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림성사

총림성사권하(叢林盛事卷下) 치선묘(癡禪玅)

태화당 2026. 4. 8. 07:32

癡禪玅禪師 婺州人 少在敎庠 已有打發 卽更衣遍見當代尊宿 久在寂室佛子會中 出世杭之靈石 遷中竺保寧 嗣寂室 有石室眞贊曰 我也不重你禪 我也不重你道 但重一雙手眼 別得儂家恰好 然稟性踈逸無撿 凡陞座小參 必先靑原白家之事 隆興乾道間 其道盛行 與玅喜爭抗 有得法子無學忱 巳菴深 皆叢林白眉 更有衷可菴 小年住徑山 大慧禪師示寂 卽主其後事 時玅喜亦居東堂 卒以法衣拄杖授之曰 三尺烏藤本現成 箇中毫髮不容情 佛魔凡聖俱搥殺 方顯金剛正眼睛 玅後入滅于嘉興之祥符 預定時日 親書遺偈 別時官道俗翛然而往 有王梵志韈已脫 一任橫拖倒拽之句 眞得大自在也

敎庠; 指講敎之寺院

寂室; 慧光 宋代雲門宗僧 浙江錢塘人 姓夏侯 號寂室 慧林懷深(雲門下七世)法嗣 住於臨安(浙江)靈隱 [續傳燈錄二十四 五燈會元十六]

儂家; 儂 代詞 一表示第一人稱 相當于我 二表示第二人稱 相當于你 家 助詞 後綴 一用于名詞後 如孩子家 學生家 二代詞後 如儂家 他家 誰家

靑原白家; 無門關淸稅孤貧 曹山和尙因僧問云 淸稅孤貧 乞師賑濟 山云 稅闍梨 稅應諾 山曰 靑原白家酒三盞 喫了猶道未沾唇

王梵志; 唐初白話詩僧 衛州黎陽(今河南浚縣)人 原名梵天 從容錄第六十九則 梵志翻著襪 人皆謂是錯 寧可刺爾眼 不可隱我脚 王梵志奇人 此語大播人間

 

치선묘(癡禪玅; 元妙) 선사는 무주(婺州) 사람이다. 소년(少年; )에 교상(敎庠)에 있으면서 이미 타발(打發; 擊發)이 있었다. 곧 경의(更衣; 轉宗轉派)하고 당대(當代)의 존숙을 두루 참견했다. 오랫동안 적실광(寂室; 저본에 石室으로 지었음. 寂室慧光, 下同)의 불자회중(佛子會中)에 있었고 항(; 杭州)의 영석(靈石)에서 출세했고 중축(中竺)ㆍ보녕(保寧)으로 옮겼고 적실(*寂室)을 이었다. 적실진찬(*寂室眞贊)이 있어 가로되 나는야 너()의 선()을 존중(尊重; )하지 않고/ 나는야 너의 도()를 존중하지 않는다/ 단지 일쌍(一雙)의 수안(手眼)을 존중하나니/ 특별히() 농가(儂家)를 얻어 흡호(恰好)하다. 그러나 품성(稟性)이 소일(踈逸; 淡泊하고 超逸)하여 검속(撿束; 檢束과 같음)이 없었다(無撿). 무릇 승좌(陞座)하여 소참(小參)하면 반드시 먼저 청원백가지사(靑原白家之事)였다. 융흥(隆興; 1163-1164)ㆍ건도(乾道; 1165-1173) 간 그 도가 성행(盛行)하여 묘희(玅喜)와 쟁항(爭抗)했다. 득법(得法)한 자()에 무학침(無學忱)ㆍ사암심(巳菴深; 已菴深으로 의심됨)이 있었으니 모두 총림의 백미(白眉). 다시() 충가암(衷可菴)이 있었으니 소년(小年)에 경산(徑山)에 주()했다. 대혜선사(大慧禪師)가 시적(示寂)하자 곧() 그 후사(後事)를 주재(主宰; )했다. 당시에 묘희가 또한 동당(東堂)에 거주했는데 마침내() 법의(法衣)와 주장(拄杖)을 그()에게 주며() 가로되 삼척(三尺)의 오등(烏藤; 주장자)이 본래 현성(現成)했나니/ 개중(箇中; 此中)에 호발(毫髮) 만큼도 정()을 용납하지 않는다/ 불마(佛魔)와 범성(凡聖)을 모두() 추살(搥殺)해야/ 바야흐로 금강(金剛)의 바른 안정(眼睛)을 나타낸다(). (; 元妙)가 후에 가흥(嘉興)의 상부(祥符)에서 입멸했다. 시일(時日)을 예정(預定)하고 친히 유게(遺偈)를 써서() 시관(時官; 당시의 관리)과 도속(道俗)에게 고별()하고 소연(翛然; 새가 孤飛)히 갔다(). 왕범지(王梵志)가 버선()을 이미 벗었으니 횡타도예(橫拖倒拽)하는 대로 일임한다는 구가 있다. 참으로 대자재(大自在)를 얻었다 하리라.

敎庠; 여기에선 강교(講敎)의 사원을 가리킴.

寂室; 혜광(慧光)이니 송대 운문종승. 절강 전당 사람이며 성은 하후(夏侯)며 호는 적실(寂室)이니 혜림회심(慧林懷深; 운문하 7)의 법사며 임안(절강) 영은에 거주했음 [속전등록24. 오등회원16].

儂家; () 대사(代詞). 1. 1인칭을 표시. ()에 상당함. 2. 2인칭을 표시. ()에 상당함. ()는 조사, 후철이니 1. 명사의 뒤에 씀. 예컨대() 해자가(孩子家), 학생가(學生家). 2. 대사 뒤. 예컨대() 농가(儂家), 타가(他家), 수가(誰家).

靑原白家; 무문관 청세고빈(淸稅孤貧). 조산화상(曹山和尙), 중이 물어 이르되 청세(淸稅)가 고빈(孤貧)하니 스님의 진제(賑濟)를 걸구(乞求)합니다 함으로 인해 조산이 이르되 세사리(稅闍梨), 청세가 응낙했다. 조산이 가로되 청원백가(青原白家)의 술 석 잔을 먹고 나서 오히려 입술을 적시지 않았다고 말하느냐.

王梵志; 당초 백화(白話)의 시승(詩僧)이니 위주 여양(지금의 하남 준현) 사람이며 원명은 범천이었음. 종용록 제69. 범지(梵志)가 버선()을 뒤집어 신었는데/ 사람들이 모두 이르기를 이는 착오라 한다/ 차라리 너의 눈을 찌름은 옳지만/ 나의 발을 숨김은 옳지 못하다. 왕범지(王梵志)는 기인(奇人)이다. 이 말이 인간에 크게 전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