謝良佐
字顯道 上蔡人 與游酢 楊時 呂大臨在二程之門 號四先生 有問 求仁如何下工夫 佐曰 如曾子顔色容貌辭氣上做 亦得出 辭氣者 猶佛所謂從此心中流出 今人唱一喏 不從心中出 便是不仁 不識痛癢了也 時呂大忠理會仁字不透 佐曰 世人說仁 只管著愛上 怎生見得仁 只如力行 近乎仁 力行關愛甚事 忠起立悟曰 公說仁字 正與尊宿談禪一般
●呂大臨; (約1040-1092) 字與叔 號芸閣 北宋著名理學家金石學家
●辭氣; 一語氣 二文章的風格 三言辭
●呂大忠; (約1020-約1096) 字進伯 京兆藍田(今西安市藍田縣)人 北宋官員 關學代表人物 與弟呂大防 呂大鈞 呂大臨並稱藍田呂氏四賢 [百度百科]
●怎生; 怎麽生 又作作麽生 怎生 卽何 生爲接尾詞 相當於如何了 禪宗多用於公案之感歎或疑問之詞
사량좌(謝良佐; 1050-1103)
자가 현도(顯道)며 상채(上蔡) 사람이다. 유초(游酢)ㆍ양시(楊時; 次條를 보라)ㆍ여대림(呂大臨)과 더불어 이정(二程; 程顥와 程頤)의 문(門)에 있었고 호가 사선생(四先生)이었다. 유문(有問) 구인(求仁)하려면 어떻게 공부(工夫)를 써야(下; 用) 하는가. 좌왈(佐曰) 증자(曾子; 曾參)의 안색(顔色)ㆍ용모(容貌)가 사기상(辭氣上)에서 지었고(做) 또한 나옴을 얻었음과 같다. 사기(辭氣)란 것은 부처가 이른 바 이 심중(心中)으로 좇아 유출(流出)한다와 같다(猶). 금인(今人)이 일낙(一喏)을 창(唱)하되 심중(心中)으로 좇아나오지 않음은 바로 이 불인(不仁)이니 통양(痛癢; 아픈 곳과 가려운 곳)을 알지 못했음이다. 당시에 여대충(呂大忠)이 인자(仁字)를 이회(理會)함을 투과(透過; 透)하지 못했다. 좌왈(佐曰) 세인(世人)이 설인(說仁)함은 다만 애상(愛上; 上은 방면을 표시)에 관착(管著)하거늘 어떻게(怎生) 인(仁)을 견득(見得)하겠습니까. 지여(只如) 역행(力行)해야 인(仁)에 가깝거늘 역행(力行)이 애(愛)의 무슨 일(甚事)에 상관되겠습니까. 충(忠)이 기립(起立)하며 깨치고 가로되 공(公)이 인자(仁字)를 설함은 바로(正) 존숙(尊宿)의 담선(談禪)과 더불어 일반(一般)입니다.
●呂大臨; (約 1040-1092) 자가 여숙(與叔)이며 호가 운각(芸閣). 북송의 저명한 이학가(理學家)며 금석학가(金石學家).
●辭氣; 1. 어기(語氣). 2. 문장의 풍격(風格). 3. 언사(言辭).
●呂大忠; (約 1020-約 1096) 자가 진백(進伯)이며 경조(京兆) 남전(藍田; 지금의 西安市 藍田縣) 사람. 북송의 관원(官員)이며 관학(關學)의 대표 인물. 동생 여대방(呂大防)ㆍ여대균(呂大鈞)ㆍ여대림(呂大臨)과 더불어 병칭(並稱)하여 남전여씨사현(藍田呂氏四賢)이라 했음 [백도백과]/
●怎生; 즘마생(怎麽生)이니 또 작마생(作麽生)ㆍ즘생(怎生)으로 지음. 곧 하(何)니 생(生)은 접미사가 됨. 여하료(如何了; 어떠한가)에 상당함. 선종에서 다분히 공안의 감탄, 혹 의문지사(疑問之詞)에 사용함.
평심사 : 네이버 블로그
평심사주(平心寺主) 태화당( 泰華堂) 정원(淨圓)스님의 저서 공개방입니다.
blog.naver.com
'거사분등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거사분등록권하(居士分燈錄卷下) 고세칙(高世則) (0) | 2026.06.28 |
|---|---|
| 거사분등록권하(居士分燈錄卷下) 대도순(戴道純) (0) | 2026.06.28 |
| 거사분등록권하(居士分燈錄卷下) 유초(游酢) (0) | 2026.06.27 |
| 거사분등록권하(居士分燈錄卷下) 정이(程頤) (0) | 2026.06.26 |
| 거사분등록권하(居士分燈錄卷下) 정호(程顥) (0) | 2026.06.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