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保安封 七閩人 嗣月菴 幼年入衆 赫赫有聲 自首衆紫金 出世楊之建隆 遷常之保安山 乃赴大參周公之命 封與大參有夤緣 雖一時小刹 賓主相得 一居逾十五年 諸方大刹屢招不往 然封氣盖諸方 開口卽貶剝 間不容私 淳熈末 乃坐脫 頌曰 五十七年幸自好 無端破戒作長老 如今掘地且活埋 旣向人前和亂掃 又有滑稽語 譏後世後生不求淡素 惟務衣裝 今併記于此曰 紡絲直裰毛段襖 打扮出來眞箇 驀然問著祖師關 却似東村王太嫂 呵呵
●大參; 參政的別稱
●夤緣; 一又作寅緣 夤 深也 二攀附上升
●打扮; 粧扮 扮裝
●太嫂; 同大嫂 大哥的妻子
○보안봉(保安封; 可封)은 칠민(七閩) 사람이며 월암(月菴; 善果)을 이었다. 유년(幼年)에 입중(入衆)하여 혁혁(赫赫)히 성명(聲名; 聲)이 있었다. 자금(紫金)에서 수중(首衆; 首座)임으로부터 양(楊)의 건륭(建隆)에서 출세했고 상(常; 常州)의 보안산(保安山)으로 옮겼으니 곧(乃) 대참(大參; 參政) 주공(周公)의 명(命)에 다다랐음이다. 봉(封)과 대참(大參)은 인연(夤緣; 深緣)이 있다. 비록 일시(一時)의 소찰(小刹)이지만 빈주(賓主)가 상득(相得)하여 일거(一居)하자 15년을 넘겼다(逾). 제방(諸方)의 대찰(大刹)에서 자주(屢) 초청(招請; 招)했지만 가지 않았다. 그러나 봉(封)은 기(氣)가 제방을 덮었고 개구(開口)하면 곧 폄박(貶剝)했고 중간(間)에 사(私)를 용납하지 않았다. 순희(淳熈; 1174-1189) 말(末) 이에 좌탈(坐脫)했다 송왈(頌曰) 57년 동안 행자(幸自; 本來. 本自) 좋았는데/ 무단(無端)히 파계(破戒)하여 장로(長老)가 되었다(作)/ 여금에 굴지(掘地)하고 또(且) 활매(活埋; 산 채로 묻음)하나니/ 이미(旣) 사람 앞을 향해 화응(和應; 和) 해 난소(亂掃)했다. 또 골계어(滑稽語)가 있어 후세(後世)의 후생(後生)이 담소(淡素)를 구하지 않고 오직(惟) 의장(衣裝; 옷차림)에 힘씀을 비웃었다(譏). 지금 여기에 병기(併記)하나니 가로되 직철(直裰)을 방사(紡絲)하매 모단(毛段)의 오(襖; 웃옷)니/ 타분(打扮; 治粧함. 꾸밈)하여 출래(出來)하니 진개(眞箇; 箇는 조사)다/ 맥연(驀然)히 조사관(祖師關)을 문착(問著)하매/ 도리어 동촌(東村)의 왕태수(王太嫂)와 흡사하다. 하하(呵呵).
●大參; 참정(參政)의 별칭.
●夤緣; 1. 또 인연(寅緣)으로 지음. 인(夤)은 심(深)임. 2. 반부(攀附; 붙들다)하여 위로 올라감.
●打扮; 장분(粧扮; 修飾). 분장(扮裝).
●太嫂; 대수(大嫂)와 같음. 대가(大哥; 맏형. 형님)의 처자(妻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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