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림성사

총림성사권하(叢林盛事卷下) 상락화산주(常樂和山主)

태화당 2026. 4. 9. 10:13

常樂和山主 三衢人 久依密菴 見處穩實 不在松源曹源之下 有法華二十八品頌行于世 其在靑山時 密菴甞以伽陀戲之曰 一拶當機伎倆窮 故鄕回首爛柯峰 人間天上誰知否 會見曹溪正脈通 然和一生辛苦 自知福尠 諸郡多以名山招之 俱不赴 暮年 與居士汪公父子卜築於龜嶺之南 火種刀耕 恬然自樂 況味不減老龐丹霞 亦一代奇事也

穩實; 穩當而踏實

曹源; 道生 南宋楊岐派僧 號曹源 南劍(福建)人 密庵咸傑法嗣 出世於饒州(江西)妙果寺 其後歷住信州(江西)龜峰寺 饒州薦福寺 著有曹源和尙語錄 曹源生禪師語要各一卷 [五燈會元續略五 續傳燈錄三十五]

卜築; 擇地建築住宅或定居

老龐; 龐蘊(?-808) 唐代著名在家禪者 世稱龐居士 龐翁 衝州衡陽縣人 字道玄 世以儒爲業 而居士少悟塵勞 志求眞諦 唐貞元(785-805)初 謁石頭希遷忘言會旨 復與丹霞天然爲友 後之江西參問馬祖云 不與萬法爲侶者 是什麽人 祖云 待汝一口吸盡西江水 卽向汝道 居士言下頓領玄要 乃留駐參承經涉二載 元和(806-820)中 北遊襄漢 隨處而居 或鳳嶺鹿門 或廛肆閭巷 初住東巖 後居郭西小舍 居士將入滅 州牧于公問疾次 居士謂曰 但願空諸所有 愼勿實諸所無 好住世間皆如影響 言訖枕公膝而化 有詩偈三百餘篇傳於世 [傳燈錄八 佛祖綱目三十二 居士傳十七]

丹霞; 天然(739-824) 唐代僧 鄧州(今屬河南)人 石頭希遷法嗣 初習儒業 後遇禪僧而悟 投南嶽石頭希遷門下 服役三年 剃髮受戒 尋謁江西馬大師 受天然之法號 居天台華頂峰三年 更往徑山參拜國一禪師 其後 大振禪風於南陽丹霞山 長慶四年示寂 壽八十六 敕諡智通禪師 [宋高僧傳十一 傳燈錄十四 五燈會元五]

 

상락화(常樂和) 산주(山主)는 삼구(三衢) 사람이다. 오래 밀암(密菴; 咸傑)에게 의지했고 견처(見處)가 온실(穩實)했으니 송원(松源; 崇嶽)이나 조원(曹源; 道生)의 아래에 있지 않다. 법화이십팔품송(法華二十八品頌)이 있어 세상에 행한다. ()가 청산(靑山)에 있을 때 밀암(密菴)이 일찍이 가타(伽陀)로써 그()를 희롱(戲弄; )해 가로되 일찰(一拶)하는 당기(當機)에 기량(伎倆)이 궁()하고/ 고향(故鄕)으로 회수(回首)하니 난가(爛柯; 썩은 자루)의 봉()이다/ 인간과 천상에 누구 아느냐/ 회견(會見)해야 조계(曹溪)의 정맥(正脈)이 통한다. 그러나 화()는 일생토록 신고(辛苦)했고 복이 적음()을 스스로 알았다. 여러 군()에서 많이 명산(名山)으로써 그()를 초청(招請; )했으나 모두() 다다르지 않았다. 모년(暮年; 晩年. 老年)에 거사 왕공(汪公) 부자(父子)와 더불어 귀령(龜嶺)의 남쪽에 복축(卜築)하고 화종도경(火種刀耕)하면서 고요히(恬然) 자락(自樂)했다. 황미(況味; 境況情味)가 노방(老龐; 龐蘊)과 단하(丹霞; 天然)에 감()하지 않나니 또한 일대(一代)의 기사(奇事).

穩實; 온당하면서 실지(實地)를 밟음.

曹源; 도생(道生)이니 남송 양기파승. 호는 조원(曹源)이며 남검(복건) 사람. 밀암함걸(密庵咸傑)의 법사. 요주(강서) 묘과사에서 출세했고 그 후에 신주(강서) 귀봉사ㆍ요주 천복사를 역주(歷住)했음. 저서에 조원화상어록ㆍ조원생선사어요 각 1권이 있음 [오등회원속략5. 속전등록35].

卜築; 택지(擇地)하여 주택을 건축하거나 혹 정거(定居).

老龐; 방온(龐蘊; ?-808)이니 당대의 저명한 재가선자(在家禪者). 세칭이 방거사ㆍ방옹(龐翁). 형주 형양현 사람이며 자가 도현(道玄). 가세(家世)가 유교로 업을 삼았으며 거사가 어릴 적에 진로(塵勞)를 깨달아 의지(意志)가 진제(眞諦)를 구했음. 당 정원(785-805) 초 석두희천(石頭希遷; 靑原行思法嗣)을 알현하여 언설을 잊고 지취를 알았으며 다시 단하천연(丹霞天然; 石頭希遷法嗣)과 벗이 되었음. 후에 강서로 가서 마조(馬祖)를 참알하고 물어 이르되 만법과 짝하지 않는 자는 이 어떤 사람입니까. 마조가 이르되 네가 한 입에 서강(西江)의 물을 마셔 없앰을 기다렸다가 곧 너를 향해 말하리라. 거사가 언하에 현요(玄要)를 문득 알았음. 이에 머물면서 참문(參問)하고 승수(承受)하며 두 해를 지냈음. 원화(806-820) 중에 북쪽 양한(襄漢)에 노닐면서 곳을 따라 거처했으니 혹은 봉령(鳳嶺)ㆍ녹문(鹿門)이며 혹은 전사(廛肆; 시장의 가게)ㆍ여항(閭巷)이었음. 처음에 동암(東巖)에 거주하고 뒤에 곽서(郭西)의 작은 집이었음. 거사가 장차 입멸하려 하자 주목(州牧)인 우공(于公; 于頔)이 문질(問疾. 문병)하던 차에 거사가 일러 가로되 단지 모든 있는 것을 공하기를 원하고 삼가 모든 없는 것을 실답다 하지 말지니 세간에 머물기 좋아함이 다 그림자와 곡향(谷響)과 같다. 말을 마치자 우공의 무릎을 베개로 하여 화거(化去)했음. 시게(詩偈) 300여 편이 있어 세상에 전함 [전등록8. 불조강목32. 거사전17].

丹霞; 천연(天然; 739-824)이니 당대승. 등주(鄧州; 지금 하남에 속함) 사람이며 석두희천(石頭希遷)의 법사(法嗣). 처음은 유업(儒業)을 익혔으며 뒤에 선승을 만나 깨닫고 남악(南嶽) 석두희천의 문하(門下)에 투신하여 3년을 복역(服役)하고서 머리 깎고 수계했음. 이윽고 강서(江西) 마대사(馬大師)를 알현(謁見)해 천연(天然)이란 법호(法號)를 받았음. 천태(天台) 화정봉(華頂峰)3년을 거주하고 다시 경산(徑山)에 가서 국일선사(國一禪師)를 참배했음. 그 후 남양(南陽) 단하산(丹霞山)에서 선풍(禪風)을 크게 떨치고 장경(長慶) 4년에 시적(示寂)했으니 나이는 86이며 칙시(敕諡)가 지통선사(智通禪師) [송고승전11. 전등록14. 오등회원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