달 아래 벽돌을 던지는구나. 상당(上堂) 조사관(祖師關)을 투과하지 못하면 천난(千難)과 만난(萬難)이지만 이미 조사관을 투과해도 천난과 만난이다. 투과하지 못했을 때의 난(難)은 곧 차치(且置)하고 이미 투과했거늘 무엇으로 인해 도리어 난(難)인가. 조리(笊籬)를 방하(放下)하면 비록 값을 얻지만 저(他) 작병(杓柄)을 움직임은 또한 무단(無端; 端緖가 없음)이다.
●唐突; 갑자기 부딪치며 바로 침ㆍ모범(冒犯; 일부러 법을 어기는 말이나 행동을 함)ㆍ비상의 돌연한 의사를 가리킴.
上堂 與我相似 共你無緣 打翻藥銚 傾出爐煙 還丹一粒分明在 流落人間是幾年 咄 上堂 鴈過長空 影沉寒水 鴈無遺蹤之意 水無留影之心 若能如是 正好買草鞋行脚 所以道動則影現 覺則冰生 不動不覺 正在死水裏 薦福老人出頭不得卽且置 育王今日又作麽生 向道莫行山下路 果聞猿呌斷腸聲 歲旦 上堂 擧拂子曰 歲朝把筆 萬事皆吉 忽有箇漢出來道 和尙 這箇是三家村裏保正書門底 爲甚麽將來華王座上當作宗乘 祇向他道 牛進千頭 馬入百疋
상당(上堂) 나와 상사(相似)하면 너와 함께 인연이 없다. 약조(藥銚; 약을 달이는 냄비)를 엎어(打翻) 노연(爐煙)을 기울여 낸다. 환단(還丹) 한 알이 분명히 있어 인간에 유락(流落)함이 이 몇 해이던가. 돌(咄). 상당(上堂) 기러기가 장공(長空)을 지나면서 그림자가 한수(寒水)에 잠기지만 기러기는 자취를 남길 뜻이 없고 물은 그림자를 머물 마음이 없다. 만약 능히 이와 같더라고 바로 좋이 짚신을 사서 행각해야 한다. 소이로 말하되 동(動)하면 곧 그림자가 나타나고 각(覺)하면 곧 얼음이 생겨난다 했지만 부동불각(不動不覺)하더라도 바로(正) 사수(死水) 속에 있다. 천복(薦福) 노인이 출두함을 얻지 못함은 곧 차치(且置)하고 육왕(育王; 道昌 자신을 가리킴)은 금일 또 어떠한가. 향해 말하되 산하로(山下路)를 다니지 말라 하더니 과연 원숭이가 울부짖는 단장성(斷腸聲)을 듣는다. 세단(歲旦) 상당(上堂) 불자를 들고 가로되 세조(歲朝; 歲旦)에 붓을 잡으면 만사가 모두 길하다. 홀연히 개한(箇漢)이 있어 나와 말하되 화상(和尙), 저개(這箇)는 이 삼가촌(三家村) 속에서 보정(保正; 保長)이 문에 쓴 것인데 무엇 때문에 화왕좌상(華王座上)으로 가져와서 종승(宗乘)을 지음을 감당하리오. 다만 그를 향해 말하되 소는 천 두(頭)가 나아가고 말은 백 필이 들어간다.
臨安府徑山照堂了一禪師
明州人 上堂 參玄之士 觸境遇緣 不能直下透脫者 葢爲業識深重 情妄膠固 六門未息 一處不通 絕點純淸 含生難到 直須入林不動草 入水不動波 始可順生死流 入人間世 諸人要會麽 以拄杖畫曰 祇向這裏薦取
임안부(臨安府) 경산(徑山) 조당(照堂) 요일선사(了一禪師)
명주(明州) 사람이다. 상당(上堂) 참현지사(參玄之士)가 촉경우연(觸境遇緣)하여 능히 직하(直下)에 투탈(透脫)하는 못하는 자는 대개 업식이 심중(深重)하고 정망(情妄; 情識과 망상)이 교고(膠固; 아교처럼 견고함)하기 때문이다(爲). 6문(門)을 쉬지(息) 못하면 일처(一處)가 불통(不通)하고 절점(絕點)하여 순청(純淸)하면 함생(含生)이 이르기 어렵다. 바로 모름지기 입림(入林)하여 풀을 움직이지 않고 입수(入水)하여 파도를 움직이지 않아야 비로소 가히 생사류(生死流)에 순(順)하고 인간세(人間世)에 들어간다. 제인이 알고자 하느냐, 주장자로써 긋고 가로되 다만 이 속을 향해 천취(薦取)하라.
鎭江府金山了心禪師
上堂 佛之一字孰云無 木馬泥牛滿道途 倚遍欄干春色晩 海風吹斷碧珊瑚 還有同聲相應 同氣相求者麽 百鳥不來樓閣閉 祇聞夜雨滴芭蕉
진강부(鎭江府) 금산(金山) 요심선사(了心禪師)
상당(上堂) 불(佛)이란 1자를 누가 이르되 없다 하는가/ 목마와 이우(泥牛)가 도도(道途)에 가득하다/ 온 난간에 기댄 춘색이 늦었는데/ 해풍(海風)이 푸른 산호(珊瑚)를 불어 잘랐다. 도리어 동성(同聲)으로 상응하고 동기(同氣)로 상구(相求)할 자가 있느냐. 백조(百鳥)가 오지 않는 누각이 닫혔고 다만 야우(夜雨)가 파초(芭蕉)에 떨어짐(滴)을 듣는다.
香嚴月禪師法嗣
鄧州香嚴倚松如璧禪師
撫州饒氏子 上堂 變化密移何太急 刹那念念一呼吸 八萬四千方便門 且道何門不可入 入不入 曉來雨打芭蕉濕 殷勤更問箇中人 門外堂堂相對立 聞啄木鳥鳴 說偈曰 剝剝剝 裏面有蟲外面啄 多少茫茫瞌睡人 頂後一錐猶未覺 若不覺 更聽山僧剝剝剝
등주(鄧州) 향엄(香嚴) 의송(倚松) 여벽선사(如璧禪師)
무주(撫州) 요씨(饒氏)의 아들이다. 상당(上堂) 변화하며 비밀히 이동함이 어찌하여 매우 급한가. 찰나의 염념(念念)이 일호흡(一呼吸)이다. 팔만사천 방편문(方便門)에 차도(且道)하라 어떤 문에 가히 들어가지 못하느냐. 들어감인가 들어가지 않음인가, 효래(曉來)에 비가 파초를 때려 젖었다. 은근히 다시 개중인(箇中人)에게 묻나니 문밖에 당당히 상대하여 섰다. 탁목조(啄木鳥; 딱다구리)의 울음을 듣고 설게(說偈)하여 가로되 박박박(剝剝剝)/ 이면(裏面)에 벌레가 있어 외면(外面)을 쫀다(啄)/ 다소(多少)의 망망(茫茫)한 갑수인(瞌睡人; 조는 사람)이/ 정후(頂後)의 일추(一錐)를 아직 깨닫지(覺) 못한다/ 만약 깨닫지 못한다면/ 다시 산승의 박박박(剝剝剝)을 들어라.
慧林深禪師法嗣
臨安府靈隱寂室慧光禪師
錢塘夏侯氏 僧問 飛來山色示淸淨法身 合㵎溪聲演廣長舌相 正當恁麽時 如何是雲門一曲 師曰 芭蕉葉上三更雨 曰 一句全提超佛祖 滿筵朱紫盡知音 師曰 逢人不得錯擧 上堂 不用求眞 何須息見 倒騎牛兮入佛殿 羗笛一聲天地空 不知誰識瞿曇面
●朱紫; 古代高級官員的服色或服飾 謂紅色紫色官服
임안부(臨安府) 영은(靈隱) 적실(寂室) 혜광선사(慧光禪師)
전당(錢塘) 하후씨(夏侯氏)다. 승문 비래산색(飛來山色)이 청정법신을 보이고 합간계성(合㵎溪聲)이 광장설상(廣長舌相)을 연설합니다. 바로 이런 때를 당하여 무엇이 이 운문의 일곡(一曲)입니까. 사왈 파초엽상(芭蕉葉上)에 3경(更)의 비다. 가로되 1구로 전제(全提)하니 불조를 초월하고 만연(滿筵)한 주자(朱紫)가 모두 지음(知音)입니다. 사왈 사람을 만나면 착거(錯擧)함을 얻지 말아라. 상당(上堂) 구진(求眞)을 쓰지(用) 않거늘 어찌 식견(息見)을 쓰리오(須). 소를 거꾸로 타고 불전(佛殿)에 들어간다. 강적(羗笛) 일성(一聲)에 천지가 비었나니 누가 구담(瞿曇)의 얼굴을 아는지 알지 못하겠네.
●朱紫; 고대 고급 관원의 복색 혹 복식이니 이르자면 홍색과 자색의 관복.
台州國淸愚谷妙印禪師
上堂 滿口道得底 爲甚麽不知有 十分知有底 爲甚麽滿口道不得 且道誵訛在甚麽處 若也知得 許你照用同時 明闇俱了 其或未然 道得道不得 知有不知有 南山石大蟲 解作師子吼
태주(台州) 국청(國淸) 우곡(愚谷) 묘인선사(妙印禪師)
상당(上堂) 입 가득히 말함을 얻는 이가 무엇 때문에 지유(知有)하지 못하며 십분(十分) 지유하는 이가 무엇 때문에 입 가득히 말함을 얻지 못하느냐. 차도(且道)하라, 효와(誵訛)가 어느 곳에 있느냐. 만약에 지득(知得)한다면 너에게 조용(照用)이 동시며 명암을 갖추었다고 허락하려니와 그 혹 그렇지 못하다면 말함을 얻거나 말함을 얻지 못하거나 지유(知有)하거나 지유하지 못하거나 남산의 석대충(石大蟲)이 사자후를 지을 줄 안다 하겠다.
台州國淸垂慈普紹禪師
上堂 靈雲悟桃花 玄沙傍不肯 多少癡禪和 擔雪去塡井 今春花又開 此意誰能領 端的少人知 花落春風靜
태주(台州) 국청(國淸) 수자(垂慈) 보소선사(普紹禪師)
상당(上堂) 영운이 도화(桃花)를 깨치매/ 현사가 곁에서 불긍했다/ 다소의 어리석은 선화(禪和)가/ 눈을 지고 가서 우물을 메운다/ 금춘(今春)에 꽃이 또 피었지만/ 이 뜻을 누가 능히 영회(領會; 領)하느냐/ 단적(端的; 확실)히 아는 사람이 적나니/ 꽃 떨어지자 춘풍이 고요하다.
泉州九座慧邃禪師
上堂 九座今日向孤峰絕頂駕一隻鐵船 截斷天下人要津 敎他揮篙動棹不得 有箇錦標子 且道在甚麽人手裏 拈拄杖曰 看看 向道是龍剛不信 等閑奪得始驚人
천주(泉州) 구좌(九座) 혜수선사(慧邃禪師)
상당(上堂) 구좌(九座)가 금일 고봉절정(孤峰絕頂)을 향해 1척(隻)의 철선(鐵船)을 부려(駕) 천하인의 요진(要津)을 절단하고 그로 하여금 휘고동도(揮篙動棹)함을 얻지 못하게 하겠다. 저(箇) 금표자(錦標子; 子는 조사)가 있나니 차도(且道)하라 어느 사람의 손안에 있는가. 주장자를 잡고 가로되 보아라, 보아라, 향해 말하되 이 용강(龍剛)이 불신(不信)한다 하더니 등한히 탈득(奪得)하고서야 비로소 사람을 놀라게 한다.
報恩然禪師法嗣
秀州資聖元祖禪師
僧問 紫金蓮捧千輪足 白玉毫輝萬德身 如何是佛 師曰 拖槍帶甲 曰 貫花千偈雖殊品 標月還歸理一如 如何是法 師曰 元豐條 紹興令 曰 林下雅爲方外客 人間堪作火中蓮 如何是僧 師曰 披席把椀
수주(秀州) 자성(資聖) 원조선사(元祖禪師)
승문 자금련(紫金蓮)이 천륜족(千輪足)을 받들고 백옥호(白玉毫)로 만덕신(萬德身)을 빛냅니다. 무엇이 이 불(佛)입니까. 사왈 창을 끌고 갑옷을 가졌다(拖槍帶甲). 가로되 관화(貫花)한 천게(千偈)가 비록 수품(殊品; 다른 품)이지만 표월(標月)하여 환귀(還歸)하는 이치는 일여(一如)입니다. 무엇이 이 법입니까. 사왈 원풍(元豐)의 조(條; 條文)며 소흥(紹興)의 영(令)이다. 가로되 임하(林下)에서 우아하게 방외객(方外客)이 되며 인간에서 가히(堪) 화중련(火中蓮)을 짓습니다. 무엇이 이 승입니까. 사왈 좌석을 펴고 사발을 잡는다(披席把椀).
慧林海禪師法嗣
廬山萬杉壽堅禪師
相州人 歲旦 上堂 有一人不拜歲 不迎新 寒暑不能侵其體 聖凡不能混其迹 從來鼻孔遼天 誰管多年曆日 大衆且道 此人卽今在甚麽處 卓拄杖曰 咄咄咄 沒處去
●拜歲; 迎新年之拜神祈禱活動
여산(廬山) 만삼(萬杉) 수견선사(壽堅禪師)
상주(相州) 사람이다. 세단(歲旦) 상당(上堂) 한 사람이 있어 배세(拜歲)하지 않고 영신(迎新)하지도 않나니 한서(寒暑)가 능히 그 몸을 침범하지 못하고 성범(聖凡)이 능히 그 자취에 섞이지 못한다. 종래(從來)로 비공(鼻孔)이 요천(遼天)하거늘 누가 다년(多年)의 역일(曆日; 冊曆)에 상관(相管)하겠는가. 대중이여 그래 말하라, 이 사람이 즉금 어느 곳에 있느냐. 주장자를 치고 가로되 돌돌돌(咄咄咄; 쯧쯧쯧) 처소가 없다(沒處去).
●拜歲; 신년을 맞이하여 배신(拜神)하며 기도하는 활동.
開先宗禪師法嗣
瑞州黃檗惟初禪師
常州蔡氏子 上堂 我見宗大哥 平生槁默危坐 所謂朽木形骸 未甞口角譊譊 將佛祖言敎以當門庭 祇要當人歇得十成 自然不向這殻漏子上著倒 有僧問 旣不向這殻漏子上著倒 未審如何保任 師曰 無你用心處 曰 和尙豈無方便 師曰 𨫼餠旣無汁 壓沙那有油
서주(瑞州) 황벽(黃檗) 유초선사(惟初禪師)
상주(常州) 채씨(蔡氏)의 아들이다. 상당(上堂) 내가 종대가(宗大哥)를 보매 평생 고묵(槁默; 마르고 묵묵함)하고 위좌(危坐; 端坐)하니 이른 바 후목(朽木)의 형해(形骸)며 일찍이 구각(口角; 입가)이 요뇨(譊譊; 떠듦)하지 않는다. 불조의 언교(言敎)를 가지고 문정(門庭)에 상당(相當)하려면 다만 요컨대 당인(當人)이 쉬어(歇) 십성(十成)을 얻어야 하나니 자연히 이 각루자상(殻漏子上)을 향해 착도(著倒; 著到)하지 않는다. 어떤 중이 묻되 이미 이 각루자상을 향해 착도하지 않으면 미심하오니 어떻게 보임(保任)합니까. 사왈 네가 용심(用心)할 곳이 없다. 가로되 화상이 어찌 방편이 없겠습니까. 사왈 오병(𨫼餠; 燔鐵의 떡)에 이미 즙(無汁)이 없거늘 압사(壓沙)에 어찌 기름이 있겠는가.
潭州嶽麓海禪師
僧問 進前三步時如何 師曰 撞頭磕額 曰 退後三步時如何 師曰 墮坑落壍 曰 不進不退時如何 師曰 立地死漢
담주(潭州) 악록해(嶽麓海) 선사
승문 세 걸음 진전(進前)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당두개액(撞頭磕額; 머리를 치고 이마를 두드림)한다. 가로되 세 걸음 퇴후(退後)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타갱낙참(墮坑落壍; 구덩이에 떨어짐)한다. 가로되 부진불퇴(不進不退)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입지(立地)의 사한(死漢)이다.
雪峰演禪師法嗣
福州西禪慧舜禪師
眞定府人 上堂 五日一參 三八普說 千說萬說 橫說竪說 忽有箇漢出來道 說卽不無 爭奈三門頭兩箇不肯 山僧卽向他道 瞎漢若不得他兩箇 西禪大似不遇知音
●千說萬說; 指極多言之樣子
복주(福州) 서선(西禪) 혜순선사(慧舜禪師)
진정부(眞定府) 사람이다. 상당(上堂) 5일에 1참하고 3, 8에 보설하고 천설만설(千說萬說)하고 횡설수설(橫說竪說)한다. 홀연히 개한(箇漢)이 있어 나와서 말하되 설은 곧 없지 않으나 삼문두(三門頭)의 두 개(두 개의 금강역사)가 불긍함은 어찌하리오. 산승이 곧 그를 향해 말하되 눈먼 자(瞎漢)야, 만약 저 두 개를 얻지 못한다면 서선(西禪)이 지음(知音)을 만나지 못함과 매우 흡사하리라.
●千說萬說; 말이 극히 많은 양자(樣子)를 가리킴.
靑原下十五世
雪竇明禪師法嗣
密州𡺸山寧禪師
上堂 有時孤峰頂上嘯月眠雲 有時大洋海中翻波走浪 有時十字街頭七穿八穴 諸人還相委悉麽 樟樹花開盛 芭蕉葉最多
●密州; 今山東省諸城 膠縣 在山東東南
●七穿八穴; 逆順縱橫自由自在 通達無障礙之意 七或八表示多數 類似用語尙有七縱八橫 七通八達 七顚八倒 七凹八凸等
밀주(密州) 기산녕(𡺸山寧) 선사
상당(上堂) 어떤 때는 고봉정상(孤峰頂上)에서 소월면운(嘯月眠雲; 달을 읊고 구름에 자다)하고 어떤 때는 대양해중(大洋海中)에서 번파주랑(翻波走浪; 파도에 뒤집히고 물결에 달림)하고 어떤 때는 십자가두에서 칠천팔혈(七穿八穴)한다. 제인이 도리어 서로 위실(委悉; 자세히 알다)하느냐. 장수(樟樹; 녹나무)는 꽃이 피어 무성하고 파조는 잎이 가장 많다.
●密州; 지금의 산동성 제성ㆍ교현이니 산동 동남에 있음.
●七穿八穴; 역순종횡(逆順縱橫)하며 자유자재하고 통달하여 장애가 없음의 뜻. 7 혹 8은 다수를 표시함. 유사용어에 오히려 칠종팔횡ㆍ칠통팔달ㆍ칠전팔도ㆍ칠요팔철(七凹八凸) 등이 있음.
淨慈昌禪師法嗣
臨安府五雲悟禪師
苕溪人也 上堂 月堂老漢道 行不見行 是箇甚麽 坐不見坐 是箇甚麽 著衣時不見著衣 是箇甚麽 喫飯時不見喫飯 是箇甚麽 山僧雖與他同牀打睡 要且各自做夢 何故 行見行 坐見坐 著衣時見著衣 喫飯時見喫飯 無有不見底道理 亦無箇是甚麽 諸人且道 老漢底是 五雲底是 拈拄杖卓一下曰 桃紅李白薔薇紫 問著春風總不知
임안부(臨安府) 오운오(五雲悟) 선사
초계(苕溪) 사람이다. 상당(上堂) 월당(月堂; 道昌의 호) 노한이 말하되 다녀도 다님을 보지 않나니 이것이 무엇인가(是箇甚麽). 앉아도 앉음을 보지 않나니 이것이 무엇인가. 착의(著衣)할 때 착의를 보지 않나니 이것이 무엇인가. 끽반(喫飯)할 때 끽반을 보지 않나니 이것이 무엇인가. 산승이 비록 그와 동상(同牀)에서 타수(打睡; 자다)했지만 요차(要且; 도리어. 종내) 각자 꿈을 지었다(做夢). 무슨 연고냐, 다니면 다님을 보고 앉으면 앉음을 보고 착의할 때 착의를 보고 끽반할 때 끽반을 보나니 불견(不見)의 도리가 있지 않고 또한 이것이(箇) 이 무엇인가 함이 없다. 제인은 그래 말하라, 노한의 것이 옳으냐 오운(五雲)의 것이 옳으냐. 주장자를 잡아 한 번 치고 가로되 도화 붉고 오얏 희고 장미 붉음을 춘풍에게 문착(問著)하매 모두 알지 못하더라.
靈隱光禪師法嗣
臨安府中竺癡禪元妙禪師
婺州王氏 僧問 如何是截斷衆流句 師曰 佛祖開口無分 曰 如何是函蓋乾坤句 師曰 匝地普天 曰 如何是隨波逐浪句 師曰 有時入荒草 有時上孤峰 上堂 黃昏雞報曉 半夜日頭明 驚起雪師子 瞠開紅眼睛 上堂 去年梅 今歲柳 顔色馨香 喝一喝 良久曰 若不得這一喝 幾乎道著依舊 且道道著後如何 眼睛突出
임안부(臨安府) 중축(中竺) 치선(癡禪) 원묘선사(元妙禪師)
무주(婺州) 왕씨다. 승문 무엇이 이 절단중류구(截斷衆流句)입니까. 사왈 불조라도 입을 열 분한이 없다. 가로되 무엇이 이 함개건곤구(函蓋乾坤句)입니까. 사왈 잡지보천(匝地普天; 땅과 하늘에 두루함)한다. 가로되 무엇이 이 수파축랑구(隨波逐浪句)입니까. 사왈 어떤 때는 황초(荒草)에 들어가고 어떤 때는 고봉(孤峰)에 오른다. 상당(上堂) 황혼에 닭이 새벽을 알리고/ 반야(半夜)에 일두(日頭; 頭는 조사)가 밝다/ 설사자(雪師子)를 경기(驚起)하매/ 붉은 눈동자를 당개(瞠開; 부릅뜨다)한다. 상당(上堂) 거년(去年)엔 매화며 금세(今歲)엔 버들이니 안색(顔色)이 형향(馨香; 향기로움)하다. 할로 한 번 할했다. 양구하고 가로되 만약 이 1할을 얻지 못했다면 거의(幾乎) 말함(道著)이 의구할 뻔했다. 차도(且道)하라, 말한 후 어떠한가. 안정(眼睛; 눈동자)이 돌출(突出)했다.
圓覺曇禪師法嗣
撫州靈巖圓日禪師
上堂 悟無不悟 得無不得 九年面壁空勞力 三脚驢兒跳上天 泥牛入海無蹤跡 爲甚如此 九九八十一
무주(撫州) 영암(靈巖) 원일선사(圓日禪師)
상당 오(悟)하면 불오(不悟)가 없고 득(得)하면 부득(不得)이 없거늘 9년 면벽하며 헛되이 노력했다. 세 다리의 나귀(驢兒)가 하늘에 뛰어오르고 이우(泥牛)가 입해(入海)하여 종적이 없다. 무엇 때문에 이와 같은가, 구구는 팔십일이다.
嶽麓海禪師法嗣
荊門軍玉泉思達禪師
僧問 如何是一印印空 師曰 萬象收歸古鑑中 曰 如何是一印印水 師曰 秋蟾影落千江裏 曰 如何是一印印泥 師曰 細觀文彩未生時
형문군(荊門軍) 옥천(玉泉) 사달선사(思達禪師)
승문 무엇이 이 일인(一印)으로 허공에 인(印)을 침입니까. 사왈 만상(萬象)을 거두어 고감(古鑑) 가운데로 돌아간다. 가로되 무엇이 이 일인으로 물에 인을 침입니까. 사왈 추섬(秋蟾; 秋月)의 그림자가 천강(千江) 속에 떨어졌다. 가로되 무엇이 이 일인으로 진흙에 인을 침입니까. 사왈 문채가 나지 아니한 때를 세관(細觀)하라.
靑原下十六世
中竺妙禪師法嗣
溫州光孝巳菴深禪師
本郡人也 上堂曰 龍生龍鳳生鳳 老鼠養兒㳂屋棟 達磨大師不會禪 歷魏遊梁乾打閧 上堂 一九二九 相逢不出手 三九二十七 籬頭吹觱栗 翻憶小釋迦 雙手抱屈膝 知不知 實不實 摩訶般若波羅蜜 上堂 維摩默然 普賢廣說 歷代聖人互呈醜拙 君不見 落花三月子規啼 一聲聲是一點血 上堂 風蕭蕭 葉飄飄 雲片片 水茫茫 江干獨立向誰說 天外飛鴻三兩行
●乾打閧; 徒然哄鬧
●籬頭; 籬笆 頭 後綴
온주(溫州) 광효(光孝) 사암심(巳菴深; 어떤 책엔 己菴深으로 지었음) 선사
본군(本郡) 사람이다. 상당하여 가로되 용이 용을 낳고 봉이 봉을 낳나니/ 노서(老鼠)가 새끼를 길렀더니 가옥의 마룻대(棟)를 따라간다(㳂)/ 달마대사는 선(禪)을 알지 못하나니/ 위(魏)를 지나고 양(梁)에 노닐며 건타홍(乾打閧)이다. 상당(上堂) 일구이구(一九二九) 상봉하여 출수(出手)하지 않는다. 삼구 이십칠 농두(籬頭)에서 필률(觱栗; 피리의 일종)을 분다. 도리어(翻) 소석가(小釋迦; 仰山慧寂)를 추억하노니 쌍수(雙手)로 굽힌 무릎을 안았다. 아느냐 알지 못하느냐, 진실이냐 진실이 아니냐, 마하반야바라밀. 상당(上堂) 유마는 묵연했고 보현은 광설(廣說)했고 역대 성인이 서로(互) 추졸(醜拙)을 보였다(呈). 그대가 보지 못하느냐, 꽃 떨어지는 3월에 자규(子規)가 우니 한 소리 소리가 이 일점(一點)의 피다. 상당(上堂) 바람은 소소(蕭蕭)하고 잎은 표표(飄飄)하고 구름은 편편(片片)이며 물은 망망(茫茫)하다. 강간(江干; 강변. 江岸)에 홀로 서서 누구를 향해 설할까, 하늘 밖에 비홍(飛鴻)이 두세 줄이다.
●乾打閧; 도연(徒然; 공연)히 홍뇨(哄鬧; 떠들썩함)함.
●籬頭; 이파(籬笆; 대나 나뭇가지로 엮은 울타리). 두는 후철.
五燈會元卷第十六
오등회원 주역(五燈會元 註譯) 주문 제본
2024. 12월 말 번역 필. 5책 1질. 합4,615쪽. 本註와 補註 총 6,500 目. 미출간. 원문과 출처가 분명한 한문 주석을 넣고 다시 전체를 한글 번역. 주문 요청이 있을 시 인쇄소 에 부탁해 5일 내에 복사 제
pyungsimsa.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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