滁州琅邪永起禪師
襄陽人也 僧問 庵內人 爲甚麽不見庵外事 師曰 東家點燈 西家暗坐 曰 如何是庵內事 師曰 眼在甚麽處 曰 三門頭合掌 師曰 有甚交涉 乃曰 五更殘月落 天曉白雲飛 分明目前事 不是目前機 旣是目前事 爲甚麽不是目前機 良久曰 此去西天路 迢迢十萬餘 上堂 良久拊掌一下曰 阿呵呵 阿呵呵 還會麽 法法本來法 遂拈拄杖曰 這箇是山僧拄杖 那箇是本來法 還定當得麽 卓一下
저주(滁州) 낭야(琅邪) 영기선사(永起禪師)
양양(襄陽) 사람이다. 승문 암내(庵內)의 사람이 무엇 때문에 암외(庵外)의 일을 보지 못합니까. 사왈 동가(東家)에서 점등(點燈)하고 서가(西家)에 암좌(暗坐)했다. 가로되 무엇이 이 암내의 일입니까. 사왈 눈이 어느 곳에 있느냐. 가로되 삼문두(三門頭)에서 합장합니다. 사왈 무슨 교섭이 있으리오. 이에 가로되 5경(更)에 잔월(殘月)이 떨어졌고/ 천효(天曉)에 백운이 난다(飛)/ 분명히 목전의 일이지만/ 이 목전의 기(機)가 아니다. 이미 이 목전의 일이거늘 무엇 때문에 이 목전의 기가 아닌가. 양구하고 가로되 여기에서 서천(西天)으로 가는 길이 멀고 멀어 십만여다. 상당 양구했다가 한 번 부장(拊掌)하고 가로되 아하하(阿呵呵), 아하하. 도리어 아느냐. 법법(法法)이 본래법이다. 드디어 주장자를 잡고 가로되 저개(這箇)는 이 산승의 주장자다. 나개(那箇)가 이 본래법인가. 도리어 정당(定當; 辨識)함을 얻겠는가. 한 번 쳤다.
英州保福殊禪師
僧問 諸佛未出世時如何 師曰 山河大地 曰 出世後如何 師曰 大地山河 曰 恁麽則一般也 師曰 敲甎打瓦 問 如何是和尙家風 師曰 椀大椀小 曰 客來將何祇待 師曰 一杓兩杓 曰 未飽者作麽生 師曰 少喫少喫 問 如何是大道 師曰 閙市裏 曰 如何是道中人 師曰 一任人看 問 如何是禪 師曰 秋風臨古渡 落日不堪聞 曰 不問這箇禪 師曰 你問那箇禪 曰 祖師禪 師曰 南華塔外松陰裏 飮露吟風又更多 問 如何是眞正路 師曰 出門看堠子 乃曰 釋迦何處滅俱尸 彌勒幾曾在兜率 西覓普賢好慚愧 北討文殊生受屈 坐壓毗盧額汗流 行築觀音鼻血出 回頭摸著箇匾擔 却道好箇木牙笏 喝一喝 下座
●敲甎打瓦; 同敲磚打瓦 對沈埋于言句問答者的譏斥語 上已出
●南華塔; 宋高僧傳八 太平興國三年(978) 今上勅重建塔 改爲南華寺 ▲新脩科分六學僧傳四 宋太平興國三年 詔易曹溪法泉寺爲南華寺
●堠子; 古代的路標 築在路旁 用以分界或計里數的土壇 每五里築單堠 十里築雙堠
●俱尸; 俱尸那 又曰俱尸羅 拘尸那 拘夷那竭 究施 拘尸那竭 拘尸那揭羅 城名 譯言角城 茅城等 是世尊入滅之處 ▲玄應音義二十一 拘尸 舊經中或作拘夷那竭 又作究施城 那者 以梵言那伽囉 此云城也 譯言上茅城者 多有好茅故也 ▲西域記六 拘尸那揭羅國(以上西域記文) 拘尸那揭羅 譯曰上茅 或不與矩奢揭羅補羅混同 上茅城爲摩揭陀舊城之名
영주(英州) 보복수(保福殊) 선사
승문 제불이 출세하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산하대지다. 가로되 출세한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대지산하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일반(一般)입니다. 사왈 벽돌을 두드리고 기와를 때리는구나(敲甎打瓦).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 사발이 크기도 하고 사발이 작기도 하다(椀大椀小). 가로되 객이 오면 무엇을 가지고 지대(祇待)합니까. 사왈 한 구기 두 구기다(一杓兩杓). 가로되 배부르지 못한 자는 어떻습니까. 사왈 조금 먹고 조금 먹었다(少喫少喫). 묻되 무엇이 이 대도(大道)입니까. 사왈 요시(閙市) 속이다. 가로되 무엇이 이 도중인입니까. 사왈 사람들이 보는 대로 일임한다. 묻되 무엇이 이 선(禪)입니까. 사왈 추풍이 고도(古渡)에 임했나니 낙일(落日)을 차마 듣지 못한다. 가로되 저개(這箇; 이) 선(禪)을 물은 게 아닙니다. 사왈 네가 나개(那箇; 어느) 선을 물었느냐. 가로되 조사선입니다. 사왈 남화탑(南華塔) 밖의 소나무 그늘 속에서 이슬을 마시고 바람을 읊은 게 또 다시 많다. 묻되 무엇이 이 진정로(眞正路)입니까. 사왈 출문하면 후자(堠子)를 본다. 이에 가로되 석가가 어찌 구시(俱尸)에 거처하며 멸(滅)했겠으며/ 미륵이 어찌(幾) 일찍이 도솔(兜率)에 있겠는가/ 서쪽으로 보현을 찾으니 좋이 부끄럽고(好慚愧)/ 북쪽으로 문수를 찾으니(討) 수굴(受屈)함을 낸다(生)/ 비로(毗盧)를 앉아 누르니 이마에 땀을 흘리고/ 관음을 다니며 때리니(築) 코에 피가 나온다/ 머리를 돌려 저(箇) 편담(匾擔)을 모착(摸著)하고는/ 도리어 말하되 호개(好箇)의 목아(木牙)의 홀(笏)이다. 할로 한 번 할하고 하좌했다.
●敲甎打瓦; 고전타와(敲磚打瓦)와 같음. 언구의 문답에 빠지고 묻힌 자에 대한 기척어(譏斥語; 꾸짖으며 배척하는 말). 위에 이미 나왔음.
●南華塔; 송고승전8 태평흥국 3년(978) 금상(今上)이 칙명하여 탑을 중건하고 고쳐 남화사라 했다. ▲신수과분육학승전4. 송 태평흥국 3년 조칙으로 조계 법천사(法泉寺)를 고쳐 남화사라 했다.
●堠子; 고대의 노표(路標)니 길 옆에 축조해 두며 써서 분계(分界)나 혹 이수(里數)를 계산한 토단(土壇). 매 5리마다 단후(單堠)를 축조했고 10리마다 쌍후(雙堠)를 축조했음.
●俱尸; 구시나(俱尸那; 梵 Kusinagara)니 또 가로되 구시라ㆍ구시나(拘尸那)ㆍ구이나갈ㆍ구시(究施)ㆍ구시나갈ㆍ구시나갈라임. 성 이름이니 번역해 말하면 각성(角城)ㆍ모성(茅城) 등임. 이는 세존이 입멸한 곳. ▲현응음의21. 구시(拘尸) 구경(舊經) 중에 혹 구이나갈(拘夷那竭)로 지었으며 또 구시성(究施城)으로 지었다. 나(那)란 것은 범언으로 나가라(那伽囉)니 여기에선 이르되 성이다. 번역해 말하되 상모성(上茅城)이란 것은 좋은 모가 많이 있는 연고이다. ▲서역기6. 구시나갈라국(拘尸那揭羅國; 이상이 서역기의 글). 구시나갈라는 번역해 가로되 상모(上茅)니 혹 구사갈라보라와 혼동해서는 안됨. 상모성은 마갈타의 옛 성의 이름임.
袁州崇勝院珙禪師
上堂 擧石鞏張弓架箭接機公案 頌曰 三十年來握箭弓 三平纔到擘開胸 半箇聖人終不得 大顚弦外幾時逢
원주(袁州) 숭승원(崇勝院) 공선사(珙禪師)
상당(上堂) 석공(石鞏)이 장궁가전(張弓架箭; 활을 벌려 화살을 架設)하고 접기(接機)한 공안을 들고 송왈 삼십 년 래에 전궁(箭弓)을 움켜쥐고/ 삼평(三平)이 겨우 이르자 가슴을 헤쳐(擘) 열었다/ 반개(半箇)의 성인(聖人)을 마침내 얻지 못했거늘/ 대전(大顚)의 현외(弦外)에서 어느 때 만나겠는가.
提刑郭祥正
字功甫 號淨空居士 志樂泉石 不羨紛華 因謁白雲 雲上堂曰 夜來枕上作得箇山頌 謝功甫大儒 廬山二十年之舊 今日遠訪白雲之勤 當須擧與大衆 請已後分明擧似諸方 此頌豈唯謝功甫大儒 直要與天下有鼻孔衲僧脫却著肉汗衫 莫言不道 乃曰 上大人 丘乙己 化三千 七十士 爾小生 八九子 佳作仁 可知禮也 公切疑 後聞小兒誦之 忽有省 以書報雲 雲以偈答曰 藏身不用縮頭 斂跡何須收脚 金烏半夜遼天 玉兔趕他不著
제형(提刑) 곽상정(郭祥正)
자가 공보(功甫)며 호가 정공거사(淨空居士)다. 의지(意志)가 천석(泉石)을 좋아했고 분화(紛華)를 부러워하지 않았다. 인하여 백운을 참알했는데 백운이 상당(上堂)해 가로되 야래(夜來)에 침상(枕上)에서 저(箇) 산송(山頌)을 작득(作得)했으니 공보(功甫) 대유(大儒)에게 감사한다. 여산(廬山) 이십 년의 고구(故舊; 舊)가 금일 백운을 원방(遠訪)한 부지런함이다. 마땅히 꼭 대중에게 들어 줄지니(擧與) 청컨대 이후에 분명히 제방에 들어 보여라. 차송(此頌)이 어찌 오직 공보 대유에게만 감사함이겠는가. 바로 천하의 비공(鼻孔)이 있는 납승에게 주어 살갗에 붙은 한삼(著肉汗衫)을 벗어버리게 함을 요하나니 말하지 않았다고 말하지 말아라. 이에 가로되 상대인(上大人) 구을기(丘乙己) 화삼천(化三千) 칠십사(七十士) 이소생(爾小生) 팔구자(八九子) 가작인(佳作仁) 가지례야(可知禮也). 공(公)이 간절히 의심했는데 후에 소아(小兒)가 이를 외움을 듣고 홀연히 성찰이 있었다. 글로써 백운에게 알렸다. 백운이 게로써 답왈 장신(藏身)하면서 축두(縮頭)를 쓰지 말지니/ 염족(斂跡; 자취를 거두다)하면서 어찌 수각(收脚)을 쓰겠는가(須)/ 금오(金烏)가 반야(半夜)에 요천(遼天)하매/ 옥토(玉兔)가 그것을 쫓아가지 못한다(趕他不著).
元祐中往衢之南禪 謁泉萬卷 請陞座 公趨前拈香曰 海邊枯木 入手成香 爇向爐中 橫穿香積如來鼻孔 作此大事 須是對衆白過始得 雲居老人有箇無縫布衫 分付南禪 禪師著得不長不短 進前則諸佛讓位 退步則海水澄波 今日嚬呻 六種震動 遂召曰 大衆 還委悉麽 有意氣時添意氣 不風流處也風流 泉曰 遞相鈍置 公曰 因誰致得
원우(元祐; 1086-1094) 중 구(衢)의 남선(南禪)으로 가서 천만권(泉萬卷; 法泉)을 참알해 승좌(陞座)를 청했다. 공(公)이 앞으로 나아가(趨; 行也) 염향(拈香)하고 가로되 해변(海邊)의 고목(枯木)이 손에 들어와 향(香)을 이루었으니 노중(爐中)을 향해 사루어 향적여래(香積如來)의 비공(鼻孔)을 횡천(橫穿)했습니다. 이 대사(大事)를 지었으니 모름지기 이는 대중(對衆)하여 알려야(白過; 過는 조사) 비로소 옳습니다. 운거(雲居; 曉舜) 노인이 저(箇) 무봉포삼(無縫布衫)이 있어 남선(南禪; 法泉)에게 분부(分付)했고 선사가 착득(著得)하매 부장부단(不長不短)하였으며 진전(進前)하면 곧 제불이 양위(讓位)하고 퇴보(退步)하면 곧 해수(海水)가 징파(澄波; 파도를 맑힘)합니다. 금일 빈신(嚬呻)하면 육종(六種)으로 진동(震動)합니다. 드디어 불러 가로되 대중이여, 도리어 위실(委悉)합니까. 의기(意氣)가 있을 때 의기를 더하고 풍류하지 않을 곳에서 또한 풍류입니다. 천왈(泉曰) 체상(遞相) 둔치(鈍置)하는구나. 공왈(公曰) 누구로 인해 치득(致得; 이르게 하다)했습니까.
崇寧初 到五祖 命祖陞座 公趨前拈香曰 此一瓣香 爇向爐中 供養我堂頭法兄禪師 伏願於方廣座上 擘開面門 放出先師形相 與他諸人描邈 何以如此 白雲巖畔舊相逢 往日今朝事不同 夜靜水寒魚不食 一爐香散白蓮峯 祖遂云 曩謨薩怛哆鉢囉野 恁麽恁麽 幾度白雲谿上望黃梅 華向雪中開 不恁麽不恁麽 嫰柳垂金線 且要應時來 不見龐居士問馬大師云 不與萬法爲侶者 是甚麽人 大師云 待汝一口吸盡西江水 卽向汝道 大衆 一口吸盡西江水 萬丈深潭窮到底 掠彴不是趙州橋 明月淸風安可比
●一瓣香; 又作一炷香 瓣者 瓜瓣之意 香之形狀似瓜瓣 故稱一瓣香 又以瓣爲片之意 故稱一瓣香
숭녕(崇寧; 1102-1106) 초 오조(五祖)에 이르러 조(祖; 法演)에게 승좌(陞座)를 명(命)했다. 공(公)이 앞으로 가서(趨) 염향(拈香)하고 가로되 이 일판향(一瓣香)을 노중(爐中)을 향해 사루어 나의 당두(堂頭) 법형(法兄) 선사에게 공양합니다. 복원(伏願)컨대 방광(方廣; 方正廣大)의 좌상(座上)에서 면문(面門)을 벽개(擘開)하여 선사(先師)의 형상(形相)을 방출하여 저(他) 제인이 묘막(描邈; 描畫)하게 하여 주십시오. 무엇 때문에(何以) 이와 같은가, 백운암반(白雲巖畔)에서 옛적(舊)에 상봉했거니와/ 왕일(往日)과 금조(今朝)의 일이 부동(不同)하다/ 밤은 고요하고 물은 차서 고기가 먹지 않나니/ 일로(一爐)의 향이 백련봉(白蓮峯)에 흩어진다. 조(祖)가 드디어 이르되 낭모살달치발라야(曩謨薩怛哆鉢囉野). 이러하고 이러함이여, 몇 차례나 백운의 계상(谿上)에서 황매(黃梅)를 바라보매 꽃이 설중(雪中)을 향해 피었던가. 이러하지 않고 이러하지 않음이여, 눈류(嫰柳; 어린 버들. 고운 버들)가 금선(金線)을 드리우니 다만(且) 시기에 응해 옴을 요한다. 보지 못하느냐, 방거사가 마대사에게 물어 이되 만법과 더불어 짝하지 않는 자는 이 어떤 사람입니까. 대사가 이르되 네가 한입에 서강수(西江水)를 마셔 없앰을 기다렸다가 곧 너를 향해 말하겠다. 대중이여, 한입에 서강수를 마셔 없애고/ 만장(萬丈)의 심담(深潭)에 바닥까지 궁구해 이른다/ 약작(掠彴; 외나무 다리)은 이 조주교(趙州橋)가 아니니/ 명월청풍으로 어찌(安) 가히 비교하리오.
●一瓣香; 또 일주향(一炷香)으로 지음. 판(瓣; 오이의 씨)이란 것은 과판(瓜瓣; 오이의 씨)의 뜻. 향의 형상이 과판과 같은지라 고로 호칭이 일판향임.
後又到保寧 亦請陞座 公拈香曰 法皷旣鳴 寶香初爇 楊岐頂𩕳門 請師重著楔 保寧卓拄杖一下曰 著楔已竟 大衆證明 又卓一下 便下座 又到雲居 請佛印陞座 公拈香曰 覺地相逢一何早 鶻臭布衫今脫了 要識雲居一句玄 珍重後園驢喫草 召大衆曰 此一瓣香 熏天炙地去也 印曰 今日不著便 被這漢當面塗糊 便打 乃曰 謝公千里來相訪 共話東山竹徑深 借與一龍騎出洞 若逢天旱便爲霖 擲拄杖下座 公拜起 印曰 收得龍麽 公曰 已在這裏 印曰 作麽生騎 公擺手作舞便行 印拊掌曰 祇有這漢 猶較些子
후에 또 보녕(保寧; 仁勇)에 이르러 또한 승좌를 청했다. 공(公)이 염향(拈香)하고 가로되 법고(法皷)를 이미 울렸고 보향(寶香)을 처음 태웠다. 양기(楊岐)의 정녕(頂𩕳)의 문(門)에 청컨대 스님이 거듭 말뚝을 치십시오(著楔). 보녕이 주장자를 한 번 치고(卓) 가로되 착설(著楔)을 이미 마쳤으니 대중이 증명하라. 또 한 번 치고 바로 하좌했다. 또 운거(雲居)에 이르러 불인(佛印; 了元)에게 승좌를 청했다. 공(公)이 염향(拈香)해 가로되 각지(覺地)에서 상봉함이 한결같이 어찌 이른가(一何早)/ 골취(鶻臭)의 포삼(布衫)을 여금에 이미 벗었다/ 운거의 1구(一句)의 현(玄)을 알고자 한다면/ 진중(珍重) 후원(後園)에 나귀가 풀을 먹는다. 대중을 부르고 가로되 이 일판향(一瓣香)이 훈천자지(熏天炙地)하여 갈 것입니다. 인왈(印曰) 금일 편의를 만나지 못해(不著便) 저한(這漢)이 당면(當面)에서 도호(塗糊)함을 입었다. 바로 때렸다. 이에 가로되 공(公)이 천 리에서 와 상방(相訪)함에 감사하나니/ 동산(東山)의 죽경(竹徑)의 깊음을 공화(共話)한다/ 일룡(一龍)을 빌려 주어 타고 출동(出洞)하나니/ 만약 천한(天旱; 가뭄)을 만나면 바로 장마(霖)가 되리라. 주장자를 던지고 하좌했다. 공(公)이 예배하고 일어나자 인왈(印曰) 용을 수득(收得)했는가. 공왈(公曰) 이미 저리(這裏)에 있습니다. 인왈 어떻게 타겠는가. 공이 손을 흔들며(擺) 춤추고 바로 갔다. 불인이 부장(拊掌)하고 가로되 다만 저한(這漢)이 있어 오히려 조금은 상당하다(較些子).
保寧勇禪師法嗣
郢州月掌山壽聖智淵禪師
僧問 祖意西來卽不問 如何是一色 師曰 目前無闍黎 此間無老僧 曰 旣不如是 如何曉會 師曰 領取鉤頭意 莫認定盤星 乃曰 凡有問答 一似擊石迸火 流出無盡法財 三草二木 普霑其潤 放行也 雲生谷口 霧罩長空 把定也 碧眼胡僧 亦須罔措 壽聖如斯擧唱 猶是化門 要且未有衲僧巴鼻 敢問諸人 作麽生是衲僧巴鼻 良久曰 布針開兩眼 君向那頭看
영주(郢州) 월장산(月掌山) 수성(壽聖) 지연선사(智淵禪師)
승문(僧問) 조의서래(祖意西來)는 곧 묻지 않습니다. 무엇이 이 일색(一色)입니까. 사왈 목전에 사리(闍黎)가 없고 차간(此間)에 노승이 없다. 가로되 이미 이와 같지 않으니 어떻게 효회(曉會; 환히 알다)합니까. 사왈 구두의(鉤頭意; 갈고리의 뜻)를 영취(領取; 會取)하고 정반성(定盤星)을 인정하지 말아라. 이에 가로되 무릇 문답이 있음은 격석(擊石)하매 병화(迸火; 불똥이 흩어짐)함과 일사(一似; 一如)하여 무진(無盡)한 법재(法財)를 유출(流出)해 삼초이목(三草二木)이 널리 그 윤택에 젖는다(霑). 방행(放行)함엔 구름이 곡구(谷口)에 생겨나고 안개가 장공(長空)을 덮으며(罩) 파정(把定)함엔 벽안호승(碧眼胡僧)도 또한 꼭 망조(罔措)한다. 수성(壽聖)이 이와 같이(如斯) 거창(擧唱)함은 오히려 이 화문(化門; 敎化門)이니 요차(要且; 도리어. 종내) 납승의 파비(巴鼻)가 있지 않다. 감히 제인에게 묻나니 무엇이 이 납승의 파비인가. 양구하고 가로되 포침(布針)이 양안(兩眼)을 열었나니 그대가 나두(那頭; 어느 쪽)를 향해 보겠는가.
安吉州烏鎭壽聖院楚文禪師
上堂 拈拄杖曰 華藏木楖栗 等閑亂拈出 不是不惜手 山家無固必 點山山動搖 攪水水波溢 忽然把定時 事事執法律 要橫不得橫 要屈不得屈 驀召大衆曰 莫謂棒頭有眼明如日 上面光生盡是漆 隨聲敲一下 上堂 一叉一劄 著骨連皮 一搦一擡 粘手綴脚 電光石火 頭垂尾垂 劈箭追風 半生半死 撞著磕著 討甚眉毛 明頭暗頭 是何眼目 總不恁麽 正在半途 設使全機 未至涯岸 直饒淨躶躶 赤灑灑 沒可把 尙有廉纖 山僧恁麽道 且道口好作甚麽 良久曰 嘻 留取喫飯
●固必; 固定不變之規
안길주(安吉州) 오진(烏鎭) 수성원(壽聖院) 초문선사(楚文禪師)
상당(上堂) 주장자를 잡고 가로되 화장(華藏)이 목즐률(木楖栗; 즐률나무로 만든 주장자)을/ 등한히 어지럽게 염출함은/ 이는 손을 아끼지 않음이 아니라/ 산가(山家)에 고필(固必)이 없어서이다/ 산에 점 찍으면 산이 동요(動搖)하고/ 물을 휘저으면(攪) 물의 파도가 넘치고(溢)/ 홀연히 파정(把定)할 때/ 사사(事事)마다 법률을 가진다/ 가로놓으려 하면 가로놓음을 얻지 못하고/ 구부리려고 하면 구부림을 얻지 못한다. 갑자기 대중을 부르고 가로되 방두(棒頭)에 눈이 있어 밝기가 해와 같다고 이르지 말지니 상면(上面)에 빛이 나되 모두 이 칠(漆)이다. 소리 따라 한 번 두드렸다. 상당(上堂) 일차일차(一叉一劄; 한 번 작살로 찌르고 한 번 찌르다)하니 착골연피(著骨連皮; 뼈에 붙고 가죽에 닿다)하고 일닉일대(一搦一擡; 한 번 누르고 한 번 들어올림)하니 점수철각(粘手綴脚; 손에 붙고 발에 닿다)한다. 전광석화(電光石火)라 두수미수(頭垂尾垂)하고 벽전(劈箭)이 추풍(追風)하는지라 반생반사(半生半死)다. 당착개착(撞著磕著)하매 무슨 눈썹을 찾느냐(討甚眉毛), 명두암두(明頭暗頭)니 이 무슨 안목인가. 모두 이러하지 않으면 바로 반도(半途)에 있고 설사(設使) 전기(全機)라도 애안(涯岸)에 이르지 못한다. 직요(直饒) 정나라(淨躶躶)하고 적쇄쇄(赤灑灑)하고 가히 잡을 데가 없더라도 오히려 염섬(廉纖)이 있다. 산승이 이렇게 말하매 그래 말하라 입은 무엇을 하기에 좋은가(口好作甚麽). 양구하고 가로되 희(嘻), 머물렀다(留取) 끽반(喫飯)한다.
●固必; 고정불변의 법규.
信州靈鷲山寶積宗映禪師
開堂日 乃橫按拄杖曰 大衆 到這裏無親無疎 自然不孤 無內無外 縱橫自在 自在不孤 淸淨毗盧 釋迦擧令 彌勒分疎 觀根逗敎 更相回互 看取寶積拄杖子 黑漆光生 兩頭相副 阿呵呵 是何言歟 良久曰 世事但將公道斷 人心難與月輪齊 卓一下 下座
신주(信州) 영취산(靈鷲山) 보적(寶積) 종영선사(宗映禪師)
개당일(開堂日) 이에 주장자를 횡안(橫按)하고 가로되 대중이여, 이 속에 이르러 무친무소(無親無疎)하여 자연히 불고(不孤)하고 무내무외(無內無外)하여 종횡으로 자재하다. 자재하고 불고(不孤)하니 청정한 비로(毗盧)며 석가가 거령(擧令)하고 미륵이 분소(分疎; 分辨)한다. 근기를 보아 가르침을 두는지라(逗敎) 다시 서로 회호(回互)한다. 보적(寶積)의 주장자를 간취(看取)하라, 흑칠(黑漆)의 빛이 나서 양두(兩頭)가 상부(相副; 서로 돕다)한다. 아하하(阿呵呵), 이 무슨 말인가. 양구하고 가로되 세사(世事)는 단지 공도(公道)를 가지고 판단하지만 인심은 월륜과 가지런하기 어렵다. 한 번 치고 하좌했다.
隆興府景福日餘禪師
僧問 如何是道 師曰 天共白雲曉 水和明月流 曰 如何是道中人 師曰 先行不到 末後太過 又僧出衆畫一圓相 師以手畫一畫 僧作舞歸衆 師曰 家有白澤之圖 必無如是妖怪 乃拈拄杖曰 無量諸佛向此轉大法輪 今古祖師向此演大法義 若信得及 法法本自圓成 念念悉皆具足 若信不及 山僧今日因行不妨掉臂 更爲重說偈言 卓一下 下座
●白澤; 一古代神話中想像的神獸 二師子的異名 ▲明代李昱撰白澤賦云 桓山之陽 溟海之北 粤有神獸 名爲白澤 麐角而鼇趾 龍身而虎額 牙參差而礪銳 目閃爍而洞射 百獸逄之駭膽慄魄 此形容其彷彿者也
융흥부(隆興府) 경복(景福) 일여선사(日餘禪師)
승문 무엇이 이 도(道)입니까. 사왈 하늘이 백운과 함께(共) 밝고(曉) 물이 명월과 함께(和) 흐른다. 가로되 무엇이 이 도중인(道中人)입니까. 사왈 먼저 가면 이르지 못하고 말후는 너무 지나치다. 또 중이 대중에서 나와 1원상을 그렸다. 스님이 손으로써 그어 한 번 그었다. 중이 춤추며 귀중(歸衆)했다. 사왈 집에 백택(白澤)의 그림이 있다면 반드시 이와 같은 요괴가 없을 것이다. 이에 주장자를 잡고 가로되 무량한 제불이 여기를 향해 대법륜을 굴리고 금고(今古)의 조사가 여기를 향해 대법의(大法義)를 연설한다. 만약 믿어 미침을 얻는다면 법법(法法)마다 본래 스스로 원성(圓成)했고 염념(念念)마다 모두 다 구족했거니와 만약 믿음이 미치지 못한다면 산승이 금일 다님으로 인해 팔을 흔듦에 방애되지 않아 다시 게언(偈言)을 거듭 설하겠다. 한 번 치고 하좌했다.
●白澤; 1. 고대 신화 중의 상상의 신수(神獸). 2. 사자의 다른 이름. ▲명대 이욱이 지은 백택부(白澤賦)에 이르되 환산(桓山)의 양(陽)과 명해(溟海)의 북(北), 이에 신수(神獸)가 있으니 이름해 백택(白澤)이다. 기린의 뿔이면서 자라의 발이며 용의 몸에 범의 이마다. 이빨은 참치(參差; 길고 짧고 들쭉날쭉하여 가지런하지 아니함)하고 여예(礪銳; 숫돌에 간 듯 예리함)하며 눈은 번쩍이면서 환히 쏜다. 백수가 이를 만나면 간담이 놀라고 혼백이 벌벌 떠나니 이것은 그 방불(彷彿; 비슷함)함을 형용한 것이다.
安吉州上方日益禪師
開堂日 上首白槌罷 師曰 白槌前觀一又不成 白槌後觀二又不是 到這裏任是鐵眼銅睛 也須百雜碎 莫有不避危亡底衲僧 試出來看 時有兩僧齊出 師曰 一箭落雙鵰 僧曰 某甲話猶未問 何得著忙 師曰 莫是新羅僧麽 僧擬議 師曰 撞露柱漢 便打 問 如何是未出世邊事 師曰 井底蝦蟇呑却月 曰 如何是出世邊事 師曰 鷺鷥踏折枯蘆枝 曰 去此二途 如何是和尙爲人處 師曰 十成好箇金剛鑽 攤向街頭賣與誰 問 如何是多年水牯牛 師曰 齒疎眼暗 問 閙市相逢事若何 師曰 東行買賤 西行賣貴 曰 忽若不作貴不作賤 又作麽生 師曰 鎭州蘿蔔 問 一切含靈具有佛性 旣有佛性 爲甚麽却撞入驢胎馬腹 師曰 知而故犯 曰 未審向甚麽處懺悔 師打曰 且作死馬醫
●東行買賤 西行賣貴; 行 市場 集市 市場裏貨無定價 經常變動 禪家比喩凡事都有一定的機緣 做事要隨機而動
안길주(安吉州) 상방(上方) 일익선사(日益禪師)
개당일(開堂日) 상수(上首)가 백추(白槌)하여 마쳤다. 사왈 백추하기 전에 일(一)을 관(觀)함을 또 이루지 못하고 백추한 후에 이(二)를 관(觀)함은 또 옳지 않다. 이 속에 이르러 이 철안동정(鐵眼銅睛)에게 일임하더라도 또한 꼭 백잡쇄(百雜碎)다. 위망(危亡)을 피하지 않는 납승이 있지 않느냐, 시험 삼아 나와 보아라. 때에 두 중이 있어 일제히 나왔다. 사왈 일전(一箭)에 쌍조(雙鵰)가 떨어졌다. 승왈 모갑이 화(話)도 아직 묻지 않았거늘 왜 착망(著忙; 바쁘게 굴다)함을 얻습니까. 사왈 이 신라승(新羅僧)이 아니냐. 중이 의의(擬議)하자 사왈 노주에 부딪힌 자로구나(撞露柱漢). 바로 때렸다. 묻되 무엇이 이 출세하지 않은 쪽(邊)의 일입니까. 사왈 우물 밑의 두꺼비가 달을 삼켜버렸다. 가로되 무엇이 출세한 쪽의 일입니까. 사왈 해오라기(鷺鷥)가 마른 노지(蘆枝)를 밟아 꺾었다. 가로되 이 이도()를 떠나면 무엇이 이 화상이 위인(爲人)하는 곳입니까. 사왈 십성(十成)으로 아름답게(好箇) 금강으로 뚫어 가두(街頭)를 향해 펼쳐(攤) 누구에게 매여(賣與)하나. 묻되 무엇이 이 다년(多年)의 수고우(水牯牛)입니까. 사왈 이가 성기고 눈이 어둡다(齒疎眼暗). 묻되 요시(閙市)에서 상봉하는 일이 어떻습니까(若何). 사왈 동항에서 싸게 사서 서항에서 비싸게 판다(東行買賤 西行賣貴). 가로되 홀연히 만약 귀(貴)도 짓지 않고 천(賤)도 짓지 않으면 또 어떻습니까. 사왈 진주(鎭州) 나복(蘿蔔; 무)이다. 묻되 일체 함령(含靈)이 불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미 불성이 있거늘 무엇 때문에 도리어 여태마복(驢胎馬腹)에 당입(撞入)합니까. 사왈 알면서 짐짓 범한다. 가로되 미심하오니 어느 곳을 향해 참회해야 합니까. 스님이 때리고 가로되 다만(且) 사마의(死馬醫)가 되었구나.
●東行買賤 西行賣貴; 항(行)은 시장ㆍ집시(集市; 재래 시장). 시장 속에선 화물이 정가가 없으며 경상(經常: 항상) 변동함. 선가에선 범사(凡事; 모든 일)에 모두 일정한 기연이 있으므로 일을 지으면서 요컨대 수기(隨機)하여 움직임에 비유.
問 覿面相呈時如何 師曰 左眼半斤 右眼八兩 僧提起坐具曰 這裏聻 師曰 不勞拈出 乃左右顧視曰 黃面老周行七步 脚根下正好一錐 碧眼胡兀坐九年 頂門上可惜一劄 當時若有箇爲衆竭力底衲僧 下得這毒手 也免得拈花微笑 空破面顔 立雪齊腰 翻成轍迹 自此將錯就錯 相簍打簍 遂有五葉芬芳 千燈續燄 向曲彔木上唱二作三 於楖栗杖頭指南爲北 直得進前退後 有問法問心之徒 倚門傍牆 有覓佛覓祖底漢 庭前指栢 便喚作祖意西來 日裏看山 更錯認學人自己 殊不知此一大事 本自靈明 盡未來際 未甞間斷 不假修證 豈在思惟 雖鶖子有所不知 非滿慈之所能辯 不見馬祖一喝 百丈三日耳聾 寶壽令行 鎭州一城眼瞎 大機大用 如迅雷不可停 一唱一提 似斷崖不可履 正當恁麽時 三世諸佛 祇可傍觀 六代祖師 證明有分 大衆且道 今日還有證明底麽 良久曰 劄 上堂 拾得搬柴 寒山燒火 唯有豐干 巖中冷坐 且道豐干有甚麽長處 良久曰 家無小使 不成君子
●打簍; 編製簍子
●滿慈; 指滿慈子 爲釋尊十大弟子中說法第一 玄應音義三 彌窒 或作富樓那彌多羅尼子 正言富囉拏梅低黎夜富多羅 富囉拏 此云滿 是其名也 梅低黎夜 此云慈 是其母姓 富多羅者 子也 兼從母姓爲名故 此云滿慈子 或譯云滿願子 一義也 與佛同日而生 ▲觀無量壽經義疏正觀記中 具云富樓那彌多羅尼子 富樓那翻滿 卽父名也 彌多羅尼翻慈 卽母名也 總父母名以召其子
묻되 적면(覿面)하여 상정(相呈)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좌안(左眼)은 반근(半斤)이며 우안(右眼)은 8량(兩)이다. 중이 좌구를 제기(提起)하고 가로되 이 속은(這裏聻). 사왈 노고롭게 염출(拈出)하지 말아라. 이에 좌우를 돌아보고 가로되 황면로(黃面老)가 7보를 주행(周行)하였음은 각근하(脚根下)에 바로 일추(一錐; 한 번 송곳으로 찌름)해야 좋고 벽안호(碧眼胡)가 9년 동안 올좌(兀坐)했음은 정문상(頂門上)에 일차(一劄)가 가석(可惜)하다. 당시에 만약 저(箇) 위중(爲衆)하여 갈력(竭力)하는 납승이 있어 이(這) 독수(毒手)를 하득(下得)했더라면 또한 염화미소(拈花微笑)하매 면안(面顔)을 공파(空破; 공연히 찌푸림)하고 입설제요(立雪齊腰)하매 도리어 철적(轍迹)을 이룸을 면득(免得)했으리라. 이로부터 장착취착(將錯就錯; 착오를 가지고 착오로 나아감)하며 상루타루(相簍打簍; 대 채롱을 보아가며 대 채롱을 짬)하여 드디어 5엽(葉)이 분방(芬芳)하고 천등(千燈)이 속염(續燄)함이 있었다. 곡록목상(曲彔木上)을 향해 창이작삼(唱二作三)하고 즐률장두(楖栗杖頭)에서 남을 가리켜 북으로 지으며 바로 진전(進前)하고 퇴후(退後)함을 얻었다. 문법문심지도(問法問心之徒)가 있어 의문방장(倚門傍牆)하고 멱불멱조지한(覓佛覓祖底漢)이 있어 정전(庭前)에서 지백(指栢)했으니 바로 조의서래(祖意西來)라고 불러 짓고 일리(日裏)에 간산(看山)하며 다시 학인의 자기를 착인(錯認)하였다. 너무 알지 못하나니(殊不知) 이 일대사(一大事)는 본래 스스로 영명(靈明)하고 미래제(未來際)가 다하도록 일찍이 간단(間斷)하지 않고 수증(修證)을 빌리지 않거늘 어찌 사유(思惟)에 있겠는가. 비록 추자(鶖子; 사리불)일지라도 알지 못할 바가 있고 만자(滿慈)가 능히 분변(分辨; 辯)할 바가 아니다. 보지 못하는가 마조의 1할(喝)에 백장이 3일 동안 귀가 먹었고 보수(寶壽)가 영(令)을 행하매 진주(鎭州) 1성(城)의 눈이 멀었다. 대기대용(大機大用)은 신뢰(迅雷)와 같아서 가히 멈추지(停) 않으며 일창일제(一唱一提)가 단애(斷崖)와 같아서(似) 가히 밟지 못한다. 바로(正) 이러한 때를 당해 삼세제불도 다만 가히 방관(傍觀)하고 육대조사도 증명할 분한이 있다. 대중이여 그래 말하라, 금일 도리어 증명할 이가 있느냐. 양구하고 가로되 차(劄). 상당(上堂) 습득은 반시(搬柴)하고 한산은 소화(燒火)하고 오직 풍간(豐干)이 있어 암중(巖中)에 냉좌(冷坐)했다. 차도(且道)하라, 풍간이 무슨 장처(長處)가 있느냐. 양구하고 가로되 집에 소사(小使)가 없으면 군자를 이루지 못한다.
●打簍; 누자(簍子; 대 채롱)를 짜서 만듦.
●滿慈; 만자자(滿慈子)를 가리킴. 석존 10대 제자 중 설법제일이 됨. 현응음의3. 미질(彌窒) 혹 부루나미다라니자(富樓那彌多羅尼子)로 지으며 바른 말로는 부라나매저리야부다라(富囉拏梅低黎夜富多羅)로 짓는다. 부라나는 여기에선 이르되 만(滿)이니 이는 그의 이름이다. 매저리야는 여기에선 이르되 자(慈)니 이는 그 어머니의 성이다. 부다라란 것은 자(子)다. 겸하여 모성(母姓)을 좇아 이름을 삼은 연고이다. 여기에선 이르되 만자자(滿慈子)니 혹 번역해 이르되 만원자(滿願子)라 함도 한 뜻이다. 불타와 같은 날 태어났다. ▲관무량수경의소정관기중. 갖추어 이르면 부루나미다라니자(富樓那彌多羅尼子)다. 부루나는 만(滿)으로 번역하나니 곧 아버지의 이름이다. 미다라니는 자(慈)로 번역하나니 곧 어머니의 이름이다. 부모의 이름을 모아 그 아들을 부름이다.
南嶽下十四世
五祖演禪師法嗣
成都府昭覺寺克勤佛果禪師
彭州駱氏子 世宗儒 師兒時日記千言 偶遊妙寂寺 見佛書 三復悵然 如獲舊物 曰 予殆過去沙門也 卽去家 依自省祝髮 從文照通講說 又從敏行授楞嚴 俄得病 瀕死 歎曰 諸佛涅槃正路不在文句中 吾欲以聲求色見 宜其無以死也 遂棄去 至眞覺勝禪師之席 勝方創臂出血 指示師曰 此曹谿一滴也 師矍然 良久曰 道固如是乎 卽徙步出蜀 首謁玉泉皓 次依金鑾信大潙喆黃龍心東林度 僉指爲法器 而晦堂稱他日臨濟一派屬子矣 最後見五祖 盡其機用 祖皆不諾 乃謂祖强移換人 出不遜語 忿然而去 祖曰 待你著一頓熱病打時 方思量我在
성도부(成都府) 소각사(昭覺寺) 극근(克勤) 불과선사(佛果禪師)
팽주(彭州) 낙씨(駱氏)의 아들이다. 대대로(世) 종유(宗儒; 유학을 宗仰함)였다. 스님이 아시(兒時)에 하루 천언(千言)을 기억했다. 우연히 묘적사(妙寂寺)를 유람하다가 불서(佛書)를 보고 세 번 반복(反復)하며 창연(悵然)했고 구물(舊物)을 획득함과 같았다. 가로되 나는(予) 거의(殆) 과거에 사문이었다. 곧 집을 떠나 자성(自省)에게 의지해 축발(祝髮)하고 문조(文照)를 좇아 강설을 통했고 또 민행(敏行)을 좇아 릉엄을 전수(傳授; 傳受와 같음)했다. 갑자기 득병(得病)하여 빈사(瀕死; 사망에 가까움)였다. 탄식해 가로되 제불의 열반의 정로(正路)가 문구 중에 있음이 아니다. 내가 성구색견(聲求色見; 소리로 구하고 색으로 봄)으로써 의당 그, 죽음을 씀(以)이 없게 하고 싶다. 드디어 버리고 떠나 진각승(眞覺勝) 선사의 법석에 이르렀다. 승(勝)이 바야흐로 상처 난 팔(創臂)에서 피가 나자 스님에게 가리켜 보이며(指示) 가로되 이것이 조계(曹谿)의 한 방울이다. 스님이 확연(矍然; 놀라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모양)했다. 양구하고 가로되 도가 참으로(固) 이와 같은가. 곧 걸음을 옮겨(徙步) 촉(蜀)에서 나와 처음(首) 옥천호(玉泉皓; 承晧)를 참알했고 다음 금란신(金鑾信)ㆍ대위철(大潙喆; 慕喆)ㆍ황룡심(黃龍心; 祖心)ㆍ동림도(東林度)에게 의지했다. 다(僉) 가리켜 법기(法器)라 했다. 회당(晦堂; 祖心)은 일컫기를 타일(他日)에 임제 일파(一派)가 자네에게 속(屬)했다. 최후에 오조(五祖)를 뵙고 그 기용(機用)을 다했으나 오조가 모두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이르기를 오조가 억지로 사람을 이환(移換; 移易)한다 하고는 불손(不遜)한 말을 내뱉고 분연(忿然)히 떠났다. 조왈(祖曰) 네가 일돈(一頓)의 열병(熱病)이 때릴 때를 만남을 기다려야 바야흐로 나를 사량(思量)할 것이다.
師到金山 染傷寒困極 以平日見處試之 無得力者 追繹五祖之言 乃自誓曰 我病稍間 卽歸五祖 病痊尋歸 祖一見而喜 令卽參堂 便入侍者寮 方半月 會部使者解印還蜀 詣祖問道 祖曰 提刑少年曾讀小艶詩否 有兩句頗相近 頻呼小玉元無事 祇要檀郞認得聲 提刑應喏喏 祖曰 且子細 師適歸侍立次 問曰 聞和尙擧小艶詩 提刑會否 祖曰 他祇認得聲 師曰 祇要檀郞認得聲 他旣認得聲 爲甚麽却不是 祖曰 如何是祖師西來意 庭前栢樹子聻 師忽有省 遽出 見鷄飛上欄干 鼓翅而鳴 復自謂曰 此豈不是聲 遂袖香入室 通所得 呈偈曰 金鴨香銷錦繡幃 笙歌叢裏醉扶歸 少年一段風流事 祇許佳人獨自知 祖曰 佛祖大事 非小根劣器所能造詣 吾助汝喜 祖徧謂山中耆舊曰 我侍者參得禪也 由此所至推爲上首
●部使者; 受命出使的人
●小艶詩; 委巷中衆人吟諷的詩 一段風光畫不成 洞房深處說愁情 頻呼小玉元無事 只要檀郞認得聲
●頻呼小玉 祇要檀郞認得聲; 此二句禪錄頻出 然未詳典故 按網站百度 這詩出自唐人筆記霍小玉傳 小姐想通知情郞 沒有機會 故意在房裏叫丫頭的名字 使情郞知我在這裏
●金鴨; 鴨 形狀像鴨的香爐
스님이 금산(金山)에 이르러 상한(傷寒)에 감염되어 곤극(困極)했다. 평일의 견처로써 시험했는데 득력(得力)한 것이 없었다. 오조의 말을 추역(追繹; 추억하여 당김)하고는 이에 자서(自誓)하여 가로되 나의 병이 조금 나으면(間) 곧 오조로 돌아가리라. 병이 낫자(痊) 심귀(尋歸)했다. 오조가 일견(一見)하자 기뻐하면서 명령해 곧 참당(參堂)했고 바로 시자료(侍者寮)에 들어갔다. 바야흐로 반 달이었는데 마침 부사자(部使者)가 해인(解印; 印綬를 풀다)하고 환촉(還蜀)했는데 오조에게 나아가 문도(問道)했다. 조왈(祖曰) 제형(提刑)은 소년(少年)에 일찍이 소염시(小艶詩)를 읽었는가, 양구(兩句)가 있어 자못 상근(相近)하나니 소옥을 자주 부름은 원래 일이 없고 단지 단랑(檀郞; 郞君. 情人)이 소리를 인득(認得)하기를 요함이다(頻呼小玉元無事 祇要檀郞認得聲). 제형이 응해 낙낙(喏喏; 예, 예)했다. 조왈(祖曰) 다만(且) 자세(子細)해야 한다. 스님이 마침(適) 돌아와 시립(侍立)한 차에 문왈(問曰) 화상이 소염시를 거(擧)함을 듣고 제형이 이회했습니까. 조왈 그는 다만 소리를 인득(認得)했다. 사왈 다만 단랑이 소리를 인득하기를 요함이다. 그는 이미 소리를 인득했거늘 무엇 때문에 도리어 옳지(是) 못합니까. 조왈 무엇이 조사서래의인가 하매 정전백수자라 한 것은(庭前栢樹子聻). 스님이 홀연히 성찰이 있었다. 급히 나가 닭이 날아 난간(欄干)에 올라 날개를 치며(鼓翅) 우는 것을 보았다. 다시 스스로 일러 가로되 이것이 어찌 이 소리가 아니겠는가. 드디어 수향(袖香; 향을 소매에 넣음)하고 입실해 얻은 바를 통보했다. 게를 보여 가로되 금압(金鴨; 金鴨爐)의 향은 사라지고 금수(錦繡)의 휘장이라/ 생가(笙歌)의 모임(叢) 속에 취해서 부축해 돌아왔다/ 소년의 한 조각(一段) 풍류의 일은/ 다만 가인(佳人)이 독자로 앎을 허락한다. 조왈 불조의 대사(大事)는 소근열기(小根劣器)가 능히 조예(造詣)할 바가 아니다. 내가 너의 기쁨에 일조한다. 오조가 산중의 기구(耆舊)에게 두루 일러 가로되 나의 시자가 선(禪)을 참득(參得)했습니다. 이로부터 이르는 곳마다 추대(推戴)해 상수(上首)가 되었다.
●部使者; 명령을 받고 출사(出使)하는 사람.
●小艶詩; 위항(委巷; 좁고 지저분한 거리) 중에서 중인(衆人)이 음풍(吟諷; 읊음)하는 시니 일단(一段)의 풍광은 그림을 이루지 못하는데/ 동방(洞房; 깊숙한 방)의 깊은 곳에서 수정(愁情)을 설한다/ 자주 소옥을 부름은 원래 일이 없고/ 다만 단랑(檀郞)이 소리를 인득(認得)함을 요함이다.
●頻呼小玉元無事 祇要檀郞認得聲; 이 2구는 선록에 자주 나오지만 그러나 전고(典故; 典據가 되는 故事)가 미상임. 망참(網站; Website) 백도(百度; Baidu)를 안험컨대 이 시(詩)는 당인(唐人)의 필기(筆記)인 곽소옥전(霍小玉傳)으로부터 나왔다 함. 소저(小姐)가 정랑(情郞)에게 통지하려고 생각은 하나 기회가 있지 않는지라 고의로 방 속에 있으면서 아두(丫頭; 머리를 두 가닥으로 땋은 소녀)의 명자(名字)를 불러 정랑으로 하여금 내가 이 속에 있음을 알게 함이라 했음.
●金鴨; 압(鴨)은 형상이 오리를 본떤 향로
崇寧中還里省親 四衆迓拜 成都帥翰林郭公知章請開法六祖 更昭覺 政和間謝事 復出峽南遊 時張無盡寓荊南 以道學自居 少見推許 師艤舟謁之 劇談華嚴旨要 曰 華嚴現量境界 理事全眞 初無假法 所以卽一而萬 了萬爲一 一復一 萬復萬 浩然莫窮 心佛衆生 三無差別 卷舒自在 無礙圓融 此雖極則 終是無風帀帀之波 公於是不覺促榻 師遂問曰 到此與祖師西來意 爲同爲別 公曰 同矣 師曰 且得沒交涉 公色爲之慍 師曰 不見雲門道 山河大地 無絲毫過患 猶是轉句 直得不見一色 始是半提 更須知有向上全提時節 彼德山臨濟 豈非全提乎 公乃首肯
●推許; 推重贊許
●劇談; 猶暢談
●現量; 因明用三量之一 又心識三量之一 現實量知也 向色等諸法 現實量知其自相 毫無分別推求之念者
●促榻; 移近座位 是交談投機時的動作
숭녕(崇寧; 1102-1106) 중 향리로 돌아가 성친(省親)했다. 사중(四衆)이 맞이해(迓) 예배했다. 성도수(成都帥) 한림(翰林) 곽공(郭公) 지장(知章)이 청하여 육조(六祖)에서 개법하고 소각(昭覺)으로 고쳤다. 정화(政和; 1111-1117) 간 사사(謝事; 사무를 그만둠)하고 다시 출협(出峽)하여 남유(南遊)했다. 당시에 장무진(張無盡)이 형남(荊南)에 우거(寓居)하며 도학(道學)으로써 자거(自居)했고 추허(推許)를 보임이 적었다. 스님이 의주(艤舟; 배를 대다)하고 예알했는데 화엄의 지요(旨要)를 극담(劇談)했다. 가로되 화엄은 현량경계(現量境界)며 이사(理事)가 전진(全眞)이며 애초에 가법(假法)이 없습니다. 소이로 즉일(卽一)하여 만(萬)이며 만을 마치면(了萬) 일(一)이 되며 일이 다시 일이며 만이 다시 만입니다. 호연(浩然)하여 궁구하지 못하며(莫窮) 심ㆍ불ㆍ중생 셋이 차별이 없으며 권서(卷舒)가 자재하며 무애(無礙)하고 원융(圓融)합니다. 이것이 비록 극칙(極則)이지만 마침내 이는 바람 없이 돌고 도는 파도입니다(無風帀帀之波). 공(公)이 이에 불각에 촉탑(促榻)했다. 스님이 드디어 물어 가로되 여기에 이르러 조사서래의와 같음이 됩니까 다름이 됩니까. 공왈(公曰) 같습니다. 사왈 또 교섭이 없음을 얻습니다(且得沒交涉). 공(公)의 안색이 성냄이 되었다(色爲之慍). 사왈 보지 못합니까, 운문이 말하되 산하대지가 사호(絲毫)의 과환(過患)이 없더라도 오히려 이는 전구(轉句)며 바로 일색(一色)도 보지 않음을 얻어야 비로소 이 반제(半提)며 다시 모름지기 향상(向上)의 전제(全提)의 시절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저(彼) 덕산과 임제가 어찌 전제(全提)가 아니겠습니까. 공이 이에 수긍했다.
●推許; 추중(推重; 推仰하여 존중히 여김)하며 찬허(贊許)함.
●劇談; 창담(暢談; 후련하게 이야기 함)과 같음.
●現量; 인명용(因明用) 3량(量)의 하나며 또 심식(心識) 3량의 하나니 현실을 양지(量知)함임. 색 등 제법을 향해 현실로 그 자상(自相)을 양지하여 터럭만큼도 분별하며 추구하는 사념이 없는 것.
●促榻; 좌위(座位)에 가깝게 이동함이니 이는 교담(交談)하며 투기(投機)할 때의 동작.
翌日復擧事法界理法界至理事無礙法界 師又問 此可說禪乎 公曰 正好說禪也 師笑曰 不然 正是法界量裏在 蓋法界量未滅 若到事事無礙法界 法界量滅 始好說禪 如何是佛 乾屎橛 如何是佛 麻三斤 是故眞淨偈曰 事事無礙 如意自在 手把豬頭 口誦淨戒 趂出婬坊 未還酒債 十字街頭 解開布袋 公曰 美哉之論 豈易得聞乎 於是以師禮留居碧巖 復徙道林 樞密鄧公子常奏賜紫服師號 詔住金陵蔣山 學者無地以容 勑補天寧萬壽 上召見 褒寵甚渥 建炎初 又遷金山 適駕幸維揚 入對 賜圓悟禪師 改雲居 久之 復領昭覺
다음날(翌日) 다시 사법계(事法界)ㆍ이법계(理法界)를 들고(擧) 이사무애법계(理事無礙法界)에 이르렀다. 스님이 또 묻되 이것을 가히 설선(說禪)한다고 하겠습니까. 공왈(公曰) 바로 좋이 설선합니다. 스님이 웃고 가로되 그렇지 않습니다. 바로 이 법계량(法界量) 속에 있으며 대개(大蓋) 법계량이 멸(滅)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사사무애법계(事事無礙法界)에 이른다면 법계량이 멸하니 비로소 좋이 설선(說禪)합니다. 무엇이 이 부처인가, 건시궐(乾屎橛)이다. 무엇이 이 부처인가, 마삼근(麻三斤)이다. 이런 고로 진정(眞淨; 克文)의 게에 가로되 사사가 무애(事事無礙)하여/ 뜻대로(如意) 자재하나니/ 손에 돼지 머리를 잡고/ 입으로 정계(淨戒)를 외운다/ 음방(婬坊)에서 쫓겨나며/ 술값 빚을 갚지 못하고/ 십자의 가두에서/ 포대를 풀어 연다. 공왈(公曰) 미재지론(美哉之論)입니다. 어찌 쉽게 득문(得聞)하겠습니까. 이에 스승의 예(禮)로써 벽암(碧巖)에 유거(留居)했다가 다시 도림(道林)으로 옮겼다(徙). 추밀(樞密) 등공(鄧公) 자상(子常)이 주청(奏請; 奏)하여 자복(紫服)과 사호(師號)를 주었다. 조칙으로 금릉(金陵) 장산(蔣山)에 주(住)했는데 학자를 수용할 땅이 없었다(無地以容). 칙명으로 천녕만수(天寧萬壽)에 보직(補職)하고 황상(皇上; 上)이 불러 상견하고 포총(褒寵)이 심악(甚渥; 매우 極盡)했다. 건염(建炎; 1127-1130) 초 또 금산(金山)으로 옮겼는데 마침(適) 어가(御駕; 駕)가 유양(維揚)으로 거둥했고(幸) 입대(入對)하여 원오선사(圓悟禪師)를 주었고 운거(雲居)로 고쳤다. 오래되자 다시 소각(昭覺)을 거느렸다(領).
僧問 雲門道 須彌山 意旨如何 師曰 推不向前 約不退後 曰 未審還有過也無 師曰 坐却舌頭 問 法不孤起 仗境方生 提坐具曰 這箇是境 那箇是法 師曰 却被闍黎奪却鎗 問 古人道 楖栗橫擔不顧人 直入千峯萬峯去 未審那裏是他住處 師曰 騰虵纏足 路布繞身 曰 朝看雲片片 暮聽水潺潺 師曰 却須截斷始得 曰 此回不是夢 眞箇到廬山 師曰 高著眼 問 猿抱子歸靑嶂後 鳥銜華落碧巖前 此是和尙舊時安身立命處 如何是道林境 師曰 寺門高開洞庭野 殿脚插入赤沙湖 曰 如何是境中人 師曰 僧寶人人滄海珠 曰 此是杜工部底 作麽生是和尙底 師曰 且莫亂道 曰 如何是奪人不奪境 師曰 山僧有眼不曾見 曰 如何是奪境不奪人 師曰 闍黎問得自然親 曰 如何是人境俱奪 師曰 收 曰 如何是人境俱不奪 師曰 放
●騰虵; 猶騰蛇 一名螣蛇 也稱飛蛇 是一種會騰雲駕霧的蛇 是一種仙獸
●杜工部; 唐代詩人杜甫 後爲工部侍郞 故稱杜工部
승문 운문이 말한 수미산은 의지가 무엇입니까. 사왈 밀어도 앞을 향하지 않고 잡아도(約) 뒤로 물러나지 않는다. 가로되 미심하오니 도리어 허물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 설두(舌頭)를 앉혀버려라(坐却). 묻되 법은 홀로(孤) 일어나지 않고 경(境)에 기대어야(仗) 비로소 생겨난다. 좌구를 들고(提) 가로되 저개(這箇)는 이 경(境)이니 나개(那箇)가 이 법입니까. 사왈 도리어 사리(闍黎)가 창(鎗)을 뺏아버림(奪却)을 입었다. 묻되 고인이 말하되 즐률(楖栗)을 가로 메고 사람을 돌아보지 않고 천봉만봉(千峯萬峯)으로 직입(直入)하여 간다. 미심하오니 나리(那裏)가 이 그의 주처(住處)입니까. 사왈 등사가 발을 감았고(騰虵纏足) 노포(路布)가 몸을 돈다(繞). 가로되 아침에 구름이 편편(片片)임을 보고 저녁에 물이 잔잔(潺潺)함을 듣습니다. 사왈 도리어 절단(截斷)함을 써야(須) 비로소 옳다. 가로되 여기에서 돌아가면(此回) 이 꿈이 아니니 진개(眞箇)로 여산(廬山)에 이를 것입니다. 사왈 높이 착안하라. 묻되 원숭이는 새끼를 안고 청장(靑嶂)으로 돌아간 후 새가 꽃을 물어다 벽암(碧巖) 앞에 떨어뜨린다(夾山語). 이것은 이 화상이 구시(舊時)에 안신입명(安身立命)한 곳입니다. 무엇이 이 도림경(道林境; 克勤이 일찍이 도림에 住했음)입니까. 사왈 사문(寺門)을 동정(洞庭)의 들에 높이 열었고 전각(殿脚)을 적사(赤沙)의 호수(湖水; 湖)에 삽입(插入)했다. 가로되 무엇이 이 경중인(境中人)입니까. 사왈 승이 보배면(僧寶) 사람마다 창해(滄海)의 구슬이다. 가로되 이것은 이 두공부의 것(杜工部底)입니다. 무엇이 이 화상의 것입니까. 사왈 다만(且) 어지럽게 말하지 말아라. 가로되 무엇이 이 탈인불탈경(奪人不奪境)입니까. 사왈 산승은 눈이 있지만 일찍이 보지 못했다. 가로되 무엇이 이 탈경불탈인(奪境不奪人)입니까. 사왈 사리(闍黎)가 문득(問得)하니 자연히 친하다. 가로되 무엇이 이 인경구탈(人境俱奪)입니까. 사왈 거두었다(收). 가로되 무엇이 이 인경구불탈(人境俱不奪)입니까. 사왈 놓았다(放).
●騰虵; 등사(騰蛇)와 같음. 일명이 등사(螣蛇)니 또한 비사(飛蛇)로 일컬음. 이는 일종의, 구름에 오르고 안개를 탈 줄 아는 뱀. 이는 일종의 선수(仙獸)임.
●杜工部; 당대 시인 두보가 후에 공부시랑이 된지라 고로 두공부로 일컬음.
問 有句無句 如藤倚樹 如何得透脫 師曰 倚天長劍逼人寒 曰 祇如樹倒藤枯 潙山爲甚麽呵呵大笑 師曰 愛他底 著他底 曰 忽被學人掀倒禪牀 拗折拄杖 又作箇甚麽伎倆 師曰 也是賊過後張弓 問 明歷歷 露堂堂 因甚麽乾坤收不得 師曰 金剛手裏八稜棒 曰 忽然一喚便回 還當得活也無 師曰 鶖子目連無奈何 曰 不落照 不落用 如何商量 師曰 放下雲頭 曰 忽遇其中人時如何 師曰 騎佛殿 出山門 曰 萬象不來渠獨語 敎誰招手上高峯 師曰 錯下名言
●雲頭; 成朵的雲 頭 後綴
묻되 유구무구(有句無句)는 등(藤)이 나무에 기댄 것과 같습니다. 어찌해야 투탈(透脫)함을 얻습니까. 사왈 하늘에 기댄 장검(倚天長劍)이 사람을 핍박해 차다(寒). 가로되 지여(祇如) 나무가 넘어지고 등(藤)이 마르매 위산(潙山; 大安)이 무엇 때문에 하하대소했습니까. 사왈 남의 것을 좋아하고(愛他底) 남의 것에 집착했다. 가로되 홀연히 학인이 선상을 번쩍 들어 엎고(掀倒) 주장자를 요절(拗折)함을 입으면 또 저(箇) 무슨 기량(伎倆)을 짓겠습니까. 사왈 또한 이는 도적이 지나간 후 활을 당김(張弓)이다. 묻되 밝아 역력하고 드러나 당당(堂堂)하거늘 무엇으로 인해 건곤이 거둠을 얻지 못합니까. 사왈 금강의 손안에 팔릉(八稜; 八角)의 몽둥이다. 가로되 홀연히 한 번 부르자 바로 돌아오면 도리어 득활(得活)에 당(當)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추자(鶖子; 사리불)와 목련(目連)이라도 어찌하지 못한다(無奈何). 가로되 조(照)에 떨어지지 않고 용(用)에 떨어지지 않고 어떻게 상량(商量)합니까. 사왈 운두(雲頭)를 방하(放下)하라. 가로되 홀연히 기중인(其中人)을 만날 때 어떻습니까. 사왈 불전(佛殿)을 타고 산문을 나간다. 가로되 만상(萬象)이 오지 않는데 거(渠)가 홀로 말하니 누구로 하여금 초수(招手; 손짓)하여 고봉(高峯)에 오르게 합니까. 사왈 명언(名言; 명자와 언구)을 착하(錯下)했다.
●雲頭; 떨기를 이룬 구름. 두는 후철.
上堂 通身是眼見不及 通身是耳聞不徹 通身是口說不著 通身是心鑒不出 直饒盡大地明得 無絲毫透漏 猶在半途 據令全提 且道如何展演 域中日月縱橫挂 一亘晴空萬古春 上堂 山頭鼓浪 井底揚塵 眼聽似震雷霆 耳觀如張錦繡 三百六十骨節 一一現無邊妙身 八萬四千毛端 頭頭彰寶王刹海 不是神通妙用 亦非法爾如然 苟能千眼頓開 直是十方坐斷 且超然獨脫一句 作麽生道 試玉須經火 求珠不離泥 上堂 本來無形段 那復有脣觜 特地廣稱揚 替他說道理 且道他是阿誰 上堂 十五日已前 千牛拽不回 十五日已後 俊鶻趂不及 正當十五日 天平地平 同明同暗 大千沙界不出當處 可以含吐十虛 進一步 超越不可說香水海 退一步 坐斷千里萬里白雲 不進不退 莫道闍黎 老僧也無開口處 擧拂子曰 正當恁麽時如何 有時拈在千峯上 劃斷秋雲不放高
●香水海; 略稱香海 圍繞須彌山之內海 盡香水也 此有二 一蓮華藏世界之香水海 華嚴經八曰 彼須彌山微塵數風輪 最在上者名殊勝威光藏能持普光摩尼莊嚴香水海 此香水海 有大蓮華 二娑婆世界之香水海 俱舍論十一曰 妙高爲初 輪圍最後 中間八海 前七名內 七中皆具八功德水 [俱舍論十一 華嚴經探玄記三 佛祖統紀卷三十一]
상당(上堂) 통신(通身; 온몸)이 이 눈일지라도 봄이 미치지 못하고 통신이 이 귀일지라도 들음이 통하지(徹)하지 못하고 통신이 이 입일지라도 설하지 못하고(說不著) 통신이 이 마음일지라도 비추어 내지 못한다(鑒不出). 직요(直饒) 온 대지를 명득(明得)하여 사호(絲毫)의 투루(透漏)가 없더라도 오히려 반도(半途)에 있다, 거령(據令)하여 전제(全提)하려면 차도(且道)하라, 어떻게 전연(展演; 展開하여 演暢)해야 하는가. 역중(域中)의 일월이 종횡으로 걸렸는데 일이 청공에 뻗쳐(一亘晴空) 만고(萬古)의 봄이다. 상당(上堂) 산두(山頭)에 물결치고(鼓浪) 정저(井底)에 티끌을 날리고 눈으로 들으매 뇌정(雷霆; 우레와 번개)이 진동(震動)함과 흡사하고 귀로 보매 금수(錦繡)를 펼침과 같다. 삼백육십골절(三百六十骨節)의 하나하나에 무변한 묘신(妙身)이 나타나고 팔만사천모단(八萬四千毛端)의 낱낱(頭頭)에 보왕찰해(寶王刹海)가 나타난다(彰). 이 신통묘용(神通妙用)이 아니며 또한 법이여연(法爾如然)이 아니다. 참으로(苟) 능히 천안(千眼)을 돈개(頓開)하고 바로(直) 이 시방을 좌단(坐斷)해야 하나니 다만(且) 초연(超然)히 독탈(獨脫)한 1구를 어떻게 말하겠는가. 옥을 시험하려면 꼭 불을 겪어야 하고 구슬을 구하려면 진흙을 여의지 않는다. 상당(上堂) 본래 형단(形段)이 없거늘/ 어찌(那) 다시 순취(脣觜; 주둥이)가 있겠는가/ 특지(特地) 널리 칭양(稱揚)하며/ 그를 대체(代替)하여 도리를 설한다. 차도(且道)하라 그는 이 누구(阿誰)인가. 상당(上堂) 15일 이전엔 천우(千牛)로 끌어당겨도(拽) 돌이키지 못하고(不回) 15일 이후엔 준골(俊鶻)이 쫓아도(趂) 미치지 못한다. 바로(正) 15일에 당해선 하늘도 평탄하고 땅도 평탄하고(天平地平) 한가지로 밝고 한가지로 어둡나니 대천사계(大千沙界)가 당처(當處)를 벗어나지 못하며 가이(可以) 십허(十虛; 十方虛空)를 함토(含吐)한다. 진일보(進一步)하면 불가설의 향수해(香水海)를 초월하고 퇴일보(退一步)하면 천 리 만 리의 백운을 좌단(坐斷)하거니와 부진불퇴(不進不退)하면 사리(闍黎)를 말하지 말아라, 노승도 또한 개구(開口)할 곳이 없다. 불자를 들고 가로되 바로(正) 이러한 때를 당해 어떠한가. 어떤 때는 가지고 천봉상(千峯上)에 있으면서 추운(秋雲)을 획단(劃斷)하여 높이 놓지 않는다(不放高).
●香水海; 약칭(略稱)이 향해(香海)임. 수미산을 위요(圍繞)하는 내해(內海)가 다 향수(香水)임. 이에 둘이 있음. 1.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의 향수해니 화엄경8에 가로되 그 수미산의 미진수(微塵數)의 풍륜(風輪)에 가장 위에 있는 것의 이름이 수승위광장능지보광마니장엄향수해(殊勝威光藏能持普光摩尼莊嚴香水海)며 이 향수해에 대연화(大蓮華)가 있다. 2. 사바세계의 향수해니 구사론11에 가로되 묘고(妙高)가 처음이 되고 윤위(輪圍)가 가장 뒤며 중간에 8해(海)니 앞의 일곱은 이름이 내(內)며 일곱 중에 다 팔공덕수(八功德水)를 갖췄다 [구사론11. 화엄경탐현기3. 불조통기31].
上堂 十方同聚會 本來身不昧 箇箇學無爲 頂上用鉗鎚 此是選佛場 深廣莫能量 心空及第歸 利劍不如錐 龐居士舌拄梵天 口包四海 有時將一莖草作丈六金身 有時將丈六金身作一莖草 甚是奇特 雖然如此 要且不曾動著向上關 且如何是向上關 鑄印築高壇 上堂 有句無句 超宗越格 如藤倚樹 銀山鐵壁 及至樹倒藤枯 多少人失却鼻孔 直饒收拾得來 已是千里萬里 祇如未有恁麽消息時如何 還透得麽 風暖鳥聲碎 日高華影重 上堂 第一句薦得 祖師乞命 第二句薦得 人天膽落 第三句薦得 虎口橫身 不是循途守轍 亦非革轍移途 透得則六臂三頭 未透亦人間天上 且三句外一句作麽生道 生涯祇在絲綸上 明月扁舟泛五湖
상당(上堂) 시방이 함께 취회(聚會)한다 하니 본래신(本來身)을 불매(不昧)하고 개개(箇箇)가 무위를 배운다 하니 정상(頂上)에 겸추(鉗鎚)를 쓰고 여기는 이 선불장(選佛場)이라 하니 심광(深廣)하여 능히 헤아리지(量) 못하고 마음이 공해야 급제하여 돌아간다 하니 예리한 검도 송곳만 같지 못하다. 방거사가 혀로 범천(梵天)을 버티고 입으로 사해(四海)를 싸서(包) 어떤 때는 일경초(一莖草)를 가지고 장륙금신(丈六金身)을 짓고 어떤 때는 장륙금신을 가지고 일경초로 지으니 심히 이 기특하다.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지만 요차(要且; 도리어. 종내) 일찍이 향상관(向上關)을 동착(動著)하지 못했나니 그래 무엇이 이 향상관인가. 주인(鑄印; 官印을 鑄造)하여 고단(高壇)을 쌓는다(築). 상당(上堂) 유구무구(有句無句)는 초종월격(超宗越格)이며 여등의수(如藤倚樹; 등이 나무에 기댐과 같음)는 은산철벽(銀山鐵壁)이다. 수도등고(樹倒藤枯)에 이르러선(及至) 다소인(多少人)이 비공(鼻孔)을 잃어버리나니 직요(直饒; 가령) 수습(收拾)하여 얻어 오더라도 이미 이 천 리 만 리다. 지여(祇如) 이러한 소식이 있지 아니한 때 어떠한가. 도리어 투득(透得)하느냐. 바람이 따뜻하니 새소리가 부서지고 해가 높으니 꽃 그림자가 두껍다(重). 상당(上堂) 제1구에서 천득(薦得)하면 조사가 목숨을 구걸하고 제2구에서 천득하면 인천(人天)이 쓸개가 떨어지고 제3구에서 천득하면 호구(虎口)에 몸을 가로놓는다. 이 순도수철(循途守轍; 길을 따르고 軌轍을 지킴)이 아니며 또한 혁철이도(革轍移途; 궤철을 고치고 길음 옮김)가 아니다. 투득(透得)하면 곧 육비삼두(六臂三頭)며 투득하지 못하면 또한 인간천상(人間天上)이다. 다만(且) 3구 밖의 1구를 어떻게 말하겠는가. 생애가 다만 사륜상(絲綸上)에 있는지라 명월(明月)에 편주(扁舟)를 오호(五湖)에 띄운다.
示衆云 一言截斷 千聖消聲 一劒當頭 橫屍萬里 所以道 有時句到意不到 有時意到句不到 句能剗意 意能剗句 意句交馳 衲僧巴鼻 若能恁麽轉去 靑天也須喫棒 且道憑箇甚麽 可憐無限弄潮人 畢竟還落潮中死 示衆云 萬仞崖頭撒手 要須其人 千鈞之弩發機 豈爲鼷鼠 雲門睦州 當面蹉過 德山臨濟 誑謼閭閻 自餘立境立機 作窠作窟 故是滅胡種族 且獨脫一句作麽生道 萬緣遷變渾閑事 五月山房冷似冰 紹興五年八月己酉 示微恙 趺坐書偈遺衆 投筆而逝 茶毗舌齒不壞 設利五色無數 塔于昭覺寺之側 諡眞覺禪師
시중(示衆)해 이르되 일언(一言)으로 절단(截斷)하면 천성(千聖)이 소리가 사라지고(消聲) 일검(一劒)으로 당두(當頭; 當面)하면 횡시(橫屍)가 만 리다. 소이로 말하되 어떤 때는 구(句)는 이르나(到) 의(意)는 이르지 못하고 어떤 때는 의는 이르나 구가 이르지 못한다. 구가 능히 의를 베고(剗) 의가 능히 구를 베어 의구(意句)가 교치(交馳)해야 납승의 파비(巴鼻)다. 만약 능히 이렇게 전거(轉去)하면 청천(靑天)도 또한 꼭 끽방(喫棒)하나니 차도(且道)하라, 저(箇) 무엇에 의빙(依憑; 憑)하는가. 가련하다 무한한 농조인(弄潮人; 바닷물을 희롱하는 사람)이 필경 도리어 조중(潮中)에 떨어져 죽는다. 시중(示衆)하여 이르되 만인애두(萬仞崖頭)에서 손을 놓음(撒手)은 요컨대 꼭 기인(其人)이라야 하거늘 천균지노(千鈞之弩)가 발기(發機)하매 어찌 해서(鼷鼠)를 위함이겠는가. 운문과 목주(睦州)는 당면에 차과(蹉過)했고 덕산과 임제는 여염(閭閻)을 광하(誑謼 誑諕와 같음)했다. 자여(自餘; 以外. 此外)는 입경입기(立境立機)하고 작과작굴(作窠作窟)한지라 고로 이는 호종족(胡種族; 達磨門下의 法孫)을 멸했다. 다만(且) 독탈(獨脫)의 1구를 어떻게 말하겠는가. 만연(萬緣)이 천변(遷變)함은 온통(渾) 한사(閑事)니 5월의 산방(山房)이 차기(冷)가 얼음 같다. 소흥(紹興) 5년(1135) 8월 기유(己酉) 미양(微恙; 微疾)을 보였다. 부좌(趺坐)하여 게를 써(書) 대중에게 남기고 붓을 던지고 서거했다. 다비하매 혀와 이가 무너지지 않았고 설리(設利)가 오색이었고 무수했다. 소각사(昭覺寺)의 곁에 탑을 세웠다. 시호가 진각선사(眞覺禪師)다.
舒州太平慧懃佛鑑禪師
本郡汪氏子 丱歲師廣敎圓深 試所習得度 每以唯此一事實 餘二則非眞 味之有省 乃徧參名宿 往來五祖之門有年 恚祖不爲印據 與圓悟相繼而去 及悟歸五祖 方丈徹證 而師忽至 意欲他邁 悟勉令挂搭 且曰 某與兄相別始月餘 比舊相見時如何 師曰 我所疑者 此也 遂參堂 一日 聞祖擧 僧問趙州 如何是和尙家風 州曰 老僧耳聾 高聲問將來 僧再問 州曰 你問我家風 我却識你家風了也 師卽大豁所疑 曰 乞和尙指示極則 祖曰 森羅及萬象 一法之所印 師展拜 祖令主翰墨 後同圓悟語話次 擧東寺問仰山 鎭海明珠因緣 至無理可伸處 圓悟徵曰 旣云收得 逮索此珠 又道無言可對 無理可伸 師不能加答 明日謂悟曰 東寺祇索一顆珠 仰山當下傾出一栲栳 悟深肯之 乃告之曰 老兄更宜親近老和尙去
●挂搭; 又作掛搭 掛 懸也 搭 附也挂也 禪僧止住 云掛搭 懸衣缽袋於僧堂之鉤也 因之住持許行脚人依住 謂爲許掛搭 與掛錫掛缽等亦同
서주(舒州) 태평(太平) 혜근(慧懃) 불감선사(佛鑑禪師)
본군(本郡) 왕씨(汪氏)의 아들이다. 관세(丱歲; 童年)에 광교원심(廣敎圓深)을 사사(師事; 師)했고 소습(所習)을 시험하여 득도(得度)했다. 매양 오직 이 일사(一事)만 실(實)이고 나머지 이(餘二)는 곧 진(眞)이 아니다로써 음미(吟味)하다가 성찰이 있었다. 이에 명숙(名宿)을 편참(徧參)했는데 오조지문(五祖之門)에 왕래한 지 유년(有年; 여러 해)이었다. 오조가 인거(印據; 印可하여 證據)하지 않음에 성을 내어(恚) 원오(圓悟)와 더불어 상계(相繼)하여 떠났다. 원오가 오조로 돌아가 방장(方丈)에서 철증(徹證)함에 이르러(及) 스님이 홀연히 이르렀다. 뜻에 딴 데로 가려고(邁) 했는데 원오가 권하여(勉) 괘탑(挂搭)하게 했다. 또(且) 가로되 모(某)가 형과 상별(相別)한 지 비로소 월여(月餘)인데 예전(舊)에 상견할 때에 비교하면 어떤가. 사왈 내가 의심하는 바의 것도 이것이다. 드디어 참당(參堂)했다. 어느 날 오조가 거(擧)함을 들었다(聞). 중이 조주(趙州)에게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주왈(州曰) 노승은 귀가 먹었으니 고성(高聲)으로 물어 가지고 오너라. 중이 다시 묻자 주왈 네가 나의 가풍을 물으니 내가 도리어 너의 가풍을 알았다. 스님이 곧 소의(所疑)가 크게 뚫렸다(豁). 가로되 화상에게 구걸하오니 극칙(極則)을 지시하십시오. 오조가 가로되 삼라 및 만상이 일법으로 인(印) 친 것이다(一法之所印). 스님이 예배를 폈다(展). 오조가 한묵(翰墨; 筆墨. 文章)을 주재(主宰)하게 했다. 후에 원오와 함께 어화(語話)하던 차에 동사(東寺)가 앙산에게 물은 진해명주인연(鎭海明珠因緣)을 거(擧)했는데 기히 펼 이치가 없다는 곳(無理可伸處)에 이르러 원오가 징왈(徵曰) 이미 이르되 수득(收得)했다 했거늘 차주(此珠)를 찾음에 이르렀고(逮) 또 말하되 가히 대답할 말이 없고 가히 펼 이치가 없다고 했는가. 스님이 능히 가답(加答)하지 못했다. 명일(明日) 원오에게 일러 가로되 동사(東寺)는 다만 한 알의 구슬을 찾았는데 앙산은 당하(當下)에 일고로(一栲栳)를 경출(傾出)했다. 원오가 깊이 수긍했다. 이에 고해 가로되 노형(老兄)은 다시 의당 노화상을 친근해야 한다.
●挂搭; 또 괘탑(掛搭)으로 지음. 괘(掛)는 현(懸; 매달다. 걸다)이며 탑(搭)은 부(附)며 괘(挂)임. 선승의 지주(止住)를 괘탑이라 이르나니 옷과 발대(缽袋; 缽은 鉢과 같음)를 승당의 갈고리에 걺임. 이로 인해 주지가 행각인의 의주(依住)를 허락함을 일컬어 허괘탑(許掛搭)이라 함. 괘석(掛錫)과 괘발(掛缽) 등도 또한 같음.
師一日造方丈 未及語 被祖詬罵 懡㦬而退 歸寮閉門打睡 恨祖不已 悟已密知 卽往扣門 師曰 誰 悟曰 我 師卽開門 悟問 你見老和尙如何 師曰 我本不去 被你賺累我 遭這老漢詬罵 悟呵呵大笑曰 你記得前日下底語麽 師曰 是甚麽語 悟曰 你又道東寺祇索一顆 仰山傾出一栲栳 師當下釋然 悟遂領師同上方丈 祖纔見 遽曰 懃兄 且喜大事了畢 明年命師爲第一座 會大平靈源赴黃龍 其席旣虛 源薦師於舒守孫鼎臣 遂命補處 五祖付法衣 師受而捧以示衆曰 昔釋迦文佛 以丈六金襴袈裟 披千尺彌勒佛身 佛身不長 袈裟不短 會麽 卽此樣無他樣 自是法道大播 政和初 詔住東都智海 五年乞歸 得旨居蔣山 樞密鄧公子常奏賜徽號椹服
스님이 어느 날 방장으로 나아가 말함에 미치지 아니한 전에 오조(五祖)의 구매(詬罵; 꾸짖고 욕함)를 입고 부끄럽게(懡㦬) 물러났다. 귀료(歸寮)하여 문을 닫고 타수(打睡)하면서 오조를 한(恨)하여 말지 않았다. 원오(圓悟)가 이미 몰래 알고서 곧 가서 문을 두드렸다. 사왈 누구인가. 원오가 가로되 나다. 스님이 곧 문을 열었다. 원오가 묻되 네가 노화상을 본 게 어떠한가. 사왈 내가 본래 떠나지 않은 것은 네가 나를 잠루(賺累; 속이고 묶다)함을 입어 이 노한의 구매(詬罵)를 만났다. 원오가 하하대소하고 가로되 네가 전일(前日) 내린 말을 기득(記得)하느냐. 사왈 이 무슨 말인가. 오왈(悟曰) 네가 또 말해라, 동사(東寺)는 다만 한 알을 찾았는데 앙산은 일고로(一栲栳)를 경출(傾出)했다고. 스님이 당하(當下)에 석연(釋然)했다. 원오가 드디어 스님을 데리고 함께 방장에 올랐다. 오조가 겨우 보자 급히 가로되 근형(懃兄) 차희(且喜)하나니 대사(大事)를 요필(了畢)했구나. 명년(明年) 스님을 임명해 제1좌로 삼았다. 마침 태평영원(大平靈源; 惟淸)이 황룡(黃龍)에 부임(赴任; 赴)하면서 그 자리가 이미 비자 영원이 스님을 서수(舒守) 손정신(孫鼎臣)에게 천거(薦擧)하여 드디어 보처(補處)에 임명했다. 오조가 법의(法衣)를 부촉하자 스님이 받아 받들어 대중에게 보여 가로되 옛적에 석가문불(釋迦文佛)이 장륙(丈六) 금란가사(金襴袈裟)를 천척(千尺) 미륵불신(彌勒佛身)에 입혔는데(披) 불신(佛身)이 길지 않고 가사가 짧지 않았다. 아느냐. 곧 차양(此樣)이 타양(他樣)이 없다. 이로부터(自是) 법도(法道)를 크게 퍼뜨렸다. 정화(政和; 1111-1117) 초 조칙으로 동도(東都) 지해(智海)에 주(住)했고 5년(1115) 걸귀(乞歸)했고 성지(聖旨; 旨)를 얻어 장산(蔣山)에 거주했다. 추밀(樞密) 등공(鄧公) 자상(子常)이 주청(奏請)해 휘호(徽號; 아름다운 호)와 침복(椹服; 方服)을 주었다.
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喫醋知酸 喫鹽知鹹 曰 弓折箭盡時如何 師曰 一場懡㦬 問 不與萬法爲侶者是甚麽人 師曰 拶破露柱 曰 歸鄕無路時如何 師曰 王程有限 曰 前三三後三三 又作麽生 師曰 六六三十六 問 承聞和尙親見五祖 是否 師曰 鐵牛齧碎黃金草 曰 恁麽則親見五祖也 師曰 我與你有甚冤讎 曰 祇如達磨見武帝意旨如何 師曰 胡言易辯 漢語難明 曰 爲甚棲棲暗渡江 師曰 因風借便 問 如何是主中賓 師曰 進前退後愁殺人 曰 如何是賓中主 師曰 眞實之言成妄語 曰 如何是賓中賓 師曰 夫子遊行厄在陳 曰 如何是主中主 師曰 終日同行非伴侶 曰 賓主已蒙師指示 向上宗乘事若何 師曰 大斧斫了手摩挲 問 卽心卽佛卽不問 非心非佛事如何 師曰 昨日有僧問 老僧不對 曰 未審與卽心卽佛相去多少 師曰 近則千里萬里 遠則不隔絲毫 曰 忽被學人截斷兩頭 歸家穩坐 又作麽生 師曰 你家在甚麽處 曰 大千沙界內 一箇自由身 師曰 未到家在 更道 曰 學人到這裏 直得東西不辨 南北不分去也 師曰 未爲分外
●王程; 爲王事之路程
●棲棲; 碧巖錄第六十七則種電鈔云 論語曰 何爲是棲棲者歟 注 猶皇皇也
●夫子遊行厄在陳; 孔子家語在厄第二十 楚昭王聘孔子 孔子往拜禮焉 路出於陳 蔡 陳蔡大夫相與謀曰 孔子聖賢 其所刺譏 皆中諸侯之病 若用於楚 則陳蔡危矣 遂使徒兵距孔子 孔子不得行 絶糧七日 外無所通 藜羹不充 從者皆病
승문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초를 먹으면 신 줄 알고 소금을 먹으면 짠 줄 안다. 가로되 궁절전진(弓折箭盡) 시 어떻습니까. 사왈 일장마라(一場懡㦬)다. 묻되 만법과 더불어 짝하지 않는 자는 이 어떤 사람입니까. 사왈 노주(露柱)를 찰파(拶破; 핍박해 깨뜨림)한다. 가로되 귀향하는데 길이 없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왕정(王程)이 유한(有限)하다. 가로되 전삼삼후삼삼(前三三後三三)은 또 어떻습니까. 사왈 육육은 삼십육이다. 묻되 승문(承聞)컨대 화상이 오조(五祖)를 친견했다 하니 그렇습니까. 사왈 철우(鐵牛)가 황금초(黃金草)를 씹어 부순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오조를 친견했습니다. 사왈 내가 너와 더불어 무슨 원수(冤讎; 怨讎와 같음)가 있느냐. 가로되 지여(祇如) 달마가 무제(武帝)를 본 의지가 무엇입니까. 사왈 호언(胡言)은 쉽게 분변(辯)하지만 한어(漢語)는 밝히기 어렵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서서(棲棲)히 몰래 도강(渡江)했습니까. 사왈 바람으로 인해 편의를 빌렸다(借便). 묻되 무엇이 이 주중빈(主中賓)입니까. 사왈 진전(進前)하고 퇴후(退後)함은 사람을 너무 수심케 한다(愁殺人). 가로되 무엇이 이 빈중주(賓中主)입니까. 사왈 진실지언(眞實之言)이 망어(妄語)를 이룬다. 가로되 무엇이 이 빈중빈(賓中賓)입니까. 사왈 부자가 유행하다가 액이 진에 있었다(夫子遊行厄在陳). 가로되 무엇이 이 주중주(主中主)입니까. 사왈 종일 동행하지만 반려(伴侶)가 아니다. 가로되 빈주는 이미 스님의 지시를 입었습니다(蒙). 향상종승사(向上宗乘事)는 어떻습니까(若何). 사왈 큰 도끼로 쪼개고 나서 손으로 어루만진다(摩挲). 묻되 즉심즉불(卽心卽佛)은 곧 묻지 않습니다. 비심비불(非心非佛)의 일은 어떻습니까. 사왈 작일(昨日) 어떤 중이 물었는데 노승이 대답하지 않았다. 가로되 미심하오니 즉심즉불과 서로 떨어짐이 얼마입니까. 사왈 가까운 즉 천 리 만 리며 먼 즉 사호(絲毫)도 막히지 않았다. 가로되 홀연히 학인이 양두(兩頭)를 절단하고 귀가하여 온좌(穩坐)함을 입으면 또 어떻습니까. 사왈 너의 집이 어느 곳에 있느냐. 가로되 대천사계(大千沙界) 안에 일개의 자유로운 몸입니다. 사왈 집에 이르지 못했으니 다시 말하라. 가로되 학인이 이 속에 이르러선 바로(直) 동서를 불변(不辨)하고 남북을 불분(不分)함을 얻었습니다. 사왈 분외(分外; 분한 밖)가 되지 않는다.
●王程; 왕사(王事)의 노정(路程)이 됨.
●棲棲; 벽암록 제67칙 종전초에 이르되 논어에 가로되 무엇을 이 서서(棲棲)라고 하는 것인가. 주(注) 황황(皇皇; 悤忙. 또 마음이 불안함을 가리킴)과 같다.
●夫子遊行厄在陳; 공자가어 재액(在厄) 제20. 초소왕(楚昭王)이 공자를 초빙했다. 공자가 가서 배례(拜禮)하는데 길이 진(陳)ㆍ채(蔡)로 났다. 진(陳)ㆍ채(蔡)의 대부들이 서로 함께 모의하여 가로되 공자는 성현이며 그가 자기(刺譏; 譏刺)하는 바는 모두 제후의 병을 맞힌다. 만약 초에 중용되면 곧 진(陳)ㆍ채(蔡)가 위험하다. 드디어 도병(徒兵; 步兵)을 시켜 공자를 막았다(距). 공자가 행함을 얻지 못해 양식이 떨어지기가 7일이었으며 밖으로 소통함이 없었다. 여갱(藜羹; 명아주로 끓인 국이라는 뜻으로, 맛없고 거친 음식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도 충분하지 않았으며 종자(從者)가 모두 병들었다.
上堂 至道無難 唯嫌揀擇 桃華紅 李華白 誰道融融只一色 燕子語 黃鸎鳴 誰道關關祇一聲 不透祖師關捩子 空認山河作眼睛 上堂 日日日西沉 日日日東上 若欲學菩提 擲下拄杖曰 但看此模樣 五祖周祥 上堂 去年今日時 紅爐片雪飛 今日去年時 曹娥讀夜碑 末後一句子 佛眼莫能窺 白蓮峯頂上 紅日繞須彌 鳥啄珊瑚樹 鯨呑離水犀 太平家業在 千古襲楊岐 上堂 橫拄杖曰 先照後用 竪起曰 先用後照 倒轉曰 照用同時 卓一下曰 照用不同時 汝等諸人 被拄杖一口呑盡了也 自是你不覺 若向這裏道得轉身句 免見一場氣悶 其或未然 老僧今日失利
●融融; 形容和樂愉快的樣子
●關關 鳥類雌雄相和的鳴聲 後亦泛指鳥鳴聲
●周祥; 一周忌也 佛之一周忌卽儒家之小祥忌 故謂之祥
●曹娥; 肇論疏上 漢時會稽人曾肝 能撫節安歌 度浙江溺死 肝女曹娥 年十二 求肝屍不得 自投浙江而死 經宿抱父屍而出 度尙爲作碑 置於會稽上虞山 漢末議郞蔡邕 夜至碑所求火不得 以手摸之而讀 歎其能文 乃鎸碑背 作八字云 黃絹幼婦外孫韲臼
●末後一句子; 子 助詞 卽末後一句 謂到達徹底大悟之極處所言之至極語 更無其他語句能超越者
상당(上堂) 지도(至道)는 어려움이 없지만 오직 간택(揀擇)을 꺼린다(嫌). 도화(桃華)는 붉고 이화(李華)는 희거늘 누가 융융(融融)하여 다만 일색(一色)이라고 말하느냐. 연자(燕子; 제비)는 지저귀고(語) 황앵(黃鸎)은 울거늘 누가 관관(關關)하며 다만 일성(一聲)이라고 말하느냐. 조사의 관려자(關捩子)를 투과하지 못하면 공연히 산하(山河)를 인정해 눈동자로 삼는다. 상당(上堂) 날마다(日日) 해가 서쪽으로 잠기고 날마다 해가 동쪽에서 떠오른다. 만약 보리(菩提)를 배우고 싶다면 주장자를 척하(擲下)하고 가로되 단지 이 모양을 보아라. 오조(五祖)의 주상(周祥)에 상당(上堂) 지난해 금일의 때에/ 홍로(紅爐)에 편설(片雪)이 날리더니/ 금일의 지난해의 때에/ 조아(曹娥)가 밤중의 비문을 읽는다(曹娥讀夜碑)/ 말후일구자(末後一句子)는/ 불안으로도 능히 엿보지 못하나니/ 백련봉(白蓮峯) 정상(頂上)에 홍일(紅日)이 수미(須彌)를 돈다(繞)/ 새가 산호수(珊瑚樹)를 쪼고/ 고래가 물 떠난 무소(犀)를 삼키나니/ 태평의 가업(家業)이 있어/ 천고(千古)에 양기(楊岐)를 습(襲; 因襲하다)한다. 상당(上堂) 주장자를 가로놓고 가로되 선조후용(先照後用)이다. 세워 일으키고 가로되 선용후조(先用後照)다. 거꾸로 돌리고 가로되 종용동시(照用同時)다. 한 번 치고 가로되 조용부동시(照用不同時)다. 너희 등 제인이, 주장자가 일구(一口)로 삼켜 없앰을 입었거늘 스스로 이 너희가 깨닫지 못한다. 만약 이 속을 향해 전신구(轉身句)를 말해 얻으면 한바탕 기민(氣悶)을 봄을 면하려니와 그 혹 그렇지 못하다면 노승이 금일 실리(失利)했다.
●融融; 화락하고 유쾌한 양자를 형용.
●關關 조류의 자웅이 서로 화답하는 울음소리임. 후에 또한 널리 새의 울음소리를 가리켰음.
●周祥; 1주기(周忌)임. 불가의 1주기는 곧 유가의 소상기(小祥忌)인지라 고로 이를 일러 상(祥)이라 함.
●曹娥; 조론소상. 한(漢)나라 때 회계(會稽) 사람 증간(曾肝)은 능히 절안가(節安歌)를 안무(按撫)했는데 절강(浙江)을 건너다 익사했다. 증간의 딸 조아(曹娥)는 나이가 12이었는데 증간의 시체를 얻지 못해 스스로 절강에 투신해 죽었다. 하룻밤을 지나(經宿) 아버지의 시체를 안고 나왔다. 도상(度尙)이 위해 비(碑)를 만들어 회계 상우산(上虞山)에 놓았다. 한말(漢末) 의랑(議郞) 채옹(蔡邕)이 밤에 비소(碑所)에 이르러 불을 구하지 못해 손으로써 그것을 더듬어 읽었는데 그 능문(能文)에 감탄했다. 이에 비배(碑背)에 새겨 8자를 지어 이르되 황견유부외손제구(黃絹幼婦外孫韲臼)로다.
●末後一句子; 자는 조사니 곧 말후일구. 이르자면 철저히 대오한 극처(極處)에 이르러 말하는 바의 지극한 말이니 다시 기타의 어구가 능히 초월함이 없는 것.
上堂 金烏急玉兔速 急急流光七月十 無窮遊子不歸家 縱歸祇在門前立 門前立 把手牽伊不肯入 萬里看看寸草無 殘華落地無人拾 無人拾 一回雨過一回濕 上堂 世尊有密語 迦葉不覆藏 乃曰 你尋常說黃道黑 評品古今 豈不是密語 你尋常折旋俯仰 拈匙把箸 祇揖萬福 是覆藏不覆藏 忽然瞥地去 也不可知 要會麽 世尊有密語 冬到寒食一百五 迦葉不覆藏 水泄不通已露贓 靈利衲僧如會得 一重雪上一重霜 上堂 十五日已前事 錦上鋪華 十五日已後事 如海一漚發 正當十五日 大似一尺鏡照千里之像 雖則眞空絕跡 其奈海印發光 任他露柱開華 說甚佛面百醜 何故 到頭霜夜月 任運落前溪
●祇揖; 恭敬地作揖
상당(上堂) 금오(金烏)는 급하고 옥토(玉兔)는 속(速)하나니/ 급급(急急)한 유광(流光)이 7월 10이다/ 무궁한 유자(遊子)가 귀가하지 못했고/ 비록(縱) 돌아왔더라도 다만 문 앞에 섰다/ 문 앞에 섰는데/ 손잡고 그(伊)를 끌어당겨도(牽) 들기를 수긍하지 않는다/ 만 리에 보고 보아도 촌초(寸草)도 없고/ 잔화(殘華)가 땅에 떨어져도 줍는 사람이 없다/ 줍는 사람이 없으니/ 일회(一回) 비가 지나매 일회 축축하다. 상당(上堂) 세존이 밀어(密語)가 있는데 가섭이 부장(覆藏)하지 않았다. 이에 가로되 너희가 심상(尋常)에 황을 설하고 흑을 말하며(說黃道黑) 고금을 품평(評品)하거늘 어찌 이 밀어가 아니겠는가. 너희가 심상에 절선부앙(折旋俯仰)하고 염시파저(拈匙把箸)하고 지읍(祇揖)하며 만복(萬福)하소서 하나니 이 부장(覆藏)이냐 부장이 아니냐. 홀연히 별지하더라도(瞥地去) 또한 가히 알지 못한다. 알고자 하느냐, 세존이 밀어가 있음이여, 동지에서 한식까지가 일백오(一百五; 105일)다. 가섭이 부장하지 않음이여, 수설불통(水泄不通; 물샐 틈이 없음)이지만 이미 장물(贓物; 贓)이 드러났다. 영리(靈利)한 납승이 회득(會得)할 것 같으면 일중(一重)의 눈 위에 일중의 서리다. 상당(上堂) 15일 이전(已前)의 일은 금상포화(錦上鋪華)며 15일 이후의 일은 바다에 한 거품이 일어남과 같거니와 바로 15일에 당해선 1척(尺)의 거울로 천리지상(千里之像)을 비춤과 대사(大似; 매우 흡사)하다. 비록 곧 진공(眞空)엔 절적(絕跡)이지만 해인(海印)이 발광(發光)함을 그 어찌할 것이며(其奈) 저(他) 노주(露柱)가 개화(開華)함에 맡기거늘 무슨 불면(佛面)의 백추(百醜)를 설하겠는가. 무슨 연고냐, 마침내(到頭) 상야(霜夜)의 달이 임운(任運)하여 전계(前溪)에 떨어졌다.
●祇揖; 공경지(恭敬地)에서 작읍(作揖)함.
上堂 擧 僧問趙州 如何是不遷義 州以手作流水勢 其僧有省 又僧問法眼 不取於相 如如不動 如何是不取於相 見於如如不動 眼曰 日出東方夜落西 其僧亦有省 若也於此見得 方知道旋嵐偃嶽 本來常靜 江河競注 元自不流 其或未然 不免更爲饒舌 天左旋 地右轉 古往今來經幾徧 金烏飛 玉兔走 纔方出海門 又落靑山後 江河波渺渺 淮濟浪悠悠 直入滄溟晝夜流 遂高聲曰 諸禪德 還見如如不動麽 師室中以木骰子六隻 面面皆書么字 僧纔入 師擲曰 會麽 僧擬不擬 師卽打出 七年九月八日 上堂 祖師心印 狀似鐵牛之機 去卽印住 住卽印破 直饒不去不住 亦未是衲僧行履處 且作麽生是衲僧行履處 待十月前後 爲諸人注破 至後月八日 沐浴更衣 端坐 手寫數書別故舊 停筆而化 闍維收靈骨設利 塔於本山
●旋嵐; 風名 慧琳音義七十三 旋嵐 或作毘嵐婆 或言鞞藍婆 或作吠藍 或言隨藍 皆是梵之楚夏耳 此云迅猛風
상당(上堂) 거(擧)하다. 중이 조주(趙州)에게 묻되 무엇이 이 불천의(不遷義)입니까. 조주가 손으로써 유수세(流水勢)를 지었다. 그 중이 성찰이 있었다. 또 중이 법안(法眼)에게 묻되 상(相)을 취하지 않고 여여(如如)하여 부동(不動)이라 하니 무엇이 이 상(相)을 취하지 않고 여여하여 부동임을 봅니까. 안왈(眼曰) 해가 동방에서 나와 밤에 서방으로 떨어진다. 그 중이 또한 성찰이 있었다. 만약에 여기에서 견득(見得)한다면 바야흐로 선람(旋嵐)이 산악을 쓰러뜨려도 본래 늘 고요하고 강하가 다투어 흘러도(注) 원래 스스로 흐르지 않는다고 말할 줄 알 것이다. 그 혹 그렇지 못할진대 다시 요설(饒舌)이 됨을 면하지 못한다. 하늘은 좌선(左旋)하고 땅은 우전(右轉)하며 고왕금래(古往今來)에 몇 편(徧; 回)을 겪었던가. 금오(金烏)는 날고 옥토(玉兔)는 달리면서 겨우 방금 해문(海門)에서 나오더니 또 청산의 뒤로 떨어진다. 강하(江河)의 파도는 묘묘(渺渺)하고 회제(淮濟)의 파랑은 유유(悠悠)하면서 창명(滄溟)으로 직입(直入)하여 주야로 흐른다. 드디어 고성(高聲)으로 가로되 제선덕(諸禪德)이여, 도리어 여여하여 부동(不動)임을 보느냐. 스님이 실중(室中)에서 목투자(木骰子; 나무로 만든 주사위) 6척(隻)을 썼는데(以) 면(面)마다 모두 요자(么字)를 썼다(書). 중이 겨우 들어오면 스님이 던지고 가로되 아느냐. 중이 헤아리거나 헤아리 않거나(擬不擬) 스님이 곧 때리고 쫓아내었다. 7년(1117) 9월 8일 상당(上堂) 조사의 심인(心印)은 철우지기(鐵牛之機)와 상사(狀似; 形狀이 흡사)하여 떼면(去) 곧 인(印)이 머물고(住) 머물면 곧 인(印)이 깨어진다. 직요(直饒) 불거부주(不去不住)하더라도 또한 이 납승의 행리처(行履處)가 아니니 그래 무엇이 이 납승의 행리처인가. 10월 전후를 기다렸다가 제인을 위해 주파(注破)하겠다. 후월(後月; 10월) 8일에 이르자 목욕하고 경의(更衣)하고 단좌(端坐)하여 손수 수서(數書)를 서사하여 고구(故舊)에게 이별하고 붓을 멈추더니 화(化)했다. 사유(闍維)하여 영골(靈骨)과 설리(設利)를 거두어 본산에 탑을 세웠다.
●旋嵐; 바람의 이름. 혜림음의73. 선람(旋嵐) 혹 비람바(毘嵐婆; 梵 va irambhaka)로 지으며 혹 말하되 비람바(鞞藍婆)며 혹은 폐람(吠藍)으로 지으며 혹은 말하되 수람(隨藍)이니 모두 이 범음(梵音)의 초하(楚夏)일 뿐이다. 여기에선 이르되 신맹풍(迅猛風)이다.
舒州龍門淸遠佛眼禪師
臨邛李氏子 嚴正寡言 十四圓具 依毗尼 究其說 因讀法華經 至是法非思量分別之所能解 持以問講師 講師莫能答 師嘆曰 義學名相 非所以了生死大事 遂卷衣南遊 造舒州太平演禪師法席 因丐於廬州 偶雨足趺仆地 煩懣間 聞二人交相惡罵 諫者曰 你猶自煩惱在 師於言下有省 及歸 凡有所問 演卽曰 我不如你 你自會得好 或曰 我不會 我不如你 師愈疑 遂咨決於元禮首座 禮乃以手引師之耳 繞圍爐數帀 且行且語曰 你自會得好 師曰 有冀開發 乃爾相戲耶 禮曰 你他後悟去 方知今日曲折耳
서주(舒州) 용문(龍門) 청원(淸遠) 불안선사(佛眼禪師)
임공(臨邛) 이씨(李氏)의 아들이다. 엄정(嚴正)하고 과언(寡言)했으며 14에 원구(圓具)했다. 비니(毗尼)에 의해 그 설을 연구했다. 법화경을 읽음으로 인해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 함에 이르자 가지고(持) 강사(講師)에게 물었는데 강사가 능히 답하지 못했다. 스님이 탄식해 가로되 의학(義學)의 명상(名相)은 생사대사를 깨칠(了) 소이(所以)가 아니다. 드디어 옷을 말아(卷衣) 남유(南遊)했고 서주(舒州) 태평연(太平演; 法演) 선사의 법석으로 나아갔다(造). 여주(廬州)에서 구걸(丐)함으로 인해 우연히 비(雨)에 족부(足趺; 발등)가 땅에 넘어졌고 번만(煩懣; 煩悶)하는 사이에 두 사람이 교상(交相; 互相) 악매(惡罵; 악한 말로 욕함)함을 들었는데 간(諫)하는 자가 가로되 네가 오히려 스스로 번뇌하여 있다(煩惱在). 스님이 언하에 성찰이 있었다. 돌아옴에 이르러(及歸) 무릇 묻는 바가 있으면 법연(法演)이 곧 가로되 내가 너만 같지 못하니 네가 스스로 회득(會得; 領會)함이 좋다. 혹은 가로되 나는 알지 못한다. 내가 너만 같지 못하다. 스님이 더욱(愈) 의심했다. 드디어 원례(元禮) 수좌에게 자결(咨決)하자 원례가 이에 손으로써 스님의 귀를 당겨 화로를 몇 바퀴(數帀) 위요(繞圍)하고는 차행차어(且行且語)하여 가로되 네가 스스로 회득(會得)해야 좋다. 사왈 개발(開發)을 바람(冀)이 있거늘 이에 이렇게(爾) 상희(相戲)합니까. 예왈(禮曰) 네가 타후(他後)에 깨달으면(悟去) 바야흐로 금일의 곡절(曲折)을 알 것이다.
太平將遷海會 師慨然曰 吾持鉢方歸 復參隨往一荒院 安能究決己事耶 遂作偈告辭 之蔣山坐夏 邂逅靈源禪師 日益厚善 從容言話間 師曰 比見都下一尊宿語句 似有緣 靈源曰 演公天下第一等宗師 何故捨而事遠遊 所謂有緣者 蓋知解之師與公初心相應耳 師從所勉 徑趨海會 後命典謁 適寒夜孤坐 撥爐見火一豆許 恍然自喜曰 深深撥 有些子 平生事 只如此 遽起閱几上傳燈錄 至破竈墮因緣 忽大悟 作偈曰 刀刀林鳥啼 披衣終夜坐 撥火悟平生 窮神歸破墮 事皎人自迷 曲淡誰能和 念之永不忘 門開少人過 圓悟因詣其寮 擧靑林般土話驗之 且謂 古今無人出得 你如何會 師曰 也有甚難 悟曰 祇如他道 鐵輪天子寰中旨意作麽生 師曰 我道帝釋宮中放赦書 悟退語人曰 且喜遠兄便有活人句也 自是隱居四面大中庵 屬天下一新崇寧萬壽寺 舒守王公渙之命師開法 次補龍門 道望尤振 後遷和之褒禪 樞密鄧公洵武奏賜師號紫衣
●參隨; 參問之隨從者
●典謁; 掌管賓客請見的傳達和接待事務
●刀刀; 多語之貌 又作忉忉
태평(太平; 법연)이 장차 해회(海會)로 옮기려 하자 스님이 개연(慨然)히 가로되 내가 지발(持鉢; 托鉢)하고 방금 돌아왔는데 다시 참수(參隨)하여 한 황원(荒院)으로 가야 하는가. 어찌(安) 능히 기사(己事)를 구결(究決)하겠는가. 드디어 게를 지어 고별을 고했다(告辭). 장산(蔣山)으로 가서(之) 좌하(坐夏)하다가 영원선사(靈源禪師; 惟淸)를 해후(邂逅)했는데 날로 후선을 더했다(日益厚善). 종용(從容)히 언화(言話)하던 사이에 사왈 요사이(比; 近來) 도하(都下; 京都)의 한 존숙의 어구(語句)를 보았는데 인연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영원이 가로되 연공(演公)은 천하 제일등의 종사거늘 무슨 연고로 버리고 원유(遠遊)에 종사(從事; 事)하는가. 이른 바 인연이 있다는 것은 대개 지해(知解)의 스승과 공(公)의 초심(初心)이 상응했을 따름이다. 스님이 권하는 바(所勉)를 좇아 해회(海會)로 질러갔다(徑趨). 후에 전알(典謁)을 명했다. 마침(適) 추운 밤에 고좌(孤坐)하다가 화로를 헤쳐 일두허(一豆許; 한 알의 콩 가량)의 불을 보고 황연(恍然)하여 스스로 기뻐하며 가로되 깊고 깊이 헤치니/ 사자(些子)가 있구나/ 평생의 일이/ 다만 이와 같구나. 급히 일어나 궤상(几上)의 전등록을 읽었는데 파조타인연(破竈墮因緣)에 이르러 홀연히 대오했다. 작게(作偈)하여 가로되 도도(刀刀)하며 숲의 새가 지저귀는데/ 옷을 입고 밤새워 앉았다/ 불을 헤치다가 평생을 깨쳤나니/ 궁신(窮神; 곤궁한 신)이 파타(破墮; 파조타)에게 귀의(歸)했다/ 일이 밝거늘(事皎) 사람이 스스로 미(迷)하고/ 곡이 맑거늘(曲淡) 누가 능히 화(和)하나/ 이를 사념하며 길이 잊지 않나니/ 문이 열렸으나 지나는 사람이 적더라. 원오(圓悟)가 인하여 기료(其寮)에 나아가(詣) 청림(靑林)의 반토화(般土話)를 들어 시험했다. 또(且) 이르되 고금에 출득(出得)한 사람이 없거늘 네가 어떻게 이회하느냐. 사왈 또한 심히 어려움이 있다. 오왈(悟曰) 지여(祇如) 그가 말한 철륜천자(鐵輪天子)의 환중지(寰中旨)란 뜻이 무엇인가(作麽生). 사왈 나는 말하나니 제석궁중(帝釋宮中)에서 사서(赦書)를 놓는다. 원오가 물러나 사람에게 말해 가로되 차희(且喜)하노니 원형(遠兄)이 바로 활인구(活人句)가 있다. 이로부터 사면(四面) 대중암(大中庵)에 은거했다. 천하에서 숭녕(崇寧) 만수사(萬壽寺)를 일신(一新)함에 당했는데(屬) 서수(舒守) 왕공(王公) 환(渙)이 스님의 개법을 명(命)했다. 다음 용문(龍門)에 보직(補職)했고 도망(道望; 禪法의 聲望)을 더욱 진작했다(尤振). 후에 화(和)의 포선(褒禪)으로 옮겼다. 추밀(樞密) 등공(鄧公) 순무(洵武)가 주청하여 사호(師號)와 자의(紫衣)를 주었다.
●參隨; 참문(參問)의 수종자(隨從者).
●典謁; 빈객이 청견(請見)하는 전달과 접대의 사무를 장관함.
●刀刀; 말이 많은 모양. 또 도도(忉忉)로 지음.
上堂 臺山路上 過客全稀 破竈堂前 感恩無地 雪埋庭栢 冰鎻偃谿 雖在南方火爐頭 不入他家韲甕裏 看看臘月三十日 便是孟春猶寒 你等諸人 各須努力向前 切忌自生退屈 上堂 卓拄杖曰 圓明了知 不由心念 抵死要道 墮坑落壍 畢竟如何 乃倚拄杖 下座 上堂 泡幻同無礙 如何不了悟 眼裏瞳人吹呌子 達法在其中 非今亦非古 六隻骰子滿盆紅 大衆 時人爲甚麽坐地看楊州 鉢盂著柄新飜樣 牛上騎牛笑殺人 上堂 趙州不見南泉 山僧不識五祖 甜瓜徹蔕甜 苦瓠連根苦 上堂 一葉落 天下春 無路尋思笑殺人 下是天 上是地 此言不入時流意 南作北 東作西 動而止 喜而悲 虵頭蝎尾一試之 猛虎口裏活雀兒 是何言 歸堂去 上堂 千說萬說 不如親面一見 縱不說亦自分明 王子寶刀喻 衆盲摸象喻 禪學中隔江招手事 望州亭相見事 迥絕無人處事 深山巖崖處事 此皆親面而見之 不在說也
●王子寶刀; 祖庭事苑六 王子寶刀 涅槃(8)云 譬如二人 共爲親友 一者王子 一是貧賤 如是二人 互相往返 是時貧子見是王子有一好刀 淨妙第一 心中貪著 王子後時捉持是刀 逃至它國 於是貧人 後於它家 寄臥止宿 卽於眠中䆿語 刀刀 傍人聞已 收至王所 時王問言 汝言刀者 何處得邪 是人具以上事答王 王今設使屠割臣身 分張手足 欲得刀者 實不可得 臣與王子 素爲親厚 先與一處 雖曾眼見 乃至不敢以手掁觸 況當故取 王復問言 卿見刀時 相貌何如類 答言 大王 臣所見如羊角 王聞是已 欣然而笑語言 汝今隨意所至 莫生憂怖 我庫藏中都無是刀
상당(上堂) 대산로상(臺山路上)에 과객(過客)이 전혀 드물고 파조당전(破竈堂前)에 감은(感恩)할 땅이 없다. 눈이 정백(庭栢)을 묻고 얼음이 언계(偃谿)를 에웠다(鎻). 비록 남방의 화로두(火爐頭; 화롯가)에 있으나 타가(他家)의 제옹(韲甕) 속에 들어가지 않는다. 간간(看看; 장차) 납월 30일이지만 바로 이 맹춘인지라 아직 춥다. 너희 등 제인은 각기 꼭 노력(努力)하여 앞으로 향하고 스스로 퇴굴(退屈)을 냄을 절기(切忌)하라. 상당(上堂) 주장자를 치고 가로되 원명(圓明)히 요지(了知)함은 심념(心念)을 말미암지 않나니 죽음의 요도(要道)에 다다라 타갱낙참(墮坑落壍)한다. 필경 어떠한가, 이에 주장자에 기대어 하좌했다. 상당(上堂) 포환(泡幻)은 무애(無礙)와 한가지거늘 어찌하여 요오(了悟)하지 못하는가 하니 안리(眼裏) 동인(瞳人)이 규자(呌子; 호루라기)를 분다. 달법(達法)이 그 가운데 있어 지금도 아니고 또한 옛도 아니다 하니 6척(隻) 투자(骰子)가 동이(盆) 가득히 붉다. 대중이여, 시인(時人) 무엇 때문에 좌지(坐地)하여 양주(楊州)를 보느냐. 발우에 자루를 붙이니 새로 번복하는 모양이며 소 위에서 소를 타니 사람을 너무 웃긴다(笑殺人). 상당(上堂) 조주는 남천을 보지 않았고/ 산승은 오조(五祖)를 알지 못한다/ 단 오이는 꼭지까지 달고/ 쓴 박은 뿌리까지 쓰다. 상당(上堂) 한 잎이 떨어지매 천하가 봄이니 심사(尋思)할 길이 없어 사람을 너무 웃긴다. 아래는 이 하늘이며 위는 이 땅이니 차언此言)은 시류(時流)의 뜻에 들지 않는다. 남을 북으로 짓고 동을 서로 짓고 움직이면서 멈추고 기뻐하면서 슬퍼하니 사두(虵頭)와 갈미(蝎尾)로 한 번 시험하고 맹호 입 속의 산 참새다. 이 무슨 말인가, 귀당하라(歸堂去). 상당(上堂) 천설만설(千說萬說)이 친면(親面; 친히 當面)하여 일견(一見)함만 같지 못하나니 비록(縱) 설하지 않더라도 또한 스스로 분명하다. 왕자보도유(王子寶刀喩)ㆍ중맹모상유(衆盲摸象喩)와 선학 중에 격강초수사(隔江招手事)ㆍ망주정상견사(望州亭相見事)ㆍ형절무인처사(迥絶無人處事)ㆍ심산암애처사(深山巖崖處事)는 이 모두가 친면(親面)해야 그것을 보나니 말씀에 있는 게 아니다.
●王子寶刀; 조정사원6. 왕자보도(王子寶刀) 열반경(8)에 이르되 비여(譬如) 두 사람이 함께 친우가 되었는데 1자는 왕자며 1은 이 빈천(貧賤)했다. 이와 같이 두 사람이 호상 왕반(往返)했다. 이때 빈자(貧子; 子는 조사)가 이 왕자가 한 호도(好刀)를 가졌음을 보았는데 정묘(淨妙)하여 제일이었으며 심중에 탐착(貪著)했다. 왕자가 후시(後時; 뒷 날)에 이 도(刀)를 착지(捉持)하고 도주하여 다른 나라에 이르렀다. 이에 빈인(貧人)이 뒤에 다른 집에서 기와(寄臥; 기탁해 누움)하며 지숙(止宿; 止는 머물 지)하다가 곧 수면 중에 잠꼬대로 말하기를 도(刀), 도(刀). 곁의 사람이 듣고 나서 거두어(收) 왕의 처소에 이르렀다. 때에 왕이 물어 말하되 네가 말한 도(刀)라는 것은 어느 곳에서 얻었는가. 이 사람이 위의 일을 갖추어 왕에게 대답했다. 왕께서 지금 설사 신(臣)의 몸을 도할(屠割; 屠는 죽일 도. 割은 벨 할)하여 수족(手足)을 분장(分張; 나누어 벌여놓음)하여 도(刀)를 얻으려고 하더라도 실로 가히 얻지 못합니다. 신이 왕자와 본디 친분이 두터웠으며 먼저 한 곳에서 함께했는데 비록 일찍이 눈으로 보기는 했으나 내지 감히 손으로 더듬거나(掁은 더듬을 쟁) 접촉하지 않았거늘 하물며 응당 짐짓 취하겠습니까. 왕이 다시 물어 말하되 경(卿)이 도(刀)를 보았을 때 상모(相貌)가 어떤 종류였던가. 답해 말하되 대왕이시여 신이 본 바로는 양각(羊角)과 같았습니다. 왕이 이를 듣고 나서 흔연(欣然)히 웃으며 어언(語言)하되 너는 지금 이르는 곳을 뜻대로 하고 우포(憂怖)를 내지 말아라. 나의 고장(庫藏) 중엔 도무지 이런 도(刀)가 없다.
上堂 蘇武牧羊 辱而不屈 李陵望漢 樂以忘歸 是在外國 在本國佛諸弟子中 有者雙足越坑 有者聆箏起舞 有者身埋糞壤 有者呵罵河神 是習氣 是妙用 至於擎叉打地 竪拂敲牀 睦州一向閉門 魯祖終年面壁 是爲人 是不爲人 信知一切凡夫 埋沒寶藏 殊不丈夫 諸人何不擺柁張帆 拋江過岸 休更釘樁搖艣 何日到家 旣作曹谿人 又是家裏漢 還見家裏事麽 僧問 劫火洞然 大千俱壞 未審這箇壞不壞 師曰 黑漆桶裏黃金色 問 道遠乎哉 觸事而眞 如何是道 師曰 頂上八尺五 曰 此理如何 師曰 方圓七八寸 問 劫火威音前 別是一壺天 御樓前射獵 不是刈茆田 提起坐具曰 這箇喚作甚麽 師曰 正是刈茆田 僧便喝 師曰 猶作主在
●蘇武; (?-前60) 字子卿 杜陵(今陝西省西安市東南)人 武帝時 以中郞將使匈奴 抑留十九年 昭帝卽位後 持漢節而迴長安 昭帝爲典屬國 宣帝封關內侯 見漢書
●李陵; (前134-前74) 前漢武將 字少卿 李廣之孫 武帝天漢二年(前99) 率步兵五千人 出居延北 與單于戰 斬首虜萬餘級 陵兵敗 降匈奴 單于乃貴陵 以其女妻之 居彼二十年 病死 與親舊蘇武唱和之詩 爲五言古詩之起源矣 [漢書六]
●雙足越坑下; 法演語錄中 目犍連雙足越坑 大迦葉聆箏起舞 畢陵迦訶罵河神 迦留陀夷埋身糞壤 此事敎中一一有出處 總道是習氣
상당(上堂) 소무(蘇武)는 목양(牧羊)하며 욕되었으나 굴하지 않았고 이릉(李陵)은 망한(望漢)했으나 즐기며 돌아옴을 잊었나니 이는 외국(外國)에 있었고 본국에 있은 불제자 중 어떤 자는 쌍족으로 구덩이를 넘었고(雙足越坑) 어떤 자는 쟁(箏)을 듣고 일어나 춤추었고 어떤 자는 몸을 분양(糞壤)에 묻었고 어떤 자는 하신(河神)을 가매(呵罵)했거니와 이는 습기(習氣)인가, 이 묘용(妙用)인가. 내지(乃至; 至) 경차(擎叉)하고 타지(打地)하고 수불(竪拂)하고 고상(敲牀)하고 목주(睦州)는 일향(一向) 폐문(閉門)했고 노조(魯祖)는 종년(終年)토록 면벽했거니와 이는 위인(爲人)함인가, 이는 위인하지 않음인가. 참으로 알지니(信知) 일체 범부가 보장(寶藏)에 매몰되어 특수히 부장부(不丈夫)다. 제인이 왜 키를 흔들고 돛을 펼쳐(擺柁張帆) 강을 버리고 언덕에 이르러(拋江過岸) 다시 말뚝을 박고 노를 흔듦(釘樁搖艣)을 쉬지 않느냐. 어느 날 도가(到家)하겠는가. 이미 조계인(曹谿人)이 되었고 또 이 가리한(家裏漢)이니 도리어 가리사(家裏事)를 보느냐. 승문 겁화가 통연(洞然)하면 대천(大千)이 모두 무너지거니와 미심하오니 저개(這箇)는 무너집니까 무너지지 않습니까. 사왈 흑칠통(黑漆桶) 속의 황금색이다. 묻되 도가 멀다하겠는가 촉사(觸事)하면 진(眞)이다 하니 무엇이 이 도입니까. 사왈 정상(頂上)이 8척 5다. 가로되 이 이치가 무엇입니까. 사왈 방원(方圓)이 7, 8촌이다. 묻되 겁화(劫火)와 위음(威音) 전에 별다른 이 일호(一壺)의 하늘이며 어루(御樓) 앞에서 사렵(射獵)함은 이 예모(刈茆)하는 밭이 아닙니다. 좌구를 제기하고 가로되 저개(這箇)를 무엇이라고 불러 짓습니까. 사왈 바로 이 예모(刈茆)하는 밭이다. 중이 바로 할했다. 사왈 오히려 주(主)를 짓는구나(猶作主在).
●蘇武; (?-前 60) 자는 자경(子卿)이며 두릉(지금의 섬서성 서안시 동남) 사람. 무제 때 중랑장(中郞將)으로서 흉노에 사신으로 갔다가 19년 동안 억류되었음. 소제(昭帝)가 즉위한 후 한절(漢節)을 가지고 장안으로 돌아왔음. 소제가 전속국(典屬國)으로 삼았고 선제(宣帝)가 관내후(關內侯)로 봉했음. 한서를 보라.
●李陵; (前 134-前 74) 전한(前漢)의 무장이며 자가 소경(少卿)이며 이광(李廣)의 손자임. 무제 천한 2년(前 99) 보병 5천인을 데리고 나가서 연북(延北)에 거처하면서 선우(單于)와 전투해 참수한 오랑캐 수급이 1만여였으나 이릉의 병사가 패했으며 흉노에게 항복했음. 선우가 이에 이릉을 귀하게 여겨 그의 딸을 그에게 시집보냈음. 그곳에 20년 거주하다가 병사했음. 친구인 소무(蘇武)와 부르고 화답한 시는 5언고시의 기원이 됨 [한서6].
●雙足越坑下; 법연어록중. 목건련은 두 발로 구덩이를 뛰어넘었고 대가섭은 쟁(箏)소리를 듣다가 일어나 춤추었고 필릉가는 하신을 욕했고(畢陵迦訶罵河神) 가루다이(迦留陀夷)는 몸이 똥흙에 묻혔다. 이 사건은 교중에 낱낱이 출처가 있거니와 모두 말하자면 이는 습기(習氣)다.
問僧 孤燈獨照時如何 僧無對 師代曰 露柱證明 師聞開靜板聲 乃曰 據款結案 師甞題語于龍門延壽壁間曰 佛許有病者當療治 容有將息所也 禪林凡有數名 或曰涅槃 見法身常住 了法不生也 或曰省行 知此違緣 皆從行苦也 或曰延壽 欲得慧命 扶持色身也 其實使人了生死處也 多見少覺微恙便入此堂 不强支吾 便有補益 及乎久病 思念鄕閭 不善退思 滅除苦本 先聖云 病者衆生之良藥 若善服食 無不瘥者也 宣和初 以病辭歸蔣山之東堂 二年書雲前一日 飯食訖趺坐 謂其徒曰 諸方老宿 臨終必留偈辭世 世可辭耶 且將安往 乃合掌 怡然趨寂 門人函骨歸龍門 塔于靈光臺側
●開靜板; 開靜 開放靜慮 禪家停止坐禪 或於課誦 粥飯 聽講 普請時 聽許散動 相對於止靜 而稱此時爲開靜 報開靜時 鳴開靜板
●據款結案; 款 情款 誠款 條目 結 詰問罪行定其刑罰 案 公案 公府案牘也 據款結案 依據民情而決定公府案牘 又依據罪人白狀而決定公府案牘
●支吾; 又作枝梧支捂 支撑對處 應對
중에게 묻되 고등(孤燈)이 홀로 비출 때 어떠한가. 중이 대답이 없었다. 스님이 대왈(代曰) 노주(露柱)가 증명한다. 스님이 개정판(開靜板) 소리를 듣고 이에 가로되 거관결안(據款結案)이다. 스님이 일찍이 용문(龍門) 연수(延壽; 연수당) 벽간(壁間)에 제어(題語)하여 가로되 불타가 병이 있는 자는 마땅히 요치(療治)함을 허락하셨고 수용(受容; 容)하매 장식소(將息所)가 있으며 선림(禪林)에 무릇 몇 이름이 있다. 혹왈(或曰) 열반(涅槃; 열반당)이니 법신이 상주(常住)함을 보아서 법이 불생(不生)임을 깨침이다(了). 혹왈 성행(省行; 성행당)이니 이 위연(違緣)이 모두 행고(行苦)를 좇는 줄 아는 것이다. 혹왈 연수(延壽; 연수당)니 혜명(慧命)을 얻고 싶다면 색신을 부지(扶持)함이다. 기실(其實)은 사람으로 하여금 생사처(生死處)를 깨치게(了) 하는 것이다. 많이 보건대 조금 미양(微恙; 微疾)을 느끼면(覺) 바로 차당(此堂)에 들어가 굳세게(强) 지오(支吾)하지 않고 바로 보익(補益)함이 있다. 구병(久病)에 이르러서야(及乎) 향려(鄕閭)를 사념(思念)하고 퇴사(退思; 물러나 사유하다)해 고본(苦本)을 멸제(滅除)함을 잘하지 못한다(不善). 선성(先聖)이 이르되 병이란 것은 중생의 양약(良藥)이니 만약 잘 복식(服食)한다면 병이 낫지(瘥) 않음이 없는 것이다. 선화(宣和; 1119-1125) 초 병으로써 고별하고 장산(蔣山)의 동당(東堂)으로 돌아갔다. 2년(1120) 서운(書雲; 冬至) 하루 전에 반식(飯食)을 마치고 부좌(趺坐)하여 그 도중(徒衆)에게 일러 가로되 제방의 노숙은 임종에 반드시 게를 남기고 사세(辭世; 세상에 고별)했거니와 세상을 가히 고별(辭)하겠는가. 또(且) 장차 어디로 가는가(安往). 이에 합장하고 이연(怡然)히 추적(趨寂; 逝世)했다. 문인(門人)이 함골(函骨; 뼈를 싸다)하여 용문으로 돌아가 영광대(靈光臺) 곁에 탑을 세웠다.
●開靜板; 개정은 정려(靜慮)를 개방함이니 선가에서 좌선을 정지함임. 혹은 과송(課誦)ㆍ죽반ㆍ청강ㆍ보청 시에 산동(散動)을 청허(聽許; 허락)함이니 지정(止靜)을 상대해서 이를 일컬을 시에 개정이 됨. 개정을 알릴 때 개정판을 울림.
●據款結案; 관(款)은 정관(情款; 진실의 情況)ㆍ성관(誠款; 眞誠)ㆍ조목이며 결(結)은 죄행을 힐문하여 그 형벌을 정함이며 안(案)은 공안이니 공부(公府)의 안독(案牘; 관청의 문서)임. 거관결안은 민정에 의거하여 공부의 안독을 결정함임. 또 죄인의 백상(白狀; 자백 혹은 자백서)에 의거하여 공부의 안독(案牘)을 결정함임.
●支吾; 또 지오(枝梧)ㆍ지오(支捂)로 지음. 지탱하며 대처함, 응대함.
潭州開福道寧禪師
歙溪汪氏子 壯爲道人 於崇果寺執浴 一日將濯足 偶誦金剛經 至於此章句能生信心 以此爲實 遂忘所知 忽垂足沸湯中 發明己見 後祝髮蔣山 依雪竇老良禪師 踰一年 徧歷叢林 參諸名宿 晩至白蓮 聞五祖小參 擧忠國師古佛淨甁趙州狗子無佛性話 頓徹法源 大觀中 潭帥席公震請住開福 衲子景從 浴佛 上堂 未離兜率 已降王宮 未出母胎 度人已畢 諸禪德 日日日從東畔出 朝朝鷄向五更啼 雖然不是桃華洞 春至桃華亦滿溪 又道 毗藍園內 右脇降生 七步周行 四方目顧 天上天下 唯我獨尊 大似貪觀天上月 失却手中珠 還知落處麽 若知落處 方爲孝子順孫 苟或未然 不免重下註脚 良久曰 天生伎倆能奇怪 末上輸他弄一場 示衆云 秋日耀長空 秋江浸虛碧 傷嗟門外人 處處尋彌勒 驀路忽擡頭 相逢不相識 諸禪德 旣是相逢 爲甚麽却不相識 剪盡霜前竹 臨溪不化龍
●道人; 指修行佛道者 或指得道之人 禪悟者
●景從; 如影隨形 比喻追隨之緊或趨從之盛
●毗藍園; ①指藍毘尼園 藍毘尼 譯爲花果等勝妙事具足 樂勝圓光 解脫處 可愛 鹽等 位於中印度之林苑 地處古印度拘利與迦毘羅衛之間 乃善覺王爲其夫人藍毘尼建造之花園 亦卽佛陀誕生之聖地 又作嵐毘尼園 流彌尼園 林微尼園等 [雜阿含經二十三 長阿含經四 翻譯名義集七 西域記六] ②花亭亦名毘藍園 於佛誕日 爲安置佛之降生像 造小亭 以紅白之衆花交覆作瓦狀 寶蓋垂幡亦皆累花而成之者 [象器箋十九]
●傷嗟; 悲傷感歎
●驀路; 驀 當 正對著
담주(潭州) 개복(開福) 도녕선사(道寧禪師)
흡계(歙溪) 왕씨(汪氏)의 아들이다. 장년(壯年; 壯)에 도인(道人)이 되었다. 숭과사(崇果寺)에서 집욕(執浴; 욕실을 執掌)했는데 어느 날 장차 탁족(濯足)하려다가 우연히 금강경을 외웠다. 이 장구(章句)에서 능히 신심(信心)을 내고 이로써 실(實)로 삼는다에 이르러 드디어 소지(所知)를 잊었다. 홀연히 비탕(沸湯) 가운데 발을 내리다가 기견(己見)을 발명(發明)했다. 후에 장산(蔣山)에서 축발(祝髮)하고 설두(雪竇) 노량선사(老良禪師)에게 의지하며 1년을 넘기자(踰) 총림을 편력(徧歷)하며 여러 명숙(名宿)을 참알했다. 만년에 백련(白蓮)에 이르러 오조(五祖)의 소참(小參)을 들었는데(聞) 충국사의 고불정병(古佛淨甁)과 조주의 구자무불성화(狗子無佛性話)를 거(擧)하자 법원(法源)을 돈철(頓徹)했다. 대관(大觀; 1107-1110) 중 담수(潭帥) 석공(席公) 진(震)의 청으로 개복(開福)에 주(住)했는데 납자가 영종(景從)했다. 욕불(浴佛) 상당(上堂) 도솔을 여의지 않고 이미 왕궁에 강탄했고 모태(母胎)에서 나오지 않고 사람 제도하기를 이미 마쳤다. 제선덕(諸禪德)이여 날마다 해가 동반(東畔)으로 좇아 나오고/ 아침마다 닭이 5경(更)을 향해 운다/ 비록 그러히 이 도화동(桃華洞)은 아니지만/ 봄이 이르면 도화가 또한 개울에 가득하다. 또 말하되 비람원(毗藍園) 안에서 우협(右脇)으로 강생(降生)하고 일곱 걸음 주행(周行)하고 사방을 눈으로 돌아보며 천상천하에 오직 나 홀로 존귀하다. 천상의 달을 탐관(貪觀)하다가 손안의 구슬을 잃어버림과 대사(大似)하다. 도리어 낙처(落處)를 아느냐, 만약 낙처를 안다면 바야흐로 효자순손(孝子順孫)이 되려니와 만일(苟) 혹 그렇지 못할진대 거듭 주각(註脚)을 내림을 면하지 못한다. 양구하고 가로되 천생(天生; 타고 난 바)의 기량(伎倆)이라 능히 기특하더니 말상(末上; 최초와 최후. 이 글에선 최초)에 저 희롱의 한바탕에 졌다. 시중(示衆)해 이르되 추일(秋日)이 장공(長空)에 빛나고(耀)/ 추강(秋江)에 허벽(虛碧; 허공의 푸름)이 잠겼다/ 상차(傷嗟)하노니 문밖의 사람이/ 처처에서 미륵을 찾네/ 맥로(驀路)에서 홀연히 머리를 들어/ 상봉해도 서로 알지 못한다. 제선덕이여, 이미 이 상봉했거늘 무엇 때문에 도리어 서로 알지 못하는가. 상전(霜前)의 대를 베어 없애니 개울에 임해 용으로 변화하지 않는다.
●道人; 불도를 수행하는 자를 가리킴. 혹 도를 얻은 사람ㆍ선을 깨친 자를 가리킴.
●景從; 그림자가 형체를 따름과 같음. 추수(追隨)의 긴박함이나 혹 추종(趨從)의 성함에 비유.
●毗藍園; ①람비니원을 가리킴. 람비니(藍毘尼; 梵 Lumbinī)는 화과(花果) 등 승묘한 일을 구족하다ㆍ낙승원광(樂勝圓光)ㆍ해탈처ㆍ가애(可愛)ㆍ소금 등으로 번역함. 중인도에 위치하는 임원(林苑)임. 땅이 옛 인도 구리(拘利)와 가비라위(迦毘羅衛)의 사이에 거처함. 곧 선각왕(善覺王)이 그의 부인 람비니를 위해 건조한 화원(花園)이며 또한 곧 불타가 탄생한 성지임. 또 람비니원(嵐毘尼園)ㆍ류미니원(流彌尼園)ㆍ림미니원(林微尼園) 등으로 지음 [잡아함경23. 장아함경4. 번역명의집7. 서역기6]. ②화정(花亭)을 또한 이름해 비람원(毘藍園)임. 불탄일에 불타의 강생상을 안치하기 위해 소정(小亭)을 만들고 홍백(紅白)의 뭇 꽃으로 교부(交覆)하여 와상(瓦狀)을 만들며 보개(寶蓋)와 수번(垂幡)도 또한 모두 누화(累花; 꽃을 포갬)하여 이룬 것 [상기전19].
●傷嗟; 비상(悲傷)으로 감탄(感歎)함.
●驀路; 맥(驀)은 당(當). 정대착(正對著).
上堂 徧界不曾藏 通身無影像 相逢莫訝太愚癡 曠劫至今無伎倆 無伎倆 少人知 大抵還他肌骨好 何須臨鏡𦘕蛾眉 上堂 摩竭正令 未免崎嶇 少室垂慈 早傷風骨 腰囊挈錫 孤負平生 煉行灰心 遞相鈍置 爭似春雨晴 春山靑 白雲三片四片 黃鳥一聲兩聲 千眼大悲看不足 王維雖巧畫難成 直饒便恁麽 猶自涉途程 且不涉途程一句作麽生道 人從汴州來 不得東京信 僧問 蓮華未出水時如何 師曰 人天合掌 曰 出水後如何 師曰 不礙往來看 問 如何是句到意不到 師曰 瑞草本無根 信手拈來用 曰 如何是意到句不到 師曰 領取鈎頭意 莫認定盤星 曰 如何是意句俱到 師曰 大悲不展手 通身是眼睛 曰 如何是意句俱不到 師曰 君向瀟湘我向秦 政和三年十一月四日 淨髮沐浴 次日齋罷小參 勉衆行道 辭語誠切 期初七示寂 至日酉時 跏趺而逝 闍維獲設利五色 歸藏于塔
●王維; (699-759) 唐代詩人畵家 南宗文人畵始祖 字摩詰 山西省太原人 開元(713-741)中右拾遺監察御史 天寶(742-755)末拜給事中 歷官尙書右丞 與弟縉皆篤志奉佛 居常蔬食 不茹葷血 晩年長齋 不衣文綵 乾元二年(759)七月卒(新唐書云 上元初卒 年六十一) [新唐書二王維傳 名公法喜志二]
상당(上堂) 편계(徧界)에 일찍이 감추지 않았고 온몸(通身)에 영상(影像)이 없다. 상봉하여 너무 우치함(太愚癡)에 의아(疑訝; 訝)하지 말지니 광겁(曠劫)에서 지금(至今)토록 기량(伎倆)이 없다. 기량이 없음을 아는 사람이 적나니 대저(大抵) 도리어 그는 기골(肌骨)이 아름답거늘 어찌 꼭 임경(臨鏡)하여 아미(蛾眉)를 그리겠는가. 상당(上堂) 마갈의 정령(正令)은 기구(崎嶇)를 면하지 못함이며 소실(少室)의 수자(垂慈)는 벌써 풍골(風骨)을 손상함이며 요낭(腰囊; 주머니를 허리에 차다)과 설석(挈錫; 석장을 끌다)은 평생을 고부(辜負; 저버림)함이며 연행(煉行; 수련하여 행하는 법)과 회심(灰心; 마음을 재와 같이 되게 함)은 서로서로(遞相) 둔치(鈍置)함이다. 어찌(爭) 춘우(春雨)가 개이자 춘산이 푸르고 백운은 삼편사편(三片四片)이며 황조(黃鳥)는 일성양성(一聲兩聲)이며 천안대비(千眼大悲)가 보기에 부족하고 왕유(王維)가 비록 교묘해도 그림을 이루기 어려움과 같겠는가. 직요(直饒) 바로 이러하더라도 오히려 스스로 도정(途程)에 건넜나니 다만(且) 도정에 건너지 않는 1구를 어떻게 말하겠는가. 사람이 변주(汴州)로 좇아와 동경(東京)의 소식(信)을 얻지 못했다. 승문 연화가 물에서 나오지 않은 때 어떻습니까. 사왈 인천(人天)이 합장한다. 가로되 물에서 나온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왕래하면서 봄에 방애(妨礙)되지 않는다. 묻되 무엇이 이 구도(句到) 의부도(意不到)입니까. 사왈 서초(瑞草)는 본래 뿌리가 없어 손 닿는 대로 집어 와서 쓴다. 가로되 무엇이 이 의도(意到) 구부도(句不到)입니까. 사왈 구두(鈎頭)의 뜻을 영취(領取; 會取)하고 정반성(定盤星)을 인정하지 말아라. 가로되 무엇이 이 의구(意句)가 모도 도(到)함입니까. 사왈 대비(大悲)가 전수(展手)하지 않아도 온몸(通身)이 이 안정(眼睛)이다. 가로되 무엇이 이 의구(意句)가 모두 이르지 않음입니까. 사왈 그대는 소상(瀟湘)으로 향하고 나는 진(秦)을 향한다. 정화(政和) 3년(1113) 11월 4일 정발목욕(淨髮沐浴)하고 다음날 재(齋)를 마치고 소참(小參)했다. 대중에게 행도(行道)를 권했는데(勉) 사어(辭語)가 성절(誠切)했다. 초칠(初七)에 시적(示寂)을 기한(期限)하더니 날에 이르러 유시(酉時)에 가부하고 서거했다. 사유(闍維)하여 설리(設利)를 획득했는데 5색이었고 탑에 귀장(歸藏)했다.
●王維; (699-759) 당대 시인이며 화가. 남종(南宗) 문인화(文人畵)의 시조니 자는 마힐(摩詰)이며 산서성 태원 사람. 개원(713-741) 중 우습유감찰어사였고 천보(742-755) 말 급사중(給事中)에 제배(除拜)되었음. 상서우승을 역관(歷官)했고 동생 진(縉)과 더불어 모두 독지(篤志)로 봉불(奉佛)했음. 거상(居常; 평상시) 소식(蔬食)했고 훈혈(葷血)을 먹지 않았음. 만년에 장재(長齋)하며 문채(文綵; 무늬 있는 비단)를 입지 않았음. 건원 2년(759) 7월에 졸했음(신당서에 이르되 上元 초에 卒했고 나이는 61) [신당서2왕유전. 명공법희지2].
彭州大隨南堂元靜禪師〈後名道興〉
閬之玉山大儒趙公約仲之子也 十歲病甚 母禱之 感異夢 捨令出家 師成都大慈寶生院宗裔 元祐三年 通經得度 留講聚有年 而南下首參永安恩禪師 於臨濟三頓棒話發明 次依諸名宿 無有當意者 聞五祖機峻 欲抑之 遂謁祖 祖乃曰 我此間不比諸方 凡於室中 不要汝進前退後 竪指擎拳 繞禪牀作女人拜 提起坐具 千般伎倆 祇要你一言下諦當 便是汝見處 師茫然退 參三載 一日入室罷 祖謂曰 子所下語 已得十分 試更與我說看 師卽剖而陳之 祖曰 說亦說得十分 更與我斷看 師隨所問而判之 祖曰 好卽好 祇是未曾得老僧說話在 齋後可來祖師塔所 與汝一一按過始得 及至彼 祖便以卽心卽佛 非心非佛 睦州擔板漢 南泉斬貓兒 趙州狗子無佛性有佛性之語編辟之 其所對了無凝滯 至子胡狗話 祖遽轉面曰 不是 師曰 不是却如何 祖曰 此不是 則和前面皆不是 師曰 望和尙慈悲指示 祖曰 看他道 子胡有一狗 上取人頭 中取人腰 下取人脚 入門者好看 纔見僧入門 便道 看狗 向子胡道看狗處下一轉語 敎子胡結舌 老僧鈐口 便是你了當處
●編辟; 祖庭事苑二 編辟 辟 當作逼 迫也
팽주(彭州) 대수(大隨) 남당(南堂) 원정선사(元靜禪師)〈後名道興〉
낭(閬)의 옥산(玉山) 대유(大儒) 조공(趙公) 약중(約仲)의 아들이다. 10세에 병이 심해 모친이 기도했는데 이몽(異夢)을 감응(感應; 感)해 버려서 출가하게 했다. 성도(成都) 대자(大慈) 보생원(寶生院) 종예(宗裔)를 사사(師事)했다. 원우(元祐) 3년(1088) 통경(通經)하여 득도(得度)했고 강취(講聚)에 머문 지 유년(有年; 여러 해)이었다. 남하(南下)하여 처음(首) 영안은(永安恩) 선사를 참알해 임제삼돈방화(臨濟三頓棒話)에서 발명(發明)했고 다음 여러 명숙(名宿)에게 의지했는데 뜻에 마땅한 자가 있지 않았다. 오조(五祖)의 기(機)가 준험(峻險; 峻)하다 함을 듣고서 억제(抑制; 抑)하고 싶었다. 드디어 오조를 참알하자 오조가 이에 가로되 나의 차간(此間)에선 제방(諸方)과 비교하지 못한다. 무릇 실중(室中)에선 너의 진전퇴후(進前退後)와 수지경권(竪指擎拳)과 선상을 돎과 여인배(女人拜)를 지음과 좌구를 제기하는 천반(千般)의 기량(伎倆)을 요하지 않는다. 다만 네가 일언하(一言下)에 체당(諦當; 穩當. 適合)함을 요하나니 바로 이 너의 견처다. 스님이 망연(茫然)히 물러났고 3재(載) 동안 참(參)했다. 어느 날 입실하여 마치자 오조가 일러 가로되 자네가 하어(下語)하는 바는 이미 십분(十分)을 얻었다. 시험 삼아 다시 나를 위해(與) 설해 보아라. 스님이 곧 쪼개어(剖) 진술했다. 조왈(祖曰) 설(說)은 또한 십분 설함을 얻었다. 다시 나를 위해 판단(判斷; 斷)해 보아라. 스님이 묻는 바에 따라 판단(判)했다. 조왈(祖曰) 좋기는 곧 좋지만 다만 이는 일찍이 노승의 설화(說話)를 얻지 못했다. 재후(齋後)에 조사탑소(祖師塔所)에 가히 오너라. 너를 위해(與) 하나하나 안과(按過)해야 비로소 옳다. 거기에 이르자(及至彼) 오조가 바로 즉심즉불(卽心卽佛)ㆍ비심비불(非心非佛)ㆍ목주담판한(睦州擔板漢)ㆍ남천참묘아(南泉斬貓兒)ㆍ조주의 구자(狗子) 무불성(無佛性) 유불성(有佛性)의 말들로 편벽(編辟)하였는데 그 대답하는 바에 마침내 응체(凝滯)가 없었다. 자호구화(子胡狗話)에 이르자 오조가 급히 전면(轉面)하며 가로되 옳지 않다(不是). 사왈 옳지 않다면 도리어 어떻습니까(如何). 조왈(祖曰) 이것이 옳지 않으니 곧 천면마저(和前面) 모두 옳지 않다. 사왈 바라건대 화상이 자비로 지시하십시오. 조왈(祖曰) 그가 말한 것을 보아라, 자호(子胡)에 일구(一狗)가 있어 위로는 인두(人頭)를 취하고 가운데로는 인요(人腰)를 취하고 아래론 인각(人脚)을 취한다. 입문자(入門者)는 잘 보아라(好看). 겨우 중이 입문함을 보면 바로 말하되 개를 보아라(看狗). 자호가 말한 개를 보아라라고 한 곳을 향해 일전어(一轉語)를 내려 자호로 하여금 결설(結舌)하게 해야 노승이 검구(鈐口; 입을 잠그다)할 것이며 바로 이 네가 요당(了當)하는 곳이다.
●編辟; 조정사원2. 편벽(編辟) 벽(辟)은 마땅히 핍(逼)으로 지어야 함. 박(迫)임.
次日入室 師默啓其說 祖笑曰 不道你不是千了百當底人 此語祇似先師下底語 師曰 某何人 得似端和尙 祖曰 不然 老僧雖承嗣他 謂他語拙 蓋祇用遠錄公手段接人故也 如老僧共遠錄公 便與百丈黃檗南泉趙州輩把手共行 纔見語拙卽不堪 師以爲不然 乃曳杖渡江 適大水泛漲 因留 四祖儕輩挽其歸 又二年 祖方許可 甞商略古今次 執師手曰 得汝說須是吾擧 得汝擧須是吾說 而今而後 佛祖祕要 諸方關鍵 無逃子掌握矣 遂創南堂以居之 於是名冠寰海 成都帥席公旦請開法嘉祐 未幾徙昭覺 遷能仁及大隨
다음날 입실하여 스님이 기설(其說)을 묵묵히 열었다(默啓). 오조가 웃으며 가로되 네가 이 천료백당(千了百當; 百了千當과 같음)의 사람이 아니라고 말함이 아니라 차어(此語)는 다만 선사(先師)가 내린 말(下底語)과 흡사하다. 사왈 모(某)가 어떤 사람이기에 단화상(端和尙; 守端)과 흡사함을 얻겠습니까. 조왈(祖曰) 그렇지 않다. 노승이 비록 그를 승사(承嗣)했지만 그의 말이 졸렬하다고 이른다. 대개 다만 원록공(遠錄公; 法遠)의 수단을 써서 접인(接人)한 연고이다. 예컨대(如) 노승은 원록공과 함께(共) 바로 백장ㆍ황벽ㆍ남천ㆍ조주 배(輩)와 손잡고 공행(共行)하나니 겨우 어졸(語拙)을 본지라 곧 감내하지 못한다. 스님이 그렇지 않다고 하였고 이에 주장자를 끌며 도강(渡江)했다. 마침 대수(大水)가 범창(泛漲)했고 인하여 머물렀는데 사조(四祖) 제배(儕輩; 무리)가 만류하며 그를 귀환하게 했다. 또 2년 만에 오조가 비로소 허가했다. 일찍이 고금을 상략(商略; 討議)하던 차에 스님의 손을 잡고 가로되 여설(汝說)을 얻으려면 이 오거(吾擧)를 써야(須) 하고 여거(汝擧)를 얻으려면 이 오설(吾說)을 써야 한다. 이금이후(而今而後)에 불조의 비요(祕要)와 제방의 관건(關鍵)이 자네의 장악(掌握)에서 도망가지 못할 것이다. 드디어 남당(南堂)을 창건해 거주했다. 이에 이름이 환해(寰海)에 으뜸(冠)이었다. 성도수(成都帥) 석공(席公) 단(旦)이 청해 가우(嘉祐)에서 개법했고 미기(未幾)에 소각(昭覺)으로 옮겼고(徙) 능인(能仁) 및 대수(大隨)로 옮겼다(遷).
上堂 君王了了 將帥惺惺 一回得勝 六國平寧 上堂 擧 臨濟參黃檗之語 白雲端和尙頌云 一拳拳倒黃鶴樓 一趯趯飜鸚鵡洲 有意氣時添意氣 不風流處也風流 師曰 大隨卽不然 行年七十老躘踵 眼目精明耳不聾 忽地有人欺負我 一拳打倒過關東 上堂 問答已 乃曰 有祖已來 時人錯會 祇將言句以爲禪道 殊不知道本無體 因體而得名 道本無名 因名而立號 祇如適來上座 纔恁麽出來 便恁麽歸衆 且道具眼不具眼 若道具眼 纔恁麽出來 眼在甚麽處 若道不具眼 爭合便恁麽去 諸仁者 於此見得倜儻分明 則知二祖禮拜 依位而立 眞得其髓 祇這些子是三世諸佛命根 六代祖師命脈 天下老和尙安身立命處 雖然如是 須是親到始得
●行年; 經歷的年歲 指當時年齡
●躘踵; 指行動不便貌 也指踉蹌欲跌貌
상당(上堂) 군왕(君王)은 요료(了了)하고/ 장수는 성성(惺惺)하니/ 1회 득승(得勝)하매/ 6국(國)이 평녕(平寧)하다. 상당(上堂) 거(擧)하다. 임제가 황벽을 참(參)한 어(語)에 백운단(白雲端) 화상이 송운(頌云) 한 주먹으로 황학루(黃鶴樓)를 때려 넘어뜨리고/ 한 번 차서 앵무주(鸚鵡洲)를 차 엎었다/ 의기가 있을 때 의기를 더했고/ 풍류하지 않을 곳에서 또 풍류다. 사왈 대수(大隨)는 곧 그렇지 않다. 행년(行年)이 70이라 늙어 용종(躘踵)하지만/ 안목은 정명(精明; 아주 깨끗하고 밝음)하고 귀는 먹지 않았다/ 홀지(忽地)에 어떤 사람이 나를 기부(欺負)한다면/ 한 주먹으로 타도(打倒)하고 관동(關東)을 지나겠다(過). 상당(上堂) 문답을 마치자 이에 가로되 조사가 있은 이래(已來)로 시인(時人)이 착회(錯會)하여 다만 언구(言句)를 가지고 선도(禪道)로 삼는다. 너무 알지 못하나니 도는 본래 체(體)가 없으나 체로 인해 이름을 얻고 도는 본래 이름이 없으나 이름으로 인해 호(號)를 세운다. 지여(祇如) 아까 상좌가 겨우 이렇게 나오고 바로 이렇게 귀중(歸衆)했는데 차도(且道)하라, 구안(具眼)했는가 구안(具眼)하지 못했는가. 만약 말하되 구안했다고 한다면 눈이 어느 곳에 있으며 만약 말하되 구안히지 못했다고 한다면 어찌(爭) 합당히 바로 이렇게 갔겠는가. 제인자(諸仁者)가 여기에서 견득(見得)해 척당(倜儻)하여 분명하다면 곧 2조가 예배하고 의위(依位)하여 서매 참으로 그 수(髓)를 얻었음을 알 것이다. 다만 이(這) 사자(些子)는 이 삼세제불의 명근(命根)이며 육대조사의 명맥(命脈)이며 천하 노화상이 안신입명(安身立命)하는 곳이다.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지만 모름지기 이는 친도(親到)해야 비로소 옳다.
●行年; 경력한 연세니 당시의 연령을 가리킴.
●躘踵; 행동이 불편한 모양을 가리킴. 또 낭창(踉蹌; 걸음걸이가 비틀거리거나 허둥대어 안정되지 아니함)하여 미끄러지려는 모양을 가리킴.
上堂 自己田園任運耕 祖宗基業力須爭 悟須千聖頭邊坐 用向三塗底下行 僧問 祖師心印 請師直指 師曰 你聞熱麽 曰 聞 師曰 且不聞寒 曰 和尙還聞熱否 師曰 不聞 曰 爲甚麽不聞 師搖扇曰 爲我有這箇 問 如何是奪人不奪境 師曰 活捉魔王鼻孔穿 曰 如何是奪境不奪人 師曰 中心樹子屬吾曹 曰 如何是人境兩俱奪 師曰 一釣三山連六鼇 曰 如何是人境俱不奪 師曰 白日騎牛穿市過 問 蓮華未出水時如何 師曰 好 曰 出水後如何 師曰 好 曰 如何是蓮華 師曰 好 僧禮拜 師曰 與他三箇好 萬事一時休
상당(上堂) 자기의 전원(田園)을 임운(任運)하여 갈고(耕)/ 조종(祖宗)의 기업(基業)을 힘껏(力) 다툼을 써라(須爭)/ 깨쳤으면 모름지기 천성(千聖)의 두변(頭邊)에 앉고/ 용(用)은 삼도(三塗)의 저하(底下)를 향해 행하라. 승문(僧問) 조사의 심인(心印)을 청컨대 스님이 직지(直指)하십시오. 사왈 네가 더위(熱)를 듣느냐. 가로되 듣습니다. 사왈 다만(且) 추위(寒)를 듣지 못했다. 가로되 화상은 도리어 더위를 듣습니까. 사왈 듣지 못한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듣지 못합니까. 스님이 부채를 흔들며 가로되 나에겐 저개(這箇)가 있기 때문이다(爲). 묻되 무엇이 이 탈인불탈경(奪人不奪境)입니까. 사왈 마왕(魔王)을 산 채로 잡아(活捉) 콧구멍을 뚫는다. 가로되 무엇이 이 탈경불탈인(奪境不奪人)입니까. 사왈 중심수자(中心樹子)가 오조(吾曹; 나의 무리. 우리들)에 속했다. 가로되 무엇이 이 인경양구탈(人境兩俱奪)입니까. 사왈 일조(一釣)에 삼산(三山)이 육오(六鼇)에 이어졌다. 가로되 무엇이 이 인경구불탈(人境俱不奪)입니까. 사왈 대낮(白日)에 소를 타고 시가를 뚫고 지나간다. 묻되 연화가 물에서 나오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아름답다(好). 가로되 물에서 나온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아름답다. 가로되 무엇이 이 연화입니까. 사왈 아름답다. 중이 예배했다. 사왈 그에게 3개의 호(好)를 주었으니 만사를 일시에 쉬었다.
問 藏天下於天下卽不問 乃擧拳曰 祇如這箇作麽生藏 師曰 有甚麽難 曰 且作麽生藏 師曰 衫袖裏 曰 未審如何是紀綱佛法底人 師曰 不可是鬼 曰 忽遇殺佛殺祖底來 又作麽生支遣 師曰 老僧有眼不曾見 問 學人乍入叢林 乞師指示 師曰 喫粥喫飯 莫敎放在腦後 曰 終日喫時未甞喫 師曰 負心衲子 不識好惡 問 劫火洞然 大千俱壞 未審這箇壞也無 師曰 阿誰敎你恁麽問 僧進前 鞠躬曰 不審 師曰 是壞不壞 僧無語 問 如何是山裏禪 師曰 庭前嫩竹先生筍 㵎下枯松長老枝 曰 如何是市裏禪 師曰 六街鐘皷韻鼕鼕 卽處鋪金世界中 曰 如何是村裏禪 師曰 賊盜消亡蠶麥熟 謳歌鼓舞樂昇平 問 如何是諸佛出身處 師曰 問得甚當 曰 便恁麽去時如何 師曰 答得更奇 問 因山見水 見水忘山 山水俱忘 理歸何所 師曰 山僧坐却舌頭 天地黯黑 有一老宿垂語云 十字街頭起一間茅廁 祇是不許人屙 僧擧以扣師 師曰 是你先屙了 更敎甚麽人屙 宿聞 焚香遙望大隨 再拜謝之
●昇平; 昇 與升同 公羊傳一升平疏曰 解云 升 進也 稍稍上進 而至於太平矣 ▲前漢紀孝文皇帝紀下 故王者三載考績 三考黜陟 九年耕餘三年之食 進業日升 謂之升平 三升曰泰 二十七年餘九年食 謂之大平 而王業大成
묻되 천하를 천하에 감춤은 곧 묻지 않습니다. 이에 주먹을 들고 가로되 지여(祇如) 저개(這箇)를 어떻게 감춥니까. 사왈 무슨 어려움이 있으랴. 가로되 다만(且) 어떻게 감춥니까. 사왈 적삼 소매 속에. 가로되 미심하오니 무엇이 이 불법(佛法)의 기강(紀綱)의 사람입니까. 사왈 이 귀(鬼)는 불가하다. 가로되 홀연히 살불살조(殺佛殺祖)하는 이가 옴을 만나면 또 어떻게 지견(支遣; 應對. 對處)합니까. 사왈 노승은 눈이 있으나 일찍이 보지 못했다. 묻되 학인은 처음(乍) 총림에 들었으니 스님의 지시를 구걸합니다. 사왈 끽죽끽반(喫粥喫飯)하고서 뇌후(腦後)에 놓아 두게 하지 말아라. 가로되 종일 먹을 때 일찍이 먹지 않았습니다. 사왈 마음을 저버린 납자가 호오(好惡)를 알지 못하는구나. 묻되 겁화(劫火)가 통연(洞然)하면 대천(大千)이 모두 무너집니다. 미심하오니 저개(這箇)는 무너집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누가(阿誰) 너로 하여금 이렇게 묻게 했는가. 중이 앞으로 나아가 몸을 굽히며(鞠躬) 가로되 불심(不審). 사왈 이는 무너지는가 무너지지 않는가. 중이 말이 없었다. 묻되 무엇이 이 산리(山裏)의 선(禪)입니까. 사왈 뜰 앞의 눈죽(嫩竹; 어린 대)에 먼저 죽순이 생겨나고 개울 아래 고송(枯松)에 노지(老枝)가 자란다. 가로되 무엇이 이 시리(市裏)의 선(禪)입니까. 사왈 육가(六街)의 종고(鐘皷)의 음운이 동동(鼕鼕)하고 즉처(卽處)에 세계 가운데의 금을 편다(鋪). 가로되 무엇이 이 촌리(村裏)의 선(禪)입니까. 사왈 도적(賊盜)이 소망(消亡; 사라져 없어짐)하니 잠맥(蠶麥)이 익고(熟) 구가(謳歌)하고 고무(鼓舞)하며 승평(昇平)을 즐긴다. 묻되 무엇이 이 제불의 출신처(出身處)입니까. 사왈 문득(問得)하니 심히 마땅하다. 가로되 바로 이렇게 갈 때 어떻습니까. 사왈 답득(答得)하니 다시 기이하다(奇). 묻되 산으로 인해 물을 보고 물을 보면 산을 잊거니와 산과 물을 모두(俱) 잊으면 이치가 어느 곳(何所)으로 돌아갑니까. 사왈 산승은 설두(舌頭)를 앉혀버렸으니(坐却) 천지가 암흑(黯黑)이다. 한 노숙(老宿)이 있어 수어(垂語)하여 이르되 십자가두에 1간(間)의 모측(茅廁; 저본에 茅廝로 지었음)을 세웠는데(起) 다만 이, 사람에게 똥 눔을 허락하지 않는다. 중이 들어(擧) 스님에게 물었다(扣). 사왈 이 네가 먼저 똥을 누었거늘 다시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똥 누게 하겠느냐. 노숙이 듣고 분향(焚香)하고 대수(大隨)를 멀리서 바라보며 재배(再拜)하며 감사했다.
●昇平; 승(昇)은 승(升)과 같음. 공양전1 승평소(升平疏)에 가로되 해석해 이르되 승(升)은 진(進)이다. 조금씩 위로 나아가(上進) 태평(太平)에 이른다. ▲전한기 효문황제기하. 고로 왕자(王者; 왕도로써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는 3재(載)에 고적(考績; 관리의 성적을 詳考)하고 3고(考)에 출척(黜陟; 관직의 강등과 승진)한다. 9년 동안 경작하여 3년의 식량이 남아야 진업(進業)이 날로 오르나니(升) 이를 일러 승평(升平)이라 한다. 3승(升)을 가로되 태(泰)니 27년에 9년의 식량이 남아야 한다. 이를 일러 대평(大平)이라 하며 왕업(王業)이 대성(大成)한다.
紹興乙卯秋七月 大雨雪 山中有異象 師曰 吾期至矣 十七日別郡守 以次越三日示少恙於天彭 二十四夜謂侍僧曰 天曉無月時如何 僧無對 師曰 倒敎我與汝下火始得 翌日還堋口廨院 留遺誡 蛻然示寂 門弟子奉全身歸 煙霧四合 猿鳥悲鳴 茶毗異香徧野 舌本如故 設利五色者不可計 瘞于定光塔之西 後住天童天目文禮作師畫像贊 可補行實之缺 因併錄此贊曰 東山一會人 唯他不唧𠺕 別處著閑房 叢林難講究 邡水潭虵出驚人 鈍鐵鍋雞啼白晝 雜劇打來 全火祇候 晩歲放疎慵 却與俗和同 勤巴子使人勘驗 擲香貼便顯家風 定光無佛 枉費羅籠 臨行搖鐸向虛空 那知喪盡白雲宗
●下火; 火葬時的點火儀式 火葬
●勤巴子; 圓悟克勤之別名 圓悟頭上有斑點 形似巴字 故稱 一說成都呼巴西 師成都人 故稱勤巴子
소흥(紹興) 을묘(乙卯; 1135) 추(秋) 7월 크게 눈이 내렸고 산중에 이상(異象)이 있었다. 사왈 나의 시기(時期; 期)가 이르렀다. 17일 군수와 헤어지고 다음(以次) 3일이 지나 천팽(天彭)에서 소양(少恙)을 보였다. 24야(夜)에 시승(侍僧)에게 일러 가로되 천효(天曉)에 달이 없을 때 어떠한가. 중이 대답이 없었다. 사왈 거꾸로 나로 하여금 너를 위해(與) 하화(下火)하게 해야 비로소 옳다. 다음날(翌日) 붕구(堋口)의 해원(廨院)으로 돌아와 유계(遺誡)를 남기고 세연(蛻然)히 시적(示寂)했다. 문제자(門弟子)가 전신(全身)을 받들어 귀환했다. 연무(煙霧)가 사합(四合; 사방에서 합침)하고 원조(猿鳥)가 비명(悲鳴)했다. 다비(茶毗)하매 이향(異香)이 들에 두루했고 설본(舌本)이 예(故)와 같았다. 설리(設利)에 오색인 것을 가히 세지(計) 못했다. 정광탑(定光塔)의 서쪽에 묻었다. 후주(後住; 뒤의 주지)인 천동(天童) 천목(天目) 문례(文禮)가 스님의 화상찬(畫像贊)을 지어 가히 행실(行實)의 결(缺)을 보충했으니 인하여 차찬(此贊)을 병록(併錄)한다. 가로되 동산(東山) 일회(一會)의 사람에/ 오직 그가 부즊류(不唧𠺕; 伶俐하지 못함)였다/ 별처(別處)에 한방(閑房)을 두어(著)/ 총림에서 강구(講究)하기 어려웠다/ 방수담(邡水潭)에서 뱀이 나와 사람을 놀라게 하고/ 둔철과(鈍鐵鍋)에 닭이 백주(白晝)에 운다/ 잡극(雜劇)을 지어 오매(打來)/ 전화(全火; 全員)가 지후(祇候; 祗候와 같음)한다/ 만세(晩歲)에 소용(疎慵; 엉성하고 게으름)을 놓아/ 도리어 속(俗)과 화동(和同)했다/ 근파자(勤巴子)가 사람을 시켜 감험하게 하매/ 향첩(香貼)을 던져 바로 가풍을 나타냈다/ 정광(定光)에 부처가 없거늘/ 헛되이(枉) 나롱(羅籠)을 허비했다/ 임행(臨行)에 방울을 흔들며 허공을 향했나니/ 백운종(白雲宗)을 상진(喪盡)한 줄 어찌 알겠는가.
●下火; 화장할 때의 점화 의식. 화장.
●勤巴子; 원오극근의 별명. 원오의 두상에 반점이 있었는데 형상이 파자(巴字)와 비슷한지라 고로 일컬음. 1설엔 성도를 파서(巴西)로 부르며 스님이 성도 사람인지라 고로 일컬어 근파자라 함.
오등회원 주역(五燈會元 註譯) 주문 제본
2024. 12월 말 번역 필. 5책 1질. 합4,615쪽. 本註와 補註 총 6,500 目. 미출간. 원문과 출처가 분명한 한문 주석을 넣고 다시 전체를 한글 번역. 주문 요청이 있을 시 인쇄소 에 부탁해 5일 내에 복사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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