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림성사

총림성사권하(叢林盛事卷下) 사감이 전등록을 열다(思鑑開傳燈錄)

태화당 2026. 4. 8. 07:28

傳曰 盡信書則不如無書 此語均然 何也 儒家經史 例有監本證據 語意已定 吾門廣衆 鄙者常衆 識者常寡 故多以臆見改易 遂失先聖玄玅之旨 可不哀哉 如紹興間 四明再開傳燈統要 乃雙溪庸僧思鑑幹 緣鑑者素無學識 誠謬故尊宿問答之言甚多 此眞法門大罪人也 嗚呼 此書乃本朝楊文公太年奉詔 爲吳僧道原校定 一旦見易於妄庸之手 可謂水潦鶴也 叢林負志之士不可不知 當以橘州湖州之學二本爲正

傳曰; 古代文獻中常見的引用格式 多見於史記等典籍 其傳通常指代論語或解釋經義的文字

盡信書則不如無書; 孟子盡心下 孟子曰 盡信書 則不如無書 吾於武成 取二三策而已矣 仁人無敵於天下 以至仁伐至不仁 而何其血之流杵也

監本; 歷代國子監刻印的書

水潦鶴; 又稱水老鶴 水白鶴 爲珍奇難遇之鳥 按毘奈耶雜事四十云 有一苾芻而說頌曰 若人壽百歲 不見水白鶴 不如一日生 得見水白鶴 時阿難陀聞已告彼苾芻曰 汝所誦者 大師不作是語 然佛世尊作如是說 若人壽百歲 不了於生滅 不如一日生 得了於生滅

 

전왈(傳曰) ()를 다 믿는다면 곧 서()가 없음만 같지 못하다(盡信書則不如無書). 이 말이 균연(均然; 公平)하다. 왜냐(何也), 유가(儒家)의 경사(經史; 經典歷史著作)는 대개() 감본(監本)의 증거가 있어 어의(語意)가 이미 정해졌다. 오문(吾門; 佛門)은 광중(廣衆)이라 비자(鄙者)는 늘 많고() 식자(識者)는 늘 적은지라 고로 다분히 억견(臆見)으로써 개역(改易)하여 드디어 선성(先聖)의 현묘(玄玅)한 의지(意旨; )를 잃으니 가히 슬프지() 아니하겠는가. 예컨대() 소흥(紹興; 1131-1162) 간 사명(四明)에서 전등통요(傳燈統要)를 재개(再開)했는데 이에 쌍계(雙溪)의 용승(庸僧; 凡僧) 사감(思鑑)이 주간(主幹; )했다. ()이란 자는 본디() 학식이 없었기 때문에() 참으로() 옛 존숙(故尊宿)의 문답의 말에 오류(誤謬; )가 심다(甚多)했다. 이것은 참으로() 법문(法門)의 대죄인(大罪人)이다. 오호(嗚呼), 차서(此書)는 곧() 본조(本朝; 宋朝) 양문공(楊文公; 楊億) 태년(太年; 大年)이 봉조(奉詔)했고 오승(吳僧) 도원(道原)이 교정(校定)했다. 일단(一旦)에 망용(妄庸)의 손에서 개역(改易; )됨을 보았으니 가위(可謂) 수료학(水潦鶴)이라 할 만하다. 총림의 부지지사(負志之士)는 부지(不知)함은 불가(不可)하다. 마땅히 귤주(橘州)와 호주(湖州)의 학(), 이본(二本)으로써 정()을 삼아야 한다.

傳曰; 고대 문헌 중에 늘 보이는 인용의 격식(格式)이니 사기(史記) 등의 전적(典籍)에서 많이 보임. 기전(其傳)은 통상(通常) 논어에 대()하거나 혹 경의(經義)를 해석한 문자를 가리킴.

盡信書則不如無書; 맹자진심하. 맹자가 가로되 서()를 다 믿는다면 곧 서가 없음만 같지 못하다(盡信書則不如無書). 내가 무성(武成; 周書篇名)에서 이삼책(二三策; 竹簡)을 취할 따름이다. 인인(仁人)은 천하에 무적(無敵)이다. 지극한 인()으로써 지극한 불인(不仁)을 치거늘 어찌하여 그 피가 공이()를 떠내려가게 하겠는가.

監本; 역대(歷代) 국자감(國子監)에서 각인(刻印)한 서().

水潦鶴; 또 명칭이 수로학(水老鶴)ㆍ수백학(水白鶴)이니 진기하여 만나기 어려운 새가 됨. 비나야잡사40을 안험컨대 이르기를 한 필추(苾芻)가 있어 송을 설해 가로되 만약 사람의 나이가 백세라도/ 수백학(水白鶴)을 보지 못한다면/ 하루를 살면서/ 수백학을 득견함만 같지 못하다. 때에 아난타가 듣고서 그 필추에게 고해 가로되 네가 외우는 바의 것은 대사(大師)가 이런 말씀을 짓지 않으셨다. 그러나 불세존이 이와 같은 말씀을 지으셨다. 만약 사람이 백세토록 장수하더라도/ 생멸을 요득(了得)치 못한다면/ 하루를 살더라도/ 생멸을 득료(得了)함만 같지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