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사분등록

거사분등록권하(居士分燈錄卷下) 진관(陳瓘)

태화당 2026. 6. 28. 09:01

陳瓘(靈源惟淸禪師法嗣)

陳瓘 字瑩中 號了翁 又號華嚴居士 立朝骨鯁剛正 有古人風烈 留神內典 議論奪席 獨參禪未大發明 禪宗因緣多以意解 酷愛南禪師語錄 詮釋殆盡 惟金剛與泥人揩背注解不行 甞語人曰 此必有出處 但未有知之者 諺云 大智慧人面前有三尺暗 果不誣也 後謁靈源惟淸 執聞見以求解會 淸曰 執解爲宗 何日偶諧 瓘乃開悟 寄淸偈曰 書堂兀兀萬幾休 日暖風柔草木幽 誰識二千年底事 如今只在眼睛頭

骨鯁; 一魚骨頭 二比喻個性正直 剛健

奪席; 謂言談見解超過在座的其他人 祖庭事苑三 奪席 東漢 戴憑 字次仲 汝南平興人也 正旦朝賀 百僚畢會 帝令群臣能說經者 更相難詰 義有不通 輒奪其席以益通者 憑遂重坐五十餘席 故京師爲之語云 解經不窮戴侍中

偶諧; 偶 相對 投合 諧 和諧 配偶 偶諧卽相對而和諧之義

兀兀; 混沌無知 隨性自在的樣子

 

진관(陳瓘)(靈源 惟淸禪師法嗣)

진관(陳瓘; 1057-1124)은 자가 영중(瑩中)이며 호가 요옹(了翁)이며 또 호가 화엄거사(華嚴居士). 입조(立朝; 벼슬에 오르다)하여 골경(骨鯁)이 강정(剛正)하였고 고인의 풍렬(風烈; 風範)이 있었다. 내전(內典)에 유신(留神; 정신을 머물다)했고 의논(議論)하면 탈석(奪席)했다. 유독(惟獨; ) 참선(參禪)하여 크게 발명(發明)하지 못했고 선종의 인연을 다분히 뜻으로써 해석했다. 남선사(南禪師; 慧南)의 어록을 혹애(酷愛)했고 전석(詮釋)을 거의() 다했으나 오직 금강(金剛; 金剛力士)과 니인(泥人)이 개배(揩背; 등을 문지르다)하다를 주해(注解)를 행하지 못했다. 일찍이 사람에게 말해 가로되 이것은 반드시 출처가 있을 것이다. 단지 이를 아는 자가 있지 않다. (; 俗談)에 이르되 대지혜인(大智慧人)의 면전에 삼척(三尺)의 어둠이 있다 하더니 과연 속임()이 아니다. 후에 영원유청(靈源惟淸)을 참알하여 문견(聞見)을 가지고 해회(解會; 解釋)를 구했다. 청왈(淸曰) (; 理解)를 가지고() ()을 삼는다면 어느 날에 우해(偶諧)하겠습니까. ()이 이에 개오(開悟)했다. 유청에게 기탁한 게에 가로되 서당(書堂)에서 올올(兀兀)히 만기(萬幾)를 쉬었나니/ 해가 따뜻하고 바람이 부드럽고() 초목이 그윽하다()/ 누가 아느냐 2천 년의 일이/ 여금에 다만 안정두(眼睛頭; 後綴)에 있는 줄을.

骨鯁; 1. 물고기의 뼈. 2. 개성이 정직하고 강건(剛健)함에 비유.

奪席; 이르자면 언담(言談)과 견해가 좌석에 있는 기타의 사람을 초과함. 조정사원3. 탈석(奪席) 동한(東漢; 후한)의 대빙(戴憑)은 자가 차중이며 여남의 평흥 사람이다. 정단(正旦; 元旦)에 조하(朝賀; 조정에 나아가 임금에게 賀禮하는 일. 朝儀陳賀의 준말)하는데 백료(百僚)가 다 모였다. 황제가 군신(群臣)에 능히 경을 설하는 자로 하여금 바꿔 가며 서로 난힐(難詰)케 했다. 뜻이 통하지 않으면 곧 그 좌석을 빼앗아 통하는 자에게 더해 주었다. 대빙이 드디어 중좌(重坐; 포개진 자리)50여 석()이었다. 고로 경사(京師; 서울)에서 이 때문에 말해 이르되 경을 이해함이 다함 없는 대시중(戴侍中)이다.

偶諧; ()는 상대, 투합이며 해()는 화해(和諧; 配合하여 適當함을 얻음), 배우(配偶)니 우해는 곧 상대하여 화해(和諧)함의 뜻.

兀兀; 혼돈(混沌)하여 앎이 없으며 성품 따라 자재한 양자(樣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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